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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이철 『장동일지』, 서해문집 2024

세상을 구성하는 시간의 구조물 아래

 

 

조해진 趙海珍

소설가 simpleheart6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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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간첩’은 금기가 내재된 단어이다. 알려 해서는 안 되고 늘 의심하고 경계해야 하는, 같은 의미의 영단어인 ‘스파이’에는 없는 특정 존재에 대한 금기…… 간첩에 내재된 그 금기의 이미지는, 물론 실제로 남파된 간첩도 존재했겠지만, 누구라도 간첩으로 조작될 수 있었던 숱한 역사를 통해 축적되어왔으리라.

정권을 유지하고 민주주의를 유예하기 위해 간첩이 특히나 필요했던 군부독재 시대, 민주화운동을 하던 재야 정치인과 대학생, 기준 없이 ‘불온’하다고 판단된 책을 읽고 공유한 사람들, 통일을 고민하며 만들어진 단체의 활동가들, 자의와 상관없이 납북된 경력이 있는 어민 등이 언제라도 간첩이 될 수 있었다. 한국뿐 아니라 북한에도 친인척이 살고 있던 재일조선인은 그중에서도 간첩이 될 만한 최적의 요건을 갖추고 있었다(고 서경식 선생은 한국과 북한이 분단되지 않은 시절부터 재일조선인은 존재했으므로 ‘재일한국인’보다는 ‘재일조선인’이 그 역사적인 기원에 맞는다고 쓴 바 있다. 서경식 『디아스포라 기행』, 김혜신 옮김, 돌베개 2006).

내가 재일조선인이라는 특수한 디아스포라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서경식 선생의 저서와 양영희 감독의 영화 및 다큐멘터리를 통해서였다. 그들의 문장과 영상을 접하며 재일조선인 한명 한명의 작은 역사를 배울 수 있었고, 그 역사가 한국 전체의 역사에 접합되고 굴절되는 지점에 대해 고민하는 기회도 얻게 되었다.

재일조선인, 그들은 전쟁과 분단을 겪기 전인 일제강점기 때부터 노동착취의 대상이 되어, 혹은 자발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나 유학을 목적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해방 뒤에도 모종의 이유로 귀향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태어나고 기억하는 고향은 남북이 나뉘지 않았으니 당연히 그들에게 두 나라는 똑같은 무게로 조국일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일본에서도 차별과 멸시를 받으며 살아온 재일조선인의 자녀들 중 일부는 조국을 알고 싶다든지 조국에서 새로운 삶을 일구겠다는 일념으로 북한으로 향하는 귀국선에 올라타거나(1959년부터 1984년까지 이어진 ‘북한 귀국 사업’—북송 사업—은 1959년부터 1964년까지 활발히 진행되었고, 그뒤 잠시 중단되기도 했으나 1984년까지 꾸준히 이어졌다. 이 사업으로 십만명 정도의 재일조선인이 북한으로 입국했다) 한국 대학으로 유학을 왔는데, 결과적으로 남북한 모두 그들의 희망을 품어주지는 못했다.

『장동일지: 재일한국인 정치범 이철, 13년간의 옥중 기록』(김웅기 옮김)을 읽으며 나는 ‘이철’이라는 재일조선인이 그려나간 작은 역사를 하나 더 배우게 됐다. 1948년 일본 쿠마모또현에서 태어난 그는 “조국의 역사는 물론 우리말도 거의 몰랐”(27면)지만 츄오오대학에 다니면서 조금씩 조국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어느날 학적과에서 일본 이름이 아닌 한국 이름 ‘이철’이 적힌 학생증을 새로 발급받으며 한국인으로 살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1975년, 그가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대학원에 입학한 건 그에게는 당연한 삶의 흐름이었을 것이다.

대학원에 다니며 결혼까지 앞두고 있던 그는 1975년 11월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 중앙정보부에 연행됐다. 그뒤부터는 익숙한 절차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고문과 자백 강요, 터무니없는 중형 판결과 긴 수감생활…… 그는 고문 과정에서 거짓 자백을 한 댓가로 고려대학교 선배와 친구들뿐 아니라 약혼녀마저 연행되고 때로는 수감되기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절망했다. 감옥에서 동료 수감자들의 복지를 위해 늘 앞장선 것이나 온갖 수모와 고문을 이겨낸 힘은 바로 그 자학적인 회한에서 연원되었을 터이다.

이 책에는 이철이라는 한 사람이 13년에 걸쳐 통과한 감옥생활에 대한 솔직한 술회도 담겨 있다. 하루아침에 간첩이 된 재일조선인의 옥중 수기라면 서승의 『옥중 19년』(역사비평사 1999)과 서준식의 『서준식 옥중서한』(야간비행 2002)을 읽어 이미 그 실상을 조금은 알고 있었지만, 이철의 『장동일지』는 또다른 시선으로 그 시절을 재현한다는 점에서 새로웠다. 서승과 서준식의 문장이 비관적이고 내향적이라면 이철은 솔직하면서도 소박한 문장을 썼고, 그래서 그때의 비인간적인 감옥 풍경과 그 풍경 속으로 끌려들어온 동시대 정치범들이 한층 생생하게 전달될 수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비전향 장기수들, 인혁당, 통일혁명당, 민청학련, 남민전, 민통련 사건들에 연루된 사람들이 한명씩 거론될 때마다 조금이라도 더 정의롭고 싶었던 그들이 어째서 그토록 비참한 대우를 받아야 했는지, 나는 괴로운 마음으로 골똘히 생각에 잠기곤 했다. 자백을 강요받으며 극심한 고문을 당하고 결국엔 무기징역이나 사형에까지 이르는 판결을 받은 그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감옥에 갇혀 있어야 했던 그들을 우리는 모른 채 살고 있거나 너무 빨리 잊어버렸다는 것도 괴롭게 상기됐다.

그렇다고 내가 괴로움으로만 『장동일지』를 읽은 건 아니다. 이철 선생이 찾아오는 가족 한명 없는 사형수를 위해 영치금을 넣어준다든지 치아가 나빠져 밥도 씹기 힘든 장기수의 틀니 값을 내주는 장면, 그리고 그를 위해 일본 친구들과 단체들이 구명운동을 하고 책을 출간하는 등의 다양한 활약을 하고 가톨릭 교구의 대주교 등이 탄원서를 쓰는 대목, 무엇보다 약혼자로 인해 무고하게 수감됐지만 끝까지 그를 기다렸다가 결국 결혼하여 한 가정을 이룬 ‘민향숙’의 서사를 읽으며, 인간에게는 본래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뜨거운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다.

나는 가끔 이 세상이 시간의 구조물로 형상화되어 보일 때가 있다. 구조물의 밑바닥에는 내가 태어나기 전이나 어린아이였던 시절부터 조금이라도 더 인간적인 세상을 마련하기 위해 기꺼이 기득권과 권리를 포기한 사람들이 있다. 나는 알고 있다. 오늘의 내 사소한 고민과 때로는 나를 환멸하게 하는 속물로서의 갈등은 그들이 다져놓은 토대가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그러니 나는 이 시대 독자들에게 강권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끊이지 않고 이철을, 서승과 서준식을, 리영희와 신영복을 읽어야 한다고, 그것이 우리가 가까스로 인간이기 위한 하나의 조건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