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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장석남 長錫南
1965년 인천 출생.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젖은 눈』 『뺨에 서쪽을 빛내다』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꽃밭을 바라보는 일』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 등이 있음.
sssnnnjjj@hanmail.net
저녁밥
솥 열어 밥 풀 때
명치에 꽉 막혀 다가드는 한덩어리
어둠 걸러낸 베수건 같은 것
베수건 칭칭 싸맨 듯한 전등불 아래에
제 손으로 입 틀어막고 내는 소리 있지
밥물 넘쳐흐르듯……
뿌연 김들이 올라가 흩어진다
얌전히 잦아들어 아득한 듯
김 내보내고 수북이 반짝이는
흰쌀밥
한그릇
한그룻
그리고 또 한그릇
저녁밥을 푸네
끝도 없이 저녁밥을 푸네
솥
어느날부터인가 나는 솥을 둘러싼 무궁한 이야기를 알게 되었습니다
불을 모으고 쇠를 장만하고부터 윗대의 사람들은 이 솥을 겨드랑이에, 사타구니에 간직하여 지녔으리라고 불과 쇠는 여전히 내게 일러주어요
수시로 들이닥쳐 칭얼대는 손님 허기씨도 내게 일러주어요
끓는 솥을 엎어버리는 무뢰한의 이야기도 더러 있어요
더러라니요 수시로 있어요!
그후 세발솥은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갔으나
불에 얹는 숨죽인 솥단지들은 여전히 처마 아래 부엌을 지켜서
어린 숨들을 길러내요
*
빈 솥에 알록달록 살림을 넣은 이삿짐을 보았어요
풋것들, 비린 것들 삶으러 가는 솥을 한동안 바라봤어요
고요히 불 위로 올라가는 솥을 보아요
불 위에 떠서 진저리 치는 연꽃을 보아요
무한 고요로부터의 연꽃을 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