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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정도상 鄭道相

1960년 경남 함양 출생. 1987년 단편소설 「십오방 이야기」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작품집으로 『친구는 멀리 갔어도』 『아메리카 드림』, 장편소설로 『그대여 다시 만날 때까지』 『열애』 『지상의 시간』 등이 있음.

 

 

 

개 잡는 여자

 

 

1

 

새벽 안개 속에는 피 냄새가 고여 있었다.

산들바람에도 이리저리 흩어지는 옅은 안개 속에서 새벽 모란시장은 조금씩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지겟작대기처럼 생긴 외줄기 전조등 불빛이 안개를 헤치며 모란시장으로 천천히 들어왔다. 전조등을 켜고 슬금슬금 눈치를 보듯이 다가오는 자동차는 2.5톤 트럭이었다.

외줄기 불빛이 골목 양켠에 다닥다닥 달린 건강원 간판들을 스쳤다. 이윽고 트럭은 장수건강원 앞에 멈췄다. 트럭의 왼쪽 전조등은 깨지고, 깨진 틈새엔 황토가 말라붙어 있었다. 시동이 꺼지고 애꾸 전조등도 눈을 감았다. 운전사가 문을 벌컥 열고 뛰어내리더니 거침없이 장수건강원으로 들어갔다. 개골목은 다시 정적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짧은 정적도 용납할 수 없다는 듯 안개 저편에서 불규칙한 엔진 폭발음이 들려왔다. 잠시 후 네모난 노란색 플라스틱상자를 짐칸에 올려놓은 오토바이가 트럭의 왼쪽에 멈췄다. 오토바이에서 내린 사내가 헬멧을 벗고 장수건강원 안을 기웃거렸다. 건강원 안으로 들어선 사내의 머리는 헬멧만큼이나 반짝거렸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사내가 인사를 하며 고개를 숙이자 반들거리는 정수리 위에 다섯 가닥의 머리카락이 습기에 젖어 착 감긴 게 보였다.

“예, 어서 오세요.”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나온 미자는 트럭운전사와 이야기를 하다가 대머리 사내를 향해 손을 들었다 내렸다. 문 옆에서 압력탕기를 씻던 노랑머리 총각이 대머리 사내한테 입으로만 인사했다. 대머리 사내는 바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문 뒤에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이는 길쯤한 막대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그러면, 음, 아저씨는 뒷마당에 차를 대세요. 김군아, 아저씨한테 길 좀 알려드려라.”

첫인상이 약간은 더러워 보이는 트럭운전사가 노랑머리 김군을 따라 나가자마자 키도 작고 몸집도 작은 노인이 들어왔다. 노인을 본 대머리 사내는 얼른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뽑아 등뒤로 감추고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어른.”

“요새 자주 보네.”

“겨우 이틀에 한번인데요 뭐.”

“작년 여름에 비할까?”

“아이구 말도 마세요. 전쟁통에 피란 열차 탄 기분이었으니까요.”

대머리 사내가 너스레를 떨자 노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일봐.”

노인은 대머리 사내의 등을 두드린 뒤, 가게 안쪽에 있는 녹슨 철제책상 옆의 등받이 없는 동그란 의자에 앉았다. 주름이 두 줄로 겹쳐진데다가 군데군데 기름때까지 묻은 감색 바지를 입은 흰머리의 노인은 바지 주머니에서 명함 비슷한 뭔가를 꺼내 손에 쥐더니 엉성한 조각의 돌부처처럼 자세를 취했다. 그 모습을 본 미자는 입을 삐죽거렸다. 아버지를 보니 날마다 돈통에서 돈이 조금씩 사라지는 게 생각났다. 김군 아니면 아버지가 범인이었다. 오늘은 꼭 범인을 잡으리라고 미자는 마음을 다잡았다.

“사장님, 나와보세요.”

뒷마당에서 노랑머리 김군이 큰 소리로 미자를 불렀다.

“갑시다, 사장님.”

미자는 동부이촌동에서 보신탕집을 운영하는 대머리 사내와 함께 뒷마당으로 나갔다. 김군이 미자의 손에 랜턴을 건넸다. 미자는 랜턴을 켠 뒤 트럭에 실린 개철망을 들여다보았다. 미자 옆에는 대머리 사내가 바싹 붙어 있었다. 철망 속에 갇힌 개들은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다. 철망 속에는 고양이보다 조금 큰 발바리에서 송아지만큼이나 큰 셰퍼드까지 다양한 종류의 개들이 담겨 있었다. 환한 랜턴 불빛에 비친 녀석들의 눈동자에는 짙은 안개가 끼여 있었다. 녀석들은 눈앞에 다가온 죽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마음에 드는 놈들이 별로 없었다. 맛은 역시 똥개가 최고인데, 오늘은 물건이 변변치 않았다. 아버지는 가게 안쪽에 등받이 없는 동그란 의자에 무심한 눈빛으로 앉아 있었다. 새벽인데도 바람 한점이 없었다. 오늘 하루도 머리에서 연기가 풀풀 나도록 뜨거울 징조였다. 날씨가 더워지자 개 잡는 횟수도 늘어났다. 동부이촌동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온 대머리 사내가 한 마리를 찍었다. 조금 전만 하더라도 보이지 않던 놈이었는데, 장사꾼의 눈빛은 역시 달랐다. 미자가 긴 쇠집게로 놈의 배를 살짝 건드리자 송곳니를 곧추세우며 으르렁거렸다. 눈빛도 다른 놈과 달리 살아있었다. 한눈에 봐도 육질이 쫄깃해 보였다. 미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 세 망만 주세요.”

미자는 필터를 질겅질겅 씹으며 뒤를 따르던 업자한테 다섯 마리씩 갇혀 있는 철망 세 개를 가리켰다. 되도록 누렁이가 많이 담긴 철망들로 골랐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업자들과의 묵계 때문에 한 마리씩 고를 수는 없었다. 오늘 물건은 시골 마을을 돌아다니며 마음에 드는 누렁이를 사거나 훔친 것들이었다. 개 사육장에서 올라온 누렁이들은 때깔은 번들번들했지만 맛은 그저 그랬다. 개집에 가두고 사료만 먹이며 키운 누렁이와 마을 고샅길을 누비면서 애들 똥이나 음식찌꺼기를 찾아 먹고 스스로 큰 누렁이는 육질이 달랐다. 아무리 살집이 퉁퉁해도 개집에 갇혀 암캐 엉덩이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사육장 놈들과 덩치도 작고 살집은 빈약하지만 새벽마다 안개 낀 고샅길에서 흘레를 붙었던 놈을 비교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식당을 하는 사람들이 새벽에 나와 눈으로 개를 확인하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미자는 대머리 사내가 찍은 누렁이를 향해 철망 사이로 올가미를 집어넣었다. 누렁이가 머리를 흔들어 피했지만 미자는 정확하게 올가미를 씌웠다. 올가미를 씌우자마자 줄을 확 잡아당겼다. 누렁이가 앞발로 버텼다.

“그래봤자 너만 손해야.”

말이 입에서 떨어지기가 무섭게 미자는 흠칫 놀랐다. 3년 전 남편이 했던 그 말이 올가미가 되어 미자의 몸에 감겼다. 미자는 올가미 줄을 손목에 한번 더 감았다. 소름이 쫙 끼쳤다. 남편은 하루에 한번씩 전화를 걸어 이 말을 되풀이했고, 일주일에 한번씩 찾아와 미자를 괴롭혔다. 그때마다 미자는 강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남편은 이미 다른 여자한테서 아이를 얻었다. 아이의 출생신고를 위해 남편은 날마다 이혼을 요구했다. 손목에서 맥이 스르르 풀렸다. 이혼…… 절대 해줄 수 없었다. 미자는 손아귀에 힘을 모아 줄을 사납게 당겼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긴장이 풀렸던 누렁이가 철망 문 앞에 대가리를 처박았다. 미자는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나며 줄을 확 당겨 누렁이의 목을 졸랐다. 누렁이의 눈에서 파란 인광이 튀었다.

