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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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천운영 千雲寧

1971년 서울 출생.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소설집 『바늘』이 있음. hangomm@hanmail.net

 

 

 

명랑

 

 

문이 움직인다. 느리고 은밀하게, 딱 한뼘만큼만 열린다. 벽과 똑같은 색의 미닫이문은 낯선 세계로 통하는 비밀통로 같다. 열린 문으로 어둠이 밀려나온다. 어둠속에는 늙은이의 살냄새에 곰팡이 핀 과일, 눅눅한 솜이불, 좀약냄새가 뒤섞여 있다.

어둠을 헤치고 나오는 한 점, 희고 뾰족한 버선코다. 점이었던 것은 부드러운 선이 되었다가 단단한 볼이 된다. 살짝 치켜올라간 수눅선을 따라 뒤꿈치와 회목이 느릿느릿 문지방을 넘는다. 그 움직임이 너무 느려서 처음부터 내내 거기 있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이제 열린 문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희디흰 버선발뿐이다. 흰 버선발은 어둠과 냄새의 여운을 말끔하게 몰아낸다. 오히려 발등에 수놓아진 붉은 꽃송이에서 향긋한 꽃내음이라도 풍겨나오는 듯하다. 내 눈은 향기를 맡은 꿀벌처럼 버선발을 향해 부산한 날갯짓을 한다.

나는 여태 그녀의 발을 기다렸다. 담배와 음식냄새에 누렇게 뜬 방에서 어머니가 이불을 밟으며 건너다니는데도 모른척하고 누워 있었던 것은 그녀의 발이 나오기를 기다렸기 때문이다. 달팽이처럼 미끈하고 조그만 발이 그녀 몸의 다른 부분을 끌고 나오기를, 그리하여 이 방을 온통 그녀의 냄새로 가득 채우기를 바라고 있었다.

식당에 딸린 한칸의 방에서 그녀와 내가 속옷바람인 채로 지낼 수 있는 시간은 지금뿐이다. 엄마는 그녀를 위해 곁방을 들였다. 하루종일 볕 하나 들지 않는 곁방에서 그녀는 손님들이 돌아갈 때까지 두 개 채널밖에 나오지 않는 텔레비전을 보거나 굳은 떡을 먹으며 지낸다. 언제부턴가 그녀는 손님이 없어도 고치처럼 그 방에 틀어박히기 시작했다. 점심 준비가 끝나기 전, 볕바라기를 하기 위해 지팡이를 짚고 식당을 나서는 것이 그녀의 유일한 외출이다.

그녀의 발은 촉수를 세운 더듬이다. 공기의 미세한 움직임을 탐색하고 위험을 감지한다. 탐색은 집요하리만치 계속된다. 낡은 항라치마를 바스락거리며 다리가 나온 것은 두 발을 내밀고서도 한참이 지나서다. 이윽고 검버섯 핀 손이 문지방을 짚는다. 그녀의 손은 말라비틀어진 빵 같다. 뼈와 핏줄이 드러난 얇은 살갗 위에는 저승꽃이 곰팡이처럼 무리지어 피어 있다.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검은 꽃잎이 벌어져 팔뚝으로 번진다. 저승꽃은 주글주글한 가슴패기와 늘어진 목덜미를 지나 광대뼈와 이마까지 줄기를 뻗어올린다. 숱 적은 머리 사이로 드러난 작고 동그란 머리통만 유난히 희고 매끄럽다. 나는 그녀의 쪽찐 머리를 기억한다. 뒷목 움푹 패인 부분에 은비녀로 꽂은 조그마한 머릿다발은 단아하고 정갈해 보였다. 김치에서 흰 머리카락만 발견되지 않았더라도 그녀는 아직 쪽찐 머리를 유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엄마가 그녀를 앞에 앉히고 잘라낸, 그녀가 평생 빗고 따고 틀어올린 머리카락은 한줌밖에 되지 않았다.

그녀는 속옷 위에 치마만 두른 차림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그녀는 외출할 때를 제외하고는 저고리를 잘 입지 않는다. 저고리를 손에 꿸 때마다 가슴께가 아파온다고 고통을 호소하곤 한다. 우두커니 앉아 있던 그녀가 치마춤으로 손을 집어넣는다. 그녀의 손에 공단으로 만들어진 작은 주머니가 달려나온다. 그녀는 처진 눈꺼풀을 치켜올리며 조심스럽게 약봉지를 펼친다. 오각형으로 접힌 약종이를 한겹 한겹 펼칠 때마다 하얀 가루가 하늘하늘 피어오른다. 방안에는 종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그녀의 가릉거리는 숨소리만 나직하다. 나는 움직이지 않고 그녀를 훔쳐본다. 그녀의 눈은 개구리나 고양이의 것처럼 움직임에 반응한다. 내가 움직이지 않는 한 그녀에게 나는 그저 풍경의 일부일 뿐이다. 그녀는 다 펼친 종이를 대각선으로 접어 가루를 한데 모아 입에 털어넣는다. 약종이를 손톱 끝으로 탁탁, 치는 소리를 들으면 내 눈은 저절로 찡그려지고 입안에는 쓴 침이 고인다.

그녀가 먹은 가루는 명랑이다. 명랑은 진통제다. 명랑 백포들이 상자 겉면에는 두통을 비롯한 관절통, 인후통 등 열여섯 가지 통증과 오한, 발열시 효능이 있다고 적혀 있다. 하루 2회, 복용간격은 여섯 시간 이상으로 한도를 두고 있지만 그녀는 명랑이 설탕가루라도 되는 것처럼 시도때도 없이 털어넣는다. 그녀가 먹은 것은 약이 아니라 방부제인지도 모른다. 그녀 몸은 이미 부패가 시작되었고 부패의 냄새를 감추기 위해 끊임없이 방부제를 투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녀에게서 나는 늙은이 냄새 또한 죽음을 위장하는 방부제 냄새가 분명하다. 그녀 몸 구석구석에는 채 녹지 않은 명랑가루가 그대로 쌓여가고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죽어도 썩지 않으리라. 나무뿌리가 관뚜껑의 틈을 벌리고 그 틈새로 떨어진 흙이 그녀 몸을 덮치는 동안에도 그녀의 머리칼은 잔뿌리처럼 쑥쑥 자라날 것이다.

