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소설

 

우애령 禹愛玲

1945년 서울 출생. 1993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장편 『행방』 『갇혀 있는 뜰』, 단편 「당진 김씨」 「가로등」 등이 있음.

 

 

 

학자

 

 

“애기 모꺼정 다 죽게 생겼으니 이 일을 워쩌문 좋대유.”

바둑판만한 모판에 옹송거리고 있는 여린 모 끄트머리가 시들기 시작하는 걸 보고 있던 김주사네가 한탄 섞어 내뱉었다. 마을 모임마다 나타나 한 사발 막걸리를 거리낌없이 들이켜고 동네 일 대소에 안 끼는 곳이 없는 할머니였다. 이즈음에는 무릎 아픈 관절통에다 오줌소태까지 걸려 오줌이 나오지 않아 사색이 되기가 일쑤인 터수였다.

큰아들이 엄니 병원에 가봐야 한다고 집에 들를 때마다 노상 채근이지만 그렇다고 어머니를 시원스레 병원에 모시고 가는 것도 아니었다. 무슨 연고인지 아들만 와 있으면 막혔던 오줌발이 거짓말처럼 다시 술술 나오는 바람에 잊고 지내던 것이 날씨마저 원수처럼 가물자 오줌발도 질금거리며 다시 나오지 않게 되어버렸다.

숨이 차게 바쁜 농사철에도 『논어』며 『주역』을 끼고 앉아 있는 김주사는 평정을 찾는 점잖은 선비 티를 노상 내더니만 이번 가뭄에는 두 손 다 들었는지 얼굴에 근심의 기색이 짙었다. 그래도 식자를 쓰느라고 한마디 하기는 했다.

“아, 칠년 가뭄에도 사램들은 살아남게 되어 있는 거여. 호들갑을 떨어봤자 다 하늘이 그 큰 뜻을 품고 있는 것이지. 공자께서도 원래 군자는 어려움을 겪게 마련인데, 다른 점이 있다면 소인배처럼 어려움을 겪게 될 때 사리에 어긋나는 짓은 안헌다구 허셨지.”

하늘을 바라보던 김주사가 뒷짐을 지며 꺼질 듯 한숨을 내쉬더니 마누라가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주섬주섬 뇌었다.

“천제 아들인 환웅이 원래 곰이 변한 여자허구 신단수 아래서 혼례를 올렸잖어. 이게 곧 천신과 지물이 화합헌 것인데 거기서 단군이 태어났잖은가. 하늘과 땅이 잘 화합을 해야 곡석도 잘되는 것인데…… 시상이 이토록 어지러우니 하늘도 노염을 타신 게여.”

“시절이니 하늘이니 그른 소리 이제 그만 신물이 나네유.”

김주사네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뒤퉁그러진 소리가 비어져나왔다. 그동안 하늘같이 섬기려고 애써온 영감이었지만 이제 몸이 시답지 않고 보니 손이 북두 갈고리가 되게 살아온 평생이 억울하기만 했다. 김주사는 마누라의 버릇없는 말투를 달리 탄하지도 않고 쩟쩟 혀를 차더니 돌아서서 집 쪽으로 걸어가며 중얼거렸다.

“이집 저집 할 것 읎이 말세여, 말세.”

뒤를 따르던 김주사네는 꺼뭇꺼뭇 죽어가는 안색으로 있는 힘을 다해 영감을 흘겨보았다.

“그릏게 점잖은 척하고 생전 민족이니 학자니 유세를 허구 살아서 이제 얻은 게 무어유. 마누라 오줌소태나 들어 다 죽게 맨들어놓구 말유.”

김주사는 귀먹은 척을 하는 겐지 못 들은 겐지 쓰다 달다 대꾸가 없이 그저 휘적휘적 걷기만 했다. 길가 옆 밭에서 이제 여물어가는 마늘의 삐죽한 대 끄트머리가 오늘따라 유독 더 휘드레하니 시들어 보였다. 옥수숫대는 벌써 어른 허리께까지 자라오르면서 이 가뭄에도 아직은 청청하게 짙푸른 녹색을 띠고 있었다. 그 곁에 잎새가 너풀너풀 자라나고 있는 담배밭도 겉보기에는 가뭄을 안 타고 제대로 자라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산비탈을 타고 내려오는 논들은 물이 모자라 그동안 한꺼번에 모내기를 하지 못했다. 겨우겨우 하루에 한 단씩 내려오며 양수기를 틀고 밤을 도와 번을 서며 겨우 모를 심어놓았던 터였다. 모를 심어놓은 논바닥도 가뭄에 물기가 바작바작 마르기 시작하는데다가 양수기도 힘을 잃었는지 헐떡거리며 제대로 물을 쏟아놓지 못했다. 삽교천에서 수로를 통해 물을 끌어들인 동리 입구 넓은 논에 모가 찰랑찰랑 잠겨 있는 걸 볼 때마다 김주사네는 똑 자기 자식만 일이 안 풀리는 걸 바라보는 부모 심정처럼 편편치를 못했다.

서산에 나가 청과물 장사를 하는 큰아들은 사는 게 그저 그렇지만 이즈막에는 어째 몸이 신신치 않아 보이고 나이보다 안색도 안 좋은 게 은근히 걱정이었다. 서산에 사는 큰딸은 근근이 살고 있지만 서울로 여읜 둘째딸네는 사위가 벤천가 뭔가를 해서 떼돈을 버는 바람에 이즈막에는 아주 부자가 되었다고 했다. 이제 농사구 뭐구 다 그만 거두고 아들딸들한테 용돈이나 받아쓰며 편안히 살라고 동네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지만 김주사는 사람을 사서 놉을 대어가면서도 농사일에서 손을 놓지 않았다. 마을 안쪽에 자리잡고 있는 김씨네며 박씨네가 일손이 조금 비기라도 할 때면 김주사집 일을 거들어주기도 했지만 김주사네까지 이제 일을 제대로 못해 품앗이도 못하는 터수라 작은 일손 빌리기도 어려웠다.

