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조명
시로 이루어진 사람
양경언 梁景彦
문학평론가. 조선대 문예창 작학과 교수.
평론집 『안녕 을 묻는 방식』 등이 있음.
purplesea32@hanmail.net
아끼는 마음으로부터
장철문 시인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우리는 먼저 시인의 새 시집 『식당 칸은 없다』(창비 2025)에 수록된 한 작품을 읽으며 지금 세상이 모른 체하는 시의 신비가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지 느끼기로 한다.
둘레길 비탈에 서어나무 한그루가 검은 잎을 붙들고 새잎을 발행하지 못하고 있다. 비탈을 오르는 허벅지처럼 꿈틀거리던 둥치와 가지가 검게 젖고 있다. 숲은 아무 일 없는 듯 잦아드는 빗줄기 속에 오월의 새소리를 길어 올리고 있다. 새소리가 샘물처럼 사라지고 있다. 두 사람이 팔짱을 끼고 나뭇잎이 발행하는 빗소리에 귀를 두고 비탈을 오르고 있다. 둘 사이에서 일어나는 말소리가 빗소리 속에 사라지고 있다. 빗소리가 사라지고 있다.
—「숲」 전문
시는 오월에 꽃을 틔우고 새잎을 밀어올려야 할 “서어나무”가 “검은 잎”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을 전하면서 시작한다. 고정된 자리에 가만히 있는 듯 보이지만 언제나 최선을 다해 움직이곤 하는 나무가 새잎을 내지 않으려 하다니, 걱정이다. 시인의 감정이 드러나는 꾸밈말 하나 없이 시에는 우리가 알던 풍경이 이전 같지 않을 때 드는 염려가 벌써 들어와 있다. 서어나무의 의지가 반영된 표현(“검은 잎을 붙들고 새잎을 발행하지 못하고”)으로 미루어 짐작건대 이 나무가 자연의 순환을 따르지 않으려는, 혹은 따르지 못하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시 구절들은 마치 쉼 없이 내리는 빗줄기처럼 행갈이를 두지 않고 이어진다. 온 숲을 검게 적시다가도 불현듯 “아무 일 없는 듯 잦아드는” 빗속에서 “숲”은 “새소리를 길어 올리”는 일에 열심이다. 그러나 비는 제 뜻대로 강약을 조율하면서 숲이 길어올리는 새소리조차 거두어가려 한다. 그사이 “비탈을 오르”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 말소리 역시 사라져간다. 숲의 움직임은 오로지 숲이 여러 높낮이로 받아들이고 있는 빗소리만으로 확인된다. 시인은 모종의 황폐함이 깃들기 시작한 숲에서 서어나무와 새가 비를 맞으며 어떻게 서로를 잃지 않으려 애를 쓰고 있는지, 빗소리에 잠식되면서도 저들끼리 조성한 공동영역이 어째서 굳건하게 세계의 일부로 숨을 쉬는지, 시의 마무리 즈음에 찾아오는 “사라지고 있”는 것이 숲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어찌해야 하는지를 차분히 전한다. “빗소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마지막 구절에서 숲이 처한 상황이 안기는 쓸쓸함이 실감나게 다가오면서도 한편에서는 그것이 남긴 고요가 살아나서인지 독자는 축축한 연민에 잠길 새도, 숲에 대한 낭만화된 이미지를 품을 새도 없이 어느덧 숲 그 자체를 우리 곁에 노래로 흘러가게 둔다.
총 일곱개의 시구로 이루어진 짧은 시 안에는 사라져가는 서어나무와 새와 샘물이, 침묵 속에서 까무룩 잠들려 하면서도 그 자체로 생을 이어나가려는 오늘의 숲이 다 있다. 장철문은 “안 해도 될 말을 최대한 자제하며 꼭 말해야 할 때 가장 적절한 낱말을 사용하는 ‘말 아끼기’”1를 통해 세상의 일원들을 아끼고 돌보는 시인의 본업을 수행한다. 그러니까 그는 사라지는 중인 존재를 사라지지 않도록 붙들어 앉히기보다는 도리어 그들을 향한 말을 아낌으로써 그들 자체가 스스로 움직이게 두는 사람, 지금 삶을 이루는 것들이 살아 있으므로 끝내 품고 있을 신비함을 이와 같은 방식으로 보존하려는 작가이다.