머리를 뒤로 묶은 미자의 외꺼풀 눈동자 속에 누렁이가 사지를 버둥거리는 게 비쳤다. 로션만 바른 맨얼굴은 무표정에 가까웠지만 누렁이가 심하게 요동을 칠 때마다 콧등을 살짝살짝 찡그렸다. 거리를 걷거나 은행에 앉아 있을 때는 남자들이 한번 더 눈길을 던질 정도로 다소곳하고 예뻤지만 건강원에만 들어서면 선머슴처럼 거칠어졌다. 팔뚝이 조금 굵은 것이 옥의 티처럼 흠이었으나, 서른다섯의 나이에 비해 젊어 보였다. 건강원에 개를 사러 온 손님들은 개보다는 미자한테 더 관심을 보이곤 했다. 남자들의 느끼하고 음흉한 시선을 받을 때마다 미자는 더욱 사납게 개를 죽였고 칼질을 해댔다.

징그러워. 니 눈에서 살기가 느껴져. 돈을 원해? 나, 돈은 별로 없어. 하지만 최선을 다해볼 테니까, 얼마면 되는지 말해. 제발 도장 좀 찍어줘, 제발.

남편은 화투짝을 내던지듯 미자의 무릎 앞에다 말을 툭툭 던졌다. 미자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미 식어버린 사랑을 되돌리고 싶지도, 결혼생활을 계속할 마음도 없었지만 남편의 요구대로 도장을 찍어주긴 싫었다. 철망 안에서 개가 버르적거렸다. 올가미는 점점 더 깊이 누렁이의 목을 조였다. 올가미가 목을 더욱 조이자 사지를 버둥거리는 누렁이의 눈동자가 파랗게 변했다. 미자는 고개를 돌려 누렁이가 내쏘는 인광을 외면했다. 누렁이가 발톱을 세워 바닥을 긁는 소리가 가시처럼 귀에 박혔다. 미자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더욱 강하게 줄을 당겼다. 누렁이의 입이 열리며 혀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누렁이의 진저리는 길고 질겼다. 미자는 눈을 질끈 감고 입술을 깨물었다. 올가미를 조금 더 세게 당기자 누렁이의 마지막 진저리가 손목을 타고 올라와 가슴으로 전해졌다. 진저리가 끝나자 손목에 연결된 줄에서 탄력이 사라졌다.

“이 놈만 할 거유?”

미자는 손목에서 줄을 풀면서 거친 쇳소리로 대머리 사내한테 물었다.

“저기 저 놈, 발바리로 합시다.”

“이거 좀 잡아요.”

미자는 누렁이의 항문이 열리며 똥이 나오자 올가미 줄을 대머리 사내한테 넘기고 발바리의 목에 다른 올가미를 걸었다. 발바리는 누렁이에 비하면 허깨비였다. 이빨을 드러내놓고 덤비기는커녕 깨갱 깨갱 두번 비명을 지르더니 곧 똥을 싸고 뻗었다. 익숙한 솜씨로 죽은 누렁이와 발바리를 마당에 끌어낸 미자는 야구방망이를 집어들었다. 방망이질을 해야 근육이 풀려 고기맛이 좋아지는 법이었다. 몽둥이질을 끝낸 미자는 발바리를 기둥에 매달아 털을 태웠다. 노리치근한 냄새가 착 가라앉은 새벽 공기 속에 퍼졌다. 털을 태우고 보니 발바리는 예상대로 작았다. 무딘 칼을 집어들고 발바리의 배를 긁어내렸다. 칼이 지나간 자국마다 뱃가죽이 희끗희끗 나타났다. 문득 손이 가늘게 떨렸다. 동이 트기도 전, 새들이 하나 둘 깨어나 노래를 부르기도 전에 두 마리의 개를 죽였다. 오늘은 또 얼마나 많은 개를 죽여야 하는 것인지……

손에서 칼이 툭 떨어졌다. 이대로 칼을 두고 가게를 나가 영원히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작은 새가 되어 푸른 창공을 훨훨 날아다닌다면…… 팔자가 이보다 더 사나울 수는 없었다. 팔자라고 하기엔 억울했고 운명이라고 하기엔 너무 가혹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개고기를 배달하던 어머니가 과로로 쓰러져 응급실로 모셔가니 뇌출혈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어머니는 중환자실에서 한달간 버티다 끝내 눈을 감았고 아버지 혼자 건강원을 꾸려나가야 했다. 아버지 혼자 가게를 꾸려나가는 게 너무 안쓰러워 남편과 상의를 한 뒤에 미자는 모란시장으로 나갔다. 아버지의 일을 도운 지 석달쯤 지났을까,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가 친구와 함께 아파트에서 놀다가 베란다 아래로 떨어져 작은 새가 되었다.

저리 가.

아들의 뼈를 남한산성에 뿌리고 돌아와 간신히 숨만 이어가던 어느 밤에 남편이 벽 쪽으로 돌아누우며 말했다. 남편의 목소리는 낮고 싸늘했다. 미자는 베개에 얼굴을 묻고 오래 울었다. 가슴에 묻은 아들은 밤이면 밤마다 미자를 찾아와 함께 놀자며 떼를 썼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떠돌고 싶지 않아서 미자는 가게 일에 열중했다. 입에서 단내가 풀풀 나도록 일을 하는 순간에는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다. 그러다 잠시 손을 멈추면 기다렸다는 듯이 아들이 머릿속으로 밀고들어왔다. 그렇게 가게에서 하루를 보내고 파김치가 되어 아파트로 돌아오면 남편은 불꺼진 거실에 앉아 담배를 피우거나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죄책감에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아후우, 개 냄새.

그렇게 살던 어느 밤, 짜증을 있는 대로 부리며 구박을 하던 남편이 이불을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남편이 던진 말의 비수가 미자의 가슴에 깊숙하게 박혀 부르르 떨었다. 남편은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미자는 남편의 고통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가게에서 돌아오면 향이 좋은 물비누로 몸을 빠득빠득 씻었지만 남편은 미자 쪽으로 돌아눕지 않았다. 남편은 자주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미자는 거실 소파에 쪼그리고 앉아 날이 훤히 새도록 남편의 귀가를 기다렸다.

아버지가 가게에서 나와 우두커니 서서 미자의 손놀림을 보고 있었다.

“얘야, 누렁이가 꿈틀거린다.”

아버지가 나직하게 말했다. 돌아보니 죽은 줄 알았던 누렁이가 가뿐 숨을 몰아쉬며 몸을 떨고 있었다. 미자는 야구방망이로 누렁이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퍽퍽, 소리가 가게 안에 퍼졌다. 이혼을 요구하는 남편도 뒤에 앉아 있는 아버지도 미웠다. 누렁이가 다시 사지를 부르르 떨더니 축 늘어졌다. 미자는 야구방망이를 뒤쪽으로 거칠게 내던지고 발바리의 털을 사납게 긁어낸 뒤에 누렁이의 털을 태웠다. 노린내가 지독하게 코를 자극했다. 미자는 간단없이 떠오르는 잡념을 지울 요량으로 일에 몰두했지만 그게 쉽지 않아 자주 손목의 맥이 풀렸다. 털을 모두 긁어낸 누렁이와 발바리를 노랑머리 김군이 가게 안으로 옮겼다. 미자는 허리에 차고 있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트럭운전사한테 개값을 내주었다.

