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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

 

노무현정부의 출범, 그 의의와 과제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 hongsh@hani.co.kr

박태견 프레시안 편집국장 tgpark@pressian.com

유재건 본지 편집위원, 부산대 사학과 교수 jkyoo@pusan.ac.kr

 

 

때: 2003년 1월 18일 곳: 창작과비평사 회의실

 

 

유재건  반갑습니다. 바쁘신데 참석해주신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 지난해 12월의 대통령선거로 새로운 노무현정부가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맞춰 이번 좌담은 대선 결과 드러난 현실의 상황을 전체적으로 점검하면서 한국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랄까, 차후의 과제를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마련됐습니다. 아시다시피 지난 한해 한국사회는 놀랄 만한 경험을 했습니다. 국민의 주목을 끈 민주당 국민경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월드컵 응원열기, 두 여중생의 죽음을 추모하는 촛불시위, 그리고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 당선 등 1년 전 이맘때에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지요. 한국사회의 역동성이랄까 활력 같은 것을 거듭 확인하게 된 한해였지 않나 싶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낡은 패러다임이 무너지면서 냉전적인 사고나 권위주의 문화가 약화되고 사회 전반의 세력교체와 세대교체가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이번 대선만 하더라도 선거풍토가 많이 달라져서 국민참여형 선거혁명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까? 흔히 이번 선거에서는 세대대결이라든가 지역주의, 이념대립, 다양한 매체간 갈등, 더 나아가서 남북관계나 반미감정 같은 것들이 어우러져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데, 대선을 보면서 느낀 소감부터 이야기해볼까요?

 

 

대선, 피플 파워에 의한 대규모 드라마

 

 

박태견  

朴太堅 지금 조·중·동이 갖고 있는 74%의 시장점유율은 당장은 어마어마한 것이지만 시대정신에 계속 역행한다면 그 미래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지적하신 대로 이번 대선은 역대 어느 선거보다도 극적인 커다란 사건들이 많았고, 그 결과로 새로운 역학관계가 성립된 것 같습니다. 이전에는 유권자들이 최종 투표행위에만 참여했지 정치행위에 참여한 적은 거의 없었지요. 반면에 이번 선거는 국민경선이라는 참여장치가 작동됐고, 그 과정에서 당내 기반이 없던 노무현 후보가 선두에 올라서는, 정치권에 대한 반란이 시작됐어요. 그런데 노후보가 한때 정치적 실수를 했는데 양김으로 대표되는 정치세력과 손을 잡고 굳히기를 하려 한 것이죠. 그 결과 60%에 달하던 지지율이 바로 10%대로 급락할 정도로 국민의 호된 심판을 받았어요. 국민경선의 에너지가 또 한번 표출된 것은 후보단일화 때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국민들은 어떤 변화를 이뤄내야 한다, 그러려면 힘을 모아야 한다는 압력을 가했습니다. 그 힘이 결집되면서 후보단일을 성사시켜냈고, 이후 대선 때까지 이어지면서 박빙의 결과지만 또 한차례 새로운 세력이 집권하는 일련의 대규모 드라마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과정에서 주목할 것은 작년 1년 동안 나타난 새로운 형태의 피플 파워(people power)인데요. 우리나라에서 피플 파워가 1960년 4월혁명, 80년대 초 민주화의 봄, 그리고 1987년도 등 몇차례 등장하지 않았습니까? 이번에 표출된 파워는 과거와 맥을 같이하는 역사적 정통성을 가지면서도 세대교체적인 측면이 있고, 또 탈냉전적 사고를 기초로 하면서 자발성이 굉장히 강했어요. 그리고 아주 창의적인 모습을 드러냈고 이 과정에서 소위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기술적 혁명과 결합된, 새로운 참여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 아닌가 합니다.

 

 

 

홍세화  

洪世和 학벌구조는 아이들을 일찍부터 질곡에 몰아넣을 뿐만 아니라 국가경쟁력 면에서도 아주 떨어지는 것이니까 혁명적 차원의 개혁이 요구된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27년 만에 투표를 했어요.(웃음) 6월의 지방선거와 12월의 대선 때 투표했습니다. 군대생활할 때 유신 찬반투표를 했던 기억이 있는데 정말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어요. 1975년 초의 유신 찬반투표란 말 그대로 박정희 ‘유신체제’의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였는데, 1973년10월 대학가에서 유신 반대운동이 일어나자 그 움직임에 쐐기를 박기 위해 박정희가 국민을 동원한 것이었지요. 기억이 분명치 않은데 아마 70%가 넘는 찬성표가 나왔을 거예요. 그때 반대표를 찍고 투표장을 나서는데 인사계가 제 뒤통수에 대고 “빨갱이보다 더 지독한 새끼”라고 외치더군요. 그 소리는 지금도 귀에 쟁쟁하게 남아 있습니다. 200명 가까운 부대원 중에 일곱 명은 몇달 동안 외박, 외출이 금지되었지요. 이번에 투표장으로 가는 길에 권영길 후보가 웃고 있는 선거벽보판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는데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또 12월 7일과 14일의 촛불시위에 참석했는데 그 현장에서 느낀 것도 격세지감이었습니다. 반세기 동안 이어져온 냉전이 무너지고 있다는 느낌이었지요. 저 같은 사람도 반미라든지 미군철수 같은 목소리를 내려면 자기검열을 해야 하는데, 아직 작은 목소리에 지나지 않지만 자기검열 없이 그런 얘기를 쉽게 할 수 있는 탈냉전적인 젊은이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이번 대선에서 탈냉전과 반권위를 보인 세력이 등장한 점, 기득권세력의 중심이 정치부문에서는 헤게모니를 잃어버리고 시대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점에는 이런 세대간의 간극이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특히 저는 젊은이들의 반권위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젊은이들에게 옛 권위는 사라지고 새로운 권위는 아직 정립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데, 이 점은 대중소비사회의 수혜자로서 전통적 권위에 반기를 들고 일어났던 서구의 68세대가 좌파이념으로 무장했던 점과 차별성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요즘 젊은이들의 반권위는 교육의 효과라기보다는 사회·경제적인 물적 토대가 뒷받침해준 것이 아닌가, 특히 하나 혹은 둘만 낳다보니까 가족 내에서 위함을 받고 자라서 문화적으로 기존 권위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점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아무튼 반권위적이고 탈냉전적인 요소들이 이번 대선을 계기로 정치적으로 표현된 것이 아닌가 해요. 촛불시위도 대선 직전인 12월 7일과 14일에 가장 많이 모였는데, 그것은 대선을 변화의 계기로 보았다는 것이거든요. 분단체제에서 만들어진 냉전적 틀이 이제 부서지고 있고, 균열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 이번 대선이 갖고 있는 중요한 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유재건  

柳在建 부시정권에 영합하는 세력이 우리 사회의 불안요소가 되었고, 실제 경제나 노사관계 같은 면에서도 이회창 후보가 좀 불안하게 보이는 점이 있었어요.

