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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송기원 宋基元

1947년 전남 보성 출생. 197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당선. 소설집 『다시 월문리에서』 『인도로 간 예수』 등이 있음. ssong712@hanmail.net

 

 

 

물총새 성관이

 

 

“선배님, 혹시 명월각 아세요?”

Y시인이 물어올 때만 해도 나는 명월각이 얼핏 기억에 잡히지 않아 무심코 되물었다.

“명월각?”

“예, 명월각 말예요.”

나는 쉽게 고개를 저으며, 농담조로 되물었다.

“이름으로는 무슨 기생집인 모양인데, 왜? 거기 있는 기생이 혹시 나 몰래 아이라도 낳아서 기르고 있대요?”

나의 농담조에 좌중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와와, 하고 떠들썩한 웃음판이 벌어졌다. 소리에 비해 다소 맥이 풀린 듯한 느낌도 없지 않은 웃음과 함께, 좌중에는 잠깐 반짝, 하고 일말의 기대가 감돌았다. 2박3일의 결코 짧지 않은 술자리 끝에, 마침내 파김치가 되어 해장국 대신에 물냉면을 시켜놓고 앉아 있으면서도, 어쩐지 이대로 헤어지기가 아쉬워서 저마다 나름대로 다시 술자리를 이어갈 무슨 구실을 찾던 중이었다.

“기생집이 아니고, 중국집인데요.”

Y시인 역시 좌중을 따라 아직도 웃음이 번진 얼굴로 말했고,

“내가 아무리 진 데 마른 데 가리지 않고 헤프게 흘리고 다녔다 해도, 아직 중국집에서까지 흘린 기억은 없는데?”

내가 일말의 어떤 기대감을 대신하여 여전히 농담조로 밀고 나가자 좌중에는 다시 한번 웃음이 넘쳐났다. 기실 나 또한 속으로는 지금의 술자리가 깨지는 데 대한 아쉬움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요즈음처럼 사람살이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너나없이 각박해져서 서로 마음을 열고 즐길 수 있는 하룻밤의 술자리마저 흔치 않은 시절에, 더군다나 몇년 사이에 벤처니 디지털이니 인터넷이니 문화콘텐츠니 멀티미디어니 하는 말들이 시류를 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시나 소설을 쓰는 일이 그 시류의 무슨 값어치로 친다면 그야말로 철지난 아날로그 기술처럼 똥값으로 치부되어 맨 밑바닥에서 허비적거릴 것이 분명한 때에 글쟁이들끼리의 술자리가 모처럼 2박3일 이어졌다면, 그동안 함께 잔을 부딪치고 한방에서 나뒹군 일행들 사이에 엮어진 정감 또한 그 끈끈함이 예사롭지 않을 터였다. 일행들은 다른 것은 고사하고 모처럼 알게모르게 서로의 사이를 엮은 그 정감이 애틋해서라도 술자리를 쉽게 끝낼 수는 없었다.

“그 명월각이 바로 새재에 있어요.”

Y시인의 입에서 새재라는 지명이 나오자, 나는 더이상 농담조로 밀고 나가지 못하고 아연 긴장을 했다.

“새재라고?”

“예.”

새재는 바로 나의 고향이다. 그러고 보니, 30년도 훨씬 넘는 흐린 기억의 저편에서 장터의 버스정류장 옆에 있는 명월각이 선명하게 되살아왔다.

“아니, 어떻게 새재에 있는 명월각을 알아요?”

“거기 명월각이 제 첫직장이었거든요.”

“첫직장이라니, Y형 고향이 거기가 아니잖소?”

“물론 아니지요.”

“고향도 아니면서, 그 촌구석까지 어떻게 간 거요?”

“우연찮게 아는 사람 소개를 받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일이 잘못 꼬였더군요.”

“그건 그렇고, 도대체 그게 언젯적 얘기요?”

“제가 열네살 먹었을 때니까, 가만있자, 칠십년대 초네요.”

“열네살이라구?”

“예, 열네살이요.”

“아니, 열네살짜리가 명월각까지 와서 뭘 했어요?”

나의 계속되는 물음에, Y가 커다란 덩치를 뒤틀며 베시시 웃었다.

“에이, 선배님도 차암, 뻔한 걸 왜 물어요? 짜장면 배달 뽀이! 요즘말로 하자면 짱깨족!”

내가 한동안 망연자실하여 말이 없자, Y가 덧붙였다.

“말이 쉬워 짜장면 배달이지, 발이 페달에 닿지 않아 자전거를 탈 수도 없어서 그 큰 배달통을 들고 일일이 걸어다녀야 했어요. 그때는 제가 키가 작아 짜리몽땅도 그런 짜리몽땅이 없었어요. 키가 그 모양이다보니 자전거는 고사하고 배달통마저도 숫제 땅에 질질 끌리는 거예요. 그렇게 땅에 질질 배달통을 끌며 면사무소랑 지서랑 중학교며 초등학교며 농협이며 그야말로 새재 장바닥을 휩쓸고 다닌 셈이에요.”

Y시인은 한번 입이 열리자 새재에서의 일이 흡사 무슨 즐거운 추억거리라도 되는 양, 어딘지 모르게 들뜬 기색으로 떠들었다.

“그나마 짜장면만 배달하면 좋겠는데, 배달이 끝나면 물지게로 물 져날라야지, 산더미처럼 쌓인 그릇들 닦아야지…… 당시만 해도 새재에는 상수도가 없어서 면사무소 우물에서 물을 져날라야 했는데, 어휴, 엄동설한에 물 져나르고 그릇 씻다보면 손등이 얼어터져 피가 줄줄 나는 거예요. 아침에 눈 비비고 일어나 자정 무렵에 잠들 때까지 그야말로 눈코뜰 새 없는 건 물론이고, 잠깐 어디 숨어서 히잉히잉 울 틈조차 없는 생활이었어요. 제가 이렇게 무뎌 보여도 생긴 것에 비해 감수성은 남달리 예민한데, 생전 처음으로 남 밑에서 일을 하다보니 어린 마음에도 어머니며 아버지며 동생들까지 식구들 품이 여간 그리워야지요.”

