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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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록

 

개념의 숲

 

 

고은 高銀

시인. 1933년 군산 출생. 1958년 등단. 시집으로 최근의 선집 『어느 바람』을 포함해 『문의마을에 가서』 『새벽길』 『조국의 별』 『남과 북』 『두고 온 시』 『백두산』 『만인보』 등 다수.
*이 글은 세계 각 지역의 지식인들에게 동일한 개념어 일람표를 보내어 그 다양한 정의(定義)들을 모아 책으로 내기 위한 한국측의 원고이다. 2003년 안으로 빠리의 라 디페랑스(La Différence) 출판사에서 간행될 예정이다.–필자

 

 

절대

만약 절대에 갇혀 있다면 이 세계는 얼마나 부자유하겠는가. 다행히도, 대지에 절대가 없는 것처럼 인간에게 절대가 없다.

절대는 무(無)이다. 있는 것은 오직 상대를 벗어나려는 바닥 모를 욕망이 있을 뿐이다.

 

부조리

관계의 시작, 까뮈는 다시 태어나서 그 이상의 것을 지향해야 한다.

 

활동

세계는 운동의 시간과 공간이다. 죽음 또는 흙속의 암반(岩盤)도 운동이다. 이 운동을 자기화(自己化)하는 것이 활동이다.

한밤중 잠든 삼라만상 일체가 활발하다. 하물며 역사 속의 선악이랴.

 

자기소외

소외는 필요하다. 인간에게 자기소외가 없다면 사회의 무자각적인 분자(分子)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브레히트 연극이론에서의 ‘소외효과’에 주목한다. 극으로부터 현실을 소외시킴으로써 관객이 극에 몰입하지 않게 하는 것, 그래서 극과 현실을 구별함으로써 현실이 더욱 극명해지는 것.

하지만 정신으로서의 자기소외는 이미 유적(類的) 존재로부터의 소외와 차이가 있다.

 

사랑(愛)

소유에의 장님. 헌신에의 장님. 이 두 장님만이 사랑을 완성한다.

 

혼(魂)

인간에게 남은 마지막 유산이다. 그러나 부상당한 유산이다.

 

고뇌(苦惱)

20세기 말부터 고뇌는 미라가 되었다. 살려내야 한다. 지금 나는 고대의 숲이던 현대의 사막을 걸어간다.

 

귀족계급

귀족계급은 만찬장에만 존재한다. 만찬이 끝난 밤중에는 천민계급으로 돌아간다.

 

예술

종교의 장식물이었다.

지금은 상업의 장식물이다.

그러나 그 이전과 그 이후의 예술 없이 인간은 없다.

 

무신론

유신론 때문에 무신론이 있다. 무신론은 인간의 자기승화를 반영한다.

 

타자(他者)

나의 욕망이 증강할수록 타자는 증가한다.

아니다. 세계에 나는 없다. 있는 것은 타자들뿐이다. 타자로서의 공(空).

 

전위(前衛)

전위에는 청춘이 있다.

전위는 패배하므로 아름답다. 그 패배 뒤에 새로운 시대가 온다.

전위는 외부로부터 살해당할 뿐 아니라 내부로부터 깨지는 달걀껍질이다.

 

아나키즘

여기 이데올로기가 있다! 생태공동체 이데올로기가.

오 국가는 불선(不善)이다.

 

야만

문명의 밖에 남은 야만은 고향이고 구원(救援)이다. 그러나 문명 속의 온갖 야만이야말로 원시의 순수인 야만을 학살한다.

 

통속

나는 통속의 자식이다. 나는 통속의 아버지이다.

나는 나를 경멸한다.

나는 나를 학대한다.

 

창녀가 주부보다 더 통속이다.

무녀(巫女)보다 천사가 더 통속이다.

 

미(美)

미는 모든 가치의 귀결이며 인간이 궁극적으로 실현해야 할 세계의 내용이다. 진리는 진(眞)도 선(善)도 넘어서 미이다. 그러나 미에 대한 추(醜)에 미는 무력하다. 아 슬픈 미!

 

행복

행복은 철학의 지옥이다. 시의 무덤이다.

 

선(善)

선을 행하지 말라

그렇다면 악을 행할 것인가

선을 행하지 말라 했거늘

하물며 악이라니

 

악은 순수하지만

선은 그 일부분이 왠지 위선이다.

 

자본주의

자본주의 성숙단계에서도 자본주의 종말이라는 손님은 끝내 오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기다린다.

자본주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인간의 본능과 욕망의 소산(所産)이다. 세계화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타락이다. 인간의 욕망을 스스로 제어하는 정신이 특히 미국사회에 생장(生長)해야 한다. 아시아의 몇 지역에 만연하는 천민자본주의여 가라.

 

검열

검열의 본능은

검열의 대상을 확대한다.

그러나 검열은 자유를 역설적으로 발전시킨다.

언론 출판의 자유가 모든 자유의 모체이므로 권력은 검열의 맹수가 되는 것이다.

 

원인

인과론이 싫다. 원인과 결과는 수학의 기본이 아니다. 원인은 원인들의 집합이고 그것들의 복합적인 과정은 길다.

 

중심(中心)

이제까지의 중심은 범죄였다. 독선이었다.

우주 어디에도

지역 어디에도 중심은 없다.

 

중심으로서의 권위를 타파하라

그러지 않으면

세계는 지난날의 제왕과 노예로 돌아가리라

 

오 해방의 모든 변방! 모든 무수한 중심들!

 

기회

히말라야 빙벽 혹은 아이거(Eiger) 북벽(北壁)의 얼음이 녹을 때를 위하여 배를 만들어라. 그러기 전에 북풍을 기다리는 열매들이 있다. 제 가지에서 떨어지기 위하여.

 

물(物)

기계적 유물론을 떠나라. 물(物)은 객체가 아니다. 물(物)은 현상이다.

 

시민(市民)

인민은 본질적이다.

시민은 현실적이다.

그래서 인민은 없고 시민만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시민사회의 밑바닥에는 노예의 지층이 자리잡고 있다. 그 밑바닥에는 원시공산사회의 유골과 공룡의 배설물 화석이 자리잡고 있다.

 

상업

인간의 약탈행위를 변화시킨 것

싸게 사고

비싸게 파는 행위

아 농경시대 정기 시장은 생의 축제였다!

 

공동체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지만 공동체의 꿈 없이는 현세는 절망이다. 그러나 수많은 공동체의 이론들을 경계하라. 그 이론들이 잠드는 것도 경계하라.

