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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윤영 金倫永
1971년 서울 출생. 1998년 「비밀의 화원」으로 제1회 창비신인소설상 입선.
그때 그곳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나
희완이 그 소식을 들은 것은 저녁 무렵 독서실에서였다.
출출하다 싶어 휴게실로 가 컵라면 물을 받아놓고 앉아 있을 때 아이들이 모여서 쑤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직접 보고 왔다는 둥, 백차가 순식간에 와서 싣고 갔다는 둥, 두서없는 수군거림이었지만 희완은 무슨 얘긴지 대충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이들은 같은 학교 1학년들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황복팔이라는 이름을 입에 올릴 리 없었다. 2,3학년들은 보통 그를 똥독이라고 불렀다. 혹은 씹탱이 똥독이라고 불렀다. 희완은 그에게 계속 수학과외를 받아오다가 최근 학원 강사로 바꾸었다. 그러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라면이 다 익은 것 같아 희완은 라면 몇가닥을 후루룩 먹어보았다. 물을 좀 많이 넣었군, 하며 남은 라면 가닥들을 후후 불며 마저 삼켰다. 똥독이 없으면 누가 수학을 맡지, 그 생각이 퍼뜩 떠올랐지만 누가 맡든 어차피 큰 변화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또 들었다.
똥독은 희완의 담임이었다.
호이호이분식 주인 심씨는 이 한적한 일요일날 웬일인가 싶어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학교 담장을 마주보고 있는 이 외진 골목엔 가게도 몇 되지 않을뿐더러 그나마 일요일에 문 여는 데는 심씨네밖에 없었다. 담장 끝 공터에서 시체가 발견되자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심씨네로 경찰들이 들이닥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비명소리 같은 걸 듣지 못했느냐, 가게를 비운 적이 없느냐, 피살자가 누군 줄 아느냐, 그런 취조 아닌 취조를 받으면서도 심씨는 불편한 마음보다도 말로만 듣던 살인사건이 코앞에서 일어났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지은 죄도 없는데 몸이 자꾸 떨렸다. 형사들이 그에게 그닥 혐의를 두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아무 소리도 못들었다는 게 아무래도 수상하다는 눈치들이었다.
─이런 가게도 장사가 잘돼나? 손님도 없을 것 같구만, 안 그래, 엉?
나이도 어린 형사가 반말 비스름하게 하는 게 거슬렸지만 심씨는 이런 놈들에게 찍혀서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해 최대한 공손하게 대답했다.
우리 집이 보기엔 이래도 단골이 꽤 많다. 추석이랑 설 빼고 삼백육십일 가게문을 연다. 배달도 꽤 된다. 4시 넘어선가 배달을 한번 갔다오긴 했다. 가까운 데긴 한데 단골이라 좀 노닥거리다 보니─정확히는 모르겠지만─한 20분 걸렸으려나? 그리고 그렇게 피범벅인 얼굴을 보고 어떻게 누군지 알겠는가? 본 적 없는 것 같다. 요 근처 사람이나 가게에 들렀던 사람은 왠지, 아닌 것 같다.
그렇게 말해놓고 형사들이 간 다음에도 심씨의 마음은 계속 찜찜했다.
그거 참 신기하네. 분명히 요 골목에서 당했다는데 어떻게 아무 소리도 안 들렸지…… TV 소리가 너무 컸나? 그럼 진짜 내가 배달갔다온 사이에 그랬나? 아이구 끔찍해라. 가만, 그러고 보니…… 하필 왜 그 시간에 배달을 시켜? 아니지…… 내가 아예 없었던 게 차라리 낫던 거지…… 아이구 생각을 말아야지…… 재수가 없으려니까…… 소금이라도 뿌려야겠네.
김형사와 서형사는 현장에서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한데다가 목격자도 확보하지 못해 서장에게 볶일 게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선배님, 저 만두가게 주인, 너무 떠는 것 같지 않아요?
─너무 쫄아서 그렇지. 위생계에다 뭐라고 찌를까봐 그럴 거야.
김형사의 심사는 약간 복잡했다. 이 작은 도시에서 살인사건이란 아주 드문 일이었다. 강도나 치정에 의한 우발적 사고가 아니라면, 게다가 이런 점잖은 양복 차림의 피살자라면 수사는 간단치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사건 현장이 바로 학교 앞이란 것도 마음에 걸렸다.
두 사람이 서에 도착하자마자 서장이 그들을 찾았다. 다행히 피살자의 신원은 확보되어 있었다. 예상대로 그는 바로 코앞에 있던 그 고등학교의 선생이었다. 서장은 왜 아무것도 건진 게 없냐고 습관대로 포악을 떨었고, 김형사는 근처 불량배들 탐문해보면 나오는 게 있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서장은 피살자 부인이 도착하기 전까지 계속 성깔을 부렸다.
서장은 불안했다. 아주 불안했다.
왜 하고많은 사람 중에 하필 황선생이야. 종만이 놈 대학 갈 수 있게 해준다고 나한테 뜯어간 게 얼만데…… 골픈지 뭔지 그거 한다고 쏟아부은 게 얼만데…… 그 돈 다 어떻게 되는 거야. 연결시켜준다는 사람들은 코빼기도 못 봤는데…… 가만, 가만, 지금 돈이 문제가 아니지. 그럴 때가 아냐. 피살자 돈줄 밝히다 내 이름 나오면 그게 더 골치 아파지지. 아이구, 내 처음부터 그 선생 인상이 맘에 안 들더라……
바로 그때 피살자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도착했다. 정확히 말하면 자지러진 황복팔의 부인을 다른 사람들이 부축해서 데리고 온 것이다. 그녀의 아우성은 요란했다. 당장 범인을 잡아와라, 내가 갈아마셔주겠다, 어떡하나 불쌍한 우리 남편, 훈장질 20년 한 끝에 이렇게 죽다니, 호강 한번 해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갈 걸 그렇게 아등바등…… 그녀는 실성한 사람처럼 난리를 떨다가 서장을 보곤 의식적으로 눈길을 돌리는 듯하더니 슬그머니 돌아갔다.
그날 밤 늦은 시각, 대략적인 사망 원인과 정황, 시간들이 나왔다. 김형사의 예상대로 둔기와 칼이 다 사용됐고 사망시간은 며칠 뒤 더 정확히 나오겠지만 신고한 시간과 그닥 멀지 않은 걸로 추정되었다. 오후 네다섯시 정도. 김형사의 흥미를 끈 것은 전문 깡패들의 소행으로 보이면서도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주는 흔적들이었다. 시체에도 격이 있는 법이다. 솜씨있는 살인자가 급소와 상관없는 곳은 건드리지 않고 최소한의 손놀림으로 시체의 품위를 유지하게 한다면, 이 시체처럼 수십 군데를 일관성없이 쑤시고 찔러 피살자의 고통을 극대화한, 품격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미 숨이 끊어졌거나 충분히 분풀이를 했음에도 어떤 연민이나 자책도 없이 감정이 남아 있는 이런 경우를, 김형사는 거의 보지 못했다.
다음날, 수사는 계속됐는데 알 만한 근처 건달들에게선 단서가 될 것이 도통 나오지 않았다. 전날 다녀간 부인 말대로 특별한 원한 관계나 돈 문제도 없어 보였다. 아니, 돈 문제가 없다고 볼 순 없었다. 일개 선생의 명의로 건물과 주식과 채권이 너무 많았다. 황복팔의 부인은 원래 물려받은 유산이 꽤 될 뿐 아니라 황복팔이 재테크에 능하고 쓸데없는 돈은 쓰지 않아서라고 했다.
더 조사를 하려고 하자 서장이 그만하면 됐다면서 다른 쪽을 알아보라고 했다. 김형사는 평교사 재산이 그리 많은데 왜 그만하면 됐다는지 이해가 안됐지만 서장이 둘째아들 때문에 이 바닥 선생들과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는 게 생각나 가만히 있기로 했다. 서장의 둘째아들놈은 공부도 공부지만 아버지 얼굴에 먹칠할 짓만 골라 하고 다녔다. 서장을 보고 있으면 자식 키우는 게 만만치 않은 일이란 생각이 들곤 했다. 김형사의 딸아이는 이제 겨우 여섯살이었다. 서장은 망나니 아들 때문에 심심찮게 학교 선생들에게 돈을 먹여 입을 막고 정학을 막고 소문을 막아왔다. 서장도 돈 문제에 있어선 남 못지않게 한가닥하는 인물이었다.
김형사는 서장 눈치를 봐서라도 황복팔의 재산 문제는 일단 보류해두고 그의 주변 인물들이나 다시 조사해보리라 생각했다. 신출내기 서형사와 함께 황복팔의 주변을 샅샅히 훑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며칠이 흘러갔다.
