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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괴테의 세계문학론과 서구적 근대의 모험
임홍배 林洪培
서울대 독문과 교수.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다시, 세상속으로」 등이 있음.
1. ‘세계화’의 도전
이 시대의 구호로 통하는 ‘세계화’의 문제는 무엇보다 근대 자본주의의 전지구적 관철이라는 맥락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꼴롬보(C. Colombo,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래 서유럽의 경계를 넘어 팽창을 거듭해온 근대 자본주의는 오늘날 명실상부하게 세계체제로 실현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중심부 지위를 차지한 국가들의 공세는 지금처럼 주변부와의 시공간적 거리가 좁혀질수록 전면적인 양상을 띠게 마련이다. 세계화는 서구적 근대의 전지구적 보편화에 최적 조건을 제공하는 것이다.1 그런 관점에서 서구적 모형에 따른 근대성의 한계를 지적하는 두쎌(E. Dussel)은 서구 근대문화가 애초에 계몽의 시대부터 자본주의적 합리성의 잣대로 서구 안팎의 ‘타자’를 배제하는 ‘단순화’로 치달았다고 본다.2 따라서 ‘자본주의적 합리성’ 자체를 문제삼지 않는 한 ‘미완의 계몽’을 운위하는 것도 결국 서구적 근대의 기원으로 회귀하는 꼴이 되기 쉽다. 그런가 하면 계몽적 기획의 해체를 주장하는 ‘포스트모던’의 입장 역시 다국적 문화산업으로 대변되는 첨단테크놀로지의 위세를 등에 업고 있는 점에서는 온전한 뜻의 ‘탈’근대를 지향하기는커녕 더욱 고도화된 서구중심적 근대주의의 변종이라 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주변부 위치를 강요당하는 지역들의 입장에서 보면, 세계적 차원의 노동분업에 의한 풍요와 빈곤의 양극화 현상은 직접적인 식민지 지배의 시기에 못지않게 여전히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3 전반적인 빈곤에서는 벗어났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사회의 경우도 사정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른바 ‘구조조정’과 결부된 산업질서의 재편은 더이상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회를 정당화하고, 세계화에의 맹목적인 순응은 고스란히 민중의 고통으로 전가되면서 풍요와 빈곤의 양극화를 부추기는 것이다. 그런 순응주의에 맞서 근래에 제기되는 ‘동북아 중심론’도 일방의 중심성을 내세우는 면에서는 지배의 논리를 이식하고 답습하는 데 그치기 쉽다. 세계화의 도전이 지역주의적 저항을 넘어 전지구적 시야에서의 대응을 요구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오늘날 전지구적 현실과 가치로 군림하는 서구적 근대는 좀더 냉철히 인식될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대체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괴테(J.W. von Goethe)의 세계문학론과 『파우스트』(Faust) 2부를 살펴보고자 한다. 괴테의 세계문학론이 ‘지구화시대의 민족문학과 세계문학’이라는 문제의식을 선취한 핵심은 국내에서도 이미 적절히 소개된 바 있지만,4 기왕에 논의가 나온 김에 괴테의 세계문학론에서 서구적 근대의 보편성과 독일상황의 특수성이 얽혀 있는 대목들을 괴테 자신의 발언에 충실하게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한 괴테의 세계문학 구상이 서구적 근대에 대한 비판적 성찰로 이어지면서 작품의 성과로 결실된 『파우스트』 2부는 오늘의 관점에서도 서구적 근대의 비판적 인식에 풍부한 단서를 제공할 것이다.
