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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인터넷 글쓰기의 가능성

창비무명인의 미당론을 중심으로

 

 

한기욱 韓基煜

문학평론가. 인제대 영문과 교수. 주요 평론으로 「지구화시대의 세계문학」 「대중문화 속의 소설과 영화」 등이 있음. englhkwn@ijnc.inj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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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지식인과 문인들 사이에 두루 활용되면서, 디지털 글쓰기와 출판 방식이 주요한 사회적 쟁점이나 문학적 논의를 활성화하는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 이른바 ‘인터넷혁명’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한 홈페이지와 인터넷신문, 전자책이나 웹진과 같은 신종 매체들은 인터넷 특유의 쌍방향성과 신속한 전파력으로 말미암아 문단이나 지식인 사회의 풍속도를 상당히 바꿔놓고 있다. 특히, 싸이버 자유게시판에서 이뤄지는 새로운 글쓰기 방식과 의사소통 형태는 디지털문화가 지닌 가능성과 폐해를 동시에 보여주는 듯하다.

나는 몇년 전부터 몇몇 인터넷 홈페이지의 자유게시판을 기웃거리면서 인터넷상의 논의와 글쓰기 방식을 눈여겨보았고 또 간간이 실전에 참여하기도 했는데, 한동안은 이 새로운 문화현상을 반겨야 할지 개탄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네티즌 대다수에게 인터넷 글쓰기와 논쟁은 상당한 성취감과 아울러 적잖은 상처와 모멸감을 안겨주지 않았을까? 가령, 자유게시판에 처음 글을 올렸을 때, 그리고 그 글에 곧장 누군가가 댓글을 달아 반응을 보였을 때의 가슴 설레던 기억은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다. 만약 그 댓글이 자신의 진의를 알아줬다면 그때의 감격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어디에 있는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자기 글의 미덕을 알아보고 공감을 표시하다니, 마치 염화시중의 미소를 만나는 기분인 것이다. 그러나 자기 글이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부당한) 야유나 조소를 받거나 심지어 쌍욕을 들을 때 그 분노와 모멸감이란! 밤을 하얗게 새며 치밀한 반론을 준비하거나, 아니면 제 성질을 못 참아 즉각 보복과 응징을 가하기 마련이다. 그러다보면 십중팔구 자유게시판에서의 토론은 막말과 욕설이 오가는 기세싸움으로 끝나버린다.

자유게시판은 익명·실명의 온갖 성향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공간인지라 별의별 사건들이 일어난다. 예측불허의 진행이 흥미를 강하게 유발하지만, 다른 한편 생산적인 논의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한둘이 아니다. 이념적 성향, 관점,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오해와 불신, 근거 없는 비방이나 야유, 무의미한 장난질이나 몰상식한 도배질 등등 곳곳에 암초가 널려 있어 어렵사리 시작된 논의라도 중도에서 난파하는 일이 허다하다. 하지만 이런 장애들 틈새에서 가끔씩 뜻깊은 논의와 훈훈한 대화의 꽃이 피어난다. 이럴 때면 게시판이 돌연 숙연한 빛을 띠며 네티즌들은 귀를 쫑긋거린다. 이 사람 저 사람 끼여들면서 치열한 비판과 날카로운 논평이 다방면·쌍방향으로 순식간에 오가는 흥미진진한 다자간 논쟁 역시 활자 지면에서는 맛볼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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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글쓰기의 가능성에 반신반의하던 내가 점차 그 가능성을 엿보게 된 것은 창작과비평사 홈페이지(www.changbi.com)의 자유게시판을 통해서이다. 지난 1,2년간 이 싸이버 공간에서 의료분쟁, 김윤식 사건, 박남철 사건, 신경숙 표절시비, 안티조선과 문화권력 논쟁 등 우리 사회의 민감하고 중요한 쟁점들에 관한 뜻깊은 논의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경숙의 「부석사」에 대한 포에지의 평론이나 satgatlim의 영화평 등 뛰어난 평문들이 적지 않았다. 창비 쪽에서는 편집인 백낙청이 2000년 7월〜2001년 4월에 열 차례 ‘편집인의 글’을 올림으로써 자유게시판 논의를 활성화하는 데 앞장섰다(‘지난 자유게시판’ 참조) .