수사는 별 진척이 없었다. 황복팔은 그 흔한 고향이나 학교 친구 같은 친분관계가 놀랍도록 적은 인물이었다. 그나마 수십년씩 보지 않은 사이가 숱했다. 물려받은 재산이 있다는 것도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별볼일 없는 섬마을 편모 밑에서 자란 황복팔은 고학으로 겨우겨우 대학을 나와 시골학교를 전전하다가 10여년 전 드디어 서울에 입성했다고 한다. 그후 목 좋다는 강남에서 화려한 교사생활을 했고 그후는 너무도 바빠 통 사람들에게 얼굴 비출 시간조차 없었다고 한다. 시시한 촌친구들은 까놓고 무시했던 작자라고 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그는 속칭 촌지교사 과외교사였다. 잘나갈 땐 돈을 갈퀴로 긁어모았다고들 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황복팔의 부인은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다가 입을 다물어버렸다.
더이상 수사에 진척이 없자 김형사와 서형사는 일단 학교를 다시 방문하기로 했다. 사건 다음날 잠깐 들르긴 했으나 워낙 경황이 없었다.
학교로 들어가면서 김형사는 수위실에 들를까 하다가 그냥 지나쳤다. 지난번 수위실에 처음 들렀을 때 김형사는 이렇게 늙은 수위가 무슨 경비를 설 수 있을까 솔직히 놀랐다. 요즘 학교에선 수위 대신 잡일 하는 기사를 둔다고 하던데 이 학교엔 환갑도 넘었을 듯한 늙은 수위가 교문 앞에 떡 버티고 있었다. 그는 사건 당일 분명히 학교에 있었지만 아무 소리도 못 들었다고 퉁명스럽게 대꾸할 뿐이었다. 그때 나눈 대화는 이러했다.
─그래도 뭐 생각나는 일 없으세요.
─뭐, 늘 그냥 그렇지. 낮에 농구하러 온 애들이 한 댓명 있었고…… 아 글쎄, 그놈들이 전부라니까, 왜 자꾸 두 번씩 말하게 만들어? 학교가 이렇게 변두리에 뚝 떨어져 있는데 뭐 좋다구 애들이 일요일까지 기어오겠어? 그리구 이 학교 선생들은 숙직하는 날에도 왔다가 다 일찍 가. 시험 때도 아니고 말야.
─황선생에 대해선 잘 아세요?
─잘 알긴, 그 양반, 이 학교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어. 서울서 온 실력있는 수학선생이라나 뭐라나.
─특별히 기억나는 거 없으세요?
─뭐, 그 양반 인사성은 별로 좋지 않지. 늘 누렇게 떠가지고 종종거리고 다니고 뭐가 그렇게 바쁜지…… 그런데 작년 가을인가, 새로 바꾼 차를 애들이 하도 긁으니까 나한테 좀 뭐라고 하데. 근데 내가 뭐 지 차만 볼 수 있나? 그러니까 소주팩 한 박스를 갖다주데. 잘 좀 감시해달라고. 뭐 꼭 그런 걸 얻어먹어서가 아니라, 요즘 애들이 원체 싸가지가 없잖아. 선생 말도 안 듣는 놈들이 내 말을 듣겠수? 그런데 딴 선생들 차는 아무 탈 없는데 꼭 그 양반 차만 유난히 긁히고 타이어 빵구나고 카바 찢기고 빽미러 깨지고 그러데. 뭐, 좀 차가 눈에 띄긴 했지. 제일 삐까번쩍하구. 뽑은 지 얼마 안된 것 같더구만…… 그리고 그 선생은 일직 같은 걸 서는 일이 없데. 퇴근도 굉장히 빨라. 원 인사해도 받을 시간이 없는 것 같더라구. 아이구, 난 더이상 몰라. 나 풀 뽑아야 되니까 그만 물어봐.
김형사는 그날 농구하러 온 애들이 혹시 누군지 기억나냐고 물었지만 늙은 수위는 내가 할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걸 다 기억하냐며 벌컥 화를 냈다. 농구대와 수위실이 그리 멀지도 않은데 보면 알지 않겠냐고 하자, 그제서야 두고 다니던 안경이 없어져서 잘 못 봤다고 했다. 그게 전부였다.
김형사가 곧장 교무실로 들이닥치자 선생들은 상당히 긴장하는 눈치였다. 제일 먼저 교감이 달려와 그를 맞았다.
─아이고 수고하심다, 뭐 좀 수사에 진척이 있습니까.
─뭐 불량배들 소행 같은데 아직 확실히는 모르겠습니다. 다른 것도 수사할 게 많고 그래서요. 하여간 시계랑 돈이 몽땅 털린 걸로 봐서 단순 강도 같기도 하고……
김형사는 교무실 안을 슬쩍 둘러보았다. 황선생 자리라는 곳은 금방 눈에 띄었다. 다른 선생들 책상 위엔 무슨 기록부니 걷어놓은 노트니 프린트니 하는 것들로 수북했지만 황선생 책상엔 흰 국화 한다발만 을씨년스럽게 놓여 있었다. 너무 시들어서 이제 그만 내버려도 될 듯싶었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황선생 자리 바로 옆에 앉은 젊은 남자선생이 뭔가 열심히 쓰고 있었다. 그는 김형사를 흘깃 보더니 하던 일에 코를 박고 못 본 척했다. 김형사는 교감에게 슬슬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지난번엔 교장선생님만 잠깐 뵙고 갔습니다. 그래서 교감선생님께 몇가지 더 여쭤볼까 하는데요, 황선생님이 학교에선 어떠셨나요.
─예, 마 아주 실력있는 훌륭한 선생님이셨죠. 마, 요번 스승의 날엔 도내 ‘올해의 교사상’도 받으실 예정이었구요. 마 학생의 일을 항상 자기 일처럼 생각하시고 이 시대 참교육을 위해서 열과 성을 다하셨지요. 예? 아 예, 다른 얘기를요? ……마 하여간 황선생님이 우리 학교 오셔서 수학 평균이 많이 올랐습니다. 이 시대에 귀감이 될 만한 교육자셨지요.
김형사는 거기서 얼른 말을 자르고 황선생과 가까이 지낸 선생을 소개시켜 달라고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감은 김형사를 3학년 주임에게로 데려갔다. 그러면서 교감은 생각했다.
아니 왜 학교를 들락거리는 거야…… 내가 뭐 실수 안했나 모르겠네. 사실 내가 뭐 많이 먹길 했나, 황가가 조금씩 준 거 챙긴 거밖에 없지. 가만…… 괜히 올해의 교사상 얘길 했잖아. 내가 황가에게 주려고 교무실서 대판 싸웠던 걸 알게 되면 괜히……
김형사는 3학년 주임선생에게도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그는 교감과 달리 말수가 적은 인물이었다.
─글쎄요. 저랑 특별히 친하다기보다는 다른 분들과 좀 소원했죠. 들으셨겠지만 새로 오신 선생님들이 워낙 적어서요. 사립학교가 다 그렇죠. 황선생 수학 실력은 전에 가르치던 선생들보다 나았던 게 사실입니다. 학원강의 식이죠. 문제도 잘 뽑고요.
─제가 궁금한 건 황선생님의 인간관계 쪽인데요. 사람들하고 무슨 문제를 일으키거나 원한을 살 만한 그런 일이 없었나요?
3학년 주임인 박선생은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닦았다. 형사의 날카로운 눈초리가 맘에 들지 않았다. 말은 정중하게 하지만 꼭 자기에게 뭘 캐내려고 하는 게 역력해 보였다. 왜 하필 자기인가? 물론 황복팔은 자기와 죽이 잘 맞는 면도 있었다. 소풍 가기 전날 반장들 모아놓고, 야 늬들 한 반에 양주 2병씩 꼭 챙겨와, 국산말고 외제야 돼. 국산은 영 맛이 안 나…… 이런 소릴 황복팔은 박선생 대신 잘도 해주었다. 그런 사소한 일들로 껄끄럽진 않은 사이였다. 그러다 그 일이 터졌다. 2학년 이과 수학을 담당하는 조선생이 학생들에게 교재를 판 걸 누군가 투서를 넣어 신고한 것이다. 교무실 안에 냉기가 감돌았다. 내놓고 말은 안했지만 모두 황복팔을 의심했다. 그런 일을 할 사람은, 몇년째 한솥밥을 먹는 우리들 중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조선생이 공공연하게 그러고 다닌 건 사실 꽤 오래된 일이었다. 조선생이 노모의 병원비 때문에 허리가 휜다는 건 교무실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조선생은 인사성 바르고 특별히 나무랄 데 없는 조신한 사람이었다. 조선생도 먹고 살아야지 어쩌겠어, 하고 덮어주는 분위기가 몇년을 이어왔다. 선생들과 아이들까지 진정서를 넣어 조선생은 별탈없이 넘어갔지만 그 일은 박선생에게, 황복팔과 거리를 둬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또 얼마 후, 요섭이 일이 터졌다…… 그러니 황복팔에 대해서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해야 할지 박선생은 아주 난감했다.
