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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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공선옥 孔善玉

1963년 전남 곡성 출생. 1991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소설집 『내 생의 알리바이』 『피어라 수선화』, 장편소설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살』 등이 있음. HAHANBUN@hitel.net

 

 

정처 없는 이 발길

 

 

포클레인 소리는 연 사흘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그 육중한 기계가 우지끈 한번 힘을 쓸 때마다 앞집과 옆집과 그 옆집들이 흔적도 없이 무너져내렸다.

“커피 남은 것 있는가?”

갑생은 마루 끝에 나앉아 포클레인의 활갯짓을 구경했다. 그랬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동물이 빈 동네를 활갯짓하며 돌아다니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포클레인 저 혼자 살판이 난 것이다. 집이 무너지고 난 뒤에는 어김없이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수자원공사에서 나온 인부들이 철거된 집의 잔해들을 그러모아 불태우는 것으로 철거작업은 완전히 끝을 맺는 것이다. 갑생의 아내는 마지막 남은 커피가루를 양재기에 쏟아붓고 커피병에 남아 있는 찌꺼기를 물로 헹구어냈다. 갑생이 커피를 양껏 들이켜고 나서 아내에게 건넸다. 그 아내도 말없이 커피를 입속에 털어넣었다. 커피가 들어간 뱃속이 쿨렁거리며 소용돌이쳤다. 오늘 갑생의 집은 아무 일도 없었다. 평시와 다름없이 저물녘의 커피타임도 가졌다. 그러나 평시와 다른 것이 있었다. 커피를 마시고 나서 텔레비전을 시청할 시간이었지만 오늘 갑생이 부부는 사방이 어두워오는 그 시간에 불도 켜지 못하고 연기 피어오르는 마을만 우두커니 구경하고 있는 참이었다.

“지금 뭐 허는 시간인가?”

“연속극 헐 시간이요.”

“우리가 어디까지 봤는가?”

“그 뭣이냐, 인자 그 집 며느리 삼숙이가 집을 나가 살겄다고 허고 삼숙이 남편이 그러면 안된다고, 부모님을 모시고 대가족 속에 사는 것이 애들한테도 좋다고 험스로 꼬신게 그러면 그래야겄다고 허는 데까지 봤지 않어요?”

“허어, 이 사람이. 그것은 밤늦어 허는 월화드라마고 지금 시간에 허는 것이 뭣이냐고오.”

“………”

“그나저나 뉴스는 꼭 봐야 쓰겄는디……”

갑생은 입맛을 다셨다.

“뭐 입맛 다실 것 좀 없는가?”

전기가 끊어져 텔레비전을 못 보니 이래저래 늘상 꿔다논 보릿자루 같기만 하던 아내한테 말이 많아졌다.

“뭣이 있을랑가.”

사방을 둘러본들 아무것도 나올 리 없건만 아내는 혼잣말처럼 구시렁거리며 군입거리를 찾아 부엌으로 들어간다. 사람이 없는 마을에 타닥탁, 부시시, 우지끈 쿵 하며 불꽃놀이가 벌어졌다. 불은 하늘 높이 솟구쳤다가 이내 쿵 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어둠이 짙어지자 공사 사람들이 미처 소화도 해놓지 않은 채 모두 철수를 해버린 모양이었다. 불 사그라지기를 기다리자면 한데서 밤을 새워야 할 판으로 허허벌판이나 다름없이 되어버린 곳이라 일부러 불을 끌 일도 없을 터였다. 한참이 지나도 부엌에서 나오지 않는 아내를 기다리기도 민망하여 갑생은 휘적휘적 집밖으로 나와버렸다. 일을 끝마치고 돌아가던 공사직원이 갑생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오늘 저녁이라도 포크레인 들어갈 수 있어요 이. 싸게싸게 뜨시요, 떠.”

갑생은 공사직원 말을 무시하고 고요히 불을 바라보았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제 집보다 환해서 좋은 것도 같았다. 갑생은 불 곁에 쭈그리고 앉았다. 대들보와 서까래와 마룻장과 흙더미가 타들어갔다.

기봉이네집의 대들보를 보자 기봉이 부친이 그 대들보 타고 입이 한자나 찢어지던 날이 생각났다. 그 집의 상량식을 하던 날, 기봉이 부친은 막걸리에 떡에 돼지 한마리도 잡았다. 온동네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기봉이 부친을 대들보에 올려놓고 마당 가득 우꾼하게 놀았다. 그날의 웃음소리와 음식냄새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건만 이제 그 집은 속절없이 한 모다기 모닥불로 사라져버리고 있는 것이었다.

타는 것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타일과 석고보드와 냉장고도 탔다. 기봉이 타일 깔아 신식 목간통 만들고 씽크대 들여서 입식부엌 만들고 냉장고를 사들여놓고 자랑하던 날들도 다 엊그제 일만 같았다. 기봉은 그 아버지가 상량식 하던 날 그랬듯이 입식부엌 만들고 냉장고 들여오던 날에도 입이 한자나 찢어졌었다.

