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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한국의 문화지도, 어떻게 달라지나
서구와 한국의 교차점: 문화, 대중, 변혁, 진실
송승철 宋承哲
한림대 영문학과 교수. 문학평론가. 평론으로 「박노해론: 외로움에 갇히면 철인도 녹이 슨다」 「용병의 교훈: 베트남 전쟁 소설론」 등이 있음. scsong@sun.hallym.ac.kr
1. 패러다임의 변화: 문학에서 사회과학, 다시 문화론으로
나는 지금 작년 초에 구입한 핸드폰을 보고 있다. 손안에 딱 쥘 수 있는데다 은은한 백옥색 광택이어서 지금 보아도 여전히 품위있다. 쉰세대라는 말이 듣기 싫어 텁텁한 클래식 벨소리 대신 인터넷 싸이트에 들어가 수백원 주고 장나라의 「명랑소녀 성공기」를 다운받았다. 이제는 아바타도 갈아야 할 터인가? 그런데, 며칠 전 한 학생의 벨소리를 듣는 순간 핸드폰을 팽개치고 싶었다. 처음에 무슨 교향악단 연주인 줄 알았는데, 그게 바로 16화음 벨소리이며 내 핸드폰으로는 안된다는 것이다. 새것으로 갈고 싶었다.
지금 내가 언급한 일화는 경제적 현실인가, 문화적 문제인가? 이 구분은 이제 무의미해 보인다. 이 일화는 경제가 문화영역에 침투했다는 것, 문화가 상품이 되었다는 것 이상을 말해준다. 프레드릭 제임슨이 지적한 바대로 “이전보다 참신하게 보이는 상품을, 회전주기를 더욱 단축시키면서, 계속 생산해야 하는 경제적 급박성”으로 인해1 문화형식이 생산·소비 활동과 밀접하게 결합되었다. 통화기능에는 별 차이 없는데 벨소리가 화려하다는 이유로 멀쩡한 것을 새것으로 바꾸려는 욕망을 부추기는 것이다. 문화론의 부상을 어찌 우연한 일로만 볼 것인가?
이 글은 1990년대 이후 확장을 거듭해온 우리 문화론의 갈래를 파악하고 현싯점까지의 공과를 검토하려는 것인데, 내 개인적 경험부터 이야기해야겠다. 대학에서 영문학과 문화론을 가르치면서 가끔 문학평론도 쓰는데, 학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이동하고 있음을 확연히 느낀다. 한국 지성사를 돌아보면 70년대까지 문학은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내면적·사회적 문제들에 관해 가장 진지한 물음을 제기한 영역으로 인정받았다. 80년대에 오면 사회과학이 지적 논의의 중심으로 부상한다. 사회구성체 논쟁 자체는 정작 문학중심 매체에서 촉발했지만 이 논쟁이 제기되었을 때 나는 내면적 삶을 규정하는 사회적 외면에 대한 통찰을 감각과 경험으로 대신할 수 있는 시대가 지나버렸다는 느낌을 받았다. 페리 앤더슨은 60년대 말까지 영국 지성계에서 문학이 누려온 특권적 지위가 지극히 영국적 상황에 기인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19세기 이후 문학은 야만의 위협에서 영국인의 삶을 보호하는 수호자이자, 산업화로 인해 삶의 토대가 전면적으로 개편될 때 전체 사회의 건강성을 판단하는 법관으로 인식되었다.2 앤더슨이 주장한 바는 영국 지성계에는 독일의 맑스(K. Marx), 프랑스의 뒤르껨(E. Durkeim), 이딸리아의 빠레또(V. Pareto)처럼 사회를 총체적으로 통괄하는 이론을 제시하는 지적 전통이 없었기에 코울리지(S.T. Coleridge), 칼라일(T. Carlyle), 아놀드(M. Arnold), 모리스(W. Morris), 러스킨(J. Ruskin), 엘리어트(T.S. Eliot), 리비스(F.R. Leavis)로 이어지는 “문화와 사회” 전통이 그 역할을 대신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90년대 초 우리 학계에서 문화담론이 전면적으로 개화하면서 문학은 사회적 관심에서 조금 더 밀려난다.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하고 자본주의의 전지구화가 명백해지면서 사회구성체 논쟁은 갑자기 케케묵은 주제가 되고, 탈근대주의 담론과 문화연구가 논쟁의 중심 화두가 된다. 생산과 계급의 문제 대신 재생산, 소비, 이데올로기, 권력, 성, 욕망 따위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특히, 분과학문의 전통적 경계선을 무시하고 자기영역을 확장한 문화연구의 부상은 눈부실 정도이다. 레이먼드 윌리엄즈(Raymond Williams)를 비롯한 50년대 영국 좌파 지식인들의 연구를 문화연구의 단초로 설정하는 일반적 통념을 받아들인다면 불과 50여년 만에 문화연구는 학계의 중심부로 진입하였다. 우리 학계에서도 위기에 봉착한 인문학의 출구를 특정학문이나 이론(theory) 그 자체에서보다 문화연구에서 찾자는 주장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문화에 대한 관심의 부활은 문학전공자로서 의당 반겨야 할 사건이 아닌가? 학문적 분류이든 역사적 고찰이든 두 분야는 지근거리에 있었는데, 문화론이 부상하면서 문학이 오히려 중심에서 더욱 밀려나는 지금의 이 모순관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2. 문화론의 부상과 『문화과학』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국내에 문화론이 개화하게 되는 과정을 살펴보자. 국내에 본격적인 문화론이 개화한 것은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과 민주화의 일정한 진전에 따라 변혁이론의 현실접합성이 급격히 떨어진 90년대 초였다. 물론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문화론이 부상한 배경에는 당대 한국사회의 변화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
1992년 『문화과학』 창간을 주도했던 강내희(姜來熙)는 한국사회가 “현재 독점자본주의 체제의 수립으로 생겨난 소비문화, 상품문화의 성격을 가진 대중문화가 지배하고 있는 사회이며, 이런 상황에서 고급문화의 문예론 입장은 대중문화판 속에서 커다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3 국면이라고 정리했다. 물론 90년대 이전에도 문화론이 있었다. 김창남(金昌南)이 꾸준하게 보여주었던 노래 담론, 『현실과발언』 동인이 제기했던 민족미술론 따위인데, 이때의 문화론은 ‘문예론’의 영역에 한정되었으며, 변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의 의미가 강했고, 논의 방식도 문학에서 선취한 리얼리즘 이론을 적용하는 수준이었다. 요컨대 강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90년대 초 문화론의 등장은 후기자본주의로 이행하는 한국사회의 변화에 대한 탄력적 대응이며 “사회적 생산양식에 직접 영향을 주는 실천형식”4이라는 것이다.