가게로 들어온 미자는 한숨을 크게 몰아쉰 뒤 누렁이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뾰족하고 긴 칼을 집어들었다. 푸르스름한 칼끝으로 누렁이의 배꼽을 푹 찌른 다음 힘을 주어 목울대까지 단숨에 그었다. 칼이 지나가자 가죽이 벌어지며 그 틈으로 붉은 피가 뭉클 솟았다. 미자는 심호흡을 하고 배꼽에서 항문까지를 갈랐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며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칼을 도마 위에 던져놓고 창자를 들어내 플라스틱 함지박 속에 담갔다. 실타래처럼 헝클어진 창자는 후끈후끈한 김을 피워올렸다. 큰 칼로 흉곽을 감싸고 있는 갈비뼈를 쪼갠 뒤 손가락을 깊이 박아 심장을 긁어냈다. 불과 삼십분 전까지만 해도 살아 있던 심장이었다. 손가락 끝에 아직도 남아 있는 심장의 온기가 전해졌다. 전화를 받고 달려갔을 때, 축 늘어진 아들의 몸은 아직 따뜻했다. 발가락에서부터 조금씩 식어오던 아들. 아들의 몸을 비비며 몸부림쳤건만, 끝내 피가 돌지 않았다. 아들의 이마가 얼음장으로 변한 것을 확인한 순간, 머리가 텅 비며 온세상이 캄캄해졌다. 미자는 눈을 질끈 감고 허파와 간장과 쓸개와 위를 들어냈다. 텅 빈 뱃속엔 벌건 핏덩어리만 가득했다.

“아부지, 물 좀.”

손가락 끝으로 핏덩어리를 만지작거리며 미자는 물이 나오길 기다렸다. 이렇게 살아 뭐하나? 돈 버는 것도 아파트 평수 늘리는 것도 재미없었다. 다만 은행원인 남편한테 복수하겠다는 마음으로 여태까지 버텨왔다. 지금쯤 과장이 되었을 남편은 새 여자와의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아장아장 걸을 무렵 다른 곳으로 전근을 갔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물은 나오지 않았다.

“아부지, 물 좀요! 에이씨, 쯧.”

미자는 바락 짜증을 내며 욕과 함께 벌떡 일어섰다. 아버지는 때가 절어 반들반들한 철제의자에 머리털이 빠진 작은 인형처럼 우두커니 앉아 사진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미자는 성큼 다가가 아버지의 손에서 사진을 뽑아들었다. 아버지는 사진이 뽑혀나간 빈 손을 십여초 동안 가만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미자는 자신도 모르게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다. 아버지의 눈동자는 살기로 번득거렸고, 얼굴 근육은 경련을 일으켰다.

“뭐 하는 짓이야! 사진 이리 내!”

아버지가 부들부들 떨며 고함을 버럭 질렀다. 미자는 아버지가 이토록 격하게 화를 내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사진을 아버지한테 내밀었다. 아버지는 솔개가 병아리를 낚아채듯이 사진을 잡아챘다. 미자는 의자 뒤로 돌아가 수도꼭지를 비틀었다. 물이 쇄액 소리를 내며 비닐호스를 돌아나갔다.

“이거 드시고 하세요.”

대머리 사내가 박카스 한 병을 내밀었다. 미자는 말없이 박카스를 밀치고는 플라스틱 함지박 앞에 앉았다. 대머리 사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자는 콸콸 쏟아져나오는 물로 핏덩어리를 씻어냈다. 엉긴 핏덩어리들은 하수도로 꾸루룩꾸룩 소리를 내며 밀려들어가고 있었다. 미자는 잠시 넋을 놓고 그 광경을 쳐다보았다. 후우우, 긴 한숨이 터져나왔다. 사는 게 너무 재미없었다. 아침마다 열댓 마리씩 개를 잡아야 하는 인생을 살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날마다 손에 피를 묻히며 살아온 지도 벌써 네 해가 흐르고 말았다. 미자는 작은 손도끼로 누렁이와 발바리를 부위별로 쪼개 도마 위에 쌓아놓고 내장을 씻기 시작했다. 창자를 갈라 똥을 털어낸 뒤에 왕소금을 뿌리고 빨래하듯이 치댔다.

“쯧쯧, 대가리가 완전히 바사졌네. 이러면 고기맛이 떨어지는데.”

언제 일어섰는지 아버지가 뒤에 서서 누렁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미자는 아버지의 말을 한 귀에서 다른 귀로 흘렸다.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으면서 잔소리는, 차라리 가게에 나오질 말든지…… 아버지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돌부처가 되었다. 아무리 장사라고 하지만 직접 개를 죽이는 것도 이젠 지긋지긋했다. 다른 집처럼 전기를 이용해 개를 죽일 수도 있지만 맛이 떨어진다며 손님들이 싫어했다. 아버지도 올가미로 목을 졸라 죽이는 방법만 고집했다. 당신 스스로는 손에서 일을 놓아버렸으면서도 고집은 대단했다. 미자는 순서에 맞춰 능숙한 솜씨로 개를 잡고 있는 자신을 느낄 때면, 스스로가 너무 끔찍했다. 미자는 아버지가 빨리 돌아가시길 기다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깊은 산속의 절로 들어가 그동안 쌓은 업보를 씻으며 살고 싶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시는 동안은 어쨌든 함께 살아야 했다. 그것이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늙은 아버지를 홀로 남겨두고 훌쩍 떠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거친 칼질로 부위별로 고기를 분류해놓자 대머리 사내가 오토바이에 싣고 떠났다.

 

 

2

 

양재동에 보낼 개를 잡아 김군한테 배달을 시키자 아침 열시였다. 미자는 3번 압력탕기에다 개 한 마리를 통째로 집어넣고 뚜껑을 닫았다.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이자 가게 안이 후끈 달아올랐다. 다섯개의 압력탕기 모두에 소주를 내리고 있으니 가게 안은 숫제 가마솥이었다. 굵은 땀방울이 브래지어를 척척하게 적셨다. 의자에 앉아 있는 아버지 뒤쪽에서 면수건을 접어 브래지어 안에 맺힌 땀을 닦아내는데 양복을 입은 손님이 불쑥 들어왔다. 미자는 깜짝 놀라 수건은 그대로 두고 손만 빼냈다.

“안녕하세요.”

손님이 명랑하게 인사했다.

“아, 예.”

면수건으로 젖가슴을 닦는 모습을 들킨 것만 같아 미자의 얼굴은 천도복숭아처럼 빨개졌다.

“날씨가 푹푹 찌네요.”

“그, 그러네요.”

미자는 말까지 더듬었다. 손님은 개소주를 자주 내려 가는 마흔의 남자였다. 유부남인 것 같은데 가끔 꽃을 사와서 부담스러운 손님이었다. 작년 내내 한달에 한번 꼴로 개소주를 내려 갔는데, 올 때마다 명함을 주곤 해서 이름이 김명수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김명수는 아침인데도 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항상 정장 차림인 김명수는 아무리 더워도 웃도리를 벗는 경우가 없었다. 미자는 뒷마당으로 가서 김명수에게 새벽에 들여놓은 개를 보여주었다. 김명수도 비록 덩치는 작은 놈이지만, 누렁이를 골랐다.

“이걸 넣어서 내려주세요. 이따 두세시쯤에 오면 되겠죠?”

김명수가 한약재를 넘겨주었다. 겨우 열시를 조금 넘겼을 뿐인데 땅에서 열이 푹푹 올라왔다. 미자는 손바닥을 활짝 펴서 부채질을 했고 김명수는 손수건으로 뒷덜미의 땀을 닦아냈다.

“그건 좀 어렵구요. 다섯시쯤 오세요. 어제 주문받은 게 좀 밀려 있어서요.”

“다섯시라…… 할 수 없죠 뭐. 그때 오지요.”