“갑생이 성님, 돈 쪼끔 들여논게 이렇게나 좋아불그만요이. 뜨신 물에 날마다 목간허고 나무허러 날마다 산에 안 올라가도 되고 참말로 문화인이 따로 없단게요.”

나무와 흙이 탈 때는 흰 연기가 솟았다가 타일과 석고보드와 냉장고가 탈 때는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냉장고에서는 아직도 신김치 냄새가 배어나왔다. 갑생은 연기냄새를 흠씬 들이켰다. 머리가 좀 어질어질하고 목 안이 매캐했지만 금방 괜찮아졌다. 지금 불타고 있는 그 집 주인 기봉이는 일주일 전에 그 집을 떴다. 시내로 간다고 했다. 마을에서 아직 떠나지 못하고 있는 갑생이집만 빼고 마지막 남은 집이었다. 냉장고는 버리고 갔으되 작년에 새로 놓은 ‘보이라’는 알뜰히도 뜯어갔다. 아직 정처를 잡지 못한 갑생이를 생각해주느라 이삿짐 쌀 때도 조용조용 싸더니 막판에 갑생을 불렀다.

“갑생이 성님, 간단헌 일이기는 허지마는 나 좀 도와주씨요.”

아침에 짐을 싼다기에 거들어주려고 갔더니 실상 도와줄 일이 없었다. 기봉이 마누라서껀 전주로 출가했던 기봉이 여동생들이 와서 설치는 통에 아녀자들 속에 끼여들기도 뭣하여 쭈그리고 앉아 구경을 하고 있었더니 아무것도 안 시키기는 더 미안했던지 트럭에 보일러 올리는 데 갑생의 손을 좀 빌리자 하였다. 기봉은 즈이 어머니 때부터 써오던 반닫이 궤짝을 사정없이 땅에다 패대기쳤다.

“어이, 보이라는 가져감서 그것은 왜 안 가져간가?”

“땅도 버리고 가는디 요런 것이 뭔 필요가 있다요. 보이라는 아직 쌩쌩헝게 버리기가 아깝구만요. 가져가서 어디 고물상에다 팔아도 값이 솔찬헐 것이요.”

“그래도 궤짝은 자네 어무니 때부터 써오던 물건이 아닌가.”

“거기는 아빠트라 이런 구닥다리는 벨로 어울리지가 않겄단 말이요.”

아파트라! 갑생은 부러운 입맛이 절로 다셔졌다. 자신에게 갈 곳만 마련이 되었다면 기봉이 버리고 가는 물건들 죄다 자신이 가져가고 싶었다. 기봉은 반닫이 궤짝도 버리고 즈이 마누라가 시집올 때 해온 포마이카 장롱도 버렸다. 그러면서 슬쩍 열자짜리 십장생 자개장롱도 새로 마련했노라는 자랑을 하려다가 제 마누라가 눈치를 주자 말꼬리를 흐렸다. 기봉이네가 딴 집들보다 이사를 늦게 가는 것은 아파트 입주시기에 맞추느라 그런 것임을 뻔히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갑생은 기봉이네가 아직 이사를 가지 못하고 있는 자체만으로도 적이 위안이 되었었다. 그런데 이제 마지막 이웃이던 기봉이네마저 이사를 가버리고 나자 갑생은 서방 잃은 계집처럼 가슴이 허허로웠다. 기봉이네가 이사를 가고 나자 동네에 남은 집이라곤 자신의 집뿐이었다. 사방에서 불꽃과 연기는 피어오르는데 어둠이 짙어지자 살살 센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갑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잔돈푼이 만져졌다. 담뱃값은 될 것 같고 술값까지 하기에는 버거울 것도 같았으나 그래도 사람의 정을 한번 믿어보기로 하고 갑생은 길을 나섰다.

마을과 도로를 유일하게 연결해주는 다리께에 이르자 한달 전부터 내걸린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다리가 철거되기 전에 이주 완수합시다.’