젊은 세대의 정치참여가 두드러진 점을 두고 언론에서는 세대갈등이니 세대대결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설명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나이만이 아니고, 민주화를 비롯한 현실적 여건에서 받은 영향 내지 새로운 경험이 있지 않나 싶어요. 이십대의 투표율이 47.5% 정도로 낮아서 적극 참여자와 불참자로 갈린 상황입니다. 또 지난 1997년 대선 때는 사십대에서 이회창 후보가 상당히 앞섰는데 이번에는 대등했고요. 그러니까 유권자수가 가장 많은 삼십대에서 노후보가 상당히 앞서고, 사십대에서는 대등해지는 가운데 이십대 일부가 가세한 형국을 보면, 역시 6월항쟁이라는 민주화 경험의 세대와 ‘붉은악마’라든가 인터넷 세대가 결합해서 새로운 사고방식을 적극 표출한 점이 중요하다고 봐요. 그저 세대대결을 강조하는 견해에는 찬성할 수가 없습니다.

 

박태견  지금 말씀하셨지만 삼사십대라면 386세대를 말하고, 6월항쟁을 경험한 세대들이죠. 또 사십대 중반은 광주사태를 경험한 세대로 광주사태 과정에서 미국을 다시 보게 되었어요. 소위 386세대라고 불리는 이들은 80년대에 그 문제를 공공연하게 토론하고 ‘광장’에서 몸으로 느꼈어요. 이번 대선에서 사십대 초반은 노무현 지지율이 높았고 사십대 후반은 이회창 지지율이 높았는데, 사십대에서 이런 차별성이 보이는 것은 역사적 경험과 맥을 같이하는 측면이 있다고 보입니다.

홍세화  저는 붉은악마를 시민의 광장이라는 개념으로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것은 월드컵을 계기로 일상적 억압에서 일시적으로나마 일탈하려는 욕구들이 합쳐져 광장의 ‘경험’으로 나타난 것인데, 미선·효순양 사건을 통해서, 또 미군에 대한 무죄평결로 인해 고양되면서 시민의 광장 경험으로 발전해나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거기에 IMF 위기 이후 한국경제가 세계경제 속에 편입되면서 그것을 주도하는 것이 역시 미국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어려움에 처했던 민중이 미국을 다시 보게 된 점도 가미돼 있지 않은가 해요. 그것이 동계올림픽의 오노 사건, 여중생 사망사건과 겹쳐지면서 다시금 미국의 실체를 확인하게 되고, 냉전의식에서 벗어나도록 했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특히 부시의 행보가 그런 점을 촉진시킨 면도 있어요. 부시가 9·11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을 일방적인 전쟁놀이터로 몰아가는 것을 보면서 남북이 공동운명이라는 인식을 하게 되고 한미공조라는 의식이 허물어지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부시정권에 영합하는 세력은 우리 사회의 불안요소?

 

유재건  그렇습니다. 그런데 부시 대통령이 역설적으로 노후보 당선에 큰 공을 세우게 된 건 한반도의 객관적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이지요. 6·15 남북정상회담 후 남북화해가 진전되면서 안보의 개념이 바뀌어가는 것, 이건 정말 중대한 사실로 보입니다. 과거에 저는 언론의 안보상업주의니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 처음엔 그게 뭐 장사가 될까 하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그게 잘 통했지요. 북한이 당면한 위협세력이었고, 거기에다 중국·러시아와 같은 공산권과 동맹관계에 있었을 때 안정을 바라는 폭넓은 층의 사람들에게 충분히 통할 수 있었던 거죠. 그런데 남북관계가 호전되면서 부시가 북한을 핵 선제공격할 수 있다고 하니까, 이제는 부시정부가 우리나라의 안보, 더 나아가서는 경제에 제일 위해를 주는 집단이 된 겁니다. 안보가 위태로워지면 우리나라 주식의 36%를 갖고 있는 외국인부터 빠져나가고 주식시장도 붕괴될 테니까요. 선거 개표방송을 보다가 저도 모르게 감탄사가 절로 나온 대목이 있었는데, 경기도 연천에서 노무현 후보가 앞서 갈 때였어요. 연천은 전형적인 군사지역이지 않습니까? 나중에 보니 강원도 전체에서 이회창 후보가 11% 정도 앞섰는데, 철원·양구·인제 같은 강원 북부에서는 노후보가 이겼더군요. 이제는 군사지역의 주민들도 긴장완화가 자기 삶에 도움이 된다고 본 겁니다. 이렇게 보면 이번 대선을 안정이냐 개혁이냐는 구도에서 개혁이 이겼다고 보는 것도 일면적이에요. 부시정권에 영합하는 세력이 우리 사회의 불안요소가 되었고, 실제 경제나 노사관계 같은 면에서도 이회창 후보가 좀 불안하게 보이는 점이 있었어요. 이미 시대의 패러다임이 바뀌어가는 상황에서 낡은 방식은 전체적으로 우리 삶의 안정에 도움이 안된다고 판단했다는 거지요. 선거 전에 증시의 투자분석가들에게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노후보 지지율이 더 높았다는 것도 그 징표가 아닐까 싶습니다.

