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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성석제 成碩濟
1960년 경북 상주 출생. 1986년 『문학사상』 시부문 신인상으로 등단. 소설집 『재미나는 인생』 『홀림』, 장편소설 『왕을 찾아서』 『순정』 등이 있음. SSJJTREE@chollian.net
천애윤락(天涯淪落)1
그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내를 지하철역까지 차로 태워다주고 아이를 놀이방에 맡긴 뒤에 집으로 돌아왔다. 막 아침을 먹으려고 찌개가 든 냄비를 식탁으로 옮기는데 전화가 울었다. 여덟시도 안된 시각에 전화를 한 사람이 친구라면 그건 문학이었다. 대기업들이 조기 출퇴근인지를 실시하면서 새벽 다섯시에 출근한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문학의 직장은 대기업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법률사무소다. 문학은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자신이 다니는 직장에서 유일하게 새벽 다섯시에 집을 나와서 수영을 하고 일어학원에 들렀다가 일곱시에 직장에 도착, 영어 테이프를 듣는 중이라고 했다. 제가 그러면 그렇지, 주부(主夫)로 재택근무 하는 그까지 시대에 발을 맞추라는 것도 아니고 꼭두새벽이나 다름없는 이 시각에 전화를 한 것은 필시 다른 용건이 있을 것인데.
동환이 있잖아. 동환이가 결혼식을 한대. 너한테 청첩장을 보내도 되겠느냐고 나한테 물어보길래 전화한 거야.
동환이가 아직 결혼식도 안했어? 결혼식도 안하고 지지고 볶고 살다가 애낳고 잃고 간통으로 고소당하고, 감옥까지 갔다오고, 결혼 서너 번 한 사람보다 더 복잡하게 살았네.
그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청첩장을 보내면 되지, 뭐 전화를 미리 해서 청첩장을 보내도 되느냐고 묻느냐,라고 하지는 않았다. 동환은 원래 그런 인간이었으니까.
그 일로 전화한 거라면 빨리 끊어. 식전부터 동환이라는 소리를 들으니 머리가 다 아프다. 나한테 전화하면 죽여버린다고 전해.
그는 대답도 듣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결국 동환에게서 전화가 올 것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스무살을 갓 넘겼을 무렵, 문학과 그는 동환에게 신세를 진 일이 있다. 문학과 그는 같은 대학에 다니고 있었는데 문학은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가 올려보내는 돈으로 자취를 했고 그는 백수인 아버지가 어디서 가져오는지 모를 돈으로 등록금을 냈다. 그러다보니 다른 학생들처럼 미팅에 나가서 만난 아리따운 여학생의 손을 잡고 디스코테크에서 청춘을 불사르기는 쉽지 않았다. 그들은 학교에서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자신들의 처지를 한하고 부모를 탓하고 손잡고 쌍쌍이 걸어가는 청춘들을 흘겨보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문학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 둘 다 나이트클럽 가서 여자들하고 부루스 한번 땡기는 게 일생의 소원이잖냐. 동환이가 전화를 했는데 내 이야기를 듣고는 돈을 대주겠다고 하더라. 네 이야기를 했더니 너한테 전화해도 되느냐고 물어보던데. 전화하라고 해?
그때 그는 너야말로 진정한 친구라 외치면서 전화를 학수고대하고 있을 테니까 제발 빨리 전화하라고 하라고 말했다. 동환은 곧 전화를 해왔고 들릴락말락한 목소리로 어느 삼류 호텔에 딸린 나이트클럽의 이름을 말했다. 대학생이라 공부하느라 시간이 없을 텐데 나오라고 해서 미안하다고 덧붙이면서. 그는 밤까지 기다리지도 못하고 호랑이처럼 달려나가 나이트클럽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에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동환이 왜, 어떻게 문학과 그를 나이트클럽에서, 디스코테크도 아닌, 놀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인지 생각해보았을 법도 한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동환은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가장 부유한 집의 외아들이었다. 또한 여학생들이 은근히 선망하는 미소년이기도 했다. 동환의 어머니는 동환에게 동화책에서 잠시 소풍 나온 왕자같이 옷을 입혔다. 그 옷에 달린 주머니에 늘 백원짜리 지폐가 서너 장 들어 있었다. 동환은 방과후에 학교 앞의 가게에서 그에게 학교에서 사먹지 말라고 하는 불량식품인 번데기, 냉차, 풋과일 등속을 사주고, 하지 말라는 야바위놀이를 하도록 돈을 대주었다. 어머니가 좋은 친구를 사귀라고 했다는데, 동환은 반에서 공부를 제일 잘하는 그를 좋은 친구로 여기는 것 같았다. 그가 생각할 때 동환에게 어울리는 좋은 친구는 문학이었다. 문학은 그들이 야바위를 하는 동안 야바위꾼이 속임수를 쓰지 않는지 감시하는 역할을 자원했다. 그래봐야 속임수를 알아낼 순 없었지만, 속임수를 알아낸다 한들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지만, 야바위꾼이 속임수를 쓰지 않을 리도 없었지만.
그날 밤 그와 문학은 동환이 대주는 돈으로 춤을 추고 술을 실컷 마셨다. 그렇지만 소원하던 블루스를 추지는 못했다. 나이트클럽에는 여자들끼리 블루스곡에 맞추어 춤을 추는 팀이 여럿 있었다. 그는 몇번 그들에게 다가가 함께 춤을 출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았다가 모두 거절당했다. 문학은 화장실에 갔다가 화장실을 청소하는 웨이터에게 비상금으로 가지고 있던 천원짜리를 빼앗겼다고 내내 징징거렸다. 동환은 춤을 추지 않았다. 자리에 앉아 술만 마시다가 그가 땀을 흘리며 자리에 돌아오면 재미있느냐고 웃어줄 뿐이었다. 스물을 넘어섰지만 동환에게는 아직 미소년 같은 인상이 남아 있었다. 동환의 아담한 몸에 딱 맞는 양복과 흰 얼굴에 잘 손질된 머리, 깨끗한 구두는 그가 입고 간 너저분한 청바지, 멋대로 자란 수염과 훌륭한 대조를 이루었다. 새벽 네시에 나이트클럽이 끝나고 난 뒤─올 기회가 많지 않으므로 끝까지 버텨서 본전을 뽑아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그들은 밖으로 나와 노점에서 순두부를 사먹었다. 동환이 돈을 내면서 수줍게 말했다.
다음번에는 내가 여자애들을 데리고 와도 되겠냐.
그는 뜨거운 순두부에 혀를 데고 동환에 대한 감동으로 가슴을 데었다. 그 다음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거기다 블루스를 함께 추어줄 여자까지 조달해온다니. 동환은 약속을 지켰다.
그 다음에 동환은 나이트클럽에서 가장 눈에 띌 만한 여자 둘을 데려왔다. 여자들은 천사처럼 흰옷을 입고 왔는데 나이트클럽의 환상적인 조명 아래서 천사로 안 볼 도리가 없었다. 그와 문학에게 각각 파트너가 배당되었고 드디어 그들은 숙원을 풀었다. 동환은 여전히 술만 마셨다. 좋은 친구인 문학이 동환에게 왜 춤을 안 추느냐고 물었다. 동환은 춤을 출 줄 모른다고 했다. 좋은 친구가 되고야 말려는 듯 문학이 끈덕지게 춤을 배워보라고, 자신의 파트너를 잠시 빌려줄 수도 있다고 하자, 동환은 자신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친구들에게 나이트클럽에서 술을 사주고 춤을 추게 해주는 것으로 행복하다, 행복이라고 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하여튼 그런 요지의 말을 했다. 그는 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트클럽이 끝이 나자 동환은 들릴락말락하게 ‘다음’을 약속했다.
그런데 좀 이상하잖아. 동환이가 뭘 하길래 돈을 그렇게 잘 벌지? 여자들은 또 어디서 났을까. 어째 찝찝하다.