박선생이 김형사의 질문에 적당적당히 답하는 도중에 수업종이 울렸다. 박선생은 전 그럼 이만, 수업에 들어가야 돼서요, 하면서 자리에서 잽싸게 일어났다. 김형사도 얼른 일어나 박선생 앞으로 다가갔다.
─하나만 더 여쭤보겠슴다, 황선생님이 왜 서울서 여기로 온 건지 아십니까?
─그거야…… 뻔하지 않겠습니까, 문제가 있었겠죠.
그는 정중히 인사하고는 교무실을 나갔다. 김형사는, 알맹이도 없는 얘길 근 삼십분 동안이나 들은 게 허탈했다. 교무실 안을 스윽 둘러보니 아까부터 눈이 마주치던 그 젊은 선생이 남아 있었다. 김형사는 그에게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는 갓 서른을 넘었을 듯한 선병질적인 인상이었다.
─뭐 좀 여쭤보겠습니다.
─전 황선생님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는데요.
─옆자린데 아주 모르시진 않겠죠.
─자리는 얼마 전에 바뀐 거라서요.
그는 무슨 악보 같은 것을 주섬주섬 챙겨들고 나가려 했다. 김형사는 따라붙었다. 결국 교무실 밖 스탠드에서 그들은 함께 담배를 피웠다. 물론 김형사가 권해서였다. 그 선생은 자신을 음악 담당인 정이라고만 밝혔다. 그는 처음에 네, 아니오라고만 대답하다가 황선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김형사의 단도직입적 질문에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남들은 선생이란 직업이 굉장히 쉽고 단순하다고 여깁니다만, 세상에 그런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만 잘하기도 힘든 게 선생이죠. 그런 면에서 황선생은 유능한 교사였습니다. 일단 수업을 잘했으니까요.
─제가 묻는 게 어떤 건지 아실 것 같은데요. 고인에게 실례가 된다고 생각 마시고 좀 솔직히 말씀해주시죠. 그래야 범인을 잡는 데 도움이 됩니다. 실지 그의 평판은 어땠나요?
그는 잠깐 또 입을 다물었다. 느릿하게 그가 대답했다.
─애들은 그를 싫어했습니다.
─왜죠?
─여러가지 이유죠. 그건 형사님이 알아보시면 될 겁니다.
─다른 선생님들은요?
─………
─교감선생님 말처럼 타의 모범이 될 만한 분이라고 하진 않으시겠죠?
─그건 솔직히…… 아니, 제가 황선생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그게 좀 그렇습니다. 그분은 워낙 무성한 소문을 몰고 다녔던 분이라……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아닌지, 딱부러지게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 황선생이 왜 전 학교에서 옮겨왔는지는 아십니까.
─자세한 건 모릅니다. 하지만 짐작은 갑니다.
─불미스런 일입니까?
─………
─알겠습니다. 그건 제가 알아보죠.
저 멀리서 서무과 등을 돌고 나온 서형사가 보이자, 김형사는 오늘은 일단 이 정도로 그쳐야겠다고 생각했다.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에 또……
정선생은 김형사가 뒤로 돌아서는 그 순간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 황선생 반 아이 하나가 자살했다는 건 알고 계십니까?
김형사는 반사적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아뇨, 그게 무슨 얘기죠?
─요섭이라고 아주 똑똑한 아이였죠. 내리 반장만 하고…… 올해는 못했지만. 잘됐으면 학생회장도 될 뻔한 아이였죠.
─황선생과 관련이 있습니까.
─없다고 할 순 없겠죠. 작년에도 황선생이 담임을 맡았고요. 아주 아까운 애죠. 서울대 특차 추천도 받을 뻔한 애였는데……
그리고 정선생은 더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김형사는 고맙다고 말하고 서형사와 함께 교문을 나섰다. 서형사는 서무과에서 시시콜콜한 얘길 좀 얻어들은 것 같았다. 서형사가 신이 나 떠드는 소릴 들으며 김형사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두 사람은 일단 서로 향했다.
그리고 그들이 서에 도착하고 나서 곧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저녁을 시켜 먹느라 어수선할 무렵, 호리호리하고 창백한 얼굴의 남자애 하나가 불쑥 들어왔다. 요즘 아이들답지 않게 아무 멋도 안 낸 짧은 스포츠 머리에 교복 단추를 끝까지 채운 단정한 모습이었다. 그 아이는 대뜸 자기가 황선생을 죽였다며 자수하러 왔다고 했다. 순간 경찰서 안은 정적에 휩싸였다.
그 아이는 황선생님 반 김동수라고 자신을 밝혔다. 계속 식은땀을 흘리며 손을 떨었고 횡설수설하는 게 역력했다. 말을 시키면 시킬수록 아이는 진땀을 흘렸고 결정적으로 아이는 살인의 정황과 방법에 대해서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 그냥 혼자 우물거릴 뿐이었다. 그 아이의 자백 아닌 자백을 듣고 난 후, 서형사가 김형사에게 조서를 꾸밀까요 하고 물었다. 김형사는 한심하단 듯이 서형사를 바라보았다. 저놈은 아니야. 서장은 별 애새끼들까지 다 귀찮게 하는구만, 하는 표정으로 알아서 처리하라며 자리로 돌아갔다. 알겠으니 일단 집에 돌아가라고 아이를 달랬지만 그 아이는 자기가 한 짓이 맞다고 버텼다. 결국 전화번호를 물어 부모님을 오시라고 했고 아이의 부모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세상에 이게 웬일이야, 얘는요 파리새끼 한마리도 못 죽이는 애예요, 동수야 너 도대체 왜 그러냐, 하며 아이의 어머니가 울고불고 했다. 아버지란 사람이 정신을 차리고 비교적 조리있게 말을 했다.
─저놈은요, 정신과 치료까지 받는 놈이랍니다. 원래 신경쇠약증세가 좀 있었어요. 3학년이 되서 부쩍 저러더니, 친한 친구가 죽고 난 다음엔 말도 못 붙일 정도로 심해져서…… 다 죽여버릴 거야, 내가 다 처치해버릴 거야, 맨날 고런 소릴 하고 그랬어요. 하지만 쟨 뭘 어떻게 할 애가 절대 아니에요, 믿어주세요 형사님.
─친구가 어떻게 죽었는데요?
─자살했대죠.
순간 김형사 귀가 번쩍 뜨였다.
─자살이요? 혹시 그애 이름이……
─요섭이라구요. 맨날 반장만 하고 그러던 앤데 동수가 아주 많이 따랐거든요. 워낙 기집애 같은 애라 친구가 거의 없었는데 그 요섭이란 애가 잘 데리고 다녔어요. 그렇다고 지가 어떻게 친구 따라 죽겠어요. 형사님, 쟨 그날 애들하고 농구하고 왔다고 했어요. 애들한테 물어보세요. 맞을 거예요.
동수의 어머니라는 사람은 그 와중에도 확인해보라며 함께 농구를 했다는 아이들 이름을 불러댔다. 한참을 그렇게 옥신각신하다가 아이는 부모에게 끌려서 겨우 집으로 돌아갔다.
김형사와 서형사는 다시 학교로 가 동수와 농구를 했다는 아이들을 불러모았다. 동수 엄마가 적어준 이름이 있어서 수월한 일이었다.
아이들은 모두 여섯명이었다. 모두 함께 학교운동장에 있었다고 분명히 말했다. 황선생이 죽은 그 시간에 이 아이들은 학교에 있었던 것이다. 농구대가 있는 쪽은 황선생이 죽은 담벼락 근처와 정반대편이었다. 단서가 될 만한 걸 물었지만 역시 나오는 건 없었다. 아이들은 묻는 말에 시원시원하게 대답했고 의심이 갈 만한 점은 없었다. 단지, 선생이 죽었다는데도 너무 아무렇지 않아 보이긴 했다. 3학년들이 공부 안하고 그렇게 놀아도 되겠느냐는 둥 딴소리를 한참 하다가 김형사는 불쑥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너희 선생님 어땠냐고. 그러자 그때까지 좔좔 이어오던 대화가 뚝 끊겼다.
─너희 선생님, 인기는 좀 없었지?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한 녀석이 안경을 한번 추켜올리더니 말했다. 무테안경이었다.