박태견  부시정권은 클린턴정권과는 분명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클린턴정권은 금융자본이라든지 첨단산업의 이해를 상당히 반영했고, IMF 구제금융 초기에 한국에 시장개방을 강하게 요구했어요. 그 과정에서 외국자본이 많은 돈을 벌었지요. 금융산업이라든지 미국이 경쟁력을 갖고 있는 산업이 계속 자본을 축적하려 할 때 전쟁은 정반대의 악재이기 때문에 클린턴정권은 한반도 평화의 필요성에 대해서 상당히 인정을 했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이 가능했던 것은 그런 미국의 용인이 있었기 때문이고요. 그런데 부시정권이 출현하면서 사정이 달라졌어요. 부시정권은 아시다시피 군수와 석유 자본의 이해 위에서 세워진 정권이고, 그러다보니 평화보다는 일정한 긴장상태가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어요. 한반도가 평화지대가 된다는 것은 부시정권에는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무기를 소비해주는 한반도 주변 지역이라는 시장을 잃고 군수산업의 기반이 붕괴되는 것을 의미하죠. 이처럼 김대중정부 아래서 우리는 미국과 관련된 두 측면의 경험을 다 해본 것 같아요. 그래서 김대중정부 5년 동안 미국이라는 나라를 정확하게 보게 되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번 선거운동 후반기에 뉴욕을 중심으로 하는 월가에서는 노무현 후보를 거의 공식적으로 지지하지 않았습니까? 블룸버그(Bloomberg)통신은 대선 이틀 전이라는 아주 예민한 싯점에서 자신들은 이회창보다 노무현을 지지한다는 공식적인 컬럼을 내보냈어요. 여의도 금융가에서도 압도적으로 노무현이 낫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통념상 이회창 후보가 재계의 이해를 대변하고 노후보는 상대적으로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한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실제로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갈등이라는 점에서 보면 이후보가 너무 구산업 또는 재벌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미 한국경제에서 재벌은 시장 내에서도 장애요소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홍세화  선거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구성원들의 의식이 많이 바뀐 점이에요. 미국을 다시 보게 되고, 냉전 이데올로기가 젊은 세대들에게는 잘 먹히지 않고, 특히 악의 축이라든지 핵 선제공격 발언 등을 통해 미국이 더 위험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어요. 실제로 대선 1주일 전의 여론조사에서도 북한이 우리나라의 안보에 제일 위험한 요소가 아니라는 의견이 60% 이상이었어요. 또 65% 정도는 촛불시위, 여중생 사건이 대선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고 있고요. 그것과 맞물리는 것인데 노무현 당선자가 2.3% 앞선 것에는 정몽준씨의 지지철회로 권영길 지지표가 노무현 지지표로 이동한 덕을 본 측면이 있어요. 김대중정부의 경우에는 DJP 연합으로 김종필이라는 혹을 갖고 있어야 했는데, 이번에는 정몽준이라는 혹이 스스로 떨어져나간 셈이 됐고 그 몫을 권영길 지지표가 어느정도 담당해줬다는 것은 그만큼 이 사회의 의식구조가 바뀐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해요. 또 권영길 후보가 TV 대선토론에 나감으로써 노무현 후보가 급진이나 과격에서 중도로 자리가 잡혔는데, 그런 점도 이미지 상으로 사회구성원들에게 매우 큰 영향을 주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일부에서는 아직 좌파적이다, 사회주의적이다 따위의 얘기를 하지만 이젠 잘 먹혀 들어가지 않는 구도가 된 것 같아요.

 

 

영호남 몰표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유재건  박빙의 승부이긴 했지만, 아무튼 과거의 정치문화랄까 정치문법에서는 한나라당이 도저히 지려야 질 수 없는 정황이었습니다. 국회의원 숫자도 그렇지만 돈, 조직, 게다가 북풍 같은 것들이 과거엔 판을 다 결정해버렸잖아요. 결국 객관적 정황이 바뀌면서 낡은 틀이 많이 깨지고 있다는 것인데, 그 낡은 구조를 지탱하는 또다른 축이 지역주의 아닙니까? 이번에는 지역주의가 완화된 것 같기도 하고, 그런가 하면 영호남 몰표현상은 여전한 것 같기도 한데, 97년 대선 상황과 비슷한 건지 아니면 다른 건지, 어떻게 봐야 할까요?

박태견  이번 대선에서 나타난 몰표현상을 놓고 아직도 지역주의가 살아 있다는 평가를 하기도 하는데 호남지역에서 드러난 일련의 지지율 변화를 보면 그것이 과거와 같은 맹목적 지역주의는 아닌 것 같습니다. 경선이 시작되기 전에는 이인제 후보가 가장 높은 지지율을 얻었다가 국민경선 과정에서는 영남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후보가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소위 ‘노풍’이 광주에서 시작된 것 아닙니까? 그런데 노무현 후보가 양김과 손을 잡는다고 했을 때 지지율이 급속히 낮아졌고 대신에 미지의 인물이지만 변화의 가능성 쪽으로 표가 몰리면서 정몽준 지지율이 앞서던 때가 있었어요. 호남에서 이렇게 지지후보가 이동하는 현상을 보면 단순히 지역주의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또다른 측면에서 이는 높은 정치의식의 다른 표현이 아닌가 합니다. 이 지역은 변화를 바라는 동시에 DJ정부에 굉장히 실망했고, 3홍 비리라는 것이 터졌을 때 가장 심한 배신감을 느꼈던 지역입니다. 실제로 그 당시 목포시장 선거 같은 큰 지역선거에서 김홍일씨가 지원하는 세력은 다 깨져버릴 정도였으니까요.

홍세화  저는 호남사람들이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를 과연 찍어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지역주의의 문제를 떠나서 광주항쟁의 가해세력이 아직 잔존해 있는 한나라당이고 그 후보인데 말이죠. 이회창의 한나라당은 김대중정부 5년 동안 무슨 일만 있으면 대구나 부산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회창 후보는 호남사람들을 안심시킬 만한, 과거의 기억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할 만한 제스처를 전혀 취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역주의도 민족주의와 마찬가지로 공격적이거나 팽창적인 것이 있고 저항적이랄까 수동적인 것이 있다고 보는데, 호남의 그것은 저항성을 갖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반면에 영남에서 이회창 후보 지지율이 70% 가까이 나온 것도 어떤 점에서 보면 몰표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요. 왜냐하면 산업의 지역적 편중에 의해서 호남지방에는 호남사람밖에 없지만 영남지방엔 다른 지역 출신이 많단 말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영남에도 강고한 지역주의가 남아 있다는 것이죠. 지역주의가 완전히 해소됐다고 보기에는 조금 이른 것 같아요. 앞으로 5년 동안은 그것이 희석돼가는 과정일 수 있겠죠.

유재건  지역주의적 성격이 남아 있지만, 성격이 다르다는 데 공감합니다. 사실 한나라당은 김대중 때리기를 통해서 비호남표를 결집하려 했고, 호남에서 노후보의 몰표가 나오는 쪽이 차라리 유리하다고 생각해 그 지역을 방치한 면도 있어요. 호남에서 김대통령에 대한 애정이 예전 같지 않더라도 김대중 때리기를 전략으로 삼은 한나라당에 대해서는 위기의식이 발동한 것 같습니다. 결국 그런 비호남표 결집 전략은 충청과 수도권은 물론이고 강원도에서도 그리 큰 효과를 보지 못했는데, 이것을 볼 때 지역주의는 완화된 측면이 있어요. 이회창 후보를 지지한 이인제 의원의 지역구인 충남 논산에서 노무현 후보가 2배 정도 이긴 것도 놀랍구요. 사실 지역주의의 폐해라면 그 때문에 정당간의 이념이나 정책의 차이가 무의미해지고, 또 계급이나 수도권·지방의 격차 같은 실질적인 갈등구조가 은폐되는 거잖아요. 이는 이제껏 기득권층에게는 지배체제를 유지하는 데 아주 유리한 보완물이 되어온 셈인데, 그런 의미에서의 지역주의는 약화되고 있다고 봅니다.