뒷마당의 문을 통해 김명수가 나가자 미자는 얼른 돌아서서 브래지어 속에 구겨져 있는 면수건을 꺼냈다. 면수건은 땀에 젖어 있었다. 축축한 면수건을 들고 가게로 들어오니 1번 압력탕기가 삑삑삑삑 요란하게 소리를 내고 있었다. 미자는 얼른 꼭지를 돌려 가스를 차단한 뒤에 아버지를 흘겨보았다. 아버지는 여전히 사진에만 홀려 있었다. 압력탕기가 그만큼 삑삑거렸으면 시끄러워서라도 불을 끄련만, 아버지는 동그란 철제의자에 앉아 요지부동이었다.

“귀가 먹었나, 불이라도 꺼주면 좀 좋아.”

미자는 노골적으로 투덜거리면서 비닐봉지에 개소주를 밀봉해넣는 기계를 물로 헹궜다. 오늘따라 개 비린내가 역겹게 풍겼다. 우욱 욱, 입덧하듯이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미자는 손바닥으로 입을 막고 헛구역질을 참았다. 헛구역질로 생긴 눈물을 손등으로 씻어내고 있을 때 김명수가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들어왔다. 두번씩이나 흉한 모습을 보이다니 미자는 창피해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아이스크림입니다. 드시고 하세요.”

김명수가 미자의 코앞에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주시니 받긴 하겠지만 이러시면 너무…… 죄송해서.”

하는 수 없이 몸을 일으킨 미자는 어정쩡한 자세로 비닐봉지를 받았다.

“그럼 부탁하고 갑니다. 더운데 고생하시고.”

휑하니 김명수는 몸을 돌려 나갔다.

“누가 이런 거 사다달랬나!”

미자는 가게를 나가는 김명수의 뒤꼭지에다 입을 삐죽 내밀었다. 언제 저녁이나 같이 하자는 김명수한테 번번이 퇴짜를 놓았더니 이젠 아이스크림을 들고 온 것이었다. 아무튼 사내들이란 늙으나 젊으나 모두 개였다. 미자는 비닐봉지에서 부라보콘을 꺼내 아버지 손에 쥐어준 뒤 하나는 냉동실에 넣고 하나는 먹었다. 주전부리를 도통 안하다가 아이스크림을 먹으니 말 그대로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아이스크림을 먹은 뒤, 압력탕기에서 개소주를 꺼내 식혔다. 손을 빨리 놀리지 않으면 김명수의 개소주를 제시간에 내릴 수 없을지도 몰랐다. 분당 할머니가 주문한 개소주를 1번 압력탕기에 다시 앉히고는 레인지에 불을 붙였다. 누굴까? 김군 아니면 아버진데…… 노인정에도 나가지 않는 양반이라 돈이 별로 필요한 것 같지는 않은데다 용돈도 넉넉하게 주고 있으니 아버지가 돈에 손을 댈 리는 없고, 염색도 하랴 힙합바지도 사랴 씀씀이가 헤픈 김군이 손을?

“으, 찐다 쪄!”

김군이 할랑거리며 들어왔다.

“냉장고에서 부라보콘 꺼내 먹어.”

“우와, 사장님 최고.”

김군이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더니 헬멧을 도마 위에 올려놓았다.

“할아버지이! 이게 뭐예요?”

김군이 소리를 꽥 질렀다. 놀라 돌아보니 아버지의 손에 들린 부라보콘이 녹아 줄줄 흐르고 있었다. 아이스크림이 녹아 손등을 타고 바닥으로 뚝뚝 떨어져도 아버지는 멍한 눈으로 사진만 바라보고 있었다. 석유 먹은 장작에 불이 붙듯 짜증이 확 솟구쳤다. 미자는 아버지의 손에서 부라보콘을 빼앗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래도 아버지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 이 노인네가 미쳤나 싶어 속으로 은근히 놀랐다. 아까 사진을 뺏겼을 때에는 살기가 등등하더니, 혹시 노망이라도 든 게 아닐까? 겁이 더럭 났다.

“아버지, 아버지!”

미자는 아버지의 어깨를 흔들었다.

“왜 그러누? 사람 귀찮게.”

그제야 아버지의 눈동자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조짐이 심상치 않았다. 다른 때는 괜찮다가도 사진만 손에 쥐면 이상하게 변했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땐 아주 부지런한 양반이었는데…… 하루아침에 이렇게 돌변할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만약 노망이 들어 똥오줌을 받아내야 한다면…… 하지만 노망의 조짐은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게 나타나고 있었다. 된장찌개를 먹고도 순두부를 먹었다고 천연덕스럽게 말을 하는가 하면, 수저를 놓자마자 점심을 아직도 안 먹느냐고 투정을 부렸다. 그런데 소학교 1학년 시절의 일본인 여선생은 자세히 기억해냈다. 피마자를 내지 못해 손바닥을 열 대나 맞았지만 코 옆의 점과 보조개와 덧니가 참으로 예뻤다는 찬사도 곁들였다. 어제 일은 기억하지 못했지만 가슴에 손수건을 달고 다니던 시절은 자세히도 기억했다.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아도 좋으니 제발 노망만은 안된다고 고개를 흔들며 아버지의 손을 수돗물로 씻어주었다.

“너는 꼭 그 사람을 닮았구나.”

아버지가 행복에 겨운 듯한 표정으로 나직하게 말했다.

“누구요, 엄마?”

미자는 일부러 돌아가신 어머니를 들먹거렸다.

“아니다.”

싸늘한 목소리로 대답한 뒤 아버지는 의자로 돌아가더니 단정하게 자세를 잡았다. 아버지의 기억에서 어머니는 존재하지 않았다. 미자는 진한 배신감을 느끼며 김군을 데리고 뒷마당으로 나가 또 한 마리의 누렁이에 올가미를 걸었다. 올가미에 걸린 누렁이는 구석으로 기어들어가 버텼다. 김군이 철망 문을 열자 미자는 나무 기둥에 재빨리 줄을 걸어 세차게 당겼다. 누렁이가 몸을 비틀며 대롱대롱 매달렸다. 김군한테 올가미 줄을 맡긴 미자는 살며시 가게 안을 엿보았다.

마른 수수깡처럼 야윈 아버지가 머리에 하얀 억새밭을 이고 앉아 오래된 흑백사진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어머니가 사고로 돌아가시자 아버지는 엉뚱하게도 다른 여자의 사진을 찾아내 품에 넣고 다녔다. 약간은 겁에 질린 눈동자의 여고생이 명함판 사진 속에서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고생만 실컷 하다가 돌아가신 어머니의 무덤에 흙이 마르기도 전에, 다른 여자의 사진을 품에 넣고 다니다가 틈만 나면 만지작거리는 아버지한테 미자는 큰 배신감을 느꼈다. 사진 뒤에 적힌 ‘미자가 순철에게’라는 글씨를 본 뒤에는 아예 눈이 뒤집힐 지경이었다. 첫사랑의 여자를 잊지 못해 한점 혈육으로 태어난 딸에게 그 이름을 붙인 아버지는 위선자였다.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린 남편이나 세월 저편의 첫사랑을 추억하고 있는 아버지나 다를 게 털끝만큼도 없는 인간들이었다.

저토록 딴마음을 품고 있었다면 독신으로 살아야 마땅한 것이 아닌가 싶어 아버지가 참을 수 없이 미웠다. 미자는 돌아가신 어머니만 불쌍하다고 생각하며 돌아서려는데 아버지가 살그머니 일어서더니 고개를 돌려 두리번거렸다. 미자는 몸을 낮추고 숨을 죽였다. 아버지가 빠른 동작으로 돈통에서 돈을 꺼내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눈에서 불길이 타올랐고 가슴이 벌렁벌렁 뛰었다. 뛰어들어가 아버지의 손목을 잡고 꽈배기처럼 비틀어버리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뒷마당으로 돌아온 미자는 마치 분풀이를 하듯이 기둥에 매달린 누렁이한테 몽둥이질을 했다. 이미 숨이 끊어진 누렁이를 향해 난폭하게 몽둥이질을 하자 김군이 깜짝 놀라 몽둥이를 빼앗았다. 미자는 아랫입술을 내밀어 숨을 크고 깊게 내쉬었다. 그 바람에 머리카락이 나풀거렸다. 그 사이에 김군이 기둥에 매달린 누렁이를 풀었다. 털석, 누렁이가 땅에 떨어졌다. 김군은 사지를 뻗고 죽은 누렁이의 털을 태웠다.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김군은 능숙하게 털을 태우고 깎아냈다. 김군이 알몸의 누렁이를 들고 가게로 들어가자 미자도 뒤를 따랐다. 가게 안에 들어서자 열기가 훅 끼쳤다. 미자는 아버지를 슬쩍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시치미를 뚝 떼고 먼산을 보고 있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꾹 참고 김명수가 주고 간 한약재를 씻었다.