“열네살이라면 국민학교를 갓 졸업하고 중학교나 다닐 무렵인데……?”

“에이, 제 가방끈이 정식으로 따지자면 국졸이 전부라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인데 새삼스럽게 중학교는 무슨 중학교예요? 그런데 그렇게 열네살짜리가 처음으로 취직해 벌어낸 월급이 얼만 줄 아세요?”

“글쎄.”

“보리쌀 두 말이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도 저를 명월각으로 보내면서 아버지가 미리 선불로 당겨 썼더라구요. 아이구우, 겨우 보리쌀 두 말에 열네살짜리가 한겨울 내내 그 고생을 하다니, 훗날 돌이켜 생각해도 어쩐지 분한 것 있지요?”

내가 여전히 망연자실하여 미처 무어라 대꾸를 못하고 있자, Y시인이 다시 말을 이었다.

“하여튼 그 명월각을 시작으로 제가 지금까지 밑바닥 일은 안해본 게 없을 정도예요. 약간 뻥을 치자면 백가지가 넘을지도 몰라요. 식료품 상회, 빵공장, 갈비집, 설렁탕집, 보석상 시다를 거쳐 공사장 잡부, 구두닦이, 싸롱 웨이타, 나이가 들어서는 우유배달, 목수……”

이때 H작가가 불쑥 Y시인의 말을 막고 나섰다.

“아, 제발 그만 해둬. 그놈의 징글징글한 과거사를 무슨 자랑이라고 또 떠들어대는 겨?”

“알았어. 그만두라면 그만두지 뭐.”

나는 어쩔 수 없이 새삼스러운 눈길로 Y시인을 건너다보았다. 그런 나의 시야에는 환상인 듯 어린 그가 배달통의 무게 때문에 한쪽으로 잔뜩 어깨가 기울어진 채 낑낑거리며 새재의 장터바닥을 이리저리 휩쓸고 다니는 모습이 어른거렸다. 70년대 초라면 어쩌면 나 또한 우연찮게 명월각에 들러 어린 그가 손등에 피를 줄줄 흘리며 닦아낸 그릇에 담아낸 짜장면을 먹었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빗자루로 의자 밑을 쓸던 그의 손길이 나의 발에 닿았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상상 속에서 어린 그를 만나자 순간 흡사 목구멍이라도 타들어가는 듯한 갈증이 몰려오는 것이었다. 나는 딱히 좌중의 누구라고 할 것이 없이 말했다.

“도무지 안되겠어. 혼자서라도 소주 한잔은 마셔야겠는데.”

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Y시인이 말을 받고 나섰다.

“명월각 이야기가 나오면, 분명히 선배님이 술을 시킬 줄 알았어. 어이 주당들, 어때? 내 전략 좋았지?”

Y시인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일행들이 와와, 함성을 질렀고, 거기에 덩달아 그가 호기롭게 외쳤다.

“자, 오늘도 힘차게 제껴봅시다아!”

마침내 물냉면과 함께 술이 나오고 또다시 대낮부터 때이른 술판이 벌어지면서, 나는 일행들 사이에 예의 끈끈한 정감이 엮어지는 과정을 좀더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자, 마시고 죽자. 그래, 한번 죽지 두번 죽냐. 그런데 왜 이렇게 오늘따라 술이 맛있냐? 야, 어디 술만 맛있냐, 분위기는 또 어떻고? 카아, 분위기 좋고오. 야, 못난 놈들은 얼굴만 봐도 좋은 법이여. 그래그래, 일년 삼백육십오일이 더도 말고 꼭 오늘만 같어라아.

일행들은 벌써 한 순배에 술이 취해서 눈이며 얼굴이 벌겋게 된 채, 저마다 술자리에서 무슨 꽃들처럼 활짝활짝 피어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서 Y시인은 누구보다 더 활짝 핀 꽃이 되어 한껏 신명이 올라 다시 시작한 술자리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랬다, 저 꽃들이야말로 다름아닌 끈끈한 정감이 활짝활짝 피워낸 것이지 않으랴.

따지고 보면 애초에 술자리 일행들을 엮어버린 정감의 시작은 다름아닌 Y시인이었다. 그가 이렇다 할 무슨 학연이나 혈연도 없이 산도 설고 물도 선 서해안 변방의 작은 도시로 흘러들어 우연찮게 H작가를 만나 서로 글쟁이라는 이유만으로 바늘과 실처럼 얽혀들어 10년 남짓을 술친구로 사귀게 된 하고많은 사연들은, 그의 타고난 입심에 힘입어 2박3일 동안 일행들을 웃고 울게 만들며 자칫 지루해질 술자리에 넘쳐나는 안줏감이 되어주었다.

Y시인은 언젠가 H작가의 소설집 발문에서 두 사람이 허구한 날 술을 먹은 이유로 ‘눈 온다, 눈 그쳤다, 달 떴다, 달 졌다, 누가 왔다, 누가 갔다, 바깥양반한테 한대 얻어맞았다, 설거지하기 싫다, 빨래하는 것보다 개넣기가 싫다, 일주일째 청소를 미루었다, 주부습진에 걸렸다, 가사노동을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냐, 그렇게 정성을 다했는데 식구들이 밥을 잘 안 먹는다, 밤에 바깥양반들이 피곤하다는 이유로 잠자리를 회피한다, 따분하다, 서럽다, 구진스럽다, 헛헛하다,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 이유 없는 것이 이유다……’라고 다분히 희화화시켜 조목을 대기도 했다. 기이하게도 둘 다 부인이 학교 선생님이었는데, 바로 부인의 직업에 따라 낯선 곳으로 흘러들어와보니, 서로 교직원 사택 위아래층에서 사는 이웃으로 만나게 된 모양이었다.

“야, 전업작가아, 기분도 삼삼한데 우리 방뎅이춤 한번 때리자아.”

