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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천운영 千雲寧
1971년 서울 출생.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작품으로 「바늘」 「숨」 「유령의 집」 「등뼈」 「당신의 바다」 「행복 고물상」 등이 있음. hangomm@hanmail.net
눈보라콘
어머니가 오신다.
잔교(棧橋)를 건너 남항동 철공단지를 나와 신선국민학교 높은 담을 따라 지금 집으로 오고 있다. 낡은 차들이 검은 연기를 쿨럭이며 겨우 올라오는 가파른 길을 어머니는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사뿐사뿐 올라온다. 고무작업복과 머릿수건이 담긴 보자기를 들고, 신선동으로.
부산시 영도구 신선동. 신선이 살았다고 믿기에는 너무 낡고 더러운 곳이다. 옹색한 집들로 향하는 좁은 골목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요한 악다구니가 이어지고, 악다구니가 끝나면 사내아이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거나 벌거벗은 여자들의 사진을 돌려보고, 아이들이 사라지면 쥐들의 차지가 되는 동네.
나는 악다구니와 벌거벗은 여자들과 쥐들의 골목을 나와 담 위에 앉아 시시각각 다른 빛이 되는 항구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낸다. 때로 선박 아래에 이는 흰 포말과 잠루(岑樓)에서 반짝이는 싱싱한 금속성 눈부심을 보기도 하고, 해안을 따라 자리잡은 상점과 술집 들이 그려내는 주홍빛 소묘를 보기도 한다. 그리고 항구가 완전히 어둠에 잠기면 어김없이 담 위에 올라앉아 집으로 돌아오는 어머니를 기다리는 것이다.
내가 앉아 있는 콘크리트담은 산의 목언저리까지 바락바락 기어오르는 판잣집들과 고갈산을 가르는 경계선이다. 담이 최후방어선이라도 되듯 산은 더이상 집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저 혼자 숲을 이룬다.
손을 뻗어 보안등 스위치를 올린다. 보안등을 켜기 위해 이곳까지 올라오는 사람은 없다. 흐린 불빛을 찾는 것은 고개를 쳐들고 몰려드는 날벌레들뿐이다. 벌레들의 날갯짓에 불빛이 흔들린다. 불빛이 흔들릴 때마다 나도 흔들린다. 내 마음은 이미 어머니의 부드럽고 깨끗한 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어머니는 망치를 들고 선박의 녹 떼어내는 일을 하지만 아직까지 싱싱하고 부드러운 손을 갖고 있다. 그건 어머니가 녹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녹을 이해하는 것은 얼음을 이해하는 것과 같다고 어머니는 말하곤 한다.
곡괭이를 꽂으면 쩡, 얼음 갈라지는 소리가 나. 갈라진 틈에 곡괭이를 몇번 더 질러넣고 망치질을 하면 조각조각 떨어지는 녹덩이를 볼 수 있단다. 무턱대고 망치를 휘두르면 표면만 바스라져. 얼음도 그렇지 않니? 막 내린 눈과 사람이 밟아 단단해진 눈을 치우는 건 다르거든. 녹꽃은 살짝 긁어내야 하는 거야, 성긴 눈처럼. 끌로 긁어내면 사박사박 눈 밟는 소리가 나. 파도가 만든 녹덩이는 얼음을 가르듯 일격에 금을 내야 해. 무조건 두들겨팬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 차가운 것일수록 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법이란다.
나는 녹을 설명하는 어머니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좋아한다. 영도로 시집와 십여년을 살았는데도 어머니는 부산 말을 쓰지 않는다. 특히 녹과 얼음을 말할 때 어머니 목소리는 저절로 흘러나오는 꽃향기나 음악처럼 그윽하게 퍼진다. 그것은 공기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소리가 아니라 한입 베어문 아이스크림처럼 목젖을 간질이며 내 속 깊은 곳으로 흘러들어온다. 그 웅숭깊고 달콤한 목소리가 좋아 몇번이고 얼음 이야기를 해달라고 어머니를 조르게 된다. 그렇다고 내가 어머니의 말을 모두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두껍게 앉은 얼음덩이를 깨어본 적이 없다. 처마끝에 매달린 고드름이나 소복이 쌓인 눈을 만져보지도 못했다. 그것은 내가 신선동에서 태어나 신선동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신선동에 함박눈이 내리는 것은 십몇년에 한번쯤이나 있을까. 눈이 내려도 바닥에 닿자마자 녹아버리거나 다음날 아침이면 시침을 뚝 떼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일쑤여서 눈 덮인 신선동을 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중학생이 되도록 나는 눈사람을 만들어보지 못했다. 신발이 젖을 만큼 눈을 밟아본 적도 없다. 어머니가 끌로 긁어내는 녹꽃의 사박거림은 언제 들을 수 있을까.
어머니는 산복도로 횡단보도 앞에 서서 저녁 찬거리를 꼽아보고 있을 것이다. 지금 내려가면 중복도로 즈음에서 어머니를 만나 손을 잡고 집에까지 걸어 올라올 수 있다. 이제 담에서 내려 어머니를 맞을 시간이다. 바지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어머니가 오는 곳으로 향한다.
신선미용원 앞에 소녀가 서 있다. 소녀의 손에는 아이스크림이 들려 있다. 점집 가시나, 사람들은 소녀를 그렇게 부른다. 국민학교 때 같은 반인 적도 있지만 말은 해보지 못했다. 어깨 위에 동자보살을 얹고 영도다리 밑에서 점집을 하는 어머니 때문에 아이들은 소녀와 친구가 되려고 하지 않았다. 소녀 또한 까불거리는 아이들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듯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혼자 다니곤 했다. 소녀는 어머니와 함께 매일 밤 고갈산을 올라 기도를 드린다. 내가 담에서 내려오면 소녀가 담을 차지하고 다 녹은 아이스크림을 핥거나 붉은 사탕 따위를 오물거리며 점쟁이 어머니를 기다리기 시작한다.
