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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하성란 河成蘭
1967년 서울 출생.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소설집 『옆집 여자』 『루빈의 술잔』 장편소설 『삿뽀로 여인숙』 『식사의 즐거움』 등이 있음. gaulhae@hitel.net
별 모양의 얼룩
육십명이 넘는 여섯살 반 아이들을 한장의 사진 안에 넣느라 사진을 찍은 사람은 애를 먹은 것 같았다. 아이들 머리 위로 명정전이라는 현판이 살짝 얹혀야 했으니 더더욱 고심을 했을 것이다. 원생 전원이 잘리지 않고 나온 덕분에 사진 속 아이들의 얼굴은 흐릿했다. 콩알만하게 나온 아이들의 얼굴 속에서 여자가 자신의 아이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아이들 모두 유치원 이름이 새겨진 노란 원복을 입고 있었다. 여자는 손톱 끝으로 얼굴들을 짚어가다가 맨 뒷줄 가장자리에 서 있는 아이를 발견했다. 아이의 얼굴은 앞에 선 두 아이의 어깨에 가려 간신히 코 윗부분만 나와 있을 뿐이었다.
여자는 거실바닥 가득 아이의 사진을 늘어놓고 가장 선명하게 나온 아이의 사진을 고르는 중이었다. 사진은 유치원에서 찍어 장당 얼마씩을 받고 가정으로 보내준 것들이었다. 몇장의 사진을 들여다보니 나중에는 아이의 얼굴을 단박에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아이는 늘 맨 가장자리나 맨 뒷줄에서 얼굴이 반쯤 잘리거나 앞에 선 아이들의 어깨 사이로 떠오르는 해처럼 반쯤 얼굴을 내놓은 채였다. 사진을 찍기 위해 흩어진 아이들을 정렬시키다가 나중에야 외따로 떨어져 있는 아이를 발견하고는 허겁지겁 아무 자리에나 데려다 세운 듯했다.
벌써 몇번째 수십장이나 되는 사진들을 꼼꼼히 살펴보았지만 단 한장의 사진도 자신의 아이에게 포커스가 맞춰진 것이 없었다. 점심으로 싸준 김밥을 입에 물고 있거나 붉은 흙속에서 방금 캐낸 고구마나 무 따위를 전리품처럼 각자의 앞에 늘어놓은 사진 속에서도 아이는 가까스로 사진기를 향해 반쯤 얼굴을 돌리던 차였거나 아예 고개를 들지 않아 둥그런 이마와 가르마만 찍혀 있을 뿐이었다. 언젠가 아이가 가져온 사진을 훑어보던 남편이 볼멘소리를 한 적이 있다. 유치원 담임을 한번 만나봐, 나 몰라라 맡겨만 놓지 말고. 여자는 남편의 말을 한번에 알아들었다. 이 이는 세상물정을 몰라도 너무 몰라. 요즘이 어떤 세상인지나 알고 그래요? 유치원에서는 사사로이 음료수 캔 한개도 받지 못하게 되어 있어. 남편이 던진 사진이 앉아 있던 여자의 발치께에서 흩어졌다. 세상물정 모르는 건 바로 당신이야, 당신. 그때 남편의 말을 귀담아듣고 유치원 담임을 따로 만나보았더라면 제대로 나온 아이의 사진 한장쯤은 얻을 수 있었을까.
여자의 아이는 너무도 평범한 아이였다. 얼굴 생김새는 물론이고 체형이나 성격, 식성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특별한 구석이라고는 없었다. 만약 그 아이가 여느 아이들처럼 초등학교에 입학해 무난히 학업을 계속할 수 있다면 그 평범함은 장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개성이 강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아이들이 수업시간마다 호명이 되어 곤욕을 치르는 일을 많이 보아왔다.
여자에게는 근 십년 동안 띄엄띄엄 만나오는 친구가 있었다. 이년에 한 번, 어떨 때는 일주일에 두 번도 만나 마주앉아 식사를 하고 안부를 묻고 농담을 주고받으며 깔깔 웃어대다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와 얼굴을 떠올리려 하면 막상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 친구였다. 여자의 아이가 바로 그런 아이였다. 그래서 일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여자는 자신의 아이 얼굴조차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수많은 아이들이 찍힌 단체사진 속에서 아이의 얼굴을 금방 찾아낼 수는 있었지만 사진첩을 닫는 순간 아이의 얼굴은 둥그런 형체 속에 흐리멍덩하게 눈 코 입의 윤곽만 남는 것이었다.
오전 내내 아이의 사진을 보고 또 보았지만 아이의 얼굴이 선명하게 나온 사진은 찾을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작년에 썼던 사진을 도로 찾아 꺼냈다. 서대문 형무소를 방문하고 찍은 단체사진 속에서 옆얼굴만 나온 아이의 모습을 따로 확대한 사진이었다. 가뜩이나 흐릿하게 나온 아이의 얼굴은 십육절지 크기로 확대되면서 더욱 흐리터분해졌다.
대기장소인 덕수궁 앞 도로가에 관광버스 세 대가 일렬로 주차되어 있었다. 비좁은 보도는 출근하는 사람들과 야유회에 가기 위해 집합한 사람들이 섞여 북적거렸다. 아이스박스와 술병이 빼곡히 꽂힌 플라스틱 술상자, 과일과 음료수병이 든 비닐봉투가 지나치는 사람들의 발에 채었다.
샛별유치원이라는 종이를 차창에 붙여놓은 운전기사는 버스의 시동을 걸어놓은 채로 보도에 내려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가 올려다보는 맞은편 빌딩 꼭대기에는 전광판이 걸려 있었다. 조간에서 발췌한 굵직굵직한 기사들이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 있었다. 출발시간과 장소를 알려주려고 전화를 했던 훈이 엄마도 아직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여자는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고 덕수궁 돌담에 기대섰다. 아이의 사진을 끼운 액자의 모서리가 전철 속에서 계속 여자의 허벅지를 찔러댔다.