─아무도 선생이라고 안 불렀어요.
─알아, 알아, 우리 때도 그랬어. 이름이나 별명 부른단 얘기지?
─그냥…… 씹탱이 똥독이라고 불렀죠.
─똥독?
아이들은 슬금슬금 눈치를 보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황복팔, 아니 똥독 그는 아이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자 경멸의 대상이었다. 심지어 그의 취향까지도 그러한 면에 부합되었다.
─그게 어떤 건데?
말을 제일 잘하던 그 무테안경이 대답했다.
─경찰 아저씨가 말한 동수 있죠, 걔가 특히 많이 당했어요. 지휘봉으로 툭하면 거길요, 꼭 거길 덜렁덜렁 건드리구요, 어떨 땐 대놓고 손으로 건들기까지 했어요. 그래서 좀 솟으면…… 어쭈 이놈 봐라, 하면서 느물느물 웃는데 재수없으면 한시간 내내 그랬어요. 동수가 1번 타자였죠. 각 반마다 다 있어요. 찍어논 애들이. 그것도 인물이 좀 돼야 돼요. 동수는 그놈 언젠가 죽여버릴 거라고 이를 갈곤 했는데 뭐 말이 그렇다는 얘기죠. 그놈 원래 정신이 오락가락해요. 질질 잘 짜구요, 무슨 병원도 다니구 그랬어요.
김형사는 이 기회에 요섭이란 아이 얘기를 물어봐야겠다 싶어 운을 떼었다.
─그럼 말이야, 요섭이란 아이가 자살한 것도 황선생이랑 혹시 무슨 상관 있냐?
순간, 아이의 눈빛이 안경 너머로 잠깐 변하는 듯싶었다. 그리고 입을 다물었다. 다른 아이들도 이제 가봐야겠다며 딴청을 부리기 시작했다. 뭔가 좀 말을 해보라고 채근하자 그 무테안경은 이렇게 말했다.
─요섭이는 자살한 게 아니에요. 그놈이 죽인 거죠.
그리고 그 녀석은 깍듯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아이들을 끌고 사라졌다. 김형사는 멀어져가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김형사는 서형사와 함께 3학년들이 공부하고 있는 도서관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황선생 반 아이들을 불러모았다. 감독하던 선생은 언짢은 눈치였지만 그럭저럭 협조해주었다.
김형사는 애들에게 한명씩 얘기를 시켜보았다.
그가 대면한 첫번째 아이는 이런 얘기를 했다.
─똥독은요, 쉽게 말해 싸이코예요. 일일이 다 말하기도 힘들어요…… 요섭이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걔 엄마가 사창가 포주라나 그런 일을 했대요. 우리 앞에서 에미가 그 모양이니 새끼가 오죽해, 그런 소릴 하는 걸 들은 적이 있어요. 똑같은 말을 해도 똥독이 하면 굉장히 더러워요. 존나 재수없어요.
두번째 아이는 다른 얘길 했다.
─글쎄, 저는 선생님들한테 뭘 기대한다는 거 자체가 웃기다고 생각해요. 똥독이 좀 심하긴 했지만 잘 패진 않았거든요. 다른 선생들은 빠따 갖고 패잖아요. 똥독은 괴롭히는 애가 정해져 있어서 거기에만 걸리지 않으면 돼요. 근데…… 그 요섭이란 애는 진짜 안됐어요. 걔 원래 반장이 돼야 하는데 똥독이 지 마음대로 바꿨어요. 반장이 안되니 학생회장도 못 나가구요.걔야 우리 학교에서 좀 잘 나가는 애였죠. 걔가 춤이 좀 돼요. 공부도 잘하구요. 석호 패거리 같은 애들하고도 친하고요. 네? 걔네가 누구냐구요? 아시면서…… 있잖아요. 힘 좀 쓰는 애들이요.
세번째 놈의 얘기는 이러했다.
─저는 아니고 제 친구가 똥독한테 과외를 받았거든요. 근데 쪽집게 맞대요. 딴 선생이 출제해두요, 귀신같이 찍어준 문제가 나온대요. 좀 바뀌긴 해두요. 걔네 엄마가 그러는데 과외만 선수가 아니라 무슨 체육특기생 될 수 있는 브로커도 쫙 꿰고 있대요. 에잇, 미술이나 음악은 그래도 해본 가락이 좀 있어야 하죠. 체육은요, 두 다리만 멀쩡하면 된대요. 서울에서 쫓겨난 것도 그것 때문이래요. 돈 받고 입학시켜준다고 했는데 어떤 애가 떨어졌대요. 근데 걔네 집이 장난이 아니었던 거예요. 그래서 돈도 돌려받았는데두 걔 아버지가 똥독을 확 찔러서 학교에서 떨려났대요. 네? 저도 과외했냐구요? 아니라니깐요. 우리집 철물점 해요. 학원 갈 돈도 없어요. 요섭이요? 걔요? 참내…… 도대체 왜 이런 반에 걸려서 이 야단인지 모르겠네. 모르겠어요 전 그런 새끼랑 안 친해서요. 뭐 애들 얘기론, 걔가 교육청에다가 똥독을 꼰질렀대요. 그래서 똥독이 들들들 볶았대나? 그렇다고 죽긴 왜 죽어요? 그놈두 배부른 자식이라니깐요!
네번째 아이는 또 이렇게 얘기했다.
─제가요, 과외선생만 수십명 갈아치워봤는데요, 그렇게 일편단심 돈독이 올라 있는 선생은 정말 첨 봤어요. 그런데 꼴에요, 나중에 자기도 돈 모아서 좋은 일 할 거라고, 뭐 장학사업을 할 거라나? 그런 소리를 했대요. 양심은 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할 순 있겠죠. 생각은 뭘 못해요? 저두 서울대 수석으로 들어갈 생각은 많이 해요. 그리구 이 나라 교육정책은 애초에 글러먹었으니 니들 독하게 맘먹고 서울애들 따라잡아야 들러리 되지 않는다구, 혼자 막 열 올리기도 하구요. 하여간 제가 보기엔 똥독은요, 애들이나 꼰대들이나 다 싫어하는 것 같았어요. 똥독도 그걸 알았냐구요? 모르시는군요, 똥독은 용가리 통뼈예요. 자기 앞에서만 걸고 넘어지지 않으면 꿋꿋하게 자기 할일만 해요. 예? 누구요? 요섭이요? 잘 알죠. 걔…… 잘 죽었어요. 나 같아도 그러곤 더 못 살아요. 교무실에 불러서 으르릉대는 걸 한번 봤는데요, 너 이새끼 날 호구로 아냐, 어디 뭐, 서울대 추천? 어림도 없다, 똥통대 원서도 안 써준다, 무슨 밑구녕으로 난 줄도 모르는 새끼가 뭘 잘났다고…… 이러는데요, 소름이 끼치더라구요. 요섭인 저 1학년 때도 반장이었는데요, 선생님도 무지 이뻐했어요. 네? 누군지 그것도 아셔야 돼요? 윤희정 선생님이라고 아줌마예요. 화낼 땐 좀 그래도 참 좋은 선생님이에요. 다른 선생들도 인물 좋다고 요섭이 다 예뻐했어요. 근데 작년 요섭이가 똥독 반 되고 나서부터 똥독이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었다고 그러더라구요. 똥독은 천국 가긴 글렀어요…… 교육자요? 그게 뭐예요? 아저씨…… 지금 설교하시는 거예요? 저 그냥 들어갈래요. 됐어요! 더 할 얘기 없다니깐요!
몇 아이들의 얘기를 더 듣다가 김형사는 피곤해져서 그만 하기로 했다. 옆에 있던 서형사가 오히려 달뜬 표정이었다.
─선배님, 뭔가 좀 나올 것 같지 않습니까?
─애들 얘기 듣고 뭘…… 거의 다 쓸데없는 소리지. 반은 뻥이구.
─그래도요…… 좀, 다른 것 같아요. 강도사건이 아니라 무슨 복잡한 게 배후에 있지 않을까요.
신출내기의 감이 오히려 정확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이건 살인의 문제다. 원한이 있다고 사람을 쉽게 죽이진 못한다. 보통사람들은 그렇다. 김형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중 잠시 쉬는 시간인 것 같았다.
만수는 한참을 혼자 끙끙대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이찬승독해를 붙들고 있는 희완에게로 다가갔다. 쉬는 시간이면 아이들 대부분이 담배 피우러 나가 자리는 거의 비어 있었다. 희완은, 둔해빠진 만수의 얼굴 표정이 지금 좀 심각하다고 느꼈다. 희완과 만수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다. 물론 지금도 변함없는 친구 사이라고 믿는다.