약에 취한 그녀가 벽에 기대앉는다. 바람벽에 난 창으로 들어온 볕이 그녀 몸에 닿아 있다. 빛의 무게에 시름거리는 것인지, 아니면 빈속에 들어간 가루약 때문인지, 그녀의 몸은 자꾸만 밑으로 처진다. 무릎을 그러안고 앉은 그녀의 모습은 꼭 양수 속에 웅크리고 있는 태아 같다. 그녀는 세월을 거스르고 싶은 것이다. 죽음을 맞으러 강물을 거스르는 연어처럼, 탄생 이전의 따뜻한 양수 속으로 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빈 약종이를 주머니에 넣고 담배를 꺼낸다. 유황냄새가 나고 담배냄새가 이어진다. 늙은 여자가 내뿜는 담배냄새는 내가 뿜어내는 냄새보다 좀더 강하고 어둡다. 방치된 지하창고 같다. 거기서는 생기가 잊혀지고 죽은 쥐가 썩고 노래기가 모이고 먼지가 굳는다. 담배 한개비를 다 피운 그녀의 숨소리는 아까보다 거칠어져 있다. 엄마가 있었더라면 곧바로 담배허리가 부러지고 담배를 둘러싼 승강이가 벌어졌을 것이다. 할머니는 자주 담배를 놓쳤고 방바닥에는 시커먼 담뱃불 자국을 남겼다. 언젠가 부주의하게 버린 꽁초로 화장실 쓰레기통을 홀랑 태운 후로 엄마는 할머니에게서 담배를 빼앗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나는 이불을 젖히고 일어나 앉는다. 그녀는 약이 든 주머니를 치마춤으로 황급히 집어넣는다.

“가슴이 아퍼 야. 송곳으로 콱콱, 쑤셔대는 것 같어. 아무래도 내가 폐암인갑서.”

그녀는 변명이나 고자질을 하는 아이처럼 서둘러 말한다. 나는 짐짓 과장된 몸짓으로 이불을 개며 버럭 소리를 지른다.

“할머니가 의사야? 폐암 걱정되면 담배나 끊어. 가슴 아프다고 약을 달고 살면서. 그 약이 뭐 좋은 줄 알아? 그게 다 몸에 쌓인다구. 나중에 죽은 다음 썩지도 않으면 좋겠어? 죽어서 잘 썩는 것도 복이라며!”

그녀는 입을 다문다. 젖은 눈도 함께 침묵한다. 그녀의 말없는 눈동자에는 죽음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는 더딘 발걸음이 보인다. 과거의 회한과 곧 닥쳐올 죽음에 대한 공포가 함께 침묵하고 있는 늙은이의 눈동자. 나는 늙은이의 눈을 갖고 싶다. 바라보면서도 어딘가 다른 곳을 향해 있는, 마른 듯하면서도 젖어 있는, 간절하면서도 무심한 늙은이의 눈동자. 무엇에도 잡히지 않는 시선의 자유로움이 노인의 눈동자에는 들어 있다. 어쩌면 나는 늙은 여자가 되고 싶은지도 모른다. 세월의 고난을 거치지 않고서 곧바로 늙은 여자가 되어 세상을 비껴보고 싶은 것이다.

그녀는 말없이 버선발만 바라보고 있다. 약이나 담배를 못하게 하면 그녀는 단번에 입을 다문다. 나는 그녀의 침묵하는 눈동자를 보기 위해 일부러 소리를 지르고 윽박지르게 된다.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버선 위 국화꽃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그녀가 조금 안쓰럽게 느껴진다.

“근데 명랑 먹으면 좀 낫긴 해?”

“명랑 먹으니 살 것 같다. 머리가 꼭 깨질 것 같더니.”

“그게 뭐 만병통치약이라도 된대? 아까는 가슴이 아프다며. 또 어디가 아픈데?”

“머리도 아프고, 가슴도 아프고, 무릎도 아프고……”

그녀는 아픈 곳을 말할 때마다 눈을 찡그리며 그 부위를 손으로 꾹꾹 누른다. 나는 무릎걸음으로 기어가 그녀의 발을 움켜쥔다. 버선발이 한손에 안기듯 잡힌다.

그녀의 발은 전족(纏足)을 한 것처럼 작고 위태롭다. 14문 버선을 벗기면 아기처럼 보드랍고 작은 발이 숨겨져 있다. 굳은살 없는 뒤꿈치는 땅 한번 디뎌보지 않은 살처럼 동그랗고 야들야들하다. 흰 버선조차 그녀의 발에 비하면 옥수수 껍질처럼 뻣뻣하고 거칠게 느껴진다. 곧고 가지런한 발가락 끝마다 살포시 앉은 발톱 하나하나는 채 여물지 않은 옥수수의 작은 알갱이 같다. 그녀가 버선을 벗고 발을 씻을 때면 그녀의 발에서는 달짝지근하면서도 비린 풋내가 풍기는 듯하다.

“발에는 사람 몸이 다 들어 있어. 내가 주물러줄 테니까, 봐. 여기가 머리야. 이렇게 누르면 약 안 먹고도 나아. 잘 기억해뒀다가 할머니가 틈틈이 눌러줘. 또 어디 가슴두 아프다구?”