“아, 무슨 영화를 볼라구 그르시유. 듣자 허니 사위가 당대 발복을 하였다등만 이참저참 서울로 솔가를 허시든지 농사일을 아주 도지루 내어놓구 그 머이냐, 생전 좋아허신다는 그 학문인가 무언가 허시지 멀러 그러구 기신대유, 그래.”

입바른 김씨는 오다가다 김주사를 보면 한마디씩 하고는 했다. 이제 나이 오십이 넘어 삭신이 쑤시기 시작하니 어떤 때는 농사일이 지겨워 죽을 지경이었다. 게다가 작년 장마 때 산사태에 밀려 작은 대로 어엿한 기와집을 반실이나 잃은 후에 정부 보조금을 보태어 텃밭 앞에 조립식 주택을 지은 다음부터 김씨도 너그러운 마음이 줄어들었는지 말말이 곱지를 못했다.

그러지 않아도 양반 티를 내는 김주사가 마누라를 사방 일터에 빼어돌리는 꼴을 평소에 곱지 않게 보던 시선들이 적지 않았다. 이 노인네가 그래도 언젠가는 마을을 빛낼 무슨 터전이라도 닦지 않을까 하고 숨은 기대들도 하다가 이제 보니 온통 방귀 새는 핫바지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지 전에는 하지 못하던 이야기까지 면전에서 막 하기 시작하였다.

“그릏다구 손을 놓을 수는 읎지. 농자는 천하지대본이여. 시대가 악할 때는 기(氣)와 이(理)를 인간이 지배하고 조종하려구 드는 것이거든. 이럴 때 순허게 천리에 순종허는 건 농사밖에 없느니…… 근래 들어 사람덜이 여간 불경해져야 말이지.”

이런 김주사의 말도 이젠 파계한 중의 헛염불 정도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당뇨에 고혈압이 겹쳐 몸이 마련이 없기는 마누라나 실상 다를 바가 없었다. 전에는 그래도 밖에 나올 때면 꼭 옷을 갖추어입고 한여름에도 속옷바람으로 남 앞에 나서는 적이 없다가 이제 기력이 쇠잔해지니 의관을 정제하는 학자 노릇을 하는 것도 힘에 부치는 것 같았다. 동네에서는 김주사라고 부르지만 그것도 어쩌다 별칭처럼 따라붙은 것이지 이렇다 하게 뚜렷한 학문을 인정받은 것도 아니고 어디 가서 무슨 학위나 자격 시험에 합격한 것도 아니었다. 칠십 고개를 넘은 김주사는 원래 이곳 토박이였다. 집안은 가난했지만 어려서부터 총기가 있다는 소리를 들어 지주집 큰사랑채에서 여는 서당에 다니며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지주집 아들하고 둘이 당진읍에 나가 한 몇년 제법 이름있다는 선생 밑에서 한문공부를 해본 것이 제대로 배운 것의 전부였다. 김주사의 평생 꿈은 제도에 얽매이지 않는 진정한 학자가 되어 우리나라의 사상을 새롭게 세우는 것이었다. 그의 넓지도 않은 방안 윗목은 『맹자』며 『논어』 『주역』 『삼국유사』, 이율곡과 이퇴계며 최제우에 관한 책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선비의 도리라는 것이 스스로를 갈고 닦는다는 데 있다고 굳게 믿었다. 평생 벼슬을 하거나 스승이 되어본 적은 없지만 촌 무지렁이들과 자신 사이에 마음의 경계를 그어두고 살아왔다.

전에는 그래도 김주사가 권위있게 공자며 맹자를 들먹거리며 인륜이며 천륜을 찾으면 그런대로 다소곳이 승복하던 기미를 보이던 마을 사람들은 여기저기 안테나가 서면서 텔레비전이 요란스러운 프로그램들을 쏟아내기 시작하자 그의 가르침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이러니 세상이 말세가 되었다는 김주사의 신념은 점점 더 굳어가기만 했다. 우리를 사람답게 해주는 기본 예의는 목숨을 걸듯 지켜야 한다는 신념에 젖은 김주사는 저번에 김씨가 마누라 죽은 지 일년도 안되어 서산 어디에선가 끌고 들어왔다는 이유로 그 집 새아낙 보기를 쓴 외 보듯 해온 터였다. 그러니 김씨 내외도 맞받아 김주사를 보는 눈이 곱기가 어려운 건 정한 이치였다.

대학에서 가르치며 소설을 쓴다는 심선생이 몇해 전 이 골짜기에 빈 농가를 하나 차지하고 드나들기 시작할 때 김주사는 무릎을 칠 듯 기뻐하며 몇번이나 마누라에게 말하고는 했다.

“이제야 이 캄캄한 곳에서 말을 건네볼 사램이 생기는구먼그리여.”

그리고 김주사는 동네 나들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던 평소 성품을 접고, 심선생이 내려올 때면 그 집에 올라가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며 자기가 보아온 세상의 도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주사네 할머니도 심선생이 내려올 때면 묵은 김치며 짠지, 햇열무김치 사발을 들고 드나들었다. 영감이 귀찮게 군 것에 대해 무언가 보상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한 점도 있겠지만 들를 때마다 심선생이 대접하는 막걸리나 소주가 더 입에 당겨서인지도 몰랐다.

