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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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홍희담

1945년 서울 출생. 1988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작품으로 「깃발」 「이제금 저 달이」 「그대에게 보내는 편지」 「김치를 담그며」 등이 있음.

 

 

 

문밖에서

 

 

그 서류봉투는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모서리에는 스카치테이프가 붙어 있고 군데군데 누런 자국이 배어 있었다. 단단히 봉해놓은 위쪽은 손때가 묻어 윤이 났다. 서류봉투 뒤쪽으로 여자의 영정이 벽에 기대어 있었다. 갸름한 얼굴에 눈이 크고 깊다. 작은 날개 같은 도톰한 입술은 금방이라도 웃음소리를 터뜨릴 것 같다. 검은 띠를 두르지 않았다면 단순하고도 엄숙한 죽음의 비밀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얼굴이다. 햇빛이 긴 무늬를 이루며 오른쪽 벽을 지나 출입문을 비춘다. 문에는 사천왕 사진 네 장이 압핀으로 꽂혀 있었다.

문이 열린다. 수환이 들어선다. 스무살을 갓 넘긴 훤칠한 청년이다. 희고 반듯한 이마 아래 두 눈은 영정 속 여자의 눈매와 닮았다. 수환은 영정을 응시한다. 어머니. 수환의 목에서 울대뼈가 들먹거린다. 그는 책상 밑에 놓여 있는 상자를 들고 문을 나선다. 상자를 신발장 위에 올려놓고 주방으로 간다. 무심코 커피포트를 꺼낸다. 비어 있다. 영신은 항시 커피포트에 커피를 가득히 끓여놓았었다. 문득 주위에 있는 것들이 실체가 없는 것처럼 보이고 눈에 보이는 것이 텅 빈 것같이 느껴진다. 베란다 창 너머로 태양이 빛나고 있다. 수환은 망연히 바라본다.

영신이 죽기 이틀 전이었던가. 위암이었는데 막판엔 시도때도없이 진통제를 맞았다. 그날도 진통제를 맞아 아직 수면으로 빠져들기 전이었다. 앙상한 뼈만 남은 상체를 일으키더니 창밖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나무의 우듬지 사이로 햇빛이 빛나고 있었다. 영신이 슬프게 말했다.

“햇빛이 좋구나.”

그녀의 눈길이 주위의 모든 것 위로 스쳐갔다. 황량한 병실이 보기 싫어서 수환이 걸어놓은 그림이며 꽃들, 그리고 영신이 아끼던 주전자와 찻잔에도 시선이 머물렀다. 눈길이 다시 창밖으로 향했다.

“내 방 책상서랍에 오래된 서류봉투가 있을 거야. 그걸 연희 아줌마에게 주어라. 책상 밑 큰 상자에는 사천왕 자료가 들었는데 법화스님께 전해드려라.”

 

법화스님이 거주하는 관음사는 정릉 골짜기에 있었다. 수환은 택시에서 내려 일주문을 지난다. 제법 무거운 상자를 사천왕문 앞에 내려놓고 잠시 숨을 고른다.

천왕은 고대신화 속에 등장하는 귀신들의 왕으로서 수미산의 동서남북을 관장한다. 불법수호 역할을 자원했기 때문에 사찰 입구에 세워졌다. 동쪽을 지키는 지국천왕(持國天王)은 온몸에 푸른색을 띠고 왼손은 칼을 오른손은 주먹을 쥐고 있다. 서쪽의 광목천왕(廣目天王)은 입을 크게 벌린 것이 특색이다. 온몸이 흰색이며 손에는 창과 탑을 쥐고 있다. 남쪽의 증장천왕(增長天王)은 붉은색이며 오른손에 용, 왼손에 여의주를 들고 있다. 북쪽의 다문천왕(多聞天王)은 온몸이 검은색이다. 비파를 들고 있다. 사천왕은 온갖 악을 경계하며 사찰이 청정도량임을 나타낸다.

“어머니는 왜 사천왕에 깊이 빠졌어요?”

수환이 영신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글쎄……”

“무섭잖아요.”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지도 않아.”

“………”

“생활이 나태해질 때 사천왕을 보면 긴장감이 들어. 어찌 보면 친근하게 어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다시 찾아보고 싶지.”