만수가 입을 열었다.
─희완아, 이건 너만 알고 있어야 돼.
─뭔데?
만수가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후, 정말 돌아버리겠네. 씨발…… 그 씨발년이 괜히 만나자고 해서 이런 일만 생기고……
말은 저렇게 해도 희완은 만수가 여자친구에게 푹 빠져 있다는 걸 잘 안다. 그 여자친구 때문에 요새 공부는 거의 뒷전이다. 만수는 몸도 좋고 주먹도 좀 쓰고 해서 남들이 쉽게 못 건드리는 애지만 의외로 엄청 겁이 많다. 그리고 지능이 점점 퇴화하는지, 점점 단순해져가고 있다고 희완은 생각했다. 이 문제도 그렇다. 만수가 지난 모의고사 때 컨닝을 하다가 하필 똥독에게 걸린 게 이 문제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물론 자기에게 과외도 안 받는 만수를 똥독이 곱게 놔둘 리가 없었다. 으름장을 놓으며 부모님 모시고 오라고 하는 속셈은 누가 봐도 뻔했다. 만수가 차일피일 미루자 똥독은 계속 불러 협박을 했을 것이고 비록 공부는 못해도 부모님껜 착한 아들인 만수는 무척 고민을 했을 것이다. 월요일날 꼭 부모님 모시고 오라고 똥독이 마지막 경고를 한 게 바로 지난 토요일, 그리고 일요일 똥독이 죽어버린 것이다. 문제는, 그날 만수가 여자친구와 함께 학교 뒤편의 으슥한 곳으로 가던 중 똥독을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똥독은 여러 사람에게 둘러 싸여 있었고 그들 대부분이 등을 돌리고 있었기 때문에 만수가 그들의 얼굴을 제대로 본 것은 아니었다. 담장 밑이라 나무 그늘까지 드리워져 어두웠고 게다가 만수는 그 광경을 보자마자 얼른 발걸음을 돌렸다고 했다. 약간 심상치 않은 공기가 흐르던 것과 똥독이 그때까지 분명 살아 있었다는 것, 단지 그 정도를 기억한다고 했다. 그래도 만수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내가 말야, 혹시, 나중에 뭔가를 더 기억해낼지도 모르니까, 지금 저 형사들한테 내가 뭘 봤다고 말해야 하지 않나? 그냥 암말 않고 있어도 되는 건가? 그런 얘길 만수는 희완에게 털어놓았다.
하지만 희완은 알고 있었다. 만수가 정말 겁내는 건, 만수가 본 그 누군가가 거꾸로 자길 보았을지 모른다는 상상이었다. 그건 어쩌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만수가 본 그 사람들이 누군지, 만수가 누굴 봤다고 믿는 건지 그건 알고 싶지도 않았다. 희완은 짜증이 나는 걸 눌러 참았다. 가뜩이나 똥독 때문에 반 분위기가 술렁거려 집중이 안되는 와중에 만수까지 이런 문젤 끌어들이다니. 만수는 내 곁에 아무 탈 없이 있어줘야 든든하다. 공부만 하는 재수없는 범생이라고 내게 씨부렁거리는 놈들도 만수 때문에 날 쉽게 못 건드린다. 만수 문제를 해결해줘야 내 마음이 편하다.
희완은 침착하게 만수에게 말했다. 형사들한테 암말도 하지 마라. 넌 아무것도 본 게 없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그리고 어쩌면 그놈들 때문에 똥독이 죽은 게 아닐지도 모른다. 설사 그렇다 해도 네가 똥독한테 미안할 거 하나도 없다. 넌 너무 선량한 게 탈이다. 그놈은 그래도 싸다. 그 기집애 입단속이나 잘해라. 날 믿어라.
만수는 두 눈을 껌벅거리며 말을 더듬었다. 근데…… 난 말야 자꾸 그런 생각이 드는데 혹시 그놈들이…… 희완은 만수의 말을 막았다. 나한테도 더이상 말하지 마, 그냥 무조건 잊어, 알았어? 만수는 그런 희완의 표정을 전에도 본 적이 있다. 상대방을 질리게 하는 그 위압적인 태도는 만수를 숨막히게 했다. 하지만 희완의 말을 들어서 일이 잘 안된 적은 없었다. 전에 사귀던 여자애가 임신했을 때도 희완이 빌려준 돈으로 겨우 해결할 수 있었다. 만수는 희완을 믿었지만 혹시라도 부모님 귀에 들어갈까봐 늘 조마조마했다. 희완은 만수의 그런 불안을 잘 알고 있었고 만수 역시 그런 희완을 잘 알고 있었다. 만수는 체념했다. 그래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내가 쓸데없는 신경을 쓰는 걸 거야…… 만수는 순순히 희완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알았어, 그렇게 할게 하고는 자리에 가 앉았다.
희완은 그날 집에 가자마자 집안 분위기를 살폈다. 거실에 있는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어떤 표정으로 얘길 꺼낼까, 궁리를 시작했다. 희완은 사실 똥독에 대해 이상할 정도로 악감이 없었다. 원래 그랬다. 요섭이 죽었을 때도. 희한하게도 등수를 다투던 아이가 없어져 등수가 올라가게 생겼는데도 아무렇지 않았다. 어차피 그 정도론 대학 갈 문이 넓어지는 것도 아니란 걸 너무 잘 안다. 다만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일이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만수 문제가 바로 그런 케이스다. 부모님도 희완의 공부를 위해서라면 무슨 조치든 취해줄 것이었다. 희완은 아버지에게 다가가, 심각한 얼굴로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자기에게 일어난 일처럼, 차근차근 얘기하기 시작했다. 최대한 감정을 넣어서.
서형사와 김형사는 다음날, 다른 사건 수사도 있어 하루종일 여기저기 쏘다녔지만 죄 허탕을 쳤다. 특히 서울까지 가서 황복팔이 전에 있던 학교를 찾았지만 차비만 날린 꼴이었다. 기가 막힐 정도로, 아무것도 나온 게 없었다. 그는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한 것 같지가 않았다. 학교와 집과 과외하는 곳만을 뱅뱅 돌며 살았던 모양이다. 몇몇 브로커라든가 동료 선생들도 일 외엔 그와 접촉하지 않았고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그와 알고 지낸 사실 자체를 부인하기 급급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다른 곳에서 뭐가 나왔느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이미 서에선 지역 깡패들 탐문이 끝나가고 있었는데 예상대로 별 소득이 없었다.
둘은 허탈하게 경찰서로 돌아오다가 어떻게 하다보니 학교 앞까지 오게 되었다. 둘은 점심도 걸렀다는 걸 깨닫고 뭘 좀 먹을 요량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김형사는 문득 만두가게가 생각나 거길 가자고 했다. 주인도 한번 더 만나볼 겸해서였다.
좁은 가게 안은 아이들로 바글바글했다. 장사는 웬만큼 되나보다 하고 있는데 전에 농구를 했다는 아이들 몇이 찐만두를 쌓아놓고 와구와구 먹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무테안경은 또 김형사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아이들은 얼마 안 남은 만두를 싸달라고 하더니 주섬주섬 일어날 태세였다. 무테안경은 김형사에게 가볍게 꾸벅 인사하는 시늉을 했다. 가만히 보니 녀석은 또래보다 좀 어른스러워 보였다. 김형사는 땀을 뻘뻘 흘리며 만두를 쪄내는 주인을 불렀다.
─조금 전 나간 애들 누군지 아쇼? 그 안경 쓴 애랑 같이 있던 애들 말이오.
─조금 전이라면…… 아, 요기 있던 애들이요? 알다마다요. 석호랑 같이 왔던 애들 말씀하시는구만…… 우리 단골이죠.
─잠깐, 석호?
김형사가 수첩을 꺼내려는데 주인이 알아서 설명을 해주었다.
─예, 쟤가 좀 날리는 애라고 하데요. 무슨 조직 밑에 있대나, 학교 안에 무슨 써클이 있대나 제법 꼬붕도 있고 그렇다는데, 하고 다니는 건 아주 말끔한 애예요. 생긴 것도 공부 잘하게 생겼고…… 저도 처음엔 긴가민가했지요. 주먹 쓰는 애가 맞나 싶어서요. 근데 아주 착실해요. 배달 갈 때 가게도 잘 봐주고 인사성 좋고. 같이 다니는 애들도 착해요. 지금은 없지만 요섭이라고 아주 똘똘한 애가 있었는데 불알친구라고 잘 붙어다니고 나머지 애들도 다 착실한 애들이죠 아마.
─지금 요섭이라고 했나요? 자살했다는 그 아이?
─예 맞아요. 그런데 왜 그러시죠?
