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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1 | 한국문학의 오늘, 민족문학의 새로운 구도
서정주 시세계
황현산 黃鉉産
문학평론가. 고려대 불문과 교수. 저서로 『얼굴없는 희망』 『아폴리네르─“알코올”의 시세계』 등이 있음. septuor@hananet.net
고은(高銀)의 「미당 담론」(『창작과비평』 2001년 여름호)에 지식사회가 짐짓 놀라는 체하기 전부터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 1915〜2000)에 대한 평가는 한결같지 않았다. 서정주는 어떤 사람들에게 개항 이후 한국문학을 대표할 만한 민족시인이었던 반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친일파이며 신군부에 부역했던 기회주의자였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이력에 대한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겨레의 가장 깊은 정서를 환기력이 높은 시어로 노래한 부족언어의 마술사라는 거의 공식화된 평가가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다. 그의 편에 선 사람들이 오랫동안 문학사의 칭송을 받아야 할 이 훌륭한 시인의 이력에 ‘어쩔 수 없이’ 찍히게 된 오점을 아쉬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도 역사적·정치적 소신을 갖지 못해 거듭하여 악덕을 저질러온 사람에게서 그토록 아름다운 시가 나올 수 있었다는 점을 의아스럽게만 여겨왔다. 아쉬운 감정은 거기서 하나의 운명을 보는 반면 의아함은 거기서 하나의 품성을 본다는 점에서 서로 같지 않지만, 한 시세계가 그 운명 내지 품성과 관계해온 방식을 똑같이 우연으로 돌린다는 점에서 그 둘은 동일하다. 한쪽이 어쩌다 그렇게 된 일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다른 쪽의 눈에 예외적 현상으로 비치는 것도, 표현을 바꾸면 모두 우연의 나쁜 장난이란 말로 요약된다. 게다가 이 우연론 속에서는 그의 정치적 이력이 추녀역(醜女役)을 맡아 그의 시를 실제 이상으로 돋보이게 한 점도 없지 않았다. 그의 작품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그의 추문 속에 숨는 형국이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 미당에 대한 언설은 진지하고 엄정한 평가로부터 그의 작품을 숨겨주는 차단막의 구실을 해왔다. 이를테면 미당의 시가 불교적 세계관을 지향한다거나 노장적 특색을 지녔다는 말은 물론 타당한 것이겠으나 그것이 설명해주는 것은 많지 않다. 그런 세계관의 원론적·구도적 내용은 실상 거의 모든 시의 지향점이며 본질적 성격이기도 하다. 현실의 억압과 일상의 비천함으로부터 얻어진 힘을 등에 업고 항상 시공초월의 기회를 노리는 시와, 인류를 그 비천함에서 절대적으로 구원하려는 종교적 이념이 당연히 공유할 수밖에 없는 영역을, 한 시인이 그의 언어적 모험으로부터 얻어낸 구체적 성취와 혼동할 수는 없다. 이러한 논의 속에서, 시인의 몫으로 남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저 최초의 낙원을 그 자신의 조절되지 않는 욕망에 따라 분열시키고 자기 시대의 협착한 시야에 맞춰 세속화하였다는 혐의에 불과할 것이다. 물론 미당에게서 불교는 그의 시가 지향하는 마지막 목표이기 이전에 그 미학적 원리일 수 있고, 실제로 그렇기도 하다. 그러나 이 미학적 원리로서의 불교도 시인의 모든 시가 환원되어야 할 투명한 자리가 아니라, 그 시적 실천의 현장경험을 반영하고 그 시의 현재성과, 다시 말해서 그 언어적 설득력과 분리되지 않는 문제적 요소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미당의 시가 이 문제 밖에 놓이기를 바랐던 것은 먼저 미당 자신이었던 것 같다. 한 시인이 나이 마흔에 귀신을 보았다고 말하게 되면, 그가 정말로 귀신을 보았건 보지 않았건 간에, 그가 그리는 것은 귀신을 본 사람의 세계이다. 우리는 귀신에 관해 아는 것이 없기에 그 세계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다. 귀신이라는 말로 해명이 끝난 이 세계는 자기완결의 상태로 투명하게 ‘보존된다’. ‘불교’를 비롯한 이 투명한 무갈등의 세계는 사실 미당의 영광이 아니라 그가 이미 짊어져왔고 또 이제는 벗어버리지 못하게 된 멍에의 하나이다. 이제 미당의 시가 미래에 전해줄 수 있는 유산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그의 시를 저 고대의 종교적 지혜로 환원하고 싶어하는 모든 비평적 음모에 붙잡히지 않을 수 있는 힘을 시 자체에 얼마큼 확보하고 있느냐에 따라 그 질이 달라질 것이다.
이 글은 서정주의 시가 지닌 힘의 크기와 방향을 알아보는 데에 목적을 둔다. 『화사집(花蛇集)』(1941)과 그 이후의 여러 시집에서 늘 중요하게 평가되었던 시편들을 고찰하여, 미당 시의 변용과정과 그 ‘언어 마술’의 진정한 내용을 밝히고, 이를 바탕으로 그의 언어관과 시법(詩法)이 그의 정치적 이력과 맺고 있는 관계를 규명하여 비판하려는 것이다.