소녀가 아이스크림을 베어문다. 움푹 패는 것을 보아 오래 들고 있었던 모양이다. 소녀는 일부러 내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아이스크림 포장지를 벗기는지도 모른다. 소녀의 입가에 묻은 하얀 아이스크림을 슬쩍 올려다본다. 손등 위로 아이스크림이 녹아내린다. 녹은 아이스크림이 팔뚝을 타고 흘러내리는데 소녀는 혀끝을 살짝살짝 댈 뿐 서두르지 않는다. 오히려 그걸 보는 내가 안타까이 아이스크림을 훔쳐보며 침을 삼키게 된다. 밭게 침을 삼켜도 혀 아래에서 자꾸 침이 솟아오른다.
소녀의 손에 들린 것은 부라보콘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부라보콘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부라보콘은 내가 태어난 1970년 4월에 출시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적인 아이스크림과 나이가 같다는 사실만으로도 부라보콘을 운명적으로 여기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부’ 하고 입술을 부딪쳐 입안의 공기를 밀어내다가 입천장에 혀끝을 딱 붙이며 ‘콘’ 하고 마무리짓는 부라보콘의 발랄하고 향긋한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 운명적인 이름을 몇번이고 발음해보았다. 그 순간 강력한 승리감에 몸의 가닥가닥을 휘어잡힌 채 부라보콘에 빠져버리고 만 것이다.
내 이름은 용수다. 표용수. 그 이름은 발음하기도 어렵거니와 부라보콘처럼 명쾌하지도 매혹적이지도 않은 시시한 이름이다. 내 이름을 지은 아버지는 이발소에서 바닥을 쓸거나 머리를 감겨주는 보조이발사였다. 3,4분이면 꼬마녀석들의 머리를 깎아내는 이발사 밑에서 잔일이나 하던 아버지의 꿈이 이발사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한자사전까지 빌려와 바리깡을 손에 든 채 만들어낸 이름이 바로 ‘용수’였다. 얼굴 용(容), 지킬 수(守). 얼굴을 지킨다, 아버지에게 그보다 더 좋은 이름이 있었을까?
아버지는 내가 태어난 지 이태 만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용수라는 이름에 아버지의 꿈이 주술처럼 남아 내 삶을 강요하지는 않을까 두려워지곤 한다. 그러나 나는 이발사가 되거나 얼굴을 지키는 일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죽은 아버지나 이름이 나를 구속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오직 부라보콘만이 내 운명에 관여할 수 있는 존재였다.
내가 부라보콘에 빠져든 것은 이름 때문만이 아니다. 부라보콘은 결단코 최고의 아이스크림이라 부를 수 있다. 훌훌 벗겨내는 비닐포장지의 삼강하드나 사카린과 색소를 적당히 섞어 만든 아이스께끼의 싼 맛과는 질적으로 다른 최고의 아이스크림.
소녀는 왜 최고의 아이스크림을 몰라보고 저렇게 들고만 서 있는 걸까. 소녀를 밀쳐내고 부라보콘을 빼앗고 싶다. 진정 부라보콘을 사랑하는 자만이 그걸 먹을 자격이 있는 것이다. 나는 자리에 우뚝 서 부라보콘을 훔쳐먹는 상상을 한다. 눈을 감는다. 부라보콘이 내 손에 있다.
전체를 휘어잡게 만든 원뿔형의 부라보콘은 냉정한 육체를 가졌다. 그러나 내가 손에 쥐는 순간 그 차가운 몸뚱이는 뜨거운 잔상을 남기며 맹렬히 안겨온다. 표면에 생긴 물방울이 손금 사이사이로 스며들면 다른 손바닥에도 슬그머니 땀이 찬다. 비밀의 문을 열듯 조심스럽게 옷을 벗겨낸다. 돋을새김이 되어 있는 콘의 표면은 소름이 살짝 돋은 발가벗은 여자의 몸처럼 안쓰럽기까지 하다. 아이스크림의 질감을 훼손하지 않을 정도로 바삭바삭하면서 촉촉한, 그 어떤 콘도 따라올 수 없는 아슬아슬한 균형감각. 나는 부라보콘 맨살을 아주 세심히 쓰다듬는다.
뚜껑에 붙은 아이스크림에 혀끝을 살짝 대어본다. 혀의 돌기마다 전해오는 감칠맛에 나는 안달이 난다. 빨리 나를 먹어봐, 부라보콘은 달콤하게 속삭인다. 유혹의 손길을 뻗는 부라보콘을 보란듯이 한입 크게 베어물고, 빨리 그 몸 구석구석을 파고들고 싶다. 하지만 성급하게 굴지 않는다. 목구멍을 뜨겁게 달구며 내 혀를 부추기는 욕망이 자라나도록 그냥 둔다. 그것이 점점 더 살이 올라 목구멍과 가슴 한복판을 지나 복사뼈를 짓누를 때까지 참고 견디며 포장지에 붙은 미세한 아이스크림을 샅샅이 빤다. 그러면 부라보콘은 제 몸을 촉촉이 풀어내며 봉긋 솟아오르게 된다. 이제 가장 탐스러운 부분에 이빨을 들이댈 때다. 살 속 깊숙이 이를 박으면 나를 짓누르던 욕구가 순식간에 방출되며 화사한 황홀경이 찾아온다. 입천장을 뜨겁게 후려쳤다가 부드럽게 목젖을 통과하고 종내는 말간 침에 의해 단 기억이 지워지는 일련의 과정. 천천히 그러나 격정적으로 부라보콘의 몸을 탐한다. 초콜릿이 살짝 묻은 꼬랑지가 남을 때까지. 손가락 한마디쯤 되는 부라보콘 뿔을 입에 넣는 순간 정신의 한 부분이 내 몸을 이탈해 무한한 공간 속으로 빨려가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머니의 젖꼭지를 입에 물고 있는 듯 편안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아쉬우면서도 만족스러운 마지막 한입. 그 허망하면서 풍만한 달콤함.
별안간 사타구니가 뜨뜻해져온다. 팬티가 축축하다. 녹은 아이스크림처럼 미끈미끈한 액체가 허벅지를 스친다. 동년배에게 기습을 당해 흘리는 당혹스럽고 부끄러운 코피처럼 끈끈하고 불쾌한 감촉. 순간 서늘한 기운이 아랫도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부르르 몸이 떨리고, 얼굴이 홧홧해져온다. 눈을 뜬다.