 

커뮤니케이션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다

이것과 저것 사이

언제나 오고 가는 나그네 있다.

 

아이덴티티

아이덴티티는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아이덴티티는 단일하지 하고 복합적이고 혼혈적이기까지 하다.

 

세계화 속의 자아는 독립이 아니라 연합이다.

독립은 고아이다. 독립은 세계화의 손쉬운 먹이이다.

 

환상(幻想)

과학에 절망하지 말라. 너에게 환상이 있지 않느냐.

환상은 네가 떠나온 모태(母胎)이며 네가 가지고 온 유전(遺傳)이다.

 

나는 환상의 주인이다라는 랭보의 말밖에 무엇을 더 말하겠느냐.

 

상(像) 이미지

이미지로 눈뜨고

이미지로 잠든다.

 

내재성

관념으로 가는 길에 그것이 있다.

종교로 가는 길목에도 그것이 있다.

 

불가능

모든 것이 가능한 세계는 낭설이다.

불가능이 세계의 가능성이다.

 

무의식

의식의 밭보다 더 큰 들판이 무의식이다.

제6식으로서의 의식 이후 제7식 제8식까지 가거라.

거기에 그대 내생의 시작이 있다.

 

개인

근대 인간은 개인을 발견했다.

근대 이후의 인간은

개인의 한계를 발견했다.

 

발명

발명하는 고독은 내적이다

발견하는 고독은 외적이다

 

발명하는 고독을 찬미하라

 

연기와 증기 가득한 씰루엣의 밤

그 밤을 통째로 새우는

불사(不死) 영약(靈藥)을 발명하는 자를

여인이여 유혹하지 말라.

 

무한

무한에는 조국이 없다.

 

정보

바야흐로 정보의 권력이 군림하고 있다.

총소리가 나지 말아야 한다

총소리는 낡았다

보병과

포병도 낡았다

현금도 낡았다

왕족도 낡았다.

 

무구(無垢)

어린아이에게도 때[垢]가 있다.

어린아이의 마음에도 때가 끼어 있다.

 

순진무구, 그것은 소멸이 낳은 어린아이이다.

 

유희

일의 가치와 놀이의 가치는 서로 양보한다.

 

유한계급과 룸펜프롤레타리아의 시간을 놀이로 전화(轉化)시킬 것.

 

환희

삶의 약이며 치유(治癒)이다.

왜 인류는 축제를 도처에서 개최하는가.

 

향락

나의 향락은 책에 있다

나의 향락은 술에 있다

나의 향락은 스크린에 있다

나의 향락은 아직 혁명에 있다

나의 향락은 여행에 있다

나의 향락은 유한(有限)에 있다

나의 향락은 순간의 이성(異性)에 있다.

 

정의(正義)

정의는 힘인가

아니 정의는 가장 힘있는 꿈인가

 

판단

나는 1년 중 대부분을 판단정지 상태로 지낸다

나는 깨닫기 위해서가 아니라

취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다.

 

이백(李白)도 니체도 취한 무뢰한이다. 나는 그들을 사랑한다.

 

언어

언어는 행위다. 그밖의 수작으로 언어를 말하지 말라.

 

자유

자유에는 시인이 필요없다.

자유를 위해서 싸운 적이 없는 인간에게는 일생이 없다.

 

자유주의

우리는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미워하면서 그것의 광장 안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다.

자유주의는 평등의 불모지이자 자유의 감옥이다. 그러나 자유를 배급하라는 레닌을 강하게 거부한다.

 

자유의지

의지의 자유는 반드시 최상으로 발전된 물질과 관련되는 자유인가? 자유에 대한 책임은 자유인가?

아니 자유의지의 필연성만이 자유의지를 가능케 하는가?

대답 없다.

 

문학

인간과 사회의 총화(總和)로서의 형상물.

 

그것 없이 살 수 있었다

그것 없이 살 수 없었다

그것 없이 살 수 있다

이것이 문학사이다

 

문학은 문학사의 울안에 있지 않다.

 

로고스

로고스가 하다 만 일을 감성이 다 한다.

아시아에는 로고스가 아니라 도리(道理)가 있다.

도리의 윤리성을 지우면 그것이 ‘의(擬)로고스’가 된다.

 

동양에서는 법을 물이 흘러가는 것으로 말한다. 자연법이 법이고 실정법은 법의 모방이다.

하지만 동양의 법 적용은 혹독했다. 동양 역사의 아버지 사마천(司馬遷)은 친구를 변호하는 한마디 말 때문에 성기를 잘리는 형벌을 받았다. 유목민 흉노족에 시달린 한무제(漢武帝)의 법 적용이었다.

 

기계

기계 및 기계적인 것을 부정하는 문화는 미숙하다.

기계의 무심(無心)

기계의 정직

기계의 적확함

아니 인간의 신체 자체가 최고의 기계이다.

우주라는 큰 기계 속의 기계들이기 때문이다.

 

마술

때때로 사실이 마술에 의해서 모독당해야 한다.

그때 사실은 새로운 사실의 세계를 이룬다. 또한 사실들이야말로 본질적으로 마술이다.

 

다수

다수는 투표에서만 살아난다.

다수는 봉기(蜂起)에서만 살아난다.

그러고는 다시 잠든다. 잠을 깨어도 어제와 오늘이 일관되지 않는다.

 

인간의 영원한 주제(主題)이다. 오늘 인간은 너무 많이 악을 모방하고 있다.

 

공작(工作)

나는 내 부모의 공작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나는 내 시대의 공작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나는 내 신의 공작에 의해서 죽지 않으리라

 

공작이란 인간의 사유(思惟)보다 더 위대하다.

 

여백

세계 각 지역에 보낼 아주 귀중한 선물이 동양화의 여백이다.

여백의 정신이 서구문명 또는 서구예술의 어떤 난치병을 치유할 때가 올 것을 믿는다. 모든 음악에는 넘치는 잉여가 아니라 창조적 결핍으로서의 여백이 요청된다. 아니 여백은 결핍이 아니라 다음 생(生)이다.

 

순교(殉敎)

순교 없는 역사는 역사가 아니라 자연이다

순교자 없는 나라는 나라가 아니라 촌락이다

순교자가 종교의 부당성을 방지해준다.

 

마조히즘

폭풍을 맞이하라

노도(怒濤)를 맞이하라

바닷가 절벽으로 서 있어라

 

아 마조히즘이여 너는 싸디즘보다 강하다.