비대한 몸집의 여자가 상체를 출렁거리면서 뛰어와 버스에 붙은 종이를 확인하고는 땀을 닦았다. 훈이 엄마였다. 만나지 못한 2개월 사이 체중이 부쩍 는 듯했다. 오른쪽 뺨에 모래알 같은 기미가 앉아 있었다. 여자를 알아본 훈이 엄마가 덥석 여자의 손을 잡았다. 어깨에 멘 커다란 비닐가방에서 조미료 냄새가 새어나왔다. 훈이 엄마가 두꺼운 눈꺼풀을 끔벅거리면서 웃었다.
“아침 일찍부터 닭을 튀기는 데가 있어야 말이지. 열 군데는 더 뒤졌어. 마침 살림집에 붙은 곳이 있길래 사정사정했지. 애가 제일 좋아한 거였으니 준비를 안할 수도 없고 말야……”
낯익은 얼굴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책위원회 때문에 지난 일년간 수없이 만난 사람들이었다. 서로 눈인사를 주고받거나 남자들은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운전기사가 버스 짐칸을 열었지만 잠시 후 다시 닫았다. 짐이라고는 단출하게 어깨에 메거나 손에 든 가방뿐이었다.
관광버스 안에는 휘발유 냄새가 잔뜩 배어 있었다. 여자는 코를 틀어막았다. 의자에 씌운 파란 비닐커버도 눈을 어지럽게 했다. 물청소를 한 후 곧바로 왔는지 통로에 물걸레 자국이 남아 있었다. 여자의 무릎께에서 달랑거리는 망으로 된 보관백에는 채 치우지 못한 빈 드링크병이 꽂혀 있었다. 대책위원장을 맡았고 관광버스 대절부터 사소한 일까지 책임을 도맡았던 미선 아빠가 버스 뒤에서부터 머릿수를 헤아리며 운전석 옆으로 왔다.
전철역 출입구 위로 남편의 모습이 나타났다. 버스를 발견한 남편의 보폭이 커졌다. 양복 저고리를 들지 않은 손에 소담스럽게 핀 흰 국화 한다발이 들려 있었다. 행여 지나치는 행인에 쓸려 꽃잎이 떨어질까 국화 다발을 든 손을 허공에 반쯤 치켜든 채여서 생각처럼 빨리 걸을 수 없는 것 같았다.
언젠가 아이와 함께 화원 앞을 지날 때였다. 화원 주인이 가게 밖에 나와 조화로 쓸 흰 국화를 손질하고 있었다. 보도 중앙까지 흰 꽃잎과 이파리들이 쓸려와 있었다. 푸른 이파리와 줄기는 다 잘라내고 흰 꽃송이만 둥글게 만든 스티로폼 위에 꽂고 있었는데 아이가 손가락으로 그 꽃들을 가리켰다. 엄마, 꼭 찐빵 같아. 그 말을 했던 아이의 목소리는 생생한데 아이의 얼굴은 봄소풍 때 명정전 앞에 서서 찍은 사진 속에서처럼 희미할 뿐이었다.
남편은 앞좌석에 앉은 사람들과 가벼운 인사를 건네며 여자의 곁으로 와 앉았다. 여자의 몸이 기우뚱 남편 쪽으로 기울었다. 시간에 맞춰오느라 몹시 서둔 탓인지 남편은 의자에 앉은 후에도 한참 동안 숨을 골랐다. 구김이 간 와이셔츠의 목 부분에 검게 때가 타 있었다. 국화 다발에서 지린내가 났다. 국화 다발을 사느라고 늦은 모양이었다.
신갈 인터체인지를 벗어난 후부터 버스는 전용차선을 타고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휴가를 떠나는 차들이 몰려들어 옆차선에는 차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버스가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울컥 신물이 올라왔다. 뒷좌석 어딘가에 앉았을 훈이 엄마의 비닐가방에서 풍겨오는 양념통닭 냄새도 한몫을 했다. 냉방장치 때문에 팔뚝에는 소름이 돋았지만 밀폐된 버스 안에 고인 냄새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운전석 옆에는 노래방 기계와 마이크가 장착되어 있었다. 관광객을 태울 거라 짐작하고 있었던 운전기사는 행선지를 알려주는 미선 아빠의 이야기를 통해 뒤늦게 상황을 안 모양이었다. 라디오를 끈 후부터 운전기사는 줄곧 껌을 씹어대고 있었다. 가끔 옆차선으로 관광객을 태운 버스가 지나쳤다. 비좁은 통로로 나와 선 사람들이 상반신만 움직여대며 우스꽝스런 춤을 추고 있었다.
소읍으로 들어선 버스는 느닷없이 뛰어드는 오토바이와 경운기 때문에 속도를 줄여야 했다. 정미소와 우체국, 양품점과 소방서들이 한 줄로 늘어서 있었다. 늑목과 정글짐, 시소와 그네가 박힌 텅 빈 초등학교 운동장을 지나고 나면 또 밭과 논이 이어졌다. 밭과 논 너머에 개량주택 몇채가 옹기종기 붙어 있었다. 비슷비슷한 소읍을 몇개 더 지나자 길의 폭이 좁아지면서 포장도로가 끊겼다. 그 뒤로는 자갈밭이었다. 버스가 자갈밭 위에서 튀어올랐다. 여자의 몸도 덩달아 의자 위에서 튀어올랐다가 떨어져내렸다.
길 양옆은 수령이 많은 적송림이었다. 길은 소나무숲 그림자 때문에 물에 젖은 것처럼 축축해 보였다. 이십분 정도 비포장도로를 달려 들어갔을 때에야 비로소 시야가 트이며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썰물 때인지 바다는 수평선 가까이로 물러나 있었다.