박태견  영남에서의 몰표현상을 표면적으로만 보면 과거 지역주의가 살아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DJ정부의 잘못된 인사정책이 이를 초래한 측면이 강합니다. DJ정부 출범시 특정지역 인사들을 중심으로 한 권력재편을 해서 소외된 지역의 박탈감이 굉장히 컸다고 봅니다. 그리하여 영남 쪽 같은 데서 “봐라, 너희들도 똑같은 것 아니냐?”라고 하는 또하나의 지역적 소외감이 몰표현상으로 나타난 측면이 있다고 봐요.

유재건  하지만 김영삼정부가 들어서서 부산이 그리 좋아진 것도 없고, 또 김대중정부 때 호남이 좋아진 것도 아니잖아요. 두 번 겪었으니까 이젠 학습효과도 있을 법한데, 인사라는 것이 그 지역 출신의 서울 엘리뜨들에게나 중요한 거 아닙니까?

홍세화  호남사람들은 김대중정부가 들어섰다고 해서 하나도 이득을 본 점이 없는데 영남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죠. 제가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어요. 영남 쪽은 80년대에 벌써 길이 많이 뚫렸는데 호남지방엔 90년대 후반이나 2000년대에 들어서서 길을 포장했다는 거예요. 영남사람들이 호남지방에 가서 길이 새로 포장된 것을 보고 “이것 봐라, 여기는 길도 새로 뚫어주는구나. 우리는 20년 가까이 돼 길도 꾸부렁꾸부렁하고 그런데” 한다는 것인데, 이런 얘기가 그대로 통한다는 거죠.

박태견  IMF 때문에 그런 측면이 더한 것 같습니다. IMF 위기를 겪으면서 중산층이 붕괴했고 지방으로 가면서 피해가 더 컸거든요. 그 과정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고 직업의 안정성이 약화되고 계약직이 많이 늘어났지 않습니까? 그래서 뭔가 한풀이 대상이 있어야 하는데 DJ정부가 그 표적이 된 게 아닌가 합니다. 우리가 더 어려워진 이유는 저 정부가 들어섰기 때문이다라는 식으로요. 부산 쪽으로 가면 살기 어려워졌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그것은 DJ정부가 들어섰기 때문이 아니라 IMF가 터졌기 때문이고 사실 YS정권이 원인제공자 아닙니까? DJ정부는 뒤에 그걸 수습한 세력이고 말입니다. IMF 이후 사회적 안정성이 파괴된 것이 지역주의의 한 요인이 된 듯하지만 지역주의는 빠르게 완화될 수 있다고 봐요. 3김시대가 끝났다는 것은 상당히 큰 의미가 있어요. 앞으로 새 정부가 인사에서도 제대로 탕평책을 쓰고 무엇보다도 지방의 소외감을 풀려는 노력들을 많이 해야 한다고 봅니다.

 

 

노무현 지지와 민노당 지지 사이

 

유재건  지역주의가 완화될 경우, 이념이나 계급문제 같은 것이 더 부상할 수 있을 텐데요. 마침 이번에 민주노동당이 크게 약진한 것 같습니다. 이번 선거로 진보적 대중정당이 제도권에 정착했고 앞으로의 가능성도 상당히 보여줬습니다. 만약 정몽준의 폭탄선언만 아니었으면 5% 이상은 득표했을 것이라고 예상들 하고요.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노후보 지지와 권영길 후보 지지 사이에서 갈등했던 사람들이 꽤 많았던 것 같은데, 도대체 우리의 정치지형이 어떻게 되어 있기에 그런 사람들이 많을까요? 홍선생님도 선거 당일엔 고민 좀 하셨죠?

홍세화  한 2초 동안 했습니다.(웃음) 그리고 소신대로 4번을 꽉 눌렀습니다. 그래도 2초 동안 고민을 했어요.

유재건  권영길 후보 쪽에서는 노후보와 이후보를 보수라고 하고 본인을 진보라고 하는데, 민노당으로서는 진보와 보수의 문제, 자신의 차별성을 제기할 만하다고 봅니다. 사실 우리의 정치지형은 심하게 왜곡되어 있잖아요? 분단체제 아래서 진보정당의 출현이 가로막히면서 계급정치는 지체되고 정치구조는 후진성을 못 면했다고 볼 수 있고요. 하지만 앞으로는 진보 대 보수라는 이념적 구도, 혹은 선진국형 정치구도로 갈 것이라는 이야기도 하는데, 그렇게 될까요?

박태견  큰 흐름은 그렇게 간다고 보면서도 접근방식은 조금 달리하는데요. IMF를 겪으면서 우리 경제씨스템이 미국식으로 바뀌지 않았습니까? 이를테면 이윤의 극대화를 꾀하게 되면서 과거의 연공서열이나 종신고용 같은 씨스템이 파괴되고 비정규직의 숫자가 정규직보다 더 많아지는 등 고용형태가 굉장히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면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세력, 불안정해진 세력이 많아진 거죠. 이런 측면에서 그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해주고 보호해줘야 할 정치세력이 꼭 필요한데, 저는 민노당이 그런 역할을 해나가리라고 봅니다. 노당선자도 분명히 그런 계층을 감싸겠다고 했지만 정책 틀을 보면 DJ의 정책 틀을 승계하는 측면이 많습니다. 어제(2003. 1. 17)도 노당선자가 미국, 유럽 쪽의 상공인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한 연설이 CNN으로 전세계에 중계됐지 않습니까? 한국경제는 IMF를 겪으면서 이미 세계경제에 깊숙이 편입됐고, 상장된 주식의 36%를 외국계가 가지고 있고 특히 핵심기업들은 50% 이상을 쥐고 있습니다. 그리고 IMF를 겪으면서 내수시장이 많이 파괴되고 수출의존도가 높아졌습니다. 작년 말 우리나라의 무역의존도가 78%입니다. 그런데 일본이 수출을 많이 하는 나라이긴 하지만 무역의존도가 17%밖에 안됩니다. 미국도 20%밖에 안되지요. 두 나라는 내수시장에 의존하는 경제거든요. 그런데 우리 경제는 금융시장을 외국 투자자들이 거의 쥐고 있고, 해외에 물건을 팔아야 먹고살 수 있는 경제씨스템이다 보니까 나라를 통치하는 입장에서 보면 외국인 투자자를 안심시켜야 하고 그들의 요구를 수용해야 합니다. 이는 DJ정부의 부담이었고, 앞으로는 노당선자가 지게 될 부담인데, 그 틀을 깰 수는 없을 듯합니다. 이 과정에서 소외된 세력들, 즉 사회적 약자나 계약직으로 밀려난 사람들이 어디에 의존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앞으로 점점 커진다고 봐요. 민노당같이 분명한 정치적 컬러와 계급적 입장을 갖는 세력이 이들과 호흡을 같이 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해요. 우리 사회의 씨스템이 바뀌는 큰 흐름과 맞닿을 때 진보정당 그리고 계급정당으로서 민노당의 토대는 점점 넓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홍세화  저도 동감인데요. 권영길 후보가 첫 TV토론을 준비하면서 당원들에게 “이 자리에 나오기까지 50년을 기다려야 했다”고 말했답니다. 지역주의가 왜 기승을 부렸냐 하면 3김이 이념적으로 뚜렷한 차별성이 없으니까 지역으로 차별성을 드러내려 했기 때문이죠. 진보정당이 육성되는 만큼 지역주의는 수그러들 것으로 보여요. 지금까지의 정치구도나 철새 정치인들의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사익추구집단들의 연합이 막강했어요. 사익추구집단들이 헤게모니를 쥐면서 이름만 보수였을 뿐 보수(保守)할 것은 기득권밖에 없었던 이러한 구도가 반세기 이상 이어져온 것이 아닌가 해요. 친일세력이 친미사대주의로 탈바꿈하는 등 분단체제 속에서 반민족세력이 민족을 참칭하고, 조선·동아일보가 스스로를 민족지라고 말하게 되는 그런 구도가 이어져온 것이지요. 정치적인 측면에서 보면 극우 수구세력이 5년 전 김대중정부의 출현으로 일단 헤게모니를 빼앗겼고 이번에 노무현정권의 등장으로 급격히 쇠약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어요. 노무현정권은 공익을 목표로 하는 개혁정권이라고 말하지만 진보정당에서 보면 이제 진정한 의미의 보수정권으로 볼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기 때문에 이제 보수와 진보가 열리는 시발점으로 노무현정권을 대할 수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권영길 후보가 선거운동 기간에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똑같은 보수라는 점보다는 둘 사이의 차별성을 더 부각하길 바랐어요. 저는 수구-극우적인 사익추구집단과는 다른, 그래도 공익을 목표로 하는 새로운 보수세력으로 노무현과 노무현 지지세력들을 얘기할 수 있지 않은가 해요.

