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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남북정상회담과 한국 사회운동의 미래
2000년 여름호 특집을 읽고
이주희 李周禧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우리는 짧은 시기에 이룩한 경제성장이 사회발전의 다른 차원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다. 권위주의 시대의 독재자들이 다른 부문의 정상적인 성장을 희생시키면서 ‘경제성장’에 대해서는 모든 왜곡된 정신적·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단상황과 냉전체제가 빚어낸 “비이성의 정치”1는 그 불균형을 더욱 악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그런 와중에 사회운동이 훌륭히 성장하면서 잘난 ‘경제성장’이 일으킨 온갖 문제를 수습해온 것은 마땅히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새 천년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4·13총선의 열기로 들떴던 2000년 여름, 사회운동의 다양한 갈래를 돌아본 『창작과비평』 특집은 진보세력이 더욱 절차탁마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다.
그러나 부정의와 비합리를 동반한 급격한 정치경제적 변화가 그것에 대항할 수 있는 튼튼한 사회운동의 산실인 것만은 아니다. 빠른 변화는 조율되지 못한 대응을 초래한다. 80년대의 사회운동이 독재와 맞서기에 급급해 의미있는 내부적 분화를 이루지 못한 반면, 90년대는 적어도 운동이 추구하는 목적과 방식의 측면에서 질적인 전환과 양적인 폭발을 이룬 시기였다. 문제는 개별운동의 약진이 가져온 총체적 결과가 우리 시대의 문제를 앞서서 진단하고 통찰력있는 리더십을 제시하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는 점이다. 제도권 정치뿐 아니라 그에 대항하는 사회운동의 발전에도 큰 제약으로 작용했던 남북관계가 성공적인 정상회담을 계기로 통일을 향한 역사적인 대전환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이 글은 지난호 『창작과비평』 특집에 실린 논문과 좌담이 함축하고 있는 시각과 질문을 끌어내어 살펴보고, 그것이 요구하는 다양한 답을,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해 현재의 격변하는 정치경제적 환경에 비추어 찾아보려는 조심스러운 시도이다.
노동운동과 시민운동: 대결구도의 전환을 위한 시론
분단구조와 반공이데올로기가 발전의 치명적인 장애로 작용한 대표적인 사회운동의 예는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다. 노동운동은 1987년 강성 권위주의체제의 붕괴 이전까지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강요된 노사협조주의 노선에 묶여 제대로 된 단체행동권 한번 변변히 행사해보지 못했다. 비록 80년대말 민주적 노동운동의 비약적 성장을 경험하긴 했지만, 이번 총선을 통해 노동운동은 정치세력화를 위해 뚫어야 할 높고 두꺼운 벽을 다시 한번 확인해야 했다. 시민운동도 진보정당이 설 수 없는 척박한 정치현실에서 사실상 제도권 정치의 기본틀을 정비하려는 “준(準)정치세력”2으로밖에 기능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노동운동과 시민운동 모두 처한 상황에 매몰되어 큰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어떤 양보도 쉽게 하지 않는 국가와 자본을 상대로 힘든 싸움을 계속하느라 솔직히 노동운동이 본연의 기능과 경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기는 어려웠다. 노동운동이 계급중심성을 희석시키고 다른 집단과 이슈를 포괄하기 위해선 자신의 핵심 지지세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운동이 ‘조직’된 노동자의 이익을 명료하게 주창할수록 광범위한 사회적 이슈의 대변자역할은 할 수 없게 되기 마련이다. 한편 혁신세력이 제도권 정치 내에 부재한 틈을 메우려 노력해온 시민운동은 내부 활동가 스스로 “민중진영과의 연대를 회피하고, 핵심권력의 비위를 건드리려 하지 않는 길들여진”3 모습이라 평가하듯, 가장 근본적인 사회모순을 정면으로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동원능력이 가장 큰 이 두 운동이 연대해 혁신세력의 발전을 위한 지적·정치적 리더십을 함께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사회운동 전체에 큰 손실이다. 남북정상회담이 냉전체제 하에서 굳어진 국내정치의 판도에 해빙의 가능성을 불어넣은 지금은 진지하게 혁신정당의 발전을 위한 운동간 연대를 생각해보아야 할 때이다.