김형사는 머릿속이 갑자기 하얘지는 느낌이 들었다. 같이 있던 서형사 역시 비슷했다. 입에 대려던 만두를 도로 내려놓았다.
김형사는 주인에게 집요하게 캐묻기 시작했다. 주인 심씨는 보기보다 수다스러워서 하지 않아도 될 말까지 신이 나 얘기해주었다. 그러면서도 심씨는 왜 경찰들이 애들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걸까 그게 좀 이상하긴 했다.
─그래서요, 애들이 한동안 다 뚱해 있더라구요, 요섭이 죽고 나서. 그 혁진이란 애는 학교도 며칠씩 빠졌다고 하데요. 걔도 요섭이랑 제일 친했죠. 아주 공부 잘하고 똑똑한 앤데 하여튼 한동안 잘 보이지도 않더라구요. 그런데 요전번에 만두를 시켜서 갔더니, 아저씨 저 대학 안 가고 장사나 할까 하는데 만두 기술 배우려면 얼마나 걸려요, 돈은 얼마나 있어야 가게 차려요, 고런 걸 뜬금없이 묻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펄쩍 뛰었죠. 그 좋은 머리 왜 썩히냐고. 나야 중학교 졸업하고 서울 가서 굴러먹다 이렇게 된 거지 넌 다르지 않느냐, 그렇게 어른 된 입장에서 좀 타일러줬죠. 그랬더니 자기도 뭐 깊게 생각해본 건 아니라면서 사는 게 어떻구 한참 얘길 하데요. 애들이 공부하기 싫으니까 별 생각 다 하는구나 싶었죠.
심씨의 얘기를 듣고 난 김형사는 그 아이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냐고 묻고는 서형사를 재촉해 급히 가게를 나왔다. 심씨가 혁진일 본 건 사건 당일 바로 그날이라고 했다. 심씨가 유일하게 가게를 비웠던 시간이 바로 그때인 것이다. 심씨는 한 20분쯤 나갔다 왔다고 했지만 실제론 훨씬 더 걸렸을 거라고 생각했다. 말을 바꾸면 괜한 의심을 받을까봐 심씨는 입을 다물었다.
김형사는 잠시 생각을 해보더니 서형사에게 먼저 가라고 말하고 혼자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교무실에 들어가 아이들 생활기록부를 볼 수 있을까 어정거리고 있는데 마침 키가 자그마한 중년 여선생이 들어왔다. 남자고등학교에 여선생은 그리 많지 않다. 김형사는 다가가 말을 걸었다.
─실례하겠습니다. 혹시 윤희정 선생님 아니신가요.
─맞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오셨지요.
오십이 넘은 듯한데도 눈빛은 젊은이처럼 또릿한 중년여인이었다. 누군지 다 안다는 듯 경계하는 낌새였지만 김형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물었다.
─잠깐 시간 좀 내주셨으면 좋겠는데요.
─보아하니 경찰이신 것 같은데…… 아이들까지 불러 취조를 하셨다면서…… 저한테까지 무슨 볼일이 있으신 거죠? 전 별로 할말이 없는데요.
점잖지만 단호한 태도였다. 하지만 김형사도 끈질겼다.
결국 윤선생은 교사휴게실로 김형사를 데려갔고 커피 한잔을 뽑아 건네주었다. 김형사는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하나 궁리를 하며 커피 한모금을 넘겼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제가 생각하는 게 맞는지 저도 그다지 자신이 없습니다. 변사하신 분껜 죄송한 말이지만 황선생님은 좀…… 유별난 교사셨더군요.
윤선생은 말없이 커피잔만 바라보았다. 김형사는 가만히 기다렸다. 윤선생은 한숨을 한번 쉬더니 입을 열기 시작했다.
─황선생님이 지탄받을 만한 행동을 안했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대도시였다면 별로 눈에 띄지 않았을지도 모르지요. 여긴 너무 작은 곳이에요. 게다가 이 학교 역시 배타적이구요. 동료로서…… 같은 교사로서…… 민망한 사람들이 이 학교에도 아주 없는 건 아닙니다. 황선생님보다 더 노골적이거나 폭력적인 선생들도 분명 있습니다. 아니, 어느 선생이라도 이렇게 뒷조사를 하고 다니신다면 거기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겁니다. 애들이 교사를 불신하게 된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요. 선생은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애들은 선생의 권위를 무시하고…… 그러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그 악순환이 계속되는 이곳은 하나의 전쟁텁니다. 황선생님도 어떻게 보면 이 현실의 피해자구요. 미련한 사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는데…… 자기모멸감을…… 그걸 그렇게 자제를 못했지요. 교직은 자긍심으로 먹고사는 직업입니다. 애들이 황선생님을 대하는 것도, 그것도 폭력적이었습니다. 그것도 일종의 이지메가 아닐까 싶었어요. 황선생님은…… 은퇴하면 자기가 자랐다는 낙도에다 학교를 짓고 싶다고 했었지요. 지금은 이러고 살지만 자기도 좋은 선생들 모셔다가 가난한 섬 애들 공부시켜서 자기 꼴은 나지 않게 하고 싶다구요. 그러면서 명예퇴직 얘기도 했었습니다. 물론 저도 그걸 다 믿지는 않았지만…… 불쌍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또 황선생님은…… 남들 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것도 가끔 참지 않고 직설적으로 터뜨리곤 했지요. 선생이 무슨 동네북이냐, 교육정책 백년을 바꿔봐라, 교육세 걷어서 죄 딴 데 쓰고, 이런 얘길 눈치 안 보고 곧잘 했지요. 그럴 땐 다른 선생들도 은근히 말 잘한다고 고갤 끄덕였을 겁니다.
─조선생님 일에 대해서 제가 좀 들은 얘기가 있는데요. 그분, 꽤 고생하셨다구요. 주변분들도 그 일 때문에 황선생님에 대해 의혹을 가졌을 거라던데요……
─그건 황선생님이 한 일이 분명 아닙니다. 이 점은 조선생도 확실히 압니다. 조선생이 조금만 더 사려깊었다면, 그게 황선생님의 신고가 아니란 걸 밝혔어야 되는데…… 그냥 입다물고 넘어가더군요. 그래야 맘이 더 편했던 건지…… 부끄럽습니다. 동료가 잘못을 하면 지적을 해줘야 되는데 그냥 싸고 돌기만 하고. 선생이라는 사람들이 그런 보수적인 이기심이 있지요. 교육부 장관 갈아치우자, 그런 서명엔 우루루 몰려가 다 도장 찍으면서 정작 자기 교장이나 윗사람한텐 찍소리도 못하죠. 이런 양면성이 교직사회에선 흔한 일입니다. 황선생님도 그런 면이 극명한 분이었죠. 아시겠지만 우리 학교는 사립인데다 워낙 이사장, 교장 입김이 센 곳이죠. 그런데 온 지 얼마 안된 황선생님이, 애들 급식비 걷어서 뭐에 쓰냐, 교사휴게실이 이게 뭐냐, 이런 입바른 소리를 곧잘 했지요. 서울선 이러지 않았다는 자부심도 물론 있었겠지만 쉽게 할 소린 아니었죠. 물론 황선생님이 늘 그랬던 건 아니고…… 탐욕스럽기는 교장, 교감에 버금갔죠. 어차피 황선생을 데려온 것도 그 사람들 뜻이었으니 사이가 나빴을 리가 없지요. 아무튼…… 간단하게 정의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어요, 황선생님은.
─황선생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은 처음입니다.
─………
─계속 말씀하시죠.