유재건  우리 사회가 보수·진보 정당구도란 기준에서 볼 때는 정치적 후진성을 보여주고 있지만, 저는 다른 면도 주목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일본의 지식인들이나 외국인들이 97년의 정권교체나 이번 선거를 보면서 감탄하고 심지어 부러워한다는 이야기를 간혹 들어요. 그런데 이것이 한국정치가 후진단계에서 자기들이 이미 도달한 정상단계로 이제 진입해온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것 같지는 않아요. 언뜻 보더라도 미국에서의 공화당·민주당 간의 정권교체는 말할 것도 없고, 유럽이나 일본의 사회주의 정당과 보수주의 정당 간의 정권교체보다도 우리나라가 열기랄까 치열성이 더 있고 역동적인 면이 더 있단 말이에요. 제 생각에 우리의 경우 이 정도의 정권교체로도 강고했던 지배체제의 균열이랄까, 사회세력의 교체 등 사회적 파장이 더 클 수 있고, 그들의 경우 보수와 진보가 권력을 교체하더라도 지배체제의 변화로는 잘 이어지지 않는 것 같아요. 한국의 정치지형이 후진적인 면모를 많이 보여주면서도 다른 한편에선 민중의 열망을 담아내는 선진성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다른 나라 지식인들이 감탄한다고 할 때 저는 이런 점 때문인 것 같거든요. 그래서 97년의 평화적 정권교체나 중도개혁을 내세우는 이번 노무현정권의 출범 같은 사건을 보수 내부의 권력교체로 보는 데 그치지 말고, 우리 현실에서는 거기에 민중적인 혹은 변혁적인 욕구를 담아내는 그 무엇이 있다는 점을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민주노동당이 노동, 환경, 여성 등 많은 정책부문에서 더 진보적이라는 걸 인정하더라도, 서구적 기준으로 노후보 지지를 보수라고 쉽게 단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박태견  저는 민노당이 역대 어느 선거에서보다도 더 좋은 여건을 가지고 이번 대선을 치렀다고 봐요. 그런데 자신의 뜻을 TV를 통해 널리 대중에게 알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6% 이상은 못 올라가고 머물렀던 점은 일정한 한계라고 봐요. 앞으로 민노당이 더 잘해야 할 점은 세밀하게 분석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 한 측면으로 중요한 공동의 전선이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협력하고, 다를 때는 확실하게 차별화하는 것인데, 그랬다면 대중들에게 훨씬 설득력이 있지 않았을까 해요. 우리 사회가 노무현정부를 단순한 신자유주의 세력으로만 보는 것은 아니잖아요? 물론 집권했을 때는 한계가 분명 있겠지만요. 앞으로 민노당은 한반도 냉전세력과의 대결이 필요할 때는 과감하게 공동전선에 서고, 노당선자가 계급적 입장에서 노동자와 다른 접근을 할 때는 분명한 차별화를 하면서 대중들에게 안정감을 줄 필요가 있어요. 저쪽은 보수, 우리는 진보라고만 하면서 안티세력으로 존재할 때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홍세화  전적으로 동감해요. 민주노동당의 당원인 저도 민노당이 노무현정권을 신자유주의자와 똑같고 한나라당과도 똑같다는 식으로 몰아붙이면서 자신의 차별성을 부각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개혁적 보수세력과 진보정당이 있다고 할 때, 극우-수구세력이 잦아드는 만큼 양자는 올라간다는 전체적인 구도에서 보아야 하는데, 항상 파이(π)를 서로 뺏는 관계로 보는 생각에 젖어 있었던 것 같아요. 워낙 극우 헤게모니가 작동해온 사회였기 때문에 다름의 관계를 항상 서로 부정하는 관계로 설정하는 습속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습니다. 그래서 저는 극복대상과 경쟁대상을 구별해야 한다는 얘기를 해왔어요. 경쟁대상이라는 것은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 아닙니까? 자신과 다르면 우선 부정해버리는 경향이 문제인데, 이 문제점은 물적 토대 위에 있는 보수세력보다 이념적 동질성을 확인하려 드는 진보정당에서 더 많이 나타날 수 있다고 봅니다. 사회당이 이번에 득표를 많이 못했는데, 진보정당이 그야말로 태동단계인데도 갈라져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그렇구요. 다름의 관계를 부정의 관계로 보는 데서 벗어나 사안에 따라서 특히 극복대상 앞에서는 경쟁대상끼리 연합하는 구분이 서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유재건  저도 민주노동당이 그런 방향을 취하는 멋진 야당이 되기를 정말 바랍니다.