문득 Y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H작가를 지명했고, 그의 말에 H작가가 대뜸 큰 소리를 냈다.

“씨발, 전업작가 소리 두번 다시 하지 말랬지?”

H작가의 말에 Y시인이 벌써부터 궁둥이를 이리저리 흔들어대며 대꾸했다.

“야, 전업작가를 전업작가라고 부르지, 그럼 뭐라고 불러?”

“씨발 차라리 실업작가라고 불러.”

“야, 실업작가보다는 전업작가가 그래도 듣기에 그럴듯하잖아? 아, 얼마나 좋아, 전업작가, 전업작가. 어쩐지 고상하고 우아하게 들리잖아?”

“씨발, 그런 자기는 전업시인 아닌가?”

“그래, 씨발, 니가 그러면 나도 전업시인이다, 세상에서 시밖에는 쓸 것이 없는 한심하고 덜떨어진 전업시인이다. 그러니 우리 전업끼리 방뎅이춤이나 한번 신나게 때리자고.”

Y시인과 H작가의 주고받는 말투로 보아서 둘 다 지금은 글을 쓰는 일 외에는 이렇다 할 직업을 가지고 있지 않은 듯했다. 언뜻 들은 이야기로는 H작가도 Y시인 못지않게 그야말로 몸으로 때우는 일이라면 안해본 것이 없을 정도로 여러곳을 전전한 모양이었다. 공사판 막노동꾼, 선원, 부두 잡역부, 트럭 운전사, 포장마차 주인, 음악다방 디스크자키…… 그렇듯 순전히 몸으로 때우는 밑바닥 일이라면 둘째 가라면 서운해할 둘이서 무슨 영문으로 정작 지금은 글쓰는 일 외에는 다른 직업이 없는 것일까.

“씨발, 좋수다. 까짓것 오늘도 한번 갈 데까지 가봅시다.”

H작가는 흔쾌히 자리를 털고 일어나 Y시인과 어울려 궁둥이를 돌려대기 시작했다. 옆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며, 아직도 귓가에 남아 무슨 송곳처럼 나를 찔러대는 둘 사이의 문답을 되새김하고 있었다. 둘 사이에 오가는 어조로 보아서 전업작가니 전업시인이니 하는 ‘전업’은 글쓰는 일에 대한 어떤 비아냥과 자괴마저 없지 않았다. 그런 비아냥이나 자괴의 밑바닥에는 바로 글쓰는 일이 똥값으로 치부되는 시류 속에서, 그것도 서울도 아닌 서해안의 외진 변방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숨어살며 애오라지 글쓰는 일에만 무슨 숙명처럼 매달려온 자기 스스로에 대한 쓸쓸함과 막막함, 고달픔과 일말의 비애가 질펀하게 깔려 있는 것이 분명했다.

대저 전업작가며 전업시인의 원래 의미는 무엇인가. 이렇다 할 다른 직업을 지니지 않고 글쓰는 일에만 몰두하여 바로 그것으로 밥벌이를 하는 사람이 아닌가. 그런 전업작가가 되어 밥벌이를 하기 위해 우선 뒤따르는 필수적인 조건이 다름아닌 인기작가여야 한다는 점일 터이다. 그리고 인기작가란 작품도 좋아야지만 무엇보다 시류가 지닌 대중성과 상업성에서도 작품 외적인 가치를 인정받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어쩌면 그런 인기작가라면 우리 문단에서도 열손가락 안팎에 불과할지 모른다.

Y시인과 H작가 둘 다 빼어난 글솜씨와는 달리 인기작가와는 전혀 무관한 사람들이었다. 아니, 무관한 것이 다 무엇인가. 모르기는 해도 인기작가가 되기 위해 시류가 요구하는 무슨 대중성이나 상업성에는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을 것이다.

언젠가 H작가에게 불쑥 물은 적이 있다. 아마 그가 보내온 소설집을 받아본 다음에 우연찮게 만난 자리에서였을 것이다.

“어때요? 이번 소설집, 많이 나갔소?”

내 물음에 H작가는 대뜸 두 손을 저어 보였다.

“아이구, 속상허니께 묻지 마세유.”

“아니, 왜요?”

나의 반문에 H가 다시 반문으로 받았다.

“글쟁이로서 내 평생소원이 뭔지 알어유?”

“뭔데요?”

“딱 한번만이라도 좋으니께 재판 한번 찍어봤으면, 하는 거여유.”

H의 말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놀랐다.

“아니, 이번 소설집은 평이 아주 좋았잖아요? 매스컴에도 여러번 오르내리고……”

“에이, 그러면 뭘 해유? 정작 초판도 안 팔리는데유.”

초판이라면 출판사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개 발행부수가 3천권에서 5천권 사이일 터이다. 그런 식이라면 H작가에게 돌아가는 인세는 대략 2백만원에서 4백만원 사이이다. 아무리 열심히 글을 써댄다고 해도 한해에 소설집 한권 이상 펴내는 것이 무리일 것이므로, 소설집으로 벌어들인 그의 수입은 한해에 많아야 2백만원에서 4백만원 사이이다. 만일 소설집이 아니라 전작장편이라도 된다면 그 수입만이 한해에 그가 번 전부일 수도 있다. 결국 전업작가로서 그는 그 수입만으로는 식구들은 물론이려니와 정작 자신의 생활비마저도 벌어내지 못하는 셈이다. 세상에 이처럼 형편없는 가장이 또 있을까. 전업작가의 수입이 그럴진대, 전업시인의 수입은 어디 헤아려볼 건더기나마 있을 것인가.

좌중에는 이제 Y시인이며 H작가는 물론 일행들 대부분이 두 사람의 ‘방뎅이춤’에 합세하여 저마다 몸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목청껏 노래를 불러대고, 거기에 맞춰 손뼉까지 쳐대며 돌아가는 방뎅이춤은 나에게 어쩔 수 없이 일종의 광기로 비춰졌다. 모르기는 해도 저렇듯 미쳐 돌아가는 광기의 밑바닥에는 틀림없이 저마다 가슴속에 뭉쳐두었던, 글쓰는 일에 대한 쓸쓸함과 막막함, 고달픔과 일말의 비애가 무슨 굶주린 짐승처럼 꿈틀거리고 있을 것이다.