 

수환은 상자를 어깨에 메고 요사채 쪽으로 걸어간다. 대웅전은 대지에 비해 들썩 크고, 탑이며 석등 연화대는 방금 돌에서 깎아낸 듯 멀끔하다. 칠성각만이 옛 모습 그대로였다. 공양보살인 듯한 아낙이 현대식 부엌에서 얼굴을 내민다.

“어떻게 오셨수?”

“법화스님 뵈려고 왔는데…… 어제 전화를 드렸어요.”

“지금 예불중이시니까 잠시만 기다려요.”

수환은 상자를 툇마루에 내려놓는다. 어디에선가 바람이 불어왔고 뒤이어 풍경소리가 아련히 울려퍼진다.

영신이 전국의 절을 휘돌면서 사천왕을 보러 다닌다거나 사진이나 자료를 일일이 철해놓는 열성을 품고 있었음에도 정작 불자는 아니었다. 영신의 행보는 일주문을 지나 사천왕문 앞에서 끝이 난다. 대웅전은 고사하고 국보급인 사리탑이며 진귀한 탱화가 절 안에 있다 하더라도 절대 거들떠보지 않았다. 수환이 영신을 따라 해인사를 찾았을 때도 그랬다. 천왕문 앞에서 사진이나 찍겠다면서 그 부근을 떠나지 않았다. 수환은 혼자서 대웅전이며 팔만대장경을 둘러보았고, 연화대에서 목을 축이고 다시 천왕문으로 왔다. 영신은 지국천왕을 보고 있었다. 문득 영신이 고개를 돌렸다. 환각이었을까, 영신의 눈빛은 마치 지국천왕이 쥐고 있는 주먹과 같았다. 그만큼 영신의 눈초리는 사나웠다. 사천왕에 대한 집착이 병리적인 현상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그날 이후 수환은 떨쳐버릴 수 없었다. 깊은 신심으로 부처에게 귀의하는 것이 한결 건강한지도 모른다.

“놔둬라.”

연희가 말했었다. 광주에 살고 있는 연희는 영신과 여학교 시절의 단짝이었다. 영신네가 십여년 전에 서울로 솔가했지만 광주에 살 때 두 여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오삭가삭했다. 연희는 서울에 오면 영신네에 묵어가곤 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수환이 이 문제를 내비쳤다.

“아예 머리 깎은 사람도 서너 명 있단다.”

“왜요?”

“때가 되면 너도 이해하겠지.”

연희는 무엇인가를 아는 눈치였으나 굳이 입밖에 내려고 하지 않았다. 다만 혼잣말처럼 이렇게 부언했을 뿐이다.

“세월이 약이라는 말도 헛것이다.”

영신은 감히 청정도량 안으로 들어서지도 못하고 사천왕문 밖에서 서성댔을 뿐이다. 무엇이었을까. 무슨 죄과였을까. 평범한 주부의 일생을 사천왕의 부라린 눈빛 속에 가둬버린 그 죄과는 과연 무엇일까.

‘저세상에도 사천왕문이 있다면 어머니, 다시는 문밖에 나오지 마세요.’

 

법화는 왜소한 체구에 초로의 스님이었다. 십여년 동안 토굴에서 수행을 했다고 영신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수환은 법화를 따라 상자를 들고 방으로 들어간다. 법화는 우려낸 녹차를 잔에 따른다.

“고운 보살이었는데……”

법화는 상자를 연다. 사천왕에 관한 온갖 자료들을 일일이 매만진다.

“사천왕에 관심있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전문적으로 연구한 줄은 몰랐네요.”

“연구하신 건 아니구요. 그녕 모으신 것 같아요.”

“모든 일에는 우연이란 게 없는데.”

법화는 찬찬히 수환을 쳐다본다. 서늘하게 찌르는 눈빛이다. 뭔가 알고 있었다면 수환은 실토를 했을 것이다.

“혹시 스님께서 아시는 것이 있으신지요?”

“가족이 모르는 것을 내가 어찌 알겠는가요? 다만 이 자료들을 보니까 이상한 생각이 드네요. 왜 여기에 집착했을까요?”

“………”

“모친과 관련해서 특별히 기억나는 것 없어요?”

“어머니에게 미움을 많이 받았어요. 어릴 적에요.”

“말썽꾸러기였군요.”

“그랬을 수도 있는데……”

“업장이 깊지 않고서는 자식을 미워하기가 힘든데…… 특별한 사정이 있었을 거예요.”