『식당 칸은 없다』는 시인이 9년 만에 펴낸 다섯번째 시집이다. 1994년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래, 첫번째 시집 『바람의 서쪽』(창비 1998)부터 세번째 시집 『무릎 위의 자작나무』(창비 2008)까지 5년 간격으로 시집을 내다가 네번째 시집 『비유의 바깥』(문학동네 2016)을 8년 만에 낸 바 있으니, 독자와 시집 자체로 만나는 횟수가 드문 편이다. 여러권의 동화책을 쓰고,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의 자리에서 논문 쓰는 일을 병행해왔던 터라 생활이 바쁘기도 했겠지만, 시쓰기와 관련해서는 유독 헤맨 시간이 길다.
따져보니 9년 만에 낸 새 시집이네요. 쓴 시들 중에 마음에 든 게 별로 없어서 시집으로 골라낼 편수가 적었고, 시만 아니라 사이사이 써야 할 다른 글도 있어서 시간이 꽤 걸렸어요. 과거에 어린이책을 쓸 때는 산문쓰기와 시쓰기가 충돌하지 않는다고 느껴서 각각의 힘으로 글을 써나갔는데, 최근에 사진과 짧은 글을 묶은 포토포에지(『날개를 가진 자의 발자국』, 난다 2024) 작업을 했을 때는 시 쓸 때 들이는 힘을 끌어다가 진행하게 되더라고요. 게다가, 제가 워낙 적게 쓰는데다가 갈수록 쓸 말이 줄어든다고 해야 하나……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
새로운 시집으로 독자와 만날 이 지면을 위해 사진을 찍고, 평론가의 이런저런 질문을 포함한 인터뷰 자리를 반기면서 시인은 예의 편안한 미소로 시를 아끼며 써왔던 그간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를 ‘아껴온’ 이 태도가 어딘지 좀 독특했다. 시 자체를 숭고하게 여기면서 조심스러워한다기보다는 거리낄 것 하나 없이 시를 다루고 있어서, 오히려 더 ‘쓸 말’에 대한 생각에 잠기는 듯 보였다. 시에 ‘쓸 말’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따로 있는 건가? 문학적으로 허용되는 말이 어딘가에 특별히 있다는 의미는 아닐 테다. 그렇다고 해서 ‘갈수록 쓸 말이 줄어든다’는 시인의 저 말이 시에 쓸 만한 말이 하나도 없는 세상에 대한 한탄으로 들리지도 않았다. 차라리 그 반대에 가까울 것이다. “비유는 죽고, 나만 앙상하게 남았다”(「오월 낙엽」, 『비유의 바깥』)고 말하며 세상을 표현하는 방식 중 하나로 ‘비유’가 있다는 것을 의식하던 9년 전과 다르게,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세상 한복판에서 시를 길어올리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을 이루는 그 무엇도 “다시 오지 않”는 것들이므로 역설적으로 “다시 사라지지 않는”(「식당 칸은 없다」)다는 사실을 시인은 삶의 한가운데서 묵묵히 받아들이며 시의 풍경을 조성한다.
어쩌다 다른 작가들 얘기를 듣다보면 시를 쓰기 위해 몸을 만들고 체력을 기르거나 한다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런 게 없어요. 책상 위에서 시를 쓰는 일도 거의 없고요. 길을 가다가 휴대전화 메모장에 쓸 때도 있고, 화장실에서 쓰기도 하고…… 나중에는 첫 메모를 어디에서 했는지 찾을 수 없을 정도예요.