 

매스미디어

정신의 시대는 끝났도다!

 

물질주의

철학으로서의 물질은 향기롭다

이념으로서의 물질은 경건하다

유물론은 물질주의가 아니라 정신주의다

 

자본주의의 바다에서 물질의 조류가 활동한다.

 

수학

가장 오래된 철학

순수는 수학에서만 태어난다

순수는 곧 죽는다.

 

상품

노동가치설도 가치형태설도 잠시 접어두자

상품은 어머니가 줄 때는 어머니이다

연인이 줄 때는 연인이다.

 

기억

아 기억이 비로소 인간을 인간적이게 한다

기억의 딸이

상상이다

상상의 어머니가

기억이다

 

기억은 이 세상 이전까지 닿아 있다

 

가버린 세계를 현재에 머물게 하는 유일한 시간의 우정이다, 기억은.

 

공산주의

인류의 꿈이다. 그러나 지금은 인류의 한 재앙이다. 25세기 그 시대에는 단계적으로 실현되리라. 제4차원적 이데올로기가 되리라.

 

개념

개념은 발전한다

개념은 본질을 포착한다

개념은 비본질도 포착한다

개념은 모든 현상 속에서 모호해진다

확실한 낙조가 흐리멍텅한 어둠으로 변하는 것처럼.

 

인식

인식은 실천의 시작이다

오 고대 인도와

고대 그리스로 가고 싶다

그 인식의 아침은 신성하다.

 

의식

의식이 모든 것의 동력은 아니다.

너무 과장하지 말라. 너무 의식에 집착하지 말라.

 

소비

소비는 백화점과 아파트의 영구적인 동맹이다

유혹하며

유혹당하며.

 

대립

나는 대립의 동지이다

나는 조화의 반역자이다

대립을 함부로 부정하지 말라, 아시아 사람들이여.

 

신체

신체는 사원(寺院)이다.

내 신체는 1만년 전에 살았던 기도 소리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내 신체의 역사는 점성술로 해명할 수 있다.

 

신앙

신앙은 신앙하는 대상을 과장한다

신앙은 신앙하는 자신을 확대한다

이윽고

신앙은 탐욕이다. 이 역설로부터 출발하라.

 

죄책감

이것은 인간의 자[尺]이다.

 

문화

한국의 정치지도자 김구는 1948년 암살당하기 전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서 가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창조

부르주아적 천재 예찬이 있어야겠다.

프롤레타리아적 민중 예찬이 있어야겠다.

창조는 그 예찬 사이에서 세계의 발광체(發光體)이다.

 

비평

비평은 개 짖는 소리가 아니다

사람이 짖는 소리이다

비평가에게는 조국만 있어서는 안된다

세계의 친구가 비평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평은 본질적으로 작품에서 가장 먼 곳에 있는 낯선 자이다. 수상하다!

 

범죄

사람은 두 가지이다. 거지이거나 도둑이거나.

사람의 마을에는 반드시 감옥이 있고 저만치 묘지가 있다.

 

데까당스

황혼. 쇠망의 일몰. 퇴폐의 밤.

데까당스는 세기말의, 어떤 시기 끝무렵의 항구에 찾아오는 여객선이다. 그 여객을 푸대접하는 항구의 무정(無情)은 천벌을 받으리라.

데까당스에 진리의 데몬(demon)이 들어 있다.

 

민주주의

이제까지 있었던 정치제도가 이보다 좋은 것이 아니었고 이보다 나쁜 것도 아니었다. 민주주의는 어느 시기까지만 세계 공화국들의 형식일 것이다.

 

욕망

욕망으로 더욱 가난해진다

욕망으로 더욱 풍부해진다

 

욕망이란 무덤 아니고는 어디에도 파묻을 곳이 없다.

 

운명

운명은 운명!이다

 

십대 후반 이래 아직도 운명이라는 낱말은 방금 바다 수평선에서 건져올린 물 뚝뚝 떨어지는 아침 태양이다.

도저히 나는 아버지의 아들일 수 없다. 운명의 아들이다.

 

생성(生成)

세계는 쉬지 않고 생성한다. 그리고 소멸한다. 아니, 생성도 없고 소멸도 없는 것이 세계이다. 벌써 꽃이 졌다.

 

의무

의무가 권리보다 더 악용되는 시대가 암흑기이다. 촛불이 초를 죽이는 것처럼 의무는 삶의 대부분을 헌납하게 만든다.

 

악마

괜히 우파의 천사 때문에 존재하는 좌파이다.

 

변증법

때때로 시행착오가 변증법보다 우월하다. 지식인의 미망(迷妄)인 변증법을 새로 전개해야 한다.

 

인간은 인간 이외의 것에 의존한다. 그것이 인간 자신의 연장인 줄을 모른다.

가만히 말한다. 신이 인간을 만들지 않았다. 신은 그 무엇도 만든 적이 없다.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

신의 무능인 전능(全能)!

 

전제주의(專制主義)

나뽈레옹에게만 화려한 전제주의가 있지 않다.

러시아 뇌제(雷帝)에게만 단호한 전제주의가 있지 않다

현대의 자본과 매체, 인터넷이 이미 전제주의를 표방한다. 이것들은 모두 군대를 닮고 있다.

 

존엄

짐승들의 존엄

미생물들의 존엄과 함께

인간의 존엄이 성립된다.

 

인간만의 존엄은 사악하다. 왜냐하면 존엄은 다른 존엄에의 동지(同志)이기 때문이다.

 

권리

권리는 아주 소량의 배급품이다. 이것으로 하루를 살아가기가 막막하다.

 

이원론(二元論)

동양의 상류층이여 서양의 이원론을 함부로 폄하하지 말라.

그대들은 적어도 1백년 이상을 배화교(拜火敎)와 데까르뜨의 은혜를 입었다. 그 은혜를 갚고 나서 이원론을 일원론 또는 다원론 아니 합일론(合一論)으로 교체하라.

 

에콜로지

유교는 인간학이다

기독교는 신학이다

불교는 생태학이다. 화엄(華嚴)이다.

 

경제

정치가 지배하지 않고

경제가 지배한다.

그 다음의 희망은 문화가 지배한다는 것에 있다

어머니란 사랑인가, 경제인가.

