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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분단시대에서 통일시대로
좌담: 통일시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강만길 김경원 홍윤기 백낙청
때: 2000년 7월 20일
곳: 창작과비평사 회의실
백낙청 바쁘신데 발제문을 미리 써주시고 오늘 이렇게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6월에 있었던 남북정상회담과 특히 6·15 평양남북공동선언은 우리 모두에게 감격으로 다가왔고, 또 우리 현대사에 획기적인 사건으로 누구나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과 그후의 사태에 대해 저희 창비에서도 한번 정리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우선 좌담제목을 ‘통일시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고 잡은 취지는 이렇습니다. 남북관계의 세부적인 문제라든가 현재 진행상황들을 전문적으로 다루기보다는 이 남북회담을 계기로 지금 열리는 새 시대를 우리가 어떻게 감당하고 스스로 어떤 작업을 해나갈 것인가에 촛점을 맞추기로 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말을 넣었고요. 그리고 ‘통일시대’라는 말을 썼습니다만, 이것은 지금이 통일시대라는 판단을 여러분께 강요하려는 뜻은 아닙니다. 일단 이런 표현을 내놓고서 과연 지금을 통일시대로 보는 것이 타당한지, 타당하다면 어떤 의미로 그러한지, 이런 점에 대해서 선생님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각 선생님들께서 통일시대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한 말씀씩 해주시고, 그 다음에 자유롭게 토론으로 들어갈까 합니다.
먼저 강만길 선생님께서는 이번에 방북수행단의 일원으로 참가하시기도 했고, 또 원래 『창작과비평』 지면을 통해 ‘분단시대’라는 표현을 제일 먼저 쓰신 필자이기도 하십니다. 통일문제에 대해서 줄곧 깊은 관심을 갖고 많은 논의를 해오셨고요. 이번에 역사의 현장에 참여하신 감격도 남다르셨으리라고 봅니다만, 강선생님께서 ‘통일시대’에 관해 먼저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식의 통일과정으로서의 협상통일
강만길 우선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통일시대라고 부르는 데 일단 나로서는 찬성입니다. 나는 역사 전공자로서, 역사학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시대구분 문제인데, 통일시대라고 불러도 좋겠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나는 우리의 경우 베트남식의 전쟁통일도 독일식의 흡수통일도 불가능하다는 말을 많이 해왔습니다. 우선 전쟁통일이 안된다는 것은, 6·25전쟁에서 처음에는 북에서 통일할 뻔했고 나중에는 남한에서 통일할 뻔했는데 외세의 개입으로 안되었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해줬다고 봅니다. 그래서 평화통일론이 나왔다고 볼 수 있죠. 그런데 독일이 흡수통일이 되니까 우리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많았는데, 흡수통일 역시 안되었습니다. 특히 김일성 주석이 죽고 나면 북이 무너지고 흡수통일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성급한 사람들은 6개월 이내에 그렇게 될 것이라고까지 했지만, 역시 안됐습니다. 한데 지금은 북한이 어떤 의미에서는 경제적으로도 속된 말로 바닥을 쳤다고 하고, 김정일 위원장의 권력도 상당히 안정되어간다고 합니다. 여기에 또하나 중요한 변수가 있는데, 지금까지 북쪽의 배경 노릇을 하기가 어려웠던 러시아가 다시 한반도 문제에 관심을 갖고 특히 북쪽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움직임이 그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상황에서는 흡수통일이 어려운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통일을 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를 생각지 않을 수 없는데, 우리의 경우는 협상통일이 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백낙청 이번 발제문에도 그렇게 쓰셨죠?
강만길 예. 그래서 이번 정상회담이 어떤 의미에서는 협상통일의 시발점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현장에서 했고요. 또 협상통일이 우리식의 통일과정이라면 지금부터 통일시대라고 불러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가지 우려스러운 것은, 7·4공동성명 때나 남북기본합의서가 제출됐을 때 상당히 흥분해서, 내 경우는 7·4공동성명 때는 아니지만 남북합의서가 체결되는 것을 보고 지금부터 통일시대로 들어간다고까지 얘기했는데, 그후 다시 남북관계가 냉각되고 통일시대로 접어들지 못했지요. 지금 비방방송 안하고 이산가족 만나게 하는 것은 옛날에도 다 했던 것들입니다. 그래서 이번의 남북정상회담과 공동선언이 정말 협상통일시대로 들어서는 출발점이냐 아니냐는 이후 남북이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백낙청 김경원 선생님께서도 발제문에서 한반도 분단상황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출발하셨는데, 뒤에 가면 현재 중요한 과제로 전쟁위협의 제거를 주로 말씀하시거든요. 다시 말하면, 일부에서 최소한 한반도에서 이제 전쟁의 위협은 없어졌다고 단언하는 것과는 달리, 적어도 그런 의미의 통일시대는 아직 아니라는 입장이신 것 같은데, 어떤 생각이신지요.
김경원 통일시대를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따라 답변을 드릴 수 있겠죠. 통일시대라는 개념을 우리가 지향하는 방향·목표·소망이 무엇이냐는 데 대한 참고사항(reference)으로 생각하면, 통일시대로 하느냐 안 하느냐는 것은 전적으로 말하는 사람의 주관적 판단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통일시대가 객관적인 사실, 진행된 과정에 대한 어떤 묘사라면, 미래에 관해서는 사실 시대구분을 하기가 좀 이른 감이 있기 때문에, 현재 진행되는 상황이 통일로 가고 있느냐 아니냐는 문제를 얘기해야겠죠.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적어도 이번 정상회담이 통일의 방향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았던 문을 좀 열어놓았다는 느낌을 저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통일시대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전쟁위협과 관련해서는 이번 정상회담이 긴장을 완화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가령 북한의 김정일씨도 서해교전 같은 것은 자신이 지시하지 않았는데 일어났다고 했다는데요. 그것은 정상회담이 아무리 평화지향적인 결론을 냈다 해도 지금 존재하는 체제나, 지난 반세기 동안 누적되어온 전쟁 장비를 우리가 완전히 제어할 수 있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음을 말해주는 겁니다. 그렇게 보면 전쟁방지를 위해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 제가 말한 군비통제, 상호신뢰 구축, 그리고 군축 등은 상당히 어려운 과제이지요. 군축이 왜 어렵냐면, 양측이 다 선의를 지니고 있다 해도 군사력이 어느정도 상호균형을 이룬 상태로 몇십년 동안 지내왔는데, 양쪽에서 이를 줄여나가다 어떤 지점에 이르면 그 균형이 불안해지는 때가 있습니다. 한쪽이 불안감에 싸인다든가 또다른 한쪽이 야심의 유혹을 받는다든가 하는 단계를 거치게 된다는 것이죠. 그렇지만 통일이라는 면에서는 약간 문이 열렸다는 뜻에서 통일시대라는 표현은 써도 무방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제가 특별히 쓰지는 않아요.(웃음)
백낙청 홍윤기 교수 발제문을 재미있게 읽었는데요. 기존의 현실에 대해서는 제가 분단체제라는 개념을 사용했을 때와 꽤나 인식이 비슷하다는 걸 느꼈어요. 특히 한반도 분단이 과거 베트남이나 독일의 분단과 그 성격이 어떻게 다른가 하는 분석은 저하고 많이 일치합니다. 그런데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태나 앞일에 대해서는 생각이 저와 갈라지는 것 같거든요. 지금을 ‘분단체제의 이완기’로 보지만, 오히려 우리가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통일담론을 극복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결론을 내리시는데……
통일논의에 속아온 젊은 세대
홍윤기 우선 평소 존경하던 원로 선생님들 앞에서 과연 이런 말씀 드려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통일이라는 것이 마치 내일…… 제가 발제문에서도 썼습니다만, 선배세대의 통일이나 분단에 대한 인식은, 내일 아침이면 또는 조금 있다가 만날 수 있는 가족을 떠나보내는 기분으로 헤어졌다가 50년이 지났다는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신 것 같아요. 50년대에 태어나 60년대에 한글로 교육받는 등 분단체제 아래서 성장하면서 분단 당시의 상황을 직접 체험하지 못한 첫 세대로서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통일 얘기가 나올 때마다 또 거짓말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특히 권력 가지신 분들에 대해서요. 제일 먼저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 7·4 남북공동성명이고, 그 다음이 남북기본합의서인데, 7·4공동성명 당시에는 어렸으니까 진짜 들뜨기도 하고 뭔가 달라질 것 같기도 했습니다. 더구나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위상은 현재 대통령 위상과 또다른 것 아니었습니까? 그렇게 강력한 분이 말씀하시니까 어린 심정에 뭔가 달라지나 보다 했는데, 이후로는 통일 얘기가 나올 때마다 실질적으로 통일이 다가선다기보다는 점점 멀어진다는 느낌이 들고, 어느 면에서는 분단이 더 강화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들었습니다.
이번 경우에는 어느 면에서는 질적으로 전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간의 안목으로 보았을 때는 현재 남북한의 관계가 중국과 남한의 관계보다 더 나은 것이 있는가 냉철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만나고 싶어했고 이산가족 얘기가 나올 때마다 눈물들을 쏟아내는데도 불구하고, 왜 통일을 이루지 못했냐면, 그동안 분단이 오히려 편했기 때문일 것이라는 냉소적인 감정도 든다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분단은 며칠 뒤 만날 잠시 동안의 이별이 아니라, 양쪽 국가를 만든 기축이 되었다는 것이죠. 때문에 저는 백낙청 선생님이 제기하신 분단체제론에 처음부터 동조한 입장이지만, 백선생님도 어쩔 수 없이 선배세대이시기 때문인지, 분단체제를 얘기하면서 항상 통일체제를 염두에 두고 계세요. ‘체제’라는 용어를 쓰실 때쯤 됐으면 통일이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하실 만도 한데,(웃음) 여전히 통일을 위해서 그 안에서 뭔가 고쳐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입장이신 듯합니다. 더 중요한 문제는 우리 민족은 실질적으로 현대국가를 꾸려본 경험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민족분단은 분명히 맞지만 국가분단은 아닙니다. 독일과의 결정적 차이가 그것인데, 독일은 국가분단임은 분명하지만 민족분단은 절대 아닙니다. 나중에 80년대에 가서 동독 쪽에서 안되겠다 싶어서 이른바 ‘사회주의 민족’(socialist nation)이라는 개념을 도입했거든요. 민족을 다시 갈라보려는 생각을 사회주의 말기에 한 것이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사실상 국가가 없는 상태에서 양쪽이 분리 건국을 한 겁니다. 때문에 통일시대라는 말이 통일에 대한 나름의 열망을 표시한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수긍하지만, 냉철하게 통일담론 바깥에서 보면, 앞으로 우리가 최소한 남북한 관계를 현재의 남한과 중국 또는 남한과 러시아의 관계 정도로라도 만들어놓고 모든 것을 서로 들여다보고 난 다음에─그야말로 민족통일이 되려면 민족 대다수를 이루는 민중이나 시민들이 직접 얘기할 수 있는 단계를 필히 거쳐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강만길 선생님께서 협상통일이라고 하실 때, 양쪽 지도자들이 협상이라도 해서 통일을 이루었으면 좋겠다는 갈망을 표시하는 것이라면 전적으로 공감합니다만, 분단체제론자로서 저는 좀 다른 입장에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백낙청 그 점에 대해서는 강선생님께서 말씀하시겠지만, 저보고 분단체제론까지 제기해놓고 계속 통일을 얘기하느냐 하셨으니까, 거기에 대해서만 잠깐 얘기하죠. 물론 제가 분단체제라는 말을 쓸 때는 통일이 쉽지 않다는 얘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체제라고 하면 설혹 엄밀한 의미의 체제가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자생력을 가진 구조라는 뜻이고, 자생력을 갖는다는 것은, 그 속에 사는 편안한 사람들의 수가 꽤 많으니까─적극적으로 이득을 취하는 세력은 물론이고 그러지는 못해도 갑자기 전쟁을 통해서 깨지는 것보다는 분단되어서 사는 것이 낫다고 인식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다 실제로 그러하니까─유지가 된다는 뜻이죠. 하지만 체제라는 말을 쓴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극복 불가능하다거나 극복되지 않아도 좋다는 뜻은 아니지요. 체제 중에는 좋은 체제도 있고 나쁜 체제도 있으며, 더 나쁜 체제가 있고 덜 나쁜 체제가 있지요. 저는 분단체제가 전쟁을 해서라도 깨뜨려야 할 만큼 나쁜 체제는 아니고 우리가 통일을 부르짖기만 하면 저절로 무너질 수 있는 허약한 체제는 더욱이나 아니지만, 역시 남북한의 일부 기득권자 또는 남북분단으로 인해서 이득을 보는 외국세력을 빼고는 대부분의 한반도 주민에게는 매우 나쁜 체제라고 보기 때문에, 우리가 노력을 해서 극복해야 한다는 입장이지요.
또하나는 김선생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사실 한반도 평화를 보장하는 길은 통일 이외에는 없고, 또 우리 민족이 장기적으로 참화를 피하는 길도 통일말고는 없기 때문에, 우리가 그런 파국으로 가지 않는 한은 극복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무작정 통일을 외치고 통일이 쉽게 되리라는 데는 반대하지만, 체제라는 말을 쓰면서 정말 더 체계적으로 극복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말이죠. 분단체제라는 말을 썼다고 해서 통일운동이나 통일작업을 포기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해요.