저는 시가 시다워야 한다는 생각을 잘 안 해요. 시는 ‘시다운 시’를 고집한다고 해서 쓰이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제 시의 긴장은 특별한 시적 형식이나 어떤 강한 이미지 같은 걸로 조성되지 않아요. 그보다는 시로 소통하려는 데서 만들어진달까요.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말을 하는 시가 아니라, 사람들이 알아듣는 시를 쓰려는 데서 말이죠. 학생들에게도 맨날 “시 좀 쓰지 마”라고 얘기해요. 자기가 막연하게 만들어놓은 시에 대한 고정관념 안에 갇히지 말자, 오히려 그것을 깨뜨릴 때 시가 ‘있다’고요.
‘쓸 말’을 찾아 헤매느라 초조해하지 않고, 도리어 세상 곳곳을 살피는 가운데 하고 싶은 말을 시로 내놓음으로써 남들이 으레 고정관념을 가지곤 하는 ‘시’로부터 벗어나기. 마치 “물길을 잘 보는 물풍수”처럼 삶 곳곳을 가로지르는 “물을” “가만히 들여다보고는, 그 먼 여정에서도 끝내 섞이지 않고 내려온 윗대의 물줄기를 가려서는, 나뭇잎을 한잎 똑 따서 오므려 한모금 떠서 맛을 보고는, 이 줄기가 맞네!” 하고 외치듯 시를 짓기(「물풍수 이야기」). 시인에게 시를 아끼는 마음의 요체는 시가 무엇이어야 한다는 관념에 골몰하지 않고, 시인이 전하고자 하는 세상의 일부를 나누는 데에 있다. 그러니 시를 쓰지 않으려 할 때 시가 쓰일 수 있다는 말은 이상한 게 아니다. 이는 시가 제 속도로 전하려는 말이, 나아가 그 말에 담긴 삶이 잘 나타나기 위해 당연히 따라야 할 수순이다.
‘일어나고 사라지는’ 생명의 엄연한 사실
시인들이 내거는 시집 제목에는 언제나 그 제목이 담고 있는 세상의 크기만큼이나 풍성한 사연이 담긴다. 장철문의 이번 시집 제목은 시인의 지난 시집 제목들(『바람의 서쪽』 『산벚나무의 저녁』 『무릎 위의 자작나무』 『비유의 바깥』)과 다른 분위기를 조성한다. 명사로 단정하게 묶어내던 이전과 달리, 형용사 ‘없다’로 종결되는 서술문 ‘식당 칸은 없다’는 거절할 수 없는 진실을 맞닥뜨린 이가 내놓을 법한 단정적인 어조를 들려준다.
시인은 개념과 논리를 구사하기 위해 명사를 지배적으로 활용해온 것이 근대적 방식인 것 같다고, 구체성을 전하는 시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이야기를 하려면 동사를 쓰는 게 어울린다고 생각해왔다고 했다.
그런데 ‘없다’는 형용사죠. 형용사는 지속되는 움직임을 나타내는 동사와 다르게 순간에 대한 말이에요. 예를 들어 형용사 ‘빨갛다’는 그 말을 꺼내든 한순간에 빨간 것을 일컬을 뿐, 그 순간은 고정되어 있거나 영원하지 않아요. 우리가 어떤 꽃을 보면서 ‘꽃이 빨갛네’라고 말하면 그 순간의 상태가 드러날 수는 있지만, 꽃이 피었다가 지면서 그 빨강은 다르게 바뀌어요. 빨강은 매순간 다른 빨강이죠.
“맛은 일어나고 사라진다/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처럼/맛은 사라진다/김밥이 차곡차곡 사라지는 것처럼/달다는 감각과/달다는 것을 아는 지각은 각기 일어나고 사라진다/지나간 사랑이 다시 오지 않는 것처럼” 하고 이어지는 「식당 칸은 없다」는 매순간 역동이 일어나는 삶에 대한 시인의 생각이 잘 반영된 시다.
생기고 사라지고, 있고 없고 하는 건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지 그 자체가 정해진 어떤 것이 아니라는 얘기 아닐까요? 우리 눈앞에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한다는 건, 그것을 보고 있는 관계 속에서 계속해서 변화하는 상황을 인식한다는 뜻이잖아요. ‘단 한순간의 상태’와 ‘끊임없는 운동성으로 이루어진 움직임’이 언제나 함께 있는 것이 생명이라는 점, 보는 사람도 보이는 것들도 살아 있기 때문에 “일어나고 사라진다”는 것, 그런 것에 대한 사유가 이런 시를 낳게 된 건 아닌가 싶어요.