내일이면 다리를 철거한다는 통보를 오늘 공사 쪽 사람한테 이미 전달받은 터였다. 공사직원은 다리뿐 아니라 갑생의 집도 내일이 마지막날임을 이미 예고했었다. 석달 전부터 푸른색 스프레이로 철거를 고지하기 시작하더니 한달 전부터는 좀더 강렬한 효과를 내려고 그랬는지는 몰라도 붉은색으로 바꿔 철거예정일을 공고했다. 마을사람 일부는 철거예정일 안에 그야말로 조용히, 아무 마찰 없이 마을을 떠났다. 조용히, 아무 마찰 없이 떠난 사람들은 예전에 마을에 함께 살 때도 조용히 사는 걸 좋아한 사람들이었다. 돈이 조용히 사는 걸 가능케 했다. 악다구니는 주로 조용한 부잣집 건너 가난한 집 지붕 위로 솟아올랐다. 그렇게 조용히 마을을 떠난 사람들은 대개 이주단지 안으로 갔다. 논밭이 많아 보상금을 넉넉히 받았지만 도시로는 나가기 싫은 사람들이 별장단지를 만들었던 것이다. 물에 잠기겠지만 고향을 뜨고 싶어하지 않는 그들은 이곳에서의 영화를 잊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걸 갑생은 알고 있었다. 물에 잠기지 않더라도 진작부터 고향 같은 건 다 버리고 어디 대처로 나가 새 인생을 시작해보고 싶었던 사람들은 정작 아무데도 못 가는 처지가 되어 있었다. 가난한 만큼 보상금이 얄팍했기 때문이었다. 보상금이 지급되었을 때 맨 처음 달려온 사람은 농협직원들이었다. 이쪽 채무자에게 돈 생긴 걸 아는 저쪽 채권자가 가만히 있을 리는 없을 터였다. 가진 재산이라곤 집 한채가 전부인 갑생은 보상금을 손에 쥐어볼 새도 없이 농협 융자금 갚아버리고 나자 손에 들어온 돈은 달랑 외상 술값 갚을 만큼이 고작이었다. 당장 굶어도 빚만이라도 없이 사는 세상 한번 살아보는 걸 그렇게도 소원했건만 이제 이주를 해야 할 상황에서 또다시 빚을 져야 할 판이었다.

갑생은 사방이 연기로 뒤덮인 들판길을 걸었다. 달은 휘영한데 비적떼의 습격을 받은 것처럼 이 동네 저 동네가 스산했다. 사람이 떠난 빈 고을에 자기 내외만 달랑 남겨진 것이다. 왈칵 무섬증이 일었다. 정말로 저 희한하게 죽어버린 마을들을 사람들이 그리 해놨다는 생각이 들지를 않았다. 필시 흉악한 짐승들이 그리 짓이겨놓은 게지 싶었다. 바람이 설렁설렁 불어오는 대로 달도 설렁설렁 휩쓸리며 갑생의 뒤를 쫓아오고 있었다. 고을은 어제 오늘 순식간에 그리 되었다. 그곳이 마을이었음을 표시해주는 건 마을 입구의 정자나무뿐이었다. 사람들이 있을 때는 정자나무는 참으로 살가운 나무였다. 먼데서 보고 있어도 왈칵 반가운 나무였다. 이제 사람이 떠나고 나자 나무들이 무슨 귀신의 형상인 것만 같아 갑생의 머리끝이 서늘해졌다. 이제 들판을 지나 고개 하나를 넘으면 사람이 사는 면소재지가 나올 것이다. 그곳에 가면 우선 담배와 술을 구입할 수가 있을 것이다. 담배와 술을 사고 나서는 그곳 학교 앞에서 농기계수리점을 하는 만수한테 어떻게 돈이야기를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집에 머슴 살 때 늘상 업어주고 놀아주던 만수가 옛정을 생각하여 그리 박절하게 대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이 갑생을 터무니없이 편안하게 했다. 희망은 가슴에 그것을 품고 있는 동안에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법이었다. 최소한 그 희망이 깨어지는 순간까지는 사람이 편안할 수 있는 거였다. 만약에 그 희망이 깨어진다 해도 그리 손해날 것은 없을 터였다. 희망하는 그 순간에 편안했으면 본전은 건진 셈이 되는 거니까. 그래서 지난번 그런 희망 하나 품고 서울 아들네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눈물바람하는 아내한테도 그리 말할 수가 있었다.

“가는 동안에 자네허고 나허고 편안했으면 되는 거이 아니겄는가?”

“인자 우리는 어디서 살아야 헌데요?”

“우리집이 여긴디 어디서 살기는 어디서 살어.”

“인자 당신허고 나허고 딱 물귀신이 되어불게 생겼잖어요.”

“사람 목숨이 그리 헐헌 것이 아녀. 내가 살고 있는디 감히 어느 놈이 내집을 부술 것이여.”

“그러다가 물이라도 딱 들어차기 시작허면은 인자 우리는 그대로 죽는 것이 아니어요?”

“희망을 품자고, 희망을. 죽을 때 죽더라도 사는 날까정은 사람이 가슴에 희망을 품고 살아야 허는 것이여. 시절도 희망찬 새천년이여, 이 사람아.”