─요섭이에 대해 들으셨겠죠. 그 아이 때문에 제가 많이 따졌습니다. 황선생님이랑 그 아이는 정말로…… 안 맞았죠. 분명 사람 사이엔 궁합이 안 맞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부모 자식 간에도 원수지간 같은 사이가 있는데 하물며 피 한방울 안 섞인 사인데 왜 그렇지 않겠습니까. 요섭이는 다른 선생님들과 다른 대우를 하는 황선생님을 견디기 힘들었을 겁니다. 그 아이는 어릴 때부터 유난히 주목을 받고 커왔거든요. 그리고 전…… 부끄럽습니다만 요섭이의 가정환경에 대해 그렇게까지 자세히 몰랐고 또 그애에게 그렇게 당돌한 구석이 있는지도…… 아니, 그렇게 여리고 예민한 구석이 있는지도 확실히 잘 몰랐습니다. 그리고…… 애 성적이 많이 떨어진 건 사실이었구요. 수학만 그런 게 아니었다고 하더군요, 서울대 특차 추천을 꼭 받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죠. 객관적으로…… 그 추천은 좀 받기 힘들었습니다. 교장선생님도 그 아이를 잘 아시기 때문에 보내고 싶어했죠. 서울대에 한명이라도 더 보내고 싶지 않은 학교가 어디 있겠습니까. 담임 혼자 막는다고 될 일이 아니었어요. 그렇다고……교육청에다 투서를 넣고 메일을 띄우고 한 것이 잘했다곤…… 아니 잘못했다고 나무랄 수도 없는 일이었지요. 황선생님이 먼저 티를 낸 것도 아닌데 윗분들이 알아서 무슨 상을 주겠다고 하면서…… 그건 사실 대단한 상도 아닌데…… 요섭인 아마 단단히 벼르고 있었나 봅니다. 하여간 타이밍이 안 좋았지요. 그걸 안 황선생님도 이성을 잃더군요. 그때 그 모습은 정말로…… 그리고 요섭이는…… 무슨 일을 낼까 걱정이 되긴 했는데, 결국 그렇게…… 가고 말았어요. 기가 막힌 일이지요……
김형사는 무엇을 더 물어봐야 할지 잠시 막막했다. 윤선생도 더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가느다란 침묵이 흘렀고 마침내 김형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윤선생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는 주머니에서 쪽지를 하나 꺼내 보고 큰길로 향했다. 혁진을 만나야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김형사는 혁진이가 그날 만두를 시켜 먹었다는 학교 앞 사설독서실을 먼저 찾아갔다. 아이는 거기 없었다. 시험 때나 가끔씩 올 뿐이라고 했다. 그는 혁진의 집으로 찾아갔다.
아이는 다행히 집에 있었다. 김형사를 보고도 아이는 별로 놀라지 않은 듯했다. 대문을 열고 들어오라고 하는 아이는 김형사의 생각과 달리 순하고 굼뜬 인상이었다.
─무슨 일이세요.
─너한테 뭣 좀 물어보러 왔다.
혁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독서실에 있는 놈들이 전화를 해줘서 올 거라곤 생각했지만 이렇게 금방 올 줄은 몰랐다. 형사는 듣던 것보단 늙었고 덜 미련해 보였다. 사건 다 해결된 다음에야 들이닥치는 영화 속의 멍청한 짭새들관 달라 보였다. 물론 그래서 달라질 건 없다고 혁진은 생각했다.
─아씨, 아시겠지만 전 고3이고 지금 공부하던 중이니깐 간단히 물어주세요. 전 똥독 반도 아닌데 왜 오신 거예요?
혁진은 마룻바닥에 털썩 앉자마자 그렇게 말했다. 김형사는 당돌한 놈이라고 생각하면서 주머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물고 혁진을 바라보았다.
─네가 요섭이란 애랑 제일 친했다면서. 똥독 아니, 황선생이랑 요섭이하고의 일도 다 알 거 아니냐. 그 얘기 좀 듣자.
─근데 아씨, 남의 집에 와서 왜 묻지도 않고 담밸 펴요? 아이, 됐어요. 그리고 아씨, 똥독 사건 수사하는 거 아니에요? 요섭이 죽은 거 수사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리고 그걸 왜 나한테 물어요? 아참, 아씨 정말 형사 맞아요? 왜 경찰 딱지 같은 거 안 보여줘요? 그거 까봐요.
김형사는 혁진의 코앞에다 그걸 들이밀어 보여주었다. 그리고 혁진에게 너도 필래? 하고 담배 한 개비를 내밀었으나 혁진은 싫다고 했다. 군바리예요? 88을 피게, 하면서 방으로 들어가 자기 담배를 꺼내와 피워 물었다. 둘은 나란히 마룻바닥에 걸터앉아 담배 한 개비씩을 다 태울 때까지 아무 말도 안했다. 혁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빨리 말씀하고 가세요. 저 공부해야 돼요.
─황선생에 대해 얘기 좀 해봐라.
─아실 만큼 아실 텐데 뭘 더 알려고 하세요. 다 그 얘기가 그 얘길 텐데.
─조금 전에 윤선생을 만나고 왔는데 그분 말씀은 좀 다르던데.
흥, 하고 혁진은 콧방귀를 뀌더니 에잇, 이런 걸 펴야 되다니 하면서 김형사가 놓아둔 88갑 속에서 하나를 꺼내 피워 물었다.
─그건 똥독이 약아빠져서 연막을 피운 걸 거예요. 윤선생님한테 들러붙으면 좀 나을까 하구요. 윤선생님은 그런 데 속으실 분이니까요.
─요섭이하고 황선생 간에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거냐?
흥, 하고 혁진은 다시 콧방귀를 뀌었다. 요섭이 얘기를 이렇게 처음 보는 사람에게 한다는 게 막막했다. 이 사람은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윤선생 말로는…… 둘이 서로 아주 안 맞는 상대였다고 하던데……
─뭐라고요? 상대요? 학교에서 선생이랑 학생이 무슨 상대가 돼요? 아씨, 우리나라에서 학교 안 다녔어요? 학생이 선생들 밥이지 무슨 상대예요? 그래요, 요섭이가 좀 잘나긴 했죠, 그게 죄지요. 똥독이 이 시골 구석으로 쫓겨와서 방심했겠죠. 다 시골무지랭인 줄 알았을 테니깐요. 그런데 요섭이가 자꾸 조목조목 따지고 드니까, 게다가 애나 선생들이나 다 요섭이 요섭이 하니까 뚜껑이 열렸겠죠. 똥독이 어떻게 했는 줄 아세요? 전에 있던 학교에선 맨날 그렇게 해먹었으니까 여기서도 먹힐 줄 알았을 거예요. 똥독이 온 다음부터, 수학시험을 보면 요섭이 같은 애가 50점을 받았어요. 다른 애들은 더 심하죠. 서울선 다 이렇게 한다고 딴 선생들까지 꼬셔서 그딴 식으로 하는데, 그래요, 그건 그렇다 쳐요. 왜 지가 과외하는 애들은 다 90점, 100점이냐구요? 평균이 오르긴요? 누가 그딴 소릴 해요? 느이 촌놈들은 어쩔 수 없다면서 무슨 대학 갈 생각들을 하냐구, 돈 없구 과외할 주제 안되면 꿈깨라구, 똥독은 그러고 다녔어요. 저도 빌빌 기었지만 요섭이도 아무리 해도 수학 60점을 못 넘었어요. 과외 받은 놈들은 당연히 다 올라갔죠. 똥독이 처음엔 요섭일 살살 꼬셨어요. 너도 과외 받으라고. 근데 요섭이가 자긴 안하겠다고 하고 뭐라고 좀 했거든요. 대든 게 아니구요, 그놈은 말 심하게 못하는 놈이에요. 그랬더니 사사건건 시비를 걸기 시작한 거죠. 반장이 그 모양이니 스승의 날 선물이 이 꼴이라는 둥, 내가 가르치는 애들 다 1등급 되고 넌 이제 가망 없다는 둥, 딴 선생들한테는 쟤가 아주 보기하곤 다르게 건방진 놈이라고 틈만 나면 헐뜯고…… 요섭인요, 3학년 올라가서 똥독만 안 만나면 나 자신있다, 그랬었는데, 우라질…… 하필 또 똥독 반이 된 거예요. 그래요…… 요섭이가 교육청에다 뭘 넣긴 했어요. 근데 그놈들도 다 똑같은 놈들이에요. 시정할 생각은 안하고 당사자한테 누가 했다고 다 가르쳐주면 어떡해요? 똥독이 요섭이만 남겨가지고, 치사하게 남들은 모르게요, 하키스틱으로 그냥 막 팼어요. 저는 다 봤어요. 요섭이 그때…… 그거에 찔린 건지 넘어지다 어디 모서리에 부딪힌 건지 한쪽 눈이 이상하게 됐어요. 뭐가 어떻게 잘못된 건지 멍멍하고 아프다구 했어요. 요섭이가 엄마한테두 아무한테두 말하지 말래서 말도 못하구…… 아씨, 이게 바로 20세기 대한민국 학교에서 선생이랑 학생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에요. 아시겠어요? 한쪽 눈이 날아갔다구요…… 뭐, 완전히 실명한 건 아니지만요, 자꾸 눈이 침침하고 보였다 안 보였다 그랬는데 심각한 거 아니겠어요. 문제는 돈이에요. 요섭이 엄마도 남들처럼 해야 되지 않나 걱정했는데 요섭이가 엄마 고생해서 버는 돈, 그런 놈한테까지 줄 필요 없다고 우겼죠. 똥독은 그것까지 맘에 안 든 거죠. 대학 갈 놈이, 그것도 추천받고 싶다는 놈이 왜 성의 표시를 안하는지 똥독 상식으론 이해가 안된 거예요. 요섭이 엄마가 그래도 꿀단지 같은 것도 보내고 2학년 끝날 땐 비싼 넥타이도 하나 들려 보냈어요, 그러니까 아주 안한 것도 아니죠. 근데 그것도 지 눈에 안 찬 거예요. 요섭이 말로는 자기 엄마가 보낸 넥타이, 똥독이 다른 선생한테 줘버리는 걸 봤대요. 자긴 그런 거 많다고, 마치 자긴 그런 싸구려 필요없다는 듯이요. 일부러 요섭이 보란 듯이 그러더래요. 똥독은 애들 부모가 뭘 하고 사는지 귀신같이 알아내는 재주가 있었어요. 그래야 뜯어먹고 사니깐요. 요섭이 엄만 얼마 전까지 부대 근처에서 펨푸였어요. 그거 있잖아요, 남자 물어다주는 거요. 거기 여자들처럼 남자랑 그러는 게 아니라구요. 젊을 땐 어떠셨는지 모르지만…… 내가 그걸 다 어떻게 알아요?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그냥 넘어가요. 근데 하여간 그 씹탱이 똥독 새끼가 요섭이한테 뭐라고 한 줄 아세요? 갈보 자식 같으니라구…… 에미가 그 모양인데 뭐 잘났다구…… 요섭이가 그런 말을 듣고는…… 꼭지가 돌아버렸죠. 아씨 같으면 안 그러겠어요? 그놈은 인간 이하예요. 아니, 그런 말도 과분한 놈이라구요.