물론 지금 이 시점에서 ‘해빙’의 가능성은 그저 가능성일 뿐이다. 남북정상회담과 통일에 대한 기대가 진보세력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조건반사적인 반대논리를 약화시켜줄 수는 있지만, 동시에 보수세력의 극우화 경향도 함께 불러올 수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운동세력간의 현명한 협력과 합의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지난호 특집에 실린 글들이 김영희(金英姬)가 기조논문4에서 제기한 ‘차이 속의 연대 형성’이란 주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은 것은 아쉬운 여운을 남긴다. 특히 여성운동 못지않게 다른 운동과의 관계 설정이 운동의 성장과 지향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노동운동을 다룬 심상정(沈相)의 글이 이 위태롭지만 불가피한 줄타기에 대한 성찰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은 무척 아쉬운 일이다.5 여성운동이 여성노동자의 보호와 시민권 확대를 위해서 노동운동을 무시할 수 없듯이, 노동운동도 좀더 넓은 사회적 역할과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여성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의 세계화와 시장의 힘이 개인에게 가하는 압력은 이제까지의 노동운동의 환경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그리하여 1990년 17.2%였던 노동운동의 조직률은 작년말 11.8%까지 떨어졌다. 한데 이 전체 조직률에서 간과되기 쉬운 것은, 1999년 여성만을 위한 여성노동조합이 꽤 신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노동자의 조직률이 남성노동자의 조직률 15.3%에 크게 못 미치는 6.2%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노동조합이 제조업 대기업 남성노동자뿐 아니라 더 광범위한 사회집단, 특히 지금까지 소외된 노동자집단의 이해대표기구라는 인식은 노동운동에 대한 노동운동의 관심과 국가적 수준에서의 교섭력을 키우는 기본적인 조건이다.
하지만 노동운동이 여성운동과의 접합점을 주도적으로 모색하더라도, 단순히 여성노동자를 새로운 조직대상으로 파악하거나 노동조합내 정책결정권을 가진 여성의 비율을 높이는 일로는 부족하며, 그 이상을 시도해야 한다. 즉 대안적 사회의 주된 가치와 이상을 포함해야 하는 것이다. 양 노총이 올해의 핵심사업으로 함께 추진하고 있는 근로시간 단축 문제를 보자. 1주 단위 법정근로시간을 40시간으로 개정하자는 요구는 금융위기 이후 만연한 실업과 고용불안에 대한 대책으로서 고용확대를 가장 크게 염두에 둔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노동시간 단축은 생산영역에서의 ‘남성’ 노동권의 평등한 분배뿐 아니라 고용과 가정생활 전반에 있어서의 남녀평등이라는 좀더 큰 목표6와 함께 모색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성고용의 확대방안과 가정내 성별 역할분담의 공정한 배분에 대한 논의도 근로시간 단축 문제와 함께 노동운동 내부에서 활발히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1주 40시간 1일 8시간의 노동은 사실 집에서 전적으로 가사를 돌보는 책임자의 존재를 전제로 한 역할분업에 더 적합한 유형이다. 이미 상당한 수준의 근로시간 단축을 이룩한 유럽에서도 1주 단위의 시간단축보다 1일 단위의 노동시간 단축이 가정과 일에 대한 책임을 나누는 데 더 적합한 방식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7
운동간 연대의 부족은 시민운동이 노동운동의 주요 이슈에 침묵하고 있는 데서 잘 발견된다. 근로시간 단축은 공동체 활동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해준다는 의미에서 “시민 없는 시민운동”8을 해온 시민운동단체에도 중요한 문제이다. 시민주권의 확립을 시민운동이 가장 가치있게 여긴다면, 노동시민의 기본권을 위협하는 무리한 구조조정과 그에 따른 실업문제를 방관하고 있을 수 없다. 빈곤과 고용구조 악화 등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 합심해서 풀어가야 할 노동복지의 핵심적 과제들은 수없이 많다. 출범이 미루어져온 개혁연대가 총선시민연대의 뒤를 이어 가을에 발족하면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 사회를 분열시키는 갈등과 부정의의 차원은 다양할 수 있지만, 전지구적 시대에 그 다차원적인 화학작용으로 발생한 문제에 대한 부분적 해결책은 별 의미가 없을 수 있다. 개혁연대가 시민단체 차원의 연대를 넘어서 우리를 둘러싼 문제의 복합성을 이해하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통합적인 조직구조와 전략을 발견하게 되기를 바란다. 개혁연대가 관심을 가지는 사회복지와 관련해 노동운동과 정책적 대안 마련을 위한 실질적 공조체제를 갖추는 것이 그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운동의 주체는 누구인가?: 386세대 대 n세대