“그 원젠가 테레비에서 무슨 교수인가 하는 이가 공자에 대한 이야기를 구성지게 허든데 그려두 내가 보기에는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아주 곰삭게 공자를 이해한 것 겉지는 않드구만유.”

심선생은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쓰다 달다 이야기 없이 그저 너부죽이 웃으면서 김주사에게 술잔을 권하고는 했다. 김주사는 이런 수준 높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 하나만으로도 인생의 숨통이 터진 것처럼 흐뭇해했다.

“대핵교에서두 가르치구 허신다등만 이즈음 젊은이들이 선상님 허시는 말씀을 본질적으루다가 알아들 듣기는 허는가유? 가령 단군에 관한 이야기 겉은 것들에 관심들은 두구 있는지 워떤지…… 그 신화만 이해허믄 우리 민족혼을 이해헌 것이거든.”

심선생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어딜요. 이젠 세상이 하도 바뀌어서 남의 세상에 사는 것 같을 때가 많습니다. 저도 공부를 하노라고 했지만 세상을 따라잡기가 너무 힘들고 뭔가 잘못되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김주사는 잔을 비우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려. 단군신화는 자연에 대해서두 인간에 대해서두 사회에 대해서두 무리가 없이 그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거든. 일테믄 천인합일이지. 아무리 중국 사상이 높다구 해도 우리 주체는 또 찾아야 활로가 보일 거 아닌가.”

“이제 젊은 사람들은 그런 일에는 관심도 없습니다. 단군은 옆집 할아버지만큼도 여기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아두 내가 심선상님을 처음 뵐 때부터 이 사람이면 제법 이야기가 통허겠다 싶기는 허더먼. 다덜 문명이다 뭐다 허믄서 정신없이 달려들 가구 있는데 이릏게 불편을 무릅쓰구 내려와서 생각과 사유에 잠기신 걸 보믄 세상과 인간에 대해 한몫 내다보는 분이구나 싶기두 했지. 『주역』을 보믄 이른 문제덜에 대해 일쯕부터 다 이야기허구 있구먼유. 이른 세상이 오래가든 못허지. 근본을 잃은 세상은 어쨌든 조만간 무너지구 새 질서가 들어서게 되어 있다 이른 말씀이지유.”

심선생은 그저 고개를 끄덕거려가며 듣기만 하다가 한마디를 했다.

“그래도 이렇게 농사일을 돌보시면서 학문에 뜻을 버리지 않으시니 놀랍습니다. 이제 사실 공부한다는 사람들도 원래 인간의 이치에 대한 공부에는 손을 놓은 셈이거든요.”

“그렇지. 그것이 말세의 시초라는 것이지. 모두들 본분을 잃고 날뛰기 시작하면 인간의 도리는 사라지고 야차의 본성만 높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거든. 이즈음에 상하관계도 사라지고 남녀의 도리도 사라지고 허는 게 다 좋지 않은 조짐이지. 원래 여자가 득세를 허게 되면 남자들이 기를 잃게 되구 남정네들이 기를 잃게 되믄 이게 다 음양의 이치를 따르는 거라 여자에게 돌아갈 빛두 자연적으루다가 줄어들게 되어 있는 거여. 암, 이게 이치구말구. 어떤 때는 내가 한번 나가서 인생의 도리를 설파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간간 들기도 하더구먼. 원래 깊은 학문은 숨어 있는 사람에게서 나오게 되어 있거든.”

심선생은 고개를 수그리며 김주사의 빈 잔에 술을 따르고 한참 있다가 밑도끝도없이 불쑥 말을 꺼냈다.

“할머니 안색이 몹시 안 좋으시던데요. 근력도 달려보이시고요.”

김주사는 원대한 세상이치를 전파하던 말이 중간에 끊겨 좀 언짢은 기색이었다.

“그 사램이 원래 진득허니 한자리에 붙어 있들 뭇허구 이일 저일 좀 나대는 편이여.”

“제가 보기에는 일이 워낙 많아서 한자리에 붙어 있을 틈이 없어 보이던데요.”

김주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사램이 원래 교장선생님 따님이구 집안이 학자 집안이었지. 내 그 점이 마음에 들어 다른 조건을 다 접어두구 그 사램을 받아들였거든. 그런데 살다보니까 학문허구는 워낙 거리가 먼 사람이구…… 아무리 여자라지만 도무지 깊은 이치를 따져볼 생각이 읎는 사램이라…… 고생두 많았지만 워낙 나허구는 이상이 맞지를 뭇했지유.”