엄지발가락을 손톱 끝으로 누르며 내가 말한다. 엄지발가락은 머리다. 가슴은 검지발가락에서 새끼발가락 밑 도톰한 부분을 눌러주면 된다. 내가 손가락에 힘을 줄 때마다 그녀는 엄지발가락을 비튼다. 그녀가 발가락을 꼼지락거릴 때마다 내 몸은 고운 옥수수 털에 닿은 듯 근질거린다. 나는 발 중앙선을 따라 폐와 머리와 신장에 좋은 곳을 눌러준다. 손길이 닿는 곳마다 여린 살은 금세 발갛게 달아오른다.

“여기 한번 만져봐라. 뭐 혹 같은 게 잡히지 않애?”

그녀가 가슴을 매만지며 말한다. 아예 가슴을 죄고 있는 똑딱단추를 풀어 앞섶을 열어젖힌다. 단추가 풀리면서 주름으로 축 늘어진 가슴패기 아래 젖가슴이 출렁 벌어진다. 처지긴 했지만 그녀의 가슴은 몸에 비해 제법 크고 단단하다. 빈약하고 작았던 젖가슴이 이토록 부풀어오르기 시작한 것은 할아버지가 죽고 난 이후란다. 오히려 아버지가 젖먹이였을 때는 젖도 제대로 못 먹였다고 할머니는 아쉬운 듯 말하곤 했다. 단단한 젖가슴 위에 자그마하게 자리잡은 분홍빛 유두는 이제 막 젖멍울이 지기 시작한 소녀의 것과 비슷하다. 그녀의 가슴에는 진화와 소멸이 함께 살고 있다.

“아이, 다 쪼그라드는데 뭐 한다고 젖퉁이만 커지는가 모르겄다.”

그녀가 가슴을 쓸어올리며 말한다. 그녀의 어조에는 부끄러움보다는 어딘지 자랑스러움이 배어 있다. 나는 그녀의 무릎에 얼굴을 대고 누워 가슴을 만진다. 저승도 세월도 침범하지 못하는 그녀의 가슴. 그녀에게서 여린 풀냄새가 나는 것 같다. 그녀가 손을 뻗어 내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머리를 이리 노랗게 물들이면 쓰냐? 양것들도 아닌데.”

그녀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며 나지막이 말한다. 깃털처럼 가벼운 손길과, 야들야들한 젖가슴의 감촉은 자장가 같다. 이대로 그녀와 함께 잠이 들었으면 좋겠다.

 

제대로 삭았다. 이대로 한 이틀 말리면 되겠다. 벌써부터 지릿하고 알싸한 냄새가 목구멍에서 콧구멍까지 뚫고 나오는 것 같다. 노인네가 죽을 때가 되었는지, 느닷없이 삭힌 홍어찜이 먹고 싶단다. 게다가 꾸덕꾸덕 말려 손으로 짝짝 찢어 먹어야겠다는 것이다. 되는대로 노랑가오리를 사오기는 했지만, 이 여름에 쉬슬지 않고 제대로 말리기가 쉬울 것 같지는 않다. 마른행주로 가오리를 닦을 때부터 파리들이 몰려들더니 기어이 망바구니 틈새를 쑤시고 들어간다. 집안은 온통 가오리 삭는 냄새다.

가오리가 삭으면서 나는 냄새는 어쩐지 노인네 방에서 풍기는 냄새와 닮아 있다. 그것은 상하거나 죽어가는 냄새와는 다르다. 죽었으나 썩지 않기 위해 제 몸을 삭히는 발효의 냄새. 내게서도 언젠가 저런 냄새가 나겠지. 늙고 외롭고 쓸쓸해서 고함치는 냄새. 나도 노인네로 늙어가겠지만 어머니처럼 곱게 늙지는 못할 것이다. 부기가 가시지 않는 얼굴과 상처투성이의 두툼한 손과 무좀에 너덜너덜해진 발바닥까지, 이미 나는 그녀보다 훨씬 늙어버렸다.

어제 그렇게 소리만 안 질렀어도 수산시장까지 가서 노랑가오리를 사오지는 않았을 텐데. 버러지들, 그렇게 외쳤던가. 더위 때문이었다. 아침볕인데도 정수리로 쏟아지는 햇살의 기세가 만만치 않았다. 송학여관 앞에서 집까지 삼백 미터가 넘는 길을 올라오는 동안, 앙가슴으로는 땀이 흘러내렸고 땀에 젖은 옷은 찐덕찐덕 온몸에 휘감겼다. 싸다고 욕심부려 잔뜩 집어넣은 배추 봉지는 언제라도 터질 태세였다. 아침도 못 먹고 다녀온 길이라 하늘이 노래질 정도로 허기가 졌다. 밥이나 앉혀놨나 싶었는데 노인네와 계집애는 방바닥에 자빠져 뒹굴고 있었다. 계집애, 한번이라도 내 부르튼 발을 주물러주기나 했던가. 문득 내 살을 파먹고 사는 버러지들 같다는 생각이 솟구쳐올랐다. 저린 무릎을 주무르고 앉았더니 노인네가 그놈의 명랑 한봉지와 꼬깃꼬깃 접은 만원짜리 지폐를 내밀었다. 그러고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노인네가 똑바로 쳐다보면 나는 거북해진다. 호소와 갈망과 애증으로 가득한 눈. 어딘지 원망하는 것 같은 눈동자 속에는 그녀와 내가 공유하는 과거가 들어 있다. 과거는 언제나 고통스럽고 원망스러운 것뿐이다. 나를 향한 비아냥거림이 담겨 있는 것도 같다. 나는 그녀의 젖은 눈동자에서 이내 고개를 돌려버리고 만다.

남편은 늘 그녀를 원망했다. 당신 떡 해먹고 치장할 돈은 있어도 자식들 교육시킬 돈은 없느냐고, 윗사람과 아버지한테 그만큼 사랑받았으면 내리사랑도 알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교육 한번 제대로 시켜줬으면 내가 미장이나 할 위인 같냐고, 술만 먹으면 노인네를 닦달했다. 나도 덩달아 그녀를 원망했다. 모두 노인네 탓 같았다. 미장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남편이 사고로 죽은 것도, 내가 촌구석에 앉아 식당이나 하고 있는 것도 모두 그녀 때문인 것 같았다. 언제부턴가 나는 그녀에게 쌈닭처럼 달려들거나 낯선 사람처럼 무심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나의 냉대를 묵묵히 견뎌내고 있었다.