예전 기차에는 간단한 주전부리를 판매하는 이동식 카트가 오갔고, KTX가 도입된 뒤로도 식당 칸이 있는 열차들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라졌다. 시인이 기차역에서 직원에게 왜 식당 칸을 없앴는지 물어보니 기차가 빨라져서, 운행시간이 짧아져서 식당이 필요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새삼 시대가 바뀌면 우리가 잠깐 머무는 곳의 기능도 바뀌는구나 싶더라고요. 기차에 식당 칸이 없으니 요새는 기차역을 중심으로 대형 쇼핑센터나 식당가가 들어서서 기차를 타고 내리면서 밥을 먹잖아요. 식당 칸에 대한 아쉬움이 ‘사라진다는 게 뭘까’ ‘죽는다는 건 또 뭐지’ ‘지금 시간에도 내 몸을 이루는 작은 세포가 생기고 죽고 생기고 죽고 반복하는데, 그 생명-소멸의 연속적/불연속적 사태가 산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들로 이어져 시 속 표현들을 낳은 것이 아닐까 싶어요.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사라졌다고 할 수 없는 것은 더 있다. 시인의 시에는 나무, 새, 물고기가 그저 그런 일반명사로 등장하기보다 ‘호두나무’ ‘팽나무’ ‘검은등뻐꾸기’ ‘호랑지빠귀’ 등 고유의 이름으로 등장하는 일이 잦다. 가령 시를 쓰기 위해 집중하려는 시인 주위로 온갖 새와 동물의 신호가 곳곳에서 요란하게 접수되는 「숲은 고요하지 않다」에서 시인은 이들의 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다 알아듣는다. “덕분에 한편 다 써간다/되지빠귀가 목청을 높이는 건 축하의 뜻은 아니겠지?/어느 사이에 물까치떼가 계곡 쪽에서/자지러진다/눈표범처럼 걷는 녀석이 또 온 모양이다/능선 넘어 누가 목매달러 오기라도 한다는 듯/고라니는 캭, 캭, 악을 쓰고/땅에 붙박인 나무는/필사적으로 가지를 뻗고 잎사귀를 넓힌다/벌떼와 모기떼와 파리떼와 진드기가 숲에 산다” 하고. 그들의 이름에 제각각의 삶이 담겨 있음을 알고 있으니 시인에게 그들은 통제하거나 내쫓을 대상이 아닌 함께하는 동료들이다. 생명에 부여된 이름을 기억하지 않으려는 인간에 의해 그 이름뿐 아니라 이름 속에 깃든 삶 역시도 곤경에 처해 있는 요즘, 시인의 태도가 귀하게 다가온다.
시인의 자전적인 경험이 실린 동화 『노루 삼촌』(창비 2002)은 노루가 ‘장씨’ 자손의 맨 처음 할아버지를 ‘슬픈 눈망울’로 낳았을 거란 얘기를 들려준다. 이번 시집의 「알」에서는 “히말라야시다”가 땅에 굳건히 뿌리박은 모양새가 “나무가 사람을 낳던 때”의 “당골” 같다고 말한다. 시에서 말하듯 인간의 몸에는 여러 생명과 어우러져 살았던 시간이 아주 오래전부터 들어서 있다. 따라서 존재에 부여된 이름을 세심하게 챙겨 부르는 시인의 행위에는 신화적 세계를 일부분 품고 있는 인간의 기원에 대한 이해가 반영되어 있고, 또한 한국어로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 인간의 몸과 전부터 연결되어 있는 다른 존재와 세계를 존중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책임감도 담겨 있다.
그런 이름들을 시에 등장시킬 때마다 암호 같다고 불만을 표하는 독자들이 있어요. 지금 독자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죠. 모르는 게 시에 나오면 답답하죠. 반대로 어떤 시에 요즘 유행하는 노래 제목이 쓰인다거나 하면 저는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몰라요.