홍윤기 저도 그 선의는 충분히 이해합니다만……(웃음)
백낙청 그것은 선의의 문제가 아니라 조금 거창하게 표현한다면, 오히려 과학적 인식에 가깝다고 해야지요. 그리고 하나의 전략으로서 남북관계가 일단 한중관계와 비슷해지고 그것을 거쳐 나가는 게 좋으냐 아니냐는 것은 우리가 더 논의를 해봐야겠습니다만…… 일단 제 발언은 이 정도로 하고, 저보다 훨씬 적극적인 통일론자이신(웃음) 강선생님께서 하실 말씀이 있으실 것 같은데요.
강만길 내가 늘 듣는 말이, 내 통일 얘기가 너무 당위론적이라는 것이고, 또 많은 비판도 받아왔는데요. 역사학을 전공하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어요. 다른 학문도 다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역사학에는 일종의 이상주의가 들어 있습니다. 역사학 속에 이상주의가 없으면 어떤 의미에서는 무의미하게 됩니다. 어떤 지향이 없으면 말이죠.
김경원 상당히 솔직하신데요.(웃음)
강만길 그래서 역사학이 현실에 얽매여서 미래지향적인 얘기를 하지 못하면 그 존재이유가 없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통일이 어렵다, 분단체제가 해소되기 어렵다 하는 것은 20세기적인 상황을 바닥에 깔고 하는 생각입니다. 20세기 전반기는 제국주의 시대였고, 후반기는 냉전체제였습니다. 그런데 20세기를 넘기는 과정에서 제국주의도 냉전체제도 다 무너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20세기의 냉전체제적인, 또 약육강식의 제국주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21세기 문제를 재단하고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21세기에는 21세기의 새로운 상황이 벌어지게 마련이고, 그건 우리 민족사회나 동아시아사회나 세계사회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통일문제는 21세기 문제란 말이에요.
더구나 아까 내가 협상통일이라는 말을 했는데, 협상통일은 전쟁통일이나 흡수통일보다 시간이 훨씬 많이 걸립니다. 나는 전에 1민족 1국가 1체제 통일은 2020년대에나 가능하다는 얘기를 했는데, 얼마 전에 김대중 대통령은 20년, 30년을 얘기하더라고요. 협상통일의 과정은 길다는 건데, 분단체제를 극복해가는 과정도 하루아침에 되는 것은 아니죠. 때문에 분단체제를 극복해가는 과정과 긴 시간을 두고 협상통일을 해가는 과정, 평화공존 과정이 맞물려들어가는 겁니다. 평화공존의 과정은 협상통일이라는 시각에서 보면 필수불가결한 과정입니다. 길게 보면 하나의 우리식 통일과정이라고 할 수 있죠.
그 다음에 또하나의 문제가 21세기에 들어선 우리의 주변정세입니다. 우리의 주변정세가 20세기처럼 제국주의전쟁이나 냉전체제 같은 것으로 유지된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동아시아 전체의 형세가 얼마든지 다른 방향으로, 흔히 예를 들듯이, 유럽식의 공동체를 형성해간다든지 하는 식으로 얼마든지 변해갈 수 있죠. 예컨대, 2020년대나 30년대 들어서 동아시아에 하나의 평화공동체를 형성해가려는 기운이 일어났을 때 한반도가 통일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라면 이는 불가능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주변정세가 21세기적인 상황에 의해 움직여간다면 우리의 통일문제도 마찬가지라는 거죠. 동아시아 문제의 변화, 우리 민족 내부 사정의 변화가 필요하고, 그리고 반세기 동안 지속된 분단체제도 2,30년 걸려야 무너질 수 있단 말이죠. 그러니까 내가 하는 얘기가 너무 당위론이나 이상주의는 아니지 않느냐는 생각입니다.
김경원 당위론도 필요하죠.(웃음)
연방제·연합제에 관한 합의가 뜻하는 것
백낙청 그런데 이번에 합의문 2항을 보면 북쪽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과 남쪽의 연합제안에 상당한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그 방향으로 가기로 일단 정했잖습니까? 강선생님께서도 그 대목을 매우 중시하셨고, 저도 발제문에서 언급했습니다만, 아마 그 점에 대해서 김선생님이나 홍선생님은 조금 생각이 다르신 것 같습니다. 지금 마침 강선생님이 우리의 통일과정을 동아시아의 국제정세와 함께 생각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으니까 시간도 절약할 겸 연방제 혹은 연합제에 관한 합의문 조항이라든가 또는 일부에서 얘기하는 국가연합, 이런 것의 전망과 주변정세를 엮어서 얘기해보면 어떨까요?
김경원 강선생님이 당위적인 데 비해서 저는 좀 비관적인 입장일지 모르겠습니다. 아까 홍선생님이 통일 얘기에 대해서 실감을 할 수 없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저도 남북간에 사람이 자유롭게 왕래하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연방제니 뭐니 한다는 것 자체가 허위의식의 소산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연방제를 한다면 좌우 양쪽의 논객들이 마치 이에 대해 국제적으로 인정된 정치학 사전을 찾아보고 거기에 나온 정의를 채택하면 되는 것처럼 접근하곤 하는데, 그건 현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 같아요. 현실적으로 연방제는 정부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일정한 역사적 단계를 거쳐 어느 싯점에 이르렀을 때 하나의 권력조직이 형성되는 방식 가운데 하나인데다가, 연방제라는 표현을 쓰는 정치체제는 아주 다양한 구조를 가지고 있고 또 권력집중도도 다양하단 말이죠. 때문에 저는 원래 실감을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통일문제에 대해서 처음으로 상식에 부합하는 접근이 이루어진 것을 보고 환영을 했습니다. 과거에는 너무나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를 했기 때문에 통일을 논하는 것 자체가 저로서는 회의적으로 느껴졌습니다. 통일을 안하려는 것은 뻔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당분간 통일을 안한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 2항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상당히 놀라운 것인데, 정상회담의 합의치고는 너무나 쎄미나 제목 같아요. 양국 정상이 만났을 때는 행정적으로 즉각 이행할 사항에 대해서 논의하고 합의하는 건데, 여기서는 공통성이 있다면서 아주 문을 열어놓은 상태로 됐거든요. 그것은 통일문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행동을 취할 것이 없다는 점을 자인한 겁니다. 개념적인 차원에서 하나의 문제를 던져놓은 거죠. 그리고 국가연합은 통일을 안한다는 개념이란 말이에요. 물론 나중에는 다 한다는 얘기죠.
그런 관점에서 이번 합의에 대해 놀랄 열강은 없을 겁니다. 주변강대국들은 남북한이 이제는 철들었구나, 당분간 안되는 것을 가지고 보채거나 상황을 불안하게 만들지는 않겠구나 하는 태도로 우리를 바라보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이번 남북공동선언의 의의는 국가연합이나 연방제라는 개념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거론함으로써 통일논의를 현실화한 것이라고 봅니다.
백낙청 선언문 제2항에 대해서 독특하면서도 아주 예리한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연방제와 연합제는 말은 비슷해도 개념은 아주 다른데, 이번 합의의 촛점은 사실 연방제라는 말이 들어간 것이라기보다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는 수식어를 붙여서 연합제 쪽으로 중심을 이동했다는 데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는 당장 연방제든 단일형이든 통일은 안하겠다는 선언을 한 꼴이죠. 저도 그것이 한 면이라고 보고 김선생님 지적에 공감합니다. 하지만 역시 연합이라는 말이 들어가고 통일이라는 말이 들어간 점도 평가를 해야 한다고 봐요. 저는 국가연합 단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그전부터 주장해왔는데, 여기에는 양면이 있지요. 한편으로는 연방제 통일조차도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하고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은 김선생님 표현대로 허위의식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한반도 상황에서는 국가연합을 거쳐서라도 통일로 가게 되어 있으며, 또 그러겠다는 의지를 안 갖고서는 평화정착도 어렵고 상호신뢰 구축도 힘들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그러니까 국가연합이라는 것이 당장은 통일을 안하겠다는 것과 당장은 아니지만 반드시 통일을 하겠다는 두 가지가 포함된 개념 아니겠습니까? 바로 그런 개념에 합의했다는 것이 이번 선언문의 정말로 중대한 의의지요. 따라서 당장 통일 안하겠다는 것은 이번 선언의 2항이 지닌 의의의 절반에 해당하지 전부는 아니라는 겁니다.(웃음)
그리고 연방제가 갖가지듯이 국가연합도 여러가진데, 우리 경우는 우리 실정에 맞는 연합을 해야겠지요. 아까 남북간의 왕래가 없다는 말씀을 하셨지만, 저는 남북간의 왕래를 어느정도 통제할 수 있는 장치야말로 핵심적인 것 같아요. 사실 유럽 같은 데는 지금 국가연합에도 채 이르지 못했으면서 왕래는 거의 완전히 자유화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남북간에는 국가연합 형식을 갖추더라도 당분간은 주민이동의 통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연합은 한편으로는 남북간의 문을 여는 장치인 동시에 너무 활짝 열어서 체제가 일거에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는 장치이기도 하죠. 그러니까 문을 적절한 만큼만 우선 열어놓고 그 다음 단계를 위한 준비를 하는 장치라고 저는 해석하고 있습니다.
한·미·일 공조체제, 조·중·러 공조체제와 남북공조체제
홍윤기 문이라는 것이 열릴 때 활짝 열리지 않으면 드나들 때 매우 불편한 것이어서 어느정도가 적절하게 여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번에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연합제가 거론됐을 때 처음에는 백선생님 말씀처럼 연합이라는 말을 쓰면서 여러가지를 한다면 그 의의가 충분히 있겠다 생각했는데요. 그런데 가만히 문면을 뜯어볼수록 드는 생각이, 국가연합을 운영하는 방식이 지금 미국과 한국 간에 여러가지 논의를 위해 빈번히 이루어지는 각료회의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리라는 것입니다. 해서 남북간에 국가연합이라는 포장을 씌워놨을 때 앞으로 어떤 내용으로 채워질지 궁금한데, 지금 그 포장 안에서 실제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와 대한민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여러가지 기구 운영의 수준이 한국 정부와 미합중국 정부 사이에 이루어지는 수준 정도라도 될 수 있는가 했을 때, 이건 명백히 수사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의 두 정상이 일단 만남으로써 이제 더이상 남북한 차원에서 뒤로 물러갈 문이 없어졌다는 것은 분명한 진전이죠.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에 가서 ‘반국가단체’의 수장을 만난 것이 현행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만, 문제는 다른 국가들의 정상간의 만남이었다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을 이번 만남조차 문제삼을 수 있는 세력, 즉 반통일세력이든 나름대로 통일관을 지닌 세력이든 이를 이적시하는 세력들이 현재 국내에는 존재한다는 겁니다. 이같은 잔재를 청산해나가는 과정을 밟지 않으면 국가연합이라는 것도…… 그리고 북한도 마찬가지죠. 북한도 김정일 위원장이 여러모로 남한 대통령을 끌어오는 데 신경을 쓴 것은, 물론 개인적으로 잘해주려 한 면도 있습니다만, 남북간의 관계가 그동안 다른 나라와의 관계와는 다른 긴장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혹시라도 모르는 여러가지 경우를 고려한 것이지 싶습니다. 제가 언뜻 들은 바로는 김일성 주석도 어쩔 수 없는 남북관계에 모종의 무엇이 있다고 했다는데, 뒤에서 양쪽 정상을 끌어당기는 것이 여전히 남아 있고, 그것을 청산하는 것이 어느 면에서는 분단체제를 극복하는 첫걸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겁니다.
백낙청 지금 홍교수 말씀 중에는 두 가지가 섞여 있는 것 같아요. 하나는 분단체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남과 북이 각기 내부에서 무엇을 해야겠는가 하는 중요한 문제인데, 그건 우리가 조금 있다가 본격적으로 논의해봤으면 좋겠고요. 또하나는 한국과 미국이라는 두 국가간의 교섭과 남북간의 교섭의 긴밀도라고 할까요? 이것을 평면적으로 비교하셨는데, 저는 그건 좀 피상적인 접근방식이 아닌가 싶어요. 그러나 기왕에 미국 얘기도 나오는 판이니까─
강만길 그 전에 연방제 문제에 대해서 잠깐 얘기하겠습니다.
