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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통신

 

교육실습 체험을 통해 본 학교현장

 

이승민 李升珉

서울대 수학과 4학년.

 

 

1. 이번 교육실습에서 나는 무엇보다도 교육현장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고 싶었다. 전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학교붕괴니 공교육의 위기니 하는 문제들에 대해 현장에서 그것을 직접 목격하고 체험하고 싶었던 것이다. 또한 그것과 더불어 내가 과연 교사로서 얼마나 자질이 있는지 알아보고 학교현장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판단해볼 기회로 삼으려 했다.

내가 교육실습을 한 학교는 서울 시내의 한 중학교였다. 학교현장에서 처음으로 내게 다가온 것은 바로 ‘교무회의’였다. 원래는 한달에 한번 실시하는 회의지만 내가 참석한 회의는 교육실습생과의 상견례를 겸한 임시회의였다. 교무회의의 모습을 처음으로 직접 본 나는 무척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학급회의 시간에 학교 뒷동산으로 산행을 하자는 교장선생님의 제안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하지만 회의는 너무나 힘없고 시들하게 진행되었다. 회의에 임하는 선생님들의 표정에는 의욕도 없고 관심도 없는 것이 역력했다. 선뜻 의견을 제시하는 선생님도 별로 없었고 그 의견에 동조하거나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선생님도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선생님은 의견을 제시할 마음이 없는 듯 단지 몇분의 선생님이 마이크를 독차지하였고, 그 제안에 반대하는 일부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교장선생님은 일단 해보자는 분위기로 일관했으며, 결국 교장선생님의 제안대로 결정되었다. 그 교무회의를 보면서 나는 무언가 보이지 않는 갈등과 무기력함을 느꼈다.

나중에 교장선생님과 젊은 선생님들에게 따로따로 들은 것이지만, 교장선생님은 젊은 선생님들이 자기 의견에 대해 무조건 반대한다고 했고, 젊은 선생님들은 교장선생님이 연륜만 앞세워 너무 일방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려 한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갈등의 실체였던 것 같다. 내가 만일 정식교사로 그 회의에 참석했다면 나는 산행에 찬성했을 것이다. 야외수업이라는 것도 있지 않은가? 또한 산행에서 어떤 것을 얻을 것인가, 무슨 프로그램을 진행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을 가지고 토론에 임했을 것이다. 아이들도 좋아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산행을 했을 때 별다른 프로그램이 없었는데도 아이들은 마치 소풍가는 것처럼 좋아했다.

또 한가지 선생님들의 모습 중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선생님들의 연구가 너무 개인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교과에 관련된 자료를 만들고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거나 수업이 없는 시간에 다음 시간 수업자료를 만들고 준비하는 등 선생님들 각자는 무척 노력을 많이 하는 모습이었으나, 그것이 전체적으로 모아져 체계적으로 협조가 이루어지고 공유되는 분위기는 보이지 않았다. 각 실습실도 과학실을 제외하고는 이용하는 사례가 거의 없었다.

교과협의체가 있기는 하지만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것 같지 않았다. 끊임없이 발전해가는 학문에는 교과서에 나오지 않지만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가르쳐주어야 할 것들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교과협의체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공유하고 잘 가르칠 방법을 논의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교육공학이 발달하고 교육방법에 대한 연구가 발전하고 있지만, 실제 학교현장에서는 그것이 적용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다양하고 참신한 수업방식에 대해 서로 논의하고 개발하고 적용해보는 모습이 보이지 않고 단지 선생님 개개인의 능력에만 의존하는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선생님들 사이에 놓인 보이지 않는 갈등에 그 한가지 원인이 있다고 생각된다. 선생님의 권익과 교육을 고민하는 조직이 전교조와 한교조로 나뉘어 있어 서로의 생각에 차이가 있고, 젊고 의욕적인 선생님들과 경험은 많지만 보수적인 나이 드신 선생님들 사이의 세대갈등으로 인해 학교 행사나 정책에 대해 견해 차이가 나타날 수밖에 없는데, 여기에서 비롯된 갈등이 교과협의체의 활동과 연구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관점, 교육에 대한 시각, 교육방법에 대한 노하우도 선생님마다 다르고, 또 선생님들이 자신의 영역에 대한 간섭을 싫어한다는 것도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한 중학교의 수업시간(사진은 이 글의 특정사실과 관계 없음)