정오 무렵에야 개 잡는 일이 대충 끝났다. 미자는 양손을 허리에 얹고 기지개를 켰다. 우두둑, 등뼈가 비명을 질러댔다. 김군이 라디오 스위치를 돌리자 설운도의 ‘다함께 차차차’가 경쾌하게 흘러나왔다. 김군은 엉덩이를 흔들며 차차차 스텝을 밟았다. 미자는 개기름과 먼지가 뿌옇게 낀 거울을 보며 머리를 뒤로 묶었다. 목덜미를 덮고 있던 머리카락을 묶으니 조금은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김군이 아버지한테 점심에 뭘 드시겠느냐고 물었다. 아버지가 청국장이라고 말하자 김군이 단골식당에 청국장을 주문했다. 미자는 머리를 뒤로 묶은 뒤에도 거울 앞을 떠나지 못하고 눈 밑을 살폈다.

들깨가 박힌 것처럼 눈 밑에 낀 자잘한 기미를 보니 가슴 깊은 곳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혹시 지저분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싶어 손바닥으로 거울을 닦았다. 손바닥이 지나간 자리에 얼굴이 또렷하게 나타났다. 기미뿐만 아니라 눈 밑의 잔주름도 선명하게 보였다. 미자는 미련없이 돌아섰다. 한번 부부의 연을 맺었으면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함께 늙어야 마땅한 일이거늘, 무슨 잘못이 있기에 소박을 맞았는지, 하기야 세상 일이 뜻대로만 된다면야…… 두루마리 화장지를 서너 칸 찢어든 미자는 뒷마당의 화장실로 갔다.

일을 보고 가게로 들어서니 식당 아줌마가 쟁반을 머리에 이고 들어섰다. 김군이 미리 깔아놓은 신문지 위에 식당 아줌마가 밥을 차렸다. 미자는 그 틈에 눈길을 가게 밖으로 옮겼다. 어린아이를 손에 잡은 허름한 차림의 사내가 가게 안을 슬쩍 쳐다보고는 지나갔다.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고 떠들고는 있지만 아직도 집 없이 떠도는 실업자가 꽤 많았다. 미자는 어린아이가 불쌍해 혀를 끌끌 찼다. 붙잡아다 밥이라도 한 그릇 먹이고 싶었지만 만사가 귀찮았다.

“순두부는 없냐?”

아버지는 수저를 들지 않았다.

“청국장 시켜달라고 했잖아요?”

김군이 김치 보시기를 덮은 랩을 벗기면서 툴툴거렸다.

“언제 청국장 시켰어?”

되레 아버지가 화를 냈다. 분명히 청국장이라고 해놓고 순두부라고 우기니 갑갑했다.

“그냥 드세요. 저녁에 순두부 자시고.”

미자는 아버지의 손에 수저를 쥐어주었다. 찜찜한 얼굴로 청국장을 쳐다보던 아버지는 마지못해 국물을 떠서 맛을 보았다.

“으음.”

당신 입에 착 달라붙을 때의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늙는다는 게 저런 것인가 싶어 미자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김군은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일어나 담배를 물고 가게 밖으로 나갔다. 아버지는 마치 밥맛을 음미라도 하는 양 천천히 수저질을 하다가도 한참씩이나 멈추곤 했다. 답답해서 속이 터져나갈 것만 같았다. 미자는 청국장에다 밥을 말아 후루룩 먹어치웠다.

“이북 애들은 굶는다더라.”

밥을 입으로 가져가다 말고 아버지는 먼산을 보며 말했다.

“이북 애들 굶는 거, 그걸 어쩌자고요?”

열불이 나서 밥그릇과 수저를 와락 빼앗고 싶었지만 볼멘소리만 질렀다. 오늘따라 아버지의 증세는 더 심해지고 있었다. 노인정에 나가 고스톱이라도 치거나 장기 바둑이라도 두라고 해도 아버지는 무작정 가게로 나와 의자에 앉아 하루를 보냈다. 미자는 칫솔을 입에 물고 뒷마당으로 나갔다. 잇몸에서 피가 나도록 칫솔질을 한 뒤 그늘에 앉아 아버지처럼 먼산을 바라보았다. 날씨는 좋았지만 시계(視界)는 형편없어서 남한산성이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 온몸이 끈적끈적한데다 속까지 답답했다. 남한산성으로 올라가 계곡물에 멱을 감고 맑은 공기라도 마시면 숨통이 조금 터질 것 같았다. 깽, 폭염 속의 정적을 깨는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굵은 철망 속에서 개들이 분홍빛 혀를 길게 빼물고 헉헉거리고 있었다. 털갈이를 하는 계절이라 철망 부근엔 빠진 개털이 목화솜처럼 엉겨 있었다. 개털이라면 지긋지긋했다.

“씨바, 열 받아서.”

뒷마당 수돗가에 있는 주황색 플라스틱 바가지를 거칠게 차면서 가게로 들어갔다. 바가지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날아가 개철망을 때렸다. 철망 속에 있던 개들이 동시에 깨갱거렸다. 아버지는 세상에 급할 것이 하나도 없다는 듯 느긋하게 밥을 먹고 있었다. 미자는 아버지 뒤에 서서 양손을 허리에 착 걸쳤다. 벽에 걸린 고물 라디오에선 최백호가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라며 열창을 하고 있었다. 수저로 청국장을 뜨려던 아버지가 문득 동작을 멈추고 라디오를 쳐다보았다. 토끼처럼 귀를 세운 아버지의 눈동자가 몽롱하게 풀리고 있었다.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라고 최백호가 절규에 가깝게 노래했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미자는 라디오를 꺼버렸다. 아버지는 노래를 빼앗긴 먹통의 라디오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청국장 뚝배기로 눈길을 돌렸다.

“아주 제사를 지내요, 제사를.”

미자는 아버지의 뒤통수에 어깃장을 박으며 4번 압력탕기의 뚜껑을 열었다. 수증기와 함께 열기가 치솟았다. 얼른 밖으로 나갔지만 쏟아지는 폭염 때문에 후텁지근하고 불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바로 옆, 개고기를 잘라 파는 좌판 위엔 진녹색의 날개를 가진 파리들이 몰려 윙윙거렸다. 콩국수를 먹으며 시커먼 개다리 위로 날아드는 파리를 쫓는 좌판 주인 아낙 앞에 세살쯤 됐을 사내아이가 손가락을 빨며 서 있었다. 멜빵바지에 짙은 감색 셔츠를 입어 귀여웠지만 왠지 어미의 손길이 부족한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콧날이 약간 주저앉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귄이 있는 얼굴이었다. 젓가락 아래로 줄줄이 늘어진 콩국수 가락을 넋을 잃고 쳐다보는 꼬마의 얼굴에서 가슴에 묻은 아들의 얼굴이 느껴졌다. 가슴이 덜커덩 내려앉았고 얼굴로 뜨거운 것이 몰려들었다. 미자는 꼬마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꼬마야, 몇살이니?”

미자가 묻자 꼬마는 울상을 지으며 뒤로 물러났다.