법화는 이것저것을 캐물었다. 광주에서 살았다는 대목에서 법화는 목소리를 높였다.

“광주항쟁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어머닌 참여하지도 않았는데요.”

법화는 토굴 십년 수행도 복잡미묘한 사람의 심리를 파악할 수 없음을 씁쓸하게 자인했다.

“인과의 법칙은 한치의 오차가 없는 것이어서 찾아보면 나오겠지요.”

법화는 눈을 반개한 채 나무관세음보살 하고 뇐다. 수환은 자리에서 일어선다.

 

신호음이 떨어진다.

“여보세요.”

연희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자 수환은 눈물이 핑 돈다. 연희는 영신의 병문안을 여러번 왔지만 정작 장례식에는 참석을 하지 못했다. 영신의 간곡한 유언으로 조촐하게 가족장을 치렀다.

“수환이에요.”

“엄만 어떠시니?”

“실은…… 장례식 치른 지 두 주 지났어요.”

침묵이 수화기에 잠시 머문다.

“다녀가신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가까운 거리도 아닌데…… 어머니가 특별히 당부하셔서……”

연희는 슬퍼하지 않는다. 그래도 되는 거니,라고도 하지 않는다.

“네 엄마 죽으면서도 잘났다.”

그리고 거칠게 욕을 해댄다. 이상한 것은 그 욕이 수환의 몸속에 있는 무거운 어떤 것을 누그러뜨린다는 것이다.

“아주머니께 뭔가 남기셨어요.”

“뭔데?”

“서류봉투인데 단단히 봉해놓아서 내용물이 뭔지 모르겠어요. 수일 내로 광주에 내려갈게요.”

“장지는 어디니?”

“경기도 공원묘지예요.”

“죽어 있는 꼴 좀 볼 겸해서 내가 올라가마. 모레는 어떠니?”

“저야 괜찮지만.”

“어차피 갈 텐데 네 엄마 성질머리하고는.”

이틀 후 두 사람은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만나 택시를 타고 공원묘지로 향했다.

영신의 묘지는 아직 잔디가 뿌리를 내리지 못해 흙무지 그대로였다.

“이렇게 갈 거면서…… 못난 기집애.”

연희의 말 하나하나의 둘레에 미묘한 정적이 퍼진다. 수환은 무덤 주위를 한바퀴 돌다가 흙무지가 조금 흐트러진 옆쪽을 손으로 다진다. 연희는 눈물을 감추려고 눈을 몇번 깜빡거린다.

“잘 보내드렸니?”

수환은 기억한다. 어릴 적 아주 어릴 적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영신이 수환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며 남몰래 흐느꼈음을. 눈물이 그의 이마 위에 떨어질 때의 그 저릿한 사랑의 느낌을. 가출을 하기도 하고 학업성적도 밑바닥까지 떨어졌으며 미움밖에 받은 것이 없다고 아우성쳐댔지만 한줄기 사랑의 빛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수환은 그 흐느낌을 가장 내밀한 곳에 간직하고 있었다. 그 얘기를 병상에서 했을 때 영신은 비로소 마음놓고 눈물을 흘리는 듯했다.

“어머니의 삶이 저 때문에 뭔가 잘못 풀려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너 때문이 아니야. 시대가 그랬지.”

“시대라뇨? 무슨 시대?”

연희는 한숨을 짓는 것으로 말막음을 하며 은박지자리를 꺼내 무덤 앞에 펼친다. 음식물도 내놓는다.

“먼길을 왔으니 한나절은 놀다 가야겠다.”

연희는 김밥을 수환의 입에 넣어준다. 수환은 겨우 넘기고 얼른 캔커피를 집어든다. 한모금 마시고 서류봉투를 꺼내 연희에게 건넨다. 연희는 한동안 바라보다가 눈을 들어 먼곳에 시선을 준다. 무덤들은 가뭇 조용하고 수굿하다. 억새꽃이 바람결에 날아다닌다. 연희는 음료수 한잔을 마시고 봉해놓은 곳을 뜯는다. 얇은 노트와 신생아의 양말 한쪽 그리고 면사포를 쓴 여자의 흑백사진이 들어 있다.

“그 여자.”

연희가 나지막이 부르짖었다.

“아는 분이세요?”

