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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
지금 다시 문제는 ‘인디’다!
인디 음악의 현주소
강헌 姜憲
대중음악평론가 authodox@orgio.net
오버그라운드와 언더그라운드는 대중문화의 적대적인 대립항인가? 그렇다. 이 개념은 모든 문화적 생산의 궁극적인 헤게모니가 과연 누구의 손에 쥐어져 있는가의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이 문화의 분류항은 그저 ‘스타’와 ‘무명’을 나누는 경계선이 아니다. 무명의 오버그라운드가 있을 수 있고, 성공한 언더그라운드가(아직 우리나라에선 클럽 ‘드럭’의 밴드 ‘크라잉 넛’ 정도지만)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문화가 산업의 영역으로 편입된 20세기 자본주의 시대에 이르러 문화의 중심은 19세기의 천재적 예술가에서 탐욕스러운 대자본으로 이동했다. 거의 모든 창조적인 재능은 대량복제된 상품의 형태로 변모하여 시장의 이윤을 창출하는 도구로 바뀌게 되었다. 대자본에 바탕을 둔 문화산업은 순식간에 대중적인 영향력을 확산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역시 과학기술혁명의 산물인 텔레비전과 라디오 같은 전파매체의 성장과 보조를 맞추며 수천년 동안 진행되어온 인류의 문화적 관습을 일거에 바꾸어버리는 가공할 만한 위력을 발휘한다. 이와같은 매스미디어 체제에서 한 인간의 재능은 주요하지 않다. 모든 것을 씨스템이 지배하는, 한마디로 컨베이어 공정의 세상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인류의 문화사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대자본의 이윤동기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인간 고유의 욕망은 예술의 독립을 꿈꾸게 되었고, 그것은 50년대 미국의 변방에서 ‘인디 레이블’이라는 하나의 해방구를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언더그라운드보다 훨씬 집약적인 표현인 ‘인디’(indie)는 그렇게 태어났다. ‘independent’라는 형용사의 약어인 인디는 말할 것도 없이 ‘대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뜻하는, 자본주의 문화산업 안의 게릴라 정신이다. 이들은 시장은 승인하지만 시장논리는 승인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의 머리와 손에서 만들어지는 문화의 주인이 온전히 자기 자신이기를 주장한다. 그리고 자신의 창작동기가 자신의 밖에서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서 생성되기를 희망한다. 다시 말하지만 인디는 버림받은 무명 청년들의 자학적인 몸부림이 아니다. 그런 자들은 그냥 무명의, 재능없는, 자신의 철학도 가지지 못한 자들이다.
식민지시대부터 한국의 언더그라운드는 엄격하게 통제되는 중앙집권적인 문화씨스템에서 아예 탄생할 수 있는 조건을 지니지 못했다. 그것은 해방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으며, 정해진 눈금 밖으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순간 그것은 불온의 낙인을 받아야 했다. 모든 문화는 체제순응적이었으며, 자발적인 하위문화들은 감시 대상이 되었다. 그리하여, 적어도 우리의 불우한 조국에서 ‘언더그라운드’라는 말은 어딘가 모르게 비밀결사적인 향기를 뿜어낸다. 아닌게아니라 그렇다. 홍익대 근처에서 돌출하고 있는 펑크록 클럽은 말할 것도 없고(바로 얼마 전까지 여기가 식품위생법에 의거한 불법 공간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라!), 80년대 대학에서 은밀하게 유포되던 불법 노래운동 테이프들, 그리고 전투경찰의 공격에 대비하여 쇠파이프로 무장하고 관람해야 했던 독립영화들이 그러하지 않았던가?
인디가 하나의 문화적인 콘써트로 자리잡는 데엔 수많은 희생이 필요했다. 그 희생을 바탕으로 이 땅의 상상력을 목졸라온 기만적인 사전심의제도가 무너지고 표현의 자유가 승리를 거둔 1996년부터, 20세기가 저무는 그 싯점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다양한 표현의 가능성들을 합법적으로 접할 수 있는(그래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제지가 심하지만) 권리를 가지게 되었다. ‘황신혜밴드’ ‘불타는 화양리 쇼바를 올려라’ ‘내 귀에 도청장치’ ‘삼청교육대’─이런 이름들을 어떻게 만날 수 있었겠는가?