2. 괴테의 세계문학론
아우어바흐의 견해를 빌리면, 서구 여러 나라가 중세 라틴문학의 그늘에서 벗어나 나름의 민족적 자각에 기초한 국민문학을 낳기 시작한 것은 5백년 전의 일이다.5 그러나 이 기준은 독일문학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대략 르네쌍스 무렵부터 영국ㆍ프랑스ㆍ스페인ㆍ이딸리아 등지에서는 세계문학의 고전에 드는 걸작들이 나온 반면, 독일문학은 18세기 후반의 괴테 당대에 와서야 그런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괴테 자신의 기여가 결정적이었지만 중년의 괴테만 해도 독일의 ‘민족’문학이 세계문학의 ‘고전’에 진입할 가능성에는 지극히 회의적이었다. 괴테가 그 주된 근거로 드는 것은 무엇보다 독일 역사 및 문화적 전통의 척박함이다. 알다시피 영국과 프랑스가 진작부터 근대적인 민족국가의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하고 산업혁명과 프랑스대혁명을 겪은 싯점에서도 독일은 여전히 군소국가들이 난립하는 봉건사회의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했으며, 독일 특유의 그러한 낙후성은 괴테가 살아 있는 동안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 그런데 만년의 괴테가 구상하는 세계문학은 단지 독일의 민족문학이 세계적 고전의 수준에 드느냐 마느냐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문제가 된다. 문학이 ‘인류 공동의 자산’임을 전제하는 괴테는 에커만과의 대화에서, 갈수록 여러 민족과 작가들의 문학에서 그 자산이 더욱 풍성하게 꽃피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그렇지만 물론 우리 독일인들 자신이 처해 있는 편협한 환경에서 벗어나 넓은 시야를 갖지 못한다면 설익은 자만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나는 다른 민족들의 경우를 찾아보기를 즐겨하며, 누구에게나 그렇게 하라고 충고한다. 이제 민족문학이라는 것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고 세계문학의 시대가 임박했으니 누구나 이 시대를 앞당기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6
여기서 괴테는 서구문학의 늦깎이 신세를 갓 면한 독일문학이 봉건적 낙후성에 갇혀 있는 ‘편협한’ 현실상황을 극복하려는 ‘넓은 시야’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설령 서구문학의 고전에 버금가는 작가나 작품이 나오더라도 여전히 ‘설익은 자만에 빠지기 십상’임을 경고한다. 여기에는 자국의 문학이 다른 민족의 문학에 대해 ‘보편’으로 행세하는 또다른 자만에 대한 경고도 함축되어 있다. 실제로 만년의 괴테는 서구문학의 중심에 해당되는 영국이나 프랑스 문학 혹은 라틴 및 그리스의 고전에 못지않게 페르시아나 동구 여러 민족의 문학을 ‘즐겨’ 찾아 보았다. 그런 점에서 괴테의 삶의 지혜와 문학관의 정수가 담겨 있는 노년기의 대작 『서동(西東)시집』(West-östlicher Diwan)이 페르시아 문학과 역사에 대한 깊은 탐구의 결실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서동시집』 창작노트에서 괴테는 페르시아문학의 정수를 이해하려면 “동방이 우리에게 건너오는 방식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동방화해야 한다”7고 역설하는 것이다. 그것이 단순히 난숙한 서구문화에 대한 권태라든가 설익은 ‘오리엔탈리즘’에서 나온 발상이 아니라는 것은 그가 찾아낸 페르시아문학의 풍요가 ‘세상의 모든 대상에 대한 폭넓은 시야’에 힘입은 것임을 강조하는 데서도 알 수 있다. 또 쎄르비아의 민요에 대하여 괴테는 “문명화된 세계에서 보면 이국적으로 보이는 상황을 감상적으로 취하려 들지 말고 아주 특별한 종류의 즐거움을 받아들일 사전교양을 갖추어야 한다. 쎄르비아인들을 그들의 거친 토양과 대지 위에서 이해하고, 그것도 마치 우리가 직접 현장을 찾아간 듯이 그들이 처한 상황을 통해 우리의 상상력을 풍요롭게 하여 좀더 자유로운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8고 말하기도 한다. “이제 민족문학이라는 것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는 말은 우선 이런 문맥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자국 문학의 우월감에 사로잡히거나 거꾸로 특정한 전범을 모방 답습하는 수준에서는 민족문학이 더이상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괴테는 앞에 언급한 에커만과의 대화에 이어 “그렇지만 외국의 것을 그처럼 소중히 여긴다고 해서 특수한 것에 집착하여 그것을 모범이라 여겨서도 안된다. (…) 모든 것은 오로지 역사적으로 고찰해야 하며, 그중 가능한 한 최상의 것을 역사적인 견지에서 우리 것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세계문학의 시대가 임박했으니 누구나 이 시대를 앞당기도록 힘써야 할 것”이라는 말은 좀더 특별한 뜻을 담고 있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이때의 세계문학은 여러 민족문학 고유의 특수성을 무시한 단일한 세계문학(그것은 사실상 민족문학과 세계문학의 공멸을 뜻할 것이다)과는 전혀 무관하다. 다른 한편 괴테는 여러 민족들이 서로의 문학에 대해 이전보다 더 많이 알게 되었다는 뜻의 ‘세계문학’이라면 예전부터 있어왔지만, 자신의 세계문학 구상이 결코 그런 차원에 한정되지 않음을 강조한다. 괴테는 무엇보다 “생생하게 살아서 활동하고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작가들이 서로를 알게 되고 타고난 천성과 공동의 생각을 통해 사회적으로 작용할 계기가 마련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유럽의 세계문학’을 넘어선 ‘보편적 세계문학’을 주창한다.9 뜻을 모아 공동의 실천을 도모하는 작가들의 국제적 연대를 염두에 둔 것이다. 여기서 ‘공동의 생각’과 ‘사회적 작용’을 특정한 정치적 이념이나 행동에 결부시킨다면 편협한 해석이 되겠지만, 다음과 같이 국제적 교류와 소통이 절실히 요구되는 현실적 배경의 진단에서 ‘공동의 생각’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추정해볼 수도 있다.