소녀는 아이스크림을 반쯤 남겨두고 있다. 거의 매일 소녀와 마주치게 되는 것이 영 불편하다. 반바지 아래 드러난 가느다란 허벅지와 동그랗게 솟은 무릎과 손에 들린 부라보콘도 편하지가 않다. 소녀는 왜 꼭 부라보콘만 먹는지, 아이스크림이 녹도록 놔두다가 왜 내가 나타나야 포장지를 뜯는지. 부라보콘을 들고 내게 시선을 떼지 않는 소녀의 당돌한 눈에 주눅이 들고 만다. 빨리 소녀에게서 벗어나고 싶은데 꿈쩍도 할 수 없다. 무언가 거대한 힘이 내 발목을 움켜쥐고 있는 듯하다.
될 수 있는 한 자연스럽게 보이려 애를 쓰며 심상한 표정으로 소녀 곁을 지나간다. 아주 서투르지는 않다. 골목을 돌아 안전한 곳에 이르러 소녀를 본다. 소녀는 엉덩이를 빼고 언덕길을 올라가고 있다. 그 씰룩거리는 엉덩이가 나를 조롱하고 있는 것 같다.
어머니가 집에 도착했는지도 모른다. 물매 싼 내리막길을 달리기 시작한다. 빨리 어머니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 부라보콘처럼 달콤한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보송보송한 눈과 사박사박 눈 밟는 소리에 대해. 그러나 속력을 낼수록 어머니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날벌레들의 날갯짓 소리만 귓가를 서성인다.
어머니가 오신다, 어머니가 오신다. 좁은 골목을 내달리며 줄곧 그 생각만 했다.
항구는 쇠 두드리는 소리와 벌건 쇠똥으로 가득 차 있다. 까마득하게 높은 곳에서 어머니는 나무 비계를 타고 망치질을 한다. 하루 아홉 시간 배 옆구리에 매달려 망치질하는 품삯으로 3800원을 받는다. 제일 오른쪽에 매달린 사람이 어머니라는 것을 나는 단박에 알아본다. 고무 작업복 속에 숨겨진 가느다란 허리와 유연한 팔놀림은 어머니만이 가질 수 있다.
녹이 떨어져나간 배는 심한 피부병을 앓고 있는 괴물 같다. 깡깡이 아지매들이 녹을 다 떼어내면 흰 옷으로 갈아입고 오호쯔끄해나 남태평양으로 항해를 떠나게 된다. 어머니는 녹을 다 제거할 때까지 배 옆구리에 포박당한 채 쉬지 않고 망치질을 해야 한다.
어머니 옆에 있는 사람은 하봉의 어머니이다. 하봉은 고개를 바짝 쳐든 채 손나발을 하고 엄마를 부르고 있다. 하봉의 목소리는 망치질 소리에 묻히고 만다. 어머니들은 해가 질 때까지 배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점심을 먹거나 오줌을 눌 때조차 줄을 타고 선박 위로 올라가 허겁지겁 일을 본다. 그걸 알면서도 하봉과 나는 학교가 파하자마자 어머니가 일하는 남항동으로 달려간다. 그래야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것처럼 책가방을 둘러멘 채 타박타박 그곳으로 가 어머니를 올려다본다. 그리고 난폭하고 수선스러운 괴물의 정강이를 걷어찬 후 어머니를 구해내는 상상에 빠지곤 하는 것이다.
하봉이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영도다리로 발걸음을 돌린다. 언제 어머니를 불렀냐는 듯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초생달만 외로이. 남항동을 지날 때마다 영도다리를 건널 때마다 자갈치 시장을 구경할 때마다 하봉은 제목도 모르는 그 노래를 불렀다. 하봉이 아는 부분은 그 구절뿐이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용수야, 니 영도다리를 받치고 있는 기 뭔지 아나?”
하봉이 갑자기 노래를 멈추고 물어왔다. 나는 어머니의 잔허리가 아른거려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다리지 뭐꼬?”
“바로 담치다.”
하봉의 허풍이 시작되었구나. 나는 이똥이 덕지덕지 앉은 하봉의 앞니를 흘끗 쳐다보고는 고개를 돌려버린다.
하봉은 축농증이 심해 입을 헤벌리고 다니는데다 하는 짓도 되통스러워 친구들에게 면박을 당하곤 한다. 그런 친구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하봉은 종종 허풍을 친다. 허풍쟁이 하봉이라지만 영도다리에 대해서만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영도다리 부양장치 기사로 일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그에게 영도다리는 일종의 우상이었다. 영도다리에 대해서라면 누구도 그를 대적할 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영도다리 박사라 해도 담치가 다리를 받치고 있다는 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니는 그 조깬한 담치가 다리를 받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내사 잠수부한테 직접 들은 얘기다! 잠수부가 안전검사 한다꼬 호스 끼고 안 들어갔나. 근데 다리기둥 가운데 틈이 보인다 아이가. 눈구녕 대고 자세히 들여다보니까 시커머이 뭐가 박혀 있더라 이 말이다. 그게 바로 팔뚝만한 담치라 안카나.”
“니 팔뚝만한 담치 봤나, 니는 와 맨날 이상한 소리만 주와갖고 다니노? 니가 원캉 이상한 소리만 하니까 아덜이 싫어하는 거 아이가!”
“거짓말 아이라카이! 내도 첨엔 안 믿었다. 근데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라카드라. 첨에는 어떻게 빼볼까도 했는데, 그랬다가는 다리가 무너지게 안 생겼나. 그래서 새끼치고 살라고 내버려뒀다 아이가. 진짜다. 대교다리 지은 거 보믄 모르겠나? 담치가 죽아뿌믄 다리 무너질까봐, 그래서 대교다리 지은 거라 이 말이다. 영도다리도 곧 없어진다 안카드나.”
