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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임홍배 『독일 비평사 읽기』, 길 2025
이론의 ‘푸른 꽃’ 틔우기
이경진 李京眞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hanabi11@snu.ac.kr
중세의 대학을 배경으로 하지만 대학 공부에 대해 여전히 어떤 책도 따라올 수 없는 신랄한 진실을 보여주는 괴테의 『파우스트』 1부 앞부분, 일명 ‘학자비극’에는 파우스트로 변장한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새파란 신입생이 대학의 갑갑함과 삭막함을 하소연하는 대목이 있다. 메피스토펠레스는 대학은 원래 그런 곳이고 학문의 길을 좇는 것은 무익한 일이라며 이렇게 충고한다. “여보게, 이론이란 모두 회색빛일세./푸른 건 인생의 황금나무지.”(『파우스트 1』, 정서웅 옮김, 민음사 1999, 110~11면.) 순진한 학생을 타락시키려는 악마의 심술궂은 ‘궤변’이기는 하나, 삶으로 투신하겠다는 파우스트의 선택을 단번에 납득시키는 이 말은 순수학문과 씨름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발한다. 그렇다고 이 ‘격언’의 흔한 용법이 보여주듯 이론과 삶을 이분법적으로 대립시키는 관점이나 이론보다는 실천을 앞세우는 태도에 곧바로 동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론의 순수성과 엄밀성을 실현 가능성이라는 잣대로 거칠게 깎아내리지 않으면서도, 회색의 추상적 공론으로 전락하기 쉬운 이론적 논의에 어떻게 하면 ‘푸르른’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임홍배의 『독일 비평사 읽기』는 바로 이러한 관심사에서 출발한다. 평생을 독일문학과 이론 연구 및 번역에 헌신해온 저자는 독일 문예이론의 역사에서 제기된 다양한 쟁점을 소개하고 해명하는 이 책에서 이론을 공부하고 활용하는 바람직한 태도가 무엇인지 고민하기 위해 저 메피스토펠레스의 말, “모든 이론은 회색이요 영원히 푸른 것은 삶의 황금나무”(7면)를 모토로 세운다. 여기서 말하는 ‘영원히 푸른 것’은 물론 ‘문학’이다. 즉 이론이란 문학을 설명하고 분석하는 하나의 틀로써 유용할 수 있지만, 작품의 무궁무진한 다의성과 풍부함을 덮어버리거나 왜곡하지 않는 한에서 그 의의가 있음을 분명히 한다. 저자는 문학이론이 문학작품 앞에서 갖는 근본적인 한계를 예민하게 의식하면서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 후반까지 독일에서 배출한 웬만한 중요한 문학이론 및 미학 저작을 면밀하게 검토하는 대작업을 수행한다. 여기에는 ‘괴테부터 루카치까지’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를 주도한 괴테, 쉴러, F. 슐레겔, 노발리스부터 칸트, 헤겔, 니체, 하이데거, 가다머 등과 같은 대표적인 철학자들, 또 블루멘베르크와 같이 한국에 비교적 덜 알려진 철학자를 포함하여 한국에서도 활발하게 수용되어온 아도르노와 벤야민, 크라카우어, 루카치에 이르는 독일비평사의 거목들이 넓게 포진되어 있다.
이론적 논의의 추상성과 형식성을 극복하겠다는 저자의 의도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독일에서 형성된 이론들이 유달리 사변적이고 관념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더욱 정당성을 얻는다. 머리말에서 상세히 밝히듯 저자는 특유의 관념성에 갇히기 쉬운 이론서의 고질적인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중요한 사상가들의 이론이나 개념을 그 역사적 맥락에 충실하게 재구성하되, 그 현재적 의의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자 했으며 구체적인 작품론을 덧붙여 각 이론적 문제들을 생생하고 입체적으로 고찰하고자 했다. 가령 1부의 「괴테의 상징과 알레고리 개념」에서 괴테의 상징론이 당대 예술의 자율성 미학의 정립과 그 관심을 함께한다는 저자의 설명은 상징론을 시대초월적인 유형으로 다루는 태도를 넘어 이론의 역사적 맥락을 해명하는 탁월한 예시이다. 이어서 저자는 괴테의 상징론이 지닌 현재적 의의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며 현대문학에서 상징보다 알레고리가 생산성을 드러내는 까닭을 보들레르의 시 「백조」의 해석을 통해 설명하는데, 이러한 부분이 추상성에 머물기 쉬운 이론적 논의에 구체성과 생동감을 부여하는 대목일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의도는 특히 아도르노의 미학을 논하는 대목(「아도르노의 비판적 변증법과 부정성의 미학」)에서 빛난다. 그가 아도르노의 미메시스 개념을 통해 미학적인 것의 부정성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살피는 과정에서 독일 시인 뫼리케의 「쥐덫」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대목이나, 아도르노가 말하는 부정적 변증법이 자연미에서 어떻게 현시하는지를 가늠해보기 위해 횔덜린의 「하르트 골짜기」와 보르헤르트의 「새벽 이별가」를 섬세하게 다시 읽는 부분은 난해한 이론의 이념들이 잠시나마 ‘푸른 꽃’으로 피어나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이론의 논리가 작품의 오묘하고 다채로운 세계와 만나 감각적인 깨달음으로 육화되는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저자가 한국의 독문학자로서 독일비평사의 온갖 험준한 고봉들을 직접 등정하고 탐사한 이 작업은 첫째로 외국이론 연구에서 망각하지 말아야 할 이론의 사회적 의의에 대한 깊은 관심에서 나온 것이지만, 무엇보다 외국문학 연구자라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실존적 의의에 대한 증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자의식은 저자가 독일 문예이론에 대해서 보이는 놀라운 장악력에서 비롯된 한결같은 명쾌한 서술 태도로 이어진다. 이는 이론적 저작을 다루는 논의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미덕인데, 특정 사상가를 충실히 따라 읽다보면 연구자 자신이 그 사상가 특유의 표현이나 문체에 전염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하이데거리언’은 하이데거적 언어를 구사하며, ‘베냐미니스트’는 벤야민의 문체를 흉내낸다. 사상가에 대한 애정과 흠모가 그러한 모방을 낳는 것이겠지만 이는 연구자가 비판적 거리두기에 실패했다는, 혹은 애초에 그럴 의도조차 없었다는 방증일 수 있다. 이와는 달리 『독일 비평사 읽기』는 1차문헌에 밀착하기와 비판적 거리두기 간의 꾸준한 균형감각을 보여준다. 저자의 차분하고 명료한 해설 속에서 독일 비평이론은 마치 안개가 걷힌 듯 세세한 굴곡을 드러내면서 보다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이러한 일관된 균형적 태도는 그에게 공부의 첫 출발점 중 하나였던 괴테를 떠올리게 한다. “관념적 이상주의에 대해서는 늘 비판적 거리를 두었던”(44면) 괴테는 상징을 새롭게 엄밀히 규정함으로써 특수성을 보편성의 한 ‘예시’로 격하시키거나 보편성으로 휘발시키는 관점을 비판하고자 했다. 이러한 괴테의 정신은 개별 작품과 문학이론 간의 내적 긴장을 해소하지 않으면서 서로간의 풍요롭고 다채로운 관계맺음을 모색하는 『독일 비평사 읽기』에서 길잡이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