벌써 얼마 전부터 보편적 세계문학이 거론되고 있거니와, 틀린 얘기가 아니다. 끔찍한 전쟁들로 인해 만신창이가 된 모든 민족들이 전쟁을 겪고 나서 다시 자신의 처지를 되돌아보면 외국에 관해 여러가지를 알고 받아들이고, 여태껏 알지 못하던 정신적 욕구를 도처에서 느끼게 되었음을 깨닫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사정에서 서로가 가까운 이웃의 관계에 있다는 감정이 생겨나며, 지금까지 그랬듯이 마음의 문을 닫아놓는 대신 다소간에 자유로운 정신적 교류를 점차 받아들여야 할 정신적 요구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10
끔찍한 전쟁의 참상과 상처를 교훈 삼아 여러 민족들이 서로 ‘마음의 문’을 열고 ‘가까운 이웃의 관계’로 맺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민족적 고립에서 벗어나 ‘세계문학의 시대’를 강제하는 역사적 조건은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런 전쟁을 통해 한층 가속화되고 전면화된바, 세계문학의 시대를 앞당겨야 한다는 요구는 민족간의 불균등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유럽사회가 하나의 질서로 얽혀드는 ‘세계화’ 국면에 전면적으로 대응할 필요성이 그만큼 절박해졌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세계문학의 시대가 임박했다는 것은 당장 세계문학이 실현될 수 있다는 섣부른 낙관이 아니라, 그러한 제약과 도전을 두루 포괄하는 시대진단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도 괴테는 위의 발언에 덧붙여 뜻을 같이하는 작가들의 국제적 ‘운동’이 아직은 지속성도 없고 미흡한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그 운동에서 생기는 작은 힘도 ‘상품의 교역’에서 얻는 ‘이득과 즐거움’에 못지않다고 강조한다. 그런 뜻에서 민족간 문학교류는 서로를 바로잡아주고 신선한 활력을 제공하며, 이를 통해 “전반적인 평화가 도래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어도 불가피해 보이던 분쟁이 점차 그냥 넘어갈 만한 것이 되고, 전쟁이 덜 잔혹해지고, 승리가 덜 기고만장한 것이 되기를 바랄 수는 있겠다”(WA I, 42.1, 306면)는 소망을 내비치기도 하며, 또 “여러 민족들이 똑같은 생각을 하리라고 기대한다면 터무니없는 생각이겠지만, 다만 서로를 알고 이해할 거라고 기대할 수는 있을 것이다. 또한 서로 사랑까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서로를 용인하는 법은 배우게 될 것”(같은 책 348면)이라고 조심스런 기대를 피력하기도 한다.
괴테가 세계문학의 시대를 앞당겨야 한다는 절박한 요구를 내세우면서도 정작 세계문학의 가능성과 역할에 대한 기대가 이처럼 신중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전쟁의 참상이 세계문학 차원의 대응을 절실히 요구하는 착잡한 상황 때문이기도 하지만, 굳이 물리적 폭력을 동반하지 않더라도 자본주의의 진전이 민족간의 지리적 경계를 현저히 좁히고 있다는 현실인식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복합적 인식에서 괴테는 “만인과 만인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을 여러 민족들이 제대로 인식할 때에만 보편적 세계문학이 생겨날 수 있다”11는 자각에 도달한다. 그러면서 괴테는 세계문학의 역할을 곧잘 나라간의 무역에 견주기도 하는데, 세계문학의 촉진을 통해 “갈수록 더 전면적인 양상을 띠는 상업 및 무역 활동에도 가장 효과적으로 기여할 것”(같은 곳)이라는 다소 엉뚱한 발언도 한다. 이는 한낱 비유나 실언이 아니라 우선 세계문학을 조건짓는 근대 자본주의의 세계화가 결코 피할 수 없는 대세로 인식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다른 한편 독일 민족문학의 입장에서 보면 독일사회의 봉건적 낙후성을 극복해야 하는 근대화의 과제가 근대화에 앞선 다른 서구 나라들에 비해 훨씬 무거운 짐으로 짓누르고 있다는 뜻도 된다. 실제로 괴테는 자신이 봉직했던 바이마르의 물질적 곤궁을 절감했고, 광산개발이나 증기기관의 도입 등 산업화와 무역을 통한 중상주의 정책에 엄청난 집념과 열성을 보였다. 적어도 정치인 괴테의 입장은 그러했다.