홍세화  이번 대선을 계기로 정치개혁의 방향도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이제 상향식 공천이라든지 당비를 내는 진성당원 확보 등이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생겼는데, 저는 두 가지 과제를 더 제기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정당명부제와 비례대표제인데요. 헌법재판소에서 1인1표제 아래서의 비례대표제가 위헌판정을 받았으니까 안 고칠 수 없는 상황이죠. 그런데 과연 비례를 어떻게 할 것이냐, 독일식으로 할 것이냐 일본식으로 할 것이냐, 그리고 지역구 국회의원 수와 비례대표 국회의원 수를 몇 대 몇으로 할 것이냐란 문제가 남아 있어요. 현재의 독과점 형태를 깨려면 역시 새로운 정당의 진입장벽을 낮춰야 하고 독일처럼 1 대 1까지는 아니더라도 2 대 1 정도라도 비례대표로 나오게 해야 할 것 같은데 이 문제가 벽에 부딪힐 것 같아요. 어떤 방식으로든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두번째는 결선투표제입니다. 이번에 노당선자가 50% 가까운 지지를 얻었습니다만, 그래도 과반수 지지를 얻은 것과는 조금 다른 뉘앙스가 있는 것이거든요. 결선투표제가 지닌 장점은 일단 1차 투표에서 사회구성원들이 자기 마음대로 지지투표를 할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정치의식 지형이 어떻다 하는 것을 사표(死票) 의식 없이 알릴 수 있고요. 또 하나는 국정을 운영하는 대통령이라면 차선이라도 과반수 득표를 얻어야 자신의 의견을 펴나갈 수 있는 것이고요. 그런 점에서 결선투표제는 기어이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은 민주노동당에서 이탈표가 나와서가 아니라 정치구도 자체를 발전시키는 데도 기여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요.

유재건  그동안 정치학자들이 정치개혁에 대해서 이리저리 해야 한다는 얘기를 할 때마다 “그걸 누가 모르나? 하지만 현실에서 그것이 되나?” 하는 냉소가 일반적이었다고 보는데, 이번엔 정치과정 자체가 개혁의 방향을 제시해준 면이 있었던 것 같아요. 철새 정치인들을 끌어오고 돈을 지구당에 뿌리면 조직이 가동되고, 이게 표로 연결되는 낯익은 행태가 잘 안 먹혔다는 거죠. 철새 정치인들에 대한 심판을 보면서 한국 정치판에서 사필귀정이 이제 제대로 통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어요.

박태견  그런데도 그 낡은 공식이 깨졌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정치권에 많습니다. 그 사람들은 지금도 의회발 쿠데타라고 해서 ‘노무현이 6개월 하다가 북한문제 못 풀고 흔들리면 자민련 합치고 동교동계 등 소외되었던 사람들 끌어들이고 해서 의석수가 2/3가 되면 내각제개헌 해서 정권을 사실상 되찾아오자’ 하는 논의도 하는데, 저는 그런 논의들을 볼 때마다 이 사람들이 아직 변화를 모르는구나, 이 흐름에서 해법을 못 찾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김대중정부의 잘한 점과 못한 점

 

유재건  이번 노후보 당선의 최대 공로자는 김대통령이라는 농담도 있지요. 현 정권이 추진해온 정보화 사회, 인터넷 강국화 정책이 일등공신이라는 이야기인데요. 인터넷 인구가 2천5백만이 되면서 쌍방향성을 가진 인터넷 공간이 색깔론이나 이데올로기 공세를 차단하는 큰 역할을 했던 건 사실입니다. 더 나아가서 노무현정권의 탄생에는 김대중정권의 공적과 과오가 함께 작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특히 6·15 남북정상회담으로 남북화해의 흐름이 생긴데다 민주적 사회공간이 넓어진 게 노정권 탄생의 터전이 되었고, 그런가 하면 소위 3김정치라는 낡은 정치행태에다가 측근 비리, 부정부패, 이런 것들이 어우러져서 오히려 비주류로 보이는 노후보에게 유리했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현 정권 임기말에 장상, 장대환 등의 총리 인준청문회 때 소위 주류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자식 병역의혹부터 부동산 투기니 국적문제니 하는 것들에 골고루 연루됐다는 것이 밝혀졌죠. 그동안 엄청난 기득권에다 도덕적 우위까지 누리던 사람들의 이면이 계속 드러난 건데, 저는 김대통령이 이회창 후보의 약점을 계속 상기시켜 거부감 불러일으키려고 비슷한 약점 가진 사람들을 자꾸 내세우나 하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웃음) 그럴 리야 없겠고, 그만큼 우리 사회의 소위 주류집단이 부패해 있다는 것이겠죠. 아무튼 과거 김영삼정권이 마련한 정치공간 속에서 김대중정권이 탄생했듯이 김대중정권 없이 노후보가 대통령 되는 일이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김대중정권의 공과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지, 혹은 그 성격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것을 짚어보았으면 합니다. 작년만 하더라도 비리들이 속출하면서 실패한 정권이니 부패정권이니 하는 얘기들이 많았던 편이고, 제 주변에서는 남북화해는 잘했는데 내정은 엉망이었다는 말이 많던데, 과연 이것이 공정한 평가일까요?

박태견  김대중정부는 상당히 어려운 시기에 출범했습니다. 국가경제가 사실상 파괴된 싯점에서 경제씨스템을 복원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의지와는 상관없이 신자유주의를 도입할 수밖에 없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 결과 노동자층의 안정성이 훼손되고 부가 한쪽으로 집중되면서 사회적 박탈감이 더욱 심화되는 부정적 측면을 낳았지만, 다른 한 측면에서는 국제적 글로벌 스탠더드 확립 등의 과정에서 얻은 것도 많다고 봅니다. 과거의 씨스템에서는 오너라든지 재벌들이 마음대로 했는데, 시장이 개방되고 외국자본이 들어오면서 3〜4%의 자본을 갖고 전횡을 하던 오너들을 제약, 견제하는 주주자본주의 씨스템이 만들어졌다고 봅니다. 그랬기 때문에 경제활동인구들이 주식을 보유하든 금융거래를 하든 자기 목소리를 하나씩 찾아가는 게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부정적인 측면은 앵글로쌕슨 자본주의라는 철저한 수익 중심, 생산성 중심의 씨스템이 들어오면서 사회적 안정성 파괴가 빠르게 진행됐고 지역을 비롯한 각 부문에서 차별성이 심화됐는데 이는 앞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이고요.