문득 나의 시야에는 흡사 무슨 짙은 안개처럼 광기가 뒤엉킨 술자리의 풍경에 겹쳐, 또다시 환상인 듯 열네살의 어린 Y가 배달통의 무게 때문에 한쪽으로 잔뜩 어깨를 기울인 채 낑낑거리며 새재 장터를 이리저리 휩쓸고 다니는 모습이 어른거렸다. 그러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불현듯 시야가 뿌옇게 흐려져왔고, 나는 자칫 눈물이라도 떨굴까봐 어쩔 수 없이 두눈을 부릅떴다.

바로 그때였다. 나의 부릅뜬 두눈 속으로 청록빛 새 한마리가 포르릉, 날개 소리를 내며 날아드는 것이었다. 아직도 뿌옇게 흐려진 시야를 뚫고 나의 두눈 속으로 날아든 새가 다름아닌 40년이 넘는 세월의 저 까마득한 건너편에서 살아온 물총새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입밖으로 소리를 내어 외치고 말았다.

“아아, 성관이.”

 

이제 막 보랏빛으로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자운영 밭둑 아래 갯버들 수풀 속에 두 아이가 몸을 숨긴 채 빤히 개울을 주시하고 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하도 오래 바라봐서 개울의 반짝이는 물비늘들이 두 아이의 눈을 어지럽게 할 때, 문득 눈앞에서 무언가 청록빛 물체 하나가 번개처럼 지나친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한 아이가 벌떡 일어서며 소리친다.

“잡혔다아.”

아이는 다람쥐처럼 재빠르게 개울로 뛰어간다. 그리고 나머지 아이가 뒤따라 개울에 도착하기도 전에 물가에 박아놓았던 대나무 낚싯대를 뽑아든다. 대나무 낚싯대에 엮어맨 나일론실 끝에서는 예의 청록빛 물체가 이리저리 거칠게 나대고 있다. 문득 아이가 뒤따라온 다른 아이에게 외친다.

“대운아아, 이 새가 바로 물총새여.”

성관이다. 살갗 속의 실핏줄이 드러날 정도로 유난히 창백하고 누르끼리한 얼굴로 나를 향해 씨익 웃어 보인다. 누가 보아도 한눈에 병색을 알아낼 얼굴빛이다. 그가 한손으로 나일론실을 조심스럽게 조여가더니 마침내 거칠게 나대는 물총새를 움켜잡고는 기다란 부리에서 낚싯바늘을 꺼낸다. 낚싯바늘에는 미끼로 사용했던 피라미가 여전히 산 채로 붙어 있다. 이윽고 나를 돌아보는 그는 창백한 얼굴에 가볍게 붉은빛을 띤 채 한껏 자랑스러운 표정이다.

“니도 한번 만져볼래?”

성관이의 말에 나는 순간적으로 숨이 멎는 것 같다.

“참말로 만, 만져봐도 되냐?”

“하문, 되고말고.”

성관이가 건네주는 물총새를 두 손바닥으로 조심스럽게 감싸쥐며, 나는 어쩔 수 없이 무슨 꿈이라도 꾸는 기분이다. 아아, 새가 이렇게도 예쁠 수가 있다니! 머리에는 점점이 푸른 반점을 수놓은 채 날개며 뒷등은 잉크빛 같은 청록색에다가 턱과 목은 눈부시게 흰빛이다. 콩당콩당거리는 물총새의 숨결이 내 손바닥을 타고 전해온다. 그런 물총새에게 전염이라도 된 것일까. 어느새 내 가슴도 콩당콩당 뛰기 시작한다. 나는 그렇게 가슴이 뛰며, 슬쩍 그의 눈치를 살핀다.

“이 물총새, 나 주먼 안되냐?”

“뭐 할라고?”

“키우고 잪어서……”

나의 말에 성관이는 대뜸 고개를 저어버린다.

“키우기는, 꿔 묵어야제.”

“꿔 묵어? 이렇게 이삔디?”

성관이는 나의 말이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으로 잠깐 비스듬한 눈으로 나를 흘겨보더니, 피식 코웃음을 터뜨린다.

“이삐기는 뭐이 이삐다고 그래? 지가 이뻬봤자 물총새제. 글고 니가 물총새 괴기를 안 묵어봐서 그란디, 이 괴기가 얼매나 쫄깃쫄깃하고 지름진 줄 아냐? 참새괴기나 쥐괴기 같은 것하고는 비교도 안돼야.”

성관이의 말을 그대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어 잠자코 있자 그가 불쑥 물어온다.

“괴기 중에서 질로 맛있는 거이 뭔 괴긴 줄 아냐?”

“몰라.”

“비얌괴기여.”

“비얌?”

내가 너무 놀라서 두눈을 휘둥그레 뜨자, 성관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다시 한번 피식 코웃음을 터뜨린다.

“비얌괴기는 참말로 둘이 묵다가 한나가 죽어도 모른당께. 사람들은 비얌을 잡아도 징그럽다고 기냥 버리고 만디 참말로 바보들이랑께. 비얌괴기 맛 한번만 보먼 누구든지 맨날 묵고 잪어서 환장할 거이여.”

물총새에 이어 쥐고기며 뱀고기까지 나오자 나는 더이상 성관이에게 대꾸할 말을 잃어버린다. 어쩌면 그는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그만 그런 이상한 고기들을 좋아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장터 사람들은 그런 그를 허천병이 나서 그런다고 한다. 팔다리는 무슨 버드나무 가지처럼 가는 대신에 배만 남산만하게 커다란 것이 허천병이라는데, 그의 생김새가 영락없이 그렇다. 생김새뿐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는 배가 고프다는 말을 숫제 입에 달고 산다.

한번은 역 앞 마루보시 마당에서 바짝 엎드려 뭔가를 줍고 있는 성관이를 만난 적이 있다.