그러나 작가로서의 괴테는 자신이 주창한 세계문학이 ‘갈수록 전면적인 양상을 띠는’ 자본의 세계화에 힘입어 엉뚱한 방향으로 ‘세계화’되는 현상에 몹시 곤혹스러워한다. ‘통신의 가속화에 힘입은 세계문학’을 괴테는 무엇보다 ‘통속적인 대중문학의 세계화’로 경험하며 ‘제대로 된 일급의 세계문학’은 결코 그만한 성공을 거두지 못할 것이라고 털어놓는 것이다. 또 ‘세계의 도시’ 빠리에서 흥행하는 저속한 노래극이 독일의 촌구석에까지 밀려오는 현상을 “당당하게 진군하는 세계문학의 여파”(같은 곳)라고 하면서, 대중문학과 대중문화가 ‘세계문학’의 주종으로 자리잡아가는 현실을 개탄하며 “내가 주창한 세계문학이 나도 익사할 지경으로 밀려들고 있다”12고 자조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진정한 세계문학을 향한 괴테의 열망은 식지 않지만13 이러한 문학적 진단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대중문학의 ‘당당한 진군’을 가능케 하는 새로운 현실을 괴테가 미심쩍게 바라보면서 모종의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다는 사실이다.
풍요와 속도는 온 세상이 경탄하고 누구나 추구하는 것들이다. 교양이 있다는 사람들은 누구나 철도, 급송우편, 증기선과 통신의 온갖 가능한 이기를 추구한다. 하지만 너무 많은 것이 제공되어 있고, 그런 유의 교양이 지나치게 넘쳐나서 평균적인 것으로 굳어져버렸다. 사실 이런 현상도 중간문화가 천박해지는 전반적인 추세의 결과라 할 수 있다. (…) 우리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금방 사라져버릴 한 시대의 마지막 사람들이다.14
증기차를 움직이는 증기를 이제 더이상 누그러뜨릴 수 없듯이, 윤리적인 차원에서도 그런 제어는 불가능해지게 되었다. 상업의 활기와 화폐의 범람, 부채를 갚기 위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부채, 이 모든 것은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추구하는 바이다.15
봉건사회의 궁핍과 정체에서 벗어나기를 누구보다 열망한 진보주의자 괴테에게도 새 시대가 가져올 ‘풍요와 속도’를 근대의 축복으로 예감한 ‘젊은’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예감을 현실로 맞기 시작하는 노년의 괴테는 위에서 보듯이 ‘증기차를 움직이는 증기’를 누그러뜨릴 수 없듯이 ‘제어 불가능한’ 세계의 ‘풍요와 속도’에 전율하면서 자신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한 시대의 마지막 사람’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위기의식에 빠져든다. 괴테가 세계문학을 구상하던 무렵에 완성된 『파우스트』 2부의 세계는 그 위기의식의 현실적 뿌리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는데, 다음에서 이 점을 간략히 살펴보기로 하겠다.
3. 근대의 기획자 파우스트
이미 『파우스트』 1부에서도 파우스트는 ‘신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의 운명을 전복시켜 ‘인간의 형상’대로 이 세계를 창조하겠다는 야심에 불타고 있지만, 2부에 오면 명실상부하게 승승장구하는 근대정신의 화신으로 등장한다. 훗날 맑스가 『공산당선언』에서 ‘단단히 녹슬어 있는 모든 관계들을 해체하는 영원한 불확실성과 운동의 시대’라 일컬은16 근대 자본주의 세계의 영광과 비참함을 온몸으로 구현한 인물인 것이다. 파우스트의 그런 면모는 작품에서 무자비한 자본가와 식민지 정복자, 고도의 전쟁 수행자와 첨단테크노크라트를 한몸에 겸비한 인간형으로 구체화된다.