김주사는 젊어서 얼마나 인물이 좋았는지 마을의 화젯거리였고 처녀들은 김주사가 지나갈 때면 몰래 숨어서 다들 내다보았다고 했다. 들리는 말로는 상사병이 들었던 처자도 있었다고 했다. 김주사는 젊었을 때도 가난했지만 워낙 양반의 혈통을 타고난 학자로 자신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여러 군데서 중신이 들어오는 걸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지금 할머니 선이 윗마을에서 들어왔을 때 아버지가 한때 보통학교의 교장선생이었다는 이유 하나로 두말없이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심선생은 김주사의 말을 들으며 무어라고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자녀를 기르고 생계를 유지해온 것은 자기 아내였는데 구름을 타고 앉은 듯 자기 관점에서만 세상을 내다보는 그에게 흥미가 느껴져서였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심선생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강남에서 의상실을 운영하느라고 동분서주하는 아내를 두고 이렇게 한달이면 삼분의 일이 넘게 시골에 내려와 박혀 있는 자기 모습도 김주사와 크게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싶어서였다. 자신도 한때 잘못된 결혼이 아닌가 하고 갈등이 깊었을 때도 있었다. 세상 잡다한 일이며 유행에 관심이 많고 도시적인 감각을 지닌 아내는 신혼기간이 지나면서부터 자신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의상실을 경영하며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보란듯이 키우고 자신의 반대를 무릅쓰고 온갖 고액과외를 시키면서 아이들을 세칭 일류학교에 넣은 건 아내의 덕이었다. 지금 김주사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니 아내가 자기 때문에 무던히 속이 썩었겠다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었다. 어쨌든 배포는 큰 아내였다. 심선생이 시간강사를 맡고 있는 학교 출강할 때를 빼고는 사람들에 부대껴 글 한줄 쓸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하자 앞장서서 이곳 당진 시골에 땅과 집을 마련해준 것이었다. 하기야 속으로는 이게 다 부동산 투기하는 마음이지 남편을 진정으로 위해서 하는 일은 아닐 거라는 의구심이 들지 않는 바도 아니었다. 항상 이해타산을 먼저 따져 주판을 퉁기는 아내가 어떤 때는 끔찍하도록 싫었지만 심선생이 자기 나름대로 소위 순수한 세계를 작품 속에 간직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아내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러면서도 항상 인격적으로 우위에 서 있는 건 자기였다고 은연중에 믿어왔구나 하는 생각이 가슴을 타고 싸르르 지나갔다.

“지금 말씀을 듣고 보니까 저도 사실 안사람한테 비슷한 마음을 품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 어쭙잖게 이런저런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었지요. 그 사람은 워낙 저하고 생각이 다르기도 합니다만……”

김주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지유. 내 심선상님 내자를 한두 번밖에 못 보았지만 서루 이상이 맞는 분 겉지는 않더먼. 워쨌든 선상님은 식자가 들으신 만큼 꿈을 이루신 거지유. 내 인생을 되돌아보면 한탄이 많이 드느먼유. 하기사 그때 집을 뿌리치구 도시로 고학하러 갔던들 신학문이라는 게 내 비위에 맞는 것두 아니었겠구. 언젠가는 민족이 똑바루 서는, 지대로 된 시상이 올 거라는 믿음 하나루 버텼는디…… 이즈막에 비두 오지 않구 논바닥이 갈라터지는 걸 보니께 꼭 내 한평생을 보는 것만 같어서……”

김주사는 술잔을 들어 비웠다.

“그 커다란 감나무 아래서 공부하던 생각을 허믄 그때가 인생에서 참으로 복 많고 행복한 때였다는 생각이 드느먼유. 그 이후루다가 항상 맴속으루 큰 스승을 지댈렸지유. 첨에 심선상님이 이 동리에 들어스셨을 때 내 이제니 말이지만 증말 잠이 다 안 왔시유. 이제야 내 말벗이 오는구나 싶기두 했구, 이제야 내 맴을 전해줄 사램이 나타나는가 싶기두 했지유. 이렇게 촌 무지렁이처럼 산 한 모텡이에 묻혀 살다가 가기에는 너무 서럽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심선생은 김주사와 첫대면하던 때의 기억이 났다. 자기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서 읽히던 경외감과 찬탄의 느낌이 마을 사람들의 호기심하고는 좀 달랐다. 자기가 쓴 책을 선물했을 때도 흥감해 어쩔 줄 몰라했고 그 다음에 들러서는 그 책에 대해 샅샅이 토를 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심선생이 김주사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자 재취를 일찍 얻은 것에 대해 호되게 싫은 소리를 들은 김씨는 팔을 걷고 나서며 열을 내었다.

“말씀 마시유. 그 노인네가 이즈막에 마을 사램덜헌티 되알지게 인심을 잃었시유. 한때는 정말 무슨 선비인가 허는 생각덜두 했지만 그 바쁜 농사철에두 걸핏허믄 책을 끼어안구 나자빠지는디 당할 장사가 없드먼유. 그러니 시상 무서운 게 농사꾼헌티 절기 맞추는 건디 그 할머니 혼자 고추밭 매느라 콩밭 고르느라 숨넘어가게 생긴 거유. 전에는 우리가 이리저리 도와두 주구 해봤지만 맘뽀가 워낙 삐뚤어진 노인네유. 을매나 교만헌지 우리허구는 이얘기가 안 통헌다 이거지유. 고개를 뻣뻣이 한 채 한세상을 살은 거유. 그려두 이 마을 사램들이 워낙 심성이 고운 사램들이라 그 꼴을 두구 봤지유.”

농사일밖에 모르는 박씨는 느린 말투 그대로 어물어물 말했다.

“그분이야 천상 선비지유. 뭐 남에게 해코지헌 일두 없구유. 싫은 소리를 대놓구 헌 적두 읎시유. 그저 촌 무지렁이덜허구는 그 머이냐 시쳇말루다가 대화가 안 통헌다는 태도기는 허지만 그만큼 식자가 들었다믄 대화가 안 통허는 게 당연허겠쥬. 그 양반 입장에서 본다믄 땅에 코를 박구 있는 우리가 답답헐 거유. 그저 지 입장에서 본다믄 심선상님은 식자가 들으셨어두 그 대화라는가 뭐라는가 허는 걸 잘 허시는 것 같드먼서두……”

언덕빼기 최노인은 두 손부터 내저었다.