버스는 주차장에 세워두고 오솔길을 따라 바닷가로 내려갔다. 한동안 사람이 찾지 않았는지 오솔길은 잡풀 때문에 겨우 흔적만 남아 있었다. 무릎 높이로 자란 풀이 여자의 종아리를 할퀴고 지나갔다.
흉물스러웠던 건물의 잔해는 이미 깨끗하게 치워진 후였다. 건물이 있던 자리에도 어느새 잡풀이 무성했다. 건물 바로 앞에 있던 수영장은 채 메우지 못한 모양이었다. 수심이 깊은 쪽에 고인 빗물은 썩고 있었고 언제 죽었는지 흠뻑 젖은 산비둘기 한마리가 둥둥 떠 있었다.
바닷물이 빠지면서 누군가 띄워놓은 작은 배 한척이 개펄 중앙에 박혀 있었다. 아이가 여름캠프를 가던 전날, 여자는 다 마신 음료수 페트병의 주둥이를 잘라내고 양쪽에 구멍을 뚫어 노끈을 달았다. 캠프 일정표에 적힌 대로라면 아이들은 페트병을 하나씩 매고 개펄에 들어가 조개나 게를 잡았을 것이다. 아이는 다 만든 페트병을 목에 걸고 겅둥대면서 게를 가득 잡아오겠다고 좋아했었다.
발화점이었던 B동 건물 204호가 있던 자리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몇명의 남자들과 여자들이 어림짐작으로 자리를 짚어대면서 옥신각신했다. 돗자리를 깔고 간단하게 상이 차려졌다. 아이들의 사진을 일렬로 세워놓았다. 사진 앞에 미키마우스 봉제인형과 모터자동차 같은, 아이들이 평소에 좋아하던 장난감이 놓여졌다.
훈이 엄마가 냉방이 잘된 버스 안에서 이미 차갑게 식은 양념통닭을 사진 앞에 펼쳐놓다가 맨바닥에 주저앉았다. 희미한 여자의 아이 사진 앞에 발효가 잘된 진빵 같은 국화꽃을 놓던 남편이 정수리 위에 떠 있는 태양을 노려보았다. 해를 가려줄 그늘 한점 없었다. 눈물이 흐른 뺨에 허연 소금 자국이 남았다. 갈라터진 입술에 눈물이 닿으면서 화끈거렸다.
화재는 야영장 숙소 세 동 가운데 가운뎃동인 B동 204호에서 시작되어 삽시간에 건물 한동을 집어삼켰다. 그 시간 204호에는 일찌감치 곯아떨어진 아이들만 남아 있었다. 산이라 모기가 많았다. 선생은 방 한가운데 모기향을 피워두고 자리를 비웠다. 온갖 소문들이 떠다녔다. 아이들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방문이 밖에서 걸려 있었다고 했다. 아이들이 잠자고 있는 사이 선생들은 바닷가에 나가 술을 마셨다고도 했다. 선생들이 연기와 타는 냄새를 맡고 뛰어왔을 때 불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번진 후였다. 복도 맨 끝방인 204호 앞은 화기와 매캐한 연기 때문에 접근할 수도 없었다. 204호에는 샛별유치원 개나리반 스물두명의 아이들이 잠자고 있었다. 화인은 어이없게도 모기향 때문이라고 했다.
여자가 사고현장으로 갔을 때 이미 진화가 된 후였다. 불타 허물어진 건물 속에는 그을음이 잔뜩 끼어 있었고 벽은 녹아 흐무러져 있었다. 내장재가 다 타고 드러난 컨테이너 박스가 몰골 사나웠다. 재와 소방차가 뿜어댄 물이 뒤범벅된, 검게 탄 솥 같은 건물 앞에서 여자는 아이의 이름을 불러대다가 혼절했다. 여자의 아이는 스물두명의 희생자 중 한명이었다.
여자는 흰 국화꽃 뒤에서 흐릿하게 웃고 있는 아이의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유난히 시간외 근무가 많은 직장이었다. 퇴근을 하고 부랴부랴 유치원으로 뛰어가면 아이들이 다 돌아간 유치원 한구석에 아이가 잠들어 있었다. 잠투정을 하는 아이를 채근해 집으로 돌아올 때면 고단한 일과 때문에 허리가 끊어지는 것 같았다. 이것저것 구경하느라 뒤처지는 아이의 등을 핸드백으로 사정없이 치면 아이는 재게 걸으면서 소리없이 훌쩍였다. 아이의 소원은 제 엄마가 은행에 다니는 것이었다. 같은 반에 은행에 다니는 엄마를 둔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 엄마는 늘 일찍 퇴근해 아이를 데리고 간다고 했다. 일요일이나 휴일이면 밀린 잠을 자느라 아이를 데리고 놀이공원 같은 곳에 간 적이 없었다. 열시쯤 느지막이 잠에서 깨면 아이는 제 부모 발치에 앉아 우유에 만 씨리얼을 먹고 있었다.
아이가 죽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자 부모들은 아이의 시신을 하루빨리 인도받고 싶어했다. 하지만 아이의 시신은 곧바로 돌려받을 수 없었다. 시신이 심하게 훼손되어 누가 누구인지 식별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똑같은 색깔과 디자인의 원복을 입고 있었고 키가 고만고만한 6세반 아이들이었다. 아이의 온전한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소식에 엄마들은 가슴을 쥐어뜯다가 정신을 놓았다.
경찰이 나눠준 종이에 여자는 아이의 특징에 대해 단 한 단어도 적지 못했다. 여자의 아이는 손가락이나 발가락에 사마귀나 그 흔한 점 하나 없었다. 다른 아이와 구별할 수 있는 흉터도 없었다. 출근시간에 쫓겨 머리를 빗길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항상 머리를 짧게 잘라 머리를 묶는 장식 같은 것도 있을 리 없었다. 충치 때문에 보철물을 해준 적도 없었다. 여자의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변별되는 그 어떤 실마리도 찾을 수 없었다. 여자의 아이는 정말 평범한 아이였던 것이다.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던 여자의 아이는 그 여름 연일 신문 일면을 장식했던 야영장 화재사건의 희생자 중 한명으로 특징지어졌다.