출분과 귀향
서정주의 초기시에 미친 보들레르(Ch. Baudelaire)의 영향은 자주 지적되어왔지만 치밀한 분석을 얻어내지는 못했다. 서정주가 보들레르로부터 읽은 것은 육체적 관능의 현기증과 그에 대한 죄의식 따위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식민지의 곤궁하고 마비된 삶을 어떤 새로운 전환의 출발점으로 삼으려는 창조의식과, 세상의 몰이해를 어떤 예외적인 삶의 표지로 삼으려는 시인으로서의 운명의식과 소명감이다. 젊은 시절 서정주의 시인관이 피력된 「자화상(自畵像)」(1939)은 그 첫머리에서부터 가난에 관해 말한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었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外할아버지의 숱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었다 한다.
스물세햇동안 나를 키운 건 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罪人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天痴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틔어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우에 얹힌 詩의 이슬에는
멫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트린
병든 숫개마냥 헐덕어리며 나는 왔다.
보들레르의 『악의 꽃』(1861)에서 이와 상응하는 시를 찾는다면 말할 것도 없이 시인의 저주받은 탄생과 그 고뇌와 영광을 노래하는 「축성(祝聖)」이다. 보들레르는 여기서 전능한 하늘의 “명을 받아 시인이 이 지겨운 세상에 태어났을 때”, 그의 어머니는 불경한 생각을 가득 품고, 신에게 주먹을 쥐어 흔들며 욕설을 퍼붓는다고 말한다. 하늘이 한 아이를 시인으로 점지하고 축복한다는 것은 곧 이 세상과의 불화를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아이는 세상에서 겪을 온갖 학대와 고뇌야말로 “우리의 부정(不淨)을 씻어주는 신약(神藥)”이라고 믿고 의무를 완수하여 “원시광(原始光)의 거룩한 원천에서 길러낸 순수한 빛으로” 짜인 왕관의 주인이 될 것을 하늘에 맹세한다. 보들레르의 이 생각은 세상의 편협한 이해를 넘어서서 우주의 섭리와 조화를 노래하는 자가 시인이라는 낭만주의적 시인관에 뿌리를 두고 있다. 거기에 보들레르가 덧붙인 것은 세상이 시인을 오해할 뿐만 아니라 학대한다는 사실을 강조하여 시인과 산업사회의 갈등을 부각시켰다는 점이다. 그에게서 시인의 영광은 세상에 대한 복수와 동의어가 된다. 서정주는 시인의 탄생에 축복과 저주의 기능을 함께 담당하는 신 대신에 신분의 미천함과 가계의 유전을 대입함으로써, 하늘의 섭리와 시인의 절대적 소명을 사가화(私家化)한다. 더불어 시인과 사회의 관계도 역전된다. 그는 시인으로 태어났기에 세상의 핍박을 받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받도록 태어났기 때문에 시인이다. 시인을 학대하는 “지겨운 세상”에 대한 보들레르의 단호한 탄핵에 비해, 한 식민지 젊은이의 시인으로서의 신원증명은, 자신의 불리한 여건들을 통해 순결성을 확보하려는 노력과 그 감정의 밀도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매우 소심한 것이 사실이다. 그가 이 순결성으로 얻기를 기대하는 것 역시 많지 않다.
“멫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인 채 서정주의 “이마 우에 얹힌 시의 이슬”은, 보들레르가 만들어내기를 바라는 시인의 왕관이 아니라, 그 재료인 “원시광의 거룩한 원천에서 길러낸 순수한 빛”에 대한 탁월한 동양적 번안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순결한 재능과 저주받은 삶의 표지에 불과하다. 보들레르에게는 그가 원하는 관(冠)과 그 재료인 빛 사이에 저 플라톤적 이데아 세계와 물질세계를 가르는 단절이 있으며, 시인이 건너가야 할 것도 그 단절이다. 한국의 젊은 시인 서정주에게는 이 단절이 없으며, 따라서 건너가야 할 세계도 자기변모에 대한 전망도 없다. 가난하기에 그만큼 순결한 세계에 그는 갇혀 있다. 이 상태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세계에 대응하여 감정의 밀도를 강화하는 것뿐이다. 서정주의 시 가운데 대중적으로 가장 크게 성공한 「국화 옆에서」(1947)가 소쩍새의 오랜 울음과 먹구름 속의 천둥과 간밤의 무서리를 말하면서도 자기폐쇄의 거울에 갇힌 한 여자를 그 중심에 앉혀두는 것은 이 점에서 매우 시사적이다. 서정주에게 그의 가난하고 변화없는 시골은 「서풍부(西風賦)」의 “서서 우는 눈먼 사람”이며 “자는 관세음”이다. 서정주의 초기시에서 공격성을 띤 동사의 사용은 자주 지적되어온 바이지만, “윙윙그리는 불벌의 떼를/꿀과 함께(…)가슴으로” 먹는 일이나(「정오의 언덕에서」), “비로봉상의 강간사건들”(「桃花桃花」)은 모두 감정의 어두운 굴레를 깨부수려는 공성(攻城) 작전과 같다. 그러나 이 공격의 방향은 밖보다는 안을 향하기에 결과적으로 자기파괴의 성격을 띤다. 그에게 “길은 항시 어데나 있고, 길은 결국 아무데도 없다”(「바다」). 관념의 열린 길과 현실의 막힌 길, 이 두 길은 미당에게서 자주 교체될 뿐만 아니라 뒤섞인다. 미분화의 상태가 자주 종합의 상태와 혼동되는 것이다. 서정주의 문학 전반에 걸쳐 겉으로는 선열한 그의 언어가 자주 순응주의적 태도와 겹치게 되는 것도 이 혼동된 정신상태가 지혜의 한 형식으로 발전한 결과이다.