그러나, 내게 인터넷 글쓰기의 가능성을 확인케 해준 결정적인 계기는 올해 6월 24일〜7월 3일 10회로 분재된 창비무명인의 「국화꽃의 비밀」(‘추천글방’ 참조)이다. 200자 원고지 300매를 넘는 방대한 분량에다 철저한 자료조사, 치열한 문제의식, 일관된 논리전개, 파격적인 주장, 힘찬 글발이 네티즌들의 관심을 온통 사로잡았다. 흔히 인터넷 글쓰기 하면 즉흥적이고 경쾌·경박한 스타일을 연상하게 되지만, 이런 통념과 전혀 다른 진지하고 치열한 글이 장장 한달여간 게시판의 분위기를 압도하면서 다양한 이념적 성향의 네티즌들로부터 따뜻한 격려와 예리한 논평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중요한 쟁점에 대해 사려깊게 씌어진 논의가 게시판에서 그 진가를 인정받는다는 사실, 그리고 이런 요인들이 결합되어 토론의 활력이 생겨난다는 사실이 인터넷 글쓰기에 대한 내 의구심을 상당히 걷어낸 것이다.

창비무명인의 글이 비상한 관심을 끌게 된 까닭은 그것이 우리 문학사의 첨예한 쟁점을 정면으로 건드린 탓도 있다. 『창작과비평』 지난호에 고은의 「미당 담론」이 발표되면서 초미의 관심사가 된 미당 시에 대한 평가 문제는 사실 우리 문학사를 새롭게 정립하기 위해서는 피해갈 수 없는 핵심사안이라 할 수 있다. 고은의 미당론 이후 이 문제를 둘러싸고 문인과 지식인, 매스컴은 찬반 양쪽으로 나뉘어 첨예하게 대치하는 형국이었다. 주요 일간지들이 고은을 비난하고 미당의 시를 떠받드는 칼럼을 연달아 내보냈지만, 창비 자유게시판의 분위기는 그와는 정반대였다(‘추천글방’의 불이, 검정고무신, 물결의 글 참조). 이런 상황에서 창비무명인의 글은 미당의 「국화 옆에서」에 대한 기존 논의들의 맹점을 통렬하게 비판하면서, 국화꽃은 일본 천황과 천조대신(天照大神, 아마떼라스 오오미까미)의 상징일 가능성이 크다는 파격적인 논지를 힘차게 밀어붙였으니,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정황을 감안하여 창비무명인의 글을 살펴보면, 무엇보다 기존의 안이한 미당론에 대한 치열한 비판정신이 돋보인다. 그의 지적에 따르면, 「국화 옆에서」에 대한 기존 연구와 평론의 병폐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 시에 등장하는 국화와 거울은 일본제국의 대표적인 상징물인데, 기존 평론가들은 이 점을 도외시하고 오로지 “‘황국(黃菊)=친근한 누님’ ‘거울=관조의 경지’로 등식화시켜서 해석”했다는 것이다. 둘째, 이 시에 대한 “비평적 관심의 부재”인데, 이 시를 “가장 세밀하게 텍스트 중심으로 분석한 평자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창작자인 미당 자신”이라는 것이다. 셋째, 이 시를 구성하는 “이미지들의 배합이 보이는 비상식성과 반전통성”을 거론한다. 소쩍새, 천둥, 먹구름, 무서리 등 “‘누님’의 이미지들을 보조하고 보강하는 다른 이미지들이 지나치게 강렬하고 비극적이고 음울”하다는 것이다. 또한 국화꽃의 이미지는 한국시의 전통에는 절개있는 선비라는 남성적 이미지였는데, 여기서는 여성적 이미지로 성적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넷째, “신화적 해석의 부재”를 꼽는다. 동서양의 여러 신화와 전설에서 즐겨 소재를 택하는데다가 “일장기를 아랫목에 세워두고 합장까지 할 정도”인 미당이 일본의 신화와 전설, 문화에 깊은 영향을 받았음은 명약관화한데, “일본신화 내지 문화와 연계지어 미당을 해석하는 것은 기존의 학문적 논의에서는 배제되어”왔다는 것이다.(이상 「국화꽃의 비밀」 1〜3 참조) 미당 시에 대한 창비무명인의 이같은 문제제기는 기존 평론들의 정곡을 찌른 느낌이다. 특히 “일본신화 내지 문화와 연계지어 미당을 해석”할 필요성은 이 시뿐 아니라 미당 시 전체에 걸쳐 절실히 요구되는 사안이며, 이것이 “기존의 학문적 논의에서 배제”되었다는 것은 우리 문학과 역사의 파행성과 왜곡을 드러내는 대목이라 하겠다.

