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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최영철 崔泳喆
1956년 경남 창녕 출생. 198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아직도 쭈그리고 앉은 사람이 있다』 『야성은 빛나다』 『일광욕하는 가구』 등이 있음.
화엄정진
함월산 기린사 가는 나무 그림자
가는 길에 잠깐 발 멈추고 섰다
오랜만에 내리는 가을 한나절
땡볕을 맞고 있는 나락들
땀 좀 식히라고 멈추어준
나무 그늘의 등을
한사코 밀어낸다
뜨거운 총탄 세례
이 불구덩이 형벌을 막지 말라고.
임종
사십년 꼼짝달싹 못하고 누운 너 두고
먼저 가서는 안된다고
너 죽는 거 봐야 나도 따라 눈감는다고
다짐에 다짐을 하다 까만 머리 생생한 팔순 노모
그걸 누워 바라본 예순 아들의 머리가
온통 백발이다
시들어가는 저에게 물 주는 나를
나무는 나무라고 있었으리라
검은 머리 노모는 아들이 죽은 줄 모르고
며칠 동안이나 영지버섯과 죽을 떠먹였다
너 한모금 나 한모금
너 한발짝 나 한발짝
어서 먹고 일어나 저 동구밖 마실 가야지
죽은 나무에 돋아 있는 두어개 잎
끝까지 나 안심시키려고
파랗게 있다
파랗게.
더불유더불유더불유점
이천년 시월 바람이 기울고 하늘이 멈추다
몇종의 목숨이 오늘 또 영원히 죽다
살아서 듣지 못한 부름 죽어 인터넷으로 듣다
애기앉은부채 뻐꾹나리 노랑무늬붓꽃 갈구리신선나비 물두꺼비
남생이 철갑상어 어름치 알락해오라기 붉은가슴흰쭉지
털발말똥가리 긴가락박쥐 흰수염고래 사향노루……
죽은 지 하루 만에 화상으로 영원히 부활하다
더불유더불유더불유점드림씨드점씨오점케이알
표독스런 이빨 포효하는 갈기 애잔한 밤의 곡성
낭랑한 아침의 지저귐을 스피커로 듣다
낮은 밤처럼 고요하고 밤은 낮처럼 소란스러우니
해는 저물고 달은 흉흉하게 불타오르다
싸이버머니로 어르고 싸이버모션으로 맨손체조
클릭 한번에 품종을 클릭 한번에 표정 동작을 바꾸다
더불유더불유더불유점해피나닷컴
씨앗 심고 물 주고 일조량 팔십퍼센트 행복 이십퍼센트
온도 섭씨 이십이도 가끔 우울 구름이 겹치다
습도 육십퍼센트 수분 오백씨씨 빗방울 날리다
화면 가득 뭉실뭉실 피어나는 꽃
컹컹 짖어대는 부라린 눈 잠자코 흔드는 꼬리
닫기 한번에 흔적 없이 증발하다
뿔뿔이 흩어지고 남은 빈 화면 한가운데
커서가 눈을 깜박이며 사라진 것들을 찾아다닌다
너 어디 있니?
✽애기앉은부채…사향노루: 「한국의 희귀 및 위기 동식물 도감」(공개자료실, www. kunsan.ac.kr)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