하봉의 목소리는 단호하다. 더이상 하봉과 얘기하고 싶지 않다. 다리 한가운데 잠시 걸음을 멈추고 교각을 내려다본다. 정말 커다란 담치가 살고 있을까? 내가 밟고 있는 것이 콘크리트가 아니라 검은 담치일까. 어선 한 척이 영도다리를 빠져나와 자갈치시장 선착장으로 향하고 있다. 매캐한 연기가 바람을 타고 코끝을 스쳐지나간다. 나는 침을 가득 모아 바다를 향해 뱉는다.
하봉이 다시 흥얼거리며 걸음을 재촉한다. 대형화물차가 지날 때마다 다리는 움찔움찔 놀라며 몸을 비튼다. 서로 티는 내지 않고 있지만 우리는 조금씩 긴장하고 있다. 오늘은 하봉과 할 일이 있다. 배를 타고 자갈치시장으로 건너가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다른 때 같으면 왕복선을 타고 자갈치시장으로 가 곰장어 껍질을 벗기는 능숙한 손놀림의 일꾼들과 배배꼬인 곰장어 맨살을 보거나, 낚싯줄을 드리우고 깡소주를 먹는 아저씨들을 기웃거리다가 돌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며칠 전부터 계획한 것을 실행해야 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하봉과 함께 광복동 거리를 걷는다. 광복동에는 남항동의 소란스러움과는 전혀 다른 분주함이 있다. 무언가 붕 뜬 것 같기도 하고 유쾌한 웃음소리가 까르르 튀어오를 것 같은 거리. 하봉과 나는 차와 사람이 뒤섞인 광복동 도로를 훑으며 느리게 걷는다.
가능한 나이든 운전사여야 한다. 너무 늙어서도 안된다. 젊은 여자손님이 타고 있으면 더욱 좋다. 차가 밀리기 시작한다. 좋지 않은 징조다. 발빠른 하봉이 작업할 택시를 벌써 점찍었는지 내게 턱짓으로 신호를 보낸다.
막 횡단보도를 지나 속도를 올리려는 택시 쪽으로 하봉을 슬쩍 밀치면서 우리의 계획은 시작된다. 하봉이 절묘하게 택시 앞으로 넘어진다. 하봉의 왼발이 택시 앞바퀴에 끼여 있다.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운전사가 차에서 내리는 순간 하봉이 울음을 터뜨리고 사람들이 모여든다. 앞머리가 벗겨진 늙은 운전사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 있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선박 밑에서 엄마를 부르듯 엄마를 외치며 우는 하봉의 연기는 정말 대단하다. 발을 움켜쥔 채 눈물콧물을 짜내는 모습이 정말 발을 다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러나 나는 하봉의 발이 괜찮다는 것을 안다. 하봉은 일부러 앞창이 긴 형 신발을 신고 왔다. 차바퀴가 발등을 올라탄 것이 아니라 단지 신발부리만 밟았다는 사실을 운전사나 구경꾼들은 모르고 있다.
병원에서 사진을 찍는 동안 나는 택시 앞자리에 앉아 기다린다. 팬티만 입고 오토바이를 탄 가슴 큰 여자가 내 쪽을 향해 혓바닥을 내밀고 있다. 여자의 맨발 밑 달력에는 사흘마다 한번씩 빨간 동그라미가 쳐져 있다. 달력대로라면 이 늙은 운전사는 휴일 다음날 어린아이의 발을 깔아뭉개는 일진 사나운 날을 맞은 셈이다.
거스름돈 주머니에서 동전 몇개를 꺼내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택시로 돌아온 운전사는 전화번호를 적은 쪽지와 천원짜리 지폐 몇장을 하봉에게 건네주며 몇번이고 괜찮으냐 물어왔다. 택시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에 우리는 전화번호 쪽지는 버리고 돈만 집어넣는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었지만 언제까지 이 짓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왜소한 하봉의 몸집을 감안하더라도 우리가 중학생인 걸 알면 어떤 운전사도 쉽게 넘어가주지는 않을 것이다. 번잡한 분식점에 가서 내지도 않은 지폐의 거스름돈을 달라고 우기거나 백화점 창고에서 훔쳐낸 스케치북을 아이들에게 몇푼 받고 파는 것도 국민학교 때나 가능한 일이다. 중학생이 되는 것은 의심받기 쉬운 나이가 된다는 것이다. 세 명만 모여도 가게주인들은 의심의 눈초리로 우리의 주머니를 살피곤 한다.
또또문방구로 달려가 하봉은 판박이 나이키 스티커를, 나는 점찍어놓은 샤프펜슬을 산다. 흔들기만 하면 심이 나오는 신형 모델이다. 아이스크림 냉동고 앞에 선다. 하봉은 폴라포를 집는다. 올 여름 출시된 폴라포는 얼음 알갱이가 들어 있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냉동고에는 폴라포를 비롯해 포포포 파사삭 등 비슷비슷한 빙과류가 대부분이다. 색소가 지나치게 많이 들어간 정체불명의 얼음과자에는 관심이 없다. 나는 눈보라콘을 집는다. 아직 부라보콘 살 돈은 남아 있다. 부라보콘 가격이면 눈보라콘 두 개를 먹을 수 있다. 가격 때문이 아니더라도 물론 눈보라콘을 택했을 것이다.
눈보라콘은 부라보콘에 가장 근접한 콘이다. 나는 부라보콘을 먹는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눈보라콘을 먹는다. 원뿔 모양의 콘을 두 손으로 꼭 쥐었다가 껍질을 벗기고 맨 위 땅콩 한알을 이빨로 조심스럽게 들어낸 다음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눈보라콘은 내게 부라보콘의 달콤함과 하얗게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동시에 맛보게 해준다. 그리고 어머니의 녹꽃 긁는 소리도 듣는다. 사박사박.