“어이구. 재수읎시우. 그 노인네 얘기라믄 허들 말유. 음으루 양으로 내가 우세당헌 걸 생각허믄 지금두 으떤 땐 분이 나유. 그 노인네 문제는 한마디루 말할 양이면 지 분수가 먼지두 몰르구 한평생 지 멋에 잘난 척허구 산 거지유. 그것도 다 첨엔 지 마누래 덕이었구 이즈막엔 그 벤똔가 먼가 허는 사업으루 소 뒷걸음질하다가 쥐잡은 식으루 떼돈을 번 그 사위 덕에 희짜를 뽑구 있시유. 그 노인네 농사라는 게 다 씨 뿌리믄서버텀 손해를 턱턱 보는 거유. 생각해보시유. 그걸 다 사램을 사면서 해대니 차라리 앉아서 쌀 말이나 사먹는 게 백배 낫지유. 그 노인네 삽질허는 거 한번 유심히 보슈. 그 나이에 아직두 삽이 손에 안 붙었시유. 그저 이 농촌에 귀양온 신선 행세를 허구 있으니 딱허지유. 원 이건 농부두 못되구 학자두 못되구……”

심선생은 김주사에게 큰 관심과 흥미를 지니고 지켜보았다. 그는 어쩌면 우리시대 선비정신을 마지막으로 지닌 사람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자신이 얕보고 내리보던 사람들의 힘에 의지해서 일생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김주사는 처음에는 부모에게, 다음에는 아내에게, 이제 와서는 벤처사업인가 뭔가 한다는 둘째사위한테 어깨를 기대고 살아온 것이었다.

“그런 건 중요헌 게 아니지유.”

어느날 이야기가 나온 길에 사위의 이야기를 넌지시 묻자 김주사가 대답한 말이었다.

“성인두 시속을 따르랬다구 허지만 하루하루 먹구사는 일에 너무 신경을 쓰는 건 학자의 높은 도리가 아니지유.”

“그래도 막말로다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먹고사는 일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이상을 꺾지 않습니까?”

“그건 이상이나 뜻이 약해서지유.”

김주사의 단호한 대답이었다. 이쯤 되면 가히 불굴의 정신이라고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겉보기에 성헌 것들이 다 헛된 것으로 보이믄 사람들이 미친 듯이 뛰는 일을 그만두고 정신의 이상향을 찾게 되리라 허는 것이 지 생각이지유.”

처음에는 심선생도 할머니가 손이 다 헐게 일을 하는 걸 보면서 그를 못마땅하게 여기기도 했다. 조금씩 그 생각이 바뀌게 된 것은 김주사가 변함없이 초지일관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거기에 따라 사는 그의 행동에도 일관된 원칙이 나름대로 있기 때문이었다. 농사일을 하면서 틈틈이 책을 읽는다든가 잡스러운 무리들과 어울리지 않고 자신의 정신세계를 지키려고 애를 쓴다든가, 세상의 모든 시끄러운 유행이나 풍조들은 이 억만겁의 우주에서 볼 때 한조각 티끌에 불과하다고 본다든가 하는 생각에 일호의 흔들림이 없었다. 그런 이야기들은 그의 말 틈새마다 비져나왔다. 몇해 전 심선생이 이곳에 처음 자리잡을 때만 해도 김주사네는 자기 남편 김주사 이야기를 제법 공손스럽게 했다.

“그려두 그 영감님이 내가 살믄서 본 사램들 중에는 젤루 욕심 읎구 양심이 바른 사람이여. 이러쿵저러쿵 허는 것들 내가 다 알구 있지만 아, 가령 마누라에게 일을 시켜먹는다는 것두 다 내 직성에 허는 것이구 사위가 금시 발복을 헌 것두 다 영감이 양심적으루다가 살아온 복인 거여.”

그런데 해가 가면서 몸이 부대끼고 골병이 안으로 깊어지자 할머니의 말투에 점점 날이 서기 시작했다.

“아니, 농자 천하지대본이믄 그릏게 주장헌 사램이 앞장을 서야지. 남에게 도지 주자구 해두 안 주믄서 돋뵈기 끼구 책이나 집어들믄 일이 저절루다가 풀리는감유.”

이렇게 대꾸 하나 없이 방에 책상다리를 하구 앉은 영감을 훑어대기도 하고,

“지발, 이제 그만 도지를 줍시다유. 그저 텃밭이나 가꿔서 상추나 호박이나 따다가 밥상머리에 올리믄서 살자구유.”

이렇게 큰 소리를 내기도 했다.

심선생에게 남이 들을까 신세타령을 하는 사연인즉 이랬다.

“내 증말 마을 사램덜헌티두 못허는 신세타령을 선상님께다가 츰으루 해보는 것이여. 내가 우리 영감을 열령성으로 모셔오구 그 잘난 꼴두 다 받아줬지만 내 심선상님을 보니께 식자가 들은 냥반덜이 다 우리 영감처름 지 생각만 허는 무두벽창은 아니더라 이거유. 이제 인생의 해는 기울어가구 노을이 뉘엿뉘엿 지는데 그 영감이 해논 일이 머가 있시유. 이릏다 하게 선상님겉이 책을 내길 했시유. 무슨 학생덜을 거느리구 가르치길 했시유. 그릏다구 마누라나 자석들, 아니 허다 뭇해 마을 사램들 심정을 헤아리기라두 했시유. 그저 무작정 혼자만 잘난 독불장군으루다가 살다가 이제 혈당이니 혈압이니 허믄서 다 죽어 나자빠지게 생겼으니 이게 무신 잘난 인생이여.”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은 저도 처음에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보니까 그분이 어떤 점은 정말 남들과 다른 훌륭한 점이 있으십니다.”

주름살이 눈가에서 사방으로 흩어져 재물재물하는 할머니의 눈에 갑자기 호기심이 실렸다.

“그래, 우떤 점이 그류? 북망산천에 가기 전에 우리 영감 훌륭한 점이나 확실히 알구 죽어야겠시유.”

