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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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준 朴蓮浚

1980년 서울 출생.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베누스 푸디카』 『밤, 비, 뱀』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 등이 있음.

gkwlan@hanmail.net

 

 

경주 3

 

 

한 여자가 어린 딸을 세우고 사진을 찍는다

수련 앞에서

내 눈으로 네 얼굴을 삼켜줄게

네 모든 것을 숨겨줄게, 한다

 

사진을 찍는다

 

혼자

그리고 둘,

 

둘은 영원한 혼자다

 

한 여자가 어린 딸을 뱃속에 다시 넣는다

무덤가를 걸으며 둥그러진다

 

혼자

그리고 둘이 걸어간다

 

수련이 숨겨둔 속내를 혀처럼 잠깐

내밀어보는 오후

내밀면 얼굴이 된다

 

숨 쉬는 것을 들키지 마

숨 쉬는 것을 자랑하지 마

죽은 이들 앞에서 무엇도 자랑하지 마

수련의 수런거림

 

한 여자와 어린 딸이 걸어간다

사진 속으로

 

 

 

오늘의 피드

 

 

찾습니다

나조차 모르는,

기미로 가득하여 구름들이 우르르 도망치는 삶

 

책을 읽고 읽었다고 말합니다

음식을 먹고 먹었다고 말합니다

고양이를 사랑하며 고양이를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찾습니다

발설하지 않고 간직하는 법

 

이제 누구도 삶을 비밀에 부치지 않으므로

가난해졌을까요

 

허기진 사람이 허기로 가득한 음식을 먹고 먹었다고 말하지 않아볼까요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며 사랑한다 말하지 않아볼까요 할 수 없는 일을 해내고 해냈다고 말할지 않아볼까요

 

찾는 것은 빛

빛의 기미

 

사라지는 것을 사라지는 중이라고 말하는 중입니다

베개를 두드리며 베개를 두드린다고 말하는 중입니다

식물의 죽은 잎을 따며 죽은 잎을 딴다고 말하는 중입니다

수박을 신통하게 자르며 신통하게 자르는 방법을 말하는 중입니다

 

문제는 간직이죠

빛의 기미를 알아채며,

동시에

빛의 기미를 간직하기

동시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배부를까요 눈이 올까요 눈이 오는 중일까요 비가 올까요 비가 오는 중일까요 마음 한 부분이 조금 젖을까요 젖고 있는 중일까요 말리는 중일까요 말리는 중이라 말하는 중일까요

 

동시에

 

모두에게 말하고 나니

찾고 싶어지는 것은 빛

 

빛의 기미

 

말하지 않으면 찾지 않아도 될까요 문제는 허기죠 모두가 부자니까 부자라고 말하는 중에 허기질 수밖에 허기진다고 말하는 중에……

 

찾습니다

어떤 부스러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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