하봉은 벌써 폴라포를 다 먹어간다. 하봉에게 아이스크림은 중요하지 않다. 하봉을 붙들고 있는 것은 오직 나이키 스티커뿐이다. 다리미로 꾹꾹 눌러붙인 나이키 상표는 두 번만 빨아도 떨어지기 마련이지만, 하봉은 나이키와 가장 비슷한 스티커를 구하기 위해 영도다리 건너 문방구까지 샅샅이 훑고 다닌다. 하봉은 필통이나 도시락, 가방, 공책까지에도 나이키를 그려넣는다. 아무리 가짜라고 놀려도 개의치 않고 꾸준히 그려대는 하봉의 모습은 신념에 찬 선각자로 보일 정도다. 하봉은 조금 남은 폴라포를 입에 털어넣고 스티커를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진짜랑 똑같제?”
“우예 이게 똑같노? 니는 눈도 없나?”
“그래도 나이키 아이가, 아무것도 없는 거보다 안 났나? 역시 또또문방구에서 파는 게 진짜랑 제일 똑같다. 그렇제?”
“진짜 나이키는 이렇게 안 얇다. 끄트머리는 또 너무 올라간 거 아이가. 파이다.”
“니 진짜 나이키 있나? 있지도 않으면서 니가 우예 그리 잘 아노?”
“암튼 이렇게는 안 생겼다. 어차피 짜가 갖고 뭘 그라노!”
“그라믄 니는 와 눈보라콘을 묵노? 묵을라믄 부라보콘을 묵어야제.”
“눈보라콘은 부라보콘하고 똑같다. 니도 묵어보믄 알 거 아이가, 폴라포하고는 질적으로 다르다 이 말이다. 니가 뭘 안다고 자꾸 까부노?”
눈을 부릅뜨고 윽박질러서 하봉의 입은 막았지만 찜찜한 기분은 어쩔 수 없다. 하봉의 말도 틀리지는 않다. 아무리 눈보라콘이 부라보콘과 비슷하게 생겼어도 부라보콘을 따라갈 수는 없다. 서걱거리는 아이스크림의 질감하며 허여멀건 콘 과자 색깔부터가 다르다. 조악하게 흉내낸 해태상표나 빨간색 파란색 하트모양도 부라보콘보다 어둡게 인쇄되어 있다. 초콜릿도 들어 있지 않은 아이스크림이 어찌 부라보콘이라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눈보라콘을 좋아한다. 눈보라콘 속에는 부라보콘을 향한 욕망과 열망이 들어 있다. 눈보라콘도 나처럼 부라보콘을 숭배하고 있는 것이다. 눈보라콘이 부라보콘의 대용물밖에 될 수 없겠지만 그래도 눈보라콘에는 다른 가짜들과는 구분되는 무언가가 분명히 존재한다. 나는 눈보라콘에게 동지애까지 느낀다.
하봉과 나는 동시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눈보라콘을 먹느라 나이키 스티커를 들여다보느라 복천사까지 와버린 것이다.
“우리 한번 들어가볼래?”
하봉이 나이키 상표를 주머니에 넣으며 말한다.
“여긴 미친 중이 안 사나? 안 갈란다.”
절이면 산 깊은 곳에 있어야지 산속도 아닌 중복도로변에 자리잡은 것부터도 그렇지만, 담을 넘어 나온 빽빽한 나무들하며 복천사를 둘러싼 이상한 소문들은 왠지 두렵기도 하고 거부감까지 생긴다. 이 절에는 자기 성기를 꺼내놓고 내 자지만한 것 보았냐고 자랑을 하는 늙은 중이 산다고 한다. 그 늙은 중의 자지는 송도 앞바다에서 방금 잡아올린 개불처럼 큰데다가 살구빛이 돌 정도로 탱탱하더라는 얘기도 들었다. 제일 기분 나쁜 소문은 늙은 중의 작은 골방에서 나오는 소문이다. 그곳은 몸 보시를 받는 곳인데 신기하게도 그 땡추에게 보시한 여자들 중 과부는 시집을 가고 역마살 낀 남편이 돌아오고 입 돌아간 서방은 뛰어다니더라는 얘기가 아줌마들 사이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다. 보시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보지나 자지라는 말과 겹쳐져 몸이 비비 꼬이면서 헛웃음이 나왔다.
“어무이도 보시하믄 아부지가 돌아올까?”
하봉이 절 안을 기웃거리며 중얼거린다. 아무리 땡추가 요술을 부린다 해도 사람을 찌르고 일본으로 도망간 하봉의 아버지가 돌아올 리는 없다. 하봉의 아버지에게 찔린 남항카바레 주인이 아직까지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는 터에 영도로 되돌아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함을 그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봉이 어떻게 도망친 아버지 생각 따위를 하는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
나는 어머니만 있으면 된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어머니의 품에서 잘 수만 있으면. 내게 필요한 것이 더 있다면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를 닮은 부라보콘뿐이다. 어머니의 부드러운 손이 미친 땡추의 커다란 자지를 거머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어느 결엔가 나는 눈보라콘 꼬랑지를 후닥닥 먹어치우고 복천사의 반쯤 열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절 안은 생각보다 훨씬 넓다. 빽빽이 찬 나무들이 빛을 가로막고 서 있어 아직 해가 지지 않았는데도 어스레하다. 바람소리와 새소리만 들릴 뿐 정적이 흐른다. 선연한 주홍빛의 능소화 한 떨기가 담그늘에 서 있는 돌부처의 어깨 위에 내려앉아 있다. 몸통을 기괴하게 꼰 향나무들과 담벼락에 치렁치렁 매달린 능소화가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하봉과 나는 밀치거니 주춤하니 하면서 점점 더 깊숙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소풍 때 통도사나 범어사에서 보았던 탑이나 법고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울창한 나무와 작은 법당이 하나 있을 뿐이다. 법당의 문은 잠긴 채이고 움직임을 느낄 수 있는 그 무엇도 없다. 법당에 매달린 풍경만 간간이 흔들리며 정적을 몰아낸다. 법당 뒤로 돌아 눈을 부라린 괴물들의 그림을 훑어보고 다시 돌부처를 마주할 때까지 산 것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잘 가꾸어진 정원수가 아니라면 이미 오래 전에 버려진 곳이라 여겨질 정도였다.
“별것도 아인 것 갖구 괜히 쫄았다 아이가!”
