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문화평

 

지식인의 존재의미를 묻는 상소문

연극 「시골선비 조남명」

 

 

김중식 金重植

시인, 경향신문 기자 uyou@kyunghyang.com

 

 

연극에 대한 ‘리뷰’는 연극성을 배반한다. 연극이란 현장예술, 그러니까 복제예술과는 다르게 별똥별처럼, ‘리플레이’ 없이 단 한번의 빛을 보여주고 사라지는 라이브 공연물이다. 결국 연극은 뭔가 보여준 배우 등 연극인 및 뭔가 본 관객의 기억과 살(肉) 속에 살아 있다가 그들의 생물학적 수명이 다하는 날 지구상에서 함께 사라지는 소멸의 장르인 것이다.

이러할진대 ‘연극 다시 보기’는 연목구어(緣木求魚) 또는 같은 물에 손씻기다. 나무에 올라가 어찌 물고기를 잡을 것이요, 물이 흘러갔는데 어찌 같은 물에 손을 담글 수 있나. 연극의 9할 이상은 마지막날 마지막회 공연을 끝으로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는데 그 연극을 다시 보자는 것은, 음반을 남기지 못한 조선 명창의 소리에 대해 ‘리뷰’를 하는 격이다. 연극 리뷰란 허공에서 무(無)잡기놀이라고 할까. 하지만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시골선비 조남명」(작·연출 이윤택)은 관심있는 독자들에게는 관극(觀劇)의 기회가 더 있을 터이므로 ‘리뷰’가 덜 쑥스러우리라.

「시골선비 조남명」은 본래 경남 산청군과 남명학연구원의 제작지원을 받아 야외공연으로 제작된, 2001년 8월 남명(南冥) 탄신 500주년 기념작. 진주·산청 공연을 거쳐 지난해 10월 6〜14일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실내 공연됐다. 지난해 온갖 연극 관련 상을 독식하다시피 했다.

지난 연말 영화의 대종상쯤에 해당하는 서울공연예술제 시상식. 방송카메라는 물론 신문사 사진기자 한명 없는 ‘그들만의 축제’에서 이 작품은 연극부문 관련 상의 7할쯤을 휩쓸었다. 나중에 문예진흥원의 지원으로 올 3월 22일〜4월 7일 서울 대학로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앙꼬르 공연됐다. 이른바 관제연극이자 주문생산 연극인 셈인데 작품성으로 천하를 제압한 연출자와 배우, 스태프들의 연금술이 새삼 놀라울 지경이다.

 

116-419

 

이어 이 작품은 5월 5〜8일 서울공연예술제 개막작으로 초청돼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재공연됐다. 지방순회 공연도 이어지고 있다. 5월 26일 경남 하동 용강 둔치 야외공연장, 6월 말에서 7월 초 사이에 경남 통영 시민문화회관, 8월 17일 경북 산청선비문화축제 등의 공연이 예정돼 있다. 해당 기간에 인근을 지나는 일이 있다면 일부러 발품 팔아도 후회없을 일정이 되겠다. 뉴욕이나 런던에 다녀오면 뮤지컬 한편 보고 오는 것이 ‘중산층의 문화적 에티켓’이자 ‘두고두고 큰 자랑’인 것처럼.

「시골선비 조남명」은 지난해 대학로에서 발표된 400여편 작품들 가운데 과연 ‘어른의 연극’이었다. 지난해 100여편의 한국연극을 보면서 대부분 작품의 완성도에 대해서 짜증이 날 만큼 뭔가 아는 체를 하기 시작할 무렵 「시골선비 조남명」은 확연히 달랐다. “대학로 연극은 정신연령 이십대를 넘어선 적이 없다”(극작가 이강백)는 말마따나 대부분의 대학로 연극은 소비자인 ‘여대생+연극과 학생들’의 입맛 수준인 데 비해 「시골선비 조남명」은 지식인의 문제를 선비문화 양식 속에 본때있게 녹여낸 역사극이었다.