“안다기보다……”

수환은 연희의 손에서 사진을 빼내 주의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신부는 아름다웠다. 반듯한 이마 아래 커다란 두 눈은 꿈을 꾸듯 시선이 멀었고, 볼연지를 칠했는지 뺨 주위에 섬세한 음영이 드리워져 있었다. 신부는 자기 마음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행복과 사랑을 수줍게 드러내고 있었다. 연희는 노트를 수환에게 건넨다.

 

이름  최미애(남편을 기다리다 총에 맞은 임산부)

생년월일  1957년 3월 19일생(23세)

직업  가정주부

사망일시  1980년 5월 21일

사건개요  임신 8개월이었던 최미애는 5월 21일 광주시 중흥동 집 앞 골목에서 전남고 교사인 남편을 기다리다 전남대 정문 쪽 골목 입구에서 계엄군이 정조준한 총에 머리를 맞고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증언자  최정구(동생)

증언내용  고교 1학년인 나는 21일부터 휴교령으로 집에 있었다. 21일 낮에 둘째누나가 급하게 뛰어들어오며 큰누나(최미애)가 죽었다고 외쳤다. 큰누나는 결혼 후 우리집 바로 앞집에 세들어 살고 있었다. 매형은 교사였는데 학생들의 동태를 살피러 나갔다. 누나는 12시까지 돌아오겠다고 나간 매형이 돌아오지 않아 걱정이 되어 골목길에서 기다리던 중이었다. 공수대원이 골목 어귀에 들어와 누나를 정조준해 쏘았다고 누군가가 말해주었다. 총알이 머리 한가운데를 관통했다. 식구들이 뛰쳐나가보니 골(뇌)과 피를 쏟은 채 죽어 있었다. 누나를 집으로 옮겨놓으니 뱃속에서 아기가 마구 뛰었다. 아이라도 살려보려고 여러 병원에 연락했으나 아무도 오지 않았다. 결국 아기도 죽고 말았다. 누나를 묻은 지 보름 만에 광주지방검찰청에서 시체를 부검하라는 연락이 왔다. 시체를 파와 조선대부속병원에서 부검을 했다. 부검이랬자 총맞은 부위(이마)에 큰 못을 집어넣고 두 번 돌려본 것뿐이다. 그날 오후에 누나는 망월묘역으로 이장됐다. 어머니의 꿈속에 자주 나타나 “어머니 배가 아파요”라고 하면서 울먹였다고 한다.

 

수환은 다 읽고도 노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움직이지 않는 눈동자가 격분의 심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요? ……이분과 어머니는 무슨 연관이 있는 건가요?”

연희는 풀대를 꺾어 입에 물었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풀대를 잘근잘근 씹었다. 갑자기 떠오른 기억이 그녀를 괴롭히는 것 같았다. 수환은 자리에서 일어나 무덤 사이를 이리저리 거닐었다. 그가 다시 앉았을 때 연희는 짐짓 명랑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배고프다. 일단 먹고 보자.”

수환이 캔커피를 들어올리자 연희는 작은 웃음소리를 냈다.

“꼭 네 엄마 같다. 네 엄마도 마시는 걸 좋아했지, 커피든 물이든.”

“………”

“음식물을 씹을 때 나는 소리와 턱의 움직임이 이쁘게 보이지 않는다나. 그래도 우리끼리 있을 땐 큰 양푼에다 고추장 넣고 비벼서 우적우적 잘도 먹었다.”

“저도 많이 봤어요.”

“소녀시절 땐 온갖 티를 냈는데 가슴앓이하는 남자애들 꽤 많았단다.”

“상상이 안되는데요.”

“그 당시엔 흔치 않은 피아노를 배웠는데 교본은 꼭 가슴에 껴안고 다녔다니까. 재능도 뛰어나지 않았는데 말야.”

두 사람은 웃는다.

“네 엄마 약오르겠다.”

연희는 영신의 무덤에다 대고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영신아, 친구들이 니 뒤에서 흉본 거 너 몰랐지? 그 당시 차마 말을 못했는데 이제라도 하니 참 고소하다.”

연희는 또 무엇이 생각났는지 쿡쿡 웃는다.

“영신아, 너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바꾼 속내를 밝혀볼까?”

“뭐예요?”

“미사포.”

“미사포요?”

“미사드릴 때 쓰는 것 말야. 네 엄마하고 그걸 사러 얼마나 돌아다녔는지 알어? 이쁜 걸 고르려고. 결국 찾지 못하고 고급 레이스를 사다가 직접 만들었지. 그걸 쓰면 네 엄마 성모마리아 저리 가라였어.”