하봉이 내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한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하봉과 나는 풀어헤쳐진 능소화 줄기에서 꽃을 따기 시작한다. 이유도 없이 키득키득 웃음이 나왔다. 주홍 꽃송이가 축축한 바닥으로 떨어진다. 꽃이 떨어질 때마다 한번도 못 본 중에게 알 수 없는 악의가 솟구쳤다. 땡추새끼, 자지새끼, 보지새끼, 속으로 욕설을 퍼부으며 꽃대를 부러뜨린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손이 닿는 데는 거의 다 따내었을 무렵 갑자기 하봉이 행동을 멈추고 내 옷자락을 잡아 늘어뜨렸다. 나는 이제 막 꺾어낸 탐스러운 꽃송이를 들고 뒤를 돌아본다.
“와 그라노? 미친 중이라도 봤나?”
내가 본 것은 흰 고무신이었다. 흰 고무신 위에 드러난 두툼한 발등과 그 위를 가로지르는 힘줄. 서서히 고개를 들자 품이 넓은 승복바지에 메리야스만 입은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기다란 귓불과 툭 튀어나온 광대뼈, 벌어진 어깨 때문에 큰 키가 더욱 우람해 보인다. 짧은 은회색 머리카락이 아니라면 근육질의 항구노동자라 생각될 정도로 나이를 분간할 수 없는 노인이다. 그리고 가느다란 눈매 가운데 자리잡은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를 보았다. 그 속에서 가까스로 억제하고 있는 불길을 보았을 때, 내가 능소화 꽃을 마구 꺾어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눈앞이 하얘진다. 바람소리만 들린다. 나는 사력을 다해 뛰기 시작한다. 하봉이 내 옷자락을 놓치고 휘청거리며 쫓아오는 것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남항시장에 이를 때까지 정신없이 내달린다. 돼지국밥집을 지나 어묵 튀기는 후끈한 기름솥을 스쳐지나 남항카바레 앞까지 뒤도 안 돌아보고 무작정 뛰기만 한다. 저녁 장을 보는 사람들 속에 숨어서야 가까스로 거친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언제 떨어졌는지 하봉도 보이지 않는다. 도둑질을 하다가 들켰을 때보다 훨씬 숨막히고 긴 도주였다.
집에 도착해서야 그때까지 내가 손을 꽉 쥐고 있었음을 알았다. 손을 편다. 손바닥에는 능소화 한송이가 처참히 짓뭉개져 있다. 비릿한 냄새가 난다.
겨울방학이 시작되었다. 기말고사를 볼 때쯤 국제시장에 큰 불이 났고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이 열리기로 확정되었다. 나는 가으내 키가 부쩍 컸고 겨드랑이털도 생겼다.
그동안 나는 복천사 근처도 가지 않았다. 그쪽으로 지나가야 할 때면 일부러 먼 길을 돌아갔다. 그러나 가끔 흰 메리야스를 입고 붉은 능소화 덩굴로 아랫도리를 가린 늙은 중이 꿈속에 나타나곤 했다. 얼굴은 없고 붉은 능소화만 선연한 중을 볼 때면 매번 내 고추가 움찔거리며 커지기 시작했다. 고추가 움직이지 않도록 의식하면 할수록 애초부터 내 몸에는 그것밖에 없었던 것처럼 아주 엄청나게 커지며 온몸을 장악해갔다.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어 소리도 못 지르고 캑캑거리다가 결국 불쾌하고 축축한 기분으로 잠에서 깨어나곤 했다.
그후로는 모든 게 뒤죽박죽이었다. 더이상 눈보라콘도 사먹을 수 없게 되었다. 심벌즈 때문이었다.
하봉과 나는 국군에게 보낼 위문품이 음악실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고 화장실에 숨었다가 숙직실을 제외한 학교의 모든 불이 꺼지기를 기다려 어렵지 않게 음악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캄캄한 음악실 구석에 앉아 자루에 담긴 세탁비누나 치약 양말 내복 등에서 아이들에게 얼마간 돈을 받고 팔 수 있는 것들을 골라 가방과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더 넣을 수 없을 만큼 주머니가 가득해질 때쯤 어둠에도 익숙해졌다. 여유를 부리며 음악실 내부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때 심벌즈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나는 심벌즈를 처음 보았다. 그것은 먼 외계에서 특별한 전갈을 갖고 온 비행선 같았다. 그것을 본 순간 내가 선택된 인간이라는 강렬한 메씨지가 전해져왔다. 심벌즈는 나를 강하게 끌어당기고 있었다. 홀린 듯 걸어가 심벌즈에 손을 대보았다. 차가운 쇠의 기운이 섬뜩하고 낯설었지만 매혹적인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심벌즈를 들고 가볍게 마주 쳐보았다. 빙그르 돌면서 귓가를 간질이는 차가운 쇠의 유혹. 손끝에 전해져오는 떨림. 어둠의 결을 풀어내는 맑고 경쾌한 진동. 바르르 떨리는 공기의 호흡.
숨이 멎는 것 같았다. 그리고 조금 세게, 점점 더 세게 심벌즈를 마주 치기 시작했다. 외계에서 보내온 전갈은 점점 더 강렬하게 손끝을 잡아당기며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귓가에는 온통 파르라니 떨리는 심벌즈 소리뿐이었다. 몸이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푸른 불빛이 내 눈을 찢고 들어왔다.
나는 당직선생에게 뒷덜미를 세게 움켜잡힌 채 당직실로 끌려갔다. 음악실을 나오면서 혼자 나뒹굴고 있는 심벌즈를 보았다. 풍금 뒤에 숨은 하봉의 옷자락도 보였다. 무릎을 꿇고 어머니를 기다리는 내내 내 귓가에는 심벌즈 소리만 울렸다.