동환이 준 차비로 택시를 타고 돌아가는 중에 문학이 말했다. 그는, 인생을 즐길 수 있을 때 즐기지 못하는 너 같은 인간을 친구로 알아온 나 자신이 한심해서 눈물이 다 나오려고 한다고 대꾸했다. 원래 동환의 집은 부자였고 지금도 부자일 것이고 어머니가 좋은 친구를 사귀라고 양쪽 주머니에 만원짜리 지폐 두 뭉치를 매일 넣어주고 있다, 그외에 무슨 다른 이유가 있겠느냐고, 다음에 동환을 만나서 그따위 질문을 해서 분위기를 깨면 가만있지 않을 거라고, 오늘은 일단 이거나 먹으라고 검지와 중지 사이에 엄지손가락을 끼워 문학의 입에 들이대기까지 했다.
그 다음에 문학은 오지 않았다. 시험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시험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는 동환이 데리고 온 여자 두 명과 번갈아가며 춤을 추었다. 블루스를 잘 추는 여자와는 블루스만, 디스코를 잘 추는 여자와는 마주보며 디스코를 원없이 추었다. 동환은 여전히 자리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이따금 담배를 피웠다.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이니 다음에 또 만나자는 취지의, 나이트클럽에서 영업의 끝을 알리는 곡이 흘러나올 때 화장실에 따라온 동환이 그에게 말했다.
너하고 블루스 추던 여자 있지. 미스 민. 그 여자하고 자고 싶으면 내가 호텔방을 잡아줄게. 말만 해.
그는 나오던 오줌이 멈춰질 정도로 감동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그는 돌아오는 길에 더이상 동환과 만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여자에게서 들은바, 여자들은 이른바 콜걸이었다. 동환은 여관 투숙객에게 여자들을 조달해주는 일을, 그게 ‘콜’이라고 불리는 일인지는 알아보지 않았지만, 하고 있었다. 손님과 여자 양쪽에서 일정한 비율의 돈을 받았는데 나이트클럽에 따라온 여자들에게는 열흘 정도 돈을 받지 않았다고 했다. 여자는 어차피 동환이 요구하면 공짜로 자줄 생각이었다고 했다. 그러므로 동환에게 해주는 셈치고 그에게 돈을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돈을 받지 않아서 그런지 여자는, 처음으로 여자와 잠을 자게 된 그를 전혀 배려해주지 않았다. 그는 여자들의 옷이 얼마나 벗기기 어려운지 처음 알게 되었고 여자의 몸은 남자보다 훨씬 더 복잡미묘하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달았다. 겨우 여자의 몸에서 옷을 다 벗겨낸 뒤에 그는 여자의 몸속에는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배 위에 사정을 해버렸다. 여자가 피식 웃고 나서 화장실에 씻으러 들어간 사이 그는 잽싸게 옷을 입고 호텔을 빠져나왔다. 삼류 호텔의 삼류 나이트클럽 간판이 세워진 삼류 골목을 달려나오며 그는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분노, 착잡함, 쓸쓸함, 고약함, 불쾌감, 열패감…… 그것은 그가 아는 감정 어느 것에도 전면적으로 해당되지 않으면서 그 모든 것의 속성을 조금씩 가지고 있었다.
며칠 뒤에 문학이 전화를 걸어왔다. 동환이 전화를 하고 싶어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그날 왜 그렇게 빨리 갔는지, 화가 난 건 아닌지 물어보고 싶다고. 그는 그날 새벽의 느낌을 되새기면서 동환에게 더이상 전화를 하지 말라고, 다시는 나이트클럽에 가지 않겠다고 전하라고 했다. 그 말이 효과가 있었는지 동환에게서 전화는 오지 않았다.
문학이 동환에게서 연락이 왔다고 전한 것은 그로부터 사년 만이었다. 동환은 그동안 직업을 여러번 바꾸었고 험하게 산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군대를 갔다와서 이젠 어른이 된 기분으로 까짓거, 동환에게 전화해도 좋다고 전하라고 했다. 그 말을 옆에서 듣기라도 한 것처럼 동환은 곧바로 전화를 했다. 동환은 여전히 들릴락말락한 목소리로 그동안 바빴다고 했다. 그는 괜찮다, 사람이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다고 대답해주었다. 동환은 자신이 고향에 자그마한 술집을 개업했는데 한번 와주었으면 한다고 했다. 그는 그러겠다고 선선히 대답했다. 그러나 술 한번 공짜로 얻어먹으려고 서너 시간이나 버스를 타야 하는 고향에 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동환은 자신이 운영하는 술집이 어디에 있는지 세세하게 일러주었다. 그가 오겠다면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나가겠노라고도 했다. 그러고는 수줍게 덧붙이는 말이, 술집에 데려다놓은 여자들이 있는데 수준은 믿어도 좋다, 자신이 대도시를 돌아다니면서 골라온 여자라는 것이었다. 그 여자들은 이미 그에 대해서 수십번도 더 들어서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며 단 한번이라도 그에게 술을 따라주는 게 소원이라고도 했다. 그는 할 수 없이 감동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 동환이 그 술집을 차리게 되었는지 찬란한 역사를 듣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서울에서 어느 중소도시로 간 동환은 한동안 다방에서 주방일을 배웠다. 다방에 무슨 주방일이 있어서 배우느냐고 할 사람도 있는데, 그게 문학이라는 인간인데, 동환의 말에 의하면 하기에 따라서 다방의 주방은 어느 일류 호텔의 주방 못지않은 요리기술이 필요한 곳이라고 했다. 이를테면 하이볼이라는 것이 있다. 하이볼은 본래 위스키에 소다수를 탄 음료를 말한다. 하지만 동환에게 기술을 가르쳐준 주방장이 내린 정의는 다르다. 마음에 드는 여자를 처음 만났을 때, 그 여자와 자고 싶을 때, 그 여자가 말을 들을 것 같지 않을 때, 하긴 처음 만나자마자 자고 싶다고 하는 남자를 따라가는 정신없는 여자가 있을 리도 없지만, 반면에 그런 생각을 하는 남자는 남자 중 반은 넘을 것이지만, 술이라도 먹여서 정신을 잃게 하는 방법을 쓰려고 해도 여자가 눈치를 채고 술집에 가지 않으려고 하거나 술집에 갈 만한 시간이 없을 때, 바로 하이볼을 여자에게 마시게 하면 자신의 소원을 이룰 수 있다. 그것이 하이볼이다. 다만 하이볼에 위스키와 소다수 외에 무언가를 첨가하는데 그 무언가가 뭔지는 다방 주방에서만 비밀스럽게 전수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동환이 다닌 다방의 주방장은 그런 분야에 수십년을 종사해온 도사였다. 그렇다면, 그는 마른침을 삼키며 동환에게 물었다. 그 주방장이란 놈은 지금까지 몇명의 여자를 해치웠다는 거야. 그것도 제 마음에 드는, 처음 만난 여자를 말야. 동환은 수줍은 목소리로 그 주방장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주방장은 그런 비법을 여러가지 전수해준 대신 동환에게 자신을 스승으로서가 아니라 남자로서, 혹은 여자로서 사랑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엉, 주방장이 남자야, 여자야?
동환은 물론 남자라고 대답했다. 사십대 중반에 수염을 기르고 어느 모로 보나 사내답게 생긴 인간이 틀림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너는 그 새끼가 하자는 대로 했었냐.
