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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 | 낙천ㆍ낙선운동, 유권자혁명의 향방
‘정치지체’와 낙천ㆍ낙선운동
조희연 曺喜昖
성공회대 시민사회복지대학원 시민사회단체학과 교수
(1) 새천년 지구촌 사회가 씨애틀에서의 시민사회단체 ‘반란’으로 막을 열었다면, 새천년 한국사회는 시민사회가 앞장선 유권자들의 반란으로 막을 열었다. 500여개 시민사회단체들이 나서서 공천부적격자 명단을 발표하고 정당활동의 핵심인 공천과 선거의 전면 개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전면적인 ‘정치불신임선언’과 같은 이런 현상은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정치개혁을 향한 ‘유권자혁명’이라고 볼 수 있는 국민적 반향 속에서, 어떤 이는 군부정권에 대한 ‘시민사회의 대반란’이었던 87년 6월항쟁과 유사한 기운과 참여열기를 느낀다고 말한다. 87년의 시민사회 반란이 학생운동과 재야운동에 의해 주도되었다면, 새천년 벽두의 시민사회 반란은 시민사회단체들에 의해 주도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나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본질적인 연속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87년 6월의 반란이 직선제 등 민주주의의 ‘하드웨어’를 쟁취하기 위한 것이었던 데 반해, 현재의 낙천·낙선운동은 부패·무능·반인권 정치인 퇴출 등 민주주의의 ‘쏘프트웨어’ 혹은 내용 혁신을 위한 운동으로 전개되고 있다. 돌이켜보면, 87년 6월항쟁은 야당의 적극적인 참여하에 군부집권당을 ‘굴복’시키는 결과를 쟁취하였다. 그리고 시민들은 직선제를 쟁취한 후, 개혁을 약속하는 집권당과 또한 개혁을 위해 싸웠던 야당에 정치개혁을 맡기고 ‘관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여야 정당에게 맡겨진 민주주의의 ‘쏘프트웨어’, 즉 정치는 전혀 바뀌지 않은 채, 지난 10여년이 흘러왔다. 참고 참던 시민들이 이제는 정당들의 자정능력이 전무하다는 절망 속에서 다시금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2) 먼저 낙천·낙선운동의 전개과정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그동안 시민사회단체의 정치개혁운동은 주로 의정감시의 형태로 전개되었다. 이러한 의정감시운동은 1999년 정기국회에서 국정감사 모니터운동을 거치면서 한단계 발전하였다. 국감모니터 결과가 언론에 발표되자 국회의원들은 격렬히 반발했고 심지어 상임위원회 방청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하였다. 낙천·낙선운동에 대한 구상과 계획은 이러한 국감모니터과정에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낙천·낙선운동은 올 1월 10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1차로 164명의 공천부적격자 명단을 발표한 데 이어, 1월 24일 전국의 50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2000년 총선시민연대’(총선시민연대)가 66명의 공천부적격자 명단을 발표하는 형태로 구체화되었다. 그후 1월 27일 정치개혁시민연대가 ‘유권자가 알아야 할 15대 국회의원’이라는 이름으로 89명의 명단을 발표하였다. 그후 2월 2일에는 총선시민연대가 2차 공천부적격자 명단을 발표하였다.