먼저 파우스트의 자본가적 면모를 보자. 가령 금화와 은화를 매개로 하는 물물교환경제를 해체, 대체하는 ‘지폐’의 놀라운 위력에 황제의 신하들이 “반쯤은 죽은 듯 곰팡이가 슬었던 모든 것이/생기에 넘쳐 희희낙락 들끓고”(285면)17 있다고 열광하자, 파우스트는 맞장구를 치면서 “깊이 통찰하는 고귀한 정신은/무한한 것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가질 것”(287면)이라고 나름의 철학을 펼친다. 한쪽에서 단순히 지폐의 물질적 위력에 현혹되어 있다면, 파우스트는 한술 더 떠서 지폐의 ‘무한한’ 힘이 정신의 ‘무한한’ 자유를 실현하는 막강한 수단이라고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화폐의 속성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 ‘종이유령’의 위력에 어리둥절하지만, 실은 그 ‘종이유령’의 추상적 가치가 인간관계를 전혀 새롭게 재편하는 현실적인 힘임을 파우스트는 꿰뚫어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무한한 것에 대한 무한한 신뢰’라는 것은 화폐와 자본이 가능케 하는 무한한 ‘신용능력’(Kredit)에 대한 ‘신앙고백’(Credo)이 된다. 이렇게 자본의 이치를 터득한 파우스트는 “이제 나의 정신은 나 자신을 뛰어넘어 비상한다”(481면)는 자신감에 들떠 있지만, 결국 자본이 시키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전쟁에 이겨 황제의 일등공신이 된 파우스트는 해안땅을 식민지 속국으로 넘겨받고서 바다를 막아 대규모 간척사업을 벌이는데, 개발지상주의자인 파우스트에게 눈엣가시처럼 거슬리는 것은 철거요구에 응하지 않는 오막살이 노파 부부다. 식민지 통치자의 권좌에까지 오른 파우스트는 오두막 주위의 보리수를 가리켜 “내가 갖지 못한 저 몇그루 나무들이/세계를 차지한 보람을 망치고 있다”(528면)고 할 만큼 어느새 가공할 정복욕을 과시한다. 결국 폭력철거반에 의해 오두막이 불타고 끝까지 버티던 노파 부부도 함께 불타 죽자 파우스트는 그제야 부하들을 나무라기도 하지만, 그런 극단의 방식이 파우스트의 본의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무제한의 소유욕과 지배욕이 더이상 의지로도 제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뜻할 뿐이다. 파우스트는 ‘전지구를 누비고 다니며’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모습대로 세계를 창조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자본가답게18 공격적인 정복자로 변신한 것이다.
살인자가 된 파우스트는 ‘근심’19이라는 어두운 자의식의 저주에 눈이 먼다. 그럼에도 파우스트는 “아무리 위대한 과업을 완수하는 데도/수천의 손들을 부리는 하나의 정신으로 족하리라”(539면)고 장담하면서 자신이 계획한 대사업을 완성시키겠다는 마지막 집념을 불태운다. 그러나 공사를 위해 “인부를 무한정 긁어모아라./엄벌로 부추기고/매수하고, 꼬드기고, 쥐어짜라!”(541면)고 다그치는 파우스트는 문자 그대로 눈먼 장님이 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이어서 “계획한 수로가 얼마나 길어졌는지/날마다 내게 보고하라”고 명령하는 파우스트의 등뒤에서 공사 ‘감독관’ 메피스토펠레스는 그것은 수로가 아니라 무덤이라고 중얼거린다. 실제로 파우스트가 그 무덤에 묻힘으로써 이 ‘위대한 과업’은 완성되지만, 이미 무덤 속으로 한발을 내디딘 파우스트는 지배와 자유의 환상이 착종된 절정에 이른다.
자유도 생명도 날마다 싸워서 얻는 자만이
누릴 자격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선 위험에 둘러싸여서도
남녀노소 모두가 값진 나날을 보내는 것이다.
나는 이 군중을 지켜보며
자유로운 땅에서 자유로운 백성과 더불어 살고 싶다.