백낙청 예. 연방제 문제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주변상황과도 연관시켰으면 하는 거지요. 가령 주변국들이 이번 선언을 보고 놀랄 일은 없을 것이라는 말씀도 있었습니다만, 당장 놀랐건 안 놀랐건 장기적으로 미칠 수 있는 영향은 상당히 큰 것 같거든요. 가령 미국의 NMD(국가미사일방위)전략 때문에 러시아의 푸찐(V. Putin)이 베를린도 가고 뻬이징도 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데, 꼭 남북회담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남북의 긴장완화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강만길 시각의 차이라는 것이 참 무서운 건데, 여태까지는 되지 않을 통일을 하자하자 했는데, 이번 선언은 당분간 통일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래서 주변세력이 오히려 안심을 하는 상황이 아니냐? 참 재미있는 시각인데요. 연방제와 연합제 간에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거기에 합의가 된 부분도 있어요. 연방제가 1국가 2정부 2체제라면, 연합제는 2국가 2정부 2체제니까, 이미 연방제나 연합제가 나올 때 2정부 2체제를 상당기간 유지한다는 데는 합의가 됐다는 거죠. 그리고 남북이 이처럼 합의한 것은 쌍방이 전쟁통일이나 흡수통일은 안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때문에 남북합의서가 체결되었다고 볼 수 있죠. 다만 국가를 당장 1국가로 할 것이냐 아니면 상당기간 동안 2국가로 할 것이냐 하는 데 차이가 있었는데, 이 문제로 예민하게 대립하면서 남북 모두 그것을 분단을 유지하는 하나의 구실로 삼아왔단 말입니다. 그랬는데 이번에 ‘낮은 단계’라는 표현을 쓰면서 비로소 1국가냐 2국가냐의 문제로 대립할 것 없고 현상태대로 두 정부가 다 내치·외교·국방·군사권을 갖는다는 데 합의를 본 겁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정례적인 정상회담·각료회담을 하자는 건데, 그것이 미국과 한국이 하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했는데요……
홍윤기 그건 제가 극단적으로 말씀을 드린 겁니다만……
강만길 내가 보기에는 이제 비로소 통일을 하자는 데 약간의 합의를 본 겁니다. 이제까지는 서로 통일을 안하기 위해서 다른 명분을 내놓고 버텼는데, 이제서야 겨우 남북공조체제를 이루는 길로 한발짝 들어서게 된 거죠. 그러니까 자연히 주변의 외세문제가 생겨나는 건데, 대단히 예민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자주적 통일’을 한다는 문안이 들어갔는데, 확실히는 모르겠습니다만, 북에서는 주체적이라는 말을 쓰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백낙청 ‘자주적’이라는 말도 그쪽에서 늘 써온 말이지요.
강만길 모르겠어요. 확인은 못했지만, 이번 선언문이 실린 『로동신문』에서는 어쩌면 주체적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게 대단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내가 어떤 자리에서, 우리는 한·미·일 공조체제와 조·중·러 공조체제를 넘어서 남북공조체제로 가는 길을 열어야 한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해놓고보니까 조금 지나친 얘기가 됐어요. 그래서 얼마 전에 다른 글에서, 한·미·일 공조체제와 조·중·러 공조체제를 유지하면서 남북공조체제를 이루어가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통일을 할 수 있는 길이다라고 수정을 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한·미·일 공조체제에 의한 한반도의 통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또 조·중·러 공조체제에 의한 한반도의 통일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잘 조정을 하면서 전쟁도 흡수도 아닌 협상에 의해 평화적으로 통일을 해가느냐 하는 것이 우리 앞에 닥친 문제입니다. 물론 20세기적인 생각에서 보면 그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역사란 늘 변하기 마련이므로 21세기의 주변정세는 21세기적인 상황으로 달라진다는 것이죠. 그리고 민족 내부의 정치적·외교적 역량이랄까 국민들의 식견이랄까, 이런 것도 역시 20세기와는 달라집니다. 이미 많이 달라졌어요. 그래서 어느 글에서 대륙세에도 포함되지 않고 해양세에도 포함되지 않는 한반도만의 제3의 위치를 확보하는 통일을 이룩해가야 한다고 대단히 이상적인 얘기를 했습니다만(웃음), 통일을 이루는 길은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백낙청 21세기적인 상황이 실제로 그렇게 달라졌다고 생각하시는지, 국제정치학자인 김선생님이 잠깐 말씀해주시고 다음 대목으로 넘어가죠.
북측이 ‘통미봉남정책’을 포기한 사정
김경원 글쎄요. 1백년 단위로 세상이 달라지는지는 모르겠는데, 이번 정상회담으로 크게 변화한 것은 북한이 남한 정부를 대화와 협상의 대상으로 인식했다는 겁니다. 7·4공동성명도 있지만, 그때는 대한민국이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를 공식적으로 쓰지는 않았거든요. 저쪽에서 이번에 처음으로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받아들였고, 우리 정부와 각료회담을 하기로 했으며, 우리 정부의 경제협력을 공식으로 받아들인 거죠. 그러니까 이번의 변화는, 북한 대남정책의 변화입니다.
백낙청 이른바 통미봉남(通美封南)정책을 포기한 거죠.
김경원 예. 그러면 왜 그걸 포기했겠는가? 역사학은 이상주의 없으면 못 산다고 하셨는데, 국제정치학 하는 사람들은 속칭 리얼리즘 없으면 못 산다고 합니다. 그런데 현실주의의 제일 중요한 것 하나가 인간은 그렇게 선량하지 않다는 겁니다.(웃음) 인간은 동기가 부여됐을 때 움직인다는 것인데, 김정일 위원장이 정책을 바꾸게 된 가장 큰 동기는 경제적 어려움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북한의 경제가 작년에 약간 호전됐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번에 텔레비전에서 평양만 보여줬으니까 그렇지, 그외의 지역은 암흑시대입니다. 북한의 전력은 완전히 파괴된 상태이고, 석탄 공급이 안됩니다. 석탄을 캐내려 해도 전기가 없어서 못하고, 전기를 공급하려니까 석탄이 없습니다. 이런 악순환에 빠져 있는 상태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일본·미국·중국과 상대를 해봤는데 답답하기 짝이 없거든요. 가령 미국측은 경수로 관계로 중유를 공급해주겠다고 약속하고도 제 시간에 공급해주지 못하고, 또 북한이 돈으로라도 달라고 해도 돈도 안 주고 말이죠. 일본에는 받을 배상금이 잔뜩 있지만, 거기까지 손이 미치려면 협상이 굉장히 지루하게 진행되어야 하지요. 그런 상황에서 역시 당장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우리 민족밖에 없다고 보아 우리 정부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상대하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해요. 그러면 남북 정부간에 가장 첨예한 이슈가 주한미군 문제인데, 북한은 지금까지 우리 남쪽 정부가 대화하자고 하면 미국군이 강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당신들이 대화할 자격이 있느냐는 입장이었죠. 그런데 주한미군 문제를 더이상 문제시하지 않겠다는 암시가 이번에 나타났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에도 간간이 그런 언급이 있었지만, 이번에 더욱 분명해진 것 같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이 문명자씨에게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지 않겠다고 했다는데, 그건 믿을 만한 것 같아요. 그건 상당한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백낙청 북의 경제사정을 언급하셨는데 아무래도 경제 이야기로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경제문제는 곧 체제문제와도 직결됩니다만, 가령 2정부 2체제로 가기로 정상간에 합의됐다고 하는데, 분단체제극복이라는 시각에서 보면 2정부 2체제 유지라는 것은 1국의 형태든 2국의 형태든 만족스러운 것이 아니지요. 분단체제보다 나은 체제를 만드는 게 목적이니까요. 뿐만 아니라 2국가나 2정부를 유지하는 것보다 2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더 힘들 수 있습니다. 둘이 계속 싸우는 과정에서는 2체제를 유지하기가 쉬운데, 화해하고 협력하고 경제교류를 하기 시작하면 두 정부가 합의했더라도 과연 2체제가 유지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서 결정적인 것이 경제가 어떻게 되는가 하는 문제일 겁니다. 그래서 대북경협과 관련해서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단기적인 전망인데, 김선생님이 발제문에서 잠깐 얘기하셨지만 과연 북이 필요로 하는 만큼의 경제협력을 제공할 실력이 남쪽에 있는가? 남쪽만으로는 안될 테니까 국제기구라든가 다른 나라를 동원해야 할 텐데, 그것이 원활하게 될 것인가 하는 당장의 문제가 있고요. 둘째는 원활하게 됐다고 했을 때 북의 체제에 심각한 위협이 와서 교류와 화해 분위기에 역행하는 세력을 자극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있을 것 같아요. 우선 홍선생님이 한 말씀 해주시죠.
홍윤기 역시 제가 이 자리에 잘못 왔다는 생각이 드는데요.(웃음)
백낙청 이 자리에 경제전문가는 아무도 없습니다.
홍윤기 그러니까 용감해도 되겠습니까? 저는 경제전문가는 아닙니다만, 일단 양쪽의 생활 차이가 너무 나면 같은 민족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국가관계에서도 정상적인 교류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북한과 협상통일·평화통일을 원한다면, 어쨌든 북한의 소득수준을 1인당 3천 달러 이상으로 높여놓아야 하지 않을까, 그때까지는 그쪽에서 통일을 원하든 않든 당신들도 잘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도와주겠다 하는 선에서 허심탄회하게 얘기해야 한다고 봐요. 일단 통일을 전제하지 않고서 말입니다. 김선생님 말씀처럼 이번에 경제적인 면에서 북한이 보인 가장 큰 태도변화는 지금까지 민간교류만 허용하던 데서 어쨌든 정부 차원의 경제교류를 받아들였다는 것인데, 어쨌든 북한은 지금 경제적으로 살아나야 합니다. 북한이 경제적으로 피폐한 상태에서 남한이 어떤 얘기를 하는 것은 그 의도가 무엇이든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도와주고 나서야, 같은 민족이다 아니다 하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이지, 지금 아무것도 안하고 그야말로 모든 것을 협상을 통해서 처리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제가 볼 때 현재 북한이 중국과 같은 개방경제를 원한다면, 어차피 남북한 각료회의를 정기적으로 할 것인만큼 북한개발계획을 북한 관료들 혹은 북한의 책임있는 당 관료들이 먼저 짜도록 하고 남한은 그에 대한 경험을 충분히 전수해주는 식으로 북한의 주도적 위치를 부추겨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처럼, 지금 북한에서 국가의 개입이 없는 경제개발은 사실상 생각하기 힘들다고 할 때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북쪽의 경제개발 방식을 양쪽 국가 차원에서 논할 수 있는 상설 루트를 마련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직접적인 자금투자 등과 관련해서는, 지금까지 있어왔던 민간교류 창구들을 좀더 자율화·활성화하고 북한 사람들도 되도록 남한에 직접 와서 투자상담을 한다든가 함으로써 가령 우리와 일본 간의 교류 수준만 된다 해도 훨씬 얘기가 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남북경협의 전망과 체제에 대한 위협
강만길 경제문제는 김선생님 지적처럼 대단히 중요한데, 북한은 중국처럼 그렇게 일시에 개방을 하지는 않으리라고 봅니다. 대단히 조심스럽게 개방할 텐데, 물론 나진·선봉 지구만 개방하던 상황보다는 조금 더 진전되겠지만 말이죠. 왜냐하면 북한은 중국과 사정이 달라서 급속도로 개방을 하면 체제가 무너지기 쉽습니다. 중국은 땅이 넓은데다 지금도 전체 생산의 약 20%만 사영생산이고 80%는 아직도 국영생산이라고 들었습니다. 물론 그것이 지금 중국 경제의 활성화에 문제가 되고 있지만 말이죠. 그런데 북한은 아직까지도 남쪽의 기업이 들어갈 경우 북한의 노동력을 바로 남한기업에 내놓지 않습니다. 국가가 통제를 하면서 남한기업과 직접 교섭하는 상황입니다. 북한이 그것을 얼마만큼 풀어나갈지 모르지만 그걸 급격히 풀기는 어렵다고 생각하고요. 다만 사회간접자본 투자가 대단히 시급하다는 것은 그들도 알고 있습니다. 북한이 일본과 조약을 맺을 때 받게 될 배상금으로 1백억 달러를 얘기하는데, 그게 북한에서 주로 철도 등 사회간접자본에 투입되고, 그걸 남한기업이 담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데요. 일본 기업이 담당하는 것보다는 가격이 훨씬 싸지니까요. 그렇게 될 경우 북한의 경제체제가 어디로 갈 것인가, 또 통일이 되어 1국 1체제가 됐을 때 우리 경제체제가 어떻게 될 것인가? 지금으로서는 사회주의 경제체제냐 자본주의 경제체제냐 하는 식으로밖에 말을 할 수가 없는데, 나는 그것도 너무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지금 20세기를 넘기는 과정에서 국가사회주의체제가 무너지고 자본주의체제가 홀로 남아 있는 셈인데, 이른바 신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비판도 상당히 많고 그것이 지닌 문제점도 드러나고 해서, 21세기에 들어가면 역시 새로운 세계체제, 새로운 경제체제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전망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 구체적 형태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습니다만. 그래서 우리의 통일이 2,30년이라는 긴 과정을 요한다고 하면, 통일 후의 체제는 경제체제를 포함해서 21세기에 형성되는 세계체제와 맞물려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긴 안목으로 봐야지,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는 식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너무 단기적인 안목이지요. 이렇게 보면 앞으로 회복될 북한의 경제도 세계사의 추이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중국이 어떻게 될 것인가가 세계의 큰 관심거리인데, 중국이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체제를 유지하면서 시장경제를 도입한 저 상태가 유지될 것인지, 아니면 정치적으로도 역시 자유민주주의체제로 바뀔 것인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문제나 우리 통일 문제를 너무 20세기적인 안목으로 재단하려고 하지 말자는 겁니다.