그는 언젠가 동환이 나이트클럽에서 여자나 춤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술만 마시던 광경을 떠올리면서 물었다. 동환은 한동안 대답하지 않다가 결국 들릴락말락하게, 아니, 하고 대답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주방장은 일이 끝난 뒤에 동환에게 그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포르노 비디오테이프를 보여주고, 포르노가 귀한 게 아니라 비디오테이프를 재생하는 기계가 귀했다, 플레이보이 따위의 책을 마음대로 보게 했으며 동환이 술을 원하면 술을, 담배를 가져오라면 담배를 가져다주었다. 동환이 비디오를 보고 책을 뒤적거리는 동안 주방장은 조용히 동환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동환은 주방장이 하이볼 같은 비법의 음료로 자신을 쓰러뜨리고 제 욕심을 채우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알고 있었으니까 늘 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주방장이 술을 마시자고 했다. 동환은 주방장의 마법이 정말로 말을 듣는지 알아보기 위해 미리 술에다 동물성 최음제를 섞었다. 시간이 지나자 주방장은 옷을 벗어던지더니 흥분해서 동환의 옷을 벗기려 들었다. 그날로 동환은 다방을 그만두었다. 다방을 나오기 전에 퇴직금 조로, 퇴직금은 다방 주방보조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므로 받을 생각도 없었지만, 주방장의 가랑이 사이를 힘껏 차서 기절시켰다.
잘했다.
그는 자신도 왜 그러는지 모르고 거듭 한숨을 쉬며 논평했다. 동환은 다방 주인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붙잡혀 얼마 동안 유치장에 갇혀 있어야 했다. 그런데 주방장이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해서 곧 석방되었다. 그 뒤에 동환은 고향으로 돌아가 후배가 운영하는 술집에 지배인으로 들어갔다. 고향에서 스물서너살에 술집을 운영하는 후배라면, 대개는 건달이었다. 동환이 들어간 술집의 후배는 선배를 몰라보기로 유명한, 바로 그 때문에 건달로서의 명성을 갖게 된 후배였다.
그럼 그게 후배야, 뭐야?
그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동환은, 맞아, 난 그 새끼 밑에서 그 새끼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을 하고 구둣바닥을 핥으라면 진짜 핥았어, 하고 대답했다. 다른 친구들이 그 술집에 와서 나를 보더니 너하고는 친구 안 하겠다, 앞으로는 말도 걸지 말라고 그랬다는 것이다.
왜, 왜 그렇게까지 그 술집에 붙어 있어야 했는데.
동환은 자신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것은 동환이 그를 나이트클럽에 들여보내주고 여자까지 데리고 와서, 그 여자와 함께 호텔에서 잘 수 있도록, 비록 삼류이긴 하지만 호텔은 호텔인데, 해준 이유를 동환이 설명하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서는 더 묻지 않기로 했다. 동환은 나직한 목소리로 술집에서 겪은 사소한 일들에 관해서 말했다.
응, 나 있잖아, 후배 친구들이, 돈 많은 친구들이 오면 무릎꿇고 술도 따랐어. 그래서 우리 술집, 후배들한테 인기가 참 좋았다. 조금 늦게 태어난 게 무슨 죄냐. 사람 같지도 않은 선배들한테 설움받은 애들이 우리 술집에 많이 왔거든.
그는 하마터면 이 등신, 쪼다, 친구 개망신시키는 놈, 어쩌고저쩌고 나오는 대로 욕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왜. 그래봐야 동환은 바뀌지 않을 인간이고 동환이 바뀌든 안 바뀌든 그는 아무 상관이 없었으니까. 동환은, 그렇게 한 결과 술집은 번창했지만 자신은 결국 일년 뒤에 술집에서 쫓겨났다고 했다. 술집을 운영하는 건 후배들만이 아니었고, 동환과 같은 또래나 동환의 선배들도 술집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그들 역시 건달이었고 동환이 근무하는 술집이 선배가 후배를 왕으로 모시는 특이한 상술로 장사를 해서 잘되면, 그것 참 경사스러운 일이라고 손뼉을 쳐줄 사람들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느날 똘똘 뭉쳐서 동환의 후배이자 술집 주인을 불러냈고 동환을 쫓아내지 않으면 진짜 선배의, 정확하게는 선배들의, 뜨거운 맛을 합동으로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후배는 동환을 불러서, 나가, 하는 한마디 말로 동환을 쫓아냈다.
그래서 네가 술집을 직접 해보려고?
동환은, 응, 하고 천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는 기가 막혀서 아까 감동받은 것을 취소하려고 했지만 어설프게 감동해서 그런지 쉽게 취소가 되지 않았다.
그 술집에 나보고 오라는 거지. 가서 네가 공짜로 대주는 술을 마시고 여자랑 노래 부르고 놀고?
동환은 제발 그렇게 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알았다, 언제 한번 가지, 하고 상대가 전화를 끊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동환은 전화를 끊을 기색이 아니었다.
부탁이 있는데, 네가 우리집 이름을 좀 지어줘.
내가 네 술집 이름을? 왜 나야?
동환은 숨소리만 색색거리면서 한참 동안 가만히 있었다.
으응, 그냥. 네가 지으면 제일 좋을 것 같아서. 네가 나보다 훨씬 많이 배우고 아는 것도 많잖아. 너는 어릴 때부터 선생님 같았어. 선생님보다 더 많이 알았잖아. 지금은 박사가 됐을 거 아냐. 우리 아가씨들도 그렇게 알고 있어.
그는 소리내어 웃었다.
야, 나는 아직 대학도 졸업 못했어. 학사 졸업장도 없단 말야. 박사는 무슨 박사. 제발 나 가지고 이상한 생각 좀 하지 마라. 아가씨들한테도 그런 쓸데없는 말 하지 말란 말야.
그러나 동환은 진지했다. 그가 이름을 붙여주기 전까지는 술집 간판을 달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마음대로 하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번에는 문학이 기다렸다는 듯 전화를 했다. 동환이 전화를 했는데, 정 이름을 지어주기 어려우면 자신이 지은 이름 중에서 하나만 찍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는 소리내어 웃었다.
뭔데?
문학은 미리 이름을 적어뒀는지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안개등, 무제(無題), 하고 발음했다.
그중 하나? 둘 다 유치해서 눈물이 다 나올라고 그러지만, 무제로 하라고 해.
다시 오년 동안 동환으로부터 전화가 오지 않았다. 취직을 하고 결혼하고 이사하고 전화번호가 바뀌었다. 문학이 결혼식 사회를 보러 왔던 길에 생각난 듯이 동환의 동정을 전해주었지만 그는 귓등으로 흘렸다. 보나마나 술집을 잘하거나 못하거나 한다는 거겠지. 결혼식이나 집들이, 아이 백일잔치에도 동환을 부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때도 문학이 와서 동환에 관해 무슨 이야기를 했지만 그는 전혀 귀담아듣지 않았다.
직장에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던 그에게 어느날 문학이 전화를 걸어왔다. 동환이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동환은 그동안 술집을 운영했다고 했다. 여자가 나오는 술집, 여자가 하나만 있는 술집, 여자가 없는 술집으로 여러번 형태를 바꾸었다는 것이다. 주종도 양주에서 막걸리까지 다채롭게 변했다. 그는 막걸리고 양주고간에 여자가 없는 술집이 말이 되느냐, 제가 여자라면 몰라도, 하고 공연히 소리를 질렀다. 문학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이제 술집을 관두었다더라구. 술집 아가씨하고 동거를 했다는 거야. 그 여자가 술집에 여자를 두는 걸 눈뜨고 못 보겠다고 해서 여자를 없앴더니 손님도 없어지더래.
그는 픽 웃었다.
거야 당연하지. 그런데 그 여자 웃기네. 자기도 술집에서 동환이를 만났으면서 술집에 여자를 두면 안된다는 거야?
문학은 진지한 어조로 그렇다고 말했다.
그래서 동환이가 여자하고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게 됐거든.
그는 또 소리를 질렀다.
세상에 여자하고 상관없는 일이 어디 있어.
