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가부장제 자본주의와 자연으로서의 여성
마리아 미스·반다나 시바 『에코페미니즘』, 창작과비평사 2000
박진희 朴眞嬉
베를린공대 박사과정, 과학기술사
1974년 오클라호마 플루토늄 재처리공장에서 반대시위를 하던 한 여성운동가가 갑작스런 죽음을 맞았다. 1975년 독일 빌에서는 핵발전소 건설에 대항하는 대대적인 여성들의 시위가 있었다. 1977년과 78년에는 ‘핵무기·핵전쟁에 반대하는 평화를 위한 어머니회’ 등 여성들의 국제적인 네트워크들이 결성되었다. 환경파괴와 핵으로 인한 인류전멸 위협에 대한 여성들의 이런 일련의 적극적인 반대운동은 여성과 자연의 긴밀한 연관에 주목한 ‘에코페미니즘’이란 개념이 널리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프랑쑤아즈 도본느(Françoise d’Eaubonne), 로즈마리 뤼더(Rosemary Ruether) 등에 의해 이론적 기초가 마련된 에코페미니즘에서는 여성들의 모성애·양육능력·수태능력이 남성과는 다른 여성들의 자연에 대한 근원적인 연관의 바탕이 된다고 보았다. 하지만 자연의 지배를 통하여 물질적인 생산을 늘리고자 하는 남성성에 기초한 산업사회가 발달하면서, 이런 여성의 본성은 억압되었고, 그 가치도 저하되었으며, 이와 더불어 자연에 대한 무한정한 파괴 역시 가능해졌다고 본다. 따라서 이들은 여성성의 가치를 되찾고자 하는 여성운동과 자연에 대한 지배를 마감하고자 하는 생태환경운동 사이에는 불가분의 연관이 놓여 있다고 본 것이다.
인도의 환경운동가 반다나 시바(Vandana Shiva)와 독일 사회학자 마리아 미스(Maria Mies)가 자신들의 여성운동과 환경운동 경험에 근거하여 공동저술한 『에코페미니즘』(Ecofeminism, 손덕수·이난아 옮김)은 에코페미니즘의 90년대판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80년대 페미니즘이론 내부에서 사회학적 성(gender)에 대한 논의들이 활발해지면서, 생물학적 성(sex)에 기반한 에코페미니즘 개념은 비판의 화살을 피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미국의 에코페미니즘운동이 서구 물질주의에 반대해 비합리적인 정신, 자연과의 영적인 교감을 주창하자, 에코페미니즘은 극복되어야 할 개념으로 비춰지기 시작하였다. 이에 대해 두 사람은 대부분의 제3세계 여성들이 자연에 의존하여 생계를 꾸려나감에도 불구하고, 세계자본주의 생산질서는 이들 여성의 생존기반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는 점, 제1세계 여성의 경우, 남성지배논리에 근거한 현대 과학기술에 의해 자연과 마찬가지로 조종되어야 할 대상이 되어버리고 있다는 점 등이 여전히 에코페미니즘의 ‘물적 토대’를 이루고 있다고 본다.
즉, 두 사람은 지구상의 생명체를 위협하는 파괴적 경향의 원인은 가부장제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있으며, “이 체제는 여성 및 이민족과 그들의 땅을 식민화함으로써 생겨나 뿌리내리며 유지되고, 자연 역시 식민화하고 점차 파괴시킨다”(11면)고 본다. 또 이 세계체제의 논리로 ‘근대화’ 및 ‘개발’ 과정과 ‘진보’가 역설되면서, 자연에 대한 무한정한 착취가 용인되었고, 가부장적 질서하에서 약자로 남아 있는 여성은 이들 자연파괴로 인한 환경재난의 가장 큰 희생자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시바는 서구 산업경제의 진보모델에 의한 제3세계 개발이 어떻게 이곳 여성을 빈곤으로 몰아넣는지, 생물다양성 보존이라는 명목하에 다국적기업에 의해 여성의 전통적인 지식들이 어떻게 착취되고 있는지를 예로 들면서, 현재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의한 여성억압의 현실을 밝히고 있다. 한편 미스는 따라잡기식 개발이 지속적인 식민화를 기반으로 하지 않고는 유지되지 않는데, 이를 위해서는 군사화가 불가피하며, 이런 군사화는 결국 가부장적 질서의 강화라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본다.
이들 개발전략에 대한 비판과 함께 두 사람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가부장적 질서를 유지하고 자연파괴의 근거를 마련해주는 데 근대과학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본다. 즉, 16세기 이래의 성차별적인 환원주의적 근대과학은 “어머니 자연이라 불리는 유기적 전체를 폭력적으로 파괴하지 않고는, 연구대상을 공생적 맥락에서 강제로 분리하여 실험실에 격리시키지 않고는, 물질의 신비를 밝혀내거나 생명의 신비를 발견하기 위해 연구대상을 조각내어 분석하지 않고서는 새로운 과학자들이 지식을 얻을 길이 없”(65면)도록 만들어놓았다는 것이다. 이들 근대과학은 또한 유기적인 자연을 죽어 있는 생산의 원천으로 만들어버렸고, 여성을 과학실험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에 두 사람은 자급적 관점에 근거한 생태론적 페미니즘을 주장한다. 이는, 자본주의 가부장제가 생산적이라 규정한 것 중 많은 것에 내재한 파괴성을 폭로함으로써 ‘생산’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한편, 자연을 세계를 조작하고 착취할 자원으로서가 아니라 적극적 주체로 볼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즉, 자립·자급자족·식량자급·재농촌화를 통해 식민화를 근거로 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로부터의 강제적인 단절을 시도하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과학의 또다른 패러다임의 창출 역시 중요한 과제라고 본다. 주체와 주체의 상호성이라는 원칙에 근거하여, 연구대상이 다시금 살아 있는 것으로 간주되고 자체의 존엄성과 영혼을 부여받을 수 있는 그런 새로운 방법론을 정립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획일적 생산성, 개발 위주의 논리, 그리고 이로 인한 제3세계 사회의 피폐화에 대한 두 사람의 비판은 예리하다. 또 그 결과로서 환경파괴, 생물다양성의 파괴가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가를 두 사람은 생생히 보여준다. 하지만, 여전히 초역사적인 자연과 여성의 긴밀한 연관, 유기적 신체와 맺는 인간적 관계로서의 여성성이라는 모호한 논거로 여성을 생태환경운동의 주체로 설정하고, 자연과 유착된 농경사회상을 현대 산업사회가 회복해야 할 어떤 것으로 보는 것은, 미스의 말을 빌리면 유한한 현실을 이상주의적으로 초월하려는 것에 다름아니라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또한 반다나 시바는 여성노동과 지식의 원리로 다양성을 지적하며, 이를 ‘생산성’과 ‘기술’의 대안적 계산법이 만들어질 수 있는 모체로 보면서도, 여성이 획일적인 재생산노동 영역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구조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양성에 대한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만으로 여성성에 대한 가치회복이 가능할까? 근대과학에 대한 논의에서도 의식적 행위자 남성들의 지배전략을 근대과학을 추동하는 힘으로 보는데, 현대 과학기술이 이미 행위자의 의식을 넘어서 발전된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저자들은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에 반대하여, 공동의 생태여성운동의 가능성에 중점을 둔 나머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제1세계와 제3세계 여성 내부의 현존하는 갈등 문제, 그리고 같은 지역 내부에서도 계층간에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한 분석을 결여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말대로 구체적인 현실에 발을 딛고자 한다면, 이에 대한 철저한 분석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이 구체적인 여성 연대의 가능성을 오히려 가능하게 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