버릇처럼 일장훈수를 하기는 했어도 갑생은 제 소망과는 달리 희망 없는 현실이 눈앞에 딱 버티고 서 있는 것을 생각하면 그 현실이 무슨 괴물이나 되는 것처럼 간담이 다 서늘해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간담이 서늘해진 건 그러니까 아들네 집에서였다. 농협에서 농자금조로 어렵게 받아낸 융자금을 회사택시를 운전하던 아들이 사고를 내어 그 사고처리비로 대주고 말았었다. 그 일 후에 아들한테 있는 유일한 기술인 운전하는 일은 할 수도 없어 호구지책으로 붕어빵을 굽던 아들이 얼마 전 이번에는 뺑소니차에 제가 사고를 당해 붕어빵 수레는 수레대로 날리고 몸은 몸대로 망가진 채 두칸짜리 지하 셋방에서 늙은 부모를 맞았다. 갑생이 부부가 아들 사정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서울 행차를 하게 된 건 그러니까 아들네가 비록 셋방이나마 방이 두칸짜리라는 데 있었다. 아들네가 단칸방에 산다면 비싼 차비 들여가며 올라갈 생각 같은 것도 차마 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아들은 제 부모가 왔건만 일어서지도 못한 채 먼산바라기를 하고 앉아 있고 에미 없는 손주 셋은 할미 할애비를 제비새끼들처럼 입을 오물거리며 쳐다봤다. 보따리에 싸가지고 온 것이라야 양주(兩主) 옷가지하고 마당에 심었던 것 쏙쏙 뽑아 비닐에 담아온 무 몇개가 전부였다. 손주들이 걸리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사실 맛난 것 사고 어쩌고 할 정신이 없었다. 예상을 안한 건 아니지만 막상 아들네 처소에 당도하고 보니 간담이 서늘해지면서 그 다음에는 억장이 무너졌다.

“너무 그러실 것 없어요. 다리 석고만 풀면 어디 공사장에라도 나갈 것이니까.”

아들은 부모가 왔어도 꼼짝을 못하고 죄없는 제 새끼들만 밖으로 내몰았다.

“야 인마, 너희들 할아부지 할머니 오셨는데 음식 대접해드릴 생각도 안하냐? 경이 너는 어서 밥하고 명이 너는 나가서 할아부지 드시게 술 좀 받아와라.”

아들은 부모 앞에서 제 새끼들한테 뙤앗뙤앗 악을 썼다. 손주들한테 아들이 하는 수작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때가 때이니만큼 갑생은 훈수하기를 체념한 채 담배만 피워물었다. 그러나 담배 한대를 다 피우고 나자 달리 할말도 없고 그놈의 입버릇을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순도야, 희망을 잃지 마라. 사람이란 것은 말이다,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희망 하나만은 움켜쥐고 살아야 쓴다. 이 애비를 봐라. 여태꺼정 이 애비가 살아올 수 있었던 것도 다아 그 희망이 이 가심속에 꺼지지 않았던 결과로 다 이렇게 살아오지 않았느냐. 순도야, 내 말 명심해라. 절대 비관을 해서는 안된다.”

정작 아들한테 하는 소리를 손주들이 귀담아듣는 눈치였다. 아들서껀 손주들까지 경청자가 여럿이어서 훈수하는 기분은 그런대로 괜찮은 것도 같았다. 그래서 얼른 자세를 고쳐앉아 둘째손자놈한테 텔레비전을 한번 켜보라고 일렀다.

“테레비 보면 세상이 보인다. 요즘 나오는 뉴스들을 봐도 알겄지만 우리만 힘든 것이 아니다. 아까 서울역을 거쳐서 올 때 봐도 우리는 그래도 노숙허는 사람들보다는 백배 천배가 낫지 않느냐.”

손주가 텔레비전을 켰다. 마침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대통령과 야당 총재 간에 상생의 정치를 하자고 합의를 했다는 정치권 뉴스가 끝나고 의사들이 또다시 파업을 하노라는 뉴스 화면이 텔레비전 가득 펼쳐지고 있었다. 아비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아들이 텔레비전 뉴스는 화면이 뚫어져라 열심히 쳐다보고 있다가 한마디 툭 내던졌다.

“아따, 있는 놈들이 더 한다니까요. 없는 놈들은 얻다 하소연할 데도 없고 큰일이어요, 큰일.”

“야 이놈아, 니가 지금 이러고 있는 거는 니놈이 사고를 내서…… 아니 사고를 당해서…… 좌우당간 누구 원망헐 것도 없고 그저 내 복이려니, 내 복이 그것밖에는 안되는 것이니 허고 살아야제, 안 그러면은 니 속만 상허는 것이여. 그러니까 인자부터라도……”

어쩌다 한번 말문이 터지면 또 한없이 길어지는 것을 본인도 어떻게 주체할 수가 없는 것이 좀 걸리긴 해도 그래도 한번 말이 나온 김에 결론은 야무지게 내야 한다는 생각이었는데, 아내가 옆구리를 찔벅대는 통에 그쯤에서 그만 입을 다물기는 했다. 지금 자신들이 이곳 아들네 집에 온 목적이 이런 먹혀들지도 않을 훈수나 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그때야 퍼뜩 각성이 되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도 더이상은 참고 고즈넉하게 앉아서 시방 이곳에 자기 내외가 온 목적을 이야기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데 얌전히 텔레비전만 보고 있는 줄 알았던 아들 입에서 느닷없이 쌍욕이 튀어나왔다.