이 운동이 기성정당 및 국회의원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을 담고 있는만큼 이에 대한 정당 및 개인들의 반발이 크리라 예상했지만, 기성정치권의 반발은 예상보다도 더욱 거세게 나타나고 있다. 새천년민주당(민주당)은 이 운동에 대해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이 역시 당 중진들이 대거 포함되면서 후퇴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부패사건과 관련하여 낙천대상자로 선정된 의원들의 경우 개인적 항변을 하고 있다. 낙천·낙선운동에 대한 정치권의 집단적 반발은 ‘음모론’이나 ‘연계설(유착설)’ 같은 정치공세로 나타나고 있다. 이 운동에 대하여, 자유민주연합(자민련)에서는 시민사회단체의 배후에 청와대 및 민주당 일부 인사가 있다는 음모론을 들고 나왔고, 한나라당은 이 운동을 주도하는 시민사회단체의 주요인사가 제2건국위원회나 부정방지대책위원회에 관계되어 있으며, 총선시민연대에 참여한 주요단체들이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고 있다는 이른바 ‘연계론’을 들고 나와 공세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음모론이나 연계론 주장은 우리가 익히 보아온 기성정치권의 행태를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 부패에 연루된 의원이 그것을 정치적 음모라고 주장함으로써 자신을 방어하고, 일정한 시간이 흐른 다음 지역감정을 이용하여 정치적 복권을 하게 되는 경우를 우리는 수없이 보아온 것이다. 그간 이러한 방어메커니즘이 효력을 발휘한 것은 지역감정이 엄존하는 구조 내에서 이에 호소하면 동정론을 유발하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치권의 공방패턴이 시민사회단체의 낙천·낙선운동에 대해서도 그대로 원용되고 있는 것이다.
(3)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시민사회의 반란은 시민사회의 활성화와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는 ‘정치지체’(political lag) 혹은 정당지체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이러한 정치지체 현상은 권위주의질서에서 민주주의질서로 이행하는 ‘민주주의이행’(democratic transition)의 과도기적 국면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정치개혁에는 정부주도형과 정치권주도형, 시민사회주도형의 3가지 유형이 있다. 정부주도형은 과거 권위주의정권이 답습한 것으로서 현실성이 없으며, 정치권주도형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 시민사회주도형의 정치개혁운동이 촉발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당이 시민사회의 의견을 반영하는 ‘대의(代議)’기구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시민사회단체가 시민사회의 의견을 반영하는 일종의 ‘대의의 대행(代行)’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낙천·낙선운동은 어떤 점에서 기성정당들의 대의기능이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는 데 대한 시민사회의 반란이자, 기성정당의 불구화된 ‘대표자(representative) 선발’ 기제에 대한 시민사회단체의 ‘대리선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제도적으로 ‘권한을 위임받지 못한’ 시민사회단체가 제도적으로 권한을 위임받은 정당에 대해 개혁을 요구하는 일종의 ‘대의의 대행’ 현상은 자기정화 능력을 갖지 못한 정당의 불구성(不具性)에 대한 슬픈 증언이자 처절한 요구이다. 이것은 물론 정치의 위기이다. 그러나 그것은 구정치의 위기일 뿐이며, 신정치를 위한 산고에 다름아니다. 이런 점에서 현재의 싸움은 부패한 정치인과 시민사회단체 간의 싸움도 아니고, 자민련과 시민사회단체 간의 싸움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새정치를 열망하는 국민과 구정치를 고수하려는 정치권의 싸움이며, ‘닫힌 정치’ ‘배제의 정치’를 고수하려는 구정치인과 ‘열린 정치’ ‘참여의 정치’를 요구하는 유권자의 싸움이다. 우리가 공천부적격자 개개인의 항변이나 음모론 같은 반발을 넘어,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들어가는 거대한 행진을 시작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87년 이후 우리 사회가 민주개혁의 과도기에 있다고 할 때, 민주개혁이 가져온 가장 중요한 변화는 국가권력에 억눌려 있던 시민사회의 독자화와 활성화이다. 현재의 낙천·낙선운동은 우리 사회의 탈권위주의화에 따라 활성화된 시민사회의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는 정치와 정당에 대한 반란인 것이다.
탈권위주의화에 따르는 시민사회의 활성화는 다양한 변화를 포괄한다. 먼저 탈권위주의화는 기존의 국가권력이 갖고 있던 압도적 사회통제력이 현저하게 약화되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다양한 사회적 힘과 목소리를 분출시키고 공익적·사익적 이익을 중심으로 하는 시민들의 자발적 조직화를 촉발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구국가권력을 지탱하던 거대조직들의 장악력은 약화되고, 작은 조직들, 풀뿌리 조직들의 목소리와 위상은 현저하게 강화된다. 그리하여 전에는 중요하지 않던 많은 문제들이 주민들에 의해 제기된다. 이러한 흐름들을 넓은 의미에서 ‘생활정치’(life politics)의 활성화라고 표현할 수 있다.