 

교육

한국의 평민 제사에는 위패(位牌)를 설치한다. 그 위패에는 ‘학생의 신[學生府君]’이라고 쓴다. 살아 있는 동안에도 학생이었고 죽어서도 학생인 것이다.

평생 또는 죽은 뒤까지도 교육이 인간의 생사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허위

세계의 90퍼센트는 허위이고 그 나머지가 진실이면 된다. 이 진실의 양(量)으로 세계는 진실의 현장이다.

 

형이상학

형이상학 없이 어찌 인간의 하복부(下腹部)가 있겠는가. 어찌 인간의 발바닥이 땅에 닿아 있겠는가.

형이상학은 형이하학이 피워낸 꽃이고 맺은 열매이다.

 

마이너리티

소수민족의 비애가 있는 한 세계는 비애의 행성(行星)이다.

 

유행

유행은 달라지고 싶은 자들의 체제이다.

 

근대성

나는 한국의 근대를 재근대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근대성은 고대와 중세에도 있었다.

우리들이 성찰할 것은, 근대성이 만능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이 근대 인간의 면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근대〓자아

근대〓타아.

 

자기(自己)

자기라는 창

자기라는 벽

자기라는 외부와 내부.

 

화폐

화폐는 인간적이다

증권은 비인간적이다

 

현대철학에서 화폐철학이 나와야 한다.

 

세계

산스크리트어 lokadhhatui, ‘부서질 장소’를 뜻한다.

시간적으로 생멸 변화가 진행된다.

공간적으로 방위(方位) 등이 한정되어 있다.

중생의 거처이다.

그러나 대승불교는 화엄세계, 부처와 보살의 세계이다.

세계의 세(世)는 시간, 계(界)는 공간이다.

 

나의 세계관은 세계 각 지역의 언어 몇천만 종(種)이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에 관련된다. 세계는 각각의 말로 말해야 한다. 하나의 말로 말하는 세계는 세계가 아니다.

 

글로벌라이제이션

문 열었다

길이 있다

누가 간다

누가 온다

누구와 누구가 만난다

누구가 태어난다.

 

도덕

도덕이 솟아오르는 시대는 불행하다

도덕은 가라앉아야 한다

도덕은 없는 것처럼

저쪽 가녘에 잠겨 있어야 한다

 

초도덕의 시대를 대망(待望)한다.

 

죽음(死)

나 죽을 때 몇사람 짝짝 박수쳐라.

 

운동

삶의 동작이다. 역사의 동작이다. 문화의 동작이다.

우주의 동작이다. 아 휴식은 아직 멀었다.

 

국가

식민지는 얼마나 자신의 국가를 갈망하는가.

국가는 얼마나 국가의 범죄와 탐욕을 쌓아가는가.

 

자연

누가 말했던가. 자연에는 비약(飛躍)이 없다라고.

자연은 의식 밖의 물질만이 아니다.

자연은 도(道)이다.

오호라 초자연은 자연의 일부이다.

 

자연의 힘은 어느 힘보다 강하다.

 

무(無)

이제 막 알에서 나온 병아리에게 물어보아라.

 

무는 니힐이 아니다. 무는 묘하게 있음(妙有)이다.

 

신경증

신경증은 문명의 선물이다.

 

현대인 전체

네티즌 전체가 신경증의 친구들이다.

 

중성(中性)

21세기 남성을 가리킨다.

21세기 여성을 가리킨다.

 

필연

잠시 변증법을 멈춰라

세계는 필연으로 성립되었다고 누가 노래한다

세계는 우연으로 시작되었다고 누가 노래한다

어느 노래에 갈채를 보내겠느냐

 

사실인즉 필연과 우연은 하나의 고고학이다.

 

니힐리즘

니힐리즘에 빠져 헤어날 줄 모르는 때가 나에게는 있었다.

노장(老莊)의 무위(無爲), 불교의 무(無) 혹은 공(空)에도 기웃거렸다. 서구 니힐리즘에도 내 그림자를 드리웠다.

내 동시대는 전쟁 직후의 폐허에서 니힐리즘과 함께 시작되었다.

니힐리즘, 부정, 불안, 고독, 자기소외…… 이런 것들이 환경이었다. 그러므로 나의 정부는 무정부였다.

 

객관성

주관과 객관은 의식의 자기분열이다. 오늘 나는 나 자신의 주관으로 객관을 설정한다. 이런 사실과 달리 저쪽에서 어떤 객관성은 모든 주관의 과잉을 차단하고 있다.

한 나라에 대한 다른 나라의 대응!

 

대상

세계는 나의 대상이다. 나는 나 자신의 대상이다. 아니 대상은 대상언어(對象言語)이다.

또한 대상은 나를 만들어낸다. 강가에 서 있을 때 강 건너 저쪽은 나의 대상이고 강 건너 풍경에 의해서 나는 대상으로 전락(轉落)한다. 나는 대상이 되어가는 존재일 뿐이다.

대상 혹은 사물 없이 ‘나’는 없다.

 

서구

서구는 아시아의 문화 이후에 문화를 성급하게 시작한 원시였다. 이제 서구는 아시아의 후진에 대한 우월성으로 넘친다. 서구인에게 세계는 서구였고 서구의 부록(附錄)인 오리엔트가 있다.

근대 서구 민족주의가 제국주의로 팽창되어 아시아 아프리카를 착취했다. 여기서 발생한 오리엔탈리즘은 악이다

헤겔은 동양을 자신들이 대변해야 할 객체로 단정했다. 서구는 아시아에 사는 인간을 하나의 인간으로 보지 않고 셈족, 중국인, 한국인 따위로 보았다. 서구는 아시아를 평생 바쳐야 할 비즈니스라고 인식했다.

‘서구의 몰락’은 이러한 몇백년간의 오만을 수정하기 시작하는 신호였다. 서구중심 사관은 이제 끝내야 한다.

 

오페라

평상복장, 간이복장으로 관람할 것. 왕실 전용석을 없앨 것.

 

기원(起源)

조물주는 조물주를 만든 자를 부정한다. 세계의 기원은 이렇게 기만적이다. 그러나 기원은 인간을 덜 방황하게 하는 가정(假定)일 뿐 어디에 기원이 있단 말인가.

시간 속의 어느 한 공간에 인간은 어떤 시작의 팻말을 박는다.

기원은 기원 이전의 선사(先史)를 망각한다.

 

작품

백인들의 편견에 의해 만들어진 정전(正典)을 떠나서 지금 막 태어난 아기가 곧 작품의 시작이다.