어디나 길이 있고 아무데도 길이 없는 자에게 출분은 곧 귀향이 된다. 『화사집』의 마지막 시 「부활」에서 좋은 예를 보게 된다. 가난과 억눌림밖에 사건이 없는 동토에서 죽음의 어두운 기억 하나가 기적 같은 말의 힘으로 생명의 얼굴을 들고 피어나는 이 아름다운 시는 또한 미당에게서 도시가 최초로 전면에 등장하는 시로, ‘근대시’에 대한 그의 깊은 감수성을 보여준다. 시인은 종로에서, “뭐라고 조잘대며 햇볕에 오는 애들”의 면면에서 “그날 꽃상부(喪阜) 산 넘어서 간” 고향 마을의 유나(臾娜)를 보며 “이것이 멫만시간 만이냐”고 묻는다. 이 시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그가 도시에서 고향을 본다는 것뿐만 아니라 도시만이 이런 방식으로 고향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고향은 시인에게 죽어버린 유나를 보여주지 않았다. 시인의 “눈동자 속에는 빈 하늘만” 남았고, “매만져볼 머리카락 하나 머리카락 하나” 없었으며, “비만 자꾸 오고…… 촉(燭)불 밖에 부흥이 우는 돌문을 열고 가면 강물은 또 멫천린지” 알 수 없었다. 고향은 결여일 뿐만 아니라 결여의 영구한 형식이다. 도시가 유나를 부활시키는 방법은 이 결여와 관련된다. 시인이 종로를 걸어갈 때 “사방에서” 여자들이 오고 있다. 이렇게 많은 여자를 한꺼번에 사열할 수 있는 것은 도시에서뿐이다. 눈길을 마주치면서 인사를 하지 않고, 최소한 내외의 표현도 없이 지나갈 수 있는 것도 도시에서뿐이다. 죽은 여자는 “그중에도 열아홉살쯤 스무살쯤 되는 애들”의 “눈망울 속에, 핏대에, 가슴속에 들어앉어” 있는 방식으로 여러 개의 모습이 되어 시인에게 차례로 다가온다. 시인은 스쳐지나가는 여자들의 눈동자를 바라볼 수는 있지만, 그 혈관이나 “가슴속에”는 결코 들어가지 못한다. 바로 이 때문에 시인의 시선이 하나의 눈동자에서 다른 눈동자로 건너가는 사이에 그의 마음속에 깊은 심연이 들어선다. 이 찰나의 거리는 그에게서 그와 유나를 갈라놓은 공간적·시간적 간극인 ‘몇만시간’과 ‘몇천리’에 대응한다. 이 죽음과 부활의 반복 속에서 유나는, 시인에게 관심을 두지 않은 여자들의 혈맥과 가슴속에 들어간다. 물론 시인이 진정으로 그 여자들과 교통할 수 없는 것처럼, 시인과 유나의 사이에는 여전히 생사의 거리가 있다. 그러나 이 갑작스러운 추억의 복받침과 줄기참은 고향의 권태와 고독으로는 결코 기약할 수 없는 것이다.
미당은 이 시에서 근대시의 한 체험을 높은 수준에서 보여주지만, 그러나 그에게서 이런 종류의 체험으로는 실상 마지막 체험이기도 하다. 이후 미당은 그에게 고향의 죽은 처녀를 부활시켜준 도시적 계기보다는 그녀를 데려간 ‘돌문’ 너머의 세계에서 반항도 출분도 없이 탈출이 가능할 것 같은 자리를 발견하는 것이다.
부푼 언어와 관념의 통속화
두번째 시집인 『귀촉도(歸蜀途)』(1948) 이후 미당은 일종의 개종을 했다. 그는 ‘천치’나 ‘죄인’이 아니며, “병든 숫개마냥 헐덕어리며” 저주받은 자로서 방황하는 일도 없어졌다. 그의 이마 위 ‘시의 이슬’에 섞여 있을 몇방울의 ‘피’도 완전히 순화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는 모든 구속에서 벗어났다고밖에는 볼 수 없는 어떤 정신이 되어, 선율 있는 토착어로 공교로운 시법을 구사하여 이른바 민족정서를 노래하였다. 아마도 두 시집 『신라초(新羅抄)』(1961)와 『동천(冬天)』(1968)이 그 절정일 텐데, 그보다 앞서 나온 『서정주 시선』(1956)의 한 시 「상리과원(上里果園)」이 벌써 그 시법에 담길 비밀의 한 켠을 보여준다.
「상리과원」은 앞뒤의 문맥에 상당한 모순이 있어 읽는 사람을 당황하게 하는 시이다. 첫머리에서 시인은 “우리 조카딸년들이나 그 조카딸년들의 친구들의 웃음판과도 같은 굉장히 질거운 웃음판”을 꽃밭에서 본다. 거기에 갖가지 새떼들이 모여 “조석으로 이 많은 기쁨을 대신 읊조리고”, 수십만 마리의 꿀벌들은 “왼종일 북치고 소구치고 맞이굿 올리는 소리를” 한다. 충동과 자극으로 충만한 생명의 세계이다. 시인은 이 생명의 개화를 바라보며 “이것들이 잦아들어 돌아오는 아스라한 침잠이나” 지킬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그러나 시의 끝대목에서는 “우리는 차라리 우리 어린것들에게 제일 가까운 곳의 별을 가르쳐 뵈일 일이요, 제일 오래인 종소리를 들릴 일이다”라고 말한다. 별을 보게 한다거나 종소리를 듣게 한다는 것은 오히려 이 생명들에게 침잠을 권하는 일이 아닌가. 물론 여기에는 시간차 같은 것이 있다. 생명이 개화하는 순간에는 그 난만함을 난만함 그대로 인정해야 하지만, 생명이 그 개화의 한 고비를 넘겼을 때, 시의 표현으로는 “초밤에의 완전귀소(完全歸巢)가 끝난 뒤”에는 그 난만함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더욱 넓고 깊은 세계가 있음을 가르쳐 그 만개한 생명을 순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의문이 남는다. 생명이 별을 바라보고 종소리를 들으며 더 잘 개화할 수는 없는 것인가. 개개 생명의 개화는 그 자체로 더 크고 더 깊은 자리에 대한 소망의 결과가 아닐까. 서정주에게서 ‘생명’은 개개 생명의 구체적 실천들을 아우르는 자리라기보다는 오히려 그에 이반하는 자리라고 말해야만 그 대답을 얻을 수 있다. 소쩍새의 울음과 천둥으로 피어난 국화가 폐쇄적 성찰의 거울 속에 갇히는 이력이 여기서도 다시 반복되는 것이다.