문학은 자신도 잘 모르겠다고 하면서 하여튼 동환이 너한테 전화를 했으면 하는데 받을 거냐고 했다. 그는 용건을 알기 전에는 전화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문학은 잠시 기다리라고 했고 이윽고 전화를 걸어서 동환이 몸에 좋은 염소, 보통 염소가 아니라 난 지 백일쯤 되는 염소를 개소주로 만들어서 먹기 좋게 팩으로 포장하고 파는 일을 하는데 그 개소주인지 염소소주인지를 보내도 되겠느냐, 주소를 알려달라고 전화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 순간 동환이 전화를 하려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전화를 할 것도 없고 개소주는 먹었다 치고 개값을 보낼 테니 그 자식 은행계좌번호나 불러달라고 했다. 문학은 잠시 가만히 있었다. 그러더니 왜 내게 화를 내느냐, 내가 어떻게 동환의 계좌번호를 아느냐, 친구라고 생각해서 공짜로 준다는데 그것도 못 받느냐, 어쩌고저쩌고 떠들더니 전화를 탁 끊었다. 그는 어리둥절해서 문학에게 전화를 걸려다가 그만두었다.
그로부터 이년 뒤에 문학이 전화를 걸었다. 그는 이년 사이에 이사를 한번 했고 차를 샀다가 사고가 나서 폐차했고 직장을 옮겼다. 그동안 문학과는 만난 적도 전화통화를 한 적도 없었다. 물론 동환은 전화를 걸지 않았다. 문학은 애써 지어낸 듯한 사무적인 목소리로 동환이 전화를 하려고 한다고 했다. 그는 약간 미안한 마음에 용건을 묻지 않고 전화를 하라고 하라고 했다. 그런데 문학이 이번에는 전화를 받기 전에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면서 동환의 처가 어렵게 임신을 했는데 지금 동환에게는 땡전 한푼 없다, 아마 좀 도와달라고 말할 것이라면서 은행계좌번호를 불러주었다.
얼마나?
문학은 아직 감정의 앙금이 희미하게 느껴지는 목소리로 네가 알아서 하라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동환이 전화를 해오지 않았다. 그는 그 계좌번호로 돈을, 옛적 나이트클럽의 입장료와 자신이 마신 술값과 어느 새벽의 삼류 호텔 숙박비에 해당하는 금액을, 계산하다보니 그 금액이 의외로 큰 데 놀라면서, 보낼까 말까 생각하다가 전화가 오기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전화는 일주일 뒤에 걸려왔다. 어느 새벽, 그의 집으로.
나 동환이야.
그는 불을 켜고 시계를 보았다. 새벽 네시였다. 그의 아내가 무슨 소린가 내며 돌아누웠다. 그는 목소리를 낮추어 이 시각에 웬일이냐고 물었다.
미안하다.
동환은 그 말을 하고 한참 가만히 있었다.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밖에서 공중전화를 하는 모양이었다. 동환의 목소리 너머로 들려오는 싸이렌 소리를 들으며 그는 거기가 어디냐고 물었다.
미안해.
동환은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로 미안하다는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는 마루로 나가 문학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이미 깨어 있었는지 말짱한 음성으로 전화를 받은 문학은 동환의 처가 임신중독증으로 입원을 했고 제왕절개 수술을 해서 아이를 꺼내야 하는데 돈이 없는가보더라, 하고는 지나가다가 개집을 넘겨다본 염소처럼 말했다. 그는 동환의 울먹이는 소리에 가슴 한켠이 뻐근해져 있었는데 아기 이야기를 들으니 다시 그 부분이 눌리는 듯했다. 그게 잠에서 덜 깬 상태에서 울먹이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나타나는 정서적 반응인지, 동환이라는 개인에 대한 연민 때문인지, 삶 그 자체의 비극성 때문인지, 아기와 임산부에 대한 인류애 때문인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그는 어느 병원이냐고 물었다. 문학은 병원이 어디 있는지는 자신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동환에게 필요한 건 수술보증금이다, 알아서 적당히 보내라고 했다. 그는 계좌번호를 묻고 전화를 끊었다. 오전에 은행에 들러 송금을, 옛적에 동환이 자신에게 베푼 향응에 들어간 돈의 오분의 일 정도에 해당하는 금액을, 하고 나서 그는 동환의 일을 잊었다. 잊기로 했다. 그러나 다음날 오후에 문학이 전화를 걸어와 그의 기도를 가볍게 분쇄했다.
전화를 하고 싶대.
그 자식은 왜 너를 통해서만 전화를 하고 싶대?
네가 무서운가봐.
이번에는 용건이 뭐래? 고맙다는 인사는 필요없다고 해. 옛날 신세를 갚은 거니까. 그걸로 끝냈으면 싶어, 솔직히. 가능하면 영원히 말야.
애가 태어났는데 이름을 지어야겠대. 네가 이름을 지어줬으면 하던데.
내가? 내가 뭔데? 그 자식은 왜 옛날부터 나만 보면 이름을 지어달란대? 내가 무슨 작명가냐?
몰라. 동환이는 네가 꼭 이름을 지어줘야 한다고 했어. 내가 지어주겠다고 해도 무조건 네가 지어야 된다고 안된대.
너희 지난번처럼 미리 짜고 그러는 거 아냐. 무조건 두번째 것으로 하라고 그래.
하여튼 전화하면 받을래?
전화하지 말라고 해. 아직 이름 안 지었으면 작명소 가서, 이름이 나오면 무조건 두번째 이름으로 지으라고 하라구. 끝? 이젠 정말 동환이 말만 들어도 지겹다.
석달쯤 뒤에 동환이 전화를 걸었다.
우리 몽선이가 백일이거든. 잔치를 하는데 꼭 와주라. 몽선이가 그동안 인큐베이터에 있었어. 내가 우리 애한테 네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했는데. 우리 몽선이가 딴사람은 몰라도 너는 알아볼 거야.
네 애 이름이 몽선이야? 야 인마, 백일도 안된 애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을 어떻게 알아봐. 인큐베이터에 있으면 어떻게 백일잔치를 하냐.
지금은 퇴원했어. 잔치를 우리집에서 했으면 좋겠는데 우리가 지금 단칸방에 세들어 살아서 손님을 오게 할 수가 없거든. 예전에 내가 술집 하던 데가 있는데 보통은 비어 있걸랑. 거길 빌렸어. 글루 오면 돼.
그럼 시골 아냐. 그것도 낮이라구? 직장에 매인 사람들이 어떻게 거기까지 가.
동환은 한동안 말이 없더니 들릴락말락하게 입을 열었다.
정말. 나는 생각도 못했어.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그런 말 안하던데.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다른 사람들이라는 게 안 갈 족속이니까 아예 묻지를 않지. 너는 어째 아직도 그 모양이냐. 아버지가 됐으면 좀 사람구실을 할 수 없니.
그는 아내가 옆에 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문학이 통해서 어떻게 할 테니까 전화 끊어.
말을 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으면서 그는 동환이 문학을 거치지 않고 전화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게 동환이 변했기 때문인지, 사람구실을 하게 됐다는 뜻인지 구별이 가지 않았고 구별할 이유도 없었다. 그는 문학에게 전화를 걸어서 반돈짜리 돌반지 하나 값에 해당하는 돈을 송금하겠다, 반지를 사다주든지, 돈으로 주든지 마음대로 하라고 소리를 지르고는 전화를 끊었다. 왜 집안에서 소리를 그렇게 지르느냐, 애들 교육에 나쁘다고 하는 아내에게, 내 집에서 내가 소리를 지르는데 뭐가 어떠냐, 남의 집에서 소리를 지르면 그 집 애들 교육에 좋겠느냐고 또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후두염에 걸려 일주일 넘게 호되게 앓았다.
그 반지를 다시 상기하게 된 것은 문학이 고향에 갔다와서 전화를 해왔기 때문이었다.