한 중학교의 수업시간(사진은 이 글의 특정사실과 관계 없음)

 

또한 선생님 개개인의 수업시간이 제각기 다르고 퇴근시간 이전에 함께 모이는 시간을 만들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도 실질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교과협의체 모임을 갖기 위해서는 부득이 퇴근 이후의 시간을 이용해야 하는데,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 퇴근 이후에 모임을 가질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 반면 학교에서 아이들의 모습은 무척 밝고 순진했다. 초롱초롱한 아이들의 눈망울과 천진난만한 모습은 매우 희망적으로 보였다. 그리고 아이들은 참으로 다양했다. 어떤 조건이나 제재를 가하지 않으면 한가지 일에 반응하는 방식이 모두 제각각이었다.

조용히 하라고 해도 떠들고 장난은 치지만 자신의 잘못 때문에 선생님이 화가 난 경우는 솔직히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도 가지고 있다. 공부하기보다는 운동장과 복도에서 뛰어놀고 장난치고 싶어한다. 별일도 아닌 일로 다투고 피가 나도록 싸우기도 한다. 그리고 다음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다시 어깨동무하고 다닌다. 어른들의 세계를 빨리 경험하고 싶어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이성의 교생선생님에게 부끄러운 선물과 편지를 건네기도 한다. 이러한 아이들의 모습은 내가 예전에 학교 다니던 시절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장난치고 싸우다 선생님께 걸려서 혼나고 벌받았다. 호기심으로 몰래 술도 마셔보고 담배를 피우기도 했다. 좋아하는 선생님 수업은 잘 듣고, 싫어하는 선생님 수업에서는 일부러 떠들고 장난을 치기도 했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의 아이들은 매우 솔직하고 자기 의견이나 관점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예전엔 수업 도중에 선생님께 화장실 가고 싶다고 말하기가 두려워서 참다가 그 자리에서 오줌을 싸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손들고 당당하게 말한다. 선생님이 설명하다가 틀려도 예전엔 뭐라고 해야 할지 망설이곤 했지만, 지금은 ‘이거 아니냐’고 말해주기도 한다. 선생님의 권위가 예전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권위주의에 의존한 교육은 탈피해야 하지 않는가? 그리고 그렇게 솔직하고 당당한 모습은 오히려 계발해주고 권장해야 할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이들이 모두 좋은 모습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가정형편이 어렵고 부모의 불화로 인해 어두워 보이는 아이들도 있다. 비행의 정도가 심해 특별한 지도가 필요한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가 요즘 아이들이 예전에 비해 못됐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예전에도 비행청소년은 있었다. 다만 양과 질적인 면에서 지금보다 정도가 낮아 사회적으로 문제화되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예전엔 어른들의 타락 정도도 지금처럼 심하지 않았다. 즉 사회의 변화가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아이들 자체가 변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환경─사회와 성인문화─의 변화가 아이들을 변하게 한 것이다. 또한 세계적인 추세로 보아도 청소년들이 이른바 어른들이 하는 행동─음주나 흡연 또는 성적인 문제─을 처음으로 경험하는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그것이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지만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우리는 청소년 문제가 이처럼 환경의 변화 속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그들을 올바로 지도할 방법을 찾고 개발해가야 할 것이다.

사태가 이런만큼 지금 아이들의 모습만 보고 ‘학교붕괴’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섣부르고 잘못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잘못은 아이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육제도의 획기적인 개선을 이루고 입시 위주의 교육을 탈피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겠으나, 나는 그런 거창한 대안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예전보다 당당해지고 자기주장이 뚜렷해진 아이들을 두고 교육의 위기를 논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싶다.

