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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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창비시선 200’ 기념 특집

 

이선영 李宣姈

1964년 서울 출생. 199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글자 속에 나를 구겨넣는다』 『평범에 바치다』 등이 있음.

 

 

 

수(數)

 

 

공같이 둥근 머리는 하나요,

반짝반짝 빛나는 눈은 둘이요,

냄새를 잘 맡는 코는 하나요,

냠냠 잘 먹는 입도 하나요,

음악소리 잘 듣는 귀는 둘이요,

튼튼한 팔다리가 둘씩이래요

피아노를 잘 치는 손가락은 몇일까

우리 모두 다 같이 세어봅시다

하나아두울셋네엣다아섯여서어일곱녀덟아홉녈

 

 

아이는 수를 센다

손가락 발가락을 세고

색연필 수를 세고

싸인펜 수를 세고

가장 큰 수를 찾아 ◯표 하고

가장 작은 수를 찾아 ◯표 하고

같은 수끼리 잇고

빠진 수를 채워넣고

희석이가 가진 장난감이 윤주가 가진 것보다 두 개 많다는 것을 알아내고

 

몇월 며칠 날짜를 쓰고

제 나이를 답하고

아빠 엄마의 나이를 묻고

몇시 몇분 시계바늘을 배운다

 

아이가 수를 센다

더러 모자라고 더러 넘치는

열 손가락을 열심히 불러들였다 불러세우며

더하고 빼는 셈을 한다

 

수,

몰라서는 안되고

기어이 알아야만 할

네 인생의 陷數

 

너는 이제 그, 무서운 시작이다

 

 

 

산고, 탈고, 배설고

 

 

낳는 힘 못지않다

버리거나

비우는 데 드는

안에 가득 찬 것을 밖으로 드러내거나

쏟아내는 데 드는 힘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이를 악문다

꼭꼭 씹어삼켜도 신음소리가 새나온다

배가 아프다

엉덩이가 배기고 다리가 저리다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한고비를 넘기면 다른 한고비다

그냥 이쯤에서 그만두고 싶다

하지만 여기서 그만두면 여기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끝나지 않는다

조금만 더 참아야지,

끝이 가까워오고 있다는 걸 알게 되는 때가 있다

이제 곧 끝날 것이다

이 受苦로움

이 苦로움

다 넘기면

고단함에 한풀 꺾어진 내 몸엔

280일간의 懷妊, 그 長苦가 남긴 죽은 자줏빛 줄무늬만 또 한줄

아아, 길고 깊게 그어져 있을 것이다

 

큰 기쁨은 그 줄무늬를 긋고서야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