동환이 애가 죽었어. 백일잔치 하기 하루 전날. 폐렴이래. 애가 원래 골골해서 입원을 오래 했는데 치료비로 전세금까지 다 날렸다더라구. 백일잔치가 초상자리가 됐다더라, 참.
그는 목이 메었다. 후두염 후유증이었다.
그놈 불쌍하네, 정말. 애가 그렇게 똑똑하다고 자랑하더니.
문학은 너에게 그런 말까지 했느냐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 아이가 자신을 알아볼 것이다, 오면 아이가 좋아할 거라고 한 말에서 유추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하여튼 그는 목이 멘 채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로부터 다시 일년 동안 동환의 전화를 받지 못했다. 추석에 고향에 다녀온 문학이 그를 만난 자리에서 동환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아이를 잃고 나서 동환은 한동안 실성한 사람처럼 읍내를 헤매고 돌아다녔다. 폐인 같은 생활을 한 것이 몇달 동안 계속되었고 미쳤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정신을 차린 듯 다방에 취직해서 주방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동환의 손을 거쳐 나온 커피는 특별했다. 서울하고도 일류 호텔의 커피 못지않은 격조가 있으면서도 다방 커피의 서민성, 친근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게 뭐냐 말야. 이것도 저것도 아닌 거지, 뭐가 특별해?
그가 묻자 문학은 눈을 굴릴 뿐 빨리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하여간 마셔보면 알아.
결론적으로 동환의 커피는 한번 맛보면 다시 오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어느 다방의 커피가 이상하게 맛있다는 소문이 퍼졌다. 이윽고 그 다방은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매일 한번은 가야 하는 장소가 되었다. 소문은 날로 퍼져 냄새나고 허름한 구식 다방에 출입할 리가 없는 아가씨들까지 다방을 메웠다. 심지어 이웃도시에서 원정을 오는 커피광까지 생겼다. 동환은 커피로 성공을 한 다음에는 하이볼 같은, 근래에 다방에서 다루지 않게 된 음료를 가지고 마술을 부리기 시작했다. 다른 다방의 주방장들이, 하긴 근래에는 다방에 주방장이 따로 없었다, 아무리 흉내를 내려 해도 동환이 제조하는 비법의 맛이 나지 않았다. 손님들 중에 몇사람이 동환에게 이런 구질구질한 시골 다방에서 아까운 솜씨를 썩히지 말고 돈을 대줄 테니 새로 산뜻하게 다방을 하나 차리라고 권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환은 부인과의 약속에 따라 월급쟁이 주방장으로 만족했다. 부인과의 약속이 무엇인가. 자신의 집에, 그게 사는 집이든 가게이든 부인 외의 다른 여자를 일절 쓰지 않겠다고 한 것이었다.
그럼 다방을 차리고 제 마누라한테 카운터를 보라고 하면 되잖아.
그 여자는 예전에 외간 남자들 앞에 나섰던 사람이라 다시는 그런 짓은 못하겠다는 거지.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거야.
그게 그 자식의 인생 아니냐. 원래 한 시절도 잘 나간 적이 없어. 뭐가 꼬투리가 생겨도 생겨서 남들같이 정상적으로 사는 걸 못 봐. 그래도 다방에서 일하는 건 좋다니까 그게 걔한테는 딱 맞는 거야. 이젠 고생 끝이네.
그는 평생 처음으로 사심없이 동환의 행복을 빌어주었다. 설이 돌아왔을 때 그는 직장을 그만두었다. 정확하게는 회사가 그에게 그만둘 것을 종용한 것이지만, 그러다 결국 그 잘난 회사도 망해버렸지만. 그는 고향을 떠난 지 이십여년 만에, 문학이 타는 고물차에 몸을 싣고 귀성객 틈에 섞여 고향으로 갔다. 성묘를 하고 오랜만에 친척들을 찾아 인사를 하고 나니 할 일이 없어 사람이 드문 읍내를 맴돌게 되었다. 어쩌다 명절 연휴에도 문을 연 다방이 있어서 안으로 들어갔다. 어쩌면 동환을 의식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환이 어느 다방에 있는지 알아보지 않았다. 그가 들어간 다방은 동환이 있는 다방이 아니고 동환이 있던 다방도 아니었다. 그가 중년의 다방 여주인에게 넌지시 동환에 대해 묻자 그 여자는 고소하다는 듯 동환에게 일어난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동환이 일년 가까이 지역의 다방업계에 태풍을 몰고 온 것은 사실이었다. 지역에 있는 수십개의 다방은 동환으로 인해 큰 타격을 받았다. 여주인 역시 지금은 직업 자체가 없어지다시피 한 다방 주방장을 수소문했을 정도였다. 그는 그쯤에서 질문했다. 전문적으로 차를 파는 다방은 아가씨가 나오는 다방하고는 상관없는 일 아니냐고. 다방 여주인은 미스 민을, 그가 이름을 묻자 다방 아가씨의 호칭의 칠십 퍼센트는 미스 민이라고 하면서, 불러 자신에게도 주스를 한잔 가져오게 하더니, 사실 아가씨로 영업하는 ‘아가씨 다방’과 차를 파는, 차맛과 분위기로 승부하는 말 그대로의 ‘다방(茶房)’은 영업범위가 다르긴 해도 동환이 있는 다방에 워낙 손님이 몰리니 아가씨 다방도 분위기를 타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다방에서는 건전하게 차만 마시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동환이 부인에게 간통죄로 피소되었다. 다방 여주인은 명명백백히 동환이 다방 내실에서 어느 여자와 나란히 누워 있는 현장을 부인에게 붙잡혔다고 했다. 동환 역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제 발로 경찰서로 걸어들어갔다는 것이었다. 그게 불과 일주일도 안된 일이었다. 나중에 그가 문학에게 들은 경위는 다방 여주인의 것과 달랐다.