파랗게 질린 어머니의 얼굴을 맞닥뜨리고 나서야 심벌즈 소리가 멎었다. 그때까지 나는 현실세계가 아닌 먼 우주공간을 날고 있었던 것 같다. 교문을 나서서 집에 도착할 때까지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침묵이 슬픔 때문인지 화가 났기 때문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다만 내 어깨를 짚은 어머니의 손이 심하게 떨리고 있다는 것만 느껴졌을 뿐. 어머니는 목도리를 벗어 벽에 걸고 나서야 어정쩡하게 서 있는 내게 시선을 주었다. 그러고는 오랫동안 생각해왔고 지금이 아니면 안된다는 듯 확실하고도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아버지가 계셨으면…… 말끝을 흐리긴 했지만 그 말은 내 심장 깊숙이 와 박혔다. 그것은 내겐 너무 가혹하게 들렸다. 아버지가 계셨으면 내가 그런 일을 하지 못했을 거라는 건지 아니면 몹시 혼이 났을 거라는 건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막연하게 어머니한테 영원히 버림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는 눈보라콘이나 부라보콘을 먹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모든 것은 눈보라콘을 먹기 위한 노력이었을 뿐이니까.
어머니는 요즘 깡깡이 일을 하지 않는다. 새벽에 자갈치시장에 나가 생선 선별작업을 하고 낮에는 신발공장에서 본드칠을 하다가 자정이 되어야 돌아온다. 내가 담 위에 앉아 보내는 시간도 그만큼 길어졌다.
바람이 분다. 바다에서부터 온 찬바람이 고갈산 나무마다에 휘감겨 바삭바삭 마른 이파리를 베어문다. 벽에 부딪쳐 돌풍을 일으키며 나자빠진 바람이 다시 힘을 회복해 내 얼굴을 후려치기도 한다. 바람이 세어질수록 밤 항구의 불빛은 더욱 선명해진다. 수많은 방들이 따뜻한 불빛을 올리는 신선동도 아름다워질 것이다. 광복교회에 매달린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반짝이며 하늘로 솟아오르는 불빛들.
어머니가 일하고 있을 남항동 어디쯤을 바라본다. 어머니의 손은 깡깡이질을 할 때보다 훨씬 더 거칠어지고 있다. 어머니는 이제 산복도로 횡단보도 앞에 서서 저녁 찬거리를 꼽는 대신 다음날 피울 연탄 수를 헤아린다.
눈이라도 왔으면 좋겠다. 흰 눈이 신선동을 덮으면 어머니 마음도 풀어질까? 어머니 손을 잡고 얼음 이야기를 들으며 길을 걸어본 적이 언제였는지. 괜히 검은 하늘에 대고 눈을 흘겨본다. 눈은 오지 않을 것이다, 별들이 수만개의 눈빛을 반짝이며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딱딱한 돌멩이 같은 것이 날아와 머리를 때리고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것은 보안등 아래에서 톡 깨어진다. 동그랗고 붉은 사탕이다. 제수용 사탕. 소녀가 왔다. 소녀는 두 팔을 뒤로 꼬고 보안등에서 두어 발짝 떨어져 나를 쳐다보고 있다. 너무 놀라 하마터면 담에서 굴러떨어져 소녀의 발부리에 코를 박을 뻔했다.
한동안 소녀를 보지 못했다. 수업시간에도 학교 운동장에서 볼을 차다가도 문득문득 소녀가 떠올랐다. 담 위에 앉아서도 영도다리 쪽 불빛만 보면 그 밑에 있을 점집과 소녀가 생각났다. 소녀가 생각날 때면 어김없이 부라보콘의 달콤한 향도 따라 풍겨왔다. 나는 부라보콘을 지워버리려고 더 열심히 볼을 찼다.
담에서 내려가 소녀를 반갑게 맞아야 할지 아니면 소녀의 얼굴을 한대 갈겨주기라도 해야 할지 머리를 굴려본다. 어떻게든 다 이상해 보이는 일이다. 나는 고개를 떨구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자, 무라. 니 이거 좋아하제.”
소녀가 불쑥 아이스크림을 내민다. 부라보콘이다. 눈보라콘인가? 어둠속이라 잘 구분되지는 않지만 원뿔형의 아이스크림 콘이다.
“한겨울에 무신 아이스크림이고, 치아뿌라.”
너무 무뚝뚝하게 말해버리고 말았다. 입을 꼭 다물고 있다가 엉겁결에 내뱉은 말이라 목소리 끝이 갈라지기까지 한다.
“그라믄 그냥 버리뿐다.”
소녀가 앞으로 바싹 다가와서는 아이스크림을 던지는 시늉을 한다. 그렇다고 콘을 덥석 받아든다면 나를 비웃을 것이 틀림없다. 바로 내 앞에 있는 부라보콘을 외면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내도 거기 올리도.”
“가시나가 어디 올라온다고 그라노!”
한참 딴전을 피운 다음 콘부터 받아 조심스레 담 위에 올려놓고 소녀에게 손을 내민다. 소녀는 내 손을 잡고 담벼락에 한발짝 도움닫기를 한 후 어렵지 않게 담 위에 올라앉는다. 소녀의 머리카락이 얼굴을 스쳐지나간다. 어지럼증이 인다. 무슨 말이든 해야 하는데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 나는 앞만 보며 겨우 말을 꺼낸다.
“와 요즘엔 산에 안 가노?”
“이젠 안 간다. 아무리 기도를 해도 안된다 아이가.”
“뭐가 안되는데?”
“울엄마, 동자보살 좀 보내달라꼬.”
“느이 어무이, 동자보살 읎나?”
“원래부터 동자보살 같은 건 있도 않앴다.”
“그라믄 이제 점집 몬 하나?”
“어데! 아부지도 없는데 점집 안하믄 우예 사노?”
“니도 아부지 읎나?”
“지금 감옥 가 있다 아이가.”
“와?”
“가짜 휘발유 만들다 안 잡혀갔나.”
소녀가 아이스크림을 먹기 시작한다. 나도 따라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너무 성급하게 포장지를 벗겨냈다. 아무 맛도 느낄 수 없다. 소녀는 입술로 아이스크림을 빨아먹는다. 소녀에게 부라보콘 먹는 법을 알려주어도 될까. 입술이 아니라 입 전체로 아이스크림을 먹는 법. 포장지를 벗기는 방법부터 꼬랑지에 입을 대고 어머니 젖을 빨듯 마지막 달콤함을 맛보는 법.