혁진은 네개비째 담배를 피워 물었다. 김형사는 그런 혁진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혁진도 똑바로 그를 쳐다보았다.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안다는 눈빛이었다. 너도 똥독이 죽어서 잘됐다고 생각하냐,고 묻고 싶었지만 김형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혁진은 일어났다. 이제 할말을 다 했으니 가라는 표시였다. 김형사는 피던 담배를 비벼 끄고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너는 아이들 중 누군가가 황선생을 죽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혁진은 여유있게 웃었다. 비웃는 표정이라기엔 너무 유쾌해 보였다.
─아씨, 영화를 너무 많이 보셨군요. 실제로 그런 일이 가능하겠어요?
김형사는 그래, 그렇지 하고 중얼거리며 천천히 일어났다. 대문을 열고 나가면서 김형사는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 혁진은 그때까지도 웃고 있었다.
다음날 김형사는 그 농구 멤버들을 일일이 다시 만나보았다. 석호와 동수는 빼고.
아이들 말은 거의 일치했다. 누가 몇점을 올리고 언제 덩크슛을 하고 어떤 시비가 있었는지 그걸 다 기억하고 있었다. 1주일이나 지난 일을. 그냥 한 게임 하고 논 것을. 마치 NBA 결승전 실황중계처럼.
서장이 김형사를 부른 것은 사람들이 거의 없는 어느 한적한 시간이었다. 마침 농협에 강도가 들어왔단 신고가 들어와 모두 출동해 있었다. 서장은 그 전날 받은 한통의 전화를 생각했다. 그리고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원래 물증도 목격자도 없는 이런 사건은 시간만 잡아먹다 끝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어차피 형사들은 다 콜롬보가 아니다.
서장은 간단하게 말했다.
─자네가 만난 아이들 중 하나가, 그게 누군진 말 못하겠고…… 하여간 집에 가서 경찰이 자길 의심한다고 방방 떴다는구만. 걔 큰아버지가 무슨 차관급이야. 수사는 제대로 안하고 증거도 없이 애들을 막 범인 취급한다고 불편하다는구만.
─………
─이제 대충 종결하지. 할일은 많고…… 자네도 할 만큼 했어.
그리고 그날 오후, 황복팔의 빈지갑이 분실물로 신고되어 들어왔다. 지문 한점 없이, 꽤 들었을 거란 돈과 금딱지 시계는 행방이 묘연한 채로. 역시 강도였을까요? 그럴까요? 하고 서형사는 상기되어 떠들었다. 김형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김형사는 마지막으로 석호와 동수만 만나보기로 했다.
동수는 여전히 오락가락했다. 자기가 정말 혼자 죽였다며 똑같은 소리만 반복했다. 김형사는 물었다. 그럼 다른 애들은 뭘 했지? 그 소리에 동수는 울기만 했다. 믿어주세요, 정말 제가 했다니깐요. 김형사는 며칠전 동수 부모가 정신과 진단서를 떼어 경찰서로 갖고 온 걸 떠올렸다. 제발, 저희 애 좀 그만 괴롭히세요. 요즘 부쩍 애가 심해졌어요.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닌 애를 왜 자꾸 닦달하는 거예요?
학교 운동장 벤치에서 기다리고 있던 석호는 여전히 깍듯하고 침착했다. 김형사가 몇마디 묻기도 전에 말했다.
─형사 아저씨, 지금 헛수고하시는 거예요. 저희들 암만 추궁해도 나올 거 없어요. ……자꾸 이렇게 나오면 곤란하실 텐데요.
너는 내가 뭔가 안다고 생각하는 거냐고 김형사는 물었다. 석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이렇게 대꾸했다.
─조금 아는 사람이나 많이 아는 사람보단 아예 모르는 사람이 나을 수도 있겠죠.
이 세상엔 해결되지 않는 사건들이 얼마나 많을까, 똥독의 죽음도 그중의 하나가 되지 않을까, 하고 석호는 생각했다. 가끔 요섭을 생각했다. 임마, 어떠냐…… 우린 여기서 아직도 이렇게 살고 있다……
김형사는 그런 석호를 쳐다보면서 이 애는 정말 미련한 애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니, 직접 움직이지 않아도 자기 뜻대로 되게 할 용의주도한 타입이었다.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머리를 쓸 줄 아는 사람은 혁진이가 아니라 석호 쪽이었다. 김형사는 그걸 깨달았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석호는 일어나 운동장 쪽으로 사라졌고 김형사는 멀거니 앉아 있다가 그만 일어났다. 느릿하게 교문 밖으로 걸어나오는데 문득 담벼락 한켠에 걸린 현수막 하나가 김형사의 눈에 들어왔다.
“학교폭력으로부터 우리 학생들을 보호합시다”
김형사는 담배 한 개비를 꺼내물고 그걸 잠시 쳐다보다가 경찰서로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사건은 미제로 남았다. 서형사는 처음부터 일반적이지 않은 사건이라 미궁에 빠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선배인 김형사가 저렇게까지 집착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충분히 심증은 있지만 그것이 사실로 드러나는 걸 두려워하는 게 아닐까, 서형사는 그런 생각을 했다. 자기도 비슷한 느낌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서형사 눈엔 너무 깊게 파고드는 김형사가 과민해 보였다. 그래서 어느날 저녁, 싫다는 김형사를 끌고 동네 포장마차로 갔다.
둘 다 별 할말은 없었다. 서형사도 이상하게 술이 잘 받지 않았다. 둘이 겨우 진로 한병을 비우고 났을 때 한 사람이 들어왔다. 김형사가 학교에서 만났던 정선생이었다. 오랜만이군요, 하고 둘은 서로 인사를 나눴다. 초면이라며 서형사도 인사를 했다. 사건은 어떻게 됐느냐, 범인은 잡혔느냐, 아니다 그냥 흐지부지됐다, 그런 건조한 대화가 오갔고 황선생 유산 중 거액이 시골 무슨 학교와 교회에 기부되어 모두 놀랐다는 소식, 교감이 교사 채용 문제로 무슨 징계를 받았다는 소식, 그런 얘기들이 정선생 입에서 흘러나왔다. 선생 노릇 하기 힘드시지요, 불현듯 김형사가 이런 소릴 한마디했고 정선생은 서로서로 물어뜯으며 사는 게 어딘들 안 그렇겠습니까, 하고 응수했다. 그는 전과 달리 노회한 듯 보였다. 요섭이란 애가 죽었을 때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는데 황선생의 죽음도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군요,라고 정선생은 말했다. 김형사는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라디오에서 희미하게 저녁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새 교육부장관으로 원로의원 아무개가 임명됐다는 소식이었다. 아무도 뭐라 입을 열지 않았고 서로 권하지도 않은 채 자기 술잔만 들이켰다. 에잇 시끄러워, 하며 포장마차 주인이 지직거리는 라디오를 꺼버렸고 도마에 칼질을 하다가 뜬금없는 소릴 했다. 왜 그렇게들 축 처져 계세요? 언제 또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김형사는 그때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자기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은 도대체 어떤 곳인가. 이제 곧 학교에 들어갈 딸아이는 또 어떤 세상을 보게 될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김형사는 오늘밤 흠뻑 취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