두 사람은 한바탕 시원스럽게 웃었다. 수환은 앞에 놓인 김밥이며 전을 거의 다 먹어치웠다. 연희는 영신의 무덤을 힐끗 돌아보며 네 아들 밥 먹였다, 하고 내심으로 말하는 듯했다.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어두운 느낌을 주는 수환의 검은 눈이 연희를 응시하고 있었다.

“제가 5·18 베이비라는 거 아시지요? 생물시간에 알게 되었어요.”

붉은 혈조가 수환의 여윈 볼에 나타난다.

 

80년 5월.

광주에서 시가전이 격렬할 때 영신은 남편과 함께 도시를 빠져나왔다. 폭력이 무서웠고 일상이 무너진 나날들이 두려웠다. 그녀가 꿈꾸던 평화로운 세상은 그림자이며 죽음과 함성과 총성만이 실재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낯선 세계였다. 본당 신부의 소개로 그들 부부가 묵게 된 곳은 시외의 과수원 안에 있는 별채였다. 거실 한켠에 성모 마리아상이 있고 주위의 풍광은 고즈넉하고 평화로웠다. 그들은 테라스에서 차를 마시고 식사를 했다. 결혼한 지 두달이 채 안된 때였다. 남편이 포도주를 구해왔다. 아주 먼 곳으로부터 연발총 소리가 들려왔다. 약간의 두려움은 두 사람의 간격을 좁혀주었다. 그날 밤 낫 같은 초승달이 떴다. 취기가 오르면서 그의 팔이 슬쩍 스치기만 해도 그녀는 환락의 소란함을 느꼈다. 전율이 두 사람의 몸 위를 달렸다. 오월의 밤이었다. 대기는 부드러웠고 하얀 배꽃들이 눈송이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그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릴 때 안개꽃이 피어나는 것 같았다. 입술과 입술이 맞닿을 때 분꽃이 피어났고 가슴에서는 모란이 피어났다. 이윽고 깊고 은밀한 곳에 꽃이 피어났을 때 그녀는 속세에서는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오색영롱한 꽃을 보았다. 그 꽃 속에 별과 달, 온 우주의 행성이 조화롭게 운행하며 하나의 생명을 실어보냈다. 며칠 후에 과수원 주인집 아들이 와서 계엄군이 도시를 장악했다고 알려주었다. 남편은 시가지 동태를 살피러 나갔다. 오후 늦게 돌아온 남편은 아직 떠날 때가 아니라고 말했다. 영신이 집에 돌아온 것은 오월이 끝나고도 열흘이 지나서였다. 도청건물의 벌집 같은 총탄자국은 최후의 결전이 얼마나 무자비했는가를 말해주고 있었고 신문과 텔레비전에서는 총을 반납하라는 공고를 연일 내보냈다. 영신에겐 먼 나라 일처럼 느껴졌고, 피신했던 것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했다. 한동안 연락이 끊겼던 파출부 나주댁이 몰라보게 수척해진 몰골로 나타났다. 나주댁은 주뼛주뼛하면서 아들이 상무대로 끌려갔다고 털어놓았다. 그 아들은 영신도 서너 번 본 적이 있다. 야간상고를 졸업하고 정비소에서 일하던 건실한 청년이었다.

“새댁도 알다시피 우리 아들놈이 폭도가 웬말이오. 젊은 혈기에 시위대에 잠시 휩쓸렸을 뿐인데…… 그래도 우리 애는 목숨이라도 건졌구만이라우. 별별 흉흉한 소문이 나도는데 기가 찰 노릇이오.”

나주댁이 떠도는 풍문들을 늘어놓았다. 특히 임산부가 총에 맞아 죽었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하늘도 무심하시지, 하면서 절통한 심정을 드러냈다. 영신은 숨이 꺽 막히고 눈앞이 아뜩해졌다. 귀에 들은 것이 즉각 상상이 되어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소문이어서 곧 영신의 뇌리에서 가뭇없이 사라졌다.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릴 무렵 영신은 입덧을 했다. 산부인과 의사는 임신이라고 진단을 했고 태아가 들어선 날까지 정확히 짚어냈다. 영신은 고요한 음악으로 태교를 시작했고 채식 위주로 식단을 짜고 외출도 삼갔다. 배가 불러오면서 영신은 저 영원하고 신성한 생명의 용솟음침을 온몸으로 느꼈다. 아기가 태어날 때 제일 먼저 보여줄 것을 생각하느라 밤잠을 설쳤다. 황량한 분만실을 생각하면 오싹해졌다. 온갖 빛깔의 꽃과 종소리,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오게 해야 한다. 악기 중에서 가장 신비한 음색을 내는 하프의 선율이, 아기가 듣는 최초의 소리가 되게 하겠다고 수없이 다짐했다.