또한 빠뜨릴 수 없는 것은 다양한 사회적·계급적 운동들의 활성화이다. 87년 6월항쟁의 여진 속에서 분출된 노동자대투쟁은 노동운동의 정치적·조직적 발전의 출발점이었고, 이는 노동자가 거대한 사회적 세력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제도정치와 구별되는 ‘계급정치’가 활성화된 것이다. 문제는 제도정치가 바로 이러한 풀뿌리정치 및 생활정치, ‘계급정치’와 극단적으로 괴리된 채 존재한다는 점이다.
활성화된 시민사회가 존재해도 정당은 정당대로 나몰라라 하며 존재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활성화된 시민사회가 단순히 ‘무정형’의 시민사회로 머물지 않고 역동적인 네트워크 속에서 새로운 연대성을 발현하며, 과거 수(數)를 중심으로 하는 경성(硬性)조직 중심의 운동에 비해 네트워크형 조직의 운동이 갖는 역동성과 동원력도 무시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이번 낙천·낙선운동에서 바로 이런 유연하고 개방적인 네트워크형 관계의 중요성을 읽을 수 있다. 이러한 네트워크형 관계에서 정보의 중요성은 매우 큰데, 특히 주목할 것은 공신력있는 정보가 갖는 파괴력과 파급력이다. 공천부적격자라는 정보와, 이를 제공하는 시민사회단체의 공신력이 맞아떨어지면서 나타나는 폭발적 현상을 우리는 발견하게 된다. 정보를 중심으로 전자네트워크에 익숙한 네티즌들의 폭발적인 관심도 이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된다.
(4) 그럼 낙천·낙선운동의 발전과정에서 제기되는 몇가지 쟁점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이 운동이 정치개혁운동의 일부라고 할 때, 향후 정치개혁을 향한 사업들이 어떻게 전개되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낙천·낙선운동은 정당정치와 의회정치의 전면적인 개혁이라는 점에서 볼 때, 최소요구이자 최소행동일 뿐이다. 공천부적격자로 지명된 의원들의 다수가 낙선되더라도 밀실정치·돈선거·돈공천·극우반공주의·지역주의로 점철된 구정치의 ‘구조’는 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운동의 성공적 전개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한국의 정당을 투명한 민주정당과 탈지역주의적인 정책정당으로 전환하느냐 하는 문제는 여전히 과제로 남는다. 현재 한국의 정당은 민주적 정당이라고 하기에는 당내의 의사결정구조─당 공천까지를 포함하여─가 너무도 비민주적이다. 이런 점에서 1인 보스와 그 가신 중심의 의사결정구조를 혁파하여 상층의 의사결정구조를 민주화하는 과제가 존재하며, 나아가 지구당위원장 및 공직후보자의 민주적 경선 및 상향식 선출을 포함하는 ‘아래로부터의 참여’에 열린 정당으로 만드는 과제가 존재한다. 기업에 대해서는 투명성을 요구하면서도, 정당에 대해서는 투명성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99년 6월 참여민주사회시민연대(참여연대)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정보공개를 요청하여 획득한 자료에 따르면, 98년 상반기 국고보조금 지출사안 중 지출서류에 도장이 없거나 지출결의서 자체가 없는 경우가 68%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이강준, 「국고보조금은 정당의 쌈지돈인가」, 『의정감시』 1999년 겨울호). 이는 현재 한국의 정당들이 얼마나 불투명하게 운영되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다음으로 보수정당 일색의 협소하면서도 지역주의적인 경쟁구도에서, 어떻게 정당의 이념적·정책적 정체성을 다양화하면서 건전한 정책적·이념적 경쟁구도로 전환하느냐 하는 과제이다. 근대적·계급적 이념정당을 가져본 경험이 없는 우리는 현재의 후진적 정당씨스템과 정치경쟁씨스템을 ‘근대적’ 정당씨스템으로 개혁하는 과제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몇몇 부패한 의원을 낙선시킨다는 차원을 넘어, 새로운 정치문화와 새로운 정치질서를 만들기 위한 거대한 행진의 출발점에 있음을 인식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둘째, 낙천·낙선운동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여하히 통제하면서 이처럼 지역주의적이고 보수일색인 정치구조를 바꿔나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미 자민련의 음모론이나 한나라당의 연계설을 계기로 충청도나 영남지역의 지역주의는 오히려 고착되는 경향을 보인다. ‘역지역감정’의 바람이 분다는 지적도 있는데, 앞서도 얘기했듯 이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국민들이 기성의 정치에 반란을 일으키지 않고 그것을 숙명처럼 받아들였다면, 기성정치인들의 반발도 없었을 것이다.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이 되는’ 기존의 지역주의적 구도를 혁파하기 위한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기존의 지역주의적 정당들의 ‘항전’도 없었을 것이다.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어차피 통과해야 할 터널이며, 이러한 ‘의도하지 않은 결과’와 기성정당의 왜곡화 시도를 ‘무릅쓰고’ 정치개혁운동을 전개해나갈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이 운동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통제하기 위한 노력과, 기성정당의 왜곡화 시도를 뛰어넘기 위한 다양한 전술적 고려가 필요하다.
