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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 | 낙천ㆍ낙선운동, 유권자혁명의 향방
민주주의 후진국을 지켜보는 여성의 시각
총선감시시민운동에 부쳐
정현백 鄭鉉栢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1) 근대로의 발전을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이라는 이중혁명의 과정으로 파악하는 서구적 잣대에서 보면, 한국은 산업혁명에는 어느정도 성공했으나 민주주의혁명이 개화하는 데는 오랜 세월이 필요하다는 점이 다양한 통로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우리 정치의 후진성이다. 정치후진성이 경제나 문화 분야에서 이루어진 발전의 뒷덜미를 움켜쥐는 현실에 국민들이 절망하고 있던 차에 일어난 총선감시시민운동, 즉 낙천·낙선운동은 시민들에게 오랜만에 살맛나는 사건이었다.
1월 10일 경실련이 서둘러 164명의 공천부적격자 명단을 발표했고, 이어 1월24일에는 500여개 단체를 망라하는 총선시민연대가 66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자민련의 ‘음모론’ 주장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 결과는 수도권 유권자의 압도적 다수가 이들의 활동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대상자의 77%가 총선시민연대의 부적격자 명단발표가 적절했다고 대답하였고,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명단에 들어갈 경우 지지를 철회하겠다는 응답자도 68.3%에 달했다(『시사저널』 2000.2.10, 30면). 자민련이나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총선시민연대에 대한 흠집내기가 계속되겠지만, 현재로서는 이 운동이 수도권 표심(票心)의 향배에 중요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시민들의 지지는 기성정치에 대한 환멸감에서 기인하는데, 낙천·낙선운동을 둘러싼 갈등은 이를 보수 대 진보의 대결구도로 몰고 가려는 보수정당의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부패·보스정치’ 대 ‘상식의 정치’ 혹은 ‘비정상의 정치’ 대 ‘정상성의 정치’의 대결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운동은 유럽인들이 1세기 전에 수행한 근대프로젝트를 21세기에 들어와 허겁지겁 따라잡는 운동인 셈이고, 그 성과는 실질적 민주주의의 뿌리내리기에 적지 않게 기여할 것이라 생각한다.
(2) 그러나 총선감시시민운동에 대한 ‘흠집내기’와 우려의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데 두 보수정당이 앞장서고 있으며, 언론 역시도 부정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우선 언론사들은 과열경쟁으로 끊임없이 오보를 내보냄으로써 총선감시시민운동을 곤혹스럽게 한다. 또한 이 운동이 원칙적으로는 긍정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선거법 제87조에 따른 위법시비와 기준의 객관성 문제를 계속 제기하고 있다. 이들이 풍기는 분위기는 미묘해서, 대세에 밀려 이 운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언제든지 반대편으로 돌아설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놓고 있는 셈이다.
총선감시시민운동과 관련하여 가장 우려되는 점은 애초에 설정했던 부패정치인의 퇴출과 정치문화의 개혁이라는 소박한 목표를 달성하는 단계를 넘어, 지역주의의 극복에 승부를 걸고 있다는 것이다. 이 운동이 김종필 전 총리를 공천부적격자 명단에 집어넣은 것은 애초부터 의도한 바이기보다는 선정기준의 객관성과 엄정성을 지키기 위해서였지만, 지역감정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그래서 이 운동을 아끼는 사람들은 이것이 ‘반쪽의 성공’으로 끝나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여론조사 결과는 자민련이 표를 결집하기 위해 선전하는 ‘음모론’이 충남에서는 상당한 효과를 보이지만, 충북과 수도권의 (충청도 출신) 유권자들은 동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민운동의 짧은 역사를 고려하면, 우선은 ‘부패정치인의 퇴출’만을 내세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이왕 지역주의 정치와의 대결이 불가피해진 이상, 이번 운동이 지역주의 타파에 일조해야 하고, 현재의 분위기로서는 그럴 공산이 크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다.
