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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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劉烘埈

1962년 경남 산청 출생. 1998년 『시와 반시』로 등단. yuhongjun62@hanmail.net

 

 

 

喪家에 모인 구두들

 

 

저녁 喪家에 구두들이 모인다

아무리 단정히 벗어놓아도

문상을 하고 나면 흐트러져 있는 신발들,

젠장, 구두들이 구두를

짓밟는 게 삶이다

밟히지 않는 건 망자의 신발뿐이다

정리가 되지 않는 喪家의 구두들이여

저건 네 구두고

저건 네 슬리퍼야

돼지고기 삶는 마당가에

어울리지 않는 화환 몇개 세워놓고

봉투 받아라 봉투,

화투짝처럼 배를 까뒤집는 구두들

밤 깊어 헐렁한 구두 하나 아무렇게나 꿰신고

담장 가에 가서 오줌을 누면, 보인다

北天에 새로 생긴 신발자리 별 몇개

 

 

 

구두 속의 아버지

 

 

아버지 구두 속에 꽃 심으신다 얘야 나는 구두 신을 일이 없구나 아버지 구두 속에 흙 채우신다 아버지 구두 속에 물 부으신다 아버지 창가에 구두 옮기신다 아버지 손가락으로 검은 구두 속 파신다 아버지 구두 속에 눈알 빠뜨리신다 아버지 씨앗은 빨리 썩어야 싹이 나죠 나도 아버지 구두 속에 물을 붓는다 아버지 구두 속에 오줌을 싼다 구두 속에 빠뜨린 아버지 눈알 싹이 난다 창가에서 턱을 괴고 아버지 떡잎을 바라본다 구두 속에서 아버지 넝쿨 뻗어나온다 나는 아버지 꽃잎을 닦는다 구두 속의 넝쿨이 내 목을 조인다 나는 도끼로 아버지 발목을 힘껏 내리친다 아버지 밑동이 잘린다 아버지 나자빠진다 어머니 울면서 구두 속의 아버지 발목을 뽑아낸다 아버지 구두를 내다버린다 아버지 사라진 베란다엔 화분이 없다

 

 

 

식사

 

 

식판을 든 사람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의자를 놓고 앉은 사람이 가위를 쥐고

일렬로 늘어선 자들의 성기를 잘라 국솥에 던져넣는다

 

차가운 마당가에 앉아 묵묵히 각자의 식판에 대가리를 처박고

밥을 우겨넣는다 사타구니 휑한 사람들이

뜨거운 국물을 떠먹는다

 

숟가락 위에 고환을 떠얹고

먹을까

말까

 

망설이는,

 

망설이는, 망설이는, 煉獄의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