셋째, 낙천·낙선운동이라는 이 연대운동이 어떻게 개혁을 위한 국민적 힘으로 지속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 운동은 80년대 이후 분화·발전되어온 시민사회운동의 역량이 국민적 이슈를 중심으로 결집한 것이다. 이러한 연대운동은 ‘국민의 정부’하에서 지지부진한 민주개혁을 추동하는 힘으로서 지속적으로 존재해야 할 것이다. 현정부의 개혁은 한편으로는 불철저한 개혁의지와 개혁주체세력의 미형성 등 내부적 요인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강고한 보수세력과 국회 내의 소수파라는 지위로 인한 이른바 ‘포위된 개혁’이라는 한계 때문에 지체되는 경향을 보여왔다. 현정부의 지난 2년간 경과를 보면, 시민사회로부터 강력한 개혁압력이 있으면 개혁이 진전되고, 보수파들의 압력이 강화되면 다시금 개혁이 지체되거나 후퇴해왔다. 이런 점에서 낙천·낙선운동으로 결집된 국민적 힘이 현정부의 개혁을 외부로부터 추동하는 힘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집권후반기로 접어드는 현정부는 외부로부터의 개혁압력이 없으면 제한된 개혁마저도 수행할 수 없는 ‘집권불능’ 상태에 빠질 가능성도 있는데, 이같은 사태는 사회심리적 반동화나 정치적 허무주의를 불러오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이런 경향들을 통제하면서, 국민들이 적극적인 개혁행동으로 나서도록 하는 데 있어, 시민사회운동의 연대에 기초한 국민적 힘이 특별한 중요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넷째, 낙천·낙선운동 이후의 국민적 개혁의제의 설정 문제이다. 이 운동을 통해 결집된 역량으로 어떠한 국민적 이슈를 개혁의제로 설정하고 싸워나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시민사회운동은 체제 자체의 변화까지 목표로 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명백한 한계를 지니지만, 한국사회의 사회경제적 발전에 상응하는 최소한의 합리성과 공공성을 전사회적으로 관철하려는 운동이라는 점에서 국민적 파급력과 영향력을 갖게 된다. 그같은 의제에는 재벌개혁이나 언론개혁 같은 것이 포함될 수 있을 텐데, 예컨대 시민사회단체의 연대운동이 구체적으로 기존의 비리언론사주들과 비리언론인들을 몇명으로 압축하고 언론개혁의 이슈들을 몇가지로 압축해 국민적 압력운동을 행사하는 방식도 가능할 것이다. 또 재벌개혁에 대해서도 유사한 국민적 방식이 채택될 수 있다. 과거의 안보독재와 개발독재 하에서 ‘왜곡된 국가’와 ‘왜곡된 시장’의 개혁이 87년 이후 민주개혁의 핵심적인 과제라고 할 때, 낙천·낙선운동으로 결집된 역량은 미답(未踏)의 개혁의제로 국민적 힘을 분출시키는 데 기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