“성관아, 거그서 뭐하냐?”

내가 혹시 돈이라도 찾고 있나 싶어 참견을 하자,

“잉, 땅에 떨어진 쌀 줏어야.”

성관이가 힘이 하나도 없는 가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을 했다.

“쌀 줏어서 뭣할라고?”

나의 질문에 성관이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울먹울먹한 표정이 되었다.

“배가 너무 고파서.”

허천병에 걸린 성관이에게는 어쩌면 세상의 모든 것이 먹을 것으로만 보이는지도 모른다. 그런 그가 물총새를 살려둘 리가 만무하다. 이제 곧 그에게 구워먹힐 것이라고 생각하자 물총새가 새삼스럽게 가엾다. 가여운 나머지 내가 손에 너무 힘을 준 것일까. 그때까지 손바닥 안에서 얌전하게 숨만 할딱이던 물총새가 갑자기 부르르 몸을 떤다. 거기에 놀란 내가 손에 힘을 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물총새는 푸드득, 날갯짓을 하며 순식간에 날아가버린다. 나는 얼결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벌러덩 뒤로 나자빠진다. 그렇게 나자빠지는 나의 두눈에는 벌써 파란 하늘을 저만큼 날아오르고 있는 물총새의 모습이 선명하게 박힌다. 아직도 두 손바닥에는 물총새의 온기가 온전하게 남아 있는데, 파란 하늘 저만큼 날아가는 물총새의 모습이 주는 허망함 때문일까. 여전히 엉덩방아를 찧은 자세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만 울음을 터뜨린다.

“잉잉, 물총새가 도망가뿌렀어. 잉잉.”

성관이는 마치 어른처럼 이맛살을 찌푸리며 잔뜩 인상을 쓰더니, 이윽고 치익, 하고 소리를 내어 개울물에 침을 내깔긴다.

“아깝제만 할 수 없제 뭐. 야, 또 잡으먼 됭께 깟난애기처럼 질질 짜지 말어. 두고 봐라. 저놈은 언젠가는 반다시 내 손에 잽히고 말 거잉께.”

성관이의 말에 스스로도 내가 정말 갓난아이처럼 여겨진다. 여전히 울음을 그치지 못한 채 나는 부끄러운 느낌으로 그를 올려다본다. 그런 나의 눈길에 그는 차마 제대로 올려다보지도 못할 무슨 어른만큼 크고 높아 보인다.

기실 성관이는 우리 또래 아이들 중에서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만 빼놓고는 뭐든지 못하는 것이 없다. 아니, 어쩌면 공부도 공부 자체를 싫어하기보다는 워낙에 누구와 어울려들지 못하는 숫기없는 성격 때문에, 혼자서만 놀다보니 공부에 흥미를 잃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대신에 일찍부터 눈썰미며 손재주가 뛰어나 팽이며 썰매며 방패연같이 저 혼자서 손으로 다듬어 깎고 만질 수 있는 것들은 못 만드는 것이 없다. 그뿐이랴, 물총새를 잡는 것도 그렇지만 낚시로 물고기를 잡거나 새총으로 참새를 잡는 것에는 어른들 또한 그를 따라가지 못한다. 성관이의 그런 손재주를 두고 장터 어른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칭찬의 말을 아끼지 않고 신통해하지만, 딱 한사람 바로 그의 어머니 물걸레떡만은 단박에 두눈을 뒤집으며 매부터 찾아든다.

“저 오살급살 맞을 놈이 누가 지 앱시 새끼 아니랄까봐서 허는 짓마둥 지 앱시를 빼닮는다냐? 이 손꾸락이 썩어문드러져 디질 놈아,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앰씨 가심 터져 죽는 꼴 볼라고 니 앱시 숭내를 내는 거여 잉?”

성관이 아버지는 목수였는데, 성관이가 세살 때 남의 집을 짓다가 술이 취해 지붕 서까래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지금 함께 사는 아버지는 세번짼가 네번짼가 되는 아버지일 것이다. 이렇게 그의 아버지가 헷갈리는 것은 물걸레떡이 하도 여러번 남편을 갈아치운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그 반대인지도 모른다. 장터 사람들 이야기로는 물걸레떡이 워낙에 지저분하고 칠칠하지 못한데다가 술이라면 환장을 해서 허구한 날 공짜술을 찾아 남의 잔칫집이나 돌아다니기 때문에, 만나는 남자마다 불과 얼마를 견뎌내지 못하고 도망치고 만다는 것이다.

비단 장터 사람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내가 보기에도 물걸레떡이 지저분하기는 지저분하다. 아니 생긴 것만 지저분한 것이 아니라 어쩌다 마주치면 우선 코부터 막을 만큼 생선냄새나 술냄새가 지독하다. 그렇게 지저분하고 냄새가 지독히 나는 여자는 남자어른들뿐만이 아니라 누구도 좋아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내가 아직 어려서 학교에 다니기 전에 물걸레떡이 한동안 부침개장사를 한 적이 있는데, 사람들이 모두 지저분하다고 사먹지를 않아서 금방 망하고 말았다. 오죽하면 별호마저도 물걸레떡인가. 원래는 물 건너에서 시집왔다고 해서 붙여진 별호라지만, 지저분하고 흐물흐물한 생김새가 딱 물걸레하고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생선냄새가 나왔으니까 말이지만, 물걸레떡은 장날마다 어물전에서 생선장사를 한다. 그렇지만 물걸레떡은 장사하는 것만 보아도 여느 생선장수들하고는 표가 나게 다르다. 보통 생선장수들은 장보러 나온 촌사람들한테 한마리라도 더 팔기 위해서 목이 쉬도록 싸구려나 떨이요를 외쳐대며 죽을 둥 살 둥 안간힘을 쓰는데, 물걸레떡은 점심나절부터 벌써 술이 취해 장돌뱅이 남정네들과 희룽대기 일쑤다.