총선감시시민운동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에 고무되면서도 정계의 반응을 지켜보는 우리의 심정은 우울하다. 자민련의 음모론에 질세라, 한나라당도 정부프로젝트를 받은 시민단체들을 거명하며 ‘여당과의 연계설’을 내세우는 정치추태를 연출했다. 풀뿌리 민주주의와 사회복지체제가 발전한 선진국일수록, NGO에 대한 정부의 지원비나 프로젝트의 규모는 매우 크다. 독일의 경우, 지방자치정부는 수백개의 NGO에 상근자 급여와 사업비를 지급하지만, 독일인 어느 누구도 그렇기 때문에 NGO가 정부의 취향에 따라 사업을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돈은 그들 스스로가 낸 세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과거 관변·어용단체들이 주로 정부에서 사업비를 받고, 그에 따라 해바라기성 활동을 해왔다. 그런 사례를 보아온 기성정치인들은 최근 몇년 사이에 활성화되고 있는 새로운 시민운동과 시민단체 활동 그리고 프로젝트 선정과정에 대해 무지한데다가, 사회에서 일어나는 조용한 변화를 성실하게 읽어낼 치열함도 없으니, 여당과의 연계 운운하는 발언이 나올 수밖에 없다.
또한 총선감시시민운동의 정치개혁을 향한 절규가 굴절되어 전달된 데는 집권당의 책임도 없지 않다. 우선 총선시민연대가 공천부적격자 명단을 발표한 이후 김대중 대통령이 보인 반응은 어이없었다. 최소한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이런 활동이 법적으로 하자가 없는지, 그 파장이 어떨지를 지켜본 후에 반응을 보여야 했으나, 김대통령의 경솔한 지지발언은 자민련과 한나라당의 의구심을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여당의 시민단체에 대한 여러 실책은 더 거슬러올라가야 한다. 현집권당인 새천년민주당은 과거 오랜 야당생활을 거치면서 사안에 따라 시민·사회운동과 공조함으로써 그 생리를 잘 아는 편인데다가, 집권 이후 여러 정책의 입안과정에서 다수당인 한나라당의 방해에 시달려왔다. 이 때문에 여당은 시민·사회운동을 자신들의 영향권 안에 두려는 노력을 끈질기게 해왔다. 특히 제2건국운동은 자율적으로 일하고자 하는 시민·사회운동단체에 곤혹스런 상황을 가져다주었다. 프로젝트들은 심사를 통해, 그 단체의 실적과 사업안의 내용에 따라 배정되었지만, 해당 부서의 담당자들은 시혜를 베풀어준 것으로 생각하고 은근히 반대급부를 요구하는 곤혹스런 상황이 종종 벌어졌고, 적지 않은 사회·시민운동단체들이 이에 저항해왔다. 집권 여당으로서도 프로젝트 배정 과정에서 야당의 오해를 살 소지가 생겨날 수 있는데, 이에 대처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여당 스스로 시민운동의 자율성과 독자성을 존중하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시민운동단체들은 이에 대하여 ‘정부 부처로부터 받는 프로젝트는 총예산의 40〜50%를 넘지 못한다’든가 ‘경상비 지원은 절대 받지 않는다’는 등의 내규를 마련하여 대처하고 있다. 필자는 정부가 행하는 ‘위로부터의 혁명’이 역사 속에서 아무 효과가 없는 것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그렇더라도 여당은 최소한 아래로부터의 시민·사회운동이 없이는 민주주의의 완성을 알리는 최종 봉인을 찍을 수 없음을 인정하고, 그 독자성과 자율성을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
(3) 그외에도 낙천·낙선운동이 집중화·일원화되면서, 총선시민연대의 활동에 포괄되지 못하는 부문의 운동이 상대적으로 도외시되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경실련의 선거후보에 대한 정보공개운동에 이어, 총선시민연대,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공선협) 그리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까지 후보명단을 공개하려 하자, 시민운동이 분열의 조짐을 보인다는 언론의 비난이 제기되거나 4중의 명단공개가 가져오는 혼란에 대한 조심스런 비판이 있었다. 그 결과 총선감시시민운동은 총선시민연대로 일원화되었고, 이 과정에서 곤혹스런 입장에 빠진 것은 여성운동과 민주노총이라 할 수 있다. 총선시민연대가 중립성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낙천·낙선운동으로 활동범위를 한정한 데 비해, 여성운동이나 민주노총은 그보다는 여성 혹은 노동자를 한 명이라도 더 정치권에 진출시켜야 할 입장이다.