이 진술을 어디까지 믿을 것인가? 이 진술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듯하니, 우리 사회에서 문화론이 끼친 영향의 공과를 따지자면 그냥 지나갈 수 없을 것이다. 우선, 우리의 삶에서 소비의 비중이 예전에 비해 훨씬 커졌다는 것, 그리고 그 소비문화의 정치경제학적 의미를 신속하게 파악한 점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80년대 중반 중산층의 성격을 규정할 때 정치적 민주화의 진전에 대한 관심을 잣대로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흔히 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인격이나 직종이 아니라 소비행위를 통해 구현할 수 있음에 본격적으로 주목한 계층이었다는 점은 쉬 간과되고 있다. 당시 가장 유행한 단어 가운데 하나가 ‘오너 드라이버’였으며, 자동차에 이어 개인용 컴퓨터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론적 문제제기는 시의적절한 출발이었다.
그러나 90년대 초 부상한 문화론의 본모습이 한국사회의 새로운 국면에 대한 “탄력적 대응”이었던가. 당시 『문화과학』의 필진은 물론이고 그후 상당기간 동안 우리 문화론의 주류를 형성한 것은 알뛰쎄르(L. Althusser)의 영향을 받은 구조주의적 문화이론이었는데, 바로 이 점에서 문화론은 당대 문제에 대한 탄력적 대응이라기보다 서구 이론의 한발 빠른 소개에 치중한 측면이 짙다. 나는 여기서 서구 문화론의 추이를 잠깐 소개할 필요를 느낀다. 앞서 언급한 윌리엄즈는 이미 19세기에 부르주아 지식인들의 자기반성적 성찰의 결과 문화론이 태동했음을 지적하는데, 이미 20세기 초 리비스 같은 문학비평가는 문화의 중요성을 선구적으로 역설한 적이 있다. 하지만 문화연구(cultural studies)로 불리는 문화담론이 본격적으로 개화하게 되는 것은 50년대 문화주의자들의 작업 덕분인데, 앞서 언급한 윌리엄즈나 톰슨(E.P. Thompson) 등 사회주의자들은 제도권 담론에서 소외되었던 노동자, 여성 등 주변부의 목소리를 제도권 내로 끌어들임으로써 정치적 지향성을 지닌 저항담론을 개발하였다. 이들의 문화개념은 두 가지로 범박하게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고급문화에 맞서 문화의 일상성을 주장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초월적 문화개념에 대항하여 문화를 사회적 실천의 장으로 해석한 것이다. 요컨대, 윌리엄즈나 톰슨 같은 문화주의자들은 문화를 인간해방을 위한 적극적 실천행위로 파악한 것이다.
그러나 60년대 이후 서구 문화이론에서 알뛰쎄르의 구조주의적 맑스주의 이론이 문화론의 지배담론으로 부상하면서 문화주의자들의 목소리는 크게 잦아든다. 문화론의 측면에서 알뛰쎄르의 영향은 문화의 상대적 자율성, 지식의 담론적 구성, 그리고 이데올로기론으로 요약할 수 있다. ‘지식의 담론적 구성’이란 언어와 실재를 분리하는 구조주의 특유의 사유형식에 속하는 것으로, 우리가 가진 지식은 현실에 ‘대한’ 구체적 지식이 아니라, 언어체계 내에서 만들어진 환영이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영향이 컸던 부분은 알뛰쎄르의 이데올로기론, 그리고 ‘주체는 원인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에 의해 만들어진 효과’라는 취지의 반주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개인이 스스로 원해서 하게 되는 문화활동조차 ‘구조적으로 주어진 주체의 자리’를 받아들이는 행위이며, 따라서 문화는 인간해방을 지향한 실천행위이기는커녕 오히려 의식을 통제하는 억압장치로 해석된다.