이들의 음악적 스타일이나 메씨지는 사랑타령 일색인 주류 스타들의 천편일률적인 목소리와는 달리 다종다양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 비록 거개의 팀들이 아직 거칠고 생경하지만, 이들의 음악적 몸부림에는 붕어빵 같은 브라운관 스타들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는 자유분방함과 생명력이 넘친다. 어쩌면 언더그라운드는 오직 이 순간을 연소하는 현재의 젊음이며 미래의 머나먼 약속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다양성과 개성이 개화하기 시작한 90년대 한국 대중문화의 또다른 얼굴이기도 하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자본주의에서 자본만큼 현명한 기획자는 없다. 1997년부터 인디 붐을 주도했던 세 축, 곧 홍대 앞 클럽 ‘드럭’과 ‘강아지 문화예술기획’, 그리고 인디 제작·유통사 ‘인디’는 새로운 천년에 이르러 드럭을 제외하고는 모두 몰락의 수순을 걸었다. 한때 붐을 이루었던 클럽 역시 ‘드럭’과 힙합을 중심으로 하는 ‘마스터 플랜’ 등을 제외하면 모두 운영난에 봉착해 하나둘씩 우리 곁을 떠나갔다. 명민한 서태지가 2000년 앨범에서 인디의 전사들을 영입하고 나아가 붐 조성을 위한 일련의 이벤트를 벌이긴 했지만 결정적인 전환점을 이루는 데는 실패했다.
거의 유이(唯二)하게 살아남은 ‘드럭’ 출신의 두 전사 밴드 ‘크라잉 넛’과 ‘노 브레인’을 제외한다면 숱하게 쏟아졌던 인디의 앨범들은 거개가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가 되었다. 그러나 이 펑크록의 생존자들과 ‘CB Mass’를 필두로 하는 일군의 힙합 그룹의 연착륙과정을 지켜보면 하나의 어렴풋한 중간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즉, 이들의 상대적인 성공은 끈질긴 인내심은 물론 무엇보다도 자신의 성마른 음악적 몸부림을 토착적인 독창성으로 끌어올림으로써 가능했다는 점이다. 인디를 위한 인디, 제스처로서의 반항과 공격성은 ‘위대한 거절’의 지위를 영원히 획득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더그라운드 문화는 잠수함 속의 토끼와 같다. 그것은 오버그라운드 문화가 거품 같은 소모전으로 전락하는 것을 방어한다. 또한 그것은 가난한 신념이자 오만한 몽상이며 자본과 거대매체의 권력에 대한 왜소한 예술가의 독립선언문이다.
지난 4〜5년 동안 많은 이들이 독립 레이블의 슬로건을 외쳐왔다. 그러나 그것은 허울좋은 상표가 아니라 엄연하고 가혹한 현실 투쟁이다. 대기업의 돈을 받아 쓰면서 한때 독립영화라고 ‘선전’했던 충무로 영화계의 기만은 이제 어두운 기억의 저편으로 날려보내야 한다. 독립 레이블은 단순히 대자본의 사슬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제작과 배급의 전과정을 예술가와 그 동료들의 피땀으로 전유하는 진정한 자유의 실현이다. 여기엔 화려한 양탄자도 묘비명도 없다. 그러나 후세의 역사는 이들이 우리의 대중음악 문화를 구원했다고 쓰게 될 것이다. 브라운관에 갇힌 스타가 아니라 눈앞에서 땀을 쏟는 스타, 돈으로 산 연주자나 엔지니어의 이름이 즐비한 앨범이 아니라 컵라면으로 다져진 팀워크로 단숨에 녹음해낸 앨범, 언제라도 지하의 클럽에 찾아가면 만날 수 있는 그런 이들의 음악을 이제는 기꺼이 만날 때가 되었다.
우리에게 그리고 작은 클럽 무대에 선 밴드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스스로에 대한 솔직한 탐문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무장한 가상은 끊임없이 그 탐문에 베일을 씌우며 공명심의 사탕을 앞세워 그것을 원점 이전으로 돌려놓는 유혹을 서슴지 않는다. 클럽은 클럽이며 인디는 인디이다. 우리는 언제나 가장 낮은 곳에서 그리고 가장 작은 것에서 출발해야 하는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