홍윤기 저는 강선생님 말씀에 동감하면서도 한 부분은 다른 것이 있는데요. 지금까지 북한이 문을 못 열었던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사실상 사회주의 경제보다는 국가체제를 유지하는 데 대한 불안 때문이라고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남북한간에 국가연합이든 어떤 이름이로든 서로가 상대방에 대해서 자기식의 통일을 강요하지 않겠다는 것이 분명해진다면, 북한은 맘놓고 나름대로 자기네들이 원하는 경제개발 방식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고, 그때 우리가 도와주자는 것이죠. 언어도 같고 나름대로 여러가지 동질감도 있으니까 경제권을 형성하는 데 다른 어떤 경제권보다 유리하리라 봅니다. 그랬을 때 북한의 경제체제를 세계사의 추이에 맡겨둔다는 것은 너무 위험하니까 북한이 선택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거죠.
백낙청 적어도 북측의 정책담당자들이 들으면 제일 좋아할 것 같은데,(웃음) 남북경제협력을 북쪽 당국에서는 당연히 자신들이 최대한 주도하는 방식으로 해나가고 싶어하겠죠.
홍윤기 주도와 선택은 다릅니다만……
백낙청 아니, 선택권을 행사한다는 의미에서 말이에요. 가능한 한 최대로 주도하려고 할 텐데, 지금 우리가 문제삼는 것은 실질적인 경제협력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그것이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것이죠. 그것이 가능하고 또 필요한 일이라면 우리가 힘닿는 데까지 도와주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강선생님은 너무 20년, 30년 얘기를 하시니까 현재 얘기가 빠지기 쉬운데, 당장에 닥친 실정을 볼 때 그게 불가능하지 않냐는 거예요.
김경원 당장 닥친 문제는 북한경제를 도와주기 위해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확보하는가 입니다. 북한은, 김대중 대통령이 베를린 연설에서 밝힌 것처럼 그들의 사회간접자본을 재건하는 데 우리가 도와주기를 기대하고 있고 실제로 그것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기업들이 북한에 가서 큰 투자를 못하는 것은 그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거든요. 가령 항만·전력·도로 등이 현재와 같은 상태라면 북한에서의 생산과정의 비용이 너무 높아지거든요. 예컨대 제 고향인 남포에서 컨테이너 하역작업을 하는 비용이 상하이나 다른 중국 항만에서보다 5배 이상이라는데, 하역작업에 필요한 현대화된 시설이 하나도 안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임금이 아주 싼데도 불구하고 그처럼 높다는 겁니다. 그리고 전력문제도 아주 심각하고 도로도 엉망입니다.
그런데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가 97년 가을 금융위기를 경험했다는 거죠. 97년까지만 해도 우리 기업들은 자본비용을 별로 생각하지 않고 프로젝트 성격에 따라 상당히 장기적인 전망과 신념을 가지고 투자를 했는데, 그렇게 무모한 투자행위 뒤에는 정권이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그런 관치금융이 많이 약화됐다고 할까요? 현실성이 없어졌거든요. 그러니까 북한에 투자하는 기업들보고 청와대가 나만 믿으라고 하며 굳게 악수하면 기업들이 뛰어가서 투자하는 것은 이제 기대할 수 없습니다. 전부 자본비용을 생각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보면 지금 북한의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국제기구인 IBRD(국제부흥개발은행), ADB(아시아개발은행) 등에서 시장가격보다 싼 이자율로 돈을 빌려오는 것밖에 없거든요. 문제는 미국인데, 북한을 테러국가로 보는 한 미국은 이들 기구의 이사국으로서 북한에 자금을 대출해주는 것을 반대하리라는 점입니다. 또 미국이 승인하는 경우에도 그 기구들은 돈을 싼 값에 빌려주지만 나중에 돌려받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때문에 북한경제의 투명성이 어느정도 보장되지 않고서는 이것 역시 힘들어요. 그러니까 우리로서는 북한을 있는 힘을 다해 정성껏 도와주면서도 북한에 국제적인 현실을 잘 설명해서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런 합리성과 투명성을 어느정도는 보장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시키는 길밖에 없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데 만약 북한이 그대로 따랐을 경우 그 내부체제가 어떻게 되느냐는 역사의 신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죠.
홍윤기 제가 볼 때는 북한이 경제를 재건할 플랜을 갖고 있는지, 또 그럴 마음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지금 사안별로 계속 요구하고 있는데, 그런 것부터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이 지금은 가장 큰 원조가 아닌가 싶습니다.
김경원 저는 그 문제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다만 북한이 ‘주체’와 ‘자주’를 좋아하지만 과거의 경제 운용방식은 실제로는 대외의존적이었습니다. 에너지와 전력 문제가 저렇게 된 것도 소련이 제공하는 우호가격(friendship price)으로, 그러니까 국제가격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게다가 외상으로, 그것도 경화(hard currency)가 아닌 쏘프트론(soft loan)으로 제공받았기 때문이거든요. 북한경제는 자주적으로 운용되어본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문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북한은 지금 경제개혁을 할 수 있는 지적 자원도 없을 겁니다.
강만길 북한이 자본주의 경제를 공부하도록 몇백명을 외국으로 내보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공단을 만드는 문제, ‘현대’와의 관계, 금강산관광 혹은 온천 경영 등, 자본주의 경제와 교류하는 데 있어 이런 정도의 계획밖에 안 갖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중국의 예를 많이 본뜨려고 하는가 봐요. 그럴 수밖에 없겠죠. 문제는 중국과 북한의 사정이 많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들도 이를 고민하지 않을까 싶은데, 제일 중요한 것은 그들은 사회주의체제를 무너뜨리지 않는 방향에서의 경제발전을 원하는데 과연 그것이 가능하겠느냐는 거죠. 어쨌든 남쪽에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는 두 가지라고 생각해요. 하나는 체제를 무너뜨리지 않겠는다는 것, 물론 이쪽에서 그것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만 그렇게는 안한다고 안심시켜야 한다는 거죠. 그러면서 경제를 재건할 수 있게끔 해주는 방법이 대단히 어려운 건데, 그러다보니까 흔히들 북한이 무엇이 변했느냐, 변한 것이 없지 않느냐는 말을 많이 합니다. 나는 남쪽의 생각처럼 사회주의체제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은, 북은 안 한다고 봅니다. 그게 아니고 전쟁의 위험을 줄이는 문제, 남과 교류를 하는 문제, 휴전선에서 비방하지 않는 것, 철도를 연결하는 문제,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변화를 추구하고 있죠. 그러니까 지금 남에서 상당기간 동안은 사회주의체제 자체를 건드리는 변화를 요구하지 말고, 전쟁 위험을 없애고 대립을 완화하는 쪽의 변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이는 경제문제에도 적용됩니다. 기본적으로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한 경제교류가 아니라 전쟁을 없애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쪽에 촛점을 맞춘 교류를 해야 하는 거죠.
김경원 한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북한을 무너뜨리지 않겠다고 보장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우리가 보장해주고 말고 할 능력이 있냐는 거죠.
강만길 우리가 그걸 그렇게 앞세우지 말자는 거죠.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이란?
백낙청 우리 정부가 나서서 무너뜨리지는 않겠다는 보장이야 해줄 수 있을지라도, 무너지고 안 무너지는 것은 보장해줄 수 없겠지요. 그것은 모르는 일이고, 또하나 제가 주목하는 점은, 분단체제를 극복한다고 할 때는, 거듭 말씀드립니다만, 지금 남쪽이나 북쪽 체제보다 나은 것을 만들자는 것이거든요. 그렇다면 남쪽 체제도 달라지고 북쪽 체제도 달라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다만 그것이 와장창 무너져서 더 나빠지는 것이 아니라 한층 나은 체제로 바꾸자는 취지이기 때문에, 바람직한 변화에 필요한 만큼의 안정성을 유지하자는 것입니다. 그 이상의 안정성을 추구하거나 ‘보장’하려 한다면 역사에 역행하는 일이 될 수도 있죠.
저는 이번 공동선언문에서 또하나 주목한 대목이 4항의 경제협력을 다룬 부분이었습니다. 발제문에서 썼습니다만, 거기에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킨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정상간의 합의과정에서 그냥 좋은 표현으로 쓴 것인지 깊은 내용이 담긴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이라는 개념은 현 자본주의 세계경제, 세계시장의 사전에는 없는 단어거든요. 이것을 우리가 그냥 잠정적으로 협력하면서 잘 살자는 뜻으로 썼을 수도 있고, 남과 북의 당국이 각기 편리하게 해석할 소지가 있다는 점도 좋다면 좋은데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민족경제를, 정말 한반도 전체의 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킨다고 한다면, 그 방식은 뭔가 지금 북한의 경제체제와는 달라야 할 거예요. 동시에, 큰 틀에서 자본주의 세계시장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해도 지금 남한식의 자본주의 경제는 아니라야 가능한 일이고요. 정상들이 그걸 염두에 두었냐 아니냐 하는 게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고, 이런 합의를 계기로 우리가 어떤 비전을 가지고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켜나갈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그런 것을 가능케 하는 세계경제체제를 구상하고 또 거기에 맞으면서 우리 실정에도 맞는 발전모델을 개발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강만길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이라는 말은 내가 받아들이기에는 현재 남과 북의 경제적인 조건에 많은 차이가 있으니까, 한반도 전체를 하나의 경제단위로 보고 남북의 경제가 어느정도 같은 수준에 올라갈 수 있게끔 노력한다는 의미 정도가 아닌가 싶어요. 질적인 면보다는 양적인 면에서 고루 발달하게 힘써야 한다는 의미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남과 북의 두 체제를 바꾼 새로운 체제까지를 생각하면서 집어넣은 것은 아니지 않을까, 그래서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백낙청 그런데 남북을 하나의 경제단위로 봤을 때의 균형적인 발전이라는 것이 수사 이상의 의미를 지니려면, 첫째 북의 체제유지를 전제하고 가능하겠느냐는 거죠. 지금보다 생활수준이 좀 나아진다든가 생산력이 향상된다는 것은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지만, 돈줄을 쥔 것이 남한과 외국의 자본인 이상, 결국 남쪽은 세계자본주의 발달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영역이 되고 북쪽은 그 후방기지 같은 걸로 전락하는 불균형발전밖에 안되지요. 그렇다고 흡수통일을 한다면 이런 불균형이 없어질 것인가? 독일의 예에서 보듯이 불균형이라는 것은 시장경제 일변도로 가서는 시정되기 어려운 것이고, 한반도의 경우에는 독일보다 더 심해질 거라고 봐야죠. 그러니까 지금 남북 정상들이 새로운 경제체제를 구상하면서 말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이걸 받아들여서 실천에 옮긴다고 할 때는 아까 김선생님이 지적하셨듯이 자칫하면 북의 체제를 위협해서 반작용을 초래할 수 있는가 하면, 말로만 균형적인 발전이지 불균형을 지속시키거나 심화시킬 수도 있어요. 그게 안되려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또다른 길을 지금부터 생각해봐야 하지 않겠냐는 말입니다.
강만길 앞으로 그렇게 노력해보자는 말이죠.
김경원 이런 것 같아요. 한국 사람들이 원래 정신은 멀쩡한데 취한 척할 때가 있거든요. 뻔히 알면서도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 해야 하는 말이 있고……
강만길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홍윤기 그런데 이런 정도의 보완적인 사고는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피상적으로 보자면, 어쨌든 북한에서 경제문제에 대해 구상하는 것은 좀더 잘살기 위해서라기보다도 상당히 다급한 사정 때문이라고 대체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면에서는 국가가 인민의 모든 것을 책임져준다는 이른바 사회주의 경제의 근간을 더이상 유지할 수 없는데, 어쨌든 지금까지는 무력에 의해 남한이나 미국에 자기네 국가체제가 다 접수되면서 인민들 전체가 노예화되는 것이 아니냐 하는 불안감이 굉장히 컸단 말입니다. 이 문제는 동·서독 관계에서도 유추해볼 수 있을 텐데, 서독정부에서 동독정부를 타도하겠다는 말을 한번도 한 적이 없고, 국제관계에서도 다 대등하게 대우받았거든요. 저는 독일식 흡수통일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언젠가는 흡수통일이라는 말버릇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왜냐하면 실질적으로 독일이 흡수통일을 한 것이 아니라, 제가 목격한 바로는 동독 인민들이 나름대로 독일에 와서 볼 것 다 보고는 결국 자기네들이 가서 정부를 바꿔버렸단 말입니다. 흡수통일이라고 할 때 흔히들 대자본·국제자본들이 와서 어떻게 했다고 하는데, 내용은 좀 달랐거든요. 그런데 가령 북한에서 인민들이 데모를 하는데 남한이 경찰을 파견해서 진압을 해줄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지만 지금 저희가—
김경원 그런 문제도 앞으로 제기됩니다.
홍윤기 제기되더라도 그건 북한 안에서 처리되도록 해야 하는데—
김경원 그런데 만약 북한 내부에 문제가 생겼을 때 중국이 무력 개입하면 우리는 어떻게 하느냐? 그건 심각한 문제예요.
홍윤기 저는 조금 지나친 생각이시지 않나 싶은데, 요는 정부 대 정부로서는 어쨌든 그쪽 정부에 당신네들이 당장 넘어질 것 같은 위기감은 절대 안 주겠다, 당신네 인민을 보살필 수 있는 시간과 심리적 여유를 가지라고 안심시켜줄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야 그 다음 씨나리오가 가능하든 가능하지 않든 할 텐데, 제가 볼 때는 김경원 선생님께서 그런 점에서 현실주의자답지 않게 너무 과잉반응을 보이시지 않나 싶은데요. 그런 문제에서, 일단 북한이 다급한 불 두 가지, 첫째 외침을 받을 것인가 안 받을 것인가, 둘째 경제적으로 인민들이 굶는 데서 어떻게 하면 벗어나게 할 것인가를 생각할 여유를 충분히 보장해주는 것은 실질적으로 가능하다는 거죠.