그것이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가령 아프리카 원주민의 성년식을 지나서까지 죽지 않고 성장해야 한다.

자본주의는 모든 작품을 상품으로 만든다. 자본주의의 상품은 작품의 타락을 조장(助長)한다.

작품이여 자본주의의 밤에 깨어나라.

 

질서

우주의 질서–완전.

인간의 질서–혼란.

 

동양

아시아는

처음에는 그리스 신(神)의 하나였다

다음 동양은 소아시아 내지 이집트였다

다음 동양은 인도 서북단이었다

다음 인도였다

다음 중국이었다

다음 일본이었다

이제 동양은 동양이다.

 

동양은 서구에 대해 주체적일 것

그러나 동양은 동양 자신을 가혹하게 성찰할 것

오늘의 동양에는 서양보다 더 비동양적인 현상들이 많다.

환경·생태의 사상, 생명의 사상, 우주의 사상은 원산지 동양에서보다 서구에서 더 구현되고 있다.

동양은 서구보다 더 이원론의 소음에 시달린다.

요컨대 동양은 너무 시끌시끌하다.

동양의 서구화. 서구의 동양화. 이것이 지구상의 과도기적 이상(理想)인지 모른다.

 

망각

과거의 소멸. 시간은 망각을 낳고 치매를 낳는다. 왜냐하면 세계는 늘 새로운 사태의 만원으로 과거를 돌아다볼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야누스신은 없다.

그래서 5천년 전의 파라오 미라도 5천년 전의 것이 아니라 오늘의 것이다.

 

정열

정열은 지혜보다 상위에 있어야 한다. 태풍과 허리케인, 지진, 시베리아 눈보라, 화산 대폭발, 타클라마칸사막의 회오리 기둥, 홍수…… 이런 것들이 정열의 교사이다.

정열만이 창조의 힘이고 변혁의 수레바퀴다.

친구여 정열 없는 생명보다 정열 있는 시체가 되어라.

 

천국

없다.

 

말은 말이고 또 말이다. 말은 도구가 아니라 혼이다. 나는 슬라브어를 모르는 것을 불행으로 생각한다. 듣노라면 그 말에는 혹한과 혹서로 이루어진 인간의 심성이 스며 있는 것 같다. 나에게 슬라브어는 절대음악이다.

 

말은 말 밖의 세계를 깨닫게 한다.

 

풍경

풍경이 나보다 먼저 나를 바라보고 있다.

풍경이 독서보다 먼저 나의 독서였다.

 

오 내 시의 국경(國境)이여. 풍경이여.

 

사고(思考)

나는 최고이다 사고에 의해서

나는 최하이다 사고의 방기(放棄)에 의해서.

 

인격

인격은 진행된다.

 

민족

비트겐슈타인은 민족을 말하지 않았다. 나는 지난 30년간 민족을 말했다. 앞으로 민족을 10년간만 말하겠다.

한반도의 분단시대가 끝나면 내 입에서 민족이란 낱말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물리(物理)

화학적이기보다 물리적일 것.

 

시는 17세부터 나의 북극성이다. 시는 나에게 길을 걸어가는 자이게 한다.

 

정치

정치는 투쟁이다.

정치를 통해서 세계는 경기장 또는 도박장이 된다.

 

평등

혼자에게만 평등이 실현된다. 평등, 영원한 절망이다.

 

엘리뜨

창조적 소수의 확대를 막는 것이 엘리뜨인가?

엘리뜨는 고난을 모른다

엘리뜨는 밭을 모른다

엘리뜨는 침묵을 모른다

엘리뜨는 시장(市場)과 전선(戰線)을 모른다

 

엘리뜨는 피뢰침이다. 두뇌이다. 심장이 아니다.

 

지옥

지옥은 이 세계 안에 있다.

 

에로스

에로스, 이것 없이 어떻게 세계가 살아 있는 생명지대이겠는가.

에로스는 로고스보다 훨씬 본질적이다.

 

예속

나는 국가에 예속되어 있다.

나는 집단에 예속되어 있다. 또는 집단정서에 예속되어 있다.

나는 가족에 예속되어 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예속되어 있다.

나는 몇천명의 노예의 복수(複數)이다.

 

나는 우주에 예속되어 있다. 우주와 자아가 하나라는 궁극적 예속관계 그것조차 타도하라.

 

미학

미가 아니라 미의 화석.

 

공간

시간이 있으므로 공간이 있다

내가 있으므로 공간이 있다

 

(나는 80년대 초 한국 중앙정보부 지하 2층에서 관의 크기 정도의 방안에서 마치 세워놓는 시체처럼 24시간 갇혀 있는 고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공간의 의미에 좀 가까이 갔다.)

 

공간 안에서의 관계. 일체는 관계이다. 관계야말로 생명이다.

 

종(種)

지구의 멸망은 종(種)의 멸망으로 진행된다.

지구의 멸망은 앞으로 1백년 안에 몇천종(種)의 언어가 절반 내지 90퍼센트 소멸되리라는 예측과 함께 진행되고 있다.

이제 종은 브라만 신학 정교품(情交品)에서 보여지는, 한 동물이 다른 종류의 동물과의 기괴한 섹스를 통해서 생기는 변종 내지 인공종에 의해서 본래의 종들이 도태되는 것으로 지구의 멸망을 돕는지 모른다.

불교의 제8식(第八識)인 아라야식(阿賴耶識)을 생각한다.

북한 김정일의 이론인 종자론(種子論)의 그 근본종을 생각한다.

그런 종에의 깊은 탐구가 있어야겠다.

 

본질

나의 본질은 내가 만들어내는 허구이다. 어떤 보편적인 것과 어떤 필연적인 것의 통일 역시 허구인가. 그러나 사랑할지어다. 본질이 가까워온다.

 

국체(國體)

국가의 장벽.

 

영원

어린시절 먼길의 가로수 포플러나무, 또는 겨울밤 별들.

 

윤리

윤리의 변화가 이데올로기의 변화이다.

메타윤리만 남고 윤리는 어디로 갔나?

 

주자(朱子)의 법칙으로서의 윤리 사절한다.

왕양명(王陽明)의 순수한 효, 화목에의 심정 그 자체인 윤리를 환영한다.

또한 이탁오(李卓吾)의 동심론(童心論)의 윤리를 사랑한다.

 

인간보다 동물이 더 윤리적이다. 이제까지의 인간학은 동물을 모독했다.

