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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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申庚林

1935년 충북 충주 출생. 1956년 『문학예술』로 등단. 시집 『농무』 『새재』 『길』 『쓰러진 자의 꿈』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뿔』 등이 있음. kyungrim@uriedu.co.kr

 

 

 

낙타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異域

 

 

저 굵은 주름투성이 늙은이는 필시 내 이웃이었을 게다.

눈에 웃음을 단 아낙은 내가 한번 안아본 여인인지도 모르고.

햇살 환한 골목은 한철 내가 정들어 살던 곳이 아니었을까.

문앞 화분의 팬지도 벽 타고 올라간 나팔꽃도 낯설지 않아.

 

조그맣게 엎드려 사는 사람들은 말씨도 몸짓도 엇비슷해.

너무 익숙해서 그들 손에 묻은 흙먼지까지 익숙해서.

어쩌면 나는 전생에 눈이 파란 이방인이었는지도 모르지.

다음엔 그들의 조랑말로 이 세상에 다시 올는지도 몰라.

 

너무 익숙해서 그들 눈에 어린 눈물까지 익숙해서, 마지막

내가 정착할 땅에 가서 어울릴 사람들만큼이나 익숙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