제가 봤을 때 김대중정부의 제일 큰 업적은 한반도를 전쟁지대가 아닌 평화지대로 만들려는 노력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 과정에서 보수세력들은 퍼주기라고 공격도 했지만 이는 평화지대를 구축하기 위해서 들어가야 할 일정한 투자라고 봐요. 통일되기 20년 전부터 서독이 동독 쪽에 많은 경제적 지원을 했고 상호신뢰를 하나하나 회복해갔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정상회담이 우리 사회의 젊은 세대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들에게 신선하면서도 긍정적인 활력을 상당히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수구세력은 그런 것들을 상당히 위험하다고 비판들을 하죠. 그들은 전쟁도 안 겪어본 젊은 세대들이 인기가수나 인기스타를 좋아하는 것처럼 그 당시 보여준 몇가지 이미지만 가지고 김정일을 평가하는 것에 대해 위험하다고 반격하지만 저는 그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과거 우리가 가졌던 냉전적 사고들은 주입된 관념이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경제적인 어려움이 더 커지자 결국 우리가 도와줘야 하고 같이 살아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인식이 김대중정부 아래서 형성되었습니다. 공산국가라고 하던 중국이 지금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본이 투입되고 고속성장하는 지대로 바뀌면서 소위 이념이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점이 아니라는 인식도 우리 사회에 넓게 확산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것들로 인해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내고 경제적 공동체, 민족공동체로 나아가자라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겠지요.

홍세화  김대중정부가 들어섰을 때 IMF 경제위기라는 한계, DJP라는 태생적인 한계도 있었지만 처음으로 수평적 정권교체가 되면서 기대했던 이 사회의 요구들이 너무 적게 수용된 것 같아요. 물론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는 저도 그 공을 인정하고, 지금 노무현정권이 탄생하게 된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김대중정부가 가능했던 일을 하지 못한 점은 짚어야 하는데, 예를 들어서 신자유주의를 도입한다 하더라도 이를 교육면에까지 몰아붙인 점은 그 자체에 철학의 빈곤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국정지표로 내걸었지만 시장경제와 시장사회를 구분하는 안목조차 없었던 것이지요. 경제부문뿐만 아니라 사회 모든 부문을 시장화하려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시장화에 박차를 가했거든요. 그 다음에 박정희기념관 건립이 동서화합에 기여한다고 본 것이라든지, 국가보안법이나 사회악법들을 폐지하지는 못하더라도 개정하는 것은 어느정도 가능했는데 하지 못한 점 등이 있습니다. 특히 언론개혁 문제에서 언론과 타협함으로써 기회를 잃어버렸어요. 이런 점에서 보면 경제적인 측면에서 워낙 잘못되어 있던 관행들을 신자유주의라는 것을 통해서 없앤 부분은 있지만 과연 남북정상회담말고는 무엇에 점수를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에는 만델라이기를 기대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까 완전히 새처(Margaret Thatcher)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유재건  저 역시 어려운 여건을 인정하더라도 개혁의 철학이 잘못되었다는 데 공감합니다. IMF 위기를 탈피하는 과정에서 피해전가가 계층적으로나 지역적으로나 약자층에, 성별에서도 중하층 여성에 집중되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어제 국무총리실에서 김대중정부에 대한 총평가회를 한 모양인데, 정부 평가에서조차 계층간·지역간 소득격차가 5년 전보다 더 커졌다고 하더군요. 물론 노사정위원회 같은 사회적 합의기구를 제도화한 것만큼은 인정해줘야 하겠지만 그것이 얼마만큼 실효를 거두었는지도 의문스럽습니다. 그리고 최대의 실패작이 교육정책이라는 데는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남북정상회담이 획기적인 업적이었다는 것은 저 역시 같은 생각인데요. 다만 이 점을 내정과도 연관해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이 정권에 대해서 거듭 실망하다가도 그래도 평가해줄 수 있었던 것은 가령 1999년에 서해교전이 났을 때도 그렇고, 2001년 8·15 축전 뒤에 소란이 있었을 때도 그렇고, 아무튼 공안정국으로 이어지지 않는 구조적인 흐름이 잡혔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건 지난해 제2차 서해교전 때도 마찬가지였고 그 다음에 흔히 9회말 투아웃 상태의 적시안타라고 불리는 미국의 맞춤형 봉쇄정책 반대 발언에까지 이어졌습니다. 어차피 남북화해는 한동안 남남갈등이라고 하는 내부싸움으로 이어지게끔 되어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거기서 버텨줌으로써 우리 정치공간의 민주화 흐름을 돌이킬 수 없는 대세로 만들어준 거지요. 이건 물론 시민사회의 역량 위에서 이루어진 결과이기도 하고, 정권교체로 가능했던 구조적인 차원의 변화이기도 합니다. 하여튼 수구세력이 정치권력에서 일단 배제된 데서 오는 지배체제 변화를 포함해서 큰 흐름을 볼 때 우리 사회에 더 나은 가능성이 열릴 길을 마련해준 면이 있다는 거지요.

박태견  신자유주의 문제는 앞으로도 큰 과제라고 보는데요. IMF가 터지면서 국가 컨썰팅을 맡아서 했던 매킨지(Mckinsey) 쪽에서 최근 노당선자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신자유주의라는 주주자본주의의 큰 틀을 한국이 되돌리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 과정에서 시장이 투명해지고 재벌이 마음대로 독재를 못하도록 경제민주화의 가능성을 열어준 밝은 측면도 있지만, DJ가 실수한 것은 바로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을 불안정하게 한 것이다. 한국이 말로는 재교육을 시키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재취업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하지만 숫자로 나타난 것을 보면 GDP의 0.7%만이 노동 재교육에 투입이 된 어두운 측면을 남겼다”라고 했답니다. 0.7%라는 숫자는 세계적으로 봤을 때 대단히 낮은 수치예요. 아일랜드 같은 경우가 신자유주의로 갈등이 많은 나라인데 그 나라의 경우에는 노동자 재교육비가 GDP의 4%대가 된다고 합니다. 각 부문에서 신자유주의라는 경쟁원칙만 도입했지 그것의 어두운 측면을 극복하기 위해서 통치자와 지식인들이 얼마나 부단히 고심하고 대안을 찾아왔던가에 대해서는 부정적입니다. 그러다보니까 교육 같은 부문에서 시행착오가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홍세화  수평적 정권교체로 극우 헤게모니가 약화되면서 민주노총이나 전교조가 합법화된 것은 의미가 있어요. 그런데 거기에서 멈췄다는 것이에요. 사실 노사정위원회도 겉만 번드르르하지 구체적으로 무엇을 했는가 하는 점, 특히 YS정권 때보다 DJ정권 때 구속된 노동자 수가 40% 정도 더 많다는 점은 그 자체로 노동정책의 실패를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해요. 노동자의 눈물을 닦아주겠다고 했던 김대중 대통령이었는데 말이죠.