 

존재

근대 인간의 구호! 존재 있다!

 

주어주의(主語主義) 포기하라

술어주의(述語主義) 포기하라

 

존재 없다!

 

사건

70년대 한국의 민중신학은 사건신학이기도 했다.

사건–역사 전환기에 약속된 메시아.

 

예외

예외는 황홀하다

예외는 명예롭다

그러나 예외는 혁명의 첫 대상이다.

 

실존

현존한다. 그 이상은 없다. 미지이다. 예정된 바 아무것도 없다. 과거도 미래도 그리고 현재도……

 

경험

포주(抱主)의 경험은 창녀들을 노련하게 착취한다.

또한 늙은 여행자의 경험은 세계 각처의 젊은이에게 꿈꾸게 한다.

 

가족

나는 40세 넘어서까지 가족은 악의 동기라고 생각했다. 또한 가족은 진리와 가장 먼 곳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50세에 가족을 이루었다. 이제 가족은 사회의 가장 신성한 단위이다. 이 가족의 의미가 21세기에는 사라져간다. 한번쯤 그래야 한다.

 

환상 2

나는 말한다. 환상은 내 반려자라고.

 

파시즘

모든 우파는 극우파의 화원(花園)이다. 그 화원 밖에서 파시즘의 깃발이 휘날린다.

그러나 20세기 일국사회주의 역시 파시즘이었다. 21세기 세계화 역시 파시즘을 지향한다.

 

과거

과거는 문화이다.

 

여성

모든 종말은 여성이다. 그러므로 여자의 사랑은 늘 마지막이다. 장엄한 일몰(日沒), 그것은 여성의 희열이다.

 

축제

하루하루는 사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것이다.

축제야말로 사는 것이다. 혈관주사를 맞는 듯한 지루한 일상에 대한 최대의 반역인 축제로서의 변혁이여,

시인은 축제에서 산다. 그러나 하루하루의 일상을 말없이 축제로 바꿔라. 밭에 씨를 뿌려라. 그대가 버린 사생아를 찾아오라.

 

충실(忠實)

4월 남풍이 분다. 보리가 충실하게 익어간다.

 

영화(映畵)

인간이 만든 것 가운데 최고의 걸작이 있다. 먼길과 술집 그리고 영화가 끝난 직후의 하얀 스크린의 묵언.

 

종결(終結)

완결은 없다. 다만 미완이 있을 뿐이다. 모든 것은 영구미제(永久未濟)이다. 아니 시작도 없고 종결도 없다?

 

신심(信心)

생명체 기본계급의 조건.

 

광기

예술에 반드시 필요하다.

권력에 반드시 불필요하다.

 

포르노그라피

포르노그라피는 창녀에게 있지 않고 숙녀에게 있다. 숙녀의 밤은 숙녀의 낮에 보복한다. 숙녀의 밤은 창녀의 밤을 훨씬 능가한다.

 

포스트모던

포스트모던은 모던 그후가 아니라 새로운 모던이다. 아니 벌써 포스트모던은 사라져가고 있다.

 

포틀래치(Potlatch)

아메리카 원주민의 손님맞이 잔치는 신성하다. 손님은 신(神)이다. 하늘이 노래하고 대지가 함께 춤춘다. 지는 태양은 다음날 다시 떠오른다.

 

자연은 모두 향연(饗宴)이다.

 

권력

권력의 본질은 폭력이다. 원시공산주의 이후 그것은 변할 줄 모른다.

오늘에는 핵, 미디어, 인터넷 프로그램들, 문화가 다 정치권력과 동등한 권력이다.

 

생산

생산을 조절하지 않으면 파국이 온다.

소비를 제한하지 않으면 파국이 온다.

 

우리가 살고 있는 행성에서의 생산은 행성의 윤리를 요구한다. 그러나 이것은 서열(序列) 50번째까지의 국가에 맞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세계화 또는 낡은 제국주의, 냉전적 부르주아지와 맞설 수 있는 세력!

그러나 그들의 소아병은 참담하다. 그들이 재배한 농수산물과 공산품을 광장에 쌓아놓고 불지른다. 그것은 신성모독이다.

오늘의 노동계급의 조직이 내보이는 집단이기주의는 부르주아지의 특화(特化)된 이기주의와 다를 바 없다.

 

나는 70년대 초 한 노동자의 분신자살로 시대를 알기 시작했다.

 

소유

소유란 늙은이에게 더 강한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는 젊은이들도 늙은이와 다를 바 없다.

일하지 않고 가지려 한다. 버리려 한다.

불교의 무소유는, 중세 기독교 수사들의 무소유는 인류가 좀더 소유의 의미를 연장시키는 소재가 될지 모른다.

 

강력(强力)

진리는 굳세지 않다

부드러워라

부드러워라.

 

욕망 2

불가결성이다

불가피성이다

이것 없이는 세계가 구성될 수 없다.

 

순결

두고 온 꽃.

 

질(質)

양(量)의 방(房)이다. 질은 양(量)이 함께 있을 때에만 질이다.

 

이성(理性)

이제 슬슬 이성의 막을 내릴 때가 되었네.

이성이란 지난 시대 천재들의 드라마였네. 저 몇십억의 민중은 이성이 누구의 사타구니인지도 모르고 있네.

 

아 20세기 중산층적 이성이여 가장 경멸할 대상이여. 오도가도 못하는 그 중산층이야말로 유토피아의 적이다.

 

반동

역사의 정체(停滯)에 기생하는 벌레들이여

 

리얼리티

비유에서 어서 돌아오라

허구에서 어서 돌아오라

영광스러운 성역(聖域)에서 어서 돌아오라

 

여기 진흙탕에 묻힌 네 어미의 해골이 있다.

 

현실

모순과 갈등의 구조물. 이 구조물 이외에는 내가 살 곳이 없다. 화성, 금성, 띠를 두른 토성에서는 아직 현실이 없다.

 

억압

해방의 기원(起源)이다.

 

종교

아 인간은 종교의 시대를 끝낼 수 없는가.

세계 최초의 여자 직업이

신에게 제사 지내는 무녀직(巫女職)이었다.

세계 최후의 여자 직업은

신을 내팽개친 여자의 무용(舞踊)이리라.

 

표상(表象)

나는 다만 형상!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표상!

 

공화국

공화국에는 세습이 없다! 관례(慣例)가 있을 뿐이다!

 

혁명

혁명은 성공하자마자 혁명이 아니다.