“엄마는 어디 있어?”

겁에 질리지 않게 다정스레 미소를 지으며 물었지만 꼬마는 곧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입술이며 코를 실룩거렸다. 미자가 앉은걸음으로 다가가며 손을 내밀었다. 겁에 질린 얼굴로 꼬마가 슬금슬금 뒷걸음질쳤다. 사람을 심하게 타는구나,라고 생각하며 미자는 무릎에다 두 손을 짚고 끙 힘을 줬다.

“아빠!”

막 허리를 펴는데 꼬마가 종종걸음으로 뛰어갔다. 꼬마는 더부룩한 머리에 허름한 옷을 입은 사내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미자는 가게로 들어가려고 몸을 돌렸다.

“여, 여보.”

귀에 익은 목소리가 미자의 뒷덜미에 꽂혔다. 지난 3년 동안 한번도 듣지 못한 목소리지만, 결코 잊지 않은 남편의 목소리였다. 눈앞에 나타나기만 하면 손톱을 세워 갈기갈기 쥐어뜯고 싶었던 그 화상의 목소리를 듣자 꼭지가 팽 돌았다. 미자는 이를 악물고 몸을 돌렸다. 꼬마를 손에 잡은 시커먼 얼굴의 사내가 퀭한 눈으로 서 있었다.

“여, 여보.”

남편을 보자마자 미자는 몸을 휙 돌려 가게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얼른 눈에 띄는 게 함지박이었다. 그 속에는 개 내장을 헹군 물이 담겨 있었다. 미자는 그것을 들고 밖으로 나가 남편의 얼굴에 끼얹었다.

“더러운 인간! 썩 없어져!”

물을 뒤집어쓰자 꼬마는 악을 질러대며 울었고 남편은 고개를 푹 숙였다. 꼬마의 악다구니에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쏟아져나왔다. 미자는 가게로 들어가 손에 잡을 것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마침 야구방망이가 눈에 띄었다. 야구방망이를 들고 밖으로 나온 미자는 남편의 머리를 향해 야구방망이를 치켜들었다.

“에라이, 못난 인간아!”

악을 쓰며 남편을 치려고 손에 힘을 줬는데 야구방망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장님, 고정하세요.”

언제 왔는지 김군이 미자의 손을 비틀어 야구방망이는 빼앗아버렸다.

“내놔, 달란 말이야!”

미자는 손을 내밀며 김군한테 다가갔다.

“고정하세요, 사장님.”

김군은 야구방망이를 등뒤로 감췄다.

“니까짓 게 뭘 알아!”

미자는 자신도 모르게 김군의 따귀를 찰싹찰싹 때렸다. 손바닥이 김군의 따귀를 때릴 때마다 노랑머리가 출렁거렸다. 김군은 입술을 꼭 깨물고 서 있을 뿐, 반항하지 않았다. 미자의 손을 잡은 것은 옆집 백세건강원 아저씨였다.

“그만 해요. 김군이 뭔 죄가 있다고.”

미자를 달래는 백세건강원 아저씨 옆에 아버지가 서 있었다.

“그만하고 들어가자.”

아버지가 말했다.

“상관 말아요!”

미자는 악을 쓰며 백세건강원 아저씨의 손을 뿌리치고 남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남편은 악을 쓰며 울고 있는 꼬마의 머리에서 개 내장 찌꺼기를 손으로 떼내고 있었다. 그걸 보니 당장에 때려죽이고 싶었다. 주변을 살피니 좌판 위에 놓인 개다리가 눈에 띄었다. 미자는 개다리를 덥석 집어 남편의 머리를 후려쳤다. 개 허벅지의 벌건 살덩어리에 얼굴을 맞은 남편이 비틀거렸다. 사방에서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미자는 개다리를 좌판 위에 툭 던져놓고 가게로 들어가 문을 탁 닫았다.

 

 

3

 

번듯한 자가용을 타고 와 이혼을 해달라고 했어도 분이 하늘을 찌를 판에 거지라니…… 염치도 모르는 뻔뻔한 인간이었다. 변명을 듣지 않아도 여자한테 버림받은 게 뻔했다. 그런데 혹까지 달고서 거지꼴로 나타나 ‘여보’라고 부르다니, 생각할수록 살이 떨렸다. 구조조정인가 뭔가로 은행에서도 쫓겨난 것이 분명했다. 은행을 다니면서 먹고 살만 할 때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더니만…… 다 죽게 생겼으니까 낯짝을 들고 나타나? 그러면 누가 아이고 예뻐라 하면서 받아줄 줄 알고? 흥, 어림도 없지 어림도 없어.

미자는 타는 속을 달랠 길이 없어 책상 위에 놓인 담뱃갑에서 담배를 꺼내는데 아버지가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는 여전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 돋보기를 꺼내 쓰고 사진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아버지가 미웠다. 그 난리를 치르고도 꼼짝 않고 사진만 볼 수 있다는 게 오히려 신기할 정도였다. 불을 붙여 담배를 빨았다. 먼지 한 움큼이 목구멍에 꽉 걸린 듯 불쾌했다. 미자는 정신없이 기침을 해댔다. 신경질을 부리며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끈 미자는 속이 터질 것만 같아 그대로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김군아.”

압력탕기를 씻고 있는 김군을 불렀다. 김군은 대답 대신 고개만 돌렸다. 김군의 뺨에는 손바닥 자국이 도장처럼 벌겋게 찍혀 있었다. 속이 뜨끔했다.

“나가서 시원한 맥주 좀 사와!”

미자는 돈통에서 만원짜리를 꺼내며 말했다. 김군이 말없이 돈을 받아 가게를 나갔다. 돈통을 보니 더욱더 화가 치밀었다. 아버지 앞에 의자를 갖다놓고 그 위에 앉았다.

“아부지.”

사진을 빼앗아 갈기갈기 찢고 싶었지만 꾹 참고 목소리를 낮췄다.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손가락으로 사진을 어루만질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미자는 터지는 속을 다스리느라 숨을 크게 쉬었다. 다섯을 셀 동안 대답을 하지 않으면 돋보기를 벗기겠다고 생각하며 숫자를 세기 시작하는데 전화가 왔다.

“예, 장수건강원입니다.”

목소리가 곱게 나가질 않았다.

“여기는 현대여행인데요. 혹시 김순철씨 계십니까?”

젊은 여자의 밝고 명랑한 목소리가 아버지를 찾았다. 현대여행? 미자는 아버지와 여행을 쉽게 연결시키지 못했다.

“그런데요?”

자신도 모르게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계시면 바꿔주세요.”

“아부지는 지금 안 계시는데, 무슨 일이죠?”

“김순철님께서 우리 여행사에다 금강산관광을 신청하셨어요. 그런데 뉴스에 나왔다시피 금강산관광이 당분간 중지되어서요. 관광이 재개될 때까지 기다리실 건지 아니면 해약하실 건지 알고 싶어서 전화드렸습니다.”

“아부지 들어오시면 전화하라고 할게요.”

“전화 꼭 부탁드립니다. 안녕히 계세요.”

수화기를 내려놓고 미자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날마다 돈을 훔쳐내더니 몰래 금강산관광을 가려고 했다니, 아무리 아버지라고 하지만 꽤씸하기 짝이 없었다. 당신이 가고 싶다고 솔직히 말하면 어디가 덧난단 말인가? 그만한 돈쯤이야 충분히 마련할 수 있는데 도둑처럼 야금야금 돈을 훔쳐내 금강산관광을 신청하다니, 미자는 돌아서서 가게 복판에 놓여 있는 함지박을 걷어차버렸다. 함지박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가게 문턱에 부딪쳤다. 그 바람에 맥주를 사들고 들어오던 김군이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아버지는 잠깐 고개를 들었을 뿐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맥주 이리 주고, 잠시 나가 있을래? 어디 오락실에라도 갔다와.”