이 연극은 사화·당쟁이 거듭되던 조선 명종조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말 한마디에 목숨을 걸어야 했던 분위기와 그럼에도 목숨 걸고 할말은 했던 지식인의 삶과 고뇌를 무게있는 연극언어, 그에 상응하는 연극표현으로 끌어나갔다. 선문답을 방불케 하는 선비들의 말놀이, 배운 것 없이도 ‘현재 교양있는 서울 중산층’의 언어 이상을 구사했던 당시 양반집 여인네들의 기품과 교양이 흘러넘치는데도 지루하지 않았다면 새로운 연극양식의 힘 덕분이었을 테다.

저 ‘민중의 시대’ 이후 새로 발견된 민중의 연희방식이 시도때도없이 무대를 오르내릴 때 「시골선비 조남명」은 선비문화의 양식을 재창조하는 작업을 벌였다. 선비문화가 만들어낸 영가·시조 등 소리, 풍류도의 중심을 이루었던 양반춤·택견 등 몸짓이 ‘말’과 더불어 흥겹게 어우러졌다. 혹 ‘클래식’을 옛 기득권층의 우아한 문화양식이라 통칭한다면, 이 연극은 조선 클래식 문화를 집대성해서 남명 조식(曺植)의 삶속에 용해시켜버린 매우 도전적인 작품이라고나 할까.

무게있는 언어,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선비문화의 복원 등 대학로에서 흔치 않은 것을 제대로 보여주는 연극인 셈이다. 이는 한편으로 클래식이 새롭게 보일 만큼 우리 시대가 가벼운 문화의 진부함 속에 함몰됐다는 뜻이겠고 그런 점에서 이 연극은 지식인의 의미에 대한 상소문이자 이 시대 문화지형에 대한 반론이기도 할 것이다.

그 무게의 진원지는 작·연출 이윤택(李潤澤)씨의 역량과 그의 분신인 극단 연희단거리패다. 연극판에서의 이윤택씨는 “뭐니뭐니 해도 이윤택”(연극평론가 김미도)이다. 그는 전통의 동시대적 수용과 연극이 아니면 제대로 표현하기 힘들 만한 연극적인 그 무엇을 집요하게 탐구했고 보여주었다.

또 극단 연희단거리패는 경상도 시골에서 먹고 자고 싸는 시간에도 함께 연극만 생각하고 훈련하는 집단으로서 아무나 주연을 맡아도 웬만한 연극의 주연보다 나은 실력을 자랑한다. 그 구성원들의 몸짓은 세속도시에서 찌든 배우들의 그것과 다르게 바람소리가 난다. 이번 작품으로 여러 연기상을 탄 타이틀 로울 조영진씨는 꼿꼿한 시골선비의 환생이 아닐 것인가. 출연배우들은 어떤 역을 맡더라도 감당할 수 있을 만한 내공을 쌓아서 연기의 앙쌍블 또한 탁월하다.

한때 문학판의 말석 언저리를 기웃거리다 약 1년간 신문사 연극담당으로서 연극판을 스쳐지나갔는데, 일언이폐지왈 연극판 사람들이 문학판 사람들보다 한수 위인 듯하다. 문학사에서 ‘자멸파’ 계보들의 삶이 장렬했는데 연극판에서는 거짓말 조금 보태 누구나 자멸파다.

연극인은 장르의 속성상 세상에 남길 무엇이 없다. 천하를 울리고 웃기던 연극배우는 몇명이나 이름을 남긴 것일까. 연극판 사람들은 연습·공연기간 내내 남의 삶을 살아버리는 대신 자신을 지운다. 문인들이 작품을 통해 시대를 겹쳐 살고자 한다면 연극인들은 순간순간 횡적으로 통일전선의 연대를 한다. 한술 더 떠 무대 뒤·옆·밑의 스태프들은 자기를 드러내는 바 없다. 스태프들은 작품의 완성을 위해 자신을 지워버리는 성자형, 순교자적 인간들이다. 연극인들에게 뭔가 물질적 보상이 있으리란 지레짐작은 금물이다. 시는 아무리 써도 돈이 안되지만 쓸 때는 돈이 안 든다.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거다. 그런데 연극이란 아무리 공연해도 돈이 안되지만 공연을 하려면 수천만원이 든다.

이 작품을 보고 실망한다면 그것은 한국연극의 한계이다. 이 작품을 보고 모종의 득의가 있다면 그 한계를 돌파한 개인·집단의 열정과 재능 덕분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