호치민과 게바라는 그 때문에 혁명가이다.

 

소설

인간의 밤에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낭만주의 소설과

사실주의 소설이 번갈아가며 있어야 한다.

 

신성(神聖)

인간정신의 승화된 위의(威儀) 그리고 일부분의 고전은 신성하다.

 

희생

역사는 다른 역사를 욕망한다. 거기에는 희생이 필수조건이다. 고대인은 유치했다. 제가 기르는 가축을 희생물로 바치거나 가난한 집의 아이를 희생물로 바쳤다.

자기자신이야말로 시대의 희생물이라는 사실을 늘 회피했다.

 

싸디즘

어디선가 비명이 들리는 저기압의 밤이 있다.

 

지혜

지혜는 후회이다.

 

성성(聖性)

유럽에서 고딕사원이 폭파되었다

남미에서 주교가 살해당했다

아프간 불상이 파괴된 뒤

아프간 이슬람 기도소가 폭파되었다

그래서 성스러움은 남아 있다

 

몇세기 뒤에 인간은 인간 이상이 될 것이다.

 

구세(救世)

현재의 고난을 견디기 위해서 미래를 담보한다.

불교 마이트레야(미륵)는 56억 7천만년 이상이 지나서야 이 세상을 한꺼번에 낙원으로 만들기 위해 온다 한다.

그러나 이 신앙은 고대 이래 당장의 민중봉기와 혁명의 이념이 되었다. 중국 명나라 주원장은 본래 거지로 떠돌던 승려였다가 이 신앙의 민중세력을 업고 정권을 잡았다. 잡은 뒤 미륵세력을 버렸다.

구세주는 한국 토속신앙에도 남해진인(南海眞人)의 도래(到來)에 반영된다.

유태교의 구세주는 아직 오지 않고 기독교는 천년왕국이 언젠가 실현될 것을 믿고 있다. 그러나 예수가 구세주라 하더라도 그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건강

전쟁과 기아에 시달리는 지역말고는 세계는 건강만을 추구한다. 건강은 인간의 정신과 반비례한다. 하나의 병을 친구로 사귈 필요가 있다.

 

과학

나는 과학이 생태·환경·생명의 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과학은 오히려 더 필요하다. 과학의 과학 말이다.

 

감정

인간을 인간적이게 하는 힘이다

인간을 생명적이게 하는 힘이다

 

감정–인간의 가장 높은 가치.

 

일부일처제에서 성은 윤리이다.

현대사회에서 성은 자연이다.

 

특이성

점이 없는 얼굴에 점을 찍다.

 

사회주의

여전히 내일을 꿈꾼다

반자본제가 아니라

비자본제의 사회를 위해서.

 

사회주의–관계의 총체.

 

고독

고독은 인간에게 남겨진 유일한 육친이다.

 

주권

계승되는 자아.

 

광경(光景)

태양 아래 본연(本然)의 얼굴이 나타난다. 이 광경은 경(景)의 동기를 모른다.

 

기능

기능주의와 개량주의는 비겁하지 않다.

지렁이의 기능을 보라. 그의 동작을 보고 그의 드문 울음소리를 들어라.

 

에너지(力)

진정한 예술은 꿈의 예술이기보다 힘의 예술이다.

진정한 정치는 힘의 정치이기보다 꿈의 정치이다.

문(文)과 무(武)가 형제화되는 나라가 힘의 나라이다.

 

형식

내용에 대해 형식이 의존적일수록 형식의 자율성이 방해받는다. 형식은 율동이다. 내용은 형식의 당위를 받아들일 수 없는 과거이고 형식은 그 현재이다.

형식과 내용의 불화(不和)가 둘을 발전시킨다.

 

우애(友愛)

친구의 죽음을 대신해서 먼저 세상을 떠난 우정이 있다!

은사(恩師)의 교육보다 더 위에 있는 친구와의 나눔이 진리이다. 사캬(석가)는 제자들을 벗이라 불렀다. 나는 이제야 겨우 친구 몇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60세 이후에야.

 

미래

너무 많이 미래에 내맡겼구나.

미지의 미래야말로

얼마나 나를 도취하게 하고 얼마나 나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는가.

 

천재

우주의 미아(迷兒)이다.

 

대량학살

인간의 사랑이란 야만과 야만 사이의 협곡이다.

그 계곡 저쪽에 학살당한 유골들이 매장되어 있다. 그것을 인간들은 우라늄 혹은 다이아몬드 또는 금광(金鑛)이라 한다.

아우슈비츠, 시베리아, 아르헨띠나, 그리고 한국의 제주도와 광주.

 

영광

영광은 친부가 아니라 의붓아비 같다.

 

쎈스

십대 소녀의 쎈스

칠십대 노파의 쎈스

어떻게 다를까?

 

은총

은총을 믿는 자에게 은총이 있다. 은총은 이기주의다.

 

위대함

물러날 때와 죽을 때를 아는 행복이 위대함인지 몰라.

 

전쟁

인류사는 전쟁사이다. 전쟁과 기아·질병이 지구상의 인류를 조절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전쟁은 본질적으로 비인간적이다. 방어전만이 성전(聖戰)이다. 십자군 원정이야말로 가장 저주받은 전쟁이었다.

 

조화

세계를 존속시키는 음악.

 

우연

만약 신이 있다면 그것이 우연이다.

 

증오

어느 시대는 증오가 더 진실이었다, 사랑보다.

 

영웅

왜 보나빠르뜨가 영웅인가. 도대체 세상이 어리석구나.

 

역사

역사란 기억의 정치이자 진실의 묘지이다. 역사와의 대화는 끝내 독백이다. 다행인 것은 오직 역사 속에서 그대 상상력은 자라나고 있다.

 

인간

인간을 정의하지 말자. 인간은 개념화가 불가능하다.

 

명예

생애를 통해서 하나의 명예가 기록되어야 한다.

자기부정으로서의 명예 말이다.

 

휴머니즘

20세기 후반 한국에서는, 낡은 것이 휴머니즘이었다. 또한 21세기 전반 한국에서는 가장 새로운 것이 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휴머니즘이다. 그것을 뉴 휴머니즘이라고 명명(命名)하지 말아야 한다.

직립인간의 박애(博愛)는 해롭지 않다.

 

인류

지구 위의 한 시기 주인.

 

히스테리

현대사회의 일상적인 자기표현.

 

사상

얼마나 황홀했던가.

얼마나 환멸이었던가.