김군을 내보낸 미자는 맥주를 따서 병째 벌컥벌컥 마셨다. 차가운 맥주가 가슴을 답답하게 옥죄고 있던 그 무엇을 뻥 뚫어내는 기분이었다. 맥주를 비운 미자는 빈병을 책상 위에다 쾅 소리가 나게 놓았다. 그래도 아버지는 요지부동이었다. 미자는 아버지의 코앞에 바싹 앉았다.

“아부지.”

조용히 아버지를 불렀다. 응답이 없자 미자는 아버지가 들고 있는 사진을 건너다보았다. 단발머리에 하얀 저고리를 입고 머리를 올린 복스럽게 생긴 여자가 생긋 웃고 있었다. 미자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손을 들었다.

“아부지!”

미자는 아버지가 들고 있는 사진을 손가락으로 뽑아냈다. 아버지가 쓰고 있던 돋보기를 얼른 벗었다.

“이, 이런 고얀!”

고함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아버지의 손이 철썩 뺨을 때렸다. 순간 미자의 눈에 번쩍 유성이 흘렀다. 아버지가 미자의 뺨을 때린 것은 3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미자의 눈에서 눈물이 방울방울 솟았다.

“당장 내놓지 못해!”

아버지가 손을 내밀었다. 미자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아버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아버지의 눈에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노기가 등등했다. 아버지는 언제나 어머니한테 지고만 살았다. 어머니를 거역한 적이 없었던, 양처럼 순했던 아버지였다.

“묻는 말에 대답을 해주세요. 그 뒤에 사진을 주겠어요.”

미자는 벽에 걸린 두루마리 휴지를 떼어내 눈물을 찍어내며 말했다.

“여기 놓아라.”

아버지가 미자의 얼굴에다 손바닥을 펴서 위아래로 흔들었다. 눈이라도 찌를 듯해서 미자는 고개를 뒤로 젖혔다.

“금강산관광 때문에 돈을 빼돌리셨어요? 그렇게 금강산이 가고 싶었어요? 엄마 살아 생전에는 가까운 남한산성도 안 가셨던 아부지가 그럴 수가 있어요? 말 좀 해보세요!”

미자는 또박또박 따지고 들었다.

“사진.”

“확 찢어버리겠어요.”

미자는 사진을 잡고 찢는 시늉을 했다. 아버지가 깜짝 놀라 미자의 손을 잡았다. 미자는 뿌리치려고 했으나 노인네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엄청난 힘 때문에 쉽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의자에서 일어나 몸을 돌려 아버지의 손을 뿌리쳤다. 손가락 자국이 생길 정도로 손목이 얼얼했다.

“먼저 내놓으면 얘길 해주마.”

아버지가 포기하듯이 말했다. 미자는 도로 의자에 앉았다. 눈싸움이 짧게 이어졌다. 미자는 아버지의 손에 사진을 놓았다. 아버지는 돋보기를 끼고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 여자는, 그러니까…… 참으로 미안한 말이지만, 말하자면…… 니 큰 어머니라. 미군이 흥남에 들어왔을 때 마루 밑에서 기어나올 수 있었다. 그것도 잠시, 중공군이 내려오자 미군은 부두에서 배로 철수를 시작했다. 니 할아부지가 삼대독자인 나는 꼭 살아야 한다며 남쪽으로 가라고 하셨다. 크리스마스였지 아마……”

문득 아버지는 입을 다물더니 혀로 입술을 문질렀다. 미자는 냉장고에서 보리차를 꺼내 아버지한테 내밀었다. 아버지가 실향민이라는 건 알았지만 유부남이었다는 사실은 금시초문이었다.

“그래서요?”

뻔한 줄거리겠지만 미자는 아버지의 다음 말이 궁금했다. 아버지의 눈이 흐려졌다가 다시 맑아졌다. 아버지는 코끝에 걸린 돋보기를 위로 밀어올렸다.

“눈이 엄청나게 쏟아지는 날이었다. 폭격으로 부서진 예배당에 미군이 철수한다는 소문이 돌았어. 마지막 배가 떠난다는 소문이었어. 흥남 사람들 모두가 너나없이 부두로 몰려갔다. 나도 어린 아내를 데리고 부두로 나갔다. 보따리를 이고 지고, 서로 옷자락을 붙잡고 부두로 나가다가 그만 인파에 휩쓸려 손을 놓치고 말았다. 그때 뱃속에 애를 가지고 있었는데.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도 없고. 신문을 보니 북쪽 애들이 쫄쫄 굶고 있다더라. 그때부터 너 몰래 돈을 꺼냈다. 너한테, 그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금강산도 그렇다. 금강산이 보고 싶은 게 아니라 어린 아내와 헤어져야 했던 그 바다를 보고 싶었다. 그 바다 위에서 흥남부두를 한번만이라도 마지막으로 딱 한번만이라도 보고 싶었다.”

아버지는 사진 속의 어린 아내한테 다시 눈길을 고정시켰다. 아버지가 그 바다로 나갈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차라리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뱃길이 끊겼어요, 아부지.”

미자는 아버지의 희망을 짓밟는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버지는 머리를 들어 미자를 응시했다.

“여행사에서 연락이 왔는데, 금강산관광이 중단됐대요.”

미자는 나직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꼿꼿하던 아버지의 고개가 툭 꺾였다. 그 바람에 돋보기가 떨어졌다. 아버지는 사진을 셔츠 주머니에 넣고 돌부처의 자세로 돌아갔다. 미자는 바닥에 떨어진 아버지의 돋보기를 집어들었다. 돋보기는 깨져 있었다. 미자는 금이 간 돋보기를 책상 위에 놓고 일어섰다. 개소주를 달이는 열기가 가게 안을 가마솥처럼 달구고 있었다. 미자는 압력솥 앞에다 등받이 없는 동그란 의자를 가져다놓고 앉았다. 뒤를 돌아보니 작고 늙은 아버지가 하염없이 먼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의 눈동자는 텅 비어 있었다. 미자는 가게 밖에다 눈길을 던졌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게 보였다. 가끔씩 남편의 어린 아들의 얼굴도 눈에 띄었다. 아직도 떠나지 못하고 근방을 떠돌고 있는 모양이었다. 복수하고 싶었다. 최선을 다해 남편의 심장에다 날카롭고 긴 칼을 꽂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복수만 할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니 몸이 부르르 떨렸다. 김명수의 개소주가 담긴 압력탕기가 삐빅 하며 신호를 보냈다. 불을 끄고 돌아서는데 아버지가 조용히 가게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어디 가세요?”

“여행사엘 갔다오마.”

“왜요?”

“돈을 되찾아야지.”

“………”

아버지가 가게 밖으로 나갔다. 아버지를 향해 남편이 꾸벅 허리를 숙이는 게 보였다. 가슴에서 불길이 화라락 치솟았다. 당장 뛰어나가 대가리를 깨버리고 싶었다. 미자는 치밀어오르는 분을 삭이며 어떻게 복수할까 궁리했다.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아서 더욱 애가 탔고 화가 났다. 압력탕기의 뚜껑을 열어 개소주를 식히며 멍하니 앉아 있는데 김명수가 왔다.

“죄송해서 어쩌지요?”

“제가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먼저 왔으니 죄송할 거 없습니다.”

손바닥으로 부채질을 하는 김명수한테 선풍기를 돌려놓는 순간에 미자의 뇌리에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커피 한잔 하시겠어요?”

미자는 용기를 냈다.

“커피 좋지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옷 좀 갈아입고요. 김군아, 김군아!”

미자는 옆집 백세건강원에서 또래의 종업원과 노닥거리고 있던 김군을 불러왔다.

“잠시 나갔다 올 동안 이거 좀 해놔!”

“어디 가시게요?”

“그건 알 거 없고.”

