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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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현 林秀炫

경북 예천 출생. 2016년 『창비어린이』 동시 부문, 2017년 『시인동네』 시 부문으로 등단.

시집 『아는 낱말의 수만큼 밤이 되겠지』 등이 있음.

rose4435392@hanmail.net

 

 

여름 풀밭은 무성함이 자랑처럼 자라나고

 

 

우리는 풀밭을 헤매었지

막대기로 바닥을 툭툭 치며 무엇을 찾는지 모르고

어쩌면 찌그러진 축구공과 뭉개진 얼굴과

마주하게 될 거야

 

그때 너무 경악스러운 얼굴로 세상에 대해 사는 것에 대해

회의론자는 되지 말자고 다짐 같은 걸 하곤 했어

그렇게 찾으려고 애썼으나 막상 찾고 나면

그들은 아침저녁 팔을 흔들며 언덕의 둘레를 만들던 사람

 

걷는 게 운동이 될 것처럼

같이 가 부르면 언제라도 멈춰 기다려주었어

 

듬성듬성 하얗게 세어가는 갈대밭 사이

개들이 컹컹 저녁을 헤집을 때

 

동원된 방청객의 박수처럼

서로의 진심을 의심하며 우리는 풀밭을 헤매었지

뭐가 나올까봐도 겁나고

아무것도 없을까 더 무모한

이런 생을 산다는 게 심드렁해져서

뭔가 입맛 다실 만한 일을 찾곤 했는데

 

우리가 찾고자 하는 것

장소도 이름도 없이

희멀건

 

시 말고 시적인 것을 찾는다고 찾았는데 바닥까지 탁탁 치며

걸었는데 나는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풀밭을 빠져나올 때

 

뒤에서 소리쳤다

여기 여기야!

 

 

 

신의 작은 놀이터에 삽 하나를 두고 갔네

 

 

삽이 삽일 수 있는 건 그걸로 뭔가 파낼 수 있기 때문이지요

 

너는 어느 해

잠옷을 입은 채 맨발로

밤의 한 모퉁이에 서 있었다

 

그림자들이 모여들어 하나둘 부은 다리를 주무른다

능소화가 담을 훌쩍 뛰어넘으며

뒤돌아보는 것이다

이만큼 했으니 좀 봐달라고

펴지지 않는 살림에 대해

안 된다 안 된다 하며 해주는 마음도 있다

 

너는 밤의 모퉁이를 찢어

세간의 목록을 빼곡히 적는다

전기요금 영수증이 현관 앞에 쌓이고

가스가 끊긴 집에서 모녀의 입김이 뿜어져나올 때

 

한 사람은 삽을

그들은 초가 필요했다

 

빈방 있음

너는 공평하게 불행을 나눌 것이다 손바닥만 한 케이크를 열두조각으로 나눌 때처럼

펴놓은 가난이 날아가지 못하게

신발을 누를 것

 

너는 모래 삽 하나를 두고

그 집 앞을 떠나지 못해 문고리를 잡았다 놓았다

햇반 같은 달이 떠오를 때까지

너는 밤의 한 모퉁이에 흰 그림자처럼 오래 서성인다

 

어떻게 끝날지 다 알고 있잖아

그 집에 다른 세입자가 매끄럽게 흘러들어온다

 

두고 간 삽으로

장미꽃을 심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