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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김사인 金思寅
1956년 충북 보은 출생.
1982년 동인지 『시와 경제』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밤에 쓰 는 편지』 『가만히 좋아하는』 『어린 당나귀 곁에서』 등이 있음.
kimnuiyeon@kimnuiyeon.jeonyongwan.kr
염소
너는 입이 뾰족하구나
코도 뾰족하구나
눈은 노리께하고
일찍 떠난 내 친구 김이구같이
지리한 얼굴이구나
김이구는
아들을 잃은 뒤
너무 슬퍼하다 뒤따라가고 말았지만
그러나 조용하고 평온한 나라로 갔을 것이다 염소야
턱어리 주변에 너절한 것이 좀 묻은
흰 염소야 어떻달 것도 없는 심심한 표정아
아무러면 어떠냐
어릴 때부터 늙은 얼굴이던
내 친구 김이구도
달리 마땅한 표정이 없기는 없었을 것이다
염소야 시골 파장머리 나까오리 영감 같은 염소야
저녁으로 멀건 물국수 한 양푼 얻어먹고
헛트림이나 하는 얼굴아
그래도 그 가난한 꼬리로 항문은 딱 봉하고 다니는구나
자존심을 지켰으니 최소한 몰락양반의 후예로구나 염소야
내 친구 김이구는 딸과 아내를 두고 먼저 갔는데
가장 잃은 그 염소들은 어디서 먹는지 굶는지
소식 한번 못 묻고 지나는구나
벨로루스끼역에서
모스끄바 뜨베르스까야 거리
벨로루스까야 지하철역에서 몇발짝 더 가면
벨라루스 가는 기차역이 있네
민스끄로 떠나는 기차가 있네
어둠에 섞여 2층으로 올라가면
겨울밤 아홉시 반
대합실 있네
시커먼 방한복들 뒤집어쓰고
배낭에 기댄 사내들의 잠을
쓸쓸한 냄새가 눈처럼 덮어주고 있네
돈 못 벌고 돌아가는 막막한 냄새
그 한옆에 나도 섞여
어느 전생의 내 처갓집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기다리네
돈 못 번 사내가 되어 차라리 맘 편하네
—마리아 다브라볼스까야, 까따리나 살라두하…… 그리운 얼굴들
하나씩 스카프를 두르고 장모 같은 큰 처남댁 같은 걸직한 목소리
허리 굵은 슬라브 할머니들은 저켠에서 담배를 뽁뽁 피우네
메주 뜨는 사랑방의 봉초 냄새
구수하고 무신경한 냄새가 자리를 건너와 우리를 덮어주네
밤기차는 으레 몇시간째 오지 않고
만리길을 떠나온 나는 자꾸만 눈이 감기네
민스끄 뒷골목 아내가 끓이는 보르시 수프 냄새가 나는 듯하네
모스끄바 서쪽 뜨베르스까야 거리
눈 덮인 벨라루스행 기차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