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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오은 吳銀
1982년 전북 정읍 출생. 2002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호텔 타셀의 돼지들』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유에서 유』 『왼손은 마음이 아파』 『나는 이름이 있었다』 『없음의 대명사』 등이 있음.
wimwenders@naver.com
소리 업기
그가 지나갈 때면 방울 소리가 들렸다
빗방울이나
땀방울이었으면
기척 없이 지나갈 수 있었겠지만
쇠붙이로 만든
흔드는 방울이어서
흔들지 않아도
제풀로 흔들리는 방울이어서
방울은 소리를 만들었다
방울을 굴리듯
소리를 업고
방울방울 쓰다듬듯
어르고 달래며
아무리 살금살금 걸어도
아무리 가만가만 움직여도
방울은 울기를 멈추지 않았다
소리를 업고 다닌다고
소리와 한 몸이 되려 한다고
그는 사방팔방에서 소리를 들어야 했다
쓴소리, 입찬소리, 볼찬소리, 억지소리, 센입천장소리, 오만소리……
간혹 미끄러진 소리가 허리춤을 긁을 때
그는 안간힘으로 그것을 둘러업었다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마찰음이 들렸다
소리가 소리를 부르고 있었다
소리를 엎을 수도
소리 위에 다른 소리를 얹을 수도 있었지만
그는 업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소리 업기가 업이라도 된 것처럼
방울이 녹슬어 더이상 소리를 내지 못하게 되자
그는 제풀에 쓰러졌다
비가 퍼붓고 땀이 흘렀다
약간의 그것이 범벅이 되고 있었다
소리 없기
음 소거
적요
공(空)
그가 없는데도
사람들이 지나갈 때면
방울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백색소음처럼
있되
있다고 여겨지지는 않는
기적 같은 기척
소리가 소리를 기리고 있었다
곤죽 위에 떨어져도 울리는 방울
울기를 그치지 않는 방울
거품기(紀)
발자국을 내고 있다고 믿었는데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거품이 일었다
물이 있었구나
물이 움직이고 있었구나
흘러넘치고 말았구나
부닥치는 일은 부서지는 일이구나
거품을 치며
거품을 헤치며
거품을 물고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계획이 수포가 될 때
터지면서 맺히는 것이 있었다
억울한 것은 안 잊힌다
못 잊는 게 아니라 안 잊히는 거
거품은 되풀이된다
다급히 걷어내도 대번에 발생한다
다시 나타난다
도처에 흐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