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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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다시 희망의 6월로

 

 

6월항쟁 15주년을 맞이한다. 이를 기념하여 시민·사회·종교단체 연합으로 반전(反戰)평화대회가 준비되고 있다는 즐거운 소식이 들려온다. 6·15선언 2주년에 즈음하여 더욱 뜻깊은 기념이 될 것이다. ‘반공의 달’ 6월을 ‘민주와 통일의 달’로 바꾼 이 두 사건의 상징성을 음미할 때 항쟁의 정신을 더 높은 차원에서 계승하고, 더 지혜롭게 실천할 다짐이 새로운 때가 아닐 수 없다.

박정희의 죽음이 유신체제의 종식이 아니라 신군부의 집권 즉 유신체제의 재편으로 귀결되었던 80년대의 역전 속에서 6월항쟁은 하나의 황홀한 기적이었다. 유신체제의 재편을 다시 재편하려는 전두환 독재의 기도에 맞서 불타오른 6월항쟁 속에서 80년대 운동을 분할했던 NL과 PD가 하나로 뭉치고, 그 바탕 위에 개혁세력이 광범하게 가세함으로써 항쟁은 완성되었다. 이런 시야에서 보면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의 출현, 그리고 마침내 통일시대의 진입에 이르기까지 ‘쉼없는 목숨의 꿈’을 꾸어온 정치적 상상력의 원천으로서 항쟁은 이후 우리 역사의 불퇴전(不退轉)의 이정표로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항쟁의 승리 직후, 노태우가 그것도 직선제로 집권에 성공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맞이했던 그 참담한 배신의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신군부의 변칙적 재집권이란 4월혁명에 대한 5·16쿠데타의 역습에 버금가는 것인데, 이를 단지 양 김씨의 분열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6월항쟁의 승리가 6·29선언이라는 예방혁명적 조치에 근거한 제한된 것이었음을 짐짓 외면하고 기묘한 자신감 속에 민주세력의 대통합에 소홀했던 운동 전체의 미숙성을 뼈아프게 반성한다.

항쟁 15주년을 맞이하는 21세기의 입구에서 우리 사회는 다시 중대한 고비에 서 있다. 김대중정부가 김영삼정부 말기처럼 부패 속에 위기로 함몰하면서, 개혁작업도 순조로운 진행을 위협받고 있다. 국제적 환경 또한 냉정하다. 부시의 등장 이후 전세계적으로 부시의 모방자들이 준동하면서 이미 작동중인 한반도의 통일시계를 뒤로 돌리려는 안팎의 기도가 손뼉을 마주친다. 이 길항과정에서 남북관계도 일진일퇴를 거듭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낙천·낙선운동(2000)이 침체에 빠진 운동을 구원했듯이, 이번에도 다시, 국민경선제를 통해 우리 민중의 역동성이 의병의 봉기처럼 아래로부터 홀연 부상하였다. 이 힘을 바탕으로 민주·개혁세력의 대통합을 모색하여 21세기로 가는 든든한 기관차를 만들 수 있다면, 한일월드컵과 아시안게임을 통일시계의 역전을 막을 지렛대로 활용할 공간도 그만큼 넓어질 것이다. 6월항쟁의 승리를 신군부의 집권 연장에 내어바친 뼈아픈 좌절을 반복할 수 없다. 민주·개혁세력의 연대가 빛나던 6월, 다시 희망의 6월로 전진하자!

 