“에잇, 씨발년!”

참고 참았다 내지른 욕설이었던가. 아들 눈에 이글이글 핏발까지 서려 보였다. 손주들은 제 아비 입에서 나오는 욕설이 대수롭잖다는 듯 외려 저희들끼리 얼굴 서로 마주보며 빙글거렸다. 아들이 왜 느닷없이 집 나간 즈이 마누라를 욕하는지는 아들 성격으로 봐서 십분 이해가 되었다. 입때껏 어디다 하소연할 데도 없어 꿀꺽꿀꺽 삼키기만 했던 울화가 제 부모를 보니까 새삼스레 설움으로 복받쳐 내지르는 소리라는 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아들이 욕을 할 때 간담이 서늘해졌고 제 아비가 질러대는 쌍욕을 듣고도 형제들끼리 빙글대는 어린 손주들의 꼬락서니가 갑생의 억장을 무너지게 했다. 웬만하면 어린 애기들 앞에서 할 소리 안할 소리 가려가며 하라는 훈계 정도는 할 수도 있으련만, 귀에 낀 보청기가 맹렬히 울어대는 통에 정신이 어지러워 도통 무슨 말이건 하고 싶은 맘이 싹 가셨다. 그놈의 보청기가 한번 울면 세상만사가 딱 귀찮아졌다.

“이 보청기가 김대통령 것허고 같은 회사에서 나온 제품이라는디 무척 성능이 안 좋아야. 대통령 것이 이래불먼 국사에 상당헌 지장이 초래될 것인디…… 있는 사람들이 너무 저러먼 안돼야. 없는 사람들도 가만히 있는디…… 대통령님이 요새 겁나게 힘들 것이여…… 아 이놈의 것이 왜 지랄을 헌다냐……”

혼잣말처럼 보청기를 빗대 국사를 걱정했다. 아들은 아비 핑계대며 애한테 시켜 사온 소주병을 제 입에 먼저 털어넣으며 집 나간 제 마누라만 씹어댔다. 도대체 무슨 말이건 할 엄두가 나지 않은 것이 아무래도 이곳은 자신들이 올 곳이 아니라는 결론이 쉽게 나왔다. 곤경에 처한 아들네한테 줄 것이라고는 시골에서 뽑아온 무 서너 개밖에는 없는 자신의 입장이 서럽다 해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나 하고 싶었던 욕도 한마디 했겠다, 술 한잔이 들어간 아들은 그때서야 마음이 좀 풀리는 듯 늙은 부모가 상경한 이유를 물었다.

“서울에는 왜 오셨소?”

“부모가 자식집에를 못 와야?”

싹수없는 아들의 태도에 어깃장이 나서 그랬기는 했지만 대꾸해놓고 나서 아차, 했다. 이러고 저러고 해서 우리들이 너희 집에 와서 좀 살면 안되겠느냐고 자신들이 서울에 온 내력을 소상히 설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그만 놓쳐버린 것이다. 거기다가 한술 더 떠,

“너는 이 애비 핑계대고 술을 마시지마는 나는 자식 핑계대고 서울 나들이헌 것이 뭐 잘못이냐?”

“아부지는 술 드시면 안되잖어요. 가뜩이나 속도 안 좋으신 양반이.”

“아따 그래, 고맙다. 아비 생각해서 몸에 안 좋은 술을 니가 다 먹어주는구나.”

“다아 아부지가 저희들한테 가르쳐준 대로 허는 겁니다. 아부지가 우리 어렸을 때 그랬잖어요. 백해무익헌 술허고 담배를 빨리 먹어조져서 없애부려야 헌다고.”

“그래, 배우라는 것은 안 배우고 쓰잘데없는 것은 참 잘도 배웠다. 장허다!”

지하 셋방에서 아비와 아들 간에 일촉즉발 큰 쌈이 붙게 생긴 것을 늙은 아내가 갑생의 허리를 연달아 찔러대서 아슬아슬하게 진정이 되었다. 이곳이 결코 자신들이 와 살아도 될 곳이 아니라는 결론은 쉽게 났다. 오래 머물 것도 없이 그저 하룻밤 자고 일어나 손주들한테 지전 몇장 쥐여주고 보니 달랑 양주 여비만 남았다. 서울에서 내려오는 길은 쓸쓸했다. 내려오는 길에 아내는 내내 눈물바람을 했다.

“그러게 뭣 헐라고 심사 사나운 애를 붙잡고 쓸데없는 사설만 허시요, 허기를.”

“역시 자식농사도 돈이 있어야 허는개비. 갸가 고등만 나왔어도 지 부모헌테 저 지랄은 안헐 것인디. 머슴자식은 머슴자식이제, 지가 어디로 가겄어?”