휴가철이 가까워지면서 식당도 붐비기 시작했다. 유원지를 따라 늘어선 민물매운탕집들 사이에서 백숙을 선택한 건 잘한 일이었다. 김치나 맛있게 담그면 그만이고 손 가는 일도 별로 없어서 혼자 너끈히 해낼 수 있었다. 계집애는 졸업하기 전까지만 해도 음식도 나르고 주방일도 거들더니만 지금은 아예 밤늦도록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나중에 노인네처럼 원망듣기 싫어 미용기술에 발관리사까지 저 하겠다는 건 다 들어줬는데, 아직까지 취직도 못하고 용돈까지 타 쓰고 있다. 오늘도 아침을 뜨는 둥 마는 둥 하고 나가더니 어디를 싸돌아다니는지 여태 소식이 없다.

이만 끝인가 싶었는데 느지막이 손님이 들었다. 바깥 식탁도 다 비었는데 굳이 방에서 먹겠다고 하는 걸 보니 화투손님이다. 요즘은 화투손님이 제법 든다. 선풍기를 틀어주고 야채 몇가지를 상에 얹어주고 나왔다. 압력솥 방울소리가 잦아드는 동안 방안에선 환성을 지르고 야유를 퍼붓고 떠들썩한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들은 유원지 입구 새로 짓는 건물의 인부들이다. 고린내 나는 양말을 벗고 셔츠단추까지 푼 상태로 화투에 열중하고 있다. 백숙쟁반을 갖고 들어가 가위질을 하는 동안에도 그들은 점수를 계산하고 돈을 주고받았다.

아홉시가 넘었는데 사내들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는 방을 오가며 반뼘쯤 열린 미닫이문을 살핀다. 어쩌다보니 노인네 저녁도 굶기게 되었다. 손님들 틈에서 제대로 눕지도 못하는 것 같아 곁방을 들였는데, 이렇게 늦어질 때는 외려 골방에 가둔 꼴이 되고 만다. 저고리를 잘 입지 않는 노인네가 커다란 젖퉁이를 내놓고 앉아 있는 것도 보기에 좋지 않아서였다. 노인네는 문을 조금 열어 밖을 살피며 참을성있게 기다린다. 숨겨놓은 과자봉지가 있을 테니 대충 요기는 하겠지. 번거롭기는 하지만 굴비나 좀 쪄놓아야겠다. 노인네는 기름에 튀긴 생선보다 찐 생선을 더 좋아한다. 뒷방 노인네 주제에 입이 짧아 여간해서 맛나게 먹는 법도 없다. 찐 생선 위에는 꼭 실고추라도 뿌려야 되는 줄 안다. 전 하나를 부쳐도 꽃타령을 하는 노인네다. 찬장 구석에서 실고추를 찾아 얹고 깨도 넉넉히 뿌려놓는다.

사내들은 소주 네 병을 비우고서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손님상을 대충 내놓고 서둘러 밥상을 차린다. 내친김에 지난봄 고추장에 박아놓은 더덕도 꺼낸다. 곁방문을 열자 노인네 냄새가 훅 끼쳐온다. 통풍도 환기도 잘 안되는 골방에서 노인네는 어린애처럼 몸을 동글게 말고 자고 있다. 치마 사이로 조그만 발이 보인다. 그녀는 양말을 신으면 온몸이 풀어지는 것 같다며 여태 버선을 벗지 못했다. 발이 너무 작아 그에 맞는 버선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시장 몇군데를 돌아 겨우 구해주면서 어깃장을 놓기도 했지만, 버선에 단단히 싸매진 그녀의 발은 어딘가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구석이 있다. 노인네는 평생 일이라는 걸 모르고 살았다. 시골에서 그 흔한 밭일조차 안해보았단다. 타고난 사주나 관상처럼 발에도 족상이 있다면, 그녀의 보드라운 발에는 복록이 있어 평생 일을 모르고 살 상이 들어 있을 것이다. 나는 노인네 발을 쓰다듬다가 내 벗은 발을 보고 말았다. 짧고 뭉툭한 발가락과 갈라질 대로 갈라진 틈으로 때가 깊숙이 앉은 험악한 뒤꿈치. 발가락 사이사이에는 무좀과 습진으로 발갛게 생채기가 나 있다. 나는 노인네 발을 움켜쥐고 세차게 흔들어댄다.

노인네는 힘겹게 일어나 밥상 앞에 앉는다. 애써 굴비까지 쪄서 차렸는데 노인네는 밥상 앞에 앉아 깜빡깜빡 졸고 있다. 어쩌면 조는 게 아닌지도 모른다. 노인네는 눈이 처져 보이지 않는다며 쌍꺼풀 수술을 해야겠다고 했다. 노인네가 백내장 수술까지 하고도 병원에 못 가서 안달이라고 묵살해버리고 말았다. 좀 선선해지면 아무래도 수술을 해줘야지 싶다.

“인제 밥 먹어?”

계집애가 방에 들어오지도 않고 가방만 휙 던지며 볼멘소리를 한다. 노인네가 굴비에 손도 안 대고 밥을 물에 말아버리는 순간이었다.

“기집애가 뭐 한다고 이렇게 늦게까지 싸돌아다녀! 밤길도 무서운데. 일찍일찍 좀 다녀.”

“일찍 들어오믄. 시커먼 사내들 고스톱 치는데 가서 거들라구? 아니면 할머니처럼 골방에 처박혀 있을까? 일찍 들어오고 싶어야 들어오지! 거봐, 노인네 여태 굶은 거 아냐. 손님들을 방으로 못 들어오게 하든가, 아님 방을 따로 하나 만들든가 하란 말야.”