훈이 엄마가 아이의 사진을 부둥켜안고 맨땅에서 뒹굴고 있었다. 얼굴이 고통 때문에 구겨질 대로 구겨졌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벌린 입가로 게거품 같은 침이 흘러내렸다. 검은 바지가 금세 흙투성이가 되었다. 몇몇 남자들이 훈이 엄마를 일으켜세우려 했지만 사지를 뒤흔드는 기세에 덩달아 넘어지고 말았다. 이번에는 넘어진 남자들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냥 맨땅에 주저앉아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거나 퀭한 눈으로 개펄을 바라볼 뿐이었다.
사고 후 2개월이나 흐른 후에 아이의 시신이 돌아왔지만 남편은 한사코 여자에게 아이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여자는 남편의 가슴을 쥐어뜯으며 아이를 보여달라고 발악을 했다. 남편의 와이셔츠 단추가 뜯어지고 목덜미에 벌건 생채기가 났다. 여자가 마지막 본 아이의 모습은 한줌의 재였다.
바닷물이 와짝와짝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모래밭 이곳저곳에 띄엄띄엄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일어섰다. 가지고 온 음식들을 뜯어 모래밭 곳곳에 뿌렸다. 남은 음식들을 모아 펼쳐놓았지만 음식에 손을 대는 사람은 없었다. 훈이 엄마만 통닭 상자를 다리 사이에 끼운 채 다 식은 닭조각을 연신 입에 쑤셔넣고 있었다. 볼이 미어지게 집어넣고 삼키기도 전에 또다른 고깃조각을 입에 넣었다. 목이 메는지 가슴을 주먹으로 쳐댔다. 씹다 만 고깃조각이 입밖으로 새어나와 윗도리와 바지에 떨어져내렸다. 몇달 사이에 몰라보게 살이 찐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남편은 바다를 향해 힘껏 국화 다발을 내던지고는 담배를 피워물었다.
사진을 챙겨들고 관광버스에 올라탔다. 여자는 자꾸 뒤를 돌아다보았다. 버스가 벼랑 위로 천천히 올라서면서 저 아래로 바다가 펼쳐졌다. 어느새 꽉 차오른 바닷물 위에 뜬 국화 다발이 파도를 따라 출렁거렸다. 여자가 마지막으로 돌아보았을 때 국화꽃은 송이송이 흩어져 조금씩 조금씩 깊은 바다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옆자리에 앉은 훈이 엄마의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맺혔다. 둥근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다급하게 입을 틀어막았다. 손가락 사이로 진득한 액체가 새어나왔다. 여자에게까지 시큼한 닭 양념 냄새가 풍겨왔다. 버스가 급히 정차하고 훈이 엄마는 입을 막은 채 허겁지겁 소나무숲으로 달려갔다. 훈이 아빠는 오늘 오지 않았다. 뒤따라 내린 여자가 훈이 엄마의 등을 두들겨주었다. 격하게 등이 오르내릴 때마다 구토물이 잡풀 사이로 떨어져내렸다. 눈물이 고인 충혈된 눈이 여자를 올려다보았다.
“내 몸 흉하지? 이러면 안되는 것 아는데 말야, 먹지 않으면 자꾸 잡념이 생겨서 말야. 먹고 토하고 먹고 토하고 늘 이래. 갑자기 살이 쪄서 그런지 허리도 아프고 무릎도 쑤셔. 얼마 전부터 애아빠도 집엘 잘 안 들어와. 내가 내 몸을 봐도 흉측하니……”
첫번째 소읍의 가게 앞에 운전기사가 버스를 세웠다. 다리에 힘이 빠져 버스에서 내릴 때는 무릎이 꺾였다. 뒤따라 내리던 남편이 허겁지겁 여자의 손을 잡아주었다. 한옥을 개조한 가게였다. 가게 쪽방에서 선풍기를 틀어놓고 잠을 자고 있던 중년사내가 인기척에 일어나 느리적느리적 슬리퍼를 꿰어신었다.
가게 한쪽과 연결된 마당 한구석에 펌프가 박혀 있었다. 장판을 깔아놓은 평상에 앉아 남자들이 찬 음료수와 맥주를 마시는 사이 여자들은 펌프로 가 얼굴을 씻고 발에 찬물을 끼얹었다. 펌프물은 얼음물처럼 시원했다. 펌프에 입을 대고 허겁지겁 물을 들이켰다. 물이 코로 스며들면서 사레가 들렸다. 캑캑대면서 여자는 일년 전을 떠올렸다. 아이가 죽었을 때는 아이를 따라 죽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깟 갈증과 더위조차 참아내지 못하는 것이다.
선반에 진열된 과자봉투와 풍선, 플라스틱 나팔 같은 장난감 위에 먼지가 자욱이 내려앉았다. 주인 사내는 초저녁부터 술을 한잔 걸친 모양이었다. 사내가 입을 벌릴 때마다 군내와 술냄새가 날아왔다. 사내가 입고 있던 작업복 바지에 동전을 받아 챙기다가 입을 열었다.
“어디들 갔다오시는 길이슈? 관광버스는 오랜만이라놔서.”
사내가 차창까지 흙먼지가 묻은 관광버스와 그 앞에 힘없이 서 있거나 평상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거길 갔다오시는구먼. 한 삼년 장사가 잘된다 했더니, 올해는 보시다시피 파리만 날리고 있습죠.”
아무도 대꾸하지 않자 사내는 새집이 진 머리카락 속에 때가 낀 손톱을 집어넣어 긁적댔다.