민주노총이 1월 11일 예상을 뒤엎고 이 운동에 참여하기로 결정하였으나, 당황한 총선시민연대는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면서 낙천·낙선운동에 동참하는 것은 국민정서상 무리라는 의견을 전달하는 한편, 선거법개정 협력 등 연대의 목표와 수준을 조정하자는 제안을 하여, 민주노총 배제라는 오해를 불식시키고자 했다. 민주노총의 경우에는 60만이라는 결집된 대중이 있고 또한 민주노동당을 통해 스스로 정치참여를 모색하고 있는 반면, 여전히 대중운동보다는 압력집단의 성격을 띠면서 캠페인 등을 통해 운동을 이끌고 있는 여성들에게 이는 당혹스럽기 짝이 없는 상황이다.
여성의 정치세력화에 관한 한, 한국은 형편없는 후진국이다. 그 좋은 증거는 한국의 OECD 가입 이후 독일에서 오는 모든 개발원조가 중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경제성장과 여성의 지위 사이의 관계가 너무 불균형하다’는 이유로 여성운동단체들만이 여전히 개발원조금을 받고 있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20세기 후반 10여년 동안 한국여성의 자의식은 대단히 높아졌고, 남녀고용평등법과 성차별금지법을 위시해 여성지위 향상을 위한 여러가지 법이 제정되었지만, 아쉽게도 여성의 정치세력화는 21세기의 과제로 남아 있다.
1996년 유엔 ‘세계여성의 해’를 맞아 뻬이징에서 열린 여성대회의 핵심 슬로건은 ‘여성의 주류화(main-streaming)’였다. 이후 여성의 주류화를 어떤 방식으로 시도할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이 진보적 여성운동 내에서 시작되었다. 과연 여성이 정치진출을 통해, 기존 정치판에 ‘끼여들기’를 할 것인지 아니면 ‘새판짜기’를 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바로 그것이다. 기성의 혼탁한 정치판에 여성이 끼여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에 대한 회의는 여성해방이 이루어지는 사회는 대안사회의 실현과 일치되어야 한다는 여성운동의 바람과 결합되었다. ‘기존정당에의 끼여들기는 여성운동의 자율성에 손상을 입히고, 특히 여성운동 지도부의 정치진출은 이들의 활동이 정치권 진출의 발판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켜 여성운동 자체에 대한 도덕성 시비를 낳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한국여성단체연합(여성단체연합)은 자신을 포함한 산하단체 대표들의 임기중 공직 및 정치 진출을 금지하는 결의안을 2000년 1월 총회에서 통과시켰다. 이는 진보적 여성운동이 “정치를 재개념화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공·사 영역을 재정치화하고 일상생활을 정치의 장으로 만드는 비엘리뜨적인 비국가적인 지역정치, 사회운동의 정치”(여성단체연합 2000년 1월 정기총회 자료집, 17면)를 시도할 것을 표방하면서, ‘새판짜기’에 더 비중을 두기 시작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이런 취지에서 여성단체연합은 총선시민연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집행부를 이끌고 가는 주요단체의 하나로 기능하고 있다.