돈이 없어 자식들 학교 못 보낸 결과로 오늘날 이런 꼴을 당하는구나 싶어 갑생의 가슴은 천갈래 만갈래로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인생 가는 길 아무리 험해도 순하게 살라고, 그리 살지 않으면 길이 없다는 뜻으로다 이름도 순할순자에 길도자를 붙여 순도라 지어줬건만 그 이름 따라 살지 못하는 아들을 생각하니 이녁 가슴이 찢어지는 것이었다.

“뭔 수가 있겄지요. 길 나선 김에 전주 순자집에 한번 들러나 봅시다.”

아내가 한번 들러나 보자고, 짐짓 가벼운 투로 말은 하고 있지만 그 속내가 무엇을 기대하고 있다는 건 갑생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툭 던지듯이 한마디했다.

“저그나 거그나.”

“순자는 그래도 뭔 아빠트까지 당첨받았다 안헙디까.”

“그것? 영구임대 아빠트랑만.”

“뭔 아빠트가 됐건 즈그 집이 생긴 것 아녀요?”

“내 말이 뭔 말인 줄을 몰러? 영구임대 아빠트라 함은, 영구적으로다 임대를 받은 아빠트라 그 말이여. 결코 내 집이라 헐 수가 없제.”

그쯤에서 입을 다물고 잠을 청하고 싶은데 아내가 자꾸 옆에서 말을 시켰다.

“집에 가봤자 당신 좋아하는 그 희망이라냐, 뭣이라냐가 전혀 없잖어요. 딸자식도 자식인디 설마허니……”

“그래서 시방 전주에다가 희망을 걸어보자 그 말인가?”

“……꼭 그런 것이 아니라…… 저기 저……”

“말 좀 똑똑히 혀. 내 보청기 성능 안 좋은 것 몰러?”

“그렁게 내 말은 이왕에 길 나선 김에 순자 새끼들도 한번 보고자프고……”

“그려? 손주새끼들 보러 가자면 또 내가 가지 뭐, 까짓 거.”

아들로 해서 구겨진 자존심 때문에 아내가 딸네 집에 가잔다고 해서 선뜻 그러자고 해지지가 않았다. 아내도 그런 갑생의 속마음을 아는지라 손자들 핑계를 댄 것이렷다. 아내는 무슨 길이 이리 험하냐며 딸네 집으로 올라가는 산동네 길을 탓했지만 갑생은 아들네를 찾아갈 때와는 달리 사뭇 보무가 당당했다. 순자는 마침 집에 있었다. 아들과 달리 일어서서 제 부모를 맞아들이는 품도 갑생을 기쁘게 했다. 딸네는 아내한테서 듣던 바와 같이 이제 곧 영구임대 아파트로 이사를 가려는지 윗목에다가 짐보따리를 꾸려놓고는 있었는데, 들어설 때부터 이상한 것이 몇개 되지도 않은 세간살이들에 노란 딱지들이 붙어 있는 것이었다. 노란 딱지들과는 상관없이 순자는 그래도 제 부모를 보니 마음이 밝아지는 듯 얼굴이 환해졌다.

“그러잖아도 일간 어무니 아부지한테 가보려고 했는디……”

“그래야?”

갑생도 노란 딱지들과는 상관없이 딸이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이 말하는 게 뭔가 서광이 비치는 듯했다.

“이 사람은 일 나갔냐?”

그냥 인사조로 사위의 행방을 물었다.

“그것이 사실은…… 야들 아부지 집 나간 지가…… 카드회사에서 나와가지고 딱지를 붙이니까 겁이 나서 그랬는지……”

아들네에서는 간담이 먼저 서늘해지고 억장이 무너졌건만 딸네서는 억장이 먼저 무너지고 다음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딸의 말인즉슨 영구임대 아파트를 하나 따놓기는 했는데 지금 살고 있는 곳 방세가 밀려 있어 이사를 하려 해도 먼저 방세부터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사야 밤도망을 쳐버리면 된다고 해도 막상 영구임대 아파트 입주시 필요한 기백만원의 보증금 마련할 길이 감감하다는 것인데 뒷말을 더 들을 필요도 없이 순자가 자신들한테 일간 오려고 했다는 것도 다른 볼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보증금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오빠집에 갔으면 서울역으로 가셨겄구만요. 거기서 혹시 야들 아부지 비슷한 사람이라도 못 보셨어요?”

“못 봤다.”

딸은 고개를 떨구었다. 딸이 고개를 떨구는 것이 눈물을 감추기 위해서라는 것쯤 안 보고도 아는 일이지마는 갑생이한테는 딸이 흘리는 눈물을 닦아줄 힘이 없었다. 맥없는 담배나 한대 피워물고 있는데 아내가 심란한 자신을 대신하여 딸 눈물수습을 했다.

“순자야, 울지 말어라. 사람이란 것은 어떠헌 경우에도 울어서는 안된다. 더군다나 너한테는 저 천금 같은 새끼들이 있지 않느냐. 울지 말어라, 울지 말어.”

서울에서 전주 오는 길에 대면 전주에서 집에 가는 길은 지척이건만 돌아오는 길은 실로 멀고도 아득했다.