그때가 되면 순간을 향해 이렇게 말해도 좋으리라.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내가 세상에 남겨놓은 흔적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니─이 드높은 행복을 예감하면서
지금 최고의 순간을 맛보고 있노라. (542면)
파우스트의 삶과 운명을 집약하는 이 유명한 구절은 20세기에 들어와 엉뚱하게도 나찌시대에 ‘영웅적 지도자’를 찬양하는 전거로 인용되는가 하면 동독 건설기에는 민중동원을 정당화하기 위한 구실로 차용되기도 했다.20 그러나 파시즘이나 현실사회주의를 근대 자본주의체제와 분리된 별개의 체제가 아니라 그것의 극단화된 변종이나 상호의존적인 체제였다는 관점에서 보면 반드시 아전인수식 해석만도 아닐 것이다. 자유와 생명도 날마다 싸워 얻는 자만이 누릴 자격이 있다는 말도 옳고, 또 자유로운 땅에서 자유로운 백성과 더불어 살고 싶다는 말도 누구나 바라 마지않을 드높은 이상임에 분명하지만, 설령 그보다 더 거룩한 명분과 이상을 앞세우더라도 ‘수천의 수족을 부리는 하나의 정신’을 떠받들고 수많은 사람들을 위험으로 내모는 체제라면 파우스트처럼 ‘위대한 사업’을 벌일수록 그만큼 더 거대한 무덤을 팔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본주의적 삶의 ‘영원한 불확실성과 운동’이 바로 그런 의미에서 ‘파괴적 창조’에 의해 추동되는 한 파우스트가 죽음 너머로 바라는 ‘아름다운 순간’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세상에 남겨놓은 것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외치는 파우스트에게 악마적 시대정신의 화신인 메피스토펠레스는 “창조된 모든 것은 무(無) 속으로 휩쓸려가게 마련”(543면)이라며 코웃음을 치는 것이다. 파우스트의 환상이 20세기에 와서야 세계적 현실로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은21 이런 포괄적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런데 『파우스트』 2부의 현대성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이 작품의 내용이자 형식인 알레고리적 특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괴테는 일회적인 특수한 현상 속에 보편적인 것을 담아내는 상징의 형식을 창작의 본령으로 삼았지만, 『파우스트』 2부에서 압도적인 것은 알레고리 양식이다.22 괴테의 정의에 따르면 ‘보편적인 것의 표본’으로 표현되는 알레고리는 특정한 표현대상을 다른 임의의 ‘표본’들로 얼마든지 대체할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원래 장인의 수공업적 생산에 의해 하나씩 예술품으로 만들어지던 도자기가 공장생산에 의해 대량으로 복제되는 현상을 괴테가 ‘알레고리적’이라 하면서 그런 대량복제가 예술적 불모성의 징후라고 개탄한 것도 그런 뜻으로 이해될 수 있다. 괴테가 평소에 멀리했던 그런 불모성의 기법을 『파우스트』 2부의 양식으로 도입한 내막은 이미 살펴본 ‘종이유령’의 위력을 묘사하는 대목에서도 짐작된다. 한낱 종잇조각에 불과한 지폐가 금은보화를 훨씬 능가하는 교환가치를 지니며, 그 지폐 즉 자본이 휘두르는 무소불위의 위력이 근대세계를 이끄는 ‘파괴적 창조’의 원동력임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나중에 맑스가 자본과 토지의 결합을 ‘토지 씨(氏)와 자본 양(孃)’의 결합이라고 일컫는 것보다 한층 더 심층적인 의미에서 ‘죽음’과 ‘죽임’의 알레고리인 파우스트의 불행한 자의식 앞에는 ‘결핍’과 ‘부채’와 ‘곤궁’과 ‘근심’이 그의 ‘여동생’들로 나란히 등장하기도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손’처럼 추상적인 동시에 막강한 이 알레고리의 세계는 그 추상성과 현실성의 일체화에 힙입어 일종의 ‘가상’현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파우스트를 전쟁승리자로 만드는 비결이 그중 하나인데, ‘실체’와 ‘가상’을 분리시킬 줄 아는 메피스토펠레스는 ‘물’이라는 자연력을 조작하여 ‘메마른 바위틈’에서 솟구치는 엄청난 물의 위력으로 순식간에 적군을 제압하는 것이다. 작품에서 한바탕 해프닝처럼 묘사된 이 장면이 단지 무대연출의 편의를 위한 즉흥적 처리가 아님은 이미 하룻밤에 수천장의 지폐를 찍어낸 경험이 있는 메피스토펠레스가 전쟁승리를 장담하면서 “누구나 가상을 실체라고 믿는다”(502면)고 호언하는 데서도 확인된다. 