해산날이 가까울 무렵 산부인과 병원에서 나오는데 우연히 연희와 마주쳤다.

“그새 아기까지 가졌니? 깨가 쏟아진다.”

“넌 뭐가 바뻐서 연락 한번 안하니?”

“그렇게 됐어.”

다듬지 않은 부스스한 머리카락이며 작은 체구에 어울리지 않은 큰 가방을 어깨에 둘러멘 연희의 모습이 평소의 깔끔한 매무새가 아니었다.

“너 실연당했니? 꼴이 뭐니?”

영신이 타박을 주니 연희는 손사래를 치고는 주위를 슬쩍 둘러보았다.

“실연이구 뭐구 그게 문제가 아니라……”

연희가 말을 삼키는 바람에 영신은 호기심이 동했다.

“우리집에 가서 얘기나 듣자.”

 

“그날의 엄마를 상상해봐.”

연희가 먼곳에 시선을 고정시킨 수환을 바라보다가 말을 잇는다.

“대부분의 임신한 여자들은 불룩 나온 배를 감추려고 애를 쓰는데 네 엄마는 보란듯이 배를 쑤욱 내밀고 한손을 얹고 있었어. 코트 속에 씰크 원피스를 입었는데 주름을 풍성하게 잡아서 더욱 강조해 보였지. 지나는 사람마다 바라보았어.”

 

영신은 무등산 자락에 위치한 고급아파트에서 살았다. 통유리창으로 시가지가 한눈에 보였다. 수가 놓인 투명한 레이스로 아기방 창문이며 침대를 장식하고, 그 방을 장난감과 옷, 그림책으로 가득 채웠다. 요정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았다. 연희는 주스를 다 마실 때까지 이렇다 할 말을 꺼내지 않았다. 큰 가방은 연희가 앉은 의자 옆에 있었는데 지퍼가 약간 벌어진 틈새로 스타킹 뭉치가 드러났다. 영신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너, 저거 뭐니?”

연희가 황망히 가방을 자기 발치 쪽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스타킹인 것 같은데.”

“으응, 스타킹이야. 속내의도 있고 수건도 있어. 좀 사줘라.”

“너 정말 뭔 일이 있구나.”

“일은 뭐……”

연희는 말끝을 흐렸다. 연희는 스타킹과 수건을 꺼내어 테이블 위에 놓았다. 내의도 꺼내다가 도로 집어넣으며 말했다.

“내의는 관둬. 고급이 아니거든.”

“고급이 아니면 어떠니?”

“속옷을 더 고급스럽게 입는다던데.”

지퍼를 끌어올리는 연희의 손을 밀치고 영신은 가방 속에 손을 넣었다. 내의를 한움큼 쥐고 꺼내는데 서류봉투가 딸려나왔다. 연희가 빼앗으려고 손을 내밀었으나 영신이 잽싸게 옷을 끌어당겼다. 내의 겉면이 미끄러워서 서류봉투가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서류봉투 안에 들어 있던 용지들이 영신의 발치에 떨어졌다. 영신은 냉큼 훑어보았다.

 

이름  박정석(남)

생년월일  1965년 11월 12일생(15세)

직업  공원

증언자  이정순(어머니)

사건개요  80년 5월 21일 서방 사거리에서 계엄군의 진압봉으로 구타당함. 전남대부속병원에서 좌측 무릎 내심(다리를 유지시키는 가장 큰 힘줄) 절단수술을 받음. 정신이상증세 보임.

 

이름  김경희(여)

생년월일  1962년 5월 23일생(18세)

직업  학생

증언자  이씨(어머니)

사건개요  80년 5월 20일 노동청 앞 시위 도중 공수대원들의 구타로 머리와 척추에 부상을 입음. 정신이상증세 보임.

 

“이런 걸 왜 갖고 다녀?”

