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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정희성 鄭喜成
1945년 경남 창원 출생.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답청』 『저문 강에 삽을 씻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가 있음.
눈
나는 안다
그대 눈 속에 드리운 슬픔을
내가 그윽한 눈으로 그대를 바라볼 때
그대는 다른 곳을 보고 있다
그대 눈 속의 남해바다
그대 눈 속의 보리암
그대 눈 속의 연꽃
그대 눈 속의 그림자가
그대와 함께 있기를 열망하는
나를 저물게 한다
나는 예감한다
내 눈 속에 잦아들 어둠을
죽음이 내 눈을 감길 수는 있겠지✽
✽프란시스꼬 데 께베도의 시구(詩句)를 인용
섬광
건너편 승강장에 서 있던 그대와 눈이 마주친 순간
어둡고 긴 터널을 뚫고 온 지하철이 잠시 섰다가 떠나가고
그대는 사라졌다
바람이 그대를 어둠속으로 끌고 들어간 뒤
그대 서 있던 자리에
섬광처럼 꽃이 피었다 지는 것을 보았다
그대 귓가에 닿지 못한 한마디 말
한 처음 말이 있었네
채 눈뜨지 못한
솜털 돋은 생명을
가슴속에서 불러내네
사랑해
아마도 이 말은 그대 귓가에 닿지 못한 채
허공을 맴돌다가
괜히 나뭇잎만 흔들고
후미진 내 가슴에 돌아와
혼자 울겠지
사랑해
남몰래 울며 하는 이 말이
어쩌면
그대도 나도 모를
다른 세상에선 꽃이 될까 몰라
아픈 꽃이 될까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