심선생은 웃으며 뒤통수를 긁었다.

“할머니두 여러번 말씀하셨지만 여자문제 한번 일으킨 적 없고, 남의 물건 욕심 한번 내본 적이 없으시다면서요. 어쨌건 힘에 닿는 대루 농사일도 돌보시면서 틈틈이 몇십년 동안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깊은 생각을 해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할머니는 술이 불콰하게 오른 얼굴로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그건 그류. 그릏지만 두 사램이 한평생을 살았는디 나만 이릏게 몸이 다 망가져서 비라두 올작시면 삭신이 마른 검부락지 비틀리듯 다 쑤시는 게 그럼 온당헌 일이유?”

“이즘엔 농사짓는 부인네들이 침을 맞지 않으면 움직이지도 못하게 병을 달고 사시는 분들도 많으시다면서요?”

“그러니까 시방 이게 내 혼자 일이 아니라 온 마을 여편네들 일이라 이 말씀이시유?”

심선생이 대답이 없자 할머니도 피식 웃었다.

“그려두 다른 여편네들은 남편허구 노다지 같이 엎드려 김매구 모내구 밭 고르구 허지 않았시유. 이제 생각해보니 그 많은 농사일에 허덕지덕 엎드려 있을 때 무신 벼슬을 한다구 책을 들고 앉았든 영감이 야속한 맴이 드는 걸 으띃게두 헐 수가 없네유.”

“저 아래 마을에는 남편이 읍내 마담한테 반해서 경운기며 논밭까지 들어먹고 농사 파장놓은 집도 있다던데요.”

할머니는 가가대소를 하며 막걸리 사발을 내밀었다.

“허기야 그릏지유. 심선상님이 사램 마음 위로허는 법을 아시긴 아느먼유. 그런 집에 비허믄 냥반이지유. 기분인데 여기 술 한잔 더 따르슈.”

막걸리 한잔을 단숨에 들이켠 할머니는 휘청휘청 일어서면서 한마디를 던지기는 했다.

“그런디 문제는 말이유. 그 영감이 정말 우리 마누라가 날 위해 살림을 꾸려나가느라구 손이 다 갈퀴가 되었구나 허구 귀허니 생각허는 맴이라두 있다믄 이릏게 인생이 허전허지는 않을 것 같유.”

6월 초에 현충일을 끼고 마을에 내려오던 날 워낙 가물어 먼지가 피어오를 것 같은 콩밭에서 김을 매는 김주사네에게 인사를 건네다가 심선생은 내심 깜짝 놀랐다. 할머니 얼굴이 젖 잘 먹은 돌배기 아이마냥 토실하게 부어올라서였다.

“이 땡볕에 뭐 허십니까?”

“콩밭을 골러야지유. 가물어서 클났슈. 비가 이릏게 안 오기는 십년 내루다가 츰인 것만 같어유.”

“안색이 안 좋아 보이시는데요.”

“깟놈의 거 죽기 아니믄 까무러치기유.”

저 위쪽 담배밭에서는 박씨 내외가 잡초를 뽑느라고 정신이 없는 것 같았다. 심선생 시선이 그리로 가는 것을 보고 김주사네의 시선도 그리로 향했다.

“보시유. 내외간이라는 게 저래야 되는 게 아니겄시유. 생전 헛살았시유. ……그저 무시나 당허구 일만 황소겉이 허다가 갈 생각을 허니 증말 억울허구먼유.”

“잠깐 올라오셔서 제가 받아온 막걸리라도 한잔 하시면서 좀 쉬시지요. 해가 너무 뜨거운데요.”

할머니는 그 말끝으로 호미를 내던졌다.

“그라지유, 까짓거. 나두 이젠 선비처름 살아야겠시유.”

“김주사 어른은……”

“‘주사는 무신 얼어죽을 주사유. 이릏게 가물믄 하늘이 내리는 도리나 기다리는 거라믄서 남들은 양수기루다가 병아리 오줌이라두 받을려구 설치는 판에 방에 들어박혔슈.”

심선생이 막걸리를 사발에 따르자 할머니가 빠진 앞니 두 개를 숨기는 듯 입을 손으로 가리며 웃더니 조금 망설이는 기색인 게 여느때와 좀 달랐다.

“내가 이릏게 마시믄 안되는디……”

그러더니 뭐라고 더 말을 걸 틈도 없이 단숨에 막걸리잔을 비웠다.

“어이, 그 술 한번 시원타.”

할머니는 심선생이 얼른 뜯어 내어놓은 깡통에 든 참치를 한 젓갈 떠올렸다. 그러더니 대작으로 한잔을 따라주어야 할 술꾼의 예법도 잊었는지 얼른 잔을 다시 내밀었다.

“먹구 죽은 귀신이 때깔두 곱다는디, 마시구 죽은 귀신은 더 뽀얄 거여. 얼른 한잔 더 꾹꾹 눌러서 딸시유.”

어째 부은 얼굴이며 기색이 이상하기는 했지만 더 뭐라 할 처지가 아니라 심선생은 막걸리 한잔을 더 따라주었다. 후래삼배라나 뭐라나 하면서 세 사발을 받아 마신 할머니가 일어서려다가 휘청 쓰러지며 툇마루에 몸이 반쯤 걸리자 심선생은 창황망조하여 할머니를 붙잡아 앉히려고 했지만 이미 몸을 가누지 못했다. 여윈 몸에 배가 거의 임산부마냥 부풀어 있는 게 그제서야 보였다. 눈도 동자가 힘을 잃고 말도 제대로 못하는 꼴을 본 심선생은 겁이 덜컥 나 소리소리 질러 앞쪽 둔덕에 있는 박씨 내외를 불렀다. 한달음에 달려내려온 박씨는 우선 할머니를 둘러업었다. 박씨네는 김주사집으로 뛰면서 심선생보고는 빨리 읍 택시부에 전화해서 택시를 부르라고 했다.