계집애는 작정한 듯 쏘아붙인다.

“내가 언제 할머니를 가둬, 가두긴. 노인네가 알아서 들어간 거지. 나는 밥먹고 니 할머니만 굶겼냐? 하루종일 일하면서 여태 밥구경도 못한 니 에미는 안 불쌍하냐? 그리고 너는 언제 취직할 거야? 발관리산가 뭔가 하믄 돈 많이 번다더니. 언제 에미 발 한번 주물러줘봤어?”

딸애한테 이기면 뭐 한다고, 오기가 나 소리를 지르고야 말았다. 노인네는 좋다 싫다 말없이 오가는 말에 눈길을 돌리며 앉아 있다. 입을 씰룩거리던 계집애가 벽에 걸린 수건을 휙 잡아채고 나가버린다. 계집애는 요즈음 나만 보면 유난히 으르렁거린다. 부쩍 늦게 들어오는 날도 많아졌다. 그러고 보니 화장도 향수냄새도 진해지고 있는 것 같다.

언제부턴가 계집애에게서 담배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제 할머니 담배를 슬쩍슬쩍 훔쳐 피울 때도 있다. 노인네, 그러게 어떻게 해서든 담배를 끊게 했어야 했다. 화장실에서 나오면 분명 냄새는 남아 있는데 계집애는 꼭 할머니가 다녀갔었다고 핑계를 댄다. 담배냄새를 감추기 위해 향수를 들고 다니면서 뿌려대기도 한다. 계집애는 제가 가진 것을 모른다. 제가 지금 얼마나 젊고 싱싱한지, 젊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달콤하고 경쾌하고 신선한 향기를 품는지 모른다. 그것이 어떤 고급향수에 비할까.

“안 드실 거면 그만 치워요.”

노인네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뒤로 물러나 앉는다. 나는 그릇을 함부로 부딪치며 설거지를 한다. 사내들이 남기고 간 쟁반에는 살점이 누덕누덕 붙은 닭뼈와 담배꽁초가 뒤섞여 있다. 가릴 것도 없이 남은 음식과 쓰레기를 한군데 처박고 부엌바닥에 세제를 풀어 오래 청소를 한다.

방에는 차렵이불 위에 베개 세 개가 나란히 놓여 있다. 노인네는 미닫이문에 몸을 바싹 붙이고 잠이 들었다. 숨소리도 안 내고 죽은 듯이 잠들어 있는 노인네를 보면 불안해진다. 남편상을 치르긴 했지만 나는 아직 죽음과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남편의 주검은 시체보관실에 가 있었고, 나는 그저 울부짖기만 했을 뿐이다. 노인네 머리맡에 자리끼를 놓는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정화수라도 되듯 빌어보는 것이다. 내가 준비될 때까지만 살아달라고.

모기향을 피워 텔레비전 위에 올려놓는다. 나는 가늘게 피어오르는 연기 끝에 코를 들이댄다. 모기향은 중독성이 있다. 모기향에서는 사내 냄새가 난다. 그것은 일을 마치고 막 돌아온 남편의 냄새다. 매우면서도 비릿한, 시멘트 냄새와 땀냄새가 적당히 섞인 남자의 냄새다. 나는 사내 품속을 파고들듯 모기향을 들이마신다.

불을 끄고 텔레비전만 켜놓는다. 마감뉴스가 끝날 즈음 계집애가 들어와 옆에 눕는다.

“용돈은 있는 거야?”

계집애는 아무 대답 없이 등을 보이고 돌아눕는다. 계집애에게서 풍기는 비누냄새가 싱그럽다. 계집애는 어느새 잠이 들어 어린애처럼 쌔근거린다. 나는 오늘 받은 식대를 계집애의 가방 속에 넣고 자리에 눕는다. 올 여름은 장마가 일찍 시작된다고, 강수량도 많고 긴 장마가 될 것이라는 기상캐스터의 말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온다.

 

누군가 위에서 빤히 내려보고 있는 듯한 느낌. 축축하고 뜨뜻한 물기가 몸에 휘감기는 기분이다. 축축한 물기와 함께 매큼한 냄새도 함께 풍겨온다. 소리없이 새어나오는 연탄가스처럼 유독하고 치명적인 기미. 나는 눈을 뜬다. 새벽 어스름에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얼굴은 푸른 가면을 쓴 것처럼 무표정하고 엄숙하다. 푸른 가면 위 벌어진 가느다란 틈새로 눈빛만 허허롭게 빛난다.

“목욕하자.”

축축한 목소리가 귓가에 머문다. 목소리가 너무나 고요해서 나는 미처 알아듣지 못한다.

“일어나서 나랑 목욕 좀 가자. 비가 오려나, 몸이 이렇게 욱신거린다.”

“이 새벽에 무슨 목욕이야? 날도 안 밝았는데.”

몸을 일으켜세우며 짜증스럽게 대꾸한다. 아직 버스가 다닐 시간이 아니다. 근처 목욕탕은 내부수리를 한다고 지난주부터 문을 닫았다. 나는 눈을 비비며 옆에 누운 엄마를 훔쳐본다. 엄마는 두 팔을 위로 치켜든 채 푸푸 소리를 내며 깊이 잠들어 있다.

“목욕탕 아직 안 열었어.”

내 말을 알아듣기는 한 건지, 그녀는 말없이 밖으로 나간다. 그녀의 등에서 단호한 결의가 느껴진다. 나는 그녀가 나가고도 한참을 그대로 앉아 있었다. 텔레비전 위에는 다 탄 모기향이 점선을 그리며 떨어져 있다. 방에서는 꿉꿉한 냄새가 난다. 볼을 손으로 비비며 잠기운을 몰아낸다.

