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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윤제림 尹堤林
1959년 충북 제천 출생. 1987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삼천리호 자전거』 『미미의 집』 『황천반점』 『사랑을 놓치다』 등이 있음. yzoono@chollian.net
지하철에 눈이 내린다
강을 건너느라
지하철이 지상으로 올라섰을 때
말없이 앉아 있던 아줌마 하나가
동행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한다
눈 온다
옆자리의 노인이 반쯤 감은 눈으로 앉아 있던 손자를 흔들며
손가락 마디 하나가 없는 손으로
차창 밖을 가리킨다
눈 온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서 있던 젊은 남녀가
얼굴을 마주 본다
눈 온다
만화책을 읽고 앉았던 빨간 머리 계집애가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든다
눈 온다
한강에 눈이 내린다.
지하철에 눈이 내린다.
지하철이 가끔씩 지상으로 올라서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연변처녀
내가 세상에 나오기 전의 내 어머니,
꽃가지 사이로 얼굴만 내놓은 사진 속
시집오기 전의 아내,
눈보라 고갯길을 넘어 교실로 들어서는
정순이, 순옥이 그리고
국어책 속의 영희.
연변처녀야,
나는 지금 네 얼굴에서
내가 알던 모든 처녀를 본다.
연변처녀야,
아무도 주지 말아라.
네 뺨 위의 대구 사과
혹은 소사 복숭아.
목욕탕 앞에서 아내를 기다리며
씻겨나가지 않는 때가 있는 모양이다
빠지지 않는 냄새가 있는 모양이다
온천물에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있는 모양이다
때때를 데려다가
때투성이를 만들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