일부 학부모에게도 바라는 것이 있다. 선생님들의 가장 큰 고충 가운데 하나가 학부모와의 마찰이라고 한다. 잘못한 아이를 혼내면 다음날 학교로 따지러 오는 학부모 때문에 아이들의 잘못을 제대로 고쳐주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얼마 전, 학부모가 수업시간에 들어와 교사를 폭행하는 바람에 초등학교 여선생님이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되었다는 기사가 우리를 놀라게 했다. 그러한 학부모를 보며 자란 아이들에게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생길 리 없다. 또한 잘못된 길로 빠지는 아이들에 대한 책임을 학교나 교사에게만 떠넘겨서도 안될 것이다. 1차적인 책임은 당연히 부모의 몫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학교와 선생님도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믿어야 할 것이다.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믿음 없이 어찌 교육이 제대로 될 수 있겠는가? 교사와 학교를 믿는 사회적 분위기가 교육을 개선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3. 교육실습을 하면서 학교에서 사라져야 할 모습이라고 생각한 두 가지가 있다. ‘애국조회’와 ‘환경미화’가 그것이다. 애국조회는 대부분 상장과 임명장의 수여와 교장선생님의 훈화로 이루어진다. 전체 학생들을 한자리에 모아놓음으로써 대부분의 아이들은 소외된 상태에서 수여대상자와 일부 선생님 사이에 이루어지는 일을 지켜보는 것이 전부이다. 지루하고 남의 일이라 생각되는 일에 아이들이 적극적일 리 없다. 박수도 잘 치지 않는다. 시간이 갈수록 줄이 흩어지고 움직이고 떠드는 아이들이 많아진다. 그러면 선생님은 그런 아이들을 앞으로 불러내 벌세운다. 그런 일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상장을 받는 당사자들이 뿌듯해할 것인가? 차라리 게시판에 커다란 글씨로 써서 한 학기 동안 게시하는 것이 그들에게도 훨씬 뿌듯한 일이 아닐까? 교장선생님의 훈화도 학급활동 시간이나 아침명상 시간에 방송을 통해 이루어지면 이를 듣는 아이들도 더 많고 그 효과도 클 것이다.

환경미화를 의무적으로 실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거기다 등수까지 매긴다. 그런다고 해서 아이들이 애정을 갖고 환경미화를 하고 또 그렇게 만들어진 것을 지키고 가꾸는 것도 아니다. 일주일만 지나면 훼손된 것이 생겨나고 다시 고치고 한다. 차라리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자율적으로 교실의 모습을 만들게 하면 더 보기 좋은 모습을 갖추게 될 것이다. 스스로 가꾸는 교실의 모습에 1등, 2등이 있을 수 없다. ‘잘했다, 수고했다’는 칭찬이 필요할 뿐이다.

한달 동안의 교육현장 체험에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교육의 위기는 아이들에게서 찾을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교육을 행하는 사람들─교사와 학부모, 교육관계자─에게서 찾아야 한다. 잘못된 교육정책과 제도를 만든 사람들, 올바른 교육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교사, 학교와 교사를 믿지 않는 학부모, 교육을 돈벌이에만 이용하려는 일부 학원들로 인해 교육은 위기에 처했다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교사와 학교를 믿는─믿음을 얻기 위한 학교와 교사의 노력과 제도적인 지원이 전제되어야 하겠지만─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나에 대한 반성을 하고자 한다. 아이들이 제각각 다양한 모습을 띠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며 또 바람직한 모습이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은 너무 하나의 잣대에 아이들을 끼워맞추려 한다. 수업시간에 떠들지 않는 아이는 착한 학생이고, 싸우거나 말썽피우는 아이는 나쁜 학생으로 분류하고 낙인찍어버린다. 그런데 한달 동안의 실습과정을 통해 나 자신에게도 그러한 모습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수업시간에 상습적으로 떠드는 아이가 괜히 미워지고 다른 부분에서도 문제가 있을 거라고 짐작해버리는 경향이 나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정말 아이들을 사랑하고 교육을 위하는 교사가 되기 위해서 극복해야 할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 그것이 이번 실습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성과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