미자는 얼른 세수를 하고 가게 안 내실로 들어가 작업복을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외출복이라고는 했지만 면바지에 하얀 티셔츠였다. 미자는 김명수와 함께 가게를 나왔다. 개골목을 빠져나오면서 뒤를 힐끗 보니 남편이 아이의 손을 잡고 천천히 뒤를 따르고 있었다. 미자는 개골목을 나오자마자 김명수와 팔짱을 끼었다. 김명수가 화들짝 놀라 팔을 움츠렸다. 미자는 김명수의 팔을 더 꽉 끼었다. 두 사람은 언덕 위에 있는 성남관광호텔을 향해 걸었다.

호텔 커피숍에 앉아 창밖을 보니 남편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미자는 마음을 더욱 독하게 먹었다. 보란 듯이 김명수를 데리고 객실로 올라갔다. 영문도 모르는 김명수는 미자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했는지 옷을 벗지 않았다. 미자는 침대로 올라가 알몸을 얇은 홑이불로 가렸다. 김명수는 땀을 뻘뻘 흘리며 창가에 서서 담배를 피웠다. 미자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김명수가 침대로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담배를 재떨이에 눌러 끈 김명수는 미자를 흘끔 쳐다보았다. 미자는 몹시 부끄러웠다.

“무슨 일이 있는 줄은 모르겠지만, 솔직히 좀 얼떨떨합니다.”

“………”

미자는 옷을 벗은 것으로 심중에 담긴 뜻을 충분히 표현했다고 믿고 있다가 김명수의 말을 듣고는 얼른 이불을 잡아당겨 얼굴을 덮었다.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올랐다.

“죄송합니다.”

김명수가 객실에서 나가자 미자는 홀로 남겨졌다.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건만 알몸인 상태로는 침대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다. 미자는 홑이불 속에서 오래도록 울었다.

 

 

4

 

퍼내고 퍼내도 마를 것 같지 않은 눈물이었건만 시간이 흐르자 서서히 말라갔다. 마른 울음을 울던 미자는 주섬주섬 옷을 입고 창가에 섰다. 유리창 밖의 풍경에다 무심하게 눈길을 던졌다. 아스팔트를 뜨겁게 달구던 태양이 서산에 걸릴 무렵에야 미자는 호텔을 나섰다. 가게에 오니 김명수가 주문한 개소주가 그대로 있었다. 김명수한테 미안했다. 전화를 걸려고 명함을 찾다가 말고 서랍을 닫아버렸다. 아버지는 깨진 돋보기를 쓰고 사진을 보고 있었다. 오래된 흑백사진 속의 여자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사진 속의 여자와 무언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한 아버지의 표정을 보니 또 화가 났다.

“김군아, 문 닫고 일찍 들어가자.”

“예?”

“피곤하니까 쉬자고.”

“그러지요, 뭐.”

김군이 가게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부지, 돈은 찾았어요?”

검버섯이 드문드문 피어 있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진을 빼앗을까 하다가 참고 다시 물었다.

“저녁엔 갈치조림을 먹고 싶구나.”

아버지가 말했다. 푸우우, 미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의 엉뚱한 대답에 온몸의 맥이 스르르 풀리는 기분이었다.

“여행사 간 일은 어떻게 됐냐구요?”

신경질을 마구 부리며 되물었다.

“돈을 되찾아 왔다.”

“그 돈 주세요.”

미자는 손을 내밀었다.

“없다.”

“뭐라구요? 한두 푼도 아닌 돈을 찾았다면서, 없다니 말이나 돼요?”

“반은 북한어린이돕기에 냈고 나머지는 그 사람 줬다.”

“그 사람이라니요?”

“니 남편.”

“아부지!”

고함을 버럭 지르며 벌떡 일어섰다. 미자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 돈이 어떤 돈인가? 날마다 개를 잡아가며 번 돈이 아닌가? 홀로된 아버지가 불쌍해서 가게엘 나왔다가 어린 자식을 비롯해 모든 것을 잃었는데, 하필이면 그 인간한테 그 돈을 주다니…… 비록 많지 않은 돈이라고 해도 눈에 보이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미쳤어요, 미쳤어.”

미자는 의자를 집어들어 가게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난 미치지 않았다.”

아버지가 나직하게 대꾸했다.

“그럼, 왜 그랬어요?”

미자는 입에 게거품을 물며 따지고 들었다.

“니 어미를 좋아했다. 흥남에 두고 온 어린 아내를 생각하며 평생 혼자 살겠다고 했는데 니 어미 때문에 그 약속을 어겼다. 고생은 많았지만 니 어미는 행복하게 살다가 죽었다. 좋아하던 사람과 함께 살았으니 말이다.”

“엉뚱한 말 좀 하지 마세요. 지겨워 죽겠어요, 죽겠어!”

“흥남에 두고 온 어린 아내와는 함께 살지 못했다. 그걸 알아야 한다.”

“그게 그 인간한테 돈 준 거하고 무슨 상관이 있냐고요?”

“따지지 말아라. 그냥 주고 싶었다.”

이 말을 남기고 아버지는 돋보기를 주머니 속에 넣었다. 미자는 기가 막혀 고개를 외로 꼬았다. 그 바람에 가게 앞에서 손가락을 빨고 있는 남편의 아이가 눈에 띄었다. 얼른 밖으로 나가 살폈더니 남편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 숨어서 가게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골목을 이 잡듯 뒤졌다. 가게 앞으로 돌아온 미자는 사나운 눈길로 아이를 쏘아본 뒤 문을 세차게 닫고 가게로 들어왔다. 벽에 세워져 있는 개 잡던 몽둥이로 가게를 몽땅 부수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고 있는데 아버지가 조용히 일어서서 가게 밖으로 나갔다. 그러더니 엉뚱하게도 아이를 데리고 들어왔다. 숨이 꽉꽉 막혔다.  

“세상이 뜻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냐. 김군아, 자장면 하나만 시켜다오.”

아버지는 의자에 앉아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미자는 아버지를 노려본 뒤에 가게 밖으로 나갔다. 백세건강원의 아저씨가 좌판에 내놓았던 개고기를 냉장고에 넣고 있었다. 또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미자는 구멍가게로 가서 소주와 새우깡을 샀다. 취하도록 마시고 싶었으나 취하진 않았다. 억지로 소주를 비운 미자는 다시 가게로 발길을 돌렸다. 가게를 정리하고 좀 쉬고 싶었다. 깊은 산속의 절에라도 가서 부처님 앞에 엎드려 그동안 쌓은 업보를 씻어달라고 빌고 또 빌면, 꽉 막힌 숨통이 트일 것만 같았다. 가게로 들어가니 아버지는 아이의 입가에 묻은 시커먼 자장 자국을 닦아주고 있었다. 그때 전화가 왔다. 노랑머리 김군이 전화를 받았다.

“저어, 사장님.”

김군이 한껏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왜?”

“이촌동 대머리 사장님이 내일 새벽에 오신다고 하는데요?”

“………”

미자는 얼른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또 개를 잡아야 하는 일이 끔찍했고 무서웠다. 김군은 송화기를 손바닥으로 가리고 미자의 입만 쳐다보고 있었다. 아버지가 조용히 일어나더니 아이의 손을 잡았다. 아버지의 손에 작은 손을 잡힌 아이가 고개를 돌려 미자를 쳐다보았다. 순진하고 맑은 눈동자였으나 겁에 질려 있었다.

“오시라고 해.”

미자는 한숨과 함께 대답을 한 뒤 동그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다시 한번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숙이는데 의자 아래에 사진이 떨어져 있는 게 보였다. 사진을 주워 찢으려다 말고 사진 속의 여자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빙긋 웃는 여고생의 얼굴은 한송이 목련처럼 예뻤다. 그러나 미웠다. 미자는 아버지가 앉았던 의자 위에 낡은 사진을 던져놓고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