김경원 제가 북한에 대해서 이렇게 저렇게 얘기할 때는 제 얘기를 북한 사람들이 듣고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웃음) 그러나 우리 정부가 그렇게 나오면 안되죠. 우리 정부는 햇볕정책만 계속 얘기하면 돼요. 지금 우리 정부로서는 북한 내부문제를 얘기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백낙청 아까 강선생님이 민족경제에 대한 문구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고 하셨는데, 저도 그 문구 자체를 침소봉대할 생각은 없고, 다만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지금 김선생님이 거듭 말씀하셨듯이 우리 정부가 보장해줄 수 있는 것이 있고, 또 어느정도 그랬기 때문에 남북대화가 이루어진 것이지만, 그건 지금 당장의 효과이고, 장기적으로 보장해줄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은 어떻게 보면 아무도 없지요. 때문에 북한체제의 동요 가능성도 있는 거고, 그 때문에 남북관계가 다시 옛날로 돌아가지는 않겠지만 여러가지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는 거지요. 또하나는 지금 남과 북의 경제발전 모델이라는 것은 강선생님 표현을 빌리면 양쪽이 다 20세기적인 발상입니다. 남쪽은 자본주의적인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겠다는 것이고요. 북쪽도 ‘강성대국(强盛大國)’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거야말로 20세기적인 부국강병 논리거든요.
김경원 19세기적이지요.(웃음)
백낙청 맞아요. 과연 이런 낡은 이념을 갖고서 우리가 정치학 사전에도 없는 통합과 통일을 이루어낼 수 있겠는가, 이런 취지였습니다.
자, 그러면 이제 우리 내부 문제로 돌려서 남쪽에 사는 사람들이 통일시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검토해봤으면 하는데요. 이번 남북회담을 계기로 우선 생각해볼 사안 하나가 민족주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최근 우리 한국 지식계 동향이 사실은 민족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내용이 주조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적어도 진보적이고 진취적이라고 자처하는 논자들 사이에는 오히려 탈민족주의적인 담론이 지배적인 경향이 됐었는데, 이번 남북회담을 계기로 같은 민족이라는 의식이 고조되고, 다녀오신 분들이 한 핏줄, 한 민족끼리 만나니까 문제가 쉽게 해결되더라 하는 말씀도 많이 하시잖습니까? 전반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민족주의나 민족적인 정서가 여전히 지닌 폭발력이라고 할까 그런 것을 탈민족주의 논자들이 과소평가했다는 증거를 저는 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논지를 고수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현실적으로 과소평가를 했든 안했든, 민족주의와 민족감정이 위력을 발휘할수록 그 폐해를 더욱 날카롭게 지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할 법도 하지요.
그런데 우선 홍선생 발제문을 보더라도, 특히 민족주의적인 성격을 지닌 통일담론이 오히려 통일에 장애가 되고 우리의 분단체질을 강화하는 효과를 지닌다고 해서 여전히 민족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시는 것 같고요. 김선생님께서 강조하신 상호신뢰 구축과정에서 보더라도, 민족을 내세워서 서로 공감하고 신뢰가 생기는 면이 있는 반면에, 같은 민족이니까 한 나라로 모여 살아야겠다고 강조하면 할수록 그 하나로 된 나라가 내 맘에 안 드는 모양이면 나는 죽겠구나 싶어서 서로 불신이 조장되는 면도 있지 않습니까? 민족주의나 민족정서에 양면성이 있다는 말은 상투적인 말이 되어버렸는데, 우리가 그런 상투적인 의미에만 만족하지 말고 조금 더 깊이 분석해 들어가면 현싯점에서 민족주의에 어떤 의미부여를 하고 어떤 문제점을 지적해야 마땅할까요?
민족주의와 민족담론의 현실적 기능
강만길 민족주의 문제에 대해서는 나도 읽어봤어요. 우리가 흔히 이런 얘기를 해왔었죠. 우선 우리는 식민지배를 받은 민족이기 때문에 저항민족주의를 가지고 유지해온 셈인데, 이제는 그것이 필요없게 되었다. 그러나 분단된 민족이기 때문에 민족을 통일해가는 과정의 구심점이라고 할까요? 이런 것을 가지기 위해서는 민족주의가 살아 있어야 하지 않느냐, 심지어는 필요하지 않느냐 하는 얘기들을 해왔는데요. 그런데 사실 나는 우리가 단지 같은 민족이니까 통일을 해서 살아야 한다는 논리는 앞으로는 별로 설득력이 없어질 거라고 봅니다. 같은 민족이라도 두 개의 국가를 이루어 사는 일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죠. 특히 유럽의 경우에는. 아시아는 좀 다릅니다만. 그래서 한반도에 살고 있는 남북 7천만명의 주민들이 21세기를 20세기보다 자유스럽게, 좀더 평화롭게, 좀더 낫게 살기 위해서 이 지역이 통일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한반도가 동아시아의 화약고니, 세계에서 가장 전쟁위험이 높은 곳이니 하는 얘기를 들으면서 자기가 살고 있는 땅의 문제 하나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21세기에 국제사회에 나가서 어떻게 하나의 세계시민으로서 떳떳하게 살 수 있겠는가? 그러니까 그 지역 주민으로서 한반도가 그런 곳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세계시민적 책임이 있지 않느냐? 늘 평화스럽지 못한 요인을 만드는 곳이 되어온 이 땅덩어리를 통일시킴으로써 동아시아 평화에 공헌하고 나아가 세계평화를 위해 우리 스스로 능동적으로 기여해야 하지 않겠느냐? 이런 차원에서 우리의 통일문제를 얘기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도 민족주의라고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나는 그렇게는 말하고 싶지 않은데요.
그리고 하나 걱정스러운 것이 지난 3,4세기를 통해서 세계 모든 지역의 문화가 자본주의 선진국 문화로 획일화되고 있습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일본과 우리가 자본주의 선진문화를 너무 많이 따라가고 있어요. 이처럼, 쉽게 말해 청바지 하나가 온세상을 휩쓸어버리는 상황이 되면 세계문화가 발전하지 못합니다. 문화는 다양해야 발전하는데, 이런 식으로 획일화되어버리면 앞으로 세계문화의 발전지표라고 할까, 이런 것을 얻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문화적인 면에서는 각 지역 혹은 민족이 자기 고유의 문화를 유지하면서 또 그것을 세계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냄으로써 문화를 다양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그런데 우리의 경우 분단 50년을 통해서 남쪽 문화는 거의 미국·일본 등 선진자본주의 문화 쪽으로 흡수되어 획일화되었고, 북쪽은 나름대로 문화의 독자성을 유지한다고 애쓰기는 했지만 중국문화에 상당히 가까워져가고 있어요. 이렇게 해서는 한반도가 독자적인 문화권을 유지하지 못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되면 세계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할 수 없는 것 아니냐? 앞으로는 이런 책임까지도 여기 살고 있는 주민들이 느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지역의 문화, 자기 문화의 독자성을 키우고, 그러면서도 배타적이 아닌, 세계문화에 어울릴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갈 의무가 있다고 봅니다. 이런 점에서 통일문제와 연결해서 설명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김경원 민족주의를 얘기하기 전에, 우리가 한 민족이라고 하는데, 민족이라는 것이 도대체 뭘까요? 정치학자들이 민족의 개념을 정리해보려고 많은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민족의 요소로 공통의 언어·문화·역사 등을 얘기하는데, 따져보면 다 예외가 나오거든요. 그래서 그걸 기능적으로 설명해보고자 한 사람이 칼 도이치(Karl Deutsch)인데, 그는 민족이 사회적 의사소통(social communication)의 한 단위라고 보고, 민족 내부의 의사소통은 외부인과의 의사소통보다 훨씬 원활하다는 가정을 내세워서 실험까지 해봤습니다. 스위스인 중에는 독일어·프랑스어·이딸리아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사람들끼리 그래도 한 민족이라고 해서 내부 소통이 더 원활한가 실험했더니, 놀랍게도 같은 독일어를 하는 독일인과 독일어권 스위스인의 의사소통보다는 독일어를 하는 스위스인과 이딸리아어를 하는 스위스인 간의 의사소통이 더 빠르더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보통 언어라고 할 때의 그 언어가 사회적 의사소통을 보장해주는 게 아니라, 함께 살아온 경험, 상징, 문화, 이런 것들이 다 합쳐져서 사회적 의사소통이 이루어진다는 거죠.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가지 우리가 못 보던 현상을 보아서요. 우리는 보통 정상회담이라고 하면 통역이 있는 줄 알았는데, 이번에 텔레비전을 보니까 통역이 없어요. 그러니까 의사소통이 빠른 거예요.
백낙청 그것뿐만이 아니고요. 김대중 대통령이 비행기에서 내려왔을 때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영접을 하고, 둘이 함께 의장대 사열을 하고, 그리고 같은 차를 타고 가지 않았습니까? 이건 국빈 대우에다가 동족간의 예우를 겸한 것이거든요. 그냥 동족 방문자로 쳤으면 의장대 사열은 안 시켰을 것이고, 외국의 국빈이라면 같은 차를 타고 가자고 안했겠지요. 통역관을 태워야 하니 복잡해지기도 하지만, 의전상으로도 파격이 되거든요.
김경원 그건 상당히 생각을 한 것 같은데…… 그리고 만찬 때 영부인이 따로 앉으니까 ‘이산가족이냐’라고 했는데, 그것도 계획된 겁니다. 좌석배치 같은 건 전부 사전 브리핑한 건데, 김정일 위원장 이 양반이 상당히 영리해요. 그건 그렇고,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도 상당히 모호하고 문제가 많은데, 특히 우리의 경우에는 민족주의보다는 민족콤플렉스가 있어서…… 그게 있을 수밖에 없죠. 엄청난 강대국들 틈에 우리가 거주지역을 잘못 잡았죠.(웃음)
여성문제는 나중에 다뤄도 되나
백낙청 그런데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정상적인 정서와 비정상적인 정서의 차이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콤플렉스와 콤플렉스 아닌 것도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웃음) 우리식의 ‘민족콤플렉스’가 너무 없는 미국인들의 심리가 반드시 건강한 건지도 의문이고요. 아무튼 콤플렉스도 활용하기 나름이에요. 그래서 아까 칼 도이치 말씀도 하셨지만, 딱히 도이치류의 기능론은 아니더라도 현싯점에서 민족감정이 이렇게 고조되고 민족 문제가 크게 부각되는 것이 어떤 현실적 기능을 갖는가 하는 차원에서 당면한 현실을 따져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가령 민족 문제가 대두할 때 흔히 일어나는 현상 중 하나가 민족 내부의 차이가 흐려진다는 것 아닙니까? 민족 내부에서도 불이익을 받고 있는 집단, 노동자라든가 여성 등. 사실 민족이 크게 부각되면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두고도 여성계의 비판 중 하나는 거기에 여성대표가 별로 없었다는 것이거든요. 여성대표 딱 한분과 이희호 여사, 그리고 기자 한명밖에 없었다고 하는데, 남자들 중에는 여성계가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여자가 몇명 끼였느냐부터 따진다고 식상해하는 사람도 많습니다만, 그것이 현실적인 문제를 반영하는 상징적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해요. 다시 말해서 남북회담 같은 데서, 가령 남과 북이 각기 안고 있는 성적 불평등, 성차별 문제를 염두에 두고 통일작업을 추진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는가를 보여주는 것 아닐까요? 물론 다른 문제도 복잡한데 여성문제는 나중에 다뤄도 좋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런 식으로 제쳐놓기 시작하면 항상 불리한 위치에 있는 집단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잠시 비켜서서 자기들 문제도 해결해줄 것인가 하고 기다리다보면 결국은 다른 문제가 해결된 뒤에도 그 문제는 반영이 안되고 마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특히 분단체제극복이라는 것이 강선생님 말씀대로 21세기에 한반도 주민들이 20세기와는 다른 삶을 사는 것이고, 또 김선생님께서도 우리가 원하는 것이 남북이 공히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사회가 되는 것이라 하셨는데, 이런 취지에서 본다면 당장의 남북정상회담에서 여성문제를 의제로 삼지는 않더라도 통일작업에서 어떻게 하면 좀더 남녀간의 불평등을 줄이고 좀더 공정하고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가 중대한 민족적 현안으로 들어가야 하겠는데, 민족주의 담론의 확대가 그 점에 유리한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는 거지요.
김경원 민족주의가 잘못이 아니라, 민족주의가 권위주의를 잠재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것이 문제죠. 아까 말씀하셨지만 여성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마이너리티, 예술가, 개인주의자, 모두 다 희생시킬 수 있는, 희생시키기 위한 이데올로기로서 작용할 수 있는 것이 민족주의입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제가 말씀드린 바와 같이 덩치 큰 친구들 옆에 끼여서 살아온 우리들로서는 민족의식을 안 가질 수가 없거든요. 안 가지고는 우리 자신의 삶의 기회를 확보할 수 없다는 데 우리의 고민이 있는 것입니다. 조심하면서 나아가야 하는 이유가 있죠.