제가 전북 장수 출신이잖아요. 겹겹이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이라서 그곳 사람들은 나무를 하고 나물을 캐서 먹고살았어요. 나물을 구별하지 못하면 큰일 나요. 잘못 먹었다가 죽을 수도 있고요. 나무도 마찬가지예요. 베야 할 나무와 베지 말아야 할 나무를 분간하지 못하면 살 수가 없죠. 이름의 가장 강력한 기능은 변별력에 있어요. 나무나 새, 물고기를 볼 때 뭐가 뭔지 알아야 생활이 이어지니까 저한테는 그 이름들이 자연스럽게 몸으로 습득되어 있지요. 그런데 그런 이름들과 ‘생활’로 엮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정보 이상의 실용적인 가치가 없겠죠. 구별할 의미가 없을 테니까요.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하고 동요 「고향의 봄」을 부르면서도 그 꽃들이 어떤 색깔과 향, 모양새를 가졌는지 구체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거죠. 그 이름들을 모른다는 것은 이름을 통해 전해지는 세계의 실감이 사라져간다는 얘기이기도 할 거예요.
경험으로 쓰는 시
어른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자란 아이의 세계와 책 ‘읽어주는’ 소리에 몸을 기울이며 자란 아이의 세계에 깃든 말은 어쩌면 조금 다를 것이다. 실제적인 사물과 생물로 이뤄진 일상과 상상이나 온라인 관계맺기가 우세한 일상에서 길러지는 감각도 서로 다를 것이다. ‘경험’의 방식이 달라진다는 얘기는 곧 말을 익히는 과정과 말이 구축한 세상의 형태가 달라졌다는 뜻이다.
할머니와 함께 지냈던 어린 시절을 각별하게 품고 있는 시인이기에 여러 시편에서 할머니 얘기가 종종 등장한다. 특히 「늦은 임종」이라는 시가 눈에 들어온다. 시에서 화자는 길을 가다가 발견한 “부추꽃”을 자연스럽게 “정구지꽃”으로 받아들인 자신을 발견하면서, 할머니로부터 ‘정구지’라는 말을 배웠던 시절을 떠올린다. 학교에서 배운 걸 자랑하느라 바빴던 손자에게 “별 옴따까리 지는 소리 다 한다”며 퉁을 놓던 할머니에 대해 시인은 “정구지의 사계절을 아셨다”고, “그 순과 뿌리와/흰 꽃과 햇살과 오줌과 고랫재를 아셨다”고 말한다. 언어에 대한 학습이 친밀한 관계 속 신체적인 애착 경험으로부터 점차 분리되어가고 그 대신 휴대전화·태블릿·PC 등 온라인 접속을 만들어주는 기계에서 이뤄지는 요즘, 검색 사이트도 AI도 수다하므로 우리는 정구지라는 말에 대해서도 많은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 어쩌면 그로 인해 정구지라는 말을 잘 ‘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말을 ‘안다’는 것이란 과연 무엇일까. 정구지라는 말을 잊을 때 사라지는 건 비단 ‘정구지’라는 표현만이 아니다. 시인의 ‘늦은 임종’은 할머니의 세계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던 말의 역사가 저물어가는 요즘에 대한 뒤늦은 깨달음일지도 모른다.
시인은 그것이 비단 요즘 일만은 아니라고, 자신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할머니가 세계를 습득하는 방식이 경험이었다면 자신은 점점 더 개념에 의지해서 세계를 이해해왔다고, 그 사이에 괴리가 있었다고. 그러나 자신 역시 몸에 밴 경험을 계속해서 중시해가고 싶다고.
이 시가 처음 문예지에 발표됐을 때는 시에 쏘쉬르나 벤브니스트 같은 언어학자 이름도 들어갔었는데 이번에 시집으로 묶으면서 수정했어요. 내가 할머니의 세계로부터 멀리 떠나왔다는 이야기를 해보겠다고 이렇게 어려운 말들을 늘어놓아서 되나 싶어서요. 처음의 시를 좋게 읽었다는 사람들도 시에서 그런 이름들을 봐야 하냐, 짜증난다 그러고요.(웃음) 그런데 희한하게도 “별 옴따까리 지는 소리”랄지 “씨월거리는 것” 같은 말에 대해선 잘 모르면서도 불만이 없었어요. 제가 할머니와 말을 주고받으면서 자연스럽게 가졌던 정서나 할머니와의 관계가 형성한 저의 역사 같은 게 묻어 있어서 그런가봐요.