1970년대 중반이 되면 푸꼬(M. Foucault)와 라깡(J. Lacan)의 영향을 받은 탈구조주의 및 탈근대주의 문화론이 대두하면서 알뛰쎄르의 영향력은 크게 후퇴한다. 물론 탈구조주의 문화론은 현실과 언어의 이분법이나 안정된 주체 개념의 부정 같은 구조주의 인식론의 틀을 기본적으로 계승하면서, 단지 (이 역시 이미 구조주의 이론에 내재하고 있는) 기의에 대한 기표의 우위 및 담론의 불투명성을 훨씬 강조하게 된다. 예를 들면, 재현을 철저히 부정하고 모든 것을 기호로 보는 보드리야르(J. Baudrillard)의 이론이 소비자본주의의 상품문화 분석에 인기를 끌기도 하고, 들뢰즈(G. Deleuze)의 영향을 받아 주체의 유동성을 강조한 탈근대주의 문화론이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지금까지 소략하게 요약한 서구 문화론의 발전과정이 보여주듯이, 1980년대 후반에 오면 서구 문화담론은 문화주의, 구조주의, 탈근대주의, 페미니즘, 그리고 그람시(A. Gramsci)의 영향 등이 서로 복잡하게 얽히는 형국이 된다. 그런데, 90년대 초 『문화과학』의 필진들이 ‘문화사회’와 ‘정치적 변혁’의 실현을 위해 크게 의존했던 담론은 이들 가운데 알뛰쎄르의 이론이었다. 강내희는 앞서의 논문에서 문화론의 정초를 새로 놓기 위해서는 지식대상(개념)과 실재대상(실재)을 구분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한다. 90년대 초 한국의 정치경제적 현실과 문화정세 분석에 알뛰쎄르의 이론은 적실성을 가지고 있었던가? 대상과 현실의 분리라는 구조주의 명제의 핵심은 본래부터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반본질론인데, 이 주장이 정치적으로 가장 실효성을 발휘한 때는 대중이 기존 체제의 정당성을 거의 무의식적으로 수용하고 있을 때였다. 이 경우, 자신들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현실이 사실은 인위적으로 조작된 것이라는 인식은 정치적 해방에 매우 긴요했다. 그러나 서구와 달리 90년대 초 한국의 경우 정권의 정당성은 대단히 취약하여 분단국가로서의 특정한 위상이 아니라면 정권유지 자체가 힘든 상황이었고, 경제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정경유착에 기반한 천민자본주의적 운영방식으로 근대적 합리성에는 한참 멀었다. 물론, 이 이론 자체는 필요한 국면이었다. 예를 들면, 우리의 종합국면에서 이 명제는 페미니즘 쪽에서 뿌리깊은 가부장제적 관행을 공격할 때 지금도 매우 유용하다. 단지 이 명제는 좁은 의미의 ‘정치적’ 효과 내지 ‘진보적 담론 구성’에서는 효과적일 수 없었다.
더욱이 알뛰쎄르의 영향 아래 문화를 현실의 반영이 아니라 특정한 효과를 생산하는 실천으로 파악하고, 문화 텍스트가 대중을 이데올로기 속으로 포섭하는 방식을 찾아내는 데 주력한 것도 문제였다. 『문화과학』 창간호(1992년 여름호)에 실린 다음의 글은 그 비근한 예에 해당한다.
오늘날 라디오로 방송되는 음악은 권력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라디오처럼 음악은 청취자를 침묵시키고, 청취자의 침묵 대신 권력이 독백을 한다. 음악은 그 독백의 가면이고 독백의 내용은 소리, 박자에 몰입하라는 것이다. 권력의 얼굴을 보지 말고 음악을 들어라. (…) 라디오 음악은 권력의 원천이다. 시간과 연령을 폭넓게 장악한 음악 프로그램에서, 그 추상성의 언어 앞에서 청취자는 끊임없이 현실과 화해하기를 강요한다. 중세시대의 음유시인이 정치선전에 이용된 것처럼 라디오의 음악 프로그램은 청취자의 탈정치화를 통해 변화, 변혁의 욕망을 거세한다. 이런 한에서 라디오는 음악에 의한 지배도구라고 할 수 있다. (이득재 「라디오, 이대로 들을 것인가」, 강내희·이성욱 엮음 『문화분석의 몇가지 길들…』, 문화과학사 1994, 72면에서 인용)
서구 맑스주의 이론가들은 구조주의가 탈구조주의로 전개된 원인으로 1968년 혁명의 좌절을 흔히 언급한다. 현실의 견고한 벽을 다시 확인했을 때, 그들은 실패의 원인을 기존의 문화권력과 대중의 미숙한 정치의식 탓으로 돌리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엘리뜨주의와 정치적 비관주의의 결합으로 볼 수 있는 이 이론은 근대화 이후 분단체제 속에서 어렵게 그러나 꾸준히 민주화를 진척해왔던 민중적 성격을 가진 한국의 대중에게는 적용하기 어려우며, 『문화과학』이 원래 의도한 ‘문화사회’를 달성하기엔 패배주의적 혐의가 짙은 것이었다. 80년대까지 한국의 대중이 독재권력과 은밀한 유착관계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논지조차 최근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알뛰쎄르의 이데올로기론이나 ‘우리 안의 파시즘’ 필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달리, 대중은 자발적으로 독재정권이나 지역주의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으며, 대개는 옳아서가 아니라 틀린 줄 알면서도 대안이 없기에 주어진 선택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무엇보다 이 이론들로는 분단체제의 억압 속에서 민주주의의 폭을 힘겹게 넓혀온 한국근대사의 정치역정을 설명하기 어렵다.