지난호 특집에서 박영선(朴映宣)9이 제기한 n세대의 정치의식과 사회운동 참여문제는 새삼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해준 주제였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과거에 우리는 변혁의 주체를 노동계급과 민중으로 보는 급진론자와 중민(中民)과 신중간계층을 가장 개혁지향적인 세력으로 강조하는 일단의 학자 사이의 소모적인 논쟁을 지켜본 일이 있다. 물론 중간계급은 그들이 개혁지향적이든 아니든 간에 노동계급이 절대다수를 이루지 못하는 상태에서 계급연합의 주요 대상으로 주목되어야 할 계급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 논쟁은 계급 내의 이질성, 계급의식상의 여러 구성요소마다 발견될 수 있는 미묘한 차이를 감안하지 않은 단순한 주장에 바탕을 두고 있었을 뿐이다. 그 시기에 이루어진 한 연구10는 정치의식 면에서 가장 진보적인 집단은 노동계급도 신중간층도 아닌, 그 두 계급 내의 소규모 분파인 대기업의 핵심노동자와 자본주의 생산과정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반(半) 자율적 전문가집단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운동의 현실은 바로 이 결과를 반영하고 있었다. 기업별 노조주의에 묶인 노동운동에 영세기업과 하위 써비스업에 종사하는 주변적 노동자의 참여는 미미했으며, 소수 스타 교수와 전문가에 의해 주도되어온 시민운동에서 대기업 중간관리자 넥타이부대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이제 노동계급과 신중간층에 대한 논쟁은 386세대와 n세대에 대한 관심으로 대치되었다. 과거의 기억은 우리가 다시 유사한 논의를 되풀이할 필요가 있는지 되묻게 해준다. 실제로 다차원적인 정체성과 관심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 사회운동의 주체를 무 자르듯이 구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비록 386세대가 광주항쟁과 민주화의 성취라는 역사적인 경험을 함께 나눈 세대라 해도 그 내부에는 수많은 차이가 존재한다. 비록 이들 중의 일부는 참신한 정치인으로 아니면 혁신적인 사회운동가로 계속 남아 있겠지만, 대다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486, 586으로 그 기능과 지위가 업그레이드되면서 지금 그들이 비판하는 기성세대와 닮은꼴이 될 것이다. n세대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벤처 열풍의 소수 생존자로 상당한 부를 확보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불행히도 유연해진 노동시장에 진입조차 못하거나 진입했다 하더라도 임시직으로 돌며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n세대의 투표율이 낮은 이유는 잘난 n세대든 못난 n세대든 투표를 하든 안하든 또는 누구를 찍든 그들 인생의 방향과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때문이리라.
이미 냉전의 유산으로 남북이 분단된 상황에서 우리는 나머지 반쪽을 나누는 수많은 사회적 간극을 경험해왔다. 과거 권위주의정권이 친(親)민주주의세력을 분할해 지배하기 위한 전략의 일부로 부추겨진 지역감정에서부터 학연 및 세대차이 문제에 이르기까지, 사회갈등의 본질을 흐리는 이런 중층적 간극의 존재는 제대로 된 정당정치의 발전을 막았을 뿐 아니라 사회운동의 힘을 한데 모으는 노력에도 부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다. 지금 사회운동에 닥친 가장 급박한 과제는 지역감정처럼 파괴적인 사회적 간극을 적극적으로 제거하고 가장 핵심적인 사회모순이 중첩되는 부분에서 개별 사회운동세력들의 연대를 이끌어내는 일이다. 개별 운동의 주체는 말할 필요도 없이 특정 세대보다는 그 운동이 추구하는 목적에 의해 가장 깊이 영향을 받고, 또 가장 열심히 그것에 대응하고자 하는 개인이다. 여성이면서 n세대이기도 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이지만 또 환경문제에 민감한 소비자이기도 한 개인들로 사회가 구성되었다는 것은 사회운동에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제공한다. 비록 개별 사회운동이 조직력을 확충하기 위해서 기울여야 할 노력은 더 커지지만, 즉 자기 운동의 목표가 이 개인의 정체성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높이기 위한 운동간 경쟁은 격화될 수 있지만, 사회운동간 연대에 대해 개인이 느낄 수 있는 무관심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n세대가 미래 사회운동의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하게 될 분야는 바로 사회운동조직의 민주화일 것이다. 사회운동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관료화의 문제가 발생하기 십상이다. 이미 “시민운동 내부 조직문화도 기성사회와 별반 다를 것 없다”11는 자성의 목소리가 시민운동 내부에서도 서서히 들려오고 있는 상황이다. 의욕과 신념을 가진 운동참여자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결국 운동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조직의 경직화는 장기적인 발전을 원하는 어떤 사회운동단체도 경계해야 할 문제이다. 과거의 독재권력은 반대세력에게 그들과 다름없는 강력한 카리스마와 일사불란한 응전태세를 요구했다. 지금은 다르다. 주요 이슈에 대한 끊임없는 민주적 토론과 광범위한 운동간 네트워크가 필요한 이때 n세대가 새로운 정치시민으로 진입한 것은 일단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의식있는 n세대가 적극적으로 사회운동에 합류할 수 있도록 조직을 매력적으로 만들어보자. 노동운동이 개인주의적인 이 새로운 청년층을 조직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신세대는 환경문제 중에서도 어떤 부분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질 것인가? 반(反)통일적인 이데올로기의 경직성은 없지만 통일의 당위성 자체에 의문을 지닌 이 세대12를 어떻게 통일운동에 참여하도록 할 수 있을까?