부인은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잘못되어 더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아이까지 죽고 나니 의부증이 병적으로 심해졌다. 그녀는 자신의 시간과 정력 모두를 동환을 의심하고 감시하는 데 쏟았다. 밥 짓고 빨래하는 일도 동환의 몫이 되었다. 동환이 집안일을 하는 동안은 바람을 피우지 못할 것이고 그녀 자신은 동환을 스물네 시간 감시하느라 바쁘고 힘이 없기도 했다. 사람 좋은 동환은, 왜 좋다는 거냐고 그가 물었지만 문학은 무시했다, 그런 부인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러던 어느날 그가 옛날 다방 주방일을 배운 주방장의 여동생이 다방으로 동환을 찾아왔다. 그 여자 역시 다방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어느 시골 다방이 환상적인 커피맛으로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다가, 그 맛이 자신의 오빠가 만들던 맛과 비슷한 것을 알게 되었다. 다방의 주방장을 만나니 그 사람은 바로 오빠가 몽매에도 찾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이었다. 여동생은 자신의 오빠가 폐인이 되어, 동환에게 사타구니를 걷어채어 여섯 달인가를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후에, 정신병자를 수용하는 요양원에 들어갔는데, 마지막 소원이 동환을 만나는 것이라고 했다. 착한 동환은, 그는 이번에는 동환이 왜 착하다는 거냐고 묻지 않았다, 그 말을 듣고 여동생의 차를 타고 요양원으로 주방장을 찾아갔다. 오늘의 다방 주방장이 과거의 주방장과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른다. 여동생은 다시 동환을 데려다주었다. 여동생은 차를 여관 앞에 세웠는데 다방 주변에는 차를 세울 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방으로 올라가 동환이 만든 음료를 마시며 내실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왜 내실에 들어갔느냐 하면 주방장이 손님들과 함께 다방에 앉아 개인적인 손님을 만나는 게 적절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동환이 보이지 않자 동환을 찾아 헤매던 부인은, 다방 주인에게서 동환이 묘령의 여인과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차는, 도무지 차의 이름까지 알 필요가 있을까 싶은데, 문학은 그 차의 이름을 떠올리지 못해 내내 안달했지만 결국 떠올리지 못하고 그냥 독일차라고 했는데, 나중에 그가 그 이름을 떠올렸으니 그 이름은 폴크스바겐이다, 읍내에서는 보기 드문 차인데다 생김새가 특이해서 차에 대해 문외한인 그 부인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 차는 백궁장이라는 여관, 문학은 차 이름은 모르면서 여관의 이름은 쉽게 기억해냈다, 앞에 당당히 주차되어 있었다. 부인은 여관에 들어가 주인에게 내 남편이 들어와 있다, 숙박계를 보여달라고 했다. 여관 주인은 물론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부인은 그 길로 파출소로 달려가 경찰을 데리고 나왔다. 여관에 다시 온 부인은 방 하나하나를 다 뒤졌지만 동환을 찾지 못했다. 결국 다방으로 간 부인과 경찰은, 다방의 내실에서 동환과 미모의 여인이 동환이 만든 특제 음료를 놓고 마주앉은 것을 발견했다. 부인은 여인에게 달려들어 두 손으로 머리카락을 쥐어뜯었고 남은 무기인 입으로 동환의 코를 깨물어 뜯었다. 동환의 얼굴은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었다. 동환은 한 손으로 코를 잡고 다른 손으로 차가운 물을 떠다주며 부인을 진정시키려고 애썼는데 부인은 그 물에 독이 들었다고 외치면서 컵을 깨버렸다. 도저히 안되겠다고 생각한 동환은 부인의 주장을 일단 인정하고 순순히 경찰서로 따라갔다. 상대가 되는 여자, 곧 주방장의 여동생은 독일차 폴크스바겐을 타고 사라져버렸다. 부인은 여자가 사라진 것을 알고는 더 길길이 날뛰었다. 동환은 부인을 진정시키기 위해 경찰서에서 모든 사실을 인정했다. 상대 여자는 다방에 나갈 때부터 사귀어온 유부녀였다, 읍내와 교외의 여관 수십 군데를 전전하며 관계를 맺었다, 그날은 여관에서 대낮부터 관계를 맺고 미진한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다방 내실로 온 것이라고 진술했다. 그러나 증거가 없었다. 상대 여자도 사라지고 없었고 동환은 그 여자가 어디 사는지 정말 몰랐다. 여관 주인도 두 사람을 여관에서 본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부인은 동환이 자신이 시키는 대로 진술을 하지 않거나,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가 나오면 그 즉시 기절했다. 기절한 척한 것까지 합쳐 스무 번도 넘게 쓰러졌다. 동환은 부인이 원하는 대로 자신을 처벌해달라고 경찰에 애원했다. 결국 동환은 구속되어 유치장에 갇혔다. 읍내에는 미결수를 수용할 시설이 없어서 재판을 기다리는 사람은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하게 되어 있었다.
정말 미친놈이네. 왜 짓지도 않은 죄를 지었다고 해. 마누라는 또 뭐야. 둘 다 정신병원에 갖다넣어야 되겠구만.
그는 동환이 왜 그렇게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고 자신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문학은 동환에게 면회를 가자고 했다.
야, 내가 미쳤어? 그런 놈한테 가서 무슨 말을 하고 무슨 말을 들으란 말야. 나는 정말 그놈한테 할 만큼 했어. 면회는 무슨 얼어죽을 면회야. 말을 들어보니 제가 자원해서 들어가 있는 거 아냐. 제 마누라가 의심하면 그 의심대로 행동해서 맞추는 기쁨을 줘? 열부 났구만, 열부 났어. 난 안 가. 못 가.
문학은 그를 설득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차를 경찰서로 끌고 들어가 마당에 세운 뒤에 이렇게 말했다.
설 아니냐. 불쌍한 우리 동환이 떡국이라도 한그릇 먹게 해주자고.
에이 썅.
그는 차에서 나와 경찰서 안으로 들어갔다. 동환은 얼굴 가운데를 붕대로 친친 감고 나왔다. 고무신을 신고 수의를 입었는데 몰골이 말이 아니었고 머리카락도 듬성듬성했다. 그는 스물한살 때의 미소년 같던 동환과 지금 눈앞의 동환이 같은 인물이라고 믿을 수가 없었다.
야, 너, 너 내 친구 동환이 맞아? 네 아버진 줄 알았다.
동환은 삼분의 일을 붕대로 가린 얼굴을 숙였다. 그의 말투는 그때나 다름없었다.
미안하다.
뭐가?
그는 곧바로 크게 물었다. 동환은 들릴락말락한 소리로 대답했다.
이런 데까지 너를 오게 해서. 너는 평생 경찰서에 안 오고도 살 사람이잖아. 나는 네가 내 친구라는 게 늘 자랑스러웠어. 미안해. 정말, 미안하다……
동환은 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는 다시 언젠가처럼 가슴이 뻐근해지려는 것을 간신히 억제했다.
야, 네 마누라한테 가서 당장 고소 취하하라고 할게. 이게 무슨 만화 같은 일이냐. 취하 못하겠다고 하면 우리가 죽여버릴 거야.
그가 소리를 질렀다. 동환이 고개를 들었다.
그렇게 해도 소용없어. 나 자발적으로 이리 들어온 거야. 그래야 그 사람이 편해질 것 같아서. 그 사람은 지금 많이 아파. 내가 나가면 그 사람이 들어와야 된다고 경찰이 그랬어.
그리고 동환은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순두부 스무 그릇쯤에 해당하는 영치금을 넣고 나오다 그는 동환의 마지막 말이 이상해서 경찰에게 물어보았다. 경찰은 지금 동환이 간통으로 들어가 있는 게 아니라고 했다. 살인 미수라는 것이었다. 부인은 간통으로 고소를 했지만 두 사람은 사실혼 관계이지 아직 혼인신고도 하지 않은 사이였다. 애초에 간통죄는 성립하지 않았다. 부인은 그 사실을 알고 나자 동환이 자신을 죽이려고 오래 전부터 계획해왔으며 여러차례 독이 든 음료를 먹이려고 했지만 자신이 그때마다 컵을 깨버렸다고 고소했다. 그에 따라 사실 여부를 수사중이라는 것이었다. 동환이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이 되면 부인이 아닌 그 여자는 경찰이 보는 앞에서 코를 물어뜯어 뱉은 행위에 대해 폭행죄로 기소될 가능성이 많았다. 그외에도 무고혐의가 추가될 수 있었다.
이게 무슨 개떡 같은 경우야.
그는 경찰서를 나와 서울로 돌아오면서 그 말을 백번쯤 되풀이했다. 그러고는 정말 동환에게 일말의 관심도 가지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하고 문학에게도 그 넌더리나는 인간이 혹시 나중에 전화를 해오더라도 자신에게는 절대 전화를 하지 말라고 하라고 했다.
걘 구제불능이야. 어떻게 해도 안돼. 안해도 안되고 해도 안돼. 나는 지금 걔를 이해할 능력이 없어.
그리고 또다시 일년이 지나갔다. 그의 주부생활도 본 궤도에 접어들었다. 그는 아이 뒷바라지와 밖에서 돈을 벌어오는 부인을 대신해서 살림을 하느라 눈코뜰 새가 없었다. 살림에도 새록새록 재미가 들었다. 제대로 된 물건을 고르고 가구를 재배치하고 가족을 위해 몸에 덜 해로운 저공해 식품을 찾아 시장을 헤맸다. 인터넷에 ‘아빠가 가꾸는 아름다운 집안’이라는 홈페이지도 만들었다. 그러느라 그는 정말 동환의 일을 잊었다.
그러나 동환은 전화를 했다. 분명히 문학을 통해 전화를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전화를 하면 죽여버리겠다고 했음에도. 동환의 말투는 여전했다. 들릴락말락해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고개를 기울이게 만들고 종내는 이쪽에서 소리를 지르게 만드는 그 말투.