“그렇지 않아두 오줌소태가 난 양반이 어제 그제 오줌타령만 하드니 우째 술을 부진부진 마셨을까이. 독약이나 한가지라구 술 끊는다구 큰소리를 내둥 하등만……”

경황이 없는 중에도 박씨네는 구시렁거렸다. 십분이나 지나 택시가 와서 할머니와 김주사부터 실어날랐다. 심선생도 따라나설까 했지만 김주사가 다 아는 병이라고 하면서 만류했다.

저녁 무렵에 김주사는 혼자 돌아왔다. 할머니는 당진에 있는 병원에서 손을 보기에는 너무 증상이 깊어서 요도관을 꽂아 소변을 빼어내는 응급조치만 한 다음 서울에 있는 딸에게 연락을 취해 서울 병원으로 이송이 되었다는 것이다. 서산 갯가에 사는 큰딸이 와서 늦은 저녁을 끓이고 밑반찬을 장만하기는 했지만 그 딸도 학교에 다니는 어린것들 때문에 집을 무작정 비울 수는 없는 처지인가보았다.

큰딸이 있는 동안 출입을 삼가던 심선생은 딸이 떠났다는 소리를 듣고 다음날 아침녘에 아랫집을 찾아나섰다. 집 앞마당에 얼기설기 나무 판때기로 엮은 개우리 안에서 묶인 채 털이 몹시 더러워져 있는 누렁이는 짖지도 않고 물끄러미 심선생을 바라보기만 했다. 찌그러지고 때가 낀 양은 밥그릇이 텅 비어 있는 꼴을 보니 밥이나 얻어먹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문간을 들어서려던 심선생은 흠칫하고 발걸음을 멈추었다. 김주사가 시멘트로 바닥을 바른 수돗가에 선 채로 무슨 국건더기에 말았는지 국그릇을 들고 퍼먹고 있는 것이 시야에 들어와서였다. 단정하게 옷 입던 버릇과 달리 허름한 트레이닝 바지에 날긋날긋한 러닝셔츠를 입은 채 수돗가에 서서 국그릇을 들이마시는 그의 모습이 가슴이 내려앉도록 초라해 보였다. 이참에 마주치면 얼마나 면구스러워할까 싶어 심선생은 소리없이 물러나 집으로 돌아왔다.

“저 영감님이 월매나 유세가 심헌지 황천이냐, 부엌이냐 이렇게 저승사자가 묻는다믄 황천으루 가믄갔지 절대루 부엌에는 안 들어설 냥반이유.”

일변 자랑인지 흉인지 모르게 할머니가 하던 이야기가 아직도 귓가에 쟁쟁했다.

심선생이 머무는 그 며칠 동안에도 비는 내리지 않았다. 밭이랑에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어 줄줄이 세워놓고 두 줄로 된 비닐끈을 대나무에 묶어가며 지탱시켜놓은 고추나무들도 가뭄에 지쳐 단내를 내는 것 같았다. 지적지적 물기를 비추다 말다 하는 논에 서 있는 모들은 끄트머리가 옅은 갈색이 되기 시작하면서 시들어가고 있었다.

김주사네 할머니가 수술날짜를 잡았다는 소식이 전해진 날 김주사는 박씨와 물싸움을 벌이고야 말았다. 김주사가 좀 위쪽에 있는 박씨네 논두렁을 헐어 물을 자기 논으로 흘러가게 한 것이 화근이었다. 물이 모자라는 논을 아픈 자식 돌보듯 하던 박씨가 두렁에 난 틈새를 발견하고 우연히 허물어졌는가 싶어 메워놓았는데 저녁 무렵에 다시 논을 돌아보다가 두렁을 헐어내고 있는 김주사하고 정면으로 딱 마주친 것이다. 아연실색한 박씨는 설마 싶어 어정쩡한 질문부터 내어놓았다.

“시방 뭐 허시는 것이유?”

“물이 너머 모잘라서 그리유.”

김주사는 두렁을 헐어내는 괭이질을 멈추지 않으며 대꾸했다. 기가 막힌 박씨는 말이 다 나오지를 않았다. 모 한포기라도 잘못될세라 논가에 그늘을 지우는 나무를 다 베어버려 심선생 마음을 상하게 했던 박씨였다. 식물들이 밤에 잠을 설치면 잘 못 자란다고 가로등까지 다른 곳에 세우게 해 한참 마을에 분란을 일으켰던 박씨가 아닌가.

“아니, 그릏다구 동네 어르신이 남의 논물을 그렇게 하는 법이 어디 있시유.”

일변 곡괭이로 헌 부분을 메우며 박씨는 언성을 높이었다.

“허어. 물이라는 게 채우구 나면 다음 논으로 흐르게 되어 있는 게 이치 아닌가.”

“그건 물이 지대로 나올 때 이야기지유. 이건 지가 밤을 새워가며 병아리 눈물 겉은 걸 양수기로 퍼서 마련한 논물이유.”

“워쨌든 인간의 도리는 서루 어려울 때 돕구 도움받는 것이니께……”

다시 물꼬를 트려고 손을 멈추지 않는 김주사의 손에서 박씨는 괭이를 뺏으려고 덤볐다.

“보자보자 허니까 너무 허시네유. 돕는 게 도리라니유. 은제 어르신이 우리집 일 한번 도와주신 적 있시유? 한번 대보시유.”