결국 90년대 초 문화론의 부상은 국내 소비자본주의의 출현으로 재생산에 대한 고찰이 중요해진 국면에서의 시의적절한 대응이었다. 언어·도시·육체 등 예전에 소홀하게 다룬 문제를 조명함으로써 논의주제의 폭을 넓힌 점은 『문화과학』의 업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현실에 천착하겠다는 의지와 달리 초기의 『문화과학』은 변혁의 현실적 가능성이 점차 소멸되는 서구의 비관적 경향이 짙게 배여 있는 특정이론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비현실성’도 함께 보여준다. 실제로 『문화과학』은 이후 구체적인 문화분석에 있어 알뛰쎄르와 상당히 다른 지평에 있는 탈구조주의 및 탈근대주의 이론을 수용하는 면모를 보인다.
3. 서구 문화론의 공과와 안티조선 담론
1990년대 이후 문화론은 번영을 구가한다. 십대가 대중문화의 확고한 고객으로 자리잡으면서 신문의 문화면이 문학비평보다 영화와 음악에 대한 문화비평으로 채워지고 매니아들의 전문비평이 인터넷을 통해 유포된다. 그런데 지난 10여년간 국내의 문화론은 현장비평이든 이론비평이든 서구에서 유입된 이론에 근거해서 전개된다. 초기에는 알뛰쎄르의 영향을 받아 주체개념을 전면 부정하는 구조주의 문화론이 절대적 영향을 미치지만, 곧이어 탈근대주의 문화론으로 대체된다. 탈근대주의 문화론은 구조주의 이론에 비해 주체의 분열·불안전·가변성·다양성을 강조하기에 다원주의적 사회현실이나 소비자본주의에 훨씬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으며, 재현에 대한 강화된 부정은 교환가치가 비대해진 소비자본주의적 삶의 형식을 분석할 때도 일정한 호소력을 지닌다. 이 두 경향의 절대적 우세 속에서 문화적 실천을 통한 개혁 가능성을 타진하는 윌리엄즈류의 문화주의 경향도 미디어 비평이나 하위문화 연구에서 나타난다. 페미니즘 역시 문화담론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먼저 문화담론의 확산에 기여한 수입담론의 긍정적 역할부터 살펴보자. 앞에서 언급한 바지만, 문학·음악·미술로 국한되던 대상이 재생산 행위 전체로 확산된 점을 우선 꼽아야 할 것이다. 주제의 확장 자체가 반드시 건강한 관점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논의 없이 건강한 관점을 확보하기는 지난한 일이다. 또한 문화를 이미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으로 보게 된 것도 큰 진전이다. 이는 일상에 깊이 뿌리내려 거의 무의식의 수준으로 내려간 가부장제의 관행 타파에 큰 역할을 하였다. 이와 연관된 것으로, 특정한 문화관행을 관행 자체의 계기만으로 이해하기보다 그 관행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사회경제적 조건에 대한 논의로 옮아간 점도 긍정적이다. 이와 같은 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함으로써 문화론 연구자들은 이데올로기·권력·생산양식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하게 된다. 문화수용과정에 대한 적극적 관심도 중요한 공헌이다. 80년대 이전의 문화비평은 주로 문화생산자 및 문화텍스트에 의해 ‘결정’되는 보편적 진실에 관심을 표명해온 반면, 90년대 문화론은 텍스트가 성별이나 계급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여기에 민중의 역동성을 기억하는 문화연구자들은 대중을 문화의 적극적 생산자로 해석한다. 서구 문화론의 경우 계급, 성별 및 인종에 따라 가치체계가 달라진다는 차이의 정치학에 기초해서 소외된 주변집단의 억압된 목소리를 되살리는 데 큰 역할을 하는데, 우리의 경우 성별에 따른 불평등 문제는 심각하게 논의되었으나, 계급 및 인종의 차이에 대한 논의는 부족했다는 점을 덧붙여야겠다. 문화론의 장점을 여기서 일일이 거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문화론의 가치를 입증하려면 서구 문화론의 세련된 인식론이 부족할 때 일어나는 문제를 보여주는 것이 더 설득력있을 것이다.
썩 내키지는 않지만 여기서 우리 사회 문화논쟁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안티조선 논쟁을 살펴보자. 안티조선 논객들의 핵심주장 중 하나는 조선일보가 문화적 첨단성으로 정치적 극우성을 희석시킨다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자신의 수구적 정치색을 가리는 방법은 문화면을 통해 이뤄진다. 조선일보 문화면은 다채롭고 화려하다. 문화면의 유사 진보성(왜냐하면 문화면에는 극우성 또한 뚜렷하므로)과 정치면의 수구성, 그것이 조선일보의 정체다. 조선일보는 문화면에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을 배치한다. 좌파 문인들은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 그렇게 다양한 필자를 동원, 문화면을 화려하게 꾸며서 독자들을 끌어들인 후 정치면에서 수구적 견해를 유포하는 것이다. (김정란 「나는 “조선일보”의 몰상식과 싸운다」, 조선일보반대시민연대 엮음 『왜? 조선일보인가』, 인물과사상사 2000, 242면)
조선일보에 관해 매우 읽을 만한 글을 쓴 노염화도 조선일보 문화면은 “젊은 세대를 흡입하기 위해 전체 논조와 관계없는 무색의 논조를 사용하여 극우적 색채를 흐리고 있다”5고 주장함으로써 윗글의 취지를 반복한다.