“니 가짜 휘발유에 젤 많이 들어간 게 뭔지 아나?”
소녀가 느닷없이 물어왔다. 나는 머쓱해져 부라보콘을 한입 베어물고 대답한다.
“물 아이가?”
후후훗, 짧고 경쾌한 웃음소리가 귓가를 스쳐지나간다.
“그라믄 어떻게 차가 가겠노? 그랬다가는 당장 들통나뿌는데. 그 속에 젤로 많이 들어 있는 거는 진짜 휘발유다. 무슨 얘긴 줄 알겠나?”
머리를 끄덕이긴 했지만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가짜에도 진짜가 들어 있다는 말인가? 진짜로 가짜를 만든다는 얘긴가? 내가 벗겨낸 아이스크림 포장지를 들여다보았다. 부라보콘이 아니라 눈보라콘이다. 여태까지 소녀가 먹고 있던 것이 부라보콘이라는 생각은 잘못이었다. 부라보콘 먹는 법을 소녀에게 알려주려던 생각을 접었다.
“아빠는 가짜 휘발유를 만들고 엄마는 가짜 점쟁이고, 내도 가짜가 아닌가 모르겠다.”
소녀가 이번엔 손으로 입을 가리고 후후훗, 웃는다. 소녀의 손을 잡는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몰캉몰캉하다.
소녀와 나는 아주 오래된 친구처럼 조용조용 얘기를 나누었다. 어머니와 심벌즈와 눈보라콘과 영도다리를 받치고 있는 커다란 담치에 대해. 말을 하지 않을 때에는 손을 잡은 채 항구에 내려앉은 별빛 수를 헤아리기도 했다. 꼭 어머니 손을 잡고 있는 것만 같았다.
신선동에서 마지막 밤이다.
저녁나절에 꾸린 짐이 머리맡에 놓여 있다. 어머니는 짐을 싸면서 많은 것을 버렸다. 내가 쓰던 앉은뱅이책상과 벽돌로 키를 맞춘 낡은 찬장도 치웠다. 내일 아침이면 우리가 덮고 있는 이 이불도 버려질 것이다. 꾸리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살림을 버리면서 어머니는 조금도 아까워하는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약간 흥분한 듯 보이기까지 했다.
어머니는 신발공장에서 만났다는 웬 낯선 남자를 데리고 와서는 내 아버지가 될 거라고 말했다. 손바닥이 유난히 두툼한 그 남자의 꿈은 나이키보다 멋진 신발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그 남자를 보았을 때 위문품을 훔치다 걸린 날 어머니가 내뱉은 말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계셨다면…… 내가 만약 그날 음악실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어머니가 아버지라는 사람을 데리고 오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나는 복천사를 의심했다. 복천사의 불결한 중이 아버지를 끌고 온 것이 틀림없다. 혹시 어머니도 복천사에 갔던 것은 아닐까.
어머니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어머니 손 위에 내 손을 얹어본다. 이제 어머니 손을 잡고 길을 걷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소녀와 담 위에 앉아 눈보라콘을 먹으며 항구를 바라보는 일도 없을 것이다.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소리가 담을 넘어온다. 어머니에게서 몸을 빼고 방을 나온다.
나는 복천사로 향하고 있다. 딱히 무슨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와 짐을 쌀 때까지만 해도 당장 복천사로 달려가 불결한 중에게 비극적인 죽음을 선사하리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하지만 복천사 문앞에 이르자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었다.
문은 안쪽에서 빗장이 질러져 있다. 나는 고양이처럼 몸을 구부리고 복천사 담을 넘는다. 바람이 불 때마다 빽빽한 나무들이 파도소리를 낸다. 털고무신 한 켤레가 놓인 방문 앞에 서서 잠시 숨을 고른다.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옅은 향냄새가 맡아진다. 이불을 턱까지 올리고 자는 중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인다. 어둠은 두렵지 않다. 늙은 중도 두렵지 않다. 나는 중의 얼굴이 선명히 들어올 때까지 머리맡에 서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어둠을 노려보았다.
복천사에서 빠져나오기 전에 담벼락에 붙어 서 있는 돌부처 머리에 오줌을 누었다. 그리고 머리를 딛고 조용히 담을 넘었다. 담을 넘으면서 문득 지난 여름 돌부처 어깨 위에 앉은 주홍색 능소화가 떠올랐다. 내 손에 뭉개졌던 능소화 비린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담 위에 앉아 작별인사를 한다. 신선동의 골목들과 항구의 불빛들에. 항구는 출어를 준비하는 배들의 불빛으로 환하다. 그들은 곧 찬 바다를 따라 올라온 명태와 오징어를 잡으러 바다로 향할 것이다.
볼따구니에 무언가 차고 축축한 것이 와닿는다. 눈이다. 조금씩 흩날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커다란 눈송이가 되어 떨어지기 시작한다. 고개를 들고 눈이 오는 환한 하늘을 올려다본다.
눈 오는 밤 가로등 아래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아라.
한알 한알 불빛을 머금은 눈발이 알전구 주변을 서성이다가 돌연 하늘로 솟구치며 그려내는 파사한 춤사위를 보아라. 그것은 오징어떼를 모으는 집어등의 화사한 불빛이며, 다닥다닥 붙은 산동네 판잣집의 따스한 속삭임이며, 짝을 부르기 위해 점멸하는 반딧불의 처연한 눈부심이다.
그것을 보았으면 눈의 속살을 맛보아야 한다. 차갑게 부딪쳐서는 화끈 녹아내리며 양볼에 홍조를 띠는 눈의 속살. 이내 복숭아 향을 품은 바람이 코끝을 간질이고 따스한 복숭아꽃 이파리가 이마 위에 사뿐 내려앉을 것이다. 귀를 기울이면 계곡을 굽이도는 정아(靜雅)한 물소리 새소리 들리고, 검은 망막 위로 생생한 도원(桃園)의 풍경이 펼쳐진다.
혀를 내밀어 눈을 받는다. 향긋한 냄새와 함께 눈보라콘의 단맛이 느껴진다. 따스하다. 눈보라콘 속에서 나는 늘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