창비무명인은 본론에서 「국화 옆에서」에 대한 ‘신화적 해석’을 시도하는데, 이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미당의 「시 창작을 위한 노-트」를 통해 이 시를 쓸 당시의 시인의 심상을 추적하는가 하면, 『고사기』와 『일본서기』를 면밀히 분석하여 「국화 옆에서」의 핵심적인 시어들의 일본신화적 연원과 상징성을 밝히는 데 주력한다. 그 결과 “「국화 옆에서」의 1연에 등장하는 소쩍새의 울음은 사별한 아내가 그리워 황천국으로 찾아간 이자나기의 고통에 상응하고, 2연에 등장하는 천둥의 울음은 자신의 부패한 몸을 보고 놀라서 달아난 남편을 쫓기 위해 천둥신을 보낸 이자나미의 고통과 놀라울 정도로 일치합니다.(…)아마테라스의 탄생과 국화꽃의 탄생에 똑같이 천둥이 등장하고, 사거한 애인의 시상이 그려지는 것은 우연의 일치로 간주하긴 힘든 것 같습니다”라고 주장한다.(「국화꽃의 비밀」 7)

3연과 4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추적과 분석을 통해, “아마테라스 동굴칩거 신화에 등장하는 여러 화소(話素)들─동굴칩거, 누이의 귀환, 거울 앞에 선 여인─이 「국화 옆에서」의 3연과 4연의 시상과 맞물리는 점이 많”다고 지적한다. 여기에다 시 창작 당시 “태양신의 후손인 일왕의 인간선언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쳐 형상화되었을 개연성”을 결합한다. 즉, 미당에게 “젊은 시절 광영의 길을 걷던 ‘국화꽃-일왕’이 패망 이후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와 상징적 군주로 묵묵히 살아가는 모습이 가슴속에 한(恨)을 지닌 채 ‘젊음의 뒤안길’에서 돌아와 ‘소복하고 거울 앞에 우두커니 홀로 앉아 있는 40대의 여인’의 모습으로 느껴졌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리하여 이 시의 ‘노오란’ 국화꽃은 천황과 천조대신의 상징일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국화꽃의 비밀」 8) 이렇게 국화꽃의 ‘비밀’을 밝힌 다음 창비무명인은 마지막 연재분에서 유종호가 미당에게 “단군 이래 최대의 시인” 혹은 “이 나라 시인부락의 명실상부한 족장”과 같은 극찬을 헌사함으로써 중앙일보의 ‘미당문학상’ 제정에 공헌한 점을 맹렬하게 질타한다. 실제의 삶에서나 작품에서나 종천순일파(從天順日派)적인 자세로 일관한 미당은 “‘부족방언의 요술사’ 내지 마술사는 될 수 있을지언정, ‘시인부락의 족장’이 될 수는 없는 인물, 되어서는 안되는 인물”이라는 것이 미당에 대한 창비무명인의 최종평가인 듯하다.(「국화꽃의 비밀」 9)

창비무명인의 글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에는 냉소와 야유가 아주 없진 않았으나 탄성과 갈채가 압도적이었다. 감탄과 격려의 지지발언이 연재 도중에 종종 터져나왔고, 연재를 마친 이후 게시판에는 여러 네티즌들과 필자 사이의 뜨거운 인사가 오갔다. 유형종, 쑈쑈쑈, 지나가면서, 허르즈만, 박수부대, 나정욱, satgatlim, 박민규, 닭살돋네, 조영, 적빛넝마, 칼날, 송명호, flinching, peach, 그리고, 월촌 등의 네티즌들의 감격스런 반응에 필자는 감사의 뜻을 표했다. 이처럼 다수의 네티즌들이 글쓴이의 노고에 감사하며 저마다 소감을 밝히는 장면은 특별한 감동을 자아냈으며, 박민규(박윤규)는 인터넷한겨레(www.hani.co.kr)의 ‘하니리포터’에 이 글의 혁신적인 주장을 부각하는 기사(「‘국화 옆에서’가 친일시라구?」, 7/5)를 쓰기도 하였다.