하지만, 서구에서 개발된 문화론적 통찰은 정치면과 문화면의 역학관계를 이렇게 단순하게 풀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윗글에서 우선 문제되는 것은 문화를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 정도로 파악하는 위계질서적 사고이다. 과거 속류 맑스주의자들이 문화적 상부구조를 경제구조의 소박한 반영으로 생각한 것과 유사한데, 이 논의에 따르면 문화는 독자적 생명력을 가지지 못한 채 단지 독자를 끌기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한 것이 된다. 사실 이런 주장은 조선일보 문화면을 다양하고 화려하며 (유사)진보적이라고 인정함으로써, 오히려 필자 자신이 말한 문화면의 ‘극우성’에 대한 정치한 분석을 가로막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90년대 이후 등장한 대중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도 문제이다. 독자가 문화의 꾐에 빠져 조선일보의 정치면을 읽게 되고, 그 결과 수구적 논조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다는 주장이 어디까지 사실일까? 실증적으로는 문화면의 독자가 정치면의 독자와 일치할 뿐만 아니라 동일한 독자가 두 면의 배리 사이에 아무런 갈등을 느끼지 않아야 하며, 게다가 문화면의 화려함에 이끌려 정치면까지 오면서 문화의 정치예속성을 무의식적으로 인정하는 경우에만 이 우려는 타당한 것이 된다. 보통의 독자라 할지라도 이 세 단계를 아무 의식없이 통과할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비평가들이 곧잘 범하는 오류 가운데 하나는 독자의 수준을 작품의 수준과 동일하게 보는 것이다. 예를 들면, 멜로드라마를 보는 가정주부는 소비자본주의의 달착지근한 환상의 덫에 걸린다고 단정해 우려하는 것인데, 그런 의미에서 이런 우려에는 자신의 정당성을 과신하는 유아론의 기미가 보인다.
나로서는 조선일보 문화면과 정치면의 부정합성을 설명할 때 70년대 후반 문화담론에 큰 영향을 미친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대단히 유효해 보인다. 그람시가 말해주는 바는 지배문화가 지배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선 현실 변화에 끊임없이 적응하고 변신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조선일보가 오랜 기간 지속해온 수구냉전적 논리를 냉전이 무너진 90년대에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선 새로운 독자세대의 요구를 일정부분 수용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정치와 문화를 위계질서 속에 배치함으로써 부정합성을 해결하려는 것보다, 두 면 사이에는 하나로 환원되지 않는 불연속성이 어느정도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동시에, 안티조선 운동이 정치적으로 이해를 같이하는 집단 내부의 운동을 넘어 외부로까지 확장하려면 조선일보의 헤게모니 작동방식에 대한 분석이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다. 이때 조선일보의 틀린 부분에 대한 지적―이런 지적은 많이 있었고 또 쉽게 지적할 수 있다―만큼 조선일보가 ‘옳은’ 부분, 즉 일반 독자에게 강한 호소력을 발휘하는 부분에 대한 분석도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최근 조선일보의 세력이 전만 못하다면 이는 조선일보의 논조에 대한 환멸보다 인터넷의 확장과 같은 매체환경의 변화에 기인한 바가 더 크다. 수구냉전적 논리가 지속되는 것도 대중이 멍청해서 속고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북한이나 진보적 세력을 정말 싫어하는 대중이 적지 않다는 것, 나아가 인정하기 싫지만 이들의 경험에도 일말의 진정성이 있다는 점까지 고려해야 할 것이다.
4. 대중문화의 부활과 진실의 실종
서구 문화론이 우리의 논의 수준을 높여놓은 예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문화를 초월적 공간이 아니라 사회적 갈등이 교차하는 공간이자 권력이 작동하는 현장으로 파악하는 통찰은 언어를 단지 의사소통의 투명한 매개체 정도로 생각하는 영어공용론자들에 대해 통렬한 반박의 거점을 제공한다. 문제는 서구 문화론을 우리 현실에 적용할 때, 그 약점도 함께 들어온다는 사실이다. 문화담론의 영역 확장이 긍정적인 변화지만, 반드시 긍정적 결과만 낳지는 않는다는 유보적 단서를 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적용되고 있는 서구적 문화론에 감춰진 문제점을 이제 거론할 차례인데, 우회하여 서구에서 대중문학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진 과정을 살펴보자.