물걸레떡이 억병으로 술이 취하면 할 수 없이 성관이가 대신 좌판에 앉아 자리를 지키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는 너무 숫된 나머지 장사는 뒤로 한 채, 누르끼리한 얼굴이 온통 부끄러움으로 빨갛게 달아올라서는 이마가 거의 땅바닥에 닿을 만큼 고개만 숙이고 있을 따름이다. 모르기는 해도 그가 물걸레떡 대신에 자리를 지키면서 무슨 고등어 한마리라도 제대로 팔아본 적이 없을 것이다.

성관이는 집안이 가난한 탓도 있지만 워낙에 학교 다니기를 싫어해서 다니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결국은 4학년을 채 마치지 못하고 그만두고 말았다. 그리고 평소에 그의 손재주를 아낀 장터의 땜장이 밑에 조수로 들어가 한동안 양은밥솥이나 양철통 때우는 기술을 배웠다. 그는 이 땜장이 일에 취미라도 붙였는지 해종일 땜장이 가게에서 떠날 줄 모르게 되어, 그렇게 좋아하던 물고기나 물총새 낚시도 하지 않고 또래의 장터 아이들과 어울리는 일도 없게 되었다. 물론 나와도 이렇다 하게 어울리는 일이 없게 된 것은 그때부터일 것이다.

성관이가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간 것은 내가 국민학교를 졸업한 무렵이었다. 그는 서울에 가서 아직 새재 장터에는 생기지 않아 그 맛에 대한 소문만 무성한 청요리집에 취직을 한다고 했다. 그렇게 서울로 간 그가 이듬해 설날 새재에 나타났을 때, 그는 물총새 때에 이어 또다시 나의 눈길로는 차마 제대로 바라보지 못할 무슨 어른만큼 크고 높아 보였다.

성관이는 우선 외모부터가 한해 전에 비해 몰라볼 만큼 달라져 있었다. 살갗 속의 실핏줄이 드러날 정도로 유난히 창백하고 누르끼리하던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리고, 마치 무슨 요술이라도 부린 것처럼 전혀 다른 얼굴로 변해버린 것이었다. 비단 나만이 아니라 장터 어른들마저도 그와 마주치면 두눈을 크게 뜨며 놀라고는 했다.

“아니, 니가 참말로 성관이란 말이여? 그렁께 허천벵이 들어서 비루먹은 가이새끼처럼 허구한 날 껄떡거리고 다니던 그 성관이란 말이여?”

그러면 성관이는 단박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도록 부끄러움을 타면서도 일일이 대답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예, 성관이 맞아요.”

“오메에, 달뎅이라도 이렇게 복시럽게 생긴 달뎅이는 없겄다야. 나는 쩌그 메가네집 짝은되련님이라도 마실 나온 중 알었어야.”

그랬다, 누가 보아도 한눈에 병색을 알아낼 수 있었던 삐쩍 마른 성관이의 얼굴은 뽀얗게 살이 올라 둥그스름하게 변한 채 부잣집 아이처럼 귀티마저 서려 있었다.

“옛말에 말은 나먼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나먼 서울로 보내야 한다등만은 니를 봉께 참말로 그 말이 딱 맞구만 잉.”

이쯤 해서는 성관이 옆에 무슨 호위병처럼 서 있던 내가 나설 차례였다.

“서울 가서 청요리를 많이 묵어서 그란다요. 짜장멘이랑 우동이랑 또 뭐이냐, 탕순가 뭐인가 하는 것이랑 그것들을 묵고 잪은 대로 한도 없이 많이 묵었다고 안하요.”

성관이가 깨끗한 서울말씨로 정정을 했다.

“탕수가 아니고 탕수육. 그리고 원래 청요리는 짜장면이나 우동 같은 것이 아니고, 팔보채나 난자완스, 깐풍기, 유산슬 같은 것을 말하는 거야.”

나로서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청요리 이름들을 줄줄 나열하는 성관이에게, 얼마 전부터 물어보고 싶어 입안에서 군침처럼 뱅뱅 돌던 것들을 기어코 입밖으로 꺼내고야 말았다.

“그라먼 성관이 니도 그 청요리들을 맹글 수 있냐?”

나의 질문이 전혀 뜻밖이라는 듯이 성관이가 일순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빙긋이 웃어 보였다.

“야, 내가 하는 일이 바로 청요리 만드는 일인데, 그런 뻔한 것을 뭐 할라고 묻니?”

“그라먼 시방 여그서도 맹글 수 있단 말여?”

“못할 것은 없지만 여기서는 안돼.”

“아니, 왜?”

성관이가 갑자기 큰 소리를 내었다.

“야, 모르면 잠자코 있어. 청요리 하나 만드는 데도 얼마나 많은 재료가 필요한 줄 알어? 쇠고기며 닭고기며 돼지고기며 해삼이며 새우며…… 그런 비싼 것들을 새재서 어떻게 구하냐? 그리고 설사 구할 수 있다고 해도 우선 재료들이 싱싱하지 않으면 안돼.”

“그, 그렇구나. 나는 그걸 몰랐어야.”

아마도 장터의 우리 또래 중에서 가장 먼저 서울로 간 이는 성관이였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 갓 중학생이 되었던 우리에게 서울에 대한 환상을 넘치도록 심어준 것도 바로 그였을 것이다. 기실 우리는 그가 우리에게 심어준 서울에 대한 환상에 시달리며 거의 밤낮 없이 얼이 빠질 지경이었다.

“야, 성관아. 서울서는 수돗물이란 물에 무신 백반을 넣어서 사람들이 그르코롬 모다 낯바닥이 하얘진담서?”

“응, 그런다고 하더라.”

“니도 그라먼 그 수돗물로 묵기도 하고 낯바닥도 씻고 그라냐?”

우리의 질문에 성관이는 마치 어린아이들이라도 상대한다는 듯이 딱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야, 서울이 왜 서울이냐? 꼭지만 틀었다 하면 얼마든지 콸콸 쏟아지는 수돗물로 묵고 세수도 하고 그러니까 서울이지.”

“그라먼 청요리도 분멩히 수돗물로 맹글겄다 잉?”