이 글에 대한 논평도 여럿 나왔는데, 그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 몇개만 소개한다. 이 글의 기본발상에 처음부터 딴지를 건 김흥년은 나중에 장문의 글(「미당의 ‘국화 옆에서’에 대한 신화비평적 이미지 분석」 1〜3, 7/28)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 그의 글은 창비무명인의 글에 대한 자상한 반응이라 할 순 없지만, 미당 시를 좋아하는 다수 독자들의 독법을 대변하는 또하나의 신화비평을 제시함으로써 창비무명인의 미당론에 대한 무시하기 힘든 반론이 된다. 그는 “상징의 다의성이 그런 의혹의 제기에 발동을 걸어주기는 하겠지만, ‘국화’에 친일의 혐의를 씌우기는 쉽지 않다”고 전제한 후 국화와 누님 같은 핵심 시어들이 우리 시의 전통 속에서도 충분히 자리잡았다고 주장하고, 「국화향기」 「향수」와 같은 미당 시에서 국화가 고향의 상징으로 사용된 용례를 찾아낸다. 또한 “국화는 미당이 「국화 옆에서」를 쓸 당시만 해도 이미 군자의 꽃만은 아니었다”고 하면서 그 근거로 「열녀춘향수절가」 등의 예를 거론한다.    

김흥년의 글은 한 편의 미당 시 읽기로서는 흥미롭지만, 대상 글의 약점만을 겨냥한 탓에 균형잡힌 논평이라 하긴 힘들다. 공감을 전제하되 엄정함을 잃지 않는 논평다운 논평은 백낙청과 포에지로부터 나왔다. 원로비평가로서는 드물게 자유게시판의 논의에 참가해온 백낙청은 창비무명인의 논문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면서, 이 글의 전반적인 의의와 미덕에 찬사를 보낸다. 그는 「창비무명인님의 ‘국화꽃의 비밀’을 읽고」(7/17)에서 이 글이 “오늘날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본격적 미당론의 전개에 중요한 이바지였”음을 흔쾌히 인정한다. 또한 “미당이 ‘부족방언의 마술사’라고 해서 ‘시인부락의 족장’이라는 월계관을 씌우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라는 창비무명인의 최종평가에 “충심으로 동의”한다. 그런가 하면 “서정주는 한국시의 탁월한 마술사 가운데 하나임이 분명”하지만, “마술사로서는 어떤 등급의 마술사인지도 작품을 위주로 가려내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창비무명인의 신화적 해석에 대해서도 백낙청은 “이 해석은 제가 아는 한 확실히 새로운 해석이며, 작품에 대해 적어도 저 자신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여러가지를 생각케 해준 값진 비평”이라고 상찬하는 한편, “‘국화꽃=천황+천조대신’이라는 논지를 입증하는 데 성공하신 것 같지는 않아요”라고 한다. 창비무명인의 전반적인 문제의식이 매우 중요함을 인정하면서도 그 구체적인 논지 자체는 무리라는 판단인 것이다. 이런 입장은 “황국이 곧 천황이요 「국화 옆에서」가 곧바로 천황 또는 천조대신을 노래한 시라고 주장하는 대신, 일본의 신화나 전설의 깊은 영향이 시인의 상상력과 감수성 속에 (십중팔구 무반성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쪽으로 논지를 완화한다면 훨씬 그럴법하지 않을까요?”라는 발언 속에 잘 드러난다. 백낙청의 논평은 항상 작품의 구체적인 예술적 성과를 문제삼는데, 여기서도 이 시의 핵심이라 할 제3연이 “작품상의 결함에 해당한다”고 하면서 “그 나름의 아름다움을 지녔지만 ‘사춘기적 정서가 다분히 남은’ 대목”이라 평한다. 요컨대, 이 시의 “각 연이 모두 그 나름의 요술을 행사하고 있지만 3연에 끼여드는 독특한 정서─그것이 사춘기적인 것이든 일본문화 친연적인 것이든─가 첫행부터 마지막행까지 빈틈없이 연결되는 요술에는 미달한다는 것”이다.

