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시 | ‘창비시선 200’ 기념 특집
박영근 朴永根
1958년 전북 부안 출생. 1981년 『反詩』 6집으로 등단. 시집으로 『취업공고판 앞에서』 『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 등이 있음.
월미산에서
유리창이 깨어지고, 낡은 팻말이 떨어져 뒹구는
군대막사들을 나는 아직도 믿을 수가 없다
그리고 온통 푸른 빛을 내뿜고 있는 유월의 나무숲
월미산에 와서 나는 여전히 네이팜탄의
불길과 미군 함정의 함포사격과 옛 정보국 자리
녹슬어가는 소문들을 생각하고,
송신탑이 박혀 있는 산머리
어두운 방공호 속을 들여다본다
거기 우리가 스스로 키운
금지된 시간들 속을 살아 저희들끼리 보듬고 있는
이름을 알 수 없는 풀들 어떤 역사나 믿음보다
먼저 제 몸을 찾아 기우는 햇살에도
환하게 물들어가는 저 나무숲의, 얼마나 많은 바람과
햇빛과 눈비와 꽃들이 나의 기억을 지울 수 있을까
바라보면 하인천 너머 만석동 소금기도 없이
바래어가는 오래된 공장들의 침묵과
저물기도 전에 벌써 지쳐버린 바다
나는 산을 내려와 기름덩이 폐수와 아우성
네온싸인 불빛들을 토하고 있는 파도를 보며
좌판에서 잔술을 마신다 방파제에 부딪쳐
낮게 스러지는 물소리가
어둑하게 저물어가는 먼데 섬들 너머
달을 띄울 때까지
나에게 묻는다
바위가 바위에게 묻는다
강물이 강물에게 묻는다
바람이 바람에게 묻는다
고산면 성재리, 한점 노을도 없이 산은 어두워오고
더 무겁게 뿌리를 내리는 돌들
간밤 내내 나를 흔들던 빗소리를 찾아
내가 홀로 나에게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