서정주의 절창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꽃밭의 독백」에서 읽게 되는 것도 역시 같은 것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구름까지 갔다간 되돌아 오”는 노래, “바닷가에 가 멎어버”린 말, 사냥하여 잡은 산돼지와 산새들에 만족하지 못하고, “꽃”이 그 닫힌 문을 열어 다른 세계를 보여줄 것을 희망한다. 시인은 한 생명의 개화가 그 자체로서 어떤 근원적 진리의 발현이라고 여기고, “벼락과 해일”에 방불한 어떤 비범한 영감의 길이 그것으로 제시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사냥으로 잡은 산돼지나 산새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하늘까지 닿게 노래를 부른다거나 달려갈 수 있을 때까지 말을 달려가는 일도 꽃의 피어남과 똑같이 생명의 실천이자 그 표현이 아닐 것인가. 여기에는 서정주 특유의 수사법이 있다. 한쪽의 노래 부르기, 말 달리기, 사냥하기, 다른 쪽의 개화는 모두 비유일 뿐인데, 앞의 것들과 뒤의 것에 시인이 적용하는 비유의 수준이 다르다. 생명의 구체적 실천인 앞의 것들은 분명하게 알려진 ‘인위적 행위들’을 제유하고, 문학적 인습에 따라 이미 추상화된 표현인 개화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이치’를 은유한다. 그래서 이 시의 단순한 내용은 수사법의 교묘한 배치에 의해 가려져 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벌이는 모든 일에는 이제 싫증이 났으니 다른 이치가 지배하는 세계가 열리기를 바란다’는 말 이상의 것일 수 없다. 불교나 신선도를 끌어댄다고 해서 이 기본내용이 달라질 수는 없다. 미분화의 상태가 종합의 상태와 혼동되는 초기시의 미숙한 사고가 여기서도 다시 연장 반복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함께 주목해야 할 것은 서정주가 불확실한 것에 대한 은유를 말하기 전에 확실한 것들에 대한 비유를 나열함으로써, 그 불확실성에 확실성의 인상을, 다시 말해서 저 알 수 없는 세계의 존재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불확실한 것일지라도 시인 자신에게는 확실하게 지각된 것이 틀림없다는 인상을 심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인상 위에서 ‘시인부락 족장’의 권위가 성립한다.
서정주에게 확실하게 내다본 다른 세계가 있었는가. 『신라초』에서 「무제(無題)」라고 이름붙은 시 가운데 하나를 살펴보는 게 좋겠다. 이 시는 “하여간 난 무언지 잃긴 잃었다”는 말로 시작한다. ‘하여간’이란 ‘설명할 수는 없어도’라는 뜻이겠고, ‘무언지’에 해당하는 것은, 시의 전체 내용에 비추어볼 때, 세상 능력으로는 닿지 못할 초월의 세계이다. 시인은 자신의 시원에 있었을 그 세계를 잃고 회복하지 못했다. 그 세계는 이제 너무 멀고 “바다”처럼 넓어서 거기 닿거나 그것을 다시 안으려는 어떤 노력도 실제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그래서 시인은 “무슨 됫박이나 하나 들고(…)됨질하는 시늉이나 하고 있을까”라고 자탄하며 묻는다. 시의 마지막 연은 다음과 같다.
살 닿는 데 꾸려온 그런 거든가.
네 손이 짧거든 내 손이 길거나
내 손이 짧거든 네 손이 길 것을,
아무리 닿으려도 닿지 않던 것인가.
하여간 난 무엇인지 잃긴 잃었다.
시인은 그 세계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시인이 내미는 손이나 응대하는 손이 모두 짧아 닿지 못할 그 세계에 대한 예감이 있을 뿐이다. 사실, 불가(佛家)의 말을 빌린다면 오온(五蘊)을 털고 반야에 들어서야 만나게 되는 저쪽 언덕이며, 상징주의 식으로 말한다면 육체를 벗은 후 ‘무덤 뒤에서 만나게 되는 광휘’인 그 세계는 한 시인이 그 존재를 인식했다고 해서 설명까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존재에 대한 확실한 예감과 믿음은 이 세상에서 영위되는 삶의 방향과 태도를 절대적으로 바꾸어놓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알 수 없는 그 세계의 진정성은 이 세상에서의 실천이 아니라면 확인할 길이 없을 것이다. 이 시에는 그 세계에 대한 강한 열망도, 거기서 비롯될 삶의 태도에 대한 변화의 기미도 나타나 있지 않다. 물론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무슨 됫박이나”에서, 그리고 “됨질하는 시늉이나”에서 조사 ‘나’는 그 세계의 넓음과 빛남에 비해 너무 보잘것없는 시인 자신의 기획을 비하하는 표현이지만, 다른 면에서는 그 세계의 광대함이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다는 핑계로 오히려 진정한 노력의 짐을 벗어버린 자의 심정적 여유의 표현이기도 하다. 미당에게 그 세계는 닿으면 좋고, 닿지 못해도 무방한 세계인 것이다. 그 세계가 존재하건 존재하지 않건 간에 미당에게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에 대해 운위할 권리는 있으나 그에 대해 봉사할 의무는 없는 이 세계가 바로 미당의 허무의식을 만든다.