나 동환이야.
알아.
나 결혼해, 그 여자하고. 청첩장 막 부쳤어.
야, 이 새끼야. 너라는 놈은 참 못 말리겠다. 그리고 그 여자라니, 그때 너 못 잡아먹어서 안달하던 그 여자? 난 정말 너를 모르겠다. 너 사람이냐, 천사냐, 짐승이냐.
동환은 그가 말을 다 끝낼 때까지 기다렸다.
꼭 와.
내가 왜? 나 요새 바빠.
너 결혼식할 때 내가 청첩장이 없어서 못 갔잖아. 너는 내 결혼식에 꼭 와야 돼.
그게 무슨 말이야?
꼭 올 거지. 나 전화 끊는다.
전화를 끊고 난 뒤 그는 정말 이번이 마지막이다, 이 악연을 기필코 여기서 끝장내야겠다, 그러고 보니 특별히 악연이랄 것도 없지만, 멍청한 것 같으면서도 교묘하게 그의 감정을 자극해서 결국 제가 원하는 것을 관철하는 동환과의 관계를, 또 그러고 보면 동환이 원하는 게 정말 뭔지 한번도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하여간 이젠 모두 끝이다, 끝, 끝, 끝, 지겹다고, 천장을 향해 콧김을 뿜으면서 결론내리고 문학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나 이번에 동환이 결혼식에 갈 건데, 너도 갈 거지. 뭐 못 가? 너 죽고 싶어? 내가 요새 집안일에 얼마나 바쁜지 알기나 해? 그런 나도 간다는데 네 아가리에서 어릴 적 친구 결혼식에, 우리 동기 중에 장가를 못 간 마지막 친구의 결혼식에 안 간다는 말이 나와? 너 이 새끼, 이번에 안 가면 다시는 너 안 본다. 인간 같지도 않은 소리 그만 하고 토요일에 차 끌고 우리집 앞으로 와. 알았어? 그래, 열한시. 시간 지켜.
전화를 끊고 나서 그는 뭔가 소름끼치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그럴 만한 이유도 없었고 그럴 일도 아니었는데도. 며칠 뒤에 문학이 차를 가지고 그의 집 앞으로 와서 전화를 걸었다. 그는 아이의 피아노 선생에게 줄 과외비를 헐어 일부는 봉투에 넣고 일부는 지갑에 넣었다. 가는 동안 문학은 내내 말이 없었다. 그는 몇번 문학에게 말을 붙이려 했다. 그때마다 문학은 미리 말을 막으려는 듯 얼굴을 찌푸리고 과격하게 차를 몰았다. 두시간 반 동안 한번도 쉬지 않고 결혼식이 열린다는 장소까지 달려 그 앞에 차를 세운 문학은 다급하게 화장실로 달려들어갔다. 그는 왠지 버림받은 듯한 낯선 느낌으로 결혼식이 열린다는 건물 앞에 섰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이층 건물이었다. 한때는 최신 공법의 최신 건물로 영화를 누렸는지도 모르지만 지은 지 이십년은 넘어 보였다. 이층 유리창에 포도주잔 모양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무’라는 글자가 씌어 있었다. 무언가가 그려진 유리창은 단 하나뿐이었지만 그는 직감적으로 그 건물이 한때 동환이 운영했던 술집 ‘무제’임을 깨달았다. 건물 뒤로 돌아가니 ‘회관’이라는 글자가 남아 있는 간판이 썩어가고 있었다. 바로 그 집에서 동환은 술집을, 형태를 여러번 바꿔가면서 운영했던 것이다. 그는 다시 앞으로 돌아와 계단 입구에 섰다. 일층은 식당이었고 이층은 단체모임이 있을 때 식사를 제공하고 홀을 빌려주는 피로연장이었다. 동환은 그곳에서 결혼식과 피로연을 한다는 내용의 청첩장을 보냈다. 식사를 하면 결혼식에 드는 다른 비용을 안 받는가 싶기도 했지만 도대체 결혼식을 할 만한 장소로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되었는데도 건물 앞에 있을 법한 화환 하나 없었다. 문학이 도로 나오기를 기다리며 십여분을 서 있는 동안 건물에 들어가는 사람은 물론이고 건물에 접근해오는 사람도 하나 없었다. 그는 기다리다 못해 투덜거리며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 중간에 있는 변소문이 열려 있었고 얼지 말라고 틀어놓은 듯한 물이 계단 구석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변소 안은 물론 청결과 거리가 멀었다. 그는 혀를 차며 수도를 야무지게 잠그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문을 열기 전에 그는 마이크 소리를 들었다. 결혼식을 하기는 할 모양이었다. 그는 안에 들어서면서 한떼의 사람들이 안쪽에 테이블을 붙여 길게 만든 자리에 마주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부조금을 받는 접수대가 어디 있나 두리번거리던 그는 종내 찾지 못하고 문학의 곁에 자리를 잡았다. 문학은 언제 준비했는지 카메라를 꺼내 필름을 넣고 있었다. 마이크를 잡은 사람은 음정이고 박자고 하나도 맞지 않는 노래를 한 소절 부르더니, 노래방 반주기계가 없다고 불평하고는 삑삑거리는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신랑 신부는 보이지 않았다. 신랑 신부의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도 없었다. 그는 무럭무럭 치미는 짜증을 삼키면서 벽에 걸려 있는 국기와 국기 곁에 씌어 있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읽고 또 읽었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하객 대부분은 점퍼 따위의 평상복을 입었다. 일하다 온 듯 흙이 묻은 바지를 그대로 입고 온 사람도 있었다. 사오십대로 보이는 여자들 대부분은 미장원에 가본 지 오랜 듯했다. 마이크를 잡았던 사람은 이미 전작이 있는 듯 얼굴이 벌게져서 마이크를 쓸 때보다 더 큰 소리로 노래를 안하겠다는 사람을 혼내고 있었다.
야, 이거 어떻게 된 거냐. 결혼식 하긴 하는 거냐?
그는 문학에게 물었다. 문학은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뭐, 주례도 없고 신랑 신부도 없고 식구도 없고, 무슨 결혼식이 이래.
문학이 그를 돌아보았다. 그를 나무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는 울컥, 하고 감정이 치솟는 걸 눌러 참았다. 참자, 참자. 조금만 참으면 정말 끝이다.
에에, 그럼 지금부터 신랑 신부 입장이 있겠습니다.
느닷없이 얼굴이 거무튀튀한 장사꾼 같은 손님이 마이크를 잡았다. 사람들이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그도 건성으로 박수를 하면서 신랑 신부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안쪽에서 커튼이 걷히면서 동환과 신부가 팔짱을 끼고 나타났다. 동환은 육십년대 영화 속에서 곧바로 튀어나온 촌스러운 신랑처럼 보였다. 빌려입은 게 틀림없는 검은 예복은 상복 같았다. 기름을 발라 넘긴 머리에 바짝 올려맨 커다란 꽃무늬 넥타이도 구질구질한 느낌을 지우지 못했다. 신부는 몸에 꼭 끼는 드레스를 입고 한 손에는 손수건을 움켜쥐고 있었다. 동환은 어색하게 웃고 있었지만 옆에 있는 신부는 울다 나온 듯했다. 검은 눈화장이 번져 있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정말 못 봐주겠다. 그는 문학에게 들릴락말락하게 중얼거렸다. 의자가 끌리는 소리가 났고 신랑 신부가 테이블의 앞자리에 앉는 듯싶었다. 마이크를 넘기느라 귀를 찢는 듯한 소리가 나자 기계를 만질 줄 안다고 자처하는 이들이 앰프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는 소동이 벌어졌다.
마이크는 뭐 하러 써. 그냥 말로 해도 잘 들리는데. 아니, 아무 말도 안 들렸으면 좋겠네.