“그거야 말해서 뭐하니?”

“그 청요리라는 것 말이여, 수돗물로 맹글어서 더 맛있겄제 잉?”

아직 어린 우리의 눈으로 보자면, 장터에서 그처럼 일찍 출세를 한 사람은 성관이밖에 없었다. 그에 대한 선망이 오죽했으면 그가 설을 쇠고 다시 서울로 갈 때 우리는 중학교를 때려치우고 그를 따라 도망갈 음모까지 꾸몄을까.

새재에다가 청요리집을 처음으로 차린 이도 다름아닌 성관이었다. 그가 스무살이 되던 해였는데, 버스정류장 옆에다가 가게를 차린 것이었다. 그는 ‘명월각’이라는 옥호를 붙이고 옥호 옆에 ‘중화요리전문’이라는 토도 달아, 그때까지 청요리라는 구식 이름밖에 모르던 새재 사람들에게 중화요리라는 신식 이름을 소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모르기는 해도 아마 이 무렵이 그의 길지 않은 생애에서 가장 빛나는 시절이었을 것이다. 열세살 나이로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청요리집 잔심부름꾼으로 시작하여 꼭 7년 만에 고향에 돌아와 마침내 중화요리집 주인이 된 것이었다.

성관이가 명월각을 차렸을 때 나는 대학 1학년이었는데, 겨울방학을 맞아 집에 내려오자, 그날 저녁에 당장 나를 불러냈다. 그리고 미처 인사 같은 것을 나눌 틈도 없이 대뜸 탕수육이며 잡채 같은 요리부터 내놓았다.

“대운아, 재료가 없어서 고급요리는 못 마련했어야. 허지만 내 정성껏 만든 것이니까 맛있게 먹어야 한다.”

“야, 무슨 영문인지나 알고 먹자. 식당 차리느라 들어간 돈도 만만치 않을 터인데, 나 같은 사람한테까지 이렇게 펑펑 인심을 쓰다가 언제 돈을 벌겠냐?”

나의 말에 성관이는 잠자코 고개를 저어 보였다.

“새재로 내려오면서 내가 누구한테 가장 먼저 요리솜씨를 자랑하고 싶었는지 아냐?”

“누군데?”

“바로 대운이 너여.”

“아니, 하고많은 사람 중에 하필이면 왜 나냐?”

성관이는 지긋한 눈길로 새삼스럽게 나를 바라보았다.

“왜, 내가 옛날에 서울 간 지 일년 만에 설 쇠러 왔던 적이 있지?”

“그래, 있다마다. 그때 오죽 성관이 니가 부러웠으면 니를 따라 서울로 도망갈려고 안했겠냐? 나중에 울엄니한테 들켜가지고 직사하게 얻어맞었다만.”

“그러면 그때 대운이 니가 나한테 팔보채니 탕수육 같은 청요리를 만들 수 있냐고 물었던 것도 기억나냐?”

“그럼, 기억나고말고. 그때, 아마 니가 뭐든지 만들 수는 있는데 재료가 없어서 못 만든다고 그랬을걸.”

“그래, 맞어. 그런데 사실은 거짓말이었어야.”

성관이는 7년도 더 지난 일을 꺼내면서 얼핏 얼굴을 붉혔고, 나는 짐짓 놀란 척 눈을 크게 떠 보였다.

“거짓말이었다고?”

“그래, 거짓말이었어. 야, 그때 내 나이가 고작 열세살밖에 안될 땐데, 누가 나한테 요리 만드는 기술을 가르쳐주겠냐? 고작 하는 일이란 게 하루종일 그릇 닦고, 가게 청소하고, 양파나 까는 것밖에 없었어야. 아직 어려서 힘이 부치는 탓에 배달도 못 다녔으니까. 내가 주방에서 처음으로 요리를 만들어본 것은 그 뒤로도 꼬박 삼년이 지난 후였어.”

“그래서, 그때 나한테 거짓말한 것이 마음에 걸려가지고, 그걸 여태껏 기억하고 있다가 오늘 한턱 낸다는 거냐?”

“거짓말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기보다는 부끄러웠어야.”

“하여튼 예나 지금이나 성관이 니 숫기없는 것은 알아줘야 해. 야, 그거이 뭐가 부끄러울 일이냐? 어린 맘에 고향 동무들 앞에서 그냥 쉽게 자랑 한번 해본 것뿐인데. 설사 그때 거짓말한 것이 부끄러웠다 치더라도 그걸 여태까지 잊어버리지 않고 가슴에 담아뒀단 말이냐?”

나의 말에 성관이는 문득 정색을 하고 고개를 저었다.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야. 나가 니한테 거짓말을 하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면서 혼자 다짐했었어야. 요리를 만들 줄 알기 전에는 절대로 고향에 안 내려오겠다고 말이야. 어쩌면 나는 거짓말을 한 것이 부끄러웠던 것이 아니라 요리를 못하는 것이 부끄러웠을 거야. 삼년이 지나서 주방을 맡아가지고 마침내 직접 요리를 할 수 있게 되니까 이상하게도 맨 먼저 니가 생각나는 거 있지? 내 요리를 처음 먹어보는 니가 과연 무슨 말을 할까 하고 말이야.”

“그랬었구나.”

“그래.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맛을 보고 내 요리솜씨에 대해 무슨 말이든 해봐라. 아니, 이야기에 팔리다보니 요리가 다 식었겠다야. 자, 빨리 먹어라. 요리 중에서도 중국요리는 식으면 맛을 버려버려야.”

성관이가 뒤늦게 재촉을 했고, 나는 젓가락으로 요리를 집어 막 입안에 넣으려다 말고 빤히 그를 올려다보았다.

“설마, 이거 물총새 고기는 아니지?”

나의 질문에 성관이가 두눈을 크게 뜬 채 반문했다.

“물총새?”

“그래, 왜 국민학교 2학년 땐가 한실 개울가에서 니가 잡은 걸 만져보다가 놓치고 잉잉 울었던 물총새 말이야.”