이 허무가 미당 민족주의의 본질적 내용이라는 점을 짐작하려면, 같은 시집의 시 「한국성사략(韓國星史略)」 한 편을 읽는 것으로 충분하다.
千五百年 乃至 一千年 前에는
金剛山에 오르는 젊은이들을 위해
별은, 그 발맡에 내려와서 길을 쓸고 있었다.
그러나 宋學 以後, 그것은 다시 올라가서
추켜든 손보다 더 높은 데 자리하더니,
開化 日本人들이 와서 이 손과 별 사이를 虛無로 塗壁해 놓았다.
그것을 나는 單身으로 側近하여
내 體內의 鑛脈을 通해, 十二指腸까지 이끌어갔으나
거기 끊어진 곳이 있었던가.
오늘 새벽에도 별은 또 거기서 逸脫한다. 逸脫했다가는 또 내려와 貫流하고, 貫流하다간 또 거기 가서 逸脫한다.
腸을 또 꿰매야겠다.
주술적으로 세계를 이해하던 『삼국유사』 시대에는 하늘의 별이 인간 개개인의 삶에 깊고 구체적으로 간여하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별은 인간의 길을 닦아주기도 했다. 그보다 더 과학적인 주자학의 우주관으로 볼 때 천체의 운행은 인간에게 훨씬 더 무심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별은 손 닿을 수 없는 곳으로 올라갔다. ‘개화’ 이후에 우리가 알게 된 현대물리학은 별과 인간 개개인의 삶 사이에 상응하는 바가 전혀 없다고 알려준다. 별과 인간이 긴밀하게 교통한다는 믿음은 완전히 헛된 것이 되었다. 이에 시인은 단신으로 하늘에 접근하여 “체내의 광맥”으로 별을 이끌어내렸다고 말하는데, 이는 술을 마시듯 어떤 도취상태에서 별을 마셨다는 뜻이 되겠다. 시인은 배탈이 났으며, 이 육체의 고통 속에서 도취상태는 더이상 유지될 수 없었기 때문에 별은 하늘로 빠져 달아났다. 이 시는 아름답다고 말하면 아름답고 허망하다고 말하면 허망하다. 미당은 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밝혀진 바의 진실을 앞에 놓고, “손과 별 사이를 허무로 도벽해 놓았다”고 말한다. 허무는 새롭게 알려진 진실에 의해 야기된 것이 아니라, 그 진실에 적절하게 대응하여 별과 인간생활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지 못한 데서 비롯한 것임을 짐짓 모른 체하는 것이다. 물론 그도 별과 인간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기 위해 별을 마신다. 그가 별에 “단신으로 측근”했다고 말할 때, 거기에는 모든 것을 수치화하여 세계의 표면만을 이해하려는 학설 일반에 대항하여, 물질에서 물질 이상의 것을 보았던 좋은 전통의 맥을 시인 혼자라도 잇겠다는 의지가 있다. 그러나 진실을 인정하고 뛰어넘기보다는 그것을 폄하하고 눈을 감은 상태에서 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으로 설정된 이 관계에 미래를 기약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가 ‘장을 또 꿰맨다’고 하더라도 그의 ‘별 마시기’가 또다시 허무에 이를 것은 당연하다. 미당은 특히 이 시에서 주자학을 ‘송학’으로 부르고, 현대물리학의 개입을 ‘개화 일본인들’의 책임으로 돌린다. 주자학이 한 이치를 말할 때 그 이치가 송나라 사람이나 중국인들만의 이치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물리학의 진실이 일본인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님을 미당은 모를 리 없다. 그가 외세를 들먹여 선동하는 민족감정과 그로 인한 도취는 그의 왜곡을 숨기고 한 인간이 별을 마신다는 게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고 믿게 하는 심리적 배경으로 구실한다. 그의 민족주의는 이와같이 자주 허무한 사고의 외피가 된다.
미당이 이 시에서 노리는 것은 어떤 해학적 효과일 뿐이라 하더라도 그 위험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이런 경우 농담이란 한 사안을 토론이 불가능한 곳에 올려놓는 장치일 뿐이기 때문이다. 미당에게서 미래적 전망을 가질 수 없는 인습적 사고가 늘 민족정서의 도취를 필요로 하듯이, 한 진실을 앞에 놓고 그에 대한 판단을 흐리려 할 때 해학적 토속어가 동원되는 예를 우리는 자주 목격하지만 그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거론하기로 한다.
『신라초』에서 미당류의 거대기획들은, 「한국성사략」에서 보듯이, 성공 직전에 작은 장애가 발견되어 실패로 돌아간다는 식의 구조를 지닌다. 이때 그 거대기획의 상상과 입안은 시인의 능력이 되고 거기에 맞서는 사소한 장애요인들은 타락하고 변질된 세상의 몫이 된다. 시집 『동천』에 들어서면 이 장애요인들마저 사라진다. 그것이 극복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아예 시인의 셈에조차 들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은 「동천」의 전문이다.