“대단했습죠. 여기서 불기둥이 다 보였으니까. 그런데 말입죠. 불이 나기 바로 전이었던가, 그러니까 열한시 근처였을 겁니다. 노란 옷을 입은 꼬마 하나가 요 앞을 울면서 지나가더란 말씀입니다.”
사내의 말에 여자들 몇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노란 옷이라뇨?”
“그렇다니까요. 요 동네 아이가 아닌 것은 확실했습죠. 요 동네 애들이야 빤하죠. 위아래로 노란 옷을 입고 있어 눈에 띄기도 했굽쇼. 저쪽 신작로 쪽으로 걸어가더라구요.”
맥을 놓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사내를 에워쌌다. 샛별유치원 아이들도 위아래 노란 원복을 입고 있었다. 불은 밤 열한시경에 났고 그 아이는 야영장에 불이 붙기 직전에 이 가게 앞을 지나고 있었다. 여자 하나가 신음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기억하시겠어요? 그 아이가 어떻게 생겼던가요?”
누군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글쎄요. 어두워 얼굴을 확실히 볼 수는 없었지만, 어디 가냐 했더니 대답은 하지 않고 엄마를 부르면서 걸어가길래. 여자아이 같았는데…… 그리고 잠시 후 불기둥이 치솟았거든. 그러니 애한테 신경을 쓸 수가 있나.”
여자아이란 말에 남자아이의 엄마들이 울음을 터뜨리며 곁에 선 사람들을 부둥켜안았다. 여자아이의 부모들은 사내를 붙들고 늘어졌다. 여자는 현기증 때문에 냉장고에 기대섰다. 머릿속에 엄마를 부르면서 신작로를 걷는 아이의 모습이 퍼뜩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사내의 말이 사실이라면 스물두명의 아이 가운데 한명의 아이가 살아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여자아이라면 열세명 가운데 한명이었다. 그 아이는 대체 누구의 아이일까.
“글쎄요. 가물가물하지만 머리가 짧았던 것 같은데……”
몇몇 여자들이 앞다퉈 소리쳤다.
“우리 애야. 여보, 우리 애야. 우리 아인 머리가 짧았어요.”
뒤편으로 물러나 가게 앞에 주저앉아 있던 훈이 엄마가 소리를 지르면서 끼여들었다.
“머리가 짧았다면 남자애일 수도 있는 것 아니에요? 안 그래요?”
남자아이의 부모 사이에 동요가 일었다.
“에이, 걸음걸이가 영락없이 여자애였다니까요, 운동화를 꺾어 신고 있었는뎁쇼.”
다른 여자가 소리쳤다.
“그건 우리 아이예요. 우리 아인 늘 운동화 뒤를 꺾어 신었거든요.”
여자들의 눈이 반짝거렸다. 늙수그레한 중년여자가 수건으로 몸뻬바지를 털어대면서 사람들을 비집고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중년여자는 사내를 보자마자 역정부터 냈다.
“이 인간이 또 대낮부터 술을 퍼붜댔구먼. 내가 못살아, 살이 찢어져라 뼈가 바숴져라 나 혼자 일하면 뭐 할겨. 밑 빠진 독인데.”
중년여자의 말에 사내가 헛기침을 해댔다. 사람들이 사내를 다그쳤다.
“좀더 생각해보십쇼. 또 다른 건 생각나시는 게 없나요?”
“글쎄요. 얼핏 스쳐갔기 때문에. 어둡기도 했고.”
중년여자가 목소리를 높이면서 끼여들었다.
“염병, 대체 또 무슨 설레발이야? 이 위인 말에 뭘 그렇게 신경들을 쓰슈? 사시사철 술병을 끼고 사는 위인인데. 대낮에 도깨비를 봤다는 위인이 바로 이 위인이유.”
사내가 버럭 소리를 높였다.
“이거 왜 이래? 도깨비는 나만 본 줄 알어? 전파사 최씨도 봤다고 했잖어. 노란색, 맞죠?”
“맞아요, 맞아.”
여자들이 사내의 말에 손뼉을 쳐댔다.
“또 그 얘기야? 유치원생들을 실은 버스가 작년 여름 내내 이 앞을 지나쳤다구요. 아이스크림이다 음료수다 여름 내내 가게가 아이들로 바글바글했죠. 그러니까 뭔가 착각을 한 거지. 그 시간에 삼 킬로도 더 떨어진 그곳에서 아이 혼자 여기까지 걸어왔다는 게 말이나 돼요? 안 그래요? 그 캄캄한 밤에 아이 혼자? 그러니 당신도 입 다물어요. 괜히 이분들 억장만 무너지게 하지 말고.”
아이가 밤 열한시쯤 가게 앞을 지나쳤다면 야영장에서는 아홉시쯤에 나왔을 것이다. 그 시간 그곳으로 드나드는 자동차는 없었을 것이다. 여섯살 먹은 아이가 그 컴컴한 길을 걸어 이곳을 지나쳤다는 것은 좀 억지스러웠다. 중년여자의 말에 허탈해진 사람들이 하나둘 버스에 올라탔다. 밍그적대는 여자를 남편이 잡아끌었다. 허방을 밟은 것처럼 땅바닥이 푹푹 꺼져내렸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신작로가 산자락 속으로 숨어들고 있었다. 현기증 때문에 먼지가 자욱이 묻은 가게 창문을 손으로 짚었다. 사내가 구시렁댔다.
“헛걸 보긴 뭘 헛걸 봐. 가슴팍에 브로치를 달고 있는 것도 이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말씀이야. 별 모양의 브로치였다구.”
중년여자는 사내의 말을 묵살해버렸다.
“이그, 귀신 같은 인간, 어서 들어가 잠이나 자.”
자리에 앉았지만 현기증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브로치라니, 여자의 아이는 애시당초 그런 것은 달지 않았다. 브로치를 달고 있었다면 브로치가 여자의 아이를 식별할 수 있는 단서가 되었을 것이다. 설사 그 시간 그 가게 앞을 지나친 아이가 있었다 해도 그 아이는 여자의 아이가 아니었다.