남북통일시대의 사회운동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은 적어도 다음의 두 가지 이유로 통일운동의 미래에 밝은 기대를 걸게 한다. 우선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공동선언은 지금까지 통일운동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던 단체들로부터도 모처럼 진지한 환영과 관심을 받으며 평화통일운동의 저변 확대를 단번에 이루어냈다. 또한 이 회담은 흡수통일도 적화통일도 아닌 점진적 평화통일의 가능성을 열어 보임으로써, 우리가 국가보안법 등 냉전시대의 법률과 적대의식을 청산하고 새로운 통일국가의 청사진을 그릴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벌어주었다. 90년대를 통해 다원화되고 활발해진 민간 통일운동의 저력13을 생각해볼 때 지금부터는 본격적으로 남북이 서로 분단이 남긴 상처를 치유하며 함께 살 수 있는 평화롭고 건강한 통일의 과정을 준비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개별 사회운동은 통일과 관련해 결코 만만치 않은 과제들을 안고 있다. 지금까지 여성운동이 통일과 관련하여 벌여온 활동은 주로 방위비 삭감을 통한 모성보호와 여성복지의 확충, 그리고 북한의 식량난 해결을 위한 모금운동에 국한되어 있었다. 여성운동이 분단기간 동안 극대화된 남북 여성의 이질성을 극복하면서 남북한 모두에서 성평등이 실현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의식과 의지가 필요하다. 통일이 여성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꿀 것인가는 아직 두고볼 문제이나, 그것이 양측 모두에 엄청난 규모의 변화를 수반하리라는 것은 명확하다. 남북의 경제교류가 활성화되면 남한여성과 북한남성이 제한된 일자리를 두고 경쟁관계에 놓일 수도 있다.14 거기에 끼여들지 못하는 북한여성은 마치 미국에서 유색인종의 여성이 그렇듯이 이중의 착취사슬에 매이게 될 가능성도 있다. 물론 남한여성도 경쟁에 밀려 결국 그녀들과 한 배를 타게 될지도 모른다. 사회주의의 이상이 가부장제의 튼튼한 벽을 부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처럼 보이는 북한의 여성15을 여성운동이 함께 끌어안기 위해서는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여성 내부 차이의 심화와 정체성의 혼란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노동운동의 경우 민주노총이 1998년 통일운동 실천 중심사업으로 ‘남북 노동자 교류의 활성화’를 결의하고 1999년 8월 14일 판문각에서 조선직업총동맹과 교류협력사업을 지속하기로 합의한 후 적극적으로 남북 노동자 사이의 거리를 좁히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지난해 평양에서 열린 남북노동자축구대회는 노동운동이 노동자 통일운동의 대중화를 위해 실천한 대표적인 상징적 활동이었다. 남북한 노동자간의 토론회와 문화제도 정부에 지원을 요청해놓은 상태이다. 그러나 남북경제협력이 활성화되면서 우리 기업의 북한 현지공장이 세워지고 ‘노동력’ 교류가 현안으로 떠오르면, 노동운동은 남북 노동자간의 문화·체육교류와 더불어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준비 역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남한의 노동운동이 북한 노동자의 이해와 복지에 주의깊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통합 이후 독일노총이 맞이한 위기를 재현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비록 독일식의 불평등하고 급작스러운 흡수통일을 시도하지 않는다고 해도 남한과 북한은 이미 경제력 차이에 못지않은 심대한 인적 자본상의 차이를 가지고 있다. 서독 노조는 통일정책 자체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무관심했으며, 통합 이후 임금수준 동일화를 비롯한 동독 노동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한 결과 상당수의 동독 조합원을 짧은 기간에 상실하고 말았다.16
독일 노동운동의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긴 하지만, 절대다수의 노동자를 미조직상태로 남겨두고 있는 우리의 기업별 노동조합운동이 남북간 노동자의 생활수준과 임금 차이 극복을 위해 앞으로 가야 할 길은 무척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우리 사회운동 내부에서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 경험한 ‘차이 속의 연대 형성’의 어려움은 남북한 차이를 극복한 노동운동의 연대 형성이 맞이할 어려움이 결코 그보다 작지 않으리란 예상을 가능하게 한다. 시민운동 역시 남북정상회담 이후 새로운 도전을 맞이하고 있다. 환경운동은 남북경제협력과 개발이 북한지역의 환경문제 악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감시하는 새 일거리를 떠맡았으며, 인권운동은 분단이라는 특수상황으로 인간의 기본권이 침해될 명분이 약화됨에 따라 남북을 포괄한 시민권의 진정한 신장을 위한 보편적 기준을 그려보아야 한다.