그런데 제가 시 속에 할머니를 등장시킨다 해서 그가 원래 그대로의 저희 할머니일 수 있겠어요? 시에서 그려지는 할머니가 실제 할머니와 얼마나 가까운가를 떠나서 저는 제가 몸으로 경험한 할머니를 그릴 뿐이에요. 어떻게 보면 할머니라는 존재가 새롭게 태어나는 거죠. 대학 시절에 친구들이 저더러 ‘저기 조선시대 인간이 온다’고 농담한 적이 있었어요. 겹겹이 둘러싸인 산중에 장씨들 중심으로 모여 사는 집성촌에서 왔으니까요. 세상이 온통 산으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알던 사람이 도시 한복판을 돌아다녔던 거죠. 친구들은 우스갯소리로 그런 말을 했겠지만, 저는 제 몸에 밴 경험이 저의 몸 같아요. 누가 알아주든 몰라주든 간에 저는 그걸로 살아가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거창하게 민중의 말을 시에 살려놓겠다는 포부 같은 게 있는 건 아니고요. 저한테 익숙한 말, 저를 키워낸 말을 다른 이들도 알아들을 수 있게, 서로 주고받을 수 있게 쓰고 싶어요.
시인의 경험으로 이루어진 세계에는 페미니즘 개념을 자세히 모르더라도 어머니와 할머니 사이에서 “어머이, 그 옛적에 일없는 영감태기들이 밥 묵고 할 일 없응개/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이라는 말을 지어냈지요 이?” “하먼, 좋은 밥 묵고 쉰 소리 헌 것이제” 하며 오가는 말이 있고(「그 오뉴월 한나절」) 근대체제의 잔혹한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논리적 설명 없이도 소를 향해 “네 아랫배에 닿는 두 발에 전해오는 숨결이/마지막 고삐로구나/엎드려/네 등을 지키마/가자,/배를 밀어 가자/소금물을 켜며 도리질을 치며/목이 타며/가자/흩어지는 살점을 툭, 툭, 흘리며 가자”고 서글프게 달래는 말이 있다(「소를 보다」). 시인은 풍성한 비유적 이미지에 발을 들이지 않고, 세상의 곡절이 짚이는 순간마다 숨을 들여와 연과 행을 직조하듯 시를 이어간다. 그가 보고 있는 장면이 하나의 고정적인 이미지로 남겨지지 않고 시인의 호흡을 따라 하나의 이야기로, 그 이야기를 타래로 땋은 한 세계의 리듬으로 전달되는 것이다. 장철문의 시는 시의 근원이 노래에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만든다.
이를 위해 시인이 치열하게 행하는 일은 지금 이곳을 제대로 ‘보고 듣는’ 일이다. 시인이 시를 쓰는 자리에서 무언가를 제대로 보고 들으려 할 때 시인이 관찰하는 존재 역시 저 자신의 시선으로 세상을 누비고, 시인과 대상 둘 사이에 놓인 틈으로 형성되는 리듬이 노래가 된다. 가령 “이 빗소리가 몸을 두드려/잎사귀를 깨우네//이 빗소리,/빗소리를 듣는 이것은 무엇인가” 하고 이어지는 「곁에 없고」의 경우, 지금은 없는 누군가의 이미지를 전면적으로 내세워 그립다고 말하지 않고, 지금 보고 있는 ‘이’ 빗소리의 리듬을 통해 있음과 없음 어느 한쪽에 집착하지 않는 ‘일어나 사라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몸이나 마음이 움직이는 과정을 가만히 지켜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다보면 그것을 상상을 통해 재현하기보다 지금 보고 있는 ‘이것’을 가리키고 싶어지죠. 내가 굳이 꾸미려 들지 않아도, 내가 보는 ‘이것’이 알아서 변주하고 운동하고 있다고 인지하게 되는 거죠. 계속 변해가는 것을 규정하려는 순간 규정된 그것으로부터 빗나가게 되니까, 차라리 지금 이곳에 있는 내 몸으로 감각하고 있다는 것을 일러주려면 ‘이’ ‘저’ ‘그’ 같은 말로 시의 운을 떼는 수밖에요.