그는 중계석의 해설자 자리에 앉은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감사합니다. 만장하신 내빈 여러분, 공사다망하신 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멀리까지 찾아와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신랑 염동환군과 신부…… 아니 이거말고. 어, 이건 성혼선언문인데. 응, 이건가보다. 아니다? 그런 건 없다구? 알았어.
그건 분명 동환의 목소리였다. 그는 눈을 떴다. 뜨지 않을 수 없었다.
동환이 자리에서 일어나 마이크를 잡고 사람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만장은커녕 스무 명이나 될까 말까 한 사람들이었다. 동환은 어색하게 웃으며 마이크에 입을 댔다.
그냥 하겠습니다…… 동호야, 고맙다. 성만아, 고맙다. 제수씨, 고맙습니다. 용식아, 장사 잘돼가지. 그리고, 저, 두만이 형님, 형수님, 애기 잘 크지요.
그런 식으로 동환은 사람 하나하나를 호명하며 인사를 했다. 인사를 받은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거나 어색하게 웃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환과 한동네에 사는 사람들인 듯했다. 그의 차례가 다가올수록 그는 왜 자신이 긴장하는지 몰라 화가 났다.
문학아, 응, 바쁠 텐데 서울에서 일부러 여기까지 와줘서 정말 고마워.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옥아, 기옥아.
그는 고개를 숙였다. 그냥 지나가주었으면 했는데 동환은 계속 그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는 할 수 없이 고개를 들었다. 동환이, 들릴락말락한 목소리의 동환이, 마이크가 아니면 들리지도 않을 목소리의 동환이, 육십년대 반공영화의 간첩용의자 같은 차림의 동환이, 애타게 그를 불렀다. 그는 고개를 들어 웃어주었다. 동환은 안심하는 듯한 표정이 되었다. 문학의 카메라에서 플래시가 터졌다.
네가, 네가 정말로 제일 고맙다. 난 네가 안 올 줄 알았어. 정말 네가 올 줄 꿈에도 몰랐어. 여기 온 누구보다도 네가…… 네가 와준 게 고맙고 미안하다. 미안하다, 기옥아. 미안해. 기옥아, 고맙다.
그때 신부가 엉엉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그는, 정말 기가 막히는 결혼식입니다, 결혼식입니다, 결혼식이 분명합니다, 하고 소리나지 않게, 아무에게도 아닌 중계를 계속했다. 동환이 몸을 수그려 신부를 달랬다. 사람들은 그것으로 결혼식의 모든 과정을 마친 것으로 간주한 듯, 신부가 왜 우는지 관심도 가지지 않고 음식을 재촉했다.
식어빠진 음식이, 상갓집과 흡사한 차림의, 이를테면 오징어회무침·마른안주·과일·떡이 테이블마다 기본으로 제공되고 상갓집에서는 나올 수 없는 삼겹살이 구워지기 시작했다. 신부는 계속 울었다. 결국 몸부림치며 일어나 원래 있던 신부 대기실로, 그런 게 정말 있는지 그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나중에 그게 반대편 계단의 여자 화장실임을 알게 되었다, 갔다. 동환은 신부를 따라갔다. 그는 회무침을 집었다. 눈물이 나도록 짜고 시었다. 그는 컵에 있는 술을 몽땅 마셨다. 문학은 동환을 따라갔다. 그는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피로연장에 앉아 자작으로 맥주컵에 술을 따라 마셨다. 그것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서너 잔을 마셨을까.
이윽고 좌석 중간에 앉아 있던 사내 하나가 그에게 다가왔다. 장화를 신고 축사에서 나는 냄새를 풍기는 사내였다.
“형씨, 서울에서 왔소? 나도 옛날에 서울에 몇번 갔다왔는데. 멀리서 왔네요. 서울 참 좋지요?”
그는 손을 흔들며 아니라고, 지옥 같다고 대충 말해주었다.
“나는 저, 동환이하고 학교 동창인데요. 형씨는 동환이하고 무슨 관계요?”
그도 술을 마시긴 했지만 사내의 온몸에서 풍겨나오는 술냄새를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매일 술에 절어 사는 사람 같았다. 그는 자신도 동창이라고 대답했다.
“동창요? 어느 학교 나왔어요? 동환이는 국민학교밖에 안 나왔는데요. 중학교 때 중퇴했잖아요. 아버지가 부도내고 자살해가지고. 중학교 동창이요?”
그는 초등학교 동창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사내는 그 옆에 털썩 앉았다.
“아, 그럼 나하고 동창이네. 말 놔야지, 동창끼리. 나는 이십삼회다.”
그는 자신이 몇회로 졸업을 했는지 잠시 생각해보았다. 그는 이십일회였다.
“나는 이십일횐데. 우리는 말 놓을 사이가 아닌 것 같네요.”
사내는 그의 앞에 놓여 있는 종이컵에 소주를 따라 벌컥벌컥 들이켰다.
“아, 동네에서 한두 해 차이가 날 수도 있는 거지, 뭘 그런 거 가지고 까탈을 부리나. 서울내기들은 깍쟁이라더만 정말 그러네. 자, 내 잔 받어, 인마.”
그는 의자를 뒤로 밀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서슬에 맥주병이 넘어지며 상 아래로 떨어져 굴렀다. 그러자 사내는 그걸 공격신호로 알았는지 웃도리를 벗어젖혔다.
“이 새끼가, 아까부터 아니꼽게 혼자 잘난 척하고 앉아가지고 내 부아를 지르더니만. 동환이 그 새끼가 우리는 사람으로도 안 보이나. 너한테만 특별히 고맙다고 하는 이유가 뭐야, 도대체.”
그는, 이유를 모른다, 우리는 이유 같은 건 모르고 산다고 말했다. 말하면서 맥주병을 내리쳐 깨뜨리는 이유도 알지 못했다.
동환과 문학이 달려나와 그를 얼싸안았다. 그는 이 새끼들, 다 덤비라고 발광을 하면서 아래로 끌려나왔다. 자신이 왜 그러는지 정말 알 수가 없었다.
계단 아래에서 문학이 담배에 불을 붙여 그에게 건넸다. 그는 평소에 피우지 않는 담배를 받아들었다. 기침도 하지 않고 담배연기를 빨아들였다 내뿜었다. 동환은 우두커니 서서 하늘을 보고 있었다. 문학이 그에게 나직하게 경위를 말해주었다.
동환이가 마누라하고 혼인신고를 했는데 신고한 김에 결혼식을 해서 부조금 들어오면 그거 모아가지고 장사 밑천이나 하자고 그랬대. 그런데 온 손님들이 너무 적어서 적자가 났어. 식당에도 돈을 줘야지, 손님들 먹고 조지지, 노래방 기계 빌려오라고 난리지…… 제수씨가 우는 게 그것 때문이래.
그는 동환에게 소리를 질렀다.
야, 이 새끼야. 너 이게 뭐라는 건지 말 좀 해봐. 너 뭐 하는 놈이야. 뭐야, 이거. 뭐냐고. 이럴려고 나보고 오라고 했어?
동환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그의 손을 잡으며 들릴락말락하게 말했다.
나, 나 말야,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어.
동환은 울기 시작했다. 자유? 자유롭게? 잘해주고 싶었던 게 아니고? 그는 의혹과 경이에 찬 눈으로 동환을 보고 있었다.
동환은 제 무릎을 끌어안고 비죽비죽 울었다. 울음소리 역시 들릴락말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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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시인 백낙천(白樂天, 772〜846)의 「비파행(琵琶行)」에 나오는 구절 “同是天涯淪落人”에서 인용. 다음 구절은 “相逢何必曾相識”인데 대략 번역하면, “모두 다 아득히 먼 곳을 떠도는 외로운 사람 어쩌자고 서로 만나 알게 되었는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