윌리엄즈는 영어에서 ‘문학’(literature)이란 단어가 지닌 의미의 역사적 변천과정을 개관하면서, 문학범주가 점차 전문화되고 특화되는 과정이 있었음을 지적한다. 15세기경에는 ‘글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의미했는데, 18세기에는 ‘품위있는 인쇄물’의 의미로 전화되었으며, 19세기에는 ‘상상적 창조물’이란 식으로 문학의 영역은 점차 특정한 스타일의 글을 지칭하게 된다. 여기서 대중문학을 문학으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는 그 마지막 단계에 해당한다. 이렇게 아놀드·리비스 전통에 의해 ‘문학’범주에서 제외된 대중문학이 문학의 한 영역으로 부활하게 되는 것은 대개 1970년대 이후의 일인데, 윌리엄즈 자신이 여기에 적지 않게 공헌을 한다. 문화활동의 민주화를 지향하는 윌리엄즈는 문학작품을 미학적 감상을 위한 소모품으로 볼 게 아니라, 작품읽기라는 ‘실천’이나 ‘행위’의 관점에서 접근할 것을 강조한다. 즉, 텍스트 자체보다 텍스트를 읽는 행위를 중시함으로써 대중들의 독서행위에 일정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윌리엄즈에서 이미 보이는 텍스트와 독자반응의 분리는 구조주의 이론의 등장으로 극대화된다. 구조주의는 ‘본질적’인 것으로 보이는 것들이 사실은 사회적·역사적 구성물임을 주장함으로써 대중문화 부활의 길을 활짝 열어놓는다. 진실의 담지자 지위를 누려온 문학은 여러 사회적 힘들이 관통하는 담론공간으로, 심지어 대중의 의식을 가로막는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로 폄훼되고, 텍스트의 진실도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 공간 내에서 여러 힘들이 서로 각축을 벌인 결과 만들어진 것이 된다. 한 필자는 영문학의 역사를 정리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적어도 20세기 초반까지 제도로서의 영문학은 사회의 모순을 생산하고 드러내는 장치가 아니라 그 모순을 사회의 일정한 방향에 맞게 유기적으로 조정하고, 때로는 상상의 은유와 환유 작용을 통해 해소하거나 은폐하려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의 중요한 형태가 되는 것이다. (이동연 「영문학 연구의 과정과 주체 형성」, 김용권 외 『영문학 교육과 연구의 문제들』, 한신문화사 1996, 99면)
문학이 탈신비화하고 작가의 권위가 부정되면, 독서·해석·비평의 의미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전통적으로 해석은 완결된 텍스트 내에 담긴 진실을 찾아 독자에게 전달하는 행위였다. 이제 작품이 전달한다는 진실과 통일성은 해석자의 욕망이나 권력의지가 만들어낸 환상으로 규정된다. 예전에 작가에게서 창조성의 근원을 찾으려 한 비평가들은 이제 작가 역시 이데올로기에 포섭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텍스트에서 보이지 않게 설치된 (작가 자신도 모르는) 이데올로기의 작동방식을 찾아내고 이를 작가에게 충고하려 드는데, 이런 태도는 우리의 비평가들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지금까지의 요약이 말하는 바는 무엇인가? 대중문학의 부활은 대중문화 자체에 담긴 가치가 새롭게 인지되었기 때문이라기보다 오히려 본격문학이 지녔던 과거의 특권적 지위가 크게 흔들린 결과, 즉 어부지리에 더 가깝다는 점이다. 따라서, 본격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선이 희미해지면서 대중문학과 문화론이 부상하는 과정은 여러 문제점이 따르게 마련이다. 모든 것을 권력의지의 소산으로 본 결과 진실이란 개념 자체가 사라지고, 기준 자체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다는 이유로 좋은 작품과 나쁜 작품을 변별할 기준이 모호해지며, 또한 독자와 텍스트 간의 ‘대화’가 비평적 관심에서 멀어지는 것 따위가 그 예다.
탈근대주의 문화론에 오면 사정은 좀 달라진다. 모더니즘의 통일지향성, 엄숙성, 엘리뜨주의에 대한 반발로 인해 탈근대주의 문화담론은 주체의 죽음을 주체의 분열과 불안정성으로 대체하고, 담론이나 이데올로기의 통일성 대신 본질적 균열을 강조한 결과, 대중문학과 본격문학의 경계선은 더욱 세련된 형태로 희미해진다. 구조주의 문화담론이 대중문화를 면밀한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로 이해하는 데 비해, 탈근대주의 담론은 대중문화가 이데올로기 장치임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 장치에 균열이 있고 그 균열을 따라 전복과 위반의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확인하려 한다. 탈근대적 이론을 정교한 방식으로 영화비평에 도입하는 김소영(金素榮)의 글을 읽어보자. 김소영은 여성 원귀가 등장하는 공포영화 「원녀」에 대해 논하면서, 이 영화가 여성육체를 교묘한 방식으로 체제유지에 동원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 관점에 따르면 「원녀」는 유교적 가부장제의 통치원리를 위협하는 탐관오리를 징벌함으로써 현실의 헤게모니 질서를 회복하는데, 이 과정에서 가부장적 체제에 수용되지 못하는 처녀 원귀가 촉발하는 위협적 측면도 함께 제거된다. 이 정도의 주장이라면 알뛰쎄르의 이데올로기론을 적용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김소영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이 이데올로기 장치에 본질적 균열이 있음을 지적한다.