이 글에 대해 창비무명인은 백낙청의 지적을 상당부분 받아들이는 한편 자신의 논지를 해명하는 답글(7/18)을 올린다. 이에 답하는 백낙청의 두번째 글 「〔단상〕 미당 담론과 미당 시」(7/22)는 백낙청 나름의 ‘미당 소론’이랄 수 있겠다. 백낙청은 글의 서두에서 창비무명인에게 “우리의 견해가 한결 접근했다는 느낌”을 전하고, 동아일보 기자의 오독과 왜곡으로 빚어진 오해를 포함하여 몇몇 사소한 해석상의 오해를 해명한다. 그리고 비평적 판단의 훈련이 “무명인님이 지향하시는 ‘해석학적 글쓰기’가 최선의 효과를 거두는 데도 필수적”임을 지적한다. 이어서 고은의 「미당 담론」의 중요한 의의를 되새기는 한편, 미당의 시에 관한 자신의 단상(斷想)식의, 그러나 ‘파격적’인 평가들을 피력한다. 가령 “해방 직후에 나온 『귀촉도』(1946)가 『화사집』(1941)에 비해서도 빈약하다”는 언급이라든지 “『신라초』(1960)와 『동천』(1968)에 이르러서야 예의 ‘사춘기적 정서’가 대체로 정리되고 시상이 한층 자유분방해지며 얼마간의 철학적 깊이가 더해지기도 한다”는 평가가 그렇다. 또한 「곡(曲)」이라는 시와 함께 『떠돌이의 시』(1976)에 수록된 “난초를 다룬 시들은 70년대 미당 시의 성과”라는 평도 특이하다면 특이하다. 이런 파격적인 발언들은 언뜻 그야말로 툭 내던져진 ‘단상’에 불과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찬찬히 뜯어보고 종합해보면 미당 시를 바라보는 백낙청의 독특한 눈길을 느낄 수 있다. 가령 중기의 『신라초』와 『동천』을 초기의 『화사집』과 『귀촉도』보다 높이 평가하는 것은 통상적인 견해와 상반되는 것인데, 이런 판단의 근저에는 시를 언어적인 기교나 가락으로만 평가하지 않는 비평안이 작동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시인의 언어적인 기교를 경시하는 것은 아닌데, 가령, “이런 한정된 의미로도 과연 서정주가 고은보다 뛰어난 마술사인지는 한번 작심하고 따져볼 문제지요”라는 첫번째 글에서의 발언은 언어적 기교 역시 ‘한정된 의미’에서는 중요하다는 것을 전제한 발상이다. 그의 이번 단상은 기존의 한국 근현대시 논의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이자 미당 시를 새롭게 읽기 위한 ‘화두’라 할 수 있다.  

포에지의 글 「시인과 작품: 창비무명인님의 ‘국화꽃의 비밀’을 읽고」(7/23)는 문제의 시에 대한 높은 수준의 비평이자 창비무명인의 글에 대한 적실한 논평이라 하겠다. 포에지는 우선 「국화 옆에서」라는 텍스트 자체만으로 작품해석을 시도한다. 이 시에 두드러진 “목적론적인 시각”과 ‘〜나보다’라는 주관적 서술의 반복을 단초로 삼아 분석한 결과 “시적 자아가 대상을 오직 미적인 시선으로 관조하고 있”으며, “현실에 대한 도덕적, 지적, 정치적 접근 등은 배제되고 현실 사물들은 오직 그 감각적 현상성의 측면에서 미적 기준에 따라 평가되고 판단되는” 현실 배제적인 유미주의를 표현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전통적인 철학·미학을 연상케 하는 이런 읽기를 바탕으로 포에지는 창비무명인에게 “작품 자체에만 근거한 저의 해석으로도 작품 전체를 이해할 수 있고, 따라서 이를 넘어서서 작품 외부의 특정 현실과 연결시켜야만 할 필요가 없습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그는 창비무명인의 작업을 무의미하다고 보지는 않는데, “「국화 옆에서」의 ‘국화’와 일본 천황과의 ‘유사성’과 「국화 옆에서」에 친일적 사고가 개입하고 있을 ‘개연성’”을 주장할 수 있고, “창비무명인님의 글이 ‘유사성’을 밝히는 데 있어서는 놀라운 치밀함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경험적 개인으로서의 시인과 작품 내에 작동하는 시적 화자를 분별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포에지의 논평은 미당 시를 평가할 때 특히 유념해야 할 대목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경험적 개인/시적 화자, 혹은 텍스트 자체/바깥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이상, 「국화 옆에서」를 포함한 미당의 시편들의 분석·평가에도 신화비평적 방식이 원용될 여지는 충분히 있다. 문제는 신화비평에서 흔히 빚어지는 무리한 해석을 피하면서 이 방식의 잇점이랄 수 있는 문화적 통찰을 구체적인 작품 읽기에 활용하는 길일 터이다. 작품에 따라서 신화비평을 활용할 소지가 다른데, 가령 「국화 옆에서」보다는 오히려 「누님의 집」이 신화적 해석을 적용하기에 더 적합한 시라고 생각된다. 이 시의 1,2연에 감도는 설화적인 분위기나 2,4연에 등장하는 정체불명의 ‘도적놈’을 감안하면, 이 경우에야말로 텍스트 바깥의 세계와 연결해서 읽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 한가지 가능성으로, 창비무명인처럼 ‘일선동조론’의 연원인 스사노오노미꼬또(須佐之男命) 강림신화를 적용해볼 수 있다고 본다. 즉 “일본은 스사노오의 누님인 아마테라스가 군림하는 ‘누님의 집’이고, 우리나라는, 특히 신라는 ‘남동생의 집’이라고 볼 수 있”(「국화꽃의 비밀」 6)다면 그 ‘도적놈’은 2차대전의 승리 후 한국과 일본을 점령한 미국의 상징이 아닌지 검토해볼 만하다. 물론 어떤 경우라도 신화적 해석이 곧장 작품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를 대신할 수 없지만, 그 평가의 과정에 중요한 논거가 될 수는 있다.