내 마음속 우리님의 고운 눈썹을
즈문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날으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시인이 하늘에 심은 “우리님의 고운 눈썹”은 물론 초승달이다. 말하자면 이 시는 초승달의 내력을 설명하는 우주창조의 설화시에 해당한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전설상의 인물이 감당해야 할 자리를 시인 자신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이 시는 비슷한 제재로 똑같이 조각달을 노래했던 황진이의 「영반월(詠半月)」과 비교된다. 황진이의 시에서 반월은 원래 곤륜산의 옥으로 빚은 직녀의 빗이다. 직녀는 견우와 이별한 후 그 빗이 부질없는 것이라 여겨 푸른 허공에 내던져두었다. 반달이 직녀의 빗이라는 생각은 직녀의 전설에 본디 없는 것으로 황진이의 창안이다. 그러나 황진이는 자신이 창안한 것을 전설의 사랑에 바친다. 그녀는 자신의 슬픈 사랑이 전설의 그것에 도달하기를 바랄 뿐 그것 자체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황진이와 서정주의 차이는 분명하다. 황진이에게는 한 인간의 사랑을 전설적 관념의 높이로 끌어올리는 것이 문제라면, 이미 그 자신이 전설 속에 들어간 미당에게서는 그 관념으로부터 그에 합당할 사랑을 생각해내는 것이 문제이다.
현실이 관념을 생산할 수는 있지만 관념이 현실의 사랑으로 되는 일이 가능할까. 가능한 것은 그 통속화가 아닐까. 전설의 자리에 자신을 올려놓는 서정주의 자부심은 실상 한 관념의 쇠락을 증명한다. 한 전설적 관념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임자가 없는 청풍명월처럼 벌써 낡고 쇠락하여 임자가 없어진 통속적 관념을 사유화함으로써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 때는 빛나는 생명을 가졌던 이 관념들의 통속화로 서정주는 그 나름의 어떤 정신적 경지를 열었다. 이 경지를 대표하는 것은 모든 갈등에서 벗어나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 인물들이다. 예를 들어 『떠돌이의 시』(1976)의 「우중유제(雨中有題)」에서 “신라의 어느 사내”는 수풀에서 진땀을 흘리면서 성애(性愛)를 하다가 감나무에서 굴러떨어지는 “홍시에 마음이 쏠려/또그르르 그만 그리로 굴러가”버린다. 진행중인 성애조차 그를 붙잡을 수 없었다. 그러나 홍시에 대한 욕심은 무엇일까. 그는 집착을 끊은 것이 아니라 집착하지 않아도 괜찮을 일, 그 내용이 비어 있기에 어떻게 끝나도 좋을 일을 하고 있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한 관념이 통속화되었다는 것은 벌써 그 내용을 상실하여 어떻게 말해도 좋을 그런 종류의 빈 관념이 되어 있음을 말한다. 어떻게 말해도 좋기에 가능한 한 부풀려 말하는 방식, 그것이 바로 절정기 미당의 무갈등 시학이 된다. 표현의 외연이 지나치게 넓어져 판단의 지표를 정할 수 없는 세계에서 갈등이 갈등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시적 허용과 정치적 허용
시는 많은 것을 허용한다. 논리가 부족하면 선율로 땜질을 할 수 있고, 그 둘이 모두 부족해도 새로운 이미지 하나를 제시하는 것만으로 그 시적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한 생각을 드러내는 데에 문법이 거추장스러울 때는 그것을 벗어던질 수도 있다. 시는 속삭이듯 무람없이 말할 수도 있고, 잡소리와 웅변을 한데 섞을 수도 있다. 독자가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시인 자신이 모르는 시일지라도, 그것이 현실의 한 측면에 깊이 간여하고 있다고 진지하게 평가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시는 이 특별한 허용으로 주어진 문화와 주류 이데올로기를 뛰어넘어 한 생각의 단초를 끌어내고, 때로는 언어의 한계 밖에서 그것을 표현해온 역사가 있다. 시는 제가 쓰는 말을 해방시킴으로써 세상을 해방해왔다. 서정주는 자신의 시에 이 허용을 매우 적극적으로 이용하였으며, 그 결과 식민지시대와 그 이후 오랫동안 주눅들어 있던 민족의 언어에 그 정서적 표현역량을 드높였다는 공적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언어적 허용에 기대어 그의 무갈등적 시어가 성립하였다는 점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서정주에게서 시어의 허용은 주어진 사고의 틀 속에서 미래적 사고를 예감하거나 선취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언어 주체의 하부에서 낯선 목소리를 끌어올리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가 은밀하게 사용하는 토속 방언들과 무람없이 부풀린 개념 표현들은 이미 있었던 것과 지금 있는 것을 그 낯익은 습관으로 영속화하는 데에 이용되었다. 