“응, 그 물총새!”

그 당시의 기억이 되돌아온 모양으로, 성관이는 말끝에 빙긋이 웃음을 달더니 이내 손으로 가볍게 내 어깨를 쳤다.

“에이, 사람이 실없기는. 난 또 뭔 소리라고. 하기는 그때 나는 뭐든지 못 먹는 것이 없었지. 눈앞에 보이는 것은 뭐든지 먹을 것으로밖에는 안 보였으니까. 지금 생각해도 그 허천병이라는 것이 무섭기는 무서워야.”

내가 성관이를 만난 것은 물론, 그가 만들어준 중국요리를 맛본 것도 그날이 마지막이 되어버렸다. 나는 그날 전혀 기색을 느끼지 못했는데, 그는 고향에 내려올 때부터 이미 건강이 나빴던 모양이었다. 어느날 주방에서 요리를 하다가 갑자기 심한 각혈을 하며 쓰러졌는데, 택시에 실려 인근 읍내의 병원으로 옮겨가니, 거기서는 순천이나 광주 같은 도시의 큰 병원으로 가보라며 등을 떠민 것이었다.

도시의 큰 병원으로 가서 진찰을 받은 끝에, 성관이는 결국 결핵 3기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렇다 할 치료도 받지 못한 채 다시 새재로 내려온 그는 명월각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하는 수 없이 물걸레떡 집으로 들어갔다. 당시 물걸레떡은 다섯번째인가 여섯번째인가 되는 남편과 살고 있던 중이었는데, 그런 그녀를 두고 장터 사람들은 무슨 흉을 보기보다는 차라리 희한해했다. 여하튼, 조선 천지에서 물걸레떡만치롬 남정네복도 많은 여편네는 드물 거이여. 하문, 그렇고말고. 남정네 갈아치우는 것도 복이람사 어디 물걸레떡 따러갈 여편네가 또 있당가.

성관이는 물걸레떡한테 얹혀서 이른바 허울만은 요양 비슷한 생활을 하게 된 셈이었는데, 그렇게 6개월쯤 버티던 어느 무더운 여름날 그는 축내 저수지에서 밤낚시를 하다가 그만 물에 빠져죽고 말았다. 그의 죽음을 두고 장터 사람들 사이에는 자살이니 실족사니 아니면 옛날 축내 저수지에서 빠져죽은 처녀귀신에게 홀린 것이라느니 하고 여러 뒷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그 무렵 나는 군에 입대해 있었으므로, 성관이가 병마에 쓰러지게 된 것도, 그리고 저수지에 빠져 죽게 된 것도 모두 훨씬 나중에야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런 나로서는 그에 대해서 달리 할말은 없다. 그렇지만 그가 어떻게 병이 들고 그리하여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를 나름대로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지금하고는 달리 성관이가 중국집에 있던 당시 주방에서는 대부분 연탄불을 사용했을 것이다. 좁은 중국집 주방에서 연탄가스 냄새를 맡으며 10년 남짓 견뎌낸 그의 기관지며 폐가 나빠지지 않았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했을 것이다. 새재로 내려와 명월각을 차릴 즈음, 그가 이미 자신의 나빠진 건강상태에 대해서 알고 있었는지 어쨌는지는 쉽게 판단할 수가 없다. 그러나 결핵 3기로 진단이 난 후, 별로 크게 모아둔 돈도 없었을 그로서는 이렇다 하게 약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한 채 끝내 죽음에까지 이르렀을 것이다. 어린 시절 허천병이 들어 눈에 보이는 것은 죄다 먹을 것으로밖에는 여겨지지 않던 그에게, 스무살이 넘은 나이로 결핵 3기라는 회복불능의 병을 얻어 또다시 옛날의 쓸쓸하고 막막한 생활로 돌아간 그에게 이번에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죄다 무엇으로 여겨졌을까.

아무리 되돌아봐도 역시 새재에 돌아와 명월각이라는 옥호를 붙이고 중국요리집 주인이 되었던 2년 남짓한 세월이 그의 짧은 생애에서 가장 빛나는 시절이었음에 틀림없다. 바로 그렇듯 빛나는 시절에 그가 나에게 만들어주었던 탕수육이며 잡채 같은 요리 또한 내가 지금까지 먹어본 어떠한 요리보다 그 맛이 빼어난 것임에 틀림없다. 구태여 덧붙인다면, 그가 서울에서 처음으로 내려와 나에게 가르쳐주었던 팔보채와 난자완스, 깐풍기며 유산슬 같은 청요리들 또한 나에게는 아직까지도 그 이름만으로 나를 황홀하게 하는 요리임에 틀림없다.

 

내가 잠시 상념에 빠져 있는 사이에, 방뎅이춤이 한창 흐드러진 술자리는 더욱더 광기에 차올라서 금방이라도 무언가가 폭발하고야 말 것 같은 일촉즉발의 분위기를 이루고 있었다. 그 아슬아슬한 분위기 속에서 저 열네살의 어린 Y는 아직도 배달통의 무게 때문에 한쪽으로 잔뜩 어깨를 기울인 채 낑낑거리며 바쁜 걸음으로 새재 장터를 휩쓰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를 뒤따라서 이번에는 성관이가 자신의 차례라는 듯이 물총새가 파닥이는 낚싯대를 휘두르며 새재 장터를 함께 휩쓰는 것이었다.

어린 Y에 이어 성관이마저 환상인 듯 시야에서 어른거리자, 나는 자칫 눈물이라도 떨굴까봐 다시 한번 두눈을 부릅떴다. 그러면서 나는 생각했다. 만일 오늘의 술자리가 내일로 이어지고, 그렇게 3박4일이 되는 내일 아침에, 내가 Y시인에게 새재의 명월각을 처음으로 만든 사람이 누구인가를 밝힌다면, 그리고 그가 잡았던 물총새며 그가 만들어 나에게 맛보게 했던 청요리에 대해 밝힌다면, 그는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혹시 3박4일의 술자리가 기어코 4박5일로 이어지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