지금까지 사회운동이 어려운 환경에서 우리를 지금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하기 위해 애쓴 흔적은 도처에서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그리고 그것을 키워온 잠재력은 우리가 껴안고 살아야 했던 가장 큰 아픔이 극복되는 과정을 통해 폭발적으로 신장될 계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그 계기는 장기적인 전망과 영리한 전략, 그리고 뜨거운 헌신성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남북정상회담과 그에 뒤이은 통일과정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제기하는 도전과 그에 따른 보람은 얕은 지식과 경험으로 여기서 살펴본 내용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리라 믿는다. 그리고 그러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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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장집,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주최 국제회의 ‘남북정상회담과 패러다임 전환: 통일과정과 통일체제’(2000.6.26) 기조발제문, 6면.↩
- 박형준 「전환기 사회운동을 보는 하나의 시각」, 『내가 살고 싶은 세상』, 또하나의 문화 1994, 255면.↩
- 김동춘 「NGO 내부점검이 필요하다」, 『참여사회』 2000년 7월호 19면.↩
- 김영희 「차이와 연대」, 『창작과비평』 2000년 여름호.↩
-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의 연대에 대한 내용은 심상정 「‘노동의 시대’를 위하여」, 『창작과비평』 2000년 여름호 74면 각주 2에 부분적으로 언급되어 있으나, 본문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지는 않았다.↩
- 정영애 「평등한 노동권과 재산권책임의 공유: 노동시간 단축을 중심으로」, 『여성과사회』 1998년 제9호; 김영희, 앞의 글 참조.↩
- Judy Wajcman, “Feminism Facing Industrial Relations in Britain,” British Journal of Industrial Relations, 38:2, 2000.↩
- 유종성 「전환기 시민운동의 방향과 경실련의 과제」(http://www.ccej.or.kr/1998).↩
- 박영선 「n세대와 사회운동」, 『창작과비평』 2000년 여름호.↩
- Joohee Lee, “Class structure and Class Consciousness in South Korea,” Journal of Contemporary Asia 27:2, 1997.↩
- 시민단체 평간사 4인좌담 「100년을 계획하는 리더십이 우리에게 있는가?」, 『참여사회』 2000년 7월호 29면.↩
- 『한겨레』가 전국 100명의 통일의식을 조사한 결과 20대의 13.1%만이 우리가 분단국임을 자주 느끼고 있으며 절반 정도만이 통일의 당위성에 공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2000년 5월 15일자).↩
- 80년대말부터 시작된 민간 통일운동은 90년대 중반 재야·종교·시민단체로 확대되면서 운동의 내용도 정치군사 문제뿐 아니라 사회문화와 경제협력 등으로 급속히 확대되었다. 김창수 「한반도 정세변화와 운동진영의 대응」, 『노동사회』 2000년 제7호.↩
- 정현백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여성의 요구와 역할」, 한국여성단체연합·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주최 ‘여성평화포럼’(2000.5.16) 발제문.↩
- 조형 「나의 통일사업, 또 하나의 통일운동」, 『내가 살고 싶은 세상』, 또하나의 문화 1994 참조.↩
- 정병기 「독일 통일과정에서의 노동조합의 대응과 통일독일의 노동자 상태」, 노동자의 힘(준비모임) 정세토론회 ‘남북정상회담과 노동자 민중운동의 대응방향’(2000.5.10) 발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