분단체제의 와해과정 속에서 한반도가 유동적 상황으로 빠져드는 것과 함께 동아시아가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 지난 세기의 낡은 질서가 붕괴되면서 내뿜는 이 굉음들. 21세기의 입구에서 동아시아 각국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분단체제를 허물어가는 작업과 개혁문화를 정착시키는 작업이 둘이면서 하나인 동시진행적 작업임을 염두에 둘 때, ‘개혁’을 화두로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를 한눈에 통찰할 필요가 절실하다. 이번호 특집은 이런 맥락에서 준비되었다. 먼저 유재건은 「통일시대의 개혁과 진보」에서 현재 국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개혁과 진보’에 대한 담론을 총체적 안목으로 비판, 점검하여 개혁론의 올바른 재정립을 촉구한다. 그는 우선 근본적인 계급적 관점에서 6·15선언 이후의 남북화해과정을 북한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흡수통합정책이라고 비판하는 일부 좌파의 담론과, 혈연적 민족주의의 폐쇄성과 지배력을 경계하는 탈민족주의적 담론을 추려내 그 문제점들을 꼼꼼히 짚어내고 있다. 이들 두 담론이 한국 지식사회의 주된 경향성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이론적 적실성과 대안제시 능력에 대한 근본적인 점검은 올바른 개혁론 정립이 필요한 현싯점에 매우 시의적절한 준거역할을 해줄 것이다. 한편 한국경제의 개혁과제를 문제삼은 정운찬의 「구조조정기의 한국경제」는 구조적인 취약성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더이상 한국경제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견지에서, ‘적자생존 원칙의 확립’과 ‘투명성의 확보’라는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격변기에 들어선 북한과 중국의 개혁과 체제변화 가능성을 각기 문제삼은 김연철과 정재호의 글도 상당한 관심을 끈다. 김연철의 「북한의 탈냉전 발전전략」은 북한의 경제개방 시도가 왜 반복적으로 실패하는가에 주목하여 현재 진행되고 있는 북한 경제개혁의 이모저모를 소상하게 진단하고 있다. 정재호의 「중국의 체제개혁과 미래」는 중국의 체제개혁이 실험성과 점진주의에 기반하여 분권화, 시장화, 소유제 다변화, 자유화 그리고 국제화 등으로 전개되었다고 보고, 그 구체적 실상과 문제점을 상세히 살펴나간다. 시장화, 소유제 다변화, 국제화의 성과에 힘입어 중국경제는 현재 지속적인 성장을 보이고 있지만, 정치적 민주화가 이에 부응하지 못하면 중대한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아울러 경제대국으로 군림하다 이제 세계자본주의의 환자로 추락한 일본경제를 ‘토건국가(土建國家)’라는 독특한 시각으로 분석한 머코맥(G. McCormack)의 「일본의 ‘철의 삼각구조’」도 흥미롭다. 정치인 및 관료, 금융기관, 건설업체로 구성된 ‘철의 삼각구조’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면서 일본 경제개혁의 발목을 잡는 상황, 그리고 엔화의 가치하락이 동아시아 금융위기(1997)를 야기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본의 현재 위기는 결코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다. 그밖에 한일월드컵이 동북아 국제정치에 미칠 영향을 분석한 이근, 노동운동의 관점에서 발전노조의 파업사태를 바라본 박태주의 시평, 그리고 도시빈민과 비정규노동자 문제 등을 다룬 김중미·박영삼의 현장통신도 특집과 연관되면서 오늘의 우리 현실을 진단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이번호에 특별히 마련한 해외촛점 ‘팔레스타인 노트’에 주목해주길 바란다. 작년 9·11 테러 이후의 전개과정에 대해 본지는 깊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 공격에 이르는 일련의 사태에는 일반인의 관심이 컸던 데 비해, 그 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에 따른 사태에는 그렇지 않은 듯하다. 약소국의 설움을 뼈아프게 겪어왔고, 또 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하는 분단체제 속의 우리로서는 이 사태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서방의 대표적 문인들인 뱅크스·꼰솔로·쌀몽이 팔레스타인 현지를 다녀와 쓴 글이라 단순한 현장보고 이상의 진한 전율을 불러일으킨다. 이들을 맞이하는 팔레스타인 시인 다르위시의 감동적인 환영사도 아울러 실었음을 밝힌다.

 

항용 하는 말이지만 이번호도 문학란을 충실히 만들려고 애썼다. 큰 시야의 고은 시인이 오늘의 지구적 현실을 폭넓게 그려낸 11편의 시를 보내준데다가 황명걸·정희성·김정환·이문숙·장철문·진수미·이영광 등 중견부터 신인에 이르는 시인들과, 오랜만에 작품을 선보인 홍희담 그리고 정도상·김윤영·윤성희 등의 작가가 시·소설란의 마당을 든든하게 해주었다.

평단의 날카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리얼리즘·모더니즘 논쟁에 이번에는 황종연이 나섰다. 반론적 성격을 띤 글이지만 리얼리즘론 전반을 폭넓게 분석·비판함으로써 논쟁의 격을 한차원 더 높이고 있어 특별한 고마움을 표한다. 아울러 국지적 삶에 충실하되 세계문학의 지평을 꿈꾸는 민족문학의 입장에 서서 시야를 바깥으로 돌려 한국계 미국작가들의 작품세계를 분석하고 그 가능성을 타진한 유희석과, 박형준·전남진·이원 등 젊은 시인들의 시세계를 시간의 관점에서 파악한 김수이의 평론도 값지다. 또한 아동문학의 전통을 복원하고 새로운 흐름을 일구는 데 앞장 서온 ‘창비아동문고’가 200권을 넘어선 것을 계기로 지금까지의 성과를 짚어본 김상욱의 평론과, 들뢰즈의 『감각의 논리』가 갖는 특징적인 면모를 알기 쉽게 정리하여 그 의미를 명쾌하게 밝힌 진중권의 글도 유익한 읽을거리이다.

김지하·황현산 등 다양한 필진이 참여하고 있는 촌평, 연극 「시골선비 조남명」과 제4회 서울여성영화제를 다룬 김중식·심영섭의 문화평, 숨겨두었던 5·18항쟁의 사진들을 공개하게 된 경위를 밝히는 김인곤의 글, 그리고 국민대 김동훈 교수가 참여하여 더 빛나게 된 ‘독자의 목소리’도 소중한 읽을거리이다. 이번호도 다채로운 글세상이 될 수 있게끔 귀한 옥고를 보내준 필자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崔元植·林奎燦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