홍윤기 한국민족주의 얘기가 나오면 저는 당혹스러움을 느낍니다. 서양에서 보면 대부분 민족주의는 보수주의자들의 이데올로기인 경우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거꾸로 보수적인 분들은 대체로 강대국 순응주의적이고 외세의존적이고 어쨌든간에 상당할 정도로—
김경원 친미적이죠.
홍윤기 친미적이라고 해서 반드시 보수적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만…… 보수적인 분들 중에서도 감정적 반미주의자들은 참 많습니다. 미군들과 같이 활동했던 장교들을 보면 미군과 죽자살자하면서도 뒤에 가서는 꼭 미군 욕을 하더라고요. 아무튼 우리 현대사에서 보면 민족주의가 외세에 대한 저항일 뿐만 아니라 그런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정권에 대한 급진적인 저항이념으로 작용해온 측면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 자신이 현재 상태에서 민족담론을 벗어났으면 하는 것은 그런 민족주의가 꼭 억압적이어서라기보다, 이제 굳이 민족을 얘기하지 않아도 우리가 인간 구실을 해야 할 규범적인 척도가 요구되는 장이 매우 많아졌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가령 우리가 민족 얘기를 많이 하면서도 사실상 연변에 있는 동포들이 지금 우리나라에 와서 어떤 일을 하는가에 대해서는 제대로 얘기하지 못했습니다. 또 러시아에 있는 고려인들을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요. 그렇지만 우리가 진짜 민족주의자라고 한다면 그 사람들이 국내인들에 비해 부당한 차별을 받는 것에 대해서 뭔가 얘기가 있었어야 한다는 거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보수적이거나 권위주의적인 정권하에 있었던 분들이 지닌 민족관을 보면 이들이 민족주의자가 아닌 것 같다가도, 구조적으로 항상 정권이 위기에 몰릴 때라든가 하면 민족주의자가 돼요. 요즘 재미있는 것이, 이상한 논리에 의해 한국에서 가장 탁월한 민족주의자는 박정희씨로 되어 있는데, 실질적으로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보면 가장 대외의존적인 경제발전을 추구하고 주한미군이 나가면 당장 죽을 것처럼 붙잡고 해서 종속적 발전의 대표가 된 사람이 박정희씨였거든요. 이런 식이라면 민족이라는 단어는 우리 민족, 그야말로 한반도 거주민이 지표를 설정하기에는 굉장히 오염되었다는 겁니다. 때문에 지금 민족주의 담론을 포기하자는 것이 민족담론을 포기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단지 민족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인간이기 때문에 추구해야 할 전인류적인 가치가 많다고 했을 때, 통일문제나 통일과정의 문제도 바로 이런 차원에서 보면 풀릴 문제가 많다고 봅니다. 남북한간에 민족이라고 했을 때 수많은 개념들이 투쟁을 하고 있는데, 다 자기가 말하는 민족 외에 다른 것들은 민족이 아닌 것이거든요. 그런 식으로 얘기되는 것을 지양하자는 것이죠.
남북관계와 정상적인 선린관계
백낙청 네. 지금 같은 민족이니까 무조건 통일국가를 이루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적어도 네 사람간에는 합의된 사항이고, 민족이라는 개념이 정리하기에 따라서 수없이 많고 헷갈린다는 것도 우리가 동의하는 바니까, 이 이야기는 그 정도로 하면 될 것 같고요. 홍교수 말씀 중에는 각자가 민족에 대한 자기 개념을 고집함으로써 생기는 부작용을 제거하자는 당연한 주장이 있는가 하면, 또하나는 지금 한반도 분단이 민족분단임을 전제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민족의 국가인 중국이라든가 러시아에 대한 관계와 같은 관계를 일단 남북간에 성취한 다음에 통일을 하든지 말든지 하자는 주장으로 가시기도 했는데, 이건 좀 독특한 주장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우선 나는 민족분단일 뿐이지 국가분단이 아니라는 말도 절반만 정확한 표현이라고 봅니다. 즉 근대적인 통일국가가 분단됐다는 의미의 국가분단은 아니지만, 전에 있었던 조선이라는 국가가 식민지 상태를 거쳤다가 일단 식민지 통치자가 무너진 상태에서 분단됐다는 의미에서는 국가분단이기도 하죠. 그러니까 독일처럼 근대적인 통일국가가 분단된 것은 아니라는 건데, 어쨌든 홍선생 말씀대로 국가분단은 아니라 해도 한반도의 주민이 하나의 민족이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갈라진 것은 분명하죠. 그렇다면 이렇게 성립된 두 개의 국가가 과연 한국과 일본, 한국과 중국, 또는 한국과 미국 같은 관계를 제대로 이룩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덮어놓고 통일하자고 하는 것도 상호신뢰 구축에 부작용과 반작용을 가져오지만, 반대로 우리 일단 통일은 잊어버리고 완전히 별개의 독립국가로 정착한 다음에 그때 가서 합치자는 것도 상호불신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우선 자국민으로부터 불신을 받아서 정권의 정통성을 상실하고 상대방과의 명분 경쟁에서 뒤지게 마련이지요. 저는 이걸 두고 이상주의라고 하기는 뭣하지만 어쨌든 현실주의적인 발상은 아니라고 봅니다.
홍윤기 아닙니다. 저는 지극히 현실주의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제가 볼 때는 적어도 새로 자라나는 세대를 대상으로 할 때 우리가 당장 통일이 안되니까 포기하겠다고 해서 정통성의 위기를 맞이할 정부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통일문제의 경우 50년 동안 그것을 통해서 통일 아닌 딴짓들을 워낙 많이 해왔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것을 포기한다고 해서 과연 제대로 될지도…… 그러나 저는 장기적으로 이건 믿습니다. 어쨌든 한반도가 통일되어야 뭔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는 국가가 되는 것이고, 그렇게 되기를 저도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간의 이질화라고 보통 부르는 문제이기도 합니다만, 그 층위가 민족의 동질성이라는 층위보다도 더 두텁다는 겁니다. 저는 우리 안에 거의 체제화되어 있는 이런 분단체질 같은 경우는 만만치 않은 소모적인 청산과정을 거쳐가야 한다고 보는 거죠.
백낙청 말하자면 홍선생은 통일담론이 대표하는 일종의 허위의식이랄까, 그런 것도 말하자면 우리 분단체질의 일부로 보시는 거죠?
홍윤기 저는 분명히 그렇게 보는 겁니다.
백낙청 이 논의를 계속하면서 홍선생님이 분단체질이라고 명명하신 것을 극복하기 위해 남한 내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각자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강만길 역시 아까 내가 한 얘기와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요. 분단체제적인 상황을 해결해나가는 방법도 현실에 얽매이지 말아야 하고, 현실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하지 말고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 다음에 나는 역사 선생을 오래 했기 때문에 그런지 모르겠는데, 아까도 얘기했지만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이 지구 전체를, 인류사회 전체를 한층 더 낫게, 한층 더 평화롭게 만들어갈 의무가 있어요. 그걸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문제가 많습니다만, 여기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그런 의무를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분단체제에 얽매여 있다는 얘기는 한반도 주민들이 그런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왜? 분단이라는 것이 사실은 한반도 분단만이 아니고 동아시아 전체의 분단이었어요. 한반도가 분단되었기 때문에 적어도 20세기에는 동아시아 전체가 평화롭지 못했지요. 그렇기 때문에 동아시아 전체를 평화롭게 만드는 데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이 일정하게 기여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분단체제를 해소하는 것이지요. 모든 사람들이 이런 문제의식을 빨리 가지게 되는 것, 특히 기성세대가 그런 의식을 가지게 되는 것, 분단체제를 해소해나가는 첩경이 바로 거기에 있다고 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21세기에는 세계가 하나가 된다고 하는데 그때 떳떳하게 얼굴을 내놓을 수 없게 된단 말입니다. 이러한 점이 결국 우리들 하나하나에게 인식되어야 하고, 또 그럴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김경원 저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은 발제문에 다 썼으니까, 여기서 또 강조할 필요는 없겠고요. 한가지만 말씀드리면, 우리가 통일 또는 분단 문제를 생각할 때 지나치게 단순한 개념이나 목적의식에 사로잡히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고 봐요. 왜냐하면 그 상황 자체에 이중성이랄까 복합성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가령 통일이 필요하다, 필요없다, 평화는 보장되어야 한다든가 보장되지 않는다든가, 이런 단층만 보는 사고방식은 큰 도움이 안되고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고 봐요. 그래서 지금 정상회담으로 과거에 얼어붙었던 상황이 많이 느슨하게 되고 매듭이 풀어지고 새로운 가능성이 보이기 때문에 우리가 자칫 잘못하면 흥분해서 한쪽 방향으로 쏠리기 쉬운데, 그렇게 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까 양면이 항상 있다는 점을 의식해야죠. 그러면서도 항상 강선생님 말씀대로 미래지향적인 태도를…… 일종의 희망이죠.
홍윤기 그런데 분단체질 같은 경우 허위의식도 포함되느냐고 하셨는데, 실제로 보면 분단체질에서 나온 피해의식의 경우는 꼭 허위의식이 아니었던 경우도 많습니다.
백낙청 내가 허위의식이라고 한 것은 통일담론이 일종의 허위의식이라고 홍선생이 말한 것을 지칭한 거예요.
홍윤기 제가 볼 때는 어느 경우에는 허위의식이라기보다는 그것이 권력담론인 경우가 많았다는 것인데요. 우리의 경우 어느 면에서는 국가분단은 아니었으며, 우리가 식민지배에서 벗어나면서 소멸했던 것은 현대국가는 아니었고 실질적으로는 봉건국가였는데, 진정하게 현대적인 차원에서 우리가 어떤 국가를 만들 수 있는가는 남북간에 허심탄회하게 제대로 얘기된 적이 한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가령 북한의 경우는 통일이 되면 사회주의 경제체제나 토지국유제 같은 것이 큰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남한의 경우도 그에 못지않게 여러가지로 분단이 남겨놓은 것이 있는데, 저희 세대를 필두로 해서 어린 세대들은 제발 이제는 분단과 통일을 갖고 고민하지 않는 세대가 됐으면 하는 거죠.
김경원 그 희망은 구세대도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그 고민은 통일이 되어야 없어지죠.
홍윤기 아마 그런 딜레머가 있을 겁니다.
백낙청 그런 희망을 갖는 것은 당연한데, 통일이 안되고서 그 희망이 충족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것이야말로 허위의식이고 분단체질의 일종일 수 있죠.
홍윤기 그것은 100% 긍정합니다. 거꾸로 된 표현일 수 있겠습니다.
백낙청 그래서 제가 분단체제라는 말을 쓸 때에는, 우선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으면서도 사실은 양쪽의 기득권세력이 공생하면서 이를 유지해간다는 의미가 있고, 또하나는 딱히 분단의 유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이 체제에 길들여져 사는 사람들의 여러가지 생활습관이나 체질이랄까 의식, 이런 것도 분단체제의 재생산에 기여하고 있다는 뜻이죠. 분단체제라는 것이 아주 복잡하고 유연한 데가 있어서 가령 통일을 목청높여 주장하는 그런 힘조차도 오히려 분단유지에 활용될 수 있는 신축성과 복잡성을 갖고 있다는 주장이기 때문에, 홍선생이 그런 맹목적인 통일담론이 오히려 분단을 유지하는 허위의식일 수 있다고 하는 데는 공감해요.
대안체제 창출을 위해서라도 풍부한 상상력을
강선생님은 미래지향적인 것을 강조하셨고, 김선생님은 그보다는 조금 더 당면한 현실문제를 많이 말씀하셨는데, 두 분의 주장을 잘 종합할 수 있다면 훨씬 원만한 비전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령 김선생님은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전쟁위협부터 제거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당면문제로서는 그것이 중요하고, 또 이런 일차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도 발제문에 나와 있듯이 “전쟁을 방지하겠다는 도덕적 정열과 풍부한 상상력 그리고 예리한 기술적 지식이 모두 필요한 분야”라는 데 동감입니다. 다만 저는 이런 자질과 능력을 전쟁방지에만 쏟을 것이 아니라 그 앞의 앞 문제에도 동시에 쏟을 때 실제로 전쟁방지에도 더 효과적이고,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들을 제대로 풀 수 있을 것 같다고 보는 거지요. 그런 점에서 강선생님이 좀더 미래지향적으로 되자고 하는 말씀에 동의하지만, 선생님 말씀에서는 또 30년 후의 일이니까 그때 가서 보도록 미뤄두자 하는 느낌도 받거든요.
강만길 여유를 가지자는 얘기죠.
백낙청 여유를 가지자는 말씀에는 저도 물론 찬성인데요. 저는 30년 뒤라는 진단도 반드시 현실적인 건 아니라고 봐요. 정치인의 입장에서는 내가 너무 서두르고 있지 않다는 인상을 주기 위한 상당히 지혜로운 발언일 수도 있습니다만, 그런 정치적인 부담을 지지 않는 지식인의 입장에서는 20년, 30년 후에 체제가 결정될 것이고, 그때 가서 세계체제나 세계경제의 형태에 따라 이것이 결정되면 된다 하는 것은 그 전에 생각해야 할 문제를 소홀히하는 결과가 될 수 있지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국가연합 단계로까지 나가고 남북간의 협력이 어느정도 원활하게 진행되기만 해도, 2정부는 가능하더라도 최소한 지금 같은 2체제는 유지되기 힘들게 되어 있습니다. 1.5체제 정도는 되어야 연합도 가능하고 연방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2체제로만 가는 것도 불가능하고, 갑자기 1체제로 된다는 것은 혼란을 의미하는 것이고요. 그래서 당장 국가연합을 하기에 알맞은 1.5체제 정도가 되려면 남과 북이 각기 어떻게 얼마큼씩 바뀌어야 할지를 우리가 연마해서 새로운 제도들을 창안해야 하는데, 30년 후에나 1체제가 된다고 말함으로써 이 문제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하게 될 염려가 있는 거지요.