들통으로 하나 가득 물을 끓이고 김장할 때 쓰는 커다란 고무대야를 씻어놓는다. 식당부엌에서는 닭비린내가 난다. 부엌은 금세 뿌연 김으로 가득 찬다. 대야에 뜨거운 물을 부어 수온을 맞추고 그녀에게 손짓을 한다. 그녀는 치마와 속옷을 차례차례 벗고 마지막으로 버선을 벗는다. 다 벗은 옷을 차분하게 개어 식탁 위에 올려놓고 부엌으로 들어온다. 나는 부엌 한가운데 우뚝 서서 그녀의 벗은 몸을 바라본다. 그녀의 몸은 너무 작고 왜소해 보인다. 휜 다리 사이에 수줍게 드러난 그곳은 아직 이차성징이 나타나지 않은 어린 여자아이처럼 민숭민숭하다. 나는 대야 안에 그녀를 앉힌 채 때수건으로 몸을 닦기 시작한다. 몸이 너무 작아 아이를 씻기고 있는 기분이다. 탄탄했던 생기는 모두 빠져나가고 껍질만 남은 살갗. 생기없는 살이지만 긁힌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하다. 그녀는 내가 시키는 대로 팔을 들고 고개를 젖히며 조용히 앉아 있다. 내 손이 닿는 곳마다 그녀의 살갗은 만족감으로 발그레해진다.

목욕을 마치고 옷을 입은 그녀는 몹시 지쳐 보인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명랑 한봉지를 꺼내 입에 털어넣고 의자에 앉아 숨을 고른다. 대충 부엌을 치우고 나오자 엄마가 부석부석한 머리를 매만지며 방을 나온다.

“내가 우리 손녀 덕에 호사를 누리는구나. 에미야, 은희 용돈 좀 줘라.”

엄마는 들은 척도 안하고 부엌으로 들어가버린다. 부엌에서 그릇 부딪치는 소리가 나고 구수한 된장냄새가 풍겨온다. 그녀는 주머니를 주섬주섬 뒤져 만원짜리 한장을 꺼내 손에 쥐여준다.

“됐어. 할머니가 무슨 돈 있다구.”

“남자고 여자고 돈 없으면 기신이 안 나는 법이여.”

나는 딱히 볼일도 없는데 외출복으로 갈아입는다. 식당문을 나서는데 엄마가 부리나케 나와 우산을 건네준다.

“애먼 짓 하지 말고 일찍일찍 다녀!”

엄마의 목소리가 머리채를 잡아당긴다.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걷는다.

비 오는 날에는 세상의 모든 냄새가 지상에서 맴돈다. 거리는 온통 고기 굽는 냄새와 함부로 뱉은 침 냄새, 담뱃진내, 물비린내로 가득하다. 나는 떠돌이 개처럼 터미널 근처를 맴돌고 있다. 비디오방에서 인육을 먹는 박사가 나오는 영화를 보고, 커피숍에 앉아 담배를 반갑이나 피우며 메스꺼운 속을 달래고 나온 참이다. 학원에서는 백 퍼쎈트 취업 보장을 했지만 아직까지 연락이 없다. 가방에는 낯선 돈이 들어 있었다. 천원권과 만원권이 뒤섞여 있는 걸 보면 엄마가 손님에게 받은 돈 그대로 넣어둔 듯싶다.

얼마나 돌아다녔는지 쌘들 앞으로 나온 발가락은 빗물에 퉁퉁 불어 있다. 나는 횟독으로 빵빵하게 부푼 아버지 발을 생각한다. 아버지의 발은 회를 뭉개놓은 듯 딱딱하고 울퉁불퉁했다. 저녁마다 찬물에 담그고 연고를 발랐지만 부기는 도통 빠지지 않았다. 밤새도록 허리를 구부리고 부푼 발을 긁어대는 소리에 식구들은 밤잠을 설치곤 했다. 나는 아버지 발을 만져본 적이 없다. 허옇게 독 오른 발에 손을 대면 내 손도 괴물처럼 흉악하게 변할 것 같았다. 나는 혹시라도 아버지의 발이 몸에 닿을까봐 잠결에도 이불 속으로 발을 집어넣는 데 신경을 곤두세우곤 했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세 대나 보내고 나서야 버스에 오른다. 버스는 도심을 벗어나 국도를 달리기 시작한다. 차창 밖으로 빗물에 일그러진 풍경이 지나간다. 차창에 비친 내 얼굴도 함께 일그러진다.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올라가는 동안 식당 간판 하나하나에 눈길을 주며 느리게 걷는다. 아무리 느리게 걸어도 어둠은 오지 않았다.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기온이 확연히 떨어져 우산을 든 팔뚝으로 자잘한 소름이 돋았다. 온몸이 물에 흠뻑 젖은 듯 무거워진다. 빨리 집으로 들어가 눅눅한 몸을 닦아내고 싶다.

나는 식당문 앞에 서서 잠시 망설인다. 식당 안은 불만 훤히 켜 있다. 엄마는 부엌에 없다. 방문을 연다. 이제 막 오이를 베어문 엄마와 화투짝에 고개를 박고 있던 사내들의 눈이 한꺼번에 나를 향한다. 나는 반사적으로 미닫이문을 살펴본다. 미닫이문은 닫혀 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소리나게 문을 닫아버린다. 나는 조금 더 느리게 걸었어야 했다. 아니면 조금 더 멀리 다녀왔어야 했다. 방문이 다시 열리고 엄마가 상체를 내민다.

“밥 줄까?”

“밥도 못 먹고 다닐까봐?”

나는 고개도 안 돌리고 불퉁거린다. 엄마가 신발을 꿰어신고 내 앞으로 다가온다. 엄마에게서는 누린내가 난다. 비에 젖은 개털냄새, 찬바람에 노출된 가죽잠바 냄새. 엄마에게서 풍기는 냄새는 여자의 냄새가 아니다. 엄마의 목소리가 굵어지면서, 수염이라도 난 것처럼 코밑이 검어지면서부터 풍기기 시작한 그 냄새는, 사내들의 콧바람에서 묻어나오는 역겨운 냄새와 닮아 있다. 늙어가는 여자들에게서는 왜 남자냄새가 나는 걸까.