자연원소를 합성 조작하여 탄생한 인조인간 ‘호문쿨루스’가 마치 무대감독처럼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에게 다음 장면의 무대상황을 지시하는 섬찍한 상상력을 과시하고 그의 ‘제작자’인 메피스토펠레스조차도 그를 경쟁상대로 경계하는 대목에서 가상현실은 절정에 이른다. 중년기 이래 자연과학 연구에도 몰두했던 괴테는 자연의 생산성을 능가하려는 첨단의 생산력에 대한 일체의 광신이 인간과 자연에 대한 무자비한 지배욕의 소산임을 직감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광기에 사로잡힌 세계를 남김없이 섭렵하면서 ‘열광적인 도취의 상태에서만 힘을 얻는’ 파우스트는 빠리의 시인 보들레르(C.P. Baudelaire)에겐 이미 ‘자연스런 형식’이 되고 있는 알레고리의 표본인 셈이다.23 고전적 상징체계가 고전적 휴머니즘에 상응하는 예술원리라면 이 작품의 알레고리 양식은 그런 뜻의 고전적 상징체계를 붕괴시키는 현대세계의 생생한 현실을 포착하는 새로운 형태의 리얼리즘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4. 맺음말
괴테의 세계문학 구상이 그의 시대 나름으로 경험한 ‘세계화’의 도전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실천적 대응을 촉구한 것이라면 『파우스트』 2부가 보여주는 근대의 세계는 괴테 시대 이후의 세계문학이 감당해야 할 과제의 막중함을 일깨운다. 세계의 작은 귀퉁이까지 자신의 영토로 삼지 않으면 끊임없이 ‘결핍’에 시달리는 정복자 파우스트의 눈먼 질주는 괴테의 소망대로 세계가 ‘가까운 이웃’의 관계로 맺어지기까지 넘어야 할 험난한 고비들을 예고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그런 지배욕의 파국적 결과들에서 보듯이, 중심부의 자기확대를 통해서는 결코 모든 민족이 호혜롭게 공존할 전망이 열릴 수 없다는 사실이다. 다른 한편 파우스트에게 자유의 환상을 끝없이 부풀리는 근대문명의 온갖 ‘진보’가 그의 비극적 파멸을 자초하는 맹목적 근대주의와 하나로 얽혀 있으며 어떤 의미에서 그 필연적 산물로 묘사된다는 사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파우스트의 환상이 세계적 현실로 전면화된 오늘의 싯점에서 보면, 이전 시대의 역사적 경험과 비교되지 않을 온갖 수난을 동반한 근대의 역사성을 쉽사리 뛰어넘을 수 있을 거라는 발상도 우리가 한복판에 서 있는 근대의 저편에 또다른 근대를 구축하겠다는 우를 범하기 쉽다. 그런 점에서 스스로 키운 환상의 덫에 걸려 파멸하는 파우스트의 비극적 운명은 “근대의 결과들이 지금까지에 비해 더욱 근본적이고 전면적인 여파를 몰고오는 그런 시대”24에 살고 있음을 한층 실감케 하며, ‘전세계로 확장된 근대’에 대해 더 치열한 천착과 대응을 요구한다. 괴테의 세계문학 구상과 『파우스트』의 문학적 성취가 단지 중심부의 시각을 넘어섰다는 의미 이상으로 오늘의 관점에서도 폭넓은 시야를 제공하는 것은 그런 맥락에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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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 Beck (ed.), Die Politik der Globalisierung (Frankfurt a.M. 1998), 60면 참조.↩
- E. Dussel, Beyond Eurocentrism: The World-System and the Limits of Modernity, F. Jameson & M. Miyoshi (ed.), The Cultures of Globalization (Duke University Press 1998), 18면 이하 참조.↩
- 이에 관한 역사적 설명은 S. Amin, Die Zukunft des Weltsystems (Hamburg 1997), 17〜23면 참조↩
- 백낙청, 「지구화시대의 민족과 문학」(『내일을 여는 작가』 1997년 1-2월호); 최원식, 「문학의 귀환」(『창작과비평』 1999년 여름호); 한기욱, 「지구화시대의 세계문학」(『창작과비평』 1999년 가을호) 참조.↩
- E. Auerbach, Philologie der Weltliteratur (Frankfurt a.M. 1992), 84면 참조.↩
- J.P. Eckermann, Gespräche mit Goethe (Frankfurt a.M. 1981), 211면↩