또하나는 아까 민족문제와 관련해 자본주의 선진문화의 획일화를 염려하셨는데, 그 점에 저도 동감입니다. 그런데 이걸 방지해야겠다고 하시는데, 자본주의의 획일화는 진행되는데 과연 자본주의 문화의 획일화를 방지할 수 있겠는가? 저는 이것도 심각한 딜레머라고 봐요. 우리가 자본주의 획일화의 과정에서 탈락하면 결국 돈도 실력도 없어져서 문화적으로도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거기에 끼여들어서 경쟁력을 확보하다보면 자본주의 획일화의 담당자로 변해버리지 획일화를 방지하기가 어려워지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이 경우에도 우리가 새로운 세계체제를 구성하는 데 필요한 경쟁력을 확보할 만큼은 가담하면서 그 이상은 말려들지 않도록 거리를 두는 지혜와 실력이 생겨야 할 텐데, 그야말로 풍부한 상상력과 도덕적 정열과 예리한 기술적 지식, 이런 것이 필요한데, 그러저러한 문제를 지금부터 당면한 문제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강만길 모든 세계문화가 자본주의 선진문화로 획일화되어가는 데 대한 반성이 상당히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자체가 이미 하나의 방향을 잡았다고 생각되고요. 그런데 밖에 나가보면 느끼게 되는 것이, 옷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서양옷을 가장 많이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일본인과 우리예요. 그건 일본이 가장 먼저 서구화를 추구해 어떤 점에서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고, 우리가 그 식민지가 됐기 때문입니다. 다른 지역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더구나 이제는 일본에서도 그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 자기의 고전문화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어요. 우리도 반성이 일어나고 있죠. 젊은 세대가 자기 고유의 전통문화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우리 세대보다는 훨씬 많이 하고 있고, 또 실제로 어느정도 성공하고 있어요. 물론 옛날식 그대로는 아니고 새로 재창조한 것이기는 합니다만. 예를 들면 사물놀이 같은 것이죠. 이런 식으로 멀지 않아서 그런 반성이 퍼져나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국가 권력이 이렇게 강화되어 세금을 강제로 징수하고 국민을 억지로 동원해서 더러운 전쟁 속에 집어넣고 한 것이 불과 4,5백년전인 절대주의시대 이후부터입니다. 물론 그전에도 전쟁은 있었지만, 이렇게 강력한 권력이 뒷받침된 것은 이때부터죠. 한데 20세기를 넘기면서 세계사적으로 큰 변화, 즉 민족국가 및 국민국가 권력의 강화에 대한 회의·반성이 상당히 일어나고 있어요. 예언자 같은 얘기일지 모르지만, 이 두 가지 문제는 얼마 가지 않아서 자본주의 문화,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반성으로 발전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점에서 보면 어느 민족이나 사회를 막론하고 현체제 안에서 경쟁력을 길러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너무 이상적인지는 모르겠지만.
백낙청 경쟁력이 어느정도 있어야 살아남는다는 것은 그냥 상식인 것 같은데요. 단지 어느정도 수준으로까지 가야 하느냐는 게 문제이고 우리 맘대로 어느 수준에서 멈출 수 있느냐는 게 더욱이나 어려운 문제인데, 저는 이것을 우리가 1등을 해야겠다든가 강대국 대열에 끼여야겠다고 나서는 대신, 너무 잘살지도 않고 너무 못살지도 않는 나라로서의 잇점을 활용하자는 식으로 표현해왔습니다. 이를 위한 일종의 수세적·방어적인 경제성장 정책을 취하자는 것이지요.
저도 지금 강선생님이 지적하신 그 두 가지 반성이 일어나는 점을 중요시합니다. 동시에 그것과 함께 생각해야 할 점이 있다고 봅니다. 우선 문화의 획일화에 대한 반성이 여기저기에서 일어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문화의 득세현상 자체도 어떻게 보면 단수가 더 높아졌다고 할까요? 그래서 이런 다양화 경향까지도 포섭하면서 그 독특한 획일화 내지 상업주의화를 해나가는 것이지, 옛날에 식민지 통치자들이 자기 나라 문화를 그대로 식민지 백성에게 강요하던 식의 단순한 획일화는 아니거든요. 다들 민족의상도 입고, 미국사람이 김치도 먹고 사물놀이도 듣고 하는데, 크게 보면 사이비 다양성에 지나지 않는 이것이 진짜 문제지요.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이겨내려면 지금 일어나는 반성이 뭔가 세계체제 자체를 바꾸는 움직임과 결합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고요.
민족국가나 국민국가의 쇠퇴에 대해서도, 저는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국가라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지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노동자를 통제하고 경제를 운용하기 위해서는 국가라는 것이 꼭 필요한데, 이제까지 그 기능을 맡아온 민족국가 내지 국민국가의 쇠퇴라는 것이 반드시 좋은 현상만은 아닌 것 같아요. 다시 말해서 국가가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운용을 위해서 일종의 감독관으로 나서주는 역할을 어차피 하면서도 국민주권이라든가 민족의 균형적 발전 등의 이름으로 그나마 자기 민족 내에서 문화적인 동질성도 유지하고 일정한 사회적인 분배도 담보해주던 그런 기능이 사라지고 있단 말이죠.
강만길 반성이라는 것이 국가 소멸을 말하는 것은 아니고, 그동안 민족국가 및 국민국가가 가지고 있는 횡포성이랄까 하는 것을 약화시키려는 것인데, 물론 그것은 더 두고봐야겠죠. 내가 젊은 사람들한테 무정부주의적인 생각이 많다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그건 좀더 두고봐야죠.
김경원 미래지향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말씀에는 이의를 달 수 없겠죠. 미래에 대해서 생각을 안할 수 없고, 그리고 자본주의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는 말씀에도 동의를 하는데, 다만 자본주의는 초기부터 반성하는 목소리가 계속 있어왔고 그래서 자본주의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이죠. 사회주의가 살아남지 못한 이유는 반성의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인데, 앞으로 자본주의가 그것에 도전하는 사회주의가 없어졌다고 자만심에 빠져 자기반성을 하지 않는 체제가 되어버리면 상당히 위험하다고 보이고요. 그런데 우리가 통일문제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문제가 어렵기 그지없습니다. 그에 앞서서 좀더 단순하게 우리가 어떤 사회를 원하는가 하는 것 자체가 우리의 과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고 나서 우리가 구상하는 좀더 나은 사회로 남북한이 다같이 접근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하는 문제로 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당면한 제일 어려운 문제는, 우리가 통일도 해야 하고 원하는 사회도 만들어나가야 하는데 한쪽에서는 세계화의 태풍이 불어오고 있다는 것이죠. 한데 우리 자체는 돈이 없습니다. 우리 경제의 자금 흐름을 보면 외국돈이 들어와서 유지되는 거죠. 과거에는 빚으로 유지했는데 이제는 주식자본(equity capital) 형식으로 하는 거죠. 그러면서 우리가 북한을 뭘로 도와줍니까?
백낙청 아까 북이 통미봉남정책을 포기한 것이 북한경제의 상황과 일정한 관련이 있다고 하셨는데, 사실은 남쪽이 흡수통일을 포기한 것도 IMF를 겪으면서 철이 좀 든 거지요.
김경원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경제현실은 정말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요.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그걸 이해하고 메커니즘을 활용할 수 있어야죠. 그래서 통일문제는 궁극적으로 우리의─요새 이데올로기라는 말은 안 쓰죠? 기본철학의 문제죠.
한반도 통일과 근대성 문제
백낙청 원래 한국사회 내부의 개혁과제들을 구체적으로 다뤄볼 계획이었습니다만 마무리를 서둘러야 할 것 같습니다. 워낙 바쁘신 분들을 모시다보니 다음 약속이 잡힌 분들이 계시거든요. 그동안 우리 지식계를 달궈온 담론 중의 하나가 근대성 문제인데, 그것과 관련해 말씀을 들은 후 마무리를 지을까 합니다. 가령 한반도에서 각자 자기 나름대로 생각하는 통일이 이루어진다고 할 때, 한편으로는 드디어 우리도 근대에 참가했다, 근대성을 성취했다고 보는 발상이 가능하겠고요. 다른 한편으로는 근대 속에서 좀더 잘 적응을 하는 것이지만 한반도의 경우는 그냥 근대성취 정도 가지고는 해결될 문제가 아니고 뭔가 근대극복의 실마리를 여는 작업이 동시에 이루어질 때 가능하다는 발상이 있겠지요. 저는 후자 쪽을 주장해왔고 저희 창비 지면에서는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라는 표현을 자주 쓰고 있습니다. 제가 볼 때 베트남의 통일은 일정한 근대성의 성취라고 단순히 표현해도 무방할 것 같아요. 독일이야 근대국가 모양을 갖춘 지는 오래됐습니다만, 이번에 통일을 하면서 비로소 내부적으로나 대외적으로 통일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춘 강력한 근대국가가 되었는데, 그대신─
홍윤기 그쪽 표현을 빌리면 강력한 정상국가가 된 거죠.(웃음)
백낙청 그런데 사실 독일 정도의 여러가지 자원을 가진 나라라면 통일을 하면서 세계사에 뭔가 더 큰 것을 줬어야죠. 결국은 강력한 보통국가 또는 정상국가가 되었을 뿐인데, 남한의 경우 베트남식 통일도 안되고 독일식의 통일도 안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단순한 근대성취로는 통일 자체가 어렵다는 얘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김경원 제가 독일 문제에 대해서 한가지 말씀드리면 독일이 정상국가가 됐다는 말은 정확하면서도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만일에 정상국가라면 더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어야죠. 그런데 독일이 통일될 수 있었던 것은 2차대전의 전승국가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통일되고 나서도 강대국을 지향하지 않겠다는 것을 확신시켰기 때문이죠. 군사적으로는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계속 남아 있고, 정치·경제적으로는 유럽연합 체제에 용해된다는 씨나리오가 있었기 때문에, 그러니까 독일은 유럽이 있었기 때문에 통일이 가능했던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것이 다 적용되지 않는 경우에요. 우리는 나름대로의 독특한 사정이 있고 어려운데, 무엇이 가능하다 무엇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는 저는 안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독일의 경우 통일되는 순간까지도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슈미트(H. Schmidt) 같은 사람은 자기가 살아 있는 동안에 통일되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해요. 다른 친구는 길을 걸어가다가 하늘에서 떨어진 선물을 주워보니까 통일이더라는 얘기도 하고요. 그런데 우리의 통일도 그런 식으로, 백선생 표현처럼 도둑같이 온다는……(웃음)
백낙청 저는 좀 다른 의미에서─(웃음) 말하자면 8·15가 도둑같이 왔는데, 그때는 잠들었을 때 왔고, 이번에는 깨어 있어야 한다는 거죠. 독일사람들은 통일에 관한 한은 어떤 의미에서는 잠들어 있었죠.
김경원 그런데 도둑이 들어왔을 때 깨어 있으면 위험할 수 있으니까 차라리 자고 있는 게……(웃음)
강만길 깨어 있으면 도둑이 안 들어와요.(웃음)
협상통일, 그러나 담합통일은 아니어야
김경원 우리의 통일방식이 무력이 될 것이냐, 평화적으로 될 것이냐, 또는 예멘식으로 될 것이냐는 얘기는 제가 보기에는 다 추측인 것 같고요. 지금 사실에 근거해서 얘기할 수 있는 것은, 북한이 내부 원인에 의한 붕괴 가능성이 극히 적기 때문에 독일식 통일은 어렵겠다는 겁니다. 이와 관련해서 하나 말씀드리면, 독일통일 직후 드레스덴에서 열린 학회에 가서 만나본 구동독지역의 중년부인 얘기가 통일되기 전이 좋았다는 거예요. 뭐가 좋았냐고 하니까, 그때는 매주 월요일마다 퇴근 후 간단히 집에서 식사를 하고는 교회에 가서 뜻있는 사람들끼리 시국토론을 했다는 겁니다. 경찰이 오는가 망보면서 토론을 하고, 나중에 시가에 나가서 데모를 하고 했는데, 그때는 정말 삶의 보람이 있었다는 거죠. 그런데 통일이 되고 나니 그런 것도 없고, 삶의 의미가 없어졌다는 겁니다. 그냥 남편도 일하고 자기도 일하면서 어떻게 하든지 소득만 올리려고 한다는데……
백낙청 보통국가 국민의 고민인 거죠.((웃음)
김경원 그래서 그때로 되돌아가는 것이 좋겠냐고 했더니, 그건 아니라는 거예요. 거기에 바로 역설이 있는 것 같아요. 독일은 공산정권하에서도 다원적 사회구조가 그대로 있었다는 겁니다. 교회가 있었고 교인들이 모여서 체제에 반발하는 운동을 했는데, 북한에는 그런 것이 없는 것 같아요. 있을 이유가 없어요. 조선시대에서 그냥 일제 식민지배로 들어갔다가, 그 다음에 공산정권이 들어서서 반세기가 지나왔으니까.