“냄새 나, 저리 가.”

나는 차갑게 쏘아붙이고 밖으로 나온다. 어느새 비는 그치고 어둠이 내려앉아 있다. 식당길이 끝나고 한가한 계곡길이 나온다. 별빛도 없는 계곡은 칠흑같이 어둡다. 불어난 물소리만 요란하다. 나는 너럭바위에 앉아 담배를 피운다. 필터까지 피운 담배를 던지고 새로 담뱃불을 붙인다. 손끝에 담뱃진 냄새가 난다. 손에 묻은 담배냄새는 아버지의 냄새다. 나는 아버지의 발냄새를 맡듯 코끝에 손가락을 대고 깊게 숨을 들이마신다.

숲에서는 짓이겨진 풀냄새가 난다. 죽어가는 것들은 더욱 강한 향을 품는다. 베어진 풀, 썩어가는 과일, 짓이겨진 꽃잎. 나는 빈 담뱃갑을 구겨 던지고 일어난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다. 식당 앞에 멈추어선다. 문에 손을 댔다가 뜨거운 것에 댄 듯 황급히 도로 집어넣는다. 그대로 발걸음을 돌려 무작정 아래로 내려간다. 아직 시내로 가는 버스가 있을 것이다. 오는 길에 24시간 하는 찜질방을 보아두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주머니에 든 돈을 헤아리며 버스에 오른다.

 

“다 큰 계집애를 밖으로 돌리면 안되어.”

“찜질방 갔다잖아요! 어머니는 주무시기나 하세요.”

“어여 가봐라. 집이야 누가 떠메고 갈 것도 아니고.”

마치 내가 계집애를 내쫓기라도 한 것처럼 책하는 목소리다. 노인네는 참견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난 눈빛으로 내 등을 떠민다. 차갑게 쏘아붙이던 계집애의 말끝에 묻어난 물기가 내내 마음에 걸렸다. 찜질방에서 자고 오겠다는 말은 핑계에 불과하다. 내 눈으로 확인을 해야만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지갑만 챙겨 서둘러 집을 나선다. 하늘은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비를 퍼부어대고 있다. 무슨 사단이 나도 나지. 묵직한 천둥소리가 들릴 때마다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다. 비바람에 머리는 쑥대강이처럼 헝클어지고 젖은 옷이 몸에 휘감긴다. 쳐들어오는 비바람을 막아보려고 우산을 바싹 붙여보지만 살이 나간 우산은 제멋대로 뒤집어지기만 한다.

나는 밤도망을 치는 여편네처럼 버스정류장에 불안하게 서서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정류장 팻말이 바람에 요동친다. 트럭 한대가 물줄기를 가르며 도로에 바싹 붙어선 내게 물세례를 붓는다. 택시 한대가 섰다가 흠뻑 젖은 내 몰골을 보고 내빼버린다. 노인네 때문이야. 노인네만 없었어도 계집애 방을 만들어줄 수도 있었어. 남편만 살아 있었어도, 계집애 방 하나는 문제도 없었겠지. 나는 바람에 자꾸 뒤집어지는 우산을 땅바닥에 내팽개쳐버린다. 우산은 바람에 멀리 날아가버린다. 쏟아지는 빗줄기 때문인지 몸에서 피어오르는 열기 때문인지 시야가 자꾸 흐려진다. 이가 딱딱 부딪치고 오한이 든다.

멀리 택시 불빛이 빗줄기를 가르며 다가오고 있다. 나는 도로 가운데로 뛰어나가 두 팔을 벌리고 선다. 택시가 멈춘다. 다시 내빼려는 택시 문을 두들겨 기어코 세우고야 만다. 택시 안은 담배냄새와 LPG의 시큼한 냄새가 뒤섞여 있다. 와이퍼가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지만 들이붓듯 쏟아지는 빗줄기에 한치 앞도 보기 힘들다. 택시기사는 또다시 담뱃불을 붙이고는 들으라는 듯 욕을 해댄다. 나는 시트가 젖지 않도록 조수석 등받이에 손을 짚고 엉덩이 끝만 살짝 걸치고 앉는다.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찜질방에 들어서자 후끈한 열기가 온몸에 휘감긴다. 흰 운동복을 입고 무료하게 걸어다니는 사람들은 밖의 폭우와는 상관없이 한가로워 보인다. 털이 북실한 다리를 내놓고 누운 사내들과 젖꼭지가 비치는 얇은 셔츠만 입고 들락거리는 여자들 틈에서 계집애를 찾아낼 수 있을까. 꼭 이곳 어딘가에 솜털이 뽀얀 남자애와 손장난치며 누운 계집애를 마주할 것만 같다. 나는 흠뻑 젖은 채로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닌다. 발을 딛는 곳마다 물이 뚝뚝 떨어지고 사람들은 얼굴을 찌푸리며 피해다닌다.

계집애를 발견한 곳은 식당이었다. 계집애는 구석에 혼자 앉아 미역국을 먹고 있다. 혼자 밥을 먹고 있는 계집애를 보자 여태 졸이던 마음이 울컥해진다.

“등도 밀게 같이 가자고 하지, 왜 혼자 와?”

계집애가 숟가락을 든 채로 나를 올려본다. 물기를 머금은 계집애의 눈이 한결 커다래진다.

“비 오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

“어떻게 오긴 택시 타고 왔지.”

엉덩이를 들어 자리를 내주는 품이 내가 온 것이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나는 숟가락을 꺼내 미역국을 거들며 말한다.

“에이구, 여긴 별세상이다. 밖은 난리가 났는데.”