진보적 여성운동의 주력부대에 해당하는 여성단체연합이 30여개 산하단체와 함께 총선시민연대에 참여한 반면, 1월 27일 새로 출범한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와 ‘한국여성유권자연맹’은 여성의 더 많은 정치진출을 촉구하는 건의문과 함께 지역구 출마를 요청한 21명의 여성에 대한 공천요구를 공동 발표하였으나, 곧 총선시민연대의 반대에 부딪혔다. 500개 단체를 포괄하고 있고 언론과 두 정당이 공격의 칼날을 세우고 있는 긴장상황에서, 총선시민연대가 여성문제까지 함께 아우를 여력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한국여성유권자연맹은 총선시민연대를 탈퇴한 반면,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는 기왕의 공천요구를 철회하고 총선시민연대에 잔류하는 방식을 선택하였다. 이 사건은 언론에서 총선시민연대를 흠집내고, 여성의 움직임을 희화적으로 만들 위험을 남겨주었다.
그외에도 한나라당이 여성단체연합을 대표적으로 거명하여 여권과의 연계 주범으로 지목하면서, 정치의 주변부에 머물러 있는 여성이 결국 속죄양의 굴레를 뒤집어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겨나고 있다. 한나라당 발표에 따르면, 여성단체연합은 98〜99년 동안 총 42억의 지원을 받은 것으로 되어 있으나, 그 대부분은 IMF사태라는 국가 초유의 상황에 직면하여, 관료조직의 네트워크로는 집행이 불가능한 각지역의 실직여성가장 보조와 실직여성 일자리 창출사업에 지출된 직접지원비였다.
여성운동의 이중행보에서 우리는 여성운동이 처한 모순적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그간 여성운동은 ‘새판짜기’에 더 비중을 두면서도, ‘여성 30% 할당제’를 요구해왔다. 이런 맥락에서 정계의 여성 비율이 최소한 30%를 넘지 않는 한 ‘새판짜기’를 위한 목소리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제기되었다. 1〜2%의 여성이 정치판에 끼여들어서는, 가부장적 정치문화를 깨기보다는 오히려 그에 동화될 수밖에 없음을 그간의 여성 정계진출의 결과가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결국 총선과 관련하여 여성들은 이중전략을 택할 수밖에 없다. 1980년대말 이후 진보적 여성들은 ‘함께 그리고 따로’라는 전략을 선택했다. 이에 따라 진보적 여성운동의 주력부대는 ‘새판짜기’에 중점을 두되, 그를 위해서 남성이 중심이 된 시민운동과 ‘함께’ 가는 경로를 선택하는 것이다. 시민운동이 저절로 성평등적인 구조를 창출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이 과정에서 젠더(gender) 관점을 둘러싼 긴장과 갈등이 심심찮게 연출되겠지만, 여성운동은 이를 딛고 일어서야 한다. 그러나 ‘따로’를 표방하는 여성운동도 ‘끼여들기’를 시도해야 하고, 이에 대해 여타 여성운동이 배타적인 태도를 취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최근 서방국가들이나 일본을 중심으로 ‘민족주의와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포스트식민주의적 주장이 가미된 이 논쟁에서 여성은 민족국가 내에서 ‘국민화’된 한편 늘 동원되어 활용되면서도 주변화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런 논쟁의 주류를 따르자면, 여성은 어떤 형태로든 ‘함께’ 가는 길을 포기해야겠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우리 여성운동은 객관적 상황이나 잠재력에서 볼 때 여전히 함께 가는 ‘새판짜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정리하면, 부패정치인을 정계에서 퇴출하는 작업은 여성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일차적인 과제가 되어야 함에도 낙천·낙선운동에서 더 나아가 정치에서 홀대되었던 집단에게 정치진출의 문을 개방하기 위한 운동 또한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총선을 통한 민주주의혁명과 관련하여 시민운동, 언론 그리고 사회적 담론에서도 여성을 함께 아우르려는 따뜻한 시선, 달리 말하면 젠더 관점을 갖출 것을 요청한다. 아울러 총선감시시민운동을 상처내어 지나가버린 시대를 붙잡아보려는 구시대 정치인들에게는 안쓰러운 몸부림을 그만두고 이제라도 시대의 변화를 겸허히 읽을 것을 권유하고 싶다.
*“선거법 제87조에 따른 위법시비” 부분과 관련하여, 이 글은 2월 9일 선거법이 타결되기 이전에 씌어진 것임을 밝혀둔다─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