백낙청 마지막으로 한마디씩 하시기로 하죠. 제 차례는 이미 지난 셈입니다만, 지금 예멘식의 통일 얘기가 나왔으니까, 강선생님이 말씀하시기 전에 다른 선생님들도 말씀해주십사고 주문을 할까 합니다. 베트남식 통일이나 독일식 통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분명하고, 그건 안하기로 이번에 합의를 본 셈이며 국민적인 공감대가 이루어졌는데요. 그런데 협상통일이라는 범주에는 예멘식의 통일도 분명히 들어갑니다. 한데 예멘과 우리가 사정이 다르니까 그대로 적용될 수 없는 것은 물론이지만, 저는 그게 모델로서도 문제점이 많다고 보거든요. 협상통일도 그야말로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당국자간의 담합통일이 되면 곤란한데, 예멘이 바로 담합통일이었거든요. 이번에 두 정상이 협상통일까지는 합의했는데, 제가 볼 때 이들의 개인적인 생각과는 관계없이 정권을 쥔 사람들은 속성상 권력자들끼리 담합해서 하는 것을 선호하지 민중들까지 끼여서 복잡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단 말이에요. 그래서 앞으로의 과정을 생각하시면서─
강만길 사실 지금 협상통일이 시작됐다고 했지만 남쪽의 정권은 유한한 정권입니다. 불과 얼마 남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다음에 들어서는 정권이 그냥 협상통일을 추진해나갈 수도 있고, 아니면 남북관계가 다시 냉각상태로 들어갈 수도 있을 겁니다. 때문에 한반도에서 협상통일 외에 마땅한 방법이 없다면,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그것을 추진해나갈 수 있는 뿌리가 내려져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이 협상통일이 옳은 방법이고 그것이 꾸준히 추진되어야 한다는 의식을 갖게끔 해야 한다는 겁니다. 정권이 바뀌어서 담합을 하다가 안되어 다시 남북관계가 냉각되는 경우라도, 남북화해를 계속 뒷받침할 국민적인 여론이 형성되어 있어야 하거든요. 물론 현정권이 있는 동안에 그것이 완전히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하지 않고, 다른 정권이 들어서서 남북관계가 냉각되거나 후퇴되는 경우가 있다 해도, 국민들 사이에 그런 통일방법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속속 퍼져나가리라고 생각합니다. 역사라는 것이 늘 일직선으로 나가지는 않는 것 아닙니까? 지그재그가 있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그 폭이 좁아진단 말예요.지금 2년반밖에 안 남았는데 그동안 어떻게 한다고 해서 해결이 안되죠. 그리고 한반도의 통일이 우리 역사에서 근대의 완성이냐 근대의 초극이냐 하는 것은 참 어려운 문제인 것 같은데요.
백낙청 초극이라는 표현은 안 쓰는 것이 나을 것 같은데요. 그게 일본에서 40년대에 썼던 표현으로, 제가 볼 때 그것은 근대성의 좋은 면을 성취함으로써 근대에 제대로 적응하는 문제는 빼고 초극만을 얘기하다가 결국은 패망의 길로 들어섰던 것인데, 저희는 그것과는 다른 얘기를 하는 것 아닙니까?
동아시아 통합은 가능하며 바람직한가
강만길 그런데 이것은 역시 세계체제 문제와 연결되어 있어요. 아까 김선생님이 자본주의가 자기반성을 해왔기 때문에 유지되어왔다고 했는데, 그것은 사실입니다. 사회주의가 도전을 했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반성을 한 것이거든요. 그런데 현실사회주의가 다 무너져버린 상황에서도 자본주의가 자기반성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인가? 오히려 모순이 급격히 심화될 수도 있고, 그래서 새로운 도전세력이 급격히 형성될 수 있다는 가정도 가능하고요. 또 만약에 자기반성을 한다면 케인즈주의적인 반성보다는 훨씬 더 강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그래서 21세기에는 적어도 현재의 신자유주의적인 체제가 그대로 유지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하고요. 한데 자본주의가 자기반성을 하거나 새로운 도전세력이 나타나거나 했을 때의 세계 상황과 우리의 통일 상황은 연결된다는 얘기입니다. 그걸 우리끼리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이고요. 그것을 근대를 넘어서는 체제라고 생각하면 당연히 그럴 수 있겠죠.
또하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동아시아 문제가 있어요. 동아시아라는 것이 한반도가 대륙권에 포함되면 해양권이 위험해지고, 해양권에 포함되면 대륙권이 침략을 받게 되고, 그렇지 않았습니까? 그것을 피하려 한 것이 남북분단이고 그 결과 남북은 각각 다른 한쪽에 속해버렸고, 그래서 긴장 속에서 균형을 유지한 것이 냉전체제였는데, 지금 남북이 통일을 이루어가려고 한단 말예요. 그래서 21세기에 이루어질 남북의 통일은 한반도만의 통일이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의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앞으로 이루어질 동아시아의 통일은 중세시대처럼 동아시아 자체가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식이어서는 안되고, 하나의 경제공동체·평화공동체를 이루는 것일 텐데, 이는 동아시아의 평화를 담보하는 대단히 중요한 길이라고 봅니다. 통일되는 한반도가 이같은 문제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한반도의 21세기 역사를 열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데 여기에서 가장 걸리는 문제가 일본입니다. 일본은 근대로 오면서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주창하며 제국주의를 배워서 참략주의국가가 됐는데, 여전히 탈아입구적인 입장에 있어요. 그래서 일본이 옛날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얼마만큼 동아시아로 돌아올 수 있겠는가, 그렇게 해서 일본·중국과 통일된 한반도가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그런 하나의 세계를 구축해나갈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가 있는 겁니다. 이를 위한 핵심적 역할을 하는 것이 한반도 통일이라고 봅니다. 이런 희망을 가지고 있어요. 또 희망입니다.(웃음) 그런데 이런 역사의식을 남북 주민들에게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고, 그렇게 해야만 중국사람이나 일본사람들이, 적어도 그들이 20세기적인 제국주의자나 냉전주의자가 아니고 평화주의자라면 한반도의 통일을 반대하거나 방해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죠. 이런 이야기를 중국사람이나 일본사람에게도 더 해줘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홍윤기 강만길 선생님께서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희망을 말씀해주셔서 제가 더 드릴 말씀은 없지만, 어느 면에서는 아직도 분단체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의 하나로서 조금 일관성을 가지고 얘기하겠습니다. 분단체제 아래서 우리가 겪은 근대성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규정이 가능하겠지만, 성격상으로 보면 독선적 근대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북한은 북한 나름대로 식민지반봉건사회에서 바로 근대사회로 뛰어오르는 길은 이것뿐이라고 해서 일종의 국가사회주의체제에 민족경제적 요소를 더하고, 그러면서도 근본적으로 많은 것은 사회주의 형제국가에 의존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남한도 말할 것도 없이 자기식대로 해왔는데, 그런 점에서 볼 때 독선적 근대화를 체험했다는 겁니다. 독선적 근대화라는 얘기가 수식어 이상의 의미가 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제가 염두에 두는 것은 서유럽국가의 경우입니다. 서유럽국가에서 근대성에 대한 여러가지 기획들이 나름대로 서로 대립하고 투쟁하고 섞여가면서 하나의 종합된 작품을 만들어가는, 말하자면 근대성의 관철이라는 것이 하나의 오케스트라처럼 조율되는 과정을 봤을 때, 어느 경우는 사회주의적인 요소가 우세하기도 하고, 어느 경우는 자본주의, 혹은 극단적으로 가기도 하면서 역사의 지평을 넓혀왔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독선적 근대화가 되다보니까, 남북의 근대화 모두 파행적이라는 점은 분명한 것 같고요. 그러니까 분단체제가 거의 체질화되다시피 했기 때문에 한꺼번에 무너뜨리기도 곤란하다면, 분단체제에서 성장한 사람들로서 저희가 원하는 것은 양쪽의 골격은 가만히 놔두더라도 서로 벤치마킹을 해보자는 거죠. 북한도 나름대로 문제가 있고 우리도 나름대로 문제가 있는데, 젊은 사람들끼리는 서로 왔다갔다하면서 너희들은 무엇이 잘못됐냐, 우리는 이런 것이 잘못됐다 하면서 서로 경험을 공유할 수는 있다는 겁니다. 그랬을 때 분단체제를 통해서 기득권을 누려왔던 분들이 유일하게 착한 일 한번 하고 돌아갈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젊은이들에 대해 일종의 계몽적 전제군주의 입장에서 “자, 너희들끼리 한번 해봐라” 하고 자리를 마련해주는, 우리끼리는 싸우지 않고 있을 테니 너희끼리 사귀어봐라 하는 한마당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지 싶어요. 동아시아 통합의 비전까지는 모르더라도 일단 이웃에서 몽둥이 들고 서로 넘어가지 않겠다는 것만 해주면, 그 다음에는 어린애들끼리 잘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웃음)
백낙청 동아시아 통합이라는 재미있는 발상이 나왔으니까, 김선생님께서 거기에 대해서도 한 말씀 보태주시죠.
김경원 자꾸 희망을 말씀하시는데, 거기에 반대되는 현실을 자꾸 말하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지금 진행되는 역사를 보면, 유럽에서는 통합을 말하는 반면, 아시아에서는 분열과 세력균형, 경쟁을 얘기합니다. 그래서 흔히 유럽사람들은 아시아는 지금 19세기 유럽의 전철을 밟고 있고, 강대국간의 경쟁관계는 마치 19세기 유럽 열강들의 다툼을 연상케 하는 상황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러면서 서방 학자들은, 왜 아시아는 유럽처럼 통합되지 못하느냐는 기막힌 질문을 합니다. 왜 아시아는 균형자(balancer)가 없느냐, 왜 경제통합을 이루지 못하느냐고 하고요. 그런 경우 저는, 우리는 너희같이 지독하게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합니다. 유럽 통합이 가능했던 것은 독일과 프랑스가 화해했기 때문인데, 그건 둘 사이에 싸움이 치열했기 때문입니다. 일본도 지독한 짓을 많이 하기는 했지만, 일본의 잘못을 용서해주려는 뜻에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봤을 때 독일이 저지른 죄악에 비하면 그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로 보입니다. 이처럼 유럽통합은 유럽역사에서 저질러진 엄청난 죄악에 대한 댓가로서 가능해진 것이라고 보는데, 그러면 아시아에서는 어떻게 될 것으로 보느냐?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통합을 하기 위해서 죄악부터 저지를 수는 없는 것이고(웃음) 우리는 어디까지나 우리식으로 평화적인 방법으로 통합의 길로 나아가야 하겠는데, 그 가능성이 전연 없지는 않다고 봅니다. 최근 미국의 한 경제학자는 세계경제가 앞으로 북미지역과 유럽, 동아시아지역, 이렇게 세 개의 블록으로 구성될 것이라고 했는데, 통계상으로는 확실히 그렇게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유럽과 북미지역의 지역주의에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도 어느정도 지역통합을 이룰 필요성을 느끼게 될 겁니다. 그래서 그런 필요성에 비추어, 그리고 세계경제의 전망을 내다보면서 우리는 동아시아의 통합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백낙청 강선생님이 희망을 말씀하실 때도 지금 김선생님이 지적하신 현실을 어느정도 전제하고 말씀하신 걸 테니까, 심각한 차이는 없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저는 동아시아 나름의 통합방식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에 동의하면서 한가지 부연하고 싶은 게 있어요. 중세적 통일이 아닌 경제적 통합이라도 제대로 되려면, 역시 어느정도 근대극복을 전제한 방식이어야 되리라는 거지요. 다시 말해서 현재의 자본주의 세계시장의 논리에 그대로 순응하는 통합은 현실적으로 그렇게 쉽지도 않지만 인류를 위해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봐요. 가령 일본과 중국, 한반도 세 지역만이라도 NAFTA(북미자유무역지역)식의 통합을 한다든가 유럽연합식의 통합을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이것은 엄청난 초대형 공룡이 탄생하는 겁니다. 미국이나 유럽이 불안해할 것은 물론이고, 우선 동남아시아나 남아시아 사람들이 결사반대할 겁니다. 또 이 괴물이 야기하는 지구환경 파괴는 상상을 절할 거고요. 그러니까 경제적인 지역통합이라는 것도, 한편으로는 다른 지역들이 이미 통합을 해서 동아시아지역이 여러가지로 불이익을 당하니까 그에 대한 방어의 의미에서 낮은 수준의 통합과 협력은 어느정도 이루어나가야겠지만, 이것이 더 진전되려면 그 기본논리가 달라져야지요. 현행 논리로 한다면 괴물을 만드는 것밖에 안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김경원 우리가 하는 통합은 어디까지나 느슨할 것으로 봅니다.
강만길 유럽의회 같은 것은 상당히 어렵겠죠. 아마 경제공동체 같은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백낙청 끝내기로 예정한 시간이 벌써 많이 지났군요. 서둘러 마쳐야겠습니다. 오랜 시간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