자정이 넘은 덕수궁 앞에는 인적이 끊겨 있었다. 네온싸인이 명멸하는 도로 건너편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관광버스는 사람들을 내려놓자마자 서둘러 자리를 떴다. 남자들끼리 악수를 나누었다. 종현이네와 미현이네가 얼마 후 이민을 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인사는 오래 이어졌다. 다른 하늘 아래로 가면 아이 생각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대책위원회는 화재의 원인이 모기향이 아닌 누전이나 다른 것에 의한 것이 아닌지 정확히 밝혀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하지만 그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더이상 이 나라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종현이 엄마가 말했다. 종현이 엄마가 여자들의 손을 잡았다 놓았다.
“아무래도 그 아저씨 말이 맘에 걸려요. 우린 이미 우리 아이라고 확신하는 아이를 찾았으니 희망을 버린 지 오래지만. 하지만 여러분들 희망을 잃지 마세요. 그 아이가 누구인지 꼭 밝혀내세요.”
여자는 곧장 아이의 방으로 들어갔다. 베개와 이불, 옷가지들, 아이가 쓰다 남은 공책과 스케치북이 일년 전 그대로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공책을 뒤적여보았다. 수없이 뒤적여 공책 끝이 닳아 있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한번도 아이를 앉혀놓고 글자를 가르쳐주거나 그림책을 읽어준 적이 없었다. 아이의 큰 글씨는 칸을 벗어나 비뚤배뚤 적혀 있었다. 나는 여섯살이구요, 가치 노라줄 동생도 업습니다. 언니도 업습니다. 아빠는 테레비를 보구요 엄마는 컴푸터를 함니다. 떠들면 안댑니다. 그래서 조요히 안자 잇습니다.
아이의 베개에 코를 묻고 킁킁거렸다. 아릿하게 아이의 냄새가 남아 있는 것도 같았다. 아이의 침이 흘러 누렇게 변한 곳을 손바닥으로 더듬었다. 남편이 세수를 하는지 벽 너머에서 요란한 물소리가 들려왔다.
일년이 지났지만 어김없이 여섯시면 눈이 떠졌다. 세수도 하지 않은 채 헐레벌떡 일어나 냉장고를 뒤져 식빵을 꺼내 굽고 계란 프라이를 했다. 아이의 방에 대고 아이의 이름을 부르려는 순간에야 더이상 깨울 아이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고 후에야 여자는 직장에 사직서를 냈다. 맞벌이를 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회사에 나가는 대신 무작정 거리를 쏘다녔다. 정신을 차려보면 낯선 동네의 막다른 골목일 때가 많았다. 어떻게 거기까지 갔는지 생각이 나지 않아 되돌아오는 길을 찾아 한참 헤매었다. 가끔 세 블록 떨어져 있는 샛별유치원까지 걸어가고는 했다. 샛별유치원은 문을 닫았다. 아직 세가 나가지 않았는지 유치원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는 세놓음이라고 쓴 종이가 늘 붙어 있었다. 유리창에 붙였던 여러가지 색깔의 동물 그림들도 조금씩 떨어져나갔다. 한여름인데도 창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다. 여자는 허우적거리면서 집으로 돌아와 식탁 위에 놓인 뻣뻣하게 굳은 식빵과 기름이 엉긴 계란 프라이를 우적우적 먹어댔다.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있던 여자는 베개 끝에 하늘거리며 붙어 있던 머리카락 한올을 집어들었다. 가느다랗고 약간 구불거리며 짧은 머리카락은 영락없는 아이의 머리카락이었다. 목욕탕에서 나온 남편이 잠깐 아이 방 앞에서 멈칫거리는 듯했다. 문고리가 조금 달싹였지만 남편의 발자국이 멀어졌다. 잠시 후 현관 가까운 곳에 있는 작은방 문이 열리고 조용히 닫혔다. 사고 이후 남편과 여자는 각방을 쓰고 있었다. 여자는 엄지와 집게손가락 사이에서 간드랑대는 아이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옮겨 스카치테이프에 붙여놓았다. 스카치테이프의 한 면에는 아이의 방에서 찾은 아이의 머리카락과 손톱 따위가 잔뜩 묻어 있었다.
여자는 부리나케 경희 엄마에게서 들은 약속장소로 나갔다. 수소문 끝에 개나리반 담임을 맡았던 김선생의 연락처를 알아냈다고 했다. 동네에서 버스로 한시간 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지하다방이었다. 다방 한쪽에 벌써 여러명의 엄마들이 나와 앉아 있었다.
김선생은 한달 전부터 다방 건너편의 아파트 관리실에서 서무 보조를 하고 있다고 했다. 경희 엄마가 몇번이나 전화를 건 후에야 김선생이 다방으로 들어섰다. 김선생은 의자 끝에 엉덩이만 간신히 걸치고 앉아 바닥의 한곳만 응시하고 있었다. 한 엄마가 다그치듯 물었다.
“그날 일을 똑바로 기억하고 있을 테죠? 그날, 거기서 좀 떨어진 가게에서 노란 원복을 입고 울면서 지나가는 여자애를 봤다는 사람이 있어요. 불이 나기 바로 직전이었어요.”
김선생은 얼굴을 똑바로 들지 못했다. 여자의 기억이 맞다면 김선생은 올해 스물넷이었다. 스물넷의 아가씨에게도 그 사고는 커다란 상처를 남겼을 것이다. 김선생의 아랫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무슨 말씀이신지……”
“그러니까 불이 나기 전에 한 아이가 야영장을 이탈해 다른 곳에 나타났다는 말이죠, 지금.”