“비 많이 와? 얼른 옷 갈아입어. 사람들이 쳐다보잖아.”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젖은 옷을 빨아 맥반석 싸우나에 걸쳐둔다. 계집애가 냉커피통을 불쑥 내밀고 수건으로 내 머리를 싸매준다. 그러더니 턱짓으로 자수정 싸우나 쪽을 가리키고는 먼저 휭하니 들어가버린다. 나는 차가운 커피를 쭉 들이켠 다음 계집애를 따라 동굴처럼 생긴 방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뜨끈한 공기가 오히려 아늑하게 느껴진다. 나는 목침을 베고 벌렁 누워버린다. 계집애가 갑자기 내 발을 끌어당겨 감싸쥔다.

“각질 제거 좀 해야겠어. 그러게 양말 좀 신고 다니라 그랬잖아.”

“지저분한데 뭐하러 만져.”

계집애는 슬쩍 눈을 흘기고는 내 발을 바싹 끌어당긴다. 빗물에 젖은 발이 허옇게 불어 있다. 계집애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발가락을 주무르고 뒤꿈치를 두들긴다. 계집애의 손이 닿는 곳마다 시원한 느낌이 전해져온다. 나는 발을 내맡긴 채로 천장을 쳐다본다. 천장 가득 반짝이는 자수정이 별빛처럼 부서진다.

날이 밝고 나서야 찜질방을 나온다. 밤새 바싹 마른 옷의 꺼끌한 감촉과 향긋한 샴푸냄새에 기분이 좋아진다. 얼마나 밀어댔는지 가슴패기가 발갛다. 둘 다 발그레 달아오른 볼을 비비고 버스에 오른다. 버스는 물살을 가르며 도로를 질러간다. 밤새 비가 많이 온 모양이다. 여기저기 떠밀려온 쓰레기더미와 부러진 나뭇가지들로 길거리가 어수선하다. 어제 비를 맞고 서 있던 버스정류장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소방차와 구급차가 마을 입구에 서 있고 부산하게 나다니는 모습이 무슨 일이라도 난 것 같다. 위쪽에서 내려오는 물이 발목까지 차오른다. 나는 계집애의 손을 꼭 부여잡는다.

계집애와 찜질방에 있는 동안 불어난 계곡물이 돌들을 굴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무도 막을 수는 없었다. 한 시간에 100mm가 넘는 비가 내렸다. 계곡의 물줄기가 바뀌고 나무들이 뽑혀나갔다. 축대 위 가건물로 만든 가게마다 물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내렸다. 비는 길과 계곡과 집의 경계를 지웠다. 사람들은 몸이라도 빠져나온 것이 다행이라고 했다.

계집애의 손을 잡고 흙구덩이에 푹푹 빠지며 집으로 올라간다. 위로 올라갈수록 길은 더 험악해진다. 굴러온 돌덩이들과 나무들이 마구 널려 있어 걷기조차 힘들다. 유원지를 따라 늘어선 식당들은 대부분이 폭우에 휩쓸리고 뭉개져 있다. 길을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계집애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을 놓고 뛰기 시작한다. 저만치 우리집이 보여야 하는데. 보이는 것은 온통 벌건 흙과 바위들뿐이다. 계집애는 계곡으로 변한 집마당을 향해 달려간다. 집은 처참하게 뭉개져 있다. 다리에 힘이 빠진다. 나는 그대로 주저앉고 만다. 사람들이 모여든다. 계집애는 흙덩이가 되어버린 집에 엎드려 흙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나는 계집애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며 꼼짝도 못하고 앉아 있다.

 

여자의 새끼발가락에는 은발찌가 끼어져 있다. 여자는 지압봉이 지나갈 때마다 옅은 신음소리를 낸다. 지압봉이 발바닥 가운데를 누를 때에는 결국 손을 들어 무릎을 꼭 쥐고 만다. 뒤꿈치 지압을 마치면 이제 발끝부터 종아리까지의 경락에 들어가게 된다. 손이 저릿해온다. 나는 지압봉을 고쳐쥐고 발뒤꿈치를 누르기 시작한다.

발관리실에 나오기 시작한 지 한달이 되어가지만 나는 아직까지 그녀의 발처럼 작고 아름다운 발을 본 적이 없다. 눈을 감아도 검은 망막 위에 곧바로 새겨지는 버선발. 나는 사람들이 양말을 벗고 맨발을 보일 때마다 그녀의 버선발을 생각한다.

무너진 집에서 발견된 할머니는 맨발이었다. 그녀가 벗은 것인지 아니면 발굴작업을 하는 인부들의 거친 손에 끌려나오면서 벗겨진 것인지, 할머니는 맨발인 채로 들것 위에 누워 있었다. 나는 차마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진흙으로 더럽혀진 그녀의 맨발만 바라보았다. 할머니의 발은 꼭 횟독 오른 아버지의 발 같았다.

할머니를 땅에 묻을 수는 없었다. 그녀 몸을 짓눌렀을 흙더미와 돌멩이로도 충분했다. 엄마는 인부에게 웃돈을 얹어주며 곱게 빻아달라고 부탁했다. 할머니의 유골상자를 받아든 엄마는 폭우처럼 눈물을 쏟아냈다. 곱게 빻아진 그녀의 뼈는 꼭 흰 명랑가루 같았다. 납골당에 넣기 전, 나는 그녀의 뼛가루를 조금 덜어내 작은 상자 안에 담아두었다. 그리고 그녀의 발이 생각날 때마다 손가락에 침을 묻혀 그녀의 뼛가루를 찍어 혓바닥으로 조금씩 맛보곤 했다.

내 내부에는 언제나 나를 바라보며 침묵하는 그녀가 있다. 그녀는 내 속에서 숨쉬고 내 속에서 잠을 잔다. 그녀는 가끔 내 속에서 버선발을 내밀기도 한다. 나는 그녀를 위해 명랑을 먹는다. 설탕처럼 하얗고 반짝이는 명랑가루에서는 그녀 냄새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