 

들판을 통과하여 산마루에 올라서자 수몰선을 비켜서 새로 조성한 면소재지의 불빛이 별처럼 반짝거린다. 저 반짝거리는 불빛에 제가 켜는 불빛 하나 보탤 수는 없을까. 그러기보다는 대처로 나가는 것이 더 쉬운 길임을 갑생은 알고 있었다. 소재지 초입의 초등학교를 지나고 오일장 거리를 지나고 슈퍼와 노래방과 비디오가게를 지나 만수네 농기계수리쎈터를 향해 갔다. 오라는 소리는 없었지만 가는 길은 바빴다.

“오시요?”

만수는 배달커피를 다방아가씨와 함께 마시고 있다가 심드렁하게 갑생을 맞았다. 그때야 나이 사십이 넘도록 장가를 못 가고 있는 만수 처지가 새삼스레 떠올랐다. 같이 한잔 마시자는 걸 극구 사양했다.

“오기 전에 이미 커피타임 한번 가졌네.”

만수도 더는 권하지 않았다. 아가씨와 노닥거리는 재미를 자신이 뺏은 것 같아 갑생은 공연히 미안해졌다. 미안하다 해도 한번 내친걸음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마침 만수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서울 갔다왔다는 소식 들리던디, 잘 갔다오셨어요?”

“거두절미허고 시방 내가 아주 곤란헌 입장에 처해부렀단 말이시.”

“아저씨 입장은 충분히 이해허겄는디요. 제 입장도 만만치가 않단 말이요, 시방.”

“뭔 일 있는가?”

“아저씨도 알다시피 보상금 받은 것으로 이 가게 인수허고 집은 전부 빚으로 지었잖어요. 그 빚 상환날짜가 다가왔는디 돈은 없고 새로 지은 집에서 얼마 살아보기도 전에 쫓겨날 판국입니다, 시방.”

“내 말은 다른 말이 아니고 그렁게 내가 곤란허게 된 이유가 말이여…… 어이 이것이 뭔가? 종묘상도 함께 겸허는개비?”

농기계수리점 안에 새로 설치한 듯 농약과 비료와 씨앗 진열장이 있다.

“기계만 수리해서는 밥 못 먹고 살겠어서 들여놨어요.”

“나 약 좀 주소.”

“아저씨, 백번 말허지마는 아저씨 입장은 이해 못허는 것이 아니란 말이요. 내가 아저씨를 도와주지는 못해도 약을 줘야 쓰겄소? 절대로 이상헌 생각은 허지도 마씨요.”

“아니, 내 말은 그런 것이 아니고 쥐약 좀 사가야겄다, 이 말이여. 사람이 비어논 게 쥐새끼들 세상이 되어부렀단 마시. 하루이틀을 살아도 편헌 잠을 자야제 쥐새끼들 따문에 잠자기가 아주 곤란해, 시방. 약 한병 줘야 쓰겄네.”

“쥐한테는 쥐약을 써야 헐 것인디요. 농약도 말을 들을라나?”

“밥 조금 약 조금 해서 섞어노면 즈그들이 와서 먹고는 죽을 길로 가더라고.”

만수는 못 미더워하는 듯하면서도 선선히 파라치온 한병을 내주었다.

“약값은 나중에 줘도 쓰겄는가?”

만수는 아저씨와 나 사이에 그럴 것이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말인즉슨 고마운 말이었다. 만수가 먼저 ‘아저씨와 나 사이’라는 말을 해주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져서 한가지만 더 부탁해보기로 했다.

“어이, 만수. 내가 말이여, 약값 갚을 때 같이 갚아줄 것잉게, 담배 한갑허고 술 한병만 받아주소.”

“진작에 말씀허시제.”

돈 부탁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다는 태도였다. 어찌되었건 옛정이 아주 없어져버린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소기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지는 못했어도 그래도 술 담배에 덤으로 약까지 얻은 것만으로도 어디냐, 하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산다는 것이 늘 백프로 만족일 수는 없는 것이었다. 담배는 호주머니에 찔러넣고 한손에 약병, 한손에 술병을 든 갑생은 다시 귀갓길에 올랐다. 대로변을 지나고 들판길로 접어들었는가 싶었는데 산마루였다. 오는 길이 좀 심심해서 만수가 사준 됫병짜리 소주 마개를 따서 목을 축이며 왔더니 그렇게 수월하게 온 것도 같았다. 언제나 생각해도 술은 참 좋은 것이었다. 힘든 일을 할 때도 술 한모금 입에 들어가면 힘든 줄을 모르겠고, 험한 길을 가더라도 험한 줄 모르게 하는 것이 술이었다.

오늘 저녁이라도 포클레인이 들어올 수 있다더니 차마 그럴 수는 없었던가. 집에 도착해보니 포클레인은 오지 않고 대신 사람이 와 있었다. 움찔 어디로 숨어버리고 싶었지만 술이 들어가서인지 마음과는 다르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간 줄 알았더니 아직 안 갔소?”