저희 할머니나 어머니한테 말은 문자가 아니었어요. 제 친척어르신 중에 숫자를 못 읽어서 버스 타기를 어려워하는 분이 계세요. 숫자를 그림으로 인식해서 대충 어떤 모양새인지 살펴 버스를 타신대요. 그런 분들이 말을 배운 방식은 눈으로 읽는 게 아니라 귀로 듣는 거예요. 그분들이 말할 때 드러나는 운율은 문법적으로 정리된 읽기 방식으로 말을 받아들였던 사람들의 것과 완전히 다르지요. 한문으로 글을 배운 사람들의 세계로부터 한글을 익힌 사람들의 세계로 넘어오는 경계에서 ‘귀로 듣는 말’의 리듬을 시로 잘 구현해준 이가 김소월 시인이었다고 생각해요. 소월이 스무살 전후로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으니까, 생각해보면 김소월 시인도 리듬에 대해 뭘 많이 알아서 썼다기보다는 자신의 몸으로 체화된 것을 시로 꺼내놓은 게 아닌가 싶어요.
장철문은 역시 몸으로 시를 쓰는 사람. 그는 자신이 보고 있는 것과 감각으로 관계를 맺을 때, 그 호흡이랄지 리듬을 시로 쓰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무엇을 보고 놀랐다면 그 순간에 일어나는 불협화음 같은 걸 과감하게 시에 질러보라는 말이다. 시에 꼭 별다른 수사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라는 그의 말이, 비단 시에서만 아니라 갖은 언어의 홍수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떤 담백한 진실을 전하는 것 같다.
장수의 율(律)을 몸에 이고
시인의 얘기를 들으면서 우리가 어디에서 나고 자랐는지, 무엇이 우리를 키웠는지 그 내력이 이미 우리 몸 안에 있음을 깨닫는다. 전성태 소설가가 시인의 시를 일컬어 “고원의 적막과 그리움, 율(律)이 장수의 문체”(『비유의 바깥』 발문)라고 했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도 같다. 장철문의 시에는 물음표가 자주 등장하는데, 예컨대 「왜 많은 가지와 잎을 가졌을까?」는 제목에서부터 물음표를 두면서 시 곳곳에 물음표를 긋고 있다. 첫 시집부터 일관되어온 이런 방식도 시인의 고향 ‘장수의 문체’ 중 일부이지 않을까? 산과 산이 첩첩이 쌓인 곳에서 외치는 메아리 같은 역할을 시에서 물음표가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이한 것은 시가 물음표로 또렷이 표기된 질문을 던지면서도, 독자들이 그 답을 구하느라 헤매게 만들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보다는 내내 울리는 메아리처럼, 질문이 던져진 시작점으로 물음표가 다시 돌아온다.
시인은 답보다는 질문이 자신의 사유방식에 더 가깝다고 말했다. 답을 내리려는 순간 세상이 위험에 빠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만약 대중들이 독재자에게 열광하는 면이 있었다면 그건 독재자가 답을 아는 사람같이 보여서였을 거라고, 그러나 그건 우리 세계에 더 위험한 일이라고. 그렇기에 시인이라면 계속 물어야 한다고. 그는 물어보는 일을 멈추면 더이상 시인일 필요가 없지 않을까 하고 말했다.