김선생이 놀라면서 자리를 고쳐앉았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분명히 아이들을 확인했어요. 아이들은 분명히 그 방에 다 있었……”
김선생이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틀어막았다. 양어깨가 들먹거렸다. 다른 엄마가 김선생 앞으로 바투 다가앉았다.
“이제 우린 남아 있는 눈물도 없어요.”
“캠프파이어가 끝난 시간이 열시쯤이었어요. 그리고 곧장 숙소로 들어갔지요. 분명히 아이들은 다 있었어요. 믿어주세요.”
버스로 삼십여분 걸리는 비포장길을 아이의 걸음걸이로 걸어가자면 두 시간 남짓 걸렸을 것이다. 열한시에 그 아이가 가게 앞에 모습을 드러내려면 최소한 그 아이는 아홉시쯤 야영장을 빠져나와야 했다. 그 시간이라면 캠프파이어가 한창 진행중이었다. 폭죽과 아이들의 함성소리, 그 속에서 한 아이가 살짝 빠져나온다 해도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을지 모른다. 여자는 목이 바싹바싹 탔다.
“우리 아이도 분명히 거기 있었나요? 틀림없나요?”
김선생이 고개를 깊이 주억거렸다.
“예, 그럼요. 진혜 옆에 있었어요. 머리 방울이 자꾸 방바닥에 눌려 아프다고 하길래 제가 방울을 풀어주었는걸요.”
김선생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여자의 아이가 아니었다. 아이는 태어나서 한번도 머리를 기른 적이 없었다.
“그앤 우리 아이가 아니에요. 우리 아인 한번도 방울을 한 적이 없어요.”
울음을 멈춘 김선생은 윗니로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대고 있었다. 김선생 맞은편에 앉아 있던 경희 엄마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것 봐. 지금 확실히 알고 있는 게 하나도 없어. 아이 하나가 아니라 열이 없어졌대도 까맣게 몰랐을 게 분명해.”
구석으로 몰린 김선생이 말을 더듬었다.
“분명히 다 있었어요. 정말이에요. 어머님들 마음 다 압니다. 저도 그동안 편치 않았어요. 하지만 분명히 그날 아이들은 다 제자리에 있었어요. 차라리 어머님들 말씀처럼 한 아이만이라도 살아 있었으면 좋겠어요.”
여자의 아이는 평범했다. 사진에서 그랬듯이 있는 듯 없는 듯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캠프파이어의 소란스러움에서 살짝 벗어났다 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김선생이 별안간 무릎을 탁 쳤다.
“제가 가지고 있는 게 있어요. 그날 저녁 캠프파이어 장면을 비디오로 녹화해두었죠. 그 테이프를 제가 가지고 있어요.”
야영장 모래밭에 캠프파이어가 준비되어 있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멀고 가까운 곳에서 끼여들었다. 아주 작지만 파도소리도 간간이 들려왔다. 노란 원복을 입은 아이들이 모닥불에 둘러서서 키득대거나 하품을 하거나 옆에 선 친구와 장난을 하거나 곧 있을 점화에 호기심을 가지고 사방을 휘둘러보고 있었다. 불이 허공을 날아와 모닥불에 옮겨붙자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러대며 겅둥겅둥 뛰었다. 경쾌한 가요가 흘러나오자 아이들이 모닥불 근처로 나가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인디언처럼 얼굴에 얼룩덜룩한 물감을 묻히고 머리에 고깔모자를 쓴 아이들의 얼굴을 비디오카메라가 훑어갔다. 자신의 아이들이 눈에 띌 때마다 엄마들이 소리 높여 울었다. 하지만 여자의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도 스쳐지나갔거나 아예 비디오카메라가 잡지 못하는 곳에 서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모닥불이 사그라들면서 촛불놀이가 시작되었다. 검은 화면 빽빽하게 촛불이 들어찼다. 아이들은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촛불을 들고 가만가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잠시 후 화면이 꺼졌다가 다시 들어오니 서로 밀치면서 숙소로 들어가는 아이들의 얼굴이 잡혔다. 아이들은 한 줄로 서서 숙소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때 여자는 아이들 사이에서 자신의 아이를 발견했다. 순식간에 지나쳤지만 분명히 자신의 아이였다. 이번에도 카메라가 잡은 것은 아이의 옆얼굴이었다. 오히려 그 얼굴이 앞얼굴보다 여자에게는 친숙했다. 눈에 졸음이 가득했다. 아이는 뒤에 따라오는 아이에게 밀려 넘어지면서 화면 밖으로 사라졌다. 아이가 넘어지는 순간 아이의 노란 원복 앞가슴에 있는 얼룩이 눈에 띄었다. 되돌려감기로 다시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분명 여자의 아이였다. 그제서야 그 얼룩이 떠올랐다. 일년 동안 까마득히 잊고 있던 얼룩이었다.
발 아래에서 파도소리가 밀려왔다 멀어졌다. 밀물 때인가보았다. 수차례 사고현장에 왔던 남편은 야영장까지 가는 동안 지름길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노란 옷을 입은 여자아이를 보았다던 가게는 이미 문을 닫은 후였다. 가게 옆의 마당 안쪽 집에도 불이 꺼져 있었다. 자정이 지난 소읍은 우물 속처럼 고요했다. 이따금 다방에서 나온 아가씨가 스쿠터를 툴툴거리면서 도로를 가로질렀다.
포장도로가 끝나고 비포장도로로 접어들면서 희미하던 불빛마저 완전히 끊겼다. 자갈밭 위를 지나면서 차가 좌우로 들썩거렸다. 서울을 떠난 이후로 여자와 남편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남편이 상향등으로 헤드라이트를 조절했다. 하향등보다 조금 먼곳까지 불빛이 가닿았지만 구불구불한 길에서 속도를 낼 수는 없었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끝나는 곳은 어두컴컴한 절벽이었다. 헤드라이트 불빛에 놀란 다람쥐가 소로 가운데서 꼼짝하지 않고 웅크려 있었다. 그럴 때면 남편은 가볍게 클랙슨을 울리며 다람쥐를 숲으로 내몰았다. 불빛에 야영장을 알리는 팻말이 나타났다.