“이 집 하나 때문에 공사일정에 차질이 생기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제 입장이 아주 곤란합니다, 시방.”

“미안허게 됐소이다. 이리 와서 술이나 한잔 허실랍니까?”

갑생은 공사직원과 차분하게 속에 있는 말을 좀 하고 싶었다. 내가 안 가려고 해서 안 가는 것이 아니고 갈 곳이 없어서 못 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사비용이라도 조달해볼까 하고 면소재지까지 갔다오는 길이지만 수월치가 않았다. 자식들 얘기는 할 것도 없다. 아들네, 딸네로 해서 천지사방을 헤매다가 왔지만 어디 한군데 늙은 자기들이 가서 살 곳이 없더라. 시간을 조금만 더 달라. 그리고 여유가 된다면 이사비 정도를 어떻게 좀 해줄 수는 없겠느냐. 공짜로 달라는 것도 아니다. 자리잡게 되고 형편 풀리면 꼭 갚아는 주겠다……

공사직원은 갑생이 따라주는 술을 사양했다. 갑생이 혼자 자작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럴 의도가 없었건만 술병 옆에 농약병이 나란히 놓여 있는 것을 공사직원이 보고는 겁을 먹은 모양이었다.

“어르신 입장이 난처하다는 것은 알지만, 여러 사람 곤란하게는 마십시오.”

“이것? 쥐 잡을라고 가져왔소이다. 만수라고 혹시 아요? 내가 그 집 머슴을 살었는디, 그놈 어려서 내가 업어준 정을 안 잊어불고는 술도 사주고 담배도 제일 비싼 것, 디쓰 뿌라스로다가 사주고 약을 한병 외상으로 줍디다. 인물은 좋은디 아직 장가를 못 갔어…… 한잔 안허실라요?”

공사직원은 아무래도 농약병이 거슬리는 듯 경계를 늦추지 않는 표정이었다. 공사직원의 그 표정이 갑생에게 그 결심을 하게 했는지도 몰랐다. 저들이 무서워하는 것은 바로 나의 죽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퍼뜩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갑생은 아내를 시켜 양재기를 가져오게 했다. 그 양재기에다 술을 먼저 따랐다. 그리고 파라치온 뚜껑을 땄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보면 모르시요?”

“어르신이 그렇게 나온다면 할 수 없지요.”

“많이도 필요없소. 한 이백이면 충분허요.”

“보상금은 이미 다 지급됐습니다.”

“안된다면 허는 수 없지요.”

갑생은 양재기에 손가락을 넣고 휘휘 저었다.

“협박을 하시는 겁니까?”

“어쩌겄소.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기는 매한가질 것인디.”

“그래요? 그러면 하는 수 없지요. 저는 책임 못 집니다.”

공사직원이 일어서려 했다. 다급해진 건 갑생이었다.

“이보시오, 그러지 말고 이사비 정도라도 어떻게 안되겄소?”

“이백은 곤란합니다.”

“백번 양보해서 백팔십만 해주씨요.”

“글쎄요. 성금이라도 모아 드릴 수 있는 방법을 건의해보기는 하지요.”

역시 죽을 각오를 하면 살길이 보인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 성싶어 갑생의 얼굴에 잠깐 회심의 미소가 스쳤다. 때아닌 호기도 생겼다.

“고맙소. 고마운 김에 내가 술 한잔 대접해드리리다.”

“술 안 먹는다고 했잖습니까.”

“사람 하나 살아났는디, 기분 안 좋소?”

그때서야 공사직원의 얼굴이 밝아졌다. 일어서려는데 취기가 후끈 올라왔지만 갑생은 공사직원을 집에서 멀지 않은 학교 앞 양조장으로 안내했다. 양조장 문은 닫혀 있었다.

“아니, 이것들이 다들 어디를 간 것이여.”

“다들 떠났습니다.”

“왜 떠났다요?”

“수몰이 되잖습니까. 어른신네도 이제 이사비 받게 되면 떠나셔야 합니다. 아시겠지요?”

“이런 싸가지없는 것들. 즈그만 살겄다고 내빼부러?”

갑생은 열리지 않는 양조장집 대문을 몇번 흔들어보다가 발로 차보기도 하다가 포기하고 휘적휘적 걷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십니까?”

“내가 어디로 가야 허는 것이요?”

“어디로 가실 건데요?”

“……어디로 가야 허는 것이요?”

갑생은 길을 걸어가며 혼잣말처럼 물었다. 어디로 가야 허는 것이요, 어디로 가야 허는 것이요…… 공사직원이 뒤돌아서 가버린 것도 모른 채 갑생은 인적 없는 밤길을 하염없이 갔다. 노래까지 부르며 갔다. 오늘도오 걷는다마아는 정처없는 이 바알길…… 갑생이와 함께 가는 것은 휘영청 뜬 달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