- Goethes Werke, Hamburger Ausgabe 2, 181면(이하 HA).↩
- Goethes Werke, Weimarer Ausgabe I, 42.1, 253면(이하 WA).↩
- HA 12, 363면↩
- WA I, 42.1, 186면 이하. 이 구절은 칼라일(T. Carlyle)이 쓴 『쉴러의 생애』(Leben Schillers) 독일어판에 괴테가 부친 서문의 일부다. 칼라일은 괴테와 긴밀한 정신적 유대를 맺고 있었고, 괴테의 대표작들을 처음으로 영역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괴테의 세계문학 구상이 실질적으로 ‘국제적 연대’의 체험에 바탕을 둔 것임을 여기서도 알 수 있다. ↩
- HA 12, 363면.↩
- 1826년 5월 21일자 쩰터(Zelter)에게 보낸 편지.↩
- “그렇지만 더 숭고하고 더 생산적인 것에 자신을 바치는 사람들도 더 빨리 그리고 더 가까이 서로를 알게 될 것이다. 이 세상 어디를 가도 든든한 바탕을 다지는 데에 힘을 쏟고 그런 기반 위에서 인류의 참된 진보에 힘을 쏟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들어선 길과 내디딘 발걸음이 한결같지는 않다.”(WA I, 42.2, 502면 이하)↩
- 1825년 6월 6일자 쩰터에게 보낸 편지.↩
- HA 12, 389면↩
- Marx & Engels, Ausgewählte Werke (Frankfurt a.M. 1983) 제6권, 419면.↩
- 작품 인용은 정서웅 번역의 『파우스트』(민음사 1997)에 따르며, 해석은 부분적으로 수정하였다.↩
- Marx & Engels, 앞의 책, 420면 이하.↩
- 이 ‘근심’은 작품에서 의인화된 인물로 등장하여 파우스트를 ‘오빠’라고 부르면서 ‘죽음’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는데, 이 특이한 알레고리적 형상의 의미는 뒤에서 다시 언급될 것이다.↩
- J. Schmidt, Goethes Faust (Stuttgart 1999), 315면 이하 참조.↩
- 마샬 버먼, 『현대성의 경험』(현대미학사 1994), 88면 이하 참조. 그러나 쌩시몽주의에 심취한 만년의 괴테가 파우스트의 환상을 공유하고 있다는 버먼의 해석은 파우스트를 비극적 인물로 그린 작품세계에 들어맞지 않을뿐더러 쌩시몽주의와의 관계 역시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만년의 괴테가 세계정세를 파악하기 위해 쌩시몽주의자들의 기관지 『세계』(Le Globe)를 탐독한 것은 사실이지만, 쌩시몽주의 자체는 생산력 발전을 역사의 진보와 무조건 동일시하는 특이한 ‘종교적 분파’라고 보아 냉정한 비판적 거리를 두었다. 『파우스트』 2부와 비슷한 시기에 집필된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Wilhelm Meisters Wanderjahre)에서도 그 점은 확인되는데, 이에 관해서는 졸고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에 나타난 근대화의 문제」(『독일문학』 65집, 1998) 참조.↩
- 괴테의 상징론에 대해서는 졸고 「루카치의 괴테 수용에 대한 비판적 고찰」(『문예미학』 4호, 1998) 참조. 상징과 알레고리에 대한 괴테의 대표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시인이 보편적인 것을 표현하기 위해 특수한 것을 찾느냐, 아니면 특수한 것 속에서 보편적인 것을 직관하느냐 하는 데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전자에서 알레고리가 생겨나는데, 그 경우 특수한 것은 단지 보편적인 것의 사례로서만, 그 표본으로서만 유효할 뿐이다. 그러나 후자야말로 시의 본성이다. 상징은 보편적인 것을 염두에 두거나 가리키지 않으면서 특수한 것을 표현한다.”(HA 12, 471면)↩
- 보들레르는 ‘인공미’에 해당하는 알레고리 양식의 풍요를 이렇게 말한다. “이 지성미 넘치는 장르인 알레고리를 경멸하라고 서투른 예술가는 우리에게 가르친다. 그러나 알레고리는 시문학의 가장 근원적이고 자연스러운 형식의 하나로서, 열광적인 도취상태에서 빛을 발하는 지성에서 다시 그 정당한 힘을 얻는다.” H.R. Jauß, Studien zum Epochenwandel der ästhetischen Moderne (Frankfurt a.M. 1989), 166면에서 재인용. ↩
- A. Giddens, Konsequenzen der Moderne (Frankfurt a.M. 1996), 2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