영신의 물음에 연희는 난색을 보였다.

“절대 비밀이다.”

“글쎄 비밀은 지킬 테니 말해봐.”

“실은 우리 교회 신도 중에서 세 명이 죽었어. 구속자도 있고 부상자도 많어.”

목사와 가족들이 추모예배를 드리려고 망월동 묘지에 간 적이 있다. 무덤들에 떼도 입히지 못해 벌건 황토흙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전경들이 방패를 앞세우며 가로막고 나섰다. 울면서 울면서 쫓겨났다. 달도 잃어버린 칠흑같은 밤에 반대편 야산에 올라 무덤 쪽을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목사와 연희를 비롯한 젊은이 서너 명이 비밀리에 오월 관련자 신원파악에 나섰다. 보따리 장사는 위장일 수 있으나 적지 않은 자금이 필요하기도 했다. 연희가 속해 있는 ‘송백회’라는 모임의 회원들은 나서서 물품을 팔았다. 영신은 머뭇거리다가 넌지시 물어보았다.

“임산부가 총맞아 죽었다는 소문이 있던데.”

“최미애 말하는구나.”

“최미애?”

“그 여자 기록도 여기에 있어.”

연희는 용지뭉치에서 한 장을 뽑아 영신에게 건네주었다. 면사포를 쓴 여자의 사진이 용지 한켠에 붙어 있었다. 신부는 꽃처럼 눈부신 스물세살의 나이였다.

“우리 또래야.”

“그래, 우리 또래구나. 게다가…… 임신까지 하고.”

“조사를 해보니까 떠도는 소문들이 다 사실이더라구.”

영신은 자기도 모르게 한손을 배 위에 얹었다. 연희는 용지들을 가방에 넣고 수건으로 덮은 다음 스타킹을 얹었다. 영신은 지갑에 있는 지폐를 다 털어주었다. 연희가 가고 난 뒤에 영신은 거실 한켠에 무연히 서 있었다. 어느 하나의 생각도 질정(質定)이 되지 않다가 그녀는 문득 입밖으로 한마디 말을 내뱉었다.

“그때 나는……”

배꽃이 하얗게 흩날리던 그날의 정경이 한폭의 수채화처럼 떠올랐다.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가 이내 사라졌다. 피 흘리며 쓰러지는 임산부와 뱃속에서 꿈틀거리는 태아가 선연히 떠올랐다.

“그때 최미애는……”

그날 이후 영신은 몸 둘레를 스치고 지나가는 어떤 기미를 느꼈다. 그것은 생각이라기보다 감촉에 가까웠다. 이마에 스치는 서늘한 입김 같은 것, 또는 장례식에 쓰는 꽃향기 같기도 했다. 꽃도 종소리도 음악도 없이 수환은 태어났다. 그녀가 가둬놓은 잠재의식은 이따금 생생한 꿈으로 나타났다. 최미애가 슬픈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드는가 하면 웅크린 태아가 어느 순간 고개를 쳐들면서 화등잔 같은 눈빛으로 영신을 쏘아보기도 했다. 수환을 안고 있는데 별안간 태아로 변하는 꿈도 꿨다. 연희는 어두운 꿈이랑 영혼의 문제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연희도 밤마다 술을 마셔야 잠을 이룰 수 있다고 털어놓았다. 한국 주재 외국기자가 찾아온 적이 있었다. 비밀과 기동성이 필요해서 연희는 영신에게 자가용을 부탁했다. 영신은 꼬박 일주일을 차를 몰고 다녔다. 그때 최미애의 집을 방문했다. 최미애의 남편은 사건의 정황을 말해주다가 격동하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가 방문을 열었다. 아기옷이며 장난감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아기 양말 한쪽이 한켠에 놓여 있었다.

“한쪽은 에미와 함께 묻었지요.”

영신은 아무도 모르게 양말을 슬쩍 집어들었다. 출산준비를 하면서 영신이 가장 아릿한 감각으로 쓰다듬은 것은 양말이었다. 그 작은 몸에 손가락 열개 발가락 열개뿐만 아니라 손톱 발톱이 각각 열개 붙어 있었다. 만지면 말갛고 투명해서 금세 물처럼 녹아들 것 같았다. 아기의 신체 중에서 제일 신묘한 부분이었다. 주인 잃은 아기 유품 중에서 유독 양말이 눈에 뜨인 것은 이런 연유에서였을 것이다. 기자는 수많은 취재 중에서 임산부의 죽음을 취재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영신은 눈에 띄게 수환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젖도 떼고 목욕도 나주댁에게 맡겼다.