“허어, 인생의 이치는 그릏게 짧고 단순헌 게 아니여.”

괭이를 안 빼앗기려는 김주사와 뺏으려는 박씨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다가 하루라도 젊은 게 어디인가. 그만 김주사가 밀려 지적지적한 논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내 이런 상스런……”

노여움에 복받친 김주사의 말에 박씨도 악이 받쳐 대꾸했다.

“내 논을 지키겠다는 게 상스러운지 남의 논물을 훔쳐갈래는 게 상스러운지 동네방네 물어볼까유?”

“허어, 내 이런 망신이……”

김주사는 어물어물 일어섰다. 눈에 언뜻 물기가 비치는 듯했다. 심지는 원래 고운 박씨가 부축하려 들자 김주사는 그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말세가 오는 걸 살아서 보구 마는구먼그리여.”

김주사는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는 박씨를 뒤로 한 채 허청허청 걷기 시작했다.

그 다음날 김주사는 밖에 나오지 않고 두문불출했다. 박씨가 사과하러 들러도 내다보지도 않고 박씨네가 끓여간 미역국 냄비를 열지도 않은 채 툇마루에 그대로 놓아두었다. 박씨는 허둥지둥 심선생을 찾아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도움을 청했다.

“아주 곡기를 끊으신 것 같애유. 이러다가 일이라두 치르믄 지 입장은 뭐가 되는지 겁이 벌컥 나는구먼유.”

박씨 얼굴은 사색이 다 되어 있었다. 뒤미처 달려간 심선생에게도 김주사는 방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저 아무두 만나구 싶지 않구먼유.”

열리지도 않는 방문 안에서 김주사의 기운 없는 음성만 흘러나왔다. 먼지가 쌓인 마루 앞에 선심선생은 간곡하게 말했다.

“곡기를 하지 않으신다는데 선돌이 아범도 정말 뉘우치고 있습니다.”

“………”

“이제 할머니도 돌보시고 해야 할 텐데 곡기를 잇고 정신을 차리셔야지요.”

“………”

한참 말없이 서 있자 장지문이 열리고 수척한 김주사의 얼굴이 보였다.

“이릏게 신경써주셔서 고맙구먼유. ……마누래가 돌아와서 모가 다 죽은 꼴을 보믄 우쩌나 허는 생각을 허다가 그만……”

한참 눈길을 마루에 주고 있던 김주사는 힘겹게 말을 이었다.

“낼 아침이라두 지가 심선상님을 뵈러 올라가지유. 오늘은 염려 마시구 돌아가시유.”

심선생은 더이상 말하지 않고 돌아섰다. 우선 심경을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리라 싶어서였다. 그날 밤 촛불을 켜놓고 앉은 심선생은 전에는 물이 차랑차랑하던 논이 밤눈에도 칼칼하게 말라붙은 꼴을 내려다보며 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김주사는 심선생 집으로 올라오지 않았다. 아침을 대강 끓여먹은 후 앞뜰도 쓸고 샘가에 떨어진 마른 나뭇잎들도 주워내던 심선생이 점심나절에 내려가 보자 집은 텅 비어 있었다. 어찌된 일인가 싶어 돌아오는 참으로 담배밭의 박씨를 찾았다. 땀으로 얼굴이 번질번질한 채 잡초를 뽑고 있던 박씨는 벌떡 일어서며 낭패한 표정으로 한참 말이 없다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오널 새벽겉이 서울서 딸이 차를 보내 모셔갔시유.”

“아니, 그럼 무슨 일이라도……”

박씨는 손을 털며 밭두둑으로 나와 고개를 꺾고 그저 서 있다가 어렵게 말을 내어놓았다.

“무어 좋은 소식두 아니라…… 그 댁 할머니가 서울서 그만……”

심선생은 가슴 한가운데를 갑자기 세게 두드려맞은 것만 같아 아무 말도 내어놓지 못하다가 겨우 한마디를 했다.

“……저한테 연락이라도 하시지요.”

박씨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그러지 않아도 차가 떠나기 전에 일부러 우리집에 들르셨슈. 궂은일이라 안 알리고 가니까 심선상님께 잘 말씀드려달라구유. 저헌티두 아무 다른 감정이 읎다구 마음 풀구 가셨시유. 오히려 당신이 부끄러우시다구유.”

“……그래 언제 돌아오신다고 하시던가요?”

“글쎄…… 모르긴 혀두 그게 워디 쉽겄시유?”

박씨도 심란한 모양이었다. 심선생만 보면 노상 웃음이 담기던 얼굴에 시름이 가득했다.

“뭔 일인지 모르겠시유. 사램덜이 죽어나가구 이릏게 비두 오지 않구, 논은 갈라지구, 이대루 하루 이틀만 더 가믄 올해 농사는 이전 끝장이구먼유.”

막막한 심정으로 논을 바라보고 선 박씨와 면대하고 있기도 어려워 심선생이 발길을 돌리려는데 박씨가 불러세웠다.

“아이구. 이 까마귀 고기 정신을 부아. 김주사 어른께서 저헌티 선생님 드릴 책들을 방안에 남겨놓았다구 쓰실 책이 있으시믄 죄다 가져 가시라구 당부하셨시유.”

심선생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깐 그 자리에 선 채 망설였다. 그러고는 김주사네 집 쪽으로 가지 않고 그대로 자기 집으로 가는 길을 따라 걸었다. 지금 김주사가 몇십년에 걸쳐 읽던 손때 묻은 낡은 책들을 보거나 만질 기분이 들지 않아서였다. 태양은 하늘 위에서 이제 다시는 비를 뿌릴 것 같지 않은 기세로 쨍쨍하게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