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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박상률 朴祥律
1958년 전남 진도 출생. 1990년 한길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배고픈 웃음』 『진도아리랑』 『하늘산 땅골 이야기』 『꽃동냥치』 『국가 공인 미남』 『길에서 개손자를 만나다』 『그케 되았지라』 등이 있음.
moosan@hanmail.net
시를 배우는 교실
술을 잔뜩 마시고 집에 가는데
(나는 넘어지지 않았는데)
길바닥이 벌떡 일어나서 내 뺨을 갈겼다
전철역 입구에 말끔하게 차려 입은 젊은이가 쭈그리고 앉아 있다
가까이 가서 보니 개 뒷다리를 물고
(개가 자신을 먼저 물어서 자신도 물었단다)
‘때찌때찌’, 개를 때리는 시늉을 하며
분한 표정을 짓고 있다
낙엽이 떨어진다, 가을이 와야 한다
(이윽고 가을이 와 바람에 낙엽이 날리기 시작하자)
차가 나를 서울에서 단풍 물든 설악산까지 데려다주었다
(운전하느라 녹초가 되었다)
길바닥이 일어서고,
사람이 개를 물고,
낙엽이 떨어져 가을이 오고,
차는 나를 데려다주고
입으로 똥 싸는 사내
태풍이 두개 지나가고
배 속이 편치 않아 시달리고
바깥일에 정신이 없었지만
광주에 일이 있어 광명역에서 열차 탔다
광주역에 내리자마자 화장실에 갔다
내 오른쪽 옆 칸에서 큰 소리로 전화하는 사내
응, 나 □□야. 지금 막 광주역에 골인했어. 광명역 주차장에 차 파킹하려 했는데 주차장이 오바해서 역에서 먼 사설주차장에 파킹하고 겨우 기차 탔네. △△하곤 싸인이 안 맞아서 컨택 못했고, ○○하곤 약속이 캔슬되어서…… 근데 ××는 와이프가 병원 미팅 잡혀서 못 왔어. 택시 타고 가서 오프닝 멘트 할게. 조금 뒤 조인하세
내 왼쪽 옆 칸의 사내
그 냥반 참, 정신없게 허네. 거그는 입으로 똥 싸도 암시랑토 안 허요? 좀 조용히 허쇼. 똥 좀 눕시다
그 옆 칸의 또다른 사내
아따 지저분하네. 그 냥반 영어 나부랭이 드럽게 씨부렁거리네
(사이)
전화 사내 조용
역 밖에 나와 택시 탔더니 택시 운전석 뒤 문구, 무섭네
전화 절대 금지
바닥에 침 뱉기 절대 금지
흡연 절대 금지
애정행위 절대 금지
통역 필요하면 창문 쪽에 적힌 번호로 연락
난 하나도 해당사항 없지만 택시기사 흘끔흘끔 쳐다봤다
다행히도,
기사 뒤통수 쳐다보지 말라,는 말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