 

 

3

 

「국화꽃의 비밀」의 새로운 집필·발표 방식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창비무명인은 글을 연재하면서 창비 네티즌들에게 “제 글의 연재물을 맨 끝까지 다 읽은 후에 반론을 제기하시기 바랍니다”라고 요청했으나, 이 요청은 인터넷 특유의 쌍방향성과 현장성 탓에 연재 1회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글을 연재하는 도중 수많은 사람들이 기대와 찬탄 혹은 불신을 표하는 댓글을 달았고, 김흥년은 4회분 게시 후에 이미 본격적인 반론까지 올렸으니, 필자의 신경이 곤두서지 않을 수 없었을 터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때이른’ 반응들이 창비무명인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 것 같진 않다. 오히려 글의 논리와 구성을 보강하는 데 기여했을 가능성이 큰데, 그 때문인지 원래 150매 가량이라고 밝힌 것보다는 논문이 연재중에 두 배 이상 늘어났다. 게다가, 몇차례 보론 성격의 글도 올리고 인터넷 링크를 통해 관련 싸이트도 소개하고, 나중에는 네티즌들의 반론에 직접 응답하면서 논의는 한층 더 풍성해졌다. 이처럼 인터넷 특성을 최대한 활용하는 집필방식이 자유게시판의 활력을 드높였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창비무명인이 자신의 글을 창비 자유게시판에 발표한 것도 새롭고 과감한 시도인데, 이런 역작이 문예잡지에 실리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는 네티즌들도 있었다. 쑈쑈쑈는 이 글을 창비의 간행물에 실을 의향을 묻고 허르즈만은 창비의 다음 편집에 넣어 “햇빛을 쬐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이런 요청에도 일리가 있지만, 다른 한편 자유게시판에서 1000회의 조회수에 육박하는 「국화꽃의 비밀」은 이미 충분히 ‘햇빛을 쬐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창비무명인의 연재를 비롯하여 창비 ‘자게’의 추천글방에 차곡차곡 쌓이는 명문들을 열람하면서, 자유게시판이야말로 말뜻 그대로의 ‘잡지(雜誌)’라는 생각이 스친다.

또하나, 창비무명인의 미당론과 그 반응을 보도하면서 동아일보의 한 기자가 상식 밖의 오보와 왜곡을 저질렀다는 것은 주목을 요한다. 이는 사심없는 비평에 근거해야 할 미당 시의 평가가 작금의 언론개혁을 둘러싼 편가르기 구도에 알게모르게 영향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이다. 창비 자체도 이제는 하나의 문화권력으로 인식되는만큼 끊임없는 자기성찰을 필요로 한다. 이 점에서 창비 자유게시판은 창비를 비판·감시·후원하는 네티즌들의 토론공동체가 아닐까. 창비무명인의 맹활약 이후 자유게시판은 상대적으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지만, 진중권 등 역전의 노장들뿐 아니라 지요하, 박수부대, 월촌, 공동경비 등등 ‘내공’이 상당한 새 네티즌들까지 저마다 언어의 마술을 부리면서 세상과 문학과 인간에 관한 온갖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간혹 기세싸움으로 게시판이 도배되기도 하지만 곧 화해하면서 사유와 언어의 ‘쇼’는 계속된다. 진보(좌파)건 보수(우파)건 열린 광장의 기본예절만 지킨다면 창비의 자유게시판은 진지한 논의와 열정적인 비판은 물론 유머와 해학, 기지와 풍자가 살아 있고 풀뿌리 인생살이의 냄새가 물씬 나는 시끌벅적한 장터 같은 싸이버광장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다양한 성향의 네티즌들이 좀더 살맛나는 세상을 이루기 위해 바흐찐이 피력한 다성성(多聲性)의 이야기꽃을 밤새도록 피우는 그런 광장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