어린 시절 가족 안에서 제가 품었던 생각과 불만이 해결되지 못한 채 질문의 형태로 맺혀 있는 것도 같아요. 언젠가 아버지한테 독하게 대든 적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이런 건 죽어야 끝나지, 어떻게 끝나나” 하시더라고요. 운동을 멈추는 순간 삶이 끝나는 것처럼, 질문이 끝나는 순간 삶의 가치를 고민하는 자의 자세를 잃어버리는 게 아닐까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제가 일부러 물음표를 시에 눌러 담는 건 아니고, 물음표가 많이 등장한다는 건 제 자신이 답을 정한 적이 없거나 찾지 못했다는 증거겠죠.
그는 자신을 꽉 채운 질문을 안고 미얀마와 인도로 향한 적이 있다.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였다. 일년 가까이 미얀마에 머물고, 4개월 가까이 인도를 돌아다녔지만 얻어진 것은 답이 아니라 또다른 질문들이었다. 한번은 붓다가 몸을 씻었다는 강에 다녀온 뒤 우연히 만난 스님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스님이 씩 웃더란다. ‘그 강은 홍수가 크게 나면 도시 동쪽으로 흐르고, 또 어떨 때는 도시 서쪽으로 흐른다’며 물길이 때때로 달라진다 했다. 그러니 그는 붓다가 몸을 씻은 곳이 아닌 그 반대편 쪽에 다녀온 것일 수도 있었다. 인도에 2천년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왜 이곳에 왔는지에 대한 답은 끝내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시인은 말했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맨날 질문에 질문, 또 질문…… 나는 우리 애가 한번만 짜증을 내도 이렇게 힘든데 우리 아버지는 내가 대들었을 때 어떻게 견디셨지? 한 생명을 키운다는 게 이렇게 무서운 일인데 어떻게 중심을 잡으셨지…… 제가 저희 아버지를 극복하기 위해 60년 가까이 노력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아버지하고 더 비슷해지는 것 같아요. 그러니 답이 없는 것이고, 겪을 수밖에요. 질문을 놓을 수가 없는 거죠. 시를 쓰면서도 계속해서 ‘내가 왜 시를 쓰지?’라고 물어볼 수밖에 없고요.
이번 시집 ‘시인의 말’에 “아직 시인이라는 것이 고맙다”는 한줄을 남겼다는 얘기를 넌지시 꺼내니 시인은 그것이 ‘진짜 쓸 말’이었다고 답했다. 시집을 묶으면서 자신이 여태 시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운 한편으로 앞으로도 시를 쓸 수 있을까, 더 쓰고 싶은데 잘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그럼 어쩌지 하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다보니 자신이 ‘아직 시인’으로 있는 지금이 신기하게 다가왔다는 것이다.
시인이 잠깐 머물렀던 한 나라에서는 ‘시인’을 무책임한 존재로 인식한다고 했다. 그 나라에선 시인이 행동할 줄 모르고 말만 늘어놓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단다. 하지만 시인은 우리에게 그런 존재가 아니다. 장철문에 의하면, 우리 사회는 “분단 때문에 엄혹한 상황이 초래되는 속에서도 남쪽에서든 북쪽에서든 거리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을 손쉽게 목도할 수 있는 곳” “다양한 색채의 종교와 생각, 언어가 어우러지는 힘이 있는 곳”이어서 ‘시인’은 우리말의 활력과 잠재력을 담지하는 존재로 대접받는다. 시인이 “오늘의 우리 삶을 풍부하게 하면서도 내일의 삶이 있음을 또한 잊지 않게 해주는” 역할을 자연스레 하는 곳에서 시는 작위적으로 기획하고, 화려한 꾸밈말을 덧대는 방식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을 장철문은 안다.
장수의 율(律)을 몸에 이고, 저 자신을 이루는 말을 향한 존중의 태도를 잃지 않은 채 시인은 세상 한복판에 놓인 길을 계속 간다. 좌절된 소통과 어긋나는 말들이 무성한 사회에서 시인이란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묻기를 지속하면서. 오늘 우리가 시로 이루어진 사람을 알아보았다면, 그것은 시가 우리에게 오래 아껴왔던 말의 통로를 내어준 곳에서 일어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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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낙청 「한국어라는 ‘공동영역’」, 백낙청·임형택·정승철·최경봉 『한국어, 그 파란의 역사와 생명력』, 창비 2020, 20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