이 언어적 특징은 그의 고향 사람들이 여전히 고려인이나 신라인으로 남아 있고, 색주가 앞에 여전히 김유신의 말 피가 흥건한 그 시세계의 실상과 같다. 거기에는 본질적인 의미에서의 변화가 없으며, 시간조차 없다. 『동천』의 「한양호일(漢陽好日)」에서 꽃 파는 총각은 자전거를 타고도 여전히 “이조(李朝)의 낡은 먹기와집 골목길”을 지나가며, 『떠돌이의 시』의 「구례구(求禮口), 화개(花開)」에서는 한 여자아이의 “눈길에 나동그라지는” 모습이 옛날 신라시대 어느 눈오는 날 “여기서만 칡꽃도 다 피었다고” 해서 “화개(花開)”인 그 화개를 다시 반복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말하는 사람과 알아듣는 사람이 서로 은밀한 눈짓을 교환하면서 이어질 이 “부족 언어”에는 발전이나 성장에 해당하는 것이 없으며, 다만 반복되는 것에 대한 세련된 과장이 있을 뿐이다. 미당의 시어는 본질적으로 신화적 언어인데, 모든 존재와 사물 앞에서 그 기원과 현실을 혼동한다는 점에서만 신화적이다. 현실은 그것이 아무리 옹색한 것일지라도 그 기원의 참조를 통해 절대적인 성격을 얻으며, 기원은 그 품안에서만 설명되고 용납되는 오욕의 현실을 통해 과거 속에 한덩어리로 뭉뚱그려진 시간을 지배한다. 신화라는 말을 그 표제에 담고 있는 『질마재 신화』(1975)의 어디를 펼쳐도 읽게 되는 것은 삶의 오욕과 가난이지만, 거기에는 또한 이 궁핍한 삶이 가져오는 거부할 수 없는 매혹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신의 반열에 올라 한 땅의 성가족(聖家族)를 형성하는데, 이는 그들이 단군신화를 원용한 「까치 마늘」의 곰처럼, “쑥허고 마늘을 먹으면서” 한 시대를 견뎌낸 ‘괴력’의 임자들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저 신화시대에서처럼 맨몸으로 물질과 부딪치며 살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흙과 햇빛과 바람과 비 그리고 해일로 표현되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광포한 자연으로 이룩된 이 세계에서는, 지극히 미미한 사건도 미증유의 추문이 되지만, 그 단계를 거치고 나면 그 하나하나가 인간적 운명의 한 기원이 된다. 운명은 따져보아야 소용없는 것이며, 기원은 건드릴 수 없는 것이다. 운명과 그 기원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의 세계는 은밀하지만, 일단 그 장막 안으로만 들어가면 비밀이 없고, 따라서 이해되지 않는 것이 없다. 그 안에서는 모든 일이 용납될 뿐만 아니라, 밖에서 일어난 일도 그 안에서는 용서된다. 방언과 토착적 표현법들, 무람없고 은근한 말투, 갖은 너스레들이 그 세계의 운명과 기원을 공유하는 언어라는 점이야 말할 것도 없다. 은밀한 언어는 용납되지 않을 것은 없다고 말하는 언어이다.
『질마재 신화』의 「소망(똥깐)」에는 서정주적 허용의 철학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변소를 지을 여유가 없어 “하늘의 해와 달이 별이 잘 비치는 외따른 곳에 큼직하고 단단한 옹기 항아리 서너 개 포근하게 땅에 잘 묻어 놓고” 지붕도, 다른 가리개도 없이 용변을 보는 이야기이다. 뒷부분을 적는다.
이것에다가는 지붕도 休紙도 두지 않는 것이 좋네. 여름 暴注하는 햇빛에 日射病이 몇千개 들어 있거나 말거나, 내리는 쏘내기에 벼락이 몇萬개 들어 있거나 말거나, 비 오면 머리에 삿갓 하나로 응뎅이 드러내고 앉아 하는, 休紙 대신으로 손에 닿는 곳의 興夫 박잎사귀로나 밑 닦아 간추리는─이 韓國 ‘소망’의 이 마지막 用便 달갑지 않나?
‘하늘에 별과 달은
소망에도 비친답네’
가람 李秉岐가 술만 거나하면 가끔 읊조려 찬양해 왔던, 그 별과 달이 늘 두루 잘 내리비치는 化粧室─그런 데에 우리의 똥오줌을 마지막 잘 누며 지내는 것이 역시 아무래도 좋은 것 아니겠나? 마지막 것일라면야 이게 역시 좋은 것 아니겠나?
서정주는 이 용변과 관련된 수치심에 관해서는 전혀 말하지 않는다. 그가 약간 염려하는 척하는 것은 일사병과 벼락뿐이지만, 세 번에 걸치는 은근한 의문문과 가람 이병기를 끌어들이는 너스레는 용변행위 자체가 시인에게도 어디에 번듯이 내놓을 수 없는 특별한 일로 의식되고 있음을 완전히 감추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에 대한 최종심급의 판단은 역시 해와 달과 별이 있는 하늘에 있다. 변소에는 지붕이 없지만 하늘이 그것을 대신한다. 다만 지붕은 가려주지만 하늘은 가려주지 않는다. 하늘은 드러내면서 동시에 용서하는, 그래서 결국은 ‘덮어주는’ 이상한 가리개이다. 하늘이 지붕을 대신할 때 거기에는 수치심 자체가 없다. 그런데 실제로 이 하늘의 역할을 하는 것은 ‘누구는 똥오줌 안 누나?’라는 막말이며, 그것을 하늘을 향한 마지막 소망에 결부시키는 시인의 너스레이다. 저 자신을 덮으며 동시에 모든 것을 덮어주는 이 토착정서의 말들은 벌써 하늘의 뜻을 따르면서 저 자신이 하늘로 구실한다.
서정주는 자신의 친일행위를 변명할 때도 하늘을 지붕으로 삼는 이 철학을 원용한다. 『팔할이 바람』(1988)의 「종천순일파(從天順日派)?」 편에서 좀 길게 인용하자.
그러나 이 무렵의 나를
‘친일파’라고 부르는 데에는 좀 이의가 있다.