비포장도로로 접어든 지 한시간이 가까워서야 야영장 주차장에 다다를 수 있었다. 손전등을 꺼내들었지만 야영장으로 내려가는 오솔길은 찾을 수 없었다. 몇번이나 덤불에 발을 들여놓아보던 남편이 포기하고 돌아섰다.
일년 전 이맘때 한 아이가 캠프파이어장을 벗어나 이곳으로 올라섰다. 캠프파이어의 불빛 때문에 이곳까지 그럭저럭 찾아올라오기는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전기가 끊겼지만 그때는 주차장에 가로등이 서 있었다. 길은 외줄기여서 걸어가는 도중 길을 잃을 염려는 없었다.
몇시간 만에 처음으로 남편이 입을 뗐다.
“이건 미친 짓이야. 나도 그 영감의 말을 믿고 싶어. 그 말을 들었을 때 머릿속에 끊어졌던 전류가 도는 것 같았지. 하지만 난 그애를 이 눈으로 직접 확인했어.”
여자는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섰다. 살냄새를 맡은 모기떼가 달려들었다. 여자는 여섯살 아이의 보폭에 맞추도록 노력하면서 천천히 걸음을 떼어놓았다. 이슬이 내려앉는지 자갈밭이 미끄러웠다. 남편이 차를 몰고 여자를 뒤따라왔다. 헤드라이트 불빛에 길이 하얗게 살아났다. 차창 밖으로 얼굴을 내민 남편이 소리쳤다.
“거기서 발견된 아이들은 분명히 스물두명이었어. 뒤바뀔 수는 있었겠지만 말야, 아이가 없어진 건 분명히 아니라구. 내 말 들어. 무모한 짓 하지 말고 어서 차에 타. 이젠 잊자, 잊어버리자.”
여자는 가끔 자신의 아이가 어떤 여자로 자랄 것인가 상상해본 적이 있다. 아이가 초조(初潮)를 하고 얼룩이 묻은 속옷이 수줍어 숨어 빨고 하얀 춘추복을 입고 발목까지 올라오는 새하얀 양말을 신은 채 학교에 가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아이가 여름캠프에서 돌아오는 날은 직장에 조퇴서를 낼 작정이었다. 유치원 앞에 미리 가 기다렸다가 버스가 도착하고 꿈지럭거리며 내리는 검게 그을린 아이를 안아줄 생각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아이가 게를 몇마리나 잡았는지 음료수 페트병을 들여다볼 작정이었다. 하지만 여자가 상상했던 모든 것들은 호프만식으로 계산된 얼마의 돈으로 환치되었다.
여자는 남편은 돌아보지 않은 채 소리쳤다.
“별 모양의 브로치라고 했어. 하지만 그건 브로치가 아냐. 그건 별 모양의 얼룩이었다구.”
“대체 무슨 말이야?”
일년 전 야영을 떠나던 날 아침이었다. 그날도 여자는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 식빵을 굽고 계란 프라이를 했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아이는 속옷 차림으로 거실을 서성거렸다. 원복을 입히고 난 후에야 원복을 세탁해두지 않았다는 것이 떠올랐다. 원복 앞가슴에 아이가 초코시럽 먹다 흘린 오백원짜리 동전만한 자국이 얼룩으로 남아 있었다. 아이는 얼룩이 있는 옷은 입기 싫다면서 칭얼거렸다. 서둘러 그 부분만 빨았지만 얼룩이 지워지기는커녕 사방으로 시럽이 번져 별 모양이 되고 말았다.
“에이, 아이들이 놀려댈 거야. 더러운 옷을 입었다고. 아기처럼 흘리고 먹었다고.”
여자는 아이의 팔에 옷을 꿰면서 아이를 달랬다.
“어차피 하루 놀다보면 옷은 금방 지저분해질 거야. 친구들 옷도 죄다. 아이들 옷이 더러워질 때까지만 참아.”
아이에게 배낭을 메주고 음료수 페트병은 어깨에서 반대편 허리로 가게 걸어주었다. 얼룩이 생긴 원복과 씨름하느라 출근시간이 바듯했다. 아이의 한 손을 잡고 뛰듯이 걸었다. 여자의 걸음을 따라잡지 못한 아이가 몇번이나 뒤뚱거렸다. 아이와는 유치원 앞에서 헤어졌다. 유치원 정문 앞에까지 걸어간 아이가 별안간 뒤돌아서서 엄마를 불렀다. 아이가 여자에게 손을 흔들었다.
“엄마, 안녕히 계세요.”
여자도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안녕히 계세요,가 뭐야? 안녕히 다녀오겠습니다, 해야지.”
김선생이 가지고 있던 비디오테이프의 하단에는 촬영일자와 시간이 찍혀 있었다. 불이 나던 날 밤, 아홉시 오십분경이었다. 여섯살 난 아이가 야영장에서 가게까지 뛰어간다 해도 그 시간에 도착할 수는 없었다. 가게의 사내가 보았다는 별 모양의 브로치는 정말 별 모양의 브로치였을 수도 있다. 그리고 고만한 아이들은 툭하면 옷에 얼룩을 남긴다. 사내의 아내 말처럼 사내의 술주정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뒤에서 남편이 다람쥐를 쫓을 때처럼 가볍게 클랙슨을 울려댔다. 하지만 여자는 숲으로 도망치지 않았다. 조금씩 조금씩 발을 떼어놓았다. 누가 뭐라든 여자는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였다고 믿고 싶었다. 일년이 넘도록 집으로 돌아오지 않은 건 아이의 좁은 보폭 때문이라고 믿고 싶었다.
아이가 그 걸음으로 돌아오려면 아직도 수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