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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2000년을 여는 젊은 시인 20인
박형준 朴瑩浚
1966년 전북 정읍 출생. 199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 『빵냄새를 풍기는 거울』 등이 있음.
창문
한 남자가 살았다
남자는 창 너머로
세상을 가리고 있는
붉은 기와지붕을 보았다
지붕에 고양이가 오고
지붕에 새가 오고
지붕에 흙먼지가 쌓이고
지붕 위로 툭 터진 하늘에
굴뚝에서 올라가는 연기가
길처럼 흩어지고
그러는 사이
지붕에 더위가 오고
지붕에 어둠이 오고
지붕에 추위가 오고
지붕에 봄이 오고
비 오는 날에는
지붕에 우는 소리 나고
그것을 바라보는 일은 행복한 일
빨래하는 처녀들
손가락 끝에서 둥글게 퍼져나가는 물살에
익사한 처녀가 희디희게 떠내려가고,
물에 잠겨 있는 어머니
버드나무 가지에 매달려
오늘 밤 흰 달로 오시네
물가에 둥근 돌
빨래가 쌓였던 곳,
돌덩어리 가슴에 박혀 울던 사람들
물결에 씻겨가네
파문 지는 물살 아래
누워 있네,
처녀들 모두 떠나가고
얼음구멍에 손을 넣고
어머니 빨래를 끄집어내시네
죽은 처녀들 끄집어내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