공포정화와 순화로 가기 위해 영화는 우선 위반과 과잉을 보여주어야 하고, 또 그것이 보이고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상징계와 실재계가 미처 봉쇄하지 못한 상상계의 판타지, 욕망의 미장센을 펼쳐 보여야 한다. 그리고 그 위반과 과잉이 시사하는 점은 상징질서가 늘 성공적으로 통제받고 조정되는 것은 아니며, 그 실패에 대한 불안은 언제나 잠재해 있다는 것이다. 영화는 그런 불안의 시나리오인 동시에 그 불안을 생산하는 욕망의 미장센화인 것이다. (김소영 『판타스틱 한국영화: 근대성의 유령들』,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 1999, 70~71면)
이처럼 탈구조주의적 접근방식은 구조주의적 문화담론에 비해 문화현상에 대해 훨씬 유연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며, 대중문화의 내재적 가능성을 더욱 적극적으로 해석할 수 있게 해줄 것 같아 보인다. 그런데 이 위반가능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위와 같은 접근방식은 위반의 원인을 텍스트의 생산자보다 텍스트화 과정에 귀속시킨다는 점에서, 대중문화 위상의 강화라고 보기 힘들거니와, 위반이 변화의 동력보다 체제 속에 이미 구조화된 장치라는 느낌을 가지게 만든다. 게다가 이 위반은 이론을 갖춘 엘리뜨 관객이 영화의 무의식을 헤집어 발견하는 것이지 감독과 관객 사이에서 ‘대화’를 통해 소통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작가의 죽음이나 진실의 실종과 같은 구조주의적 문제점이 다시 제기된다.6 이 논의 속에 관객의 의미창조적 실천이 개입할 여지는 거의 없어 보인다.
이제 다시 90년대 초로 돌아가서 당시 급부상했던 문화론의 의미를 상기해보자. 문화론은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과 자본의 전지구화의 맥락 속에서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 한국 자본주의가 야기한 변화에 대응하려는 시도였다. 이 시도는 이미 지적한 대로 긍정적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기대치를 높여 문화론을 변혁의 약속으로 기대했다면, 이 약속은 절반도 이루어지지 못한 셈이다. 대중문화의 부상과정에 대한 서술이 보여주듯, 그 이유는 한국의 문화분석에 적용한 서구 문화담론의 주된 관심이 변혁가능성보다 변혁이 불가능한 이유의 설명에 더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출발에 내재했던 절반의 가능성은 “희망의 현실화보다 절망의 합리화”를 지향한 이론의 적용으로 더욱 비켜났던 것이다.
5. 대중의 창조적 문화실천
서구 문화론에서 문화를 인간해방과 역사창조의 적극적 동력으로 발전시킨 이론은 윌리엄즈와 톰슨이 주도했던 문화주의였다. 톰슨은 “노동계급은 때가 되면 태양이 떠오르듯 부상한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 스스로 만들어낸 것”7이라고 주장한다. 이 저작에서 톰슨이 무수한 예를 통해 보여주려 한 사실은 노동계급이라는 사회적 제도가 근대 자본주의 체제에 의해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의식화된 노동자들이 문화적 실천을 통해서 각성된 노동계급으로 발전해나갔다는 점이었다. 문화주의적 접근방식은 그후 하위문화 연구자에게 부분적으로 계승된다.
우리 문화론의 경우, 대중의 문화체험에서 욕망의 진정성, 이를 넘어 저항가능성까지 읽어내는 서구의 문화주의적 연구경향을 인용하는 경우는 두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하나는 가요·만화·유행과 같이 폄하를 받아온 장르에서 일하고 있는 현장 문화비평가들이 자신들의 작업을 적극 변호할 때이다. 이보다 훨씬 진지한 경우는 80년대 민중이 보여주었던 변혁지향의 의지를 소비자본주의가 강화된 현재의 상황 속에서 계속 찾고 싶은 경우인데, 김창남이 행한 대중가요 수용양태에 대한 실증적 연구가 대표적이다. 김창남은 대중의 수동성을 전제로 한 이데올로기론에 반발하면서 “모든 대중문화는 문화산업의 논리 속에서 부여된 지배적 의미와 그것을 수용하는 대중이 부여한 의미 사이의 경합과 투쟁의 영역”이라고 정리한다.8 그는 청소년집단의 대중문화 체험에는 일상적 삶의 장치와 문화적 가치에 대해 저항을, 중산층 주부들의 노래교실 참여에서는 자신들의 종속적 위치에서 벗어나려는 욕구를, 생산직 노동자들의 노래가사 바꿔 부르기에서는 대안문화에 대한 욕구를 읽어내고, 이 욕구를 지배문화에 대한 저항의 가능성으로 제시한다.
그런데 소비자본주의에 의해 조직된 상품 속에서 건져낸 저항의 가능성은 어디까지인가? 김창남은 청소년집단의 저항은 ‘상징적 수준’이고, 중산층 욕구는 다시 종속적 위치로 돌아가기 위한 일시적 분출이며, 생산직 노동자의 대안문화 욕구도 ‘잠재적’ 수준에 불과함을 시인한다. 과연, 이것을 저항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그의 애매한 입장은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도 명백히 보인다.