‘친하다’는 것은
사타구니와 사타구니가 서로 친하듯 하는
뭐 그런 것도 있어야만 할 것인데
내게는 그런 것은 전혀 없었으니 말씀이다.
‘附日派’란 말도 있긴 하지만
거기에도 나는 해당되지 않는 걸로 안다.
일본에 바짝 다붙어 사는 걸로 이익을 노리자면
끈적끈적 잘 다붙는 무얼 가졌어야 했을 것인데
나는 내가 해준 일이 싼 월급을 받은 외에
그런 끈끈한 걸로 다붙어 보려고 한 일은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때 그저 다만,
좀 구식의 표현을 하자면─
‘이것은 하늘이 이 겨레에게 주는 팔자다’ 하는 것을
어떻게 해서라도 익히며 살아가려 했던 것이니
여기 적당한 말이려면
‘從天順日派’ 같은 것이 괜찮을 듯하다
이때에 일본식으로 창씨개명까지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우리 다수동포 속의 또 다수는
아마도 나와 의견이 같으실 듯하다.
서정주가 ‘친일’과 ‘부일’을 설명할 때의 말투는 이미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다. “우리 다수동포 속의 또 다수”에게 소명하는 이 무작스럽고 무람없는 어조는 이 시인의 여러 시에서처럼 시비의 곡절과 높낮이를 평면화한다. ‘종천순일’이라는 말은 매우 교묘하다. ‘종천’이란 하늘의 명에 따랐다는 뜻이겠지만, ‘순일’은 일제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순응했다는 뜻일 수도 있고, 나날의 생명보전에 필요한 일을 거역할 수 없었다는 뜻도 된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생명보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제의 요구를 따랐지만 이는 크게 보아 하늘의 명령을 거역한 것이 아니라는 말로 해석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저 가난한 고향의 ‘소망’ 신화로 돌아가게 된다. 서정주에게 그의 ‘순일’이 지붕 없는 변소에서 대소변 보기로 이해된다면, 그 해와 달과 별을 거느리고 그를 덮어주는 것은 ‘종천’이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가 시에 허용하는 말은 이와같이 그의 정치적 이력을 허용한다.
미당은 늘 낡은 것을 세련된 언어로 반복했다. 그가 민족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반복되는 낡은 것을 허망하게 일컫는 다른 이름이었다. 그가 ‘마술적으로 사용한 부족언어’는, 일을 저지르고 가족들에게 달려가는 아들처럼, 혈연과 지연의 토착정서에 호소하여 모든 논의의 외부에 서는 말들이었다. 원시적 감정과 연결되어 있기에 하늘로 구실하기 좋은 이 말들로 서정주는 자신의 정치적 과오를 덮을 수 있다고 믿었다.
미당에게 역사철학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 허용의 철학이다. 『질마재 신화』의 다른 시 「분지러 버린 불칼」에서 미당은 “여름 하늘 쏘내기 속의 천둥 번개나 벼락을 많은 질마재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무서워하지 않는 버릇이 생겨”났다고 쓴다. 이 대담한 습관은 “역적 구섬백이와 전봉준 그 둘 중에 누가 번개치는 날 일부러 우물 옆에서 똥을 누고 앉았다가, 벼락의 불칼이 내리치는 걸 잽싸게 붙잡아서 몽땅 분지러 버렸기 때문”이다. 너무 잦은 하늘의 처벌에 대한 이 거역은 국가제도의 가혹한 질서에 대한 민중적 항거의 우화이겠지만, 그것은 또한 하늘이 그 질서를 세우기 이전의 상태를 마을의 삶이 ‘되찾았다’는 암시이기도 하다. 미당이 자주 ‘인신주의적(人神主義的)’이라고 수식하게 될 이 ‘무법의 상태’는, 출구 없는 삶이 고여 있는 시간 속에 스스로 침전해놓은 퇴적물들을 깔고 앉아 자신을 특수화·방언화한 모습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는 경험이 이론에, 관용(慣用)이 법칙에 우선한다. 제도적 질서는 명색만 구비할 뿐 영험이 없다. 이것은 또한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를 젖히고 아전이 득세하던 지방문화의 특색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경험과 관용은 폭압적 질서가 그 권세를 되찾고 싶어할 때, 조력을 마다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장 횡포한 힘을 빌려주기까지 한다. 이 삶 속에서는 순응과 거부가 구별되지 않으며, 마음 편한 인습의 형식으로 자유가 주어지지만, 차라리 패배주의적 자기방기에 가까운 이 자유는 “하늘이 이 겨레에게 주는 팔자”를 거역하는 모든 새로운 시도를 비웃는다. 그가 일제의 침략전쟁과 신군부의 폭력에 부역했던 것도 스스로 고백하듯이 새로운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미당의 세련된 과장법과 통속화된 신화적 관념들 밑에는 순결했던 삶의 기원에 대한 그리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 기원에의 그리움에서 한 시인의 구도적 자세를 볼 수도 있다. 미당은 그 기원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시간이 고정되기를 바랐다. 그에게 현실의 모든 문물은 과거의 어떤 것에 상응한다고 여겨질 때만 가치가 있었다. 그는 어디에서나 이 상응관계를 보는 것처럼 말했지만, 그 말을 하기 위해서는 아이의 목소리를, 익살꾼의 목소리를, 자신의 목소리라기보다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짐짓 마음먹은 사람’의 목소리를 빌려야 했다. 그래서 신화를 세속화할 수는 있었지만, 세속을 진정으로 높은 자리에 올려놓지는 못했다. 그 일을 위해 필요한 ‘책임지는 목소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미당의 시세계는 책임없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