“이 애와 난 연이 맞지 않아.”

영신은 별자리까지 들먹였다.

“얜 물고기좌야, 난 처녀좌고. 둘은 상극이야.”

“언제부터 점성학을 공부했니?”

연희가 빈정거리자 영신은 공허하게 웃었다. 젖을 떼자 수환은 병치레가 잦았다. 그것도 수환을 미워하게 된 빌미였다. 그밖에도 많았다. 입맛이 까다로운 것도, 또래의 애들과 어울리지 않는 것도 있었다. 수환이 다섯살 때였던가. 영신이 피아노를 들여놓았다. 수환에게 개인교습을 시켰는데 막무가내로 싫어했다. 수환은 손이 부어오르도록 매를 맞았다.

 

“너는 생떼가 심했어.”

“그랬던가요?”

“결국 피아노를 못 배웠잖아.”

“피리를 불었잖아요.”

수환의 목소리는 조금 격해졌다가 다시 조용한 목소리를 되찾는다.

“피리를 불면 잃어버린 세상을 찾을 것 같았어요.”

연희는 그의 등을 서너 번 토닥여준다.

“그 시절에 모두들 그랬어. 나도 오랫동안 연애하던 남자와 헤어졌어. 잘생기고 집안도 좋은 남자였는데 그와 결혼하면 행복할 것 같아서. 행복하면 죄스러운 것 같았지.”

연희는 자료조사 때 만난 시민군 출신과 결혼했다. 정비공이었던 남편은 출감하고 나서 한동안 이 대학 저 대학에 불려가 강연도 하고 시위가 있을 때마다 선두에 나서기도 했다. 그는 다시 정비공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연희가 초등학교 교사 자격증을 따서 생활을 영위했다. 그는 지금도 열한달은 무위도식하다가 오월이 오면 다시 시민군이 된다.

“네 엄마도 그랬지. 주위가 상처투성이인데 네 엄마같이 심성이 고운 사람이 혼자 행복해지면 오히려 이상한 거지.”

“………”

“죄의식과 행복해지면 안된다는 심리가 널 미워하는 것으로 나타난 거야.”

“죄의식은 제가 태어난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닌가요?”

“그때는 숨쉬고 있는 것조차 부끄러웠어.”

“………”

“만약에 네가 ‘날 가졌을 때 엄마 기분은 어땠어요?’ 하고 묻는다면 저세상에서 엄마가 뭐라고 대답하겠니?”

“………”

“‘그때 나는 흩날리는 배꽃과 달과 별을 가슴에 꼭 품었지. 너처럼 상상으로 만든 것 같은 아기를 낳으려고 말야’ 하고 네 엄마는 당당하게 말할 거야.”

수환은 눈물을 삼킨다.

두 사람은 비탈길을 내려온다. 정문을 지나니 택시가 달려온다.

“그 서류봉투 저한테 주실 수 있어요?”

“왜?”

“제가 간직하고 싶어요.”

“그래라.”

연희는 가방에서 서류봉투를 꺼내 수환에게 건네준다. 택시가 두 사람 앞에 멎는다.

 

그 서류봉투는 수환의 방에 있다. 수환은 잠들어 있다. 약간 벌어진 커튼 사이로 달빛이 들어온다. 달빛은 수환의 어깨를 비스듬히 질러 서류봉투를 비추고 있다. 노트가 삐죽이 나와 있다. 면사포를 쓴 신부 사진 반틈이 내보인다. 수환이 몸을 뒤척이며 오른쪽으로 눕는다. 두 손을 모아 가슴에 묻는다. 숨을 깊게 몰아쉬면서 몸을 웅크린다. 서류봉투에 미세한 충격을 준다. 아기 양말의 발목 부분이 밀려나온다. 신부의 자태도 온전하게 드러난다. 고요하다. 그러나 모든 것들이 움직인다. 달빛도 수환도 신부도 양말도 숨쉬듯 움직인다. 수환은 숨결에 따라 태아의 자세로 바뀐다. 숨결이 차츰 고르게 오르내린다. 이윽고 수환은 안착한다.

신부는 수환을 보면서 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