상상적 편입이나 상징적 저항의 단계가 지배문화가 유지되는 상태임은 틀림이 없다. 그것은 이를테면 하위문화집단의 저항적 에너지를 부분적으로 수용하면서 헤게모니를 유지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일방적인 ‘지배’의 관철이 아니라 헤게모니 과정이라는 점, 하위집단의 저항적 에너지를 일정하게 수용함으로써 이미 ‘순수하게’ 지배적이지 못하다는 점이다. (『대중문화와 문화실천』 26면)
요컨대, 하위문화 속의 저항은 지배 속의 저항이라는 형용모순으로 끝나는데, 그렇다면 김창남은 ‘순수하지 못한 지배’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무엇이 문제일까? 잠깐 영국의 하위문화 연구를 돌아보자. 1968년 급진적 운동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일부 맑스주의 연구자들은 혁명의 열기가 완전히 가라앉고, 이어 노동계급의 동질성과 진보성마저 크게 흔들리는 70년대 후반에 들어서자, 변혁의 가능성을 지배질서적 가치에 저항하는 하위문화에서 발견하려 하였다. 스킨헤드·히피·마약상용자·자퇴생 등 ‘발칙한 문화’에 탐닉하는 하위집단은 기성체제의 입장에서 볼 때는 저질 문화의 희생자이겠지만, 하위문화 연구자들은 이들을 “자신들을 위한 문화창조자”로 적극적으로 해석한다. 예를 들면, 자퇴행위는 정규교육과정에 적응하지 못하고 낙오한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경쟁력만 중시하는 지배문화에 대한 저항이며, 왜곡된 형태지만 노동계급의 전통적 가치인 단합의 윤리를 계승하는 행위로 재해석한다.
이 비교에서도 드러나듯 김창남의 연구대상은 엄밀한 의미에서 하위집단이라고 보기 힘들다. 주디스 윌리엄슨(Judith Williamson)은 “강단좌파들이 길거리 패션부터 멜로드라마까지 갖가지 대중문화에서 ‘전복’의 줄거리를 골라내려 혈안이 되어 있다”고 비판한 적이 있는데,9 이처럼 변혁의 가능성이 희미해져 진보적 정치학이 위기에 처한 상황이 오히려 사소한 저항이라도 소중하게 생각하도록 부추겼을 것이다. 실제로 서구의 하위문화 연구자들은 일탈행위를 지배체제에 맞선 ‘자발적’ 선택의 결과로 해석하여 하위문화의 창조적 의미를 강조함에도 불구하고, 하위문화 향유자들이 궁극적으로는 기존질서를 오히려 강화하고 있다는 아이러니를 시인한다.
하지만 이것뿐일까? 이런 상황적 원인보다 더욱 근본적인 것으로 나로서는 서구 주류문화론에 팽배해 있으며 하위문화 연구에도 깊숙이 침투한 “진실과 대화” 개념의 실종을 김창남이 비판없이 받아들인 점을 들고 싶다. 청소년, 주부, 노동자 등이 대중문화 실천에서 자기해방이나 체제에 대한 저항을 느꼈다고 말할 때, 나는 그들의 체험의 핍진성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핍진성은 진정성과 다른 것이다. 욕구가 강하다고 해서 그것이 진실이라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앞서 나는 윌리엄즈의 이론에서 텍스트와 독자의 분리의 기미가 보인다고 하였다. 문화수용이 진정한 것이 되려면, 텍스트의 의미와 수용자의 체험 사이에 깊은 대화와 교류가 있어야 한다. 최근 서구 문화담론은 텍스트의 의미를 규정하려는 행위를 해석의 자유를 제한하는 권력작용으로 비판한다. 대중문학의 부상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계기는 모든 가치가 구성된 것이라는 구조주의 인식론의 팽배이다. 그러나 진리에 대한 확신, 텍스트와의 ‘대화’를 통한 각성 및 도덕적 성장이 없다면, 저항과 변혁이 있다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구조주의나 탈근대주의 문화론과 달리 하위문화 연구를 추동시킨 충동은 ‘희망의 현실화’였다. 그러나 하위문화 연구도 진리, 질적 차이, 대화의 중요성, 자아성장 같은 개념에서 멀어질 때 원래의 충동에서 멀어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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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edric Jameson, Postmodernism, Or, the Cultural Logic of Late Capitalism (Duke U.P.) 4~5면.↩
- Perry Anderson, “Components of the National Culture,” New Left Review 1968년 7-8월호(I/50); Raymond Williams, Culture and Society: 1780~1950 (Columbia University Press 1983) 참조.↩
- 강내희 『문화론의 문제설정』(문화과학사 1996) 68면.↩
- 같은 책 69면. ↩
- 노염화 「‘광수생각’ 그리고 ‘조선일보 생각’」, 김민웅 외 『조선일보를 아십니까?』(개마고원 1999). ↩
- 김소영은 작가주의 감독들, 특히 김기영에 대해 종종 언급하지만, 이때 그 이름은 실제의 살아 있는 감독이라기보다 특정 영화를 의미하는 기표로 사용된다.↩
- E.P. 톰슨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나종일 외 옮김, 창작과비평사 2000) 서문 참조.↩
- 김창남 『대중문화와 문화실천』(한울 1995) 21면.↩
- Judith Williamson “The Problems of Being Popular,” New Socialist(September 1986) 14~1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