얼마나 숭고했던가.

얼마나 공허했던가.

 

관념론

독일 관념론만이 관념론이 아니다. 관념론은 세계 도시, 세계의 오지에서도 존속되어왔다. 그것은 반드시 있어야 할 인간의 장식이다. 관념이든 관념론이든.

 

이데올로기

다른 지역을 제외한다.

한반도에서는 이데올로기가 인간에게 파멸을 초래하고 민족에게 분열을 만들어냈다.

 

전략

전략은 각 전술의 지휘자가 아니다.

전략은 각 전술들의 총칭이다.

다만 한번쯤 전략은 전술들을 무시해버린다.

 

구조(構造)

집. 격자(格子)소설. 태양계의 운행. 비행기가 지나간 뒤의 하얀 비행운. 중국의 만리장성. 망명중에 만든 빅또르 위고 제작의 책상과 걸상. 아침 거미줄. 19세기 이전까지 수시로 바뀌어진 국경선. 아기의 이빨들.

 

전복

고대는 이십대가 나라를 세웠다.

이십대가 정복했다.

이십대가 한 체제를 전복했다.

 

노인은 전복할 수 없다. 노인의 추억은 반동이다.

 

숭고

아 그 롱기누스의 숭고!

진리! 진리가 없다는 선언!

 

* 롱기누스: AD 1세기 로마제국에 산 그리스 비평가.

 

실체

실체는 허구를 염원한다

실체는 추상을 동경한다

 

실체는 실체를 떠나려는 욕망이다.

 

주체

제3세계는 주체가 되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주체라는 언어가 범람했다.

제3세계는 객체였다. 그래서 객체라는 언어가 가장 저주스러웠다.

그러나 객체야말로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이며 주체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씨스템

경계하라. 씨스템은 편안하다. 나 자신도 이미 씨스템의 부품(部品)이다.

 

터부(taboo)

인간은 하나하나 금기를 깨어버리며 오늘에 이르렀다. 아직도 그것들은 남아 있다.

하지만 그것을 다 깨고 나면 할 일이 없지 않은가.

 

침범

미국의 세계주의는 본질적으로 침략으로 실현되고 있다. 미국 노인들 가운데는 침략을 마친 치매들도 적지 않다. 뉴욕 맨해턴 쎈트럴 파크에 가보아라. 거기 벤치에 앉아 있는 노인들의 무능을 보아라. 지난날의 침략자들이다.

 

기술

모든 인문(人文)들이여 기술을 멸시하지 말라. 그대들이 기술을 멸시한 벌을 지금 받기 시작하지 않느냐

호모 싸피엔스는 호모 파베르와 동시진행하고 있다.

 

테러리즘

무지막지한 테러리즘은 테러리즘이 아니다. 아프간과 팔레스타인 자치구.

그러나 허리에 작은 수제품 폭탄을 매고 달려가는 팔레스타인 소년은 테러리스트이다!

 

시(時)

내가 태어날 때 받은 유산이다

나는 그 유산을 벌써 다 써버렸다

 

나는 남의 시간을 빌려쓰고 있다. 나는 시간의 극빈자다.

 

공포

이상한 일이다. 공포 속에도 희망이 있었다.

1980년 육군 교도소에서 나는 공포 속에 갇혀 있었다.

1997년 히말라야 북벽 6500미터쯤에서 공포 속에 있었다.

희망이 거기 태어나고 있었다.

 

전체주의

전체주의에는 지배자가 있고 피지배자가 없다.

 

관용

일류사회가 쉽게 실현해보지 못한 가치이다. 앞으로도 실현되기 어려운 가치이다. 아니, 관용이란 말 자체가 배타적인 것이다.

 

전통

나는 조상의 딸이 아니라 미래의 어머니이다.

나는 전통의 적자(嫡子)보다 창조의 고아가 되고 싶다.

 

노동

4천년 전의 이집트 노동 이래 노동은 신성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노동은 신성한 인간행위로 되는 시대가 와야 한다.

인간의 조건으로서의 노동.

 

초월성

인식과 경험을 뛰어넘어라

내재성을 뛰어넘어라

그러나 두 날개에

인식과 경험을 달고 날아올라라

우울한 영혼아.

 

폭정

세계사 대부분은 폭정의 역사다. 누가 역사를 신성하다 하는가.

 

통일

나는 변증법적 통일보다 다른 통일을 원한다.

한국에서는 통일이 독립이 아니라 연합의 시작이다. 심지어는 중국과 일본과도 가능한 연합 말이다.

 

보편

영원히 있어야 할 세계이다.

그러나 이것이

각 지역의 특수성에 대한 야만이라면 그 보편세계는 변화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보편은 각 특수성들의 커다란 포옹이다.

 

마모

바위도 닳아가고 있다.

세계도 닳아가고 있다.

 

유토피아

그 시대

그 사회는 언제나 새로운 연인을 꿈꾼다.

 

대자본가보다 중산층이 더 현실에 유착되었다. 그들에게는 지금이 그럭저럭 사이비 유토피아인 것이다.

 

가치

가치는 관계의 빛이다. 절대가치는 어둠이다.

 

진실

나는 진리보다 진실을 지지한다.

 

미덕

미덕이 많은 나라에서 나는 연거푸 하품이 나온다.

 

악덕

미덕이 있는 곳에 악덕이 있다. 왜냐하면 둘은 쌍두사(雙頭蛇)이기 때문이다.

 

공허

정상에 올라왔다. 정상에는 무엇이 있는가. 공허가 있다. 얼마나 찬란한 공허인가.

 

생명

왜 20세기 후반부터 생명을 말하는가. 이제 사멸(死滅)도 말하라.

나는 생명주의를 혐오한다. 하지만 인간과 인간 이외의 모든 생명에 대한 평등을 앞장서서 외치고 싶다.

 

폭력

나에게도 나의 시에도 폭력이 있다.

 

의지

의지만 찬양하지 말라

의지와 감정을

함께 찬양하라

 

아 약소민족의 비겁한 감정들도 찬양하라.

 

투시

과거를 투시하지 말라

현재를 투시하지 말라

미래를 투시하지 말라

 

그대의 눈앞에는

또하나의 렌즈가 있어야 한다

 

투시의 횡포로 시를 죽이지 말라. 눈 감아라.

 

*나는 이 콘셉조사에 ‘인문’이 없음에 실망했다. 오늘의 인문은 거의 임종(臨終)상태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