박태견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정권의 비리가 생기면서부터라고 봅니다. IMF 초기에는 재벌도 나라를 망하게 했고 관료도 언론도 그랬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있었어요. 그때 제대로 확 못 몰아붙인 대목도 있습니다. 당시 김대중정부의 파워는 막강했다고 봅니다. 모든 세력들이 숨을 죽이고 기득권층이 꼼짝 못했는데 이들이 일제히 대반격을 하게 된 계기가 옷로비 사건이죠. 언론개혁을 한다고 했지만 이미 도덕성을 상실했기 때문에 언론탄압이라고 공격받는 등 집권 초기의 개혁이 후반부에 와서 무력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전쟁 씨나리오에 맞서는 정책들

 

유재건  김대중정권의 온갖 실정과 부패에도 불구하고 큰 흐름에서 우리 사회의 낯익은 지배체제가 무너져가는 데 기여했다고 아까 말씀드렸는데, 사실 앞으로 한국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한다고 할 때도 이 동요하고 있는 지배체제가 어떤 것인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분들은 파시즘 체제가 약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이제는 우리 안의 파시즘을 보자, 일상적인 파시즘을 극복하는 것이 다음 과제라고 주장하기도 하지요. 잘 아시겠지만 그간 창비에서는 이 지배체제를 분단체제라는 틀 안에서 파악해왔습니다. 한국사회를 세계사적 시각에서 보자는 취지인데요, 한국사회가 세계적인 시공간에서 차지하는 특이한 위치에 주목하자는 거지요. 말하자면 한국사회가 여러 분야에서 다른 제3세계보다 활력적이고 역동적인 면이 있는 한편에, 어떻게 이토록 지독스런 야만이 이 싯점에도 존재할 수 있을까, 가령 수구언론이 어떻게 이렇게 비정상적인 지배력을 갖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것 등을 좀 총체적으로 설명하자는 것입니다. 실제 한국전쟁 뒤로 준전시상태가 경제성장을 보호해준 면이 있는 동시에 기득권층에게 워낙 유리한 정황이었지 않습니까? 저는 이 분단체제가 이즈음 크게 흔들리고 있다고 보는데, 이것은 세계적인 냉전체제가 와해되고 거기에다 한국사회의 민주화운동이 꾸준히 이어져온 덕분입니다. 북의 기득권층도 남쪽과는 다른 방식이겠지만 변화하지 않고는 버티기 힘든 상황이고, 그런 상황이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져 경제적인 개혁개방의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지요. 앞으로 한국사회의 과제를 생각할 때 이런 시각에서 세계사적 조건과 한반도, 한국 내부의 개혁을 연계해서 종합적으로 사고하는 습성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박태견  세계적인 조건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는 지적에 동감합니다. 특히 지금 한반도가 처한 상황을 볼 때 세계자본주의가 어떤 단계에 와 있고 한국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하는 진단과 판단이 중요한데, 지금 세계경제는 큰 위기를 맞고 있고 엄청난 과잉생산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또한 WTO체제가 출범한 이후 10년 동안 국경의 장벽이 허물어지면서 자본이 더욱 생산성이 높고 가격경쟁력이 있는 지역으로 급속히 이전하고 있어요. 그래서 중국이 전세계의 제조업 기지가 되어가는 반면, 일본은 산업 공동화(空洞化) 문제로 고민하게 되었고 우리나라와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조업에서 경쟁력을 상실한 미국은 금융산업 쪽으로 헤게모니를 강화해 월가가 갖고 있는 세계적인 지배력은 급속히 높아졌고 한국에 대해서도 직접투자보다는 금융투자가 핵을 이루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증시만 하더라도 상장 주식의 36%가 외국인 소유고 액수로 따지면 1백조원이나 돼요. 특히 9·11테러 이후 세계경제가 동시에 침체에 빠져들자 모두 초저금리 정책을 취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미국 금리는 1940년대 이래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어요. 그렇게 되자 전세계적으로 나타난 현상이 부동산 가격의 폭등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작년 3월 이후에 아파트값이 폭등을 했지요. 이미 거품이 빠져 장기침체 국면에 들어선 일본을 제외하면 중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은 1년 사이에 부동산 가격이 평균 50% 이상 올랐습니다. 과거의 금융시장, 증권시장에서 재미를 보던 투기세력들이 일제히 부동산 쪽으로 움직였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전세계적으로 보면 경제의 질적인 면에서 거품이 엄청 있고 돈이 갈 데를 못 찾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위기를 극복하는 두 가지 전통적인 방식입니다. 하나는 전쟁을 통해서 과잉생산을 해소해가는 것이고, 또하나는 새로운 투자처를 찾는 것입니다. 최근 북핵 위기로 초래된 한반도 상황을 볼 때 이 두 가지 씨나리오가 다 작동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월가의 시각에서만 본다면 한반도는 평화지대가 되어야 합니다. 작년에 성장률이 제일 높은 데가 중국이었고 2위가 한국이었습니다. 그것은 동북아 일대가 거대한 생산기지로서 전세계 돈이 모여드는 곳이고 또 투자수익을 올릴 수 있는 장소라는 거죠. 거기에다 러시아도 매우 빠르게 성장하기 때문에 동북아로 대표되는 중국·한반도·러시아가 계속 투자와 생산이 이루어지는 지대로 남아야 한다는 것이 월가의 시각인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정반대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세계가 계속 성장하려면 과잉생산을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 예로 하이닉스 사태가 일어났을 때 미국의 마이크론이라든지 유럽의 인피니온 같은 데서는 하이닉스를 청산하라는 압력을 엄청 가했습니다. 왜냐하면 하이닉스가 문을 닫는 순간 전세계의 반도체 과잉공급 문제가 해소되면서 자기네들의 주가는 몇배씩 뛸 수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한국이 반도체산업이나 전자산업, 자동차산업, 조선산업 등에서 일정한 세계시장 점유율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이것들이 다 파괴된다면 세계자본주의가 처한 과잉공급 문제가 해소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지금 한국이 평화지대로 가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노무현 당선자가 제시한 동북아 구상은 바로 우리 동북아 전체를 투자지대, 성장지대로 만들자는 제안을 전세계에 내놓은 것으로 판단합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정반대 세력들이 만만찮습니다. 지금도 미국의 냉전 수구세력들은 다른 카드를 택할 가능성이 언제나 있고 우리는 이를 경계해야 합니다.

유재건  희망 섞인 관측인지 몰라도 전쟁 씨나리오는 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박태견  그렇게 될 겁니다. 두 가지 씨나리오 중에서 제가 볼 때도 전쟁 씨나리오는 실현가능성이 거의 없어요.

유재건  사실 세계자본주의체제가 경제적인 돌파구를 특정 지역의 전쟁에서 찾는 경우는 충분히 있을 수 있죠. 몇년 전 대만에서 지진이 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반도체 공장지대가 붕괴됐을 때 우리 주식시장에서는 환호했던 일이 기억납니다. 반도체 가격이 올라서 주식시장이 활기를 띤 건데, 그런 환호성을 터뜨린 사람들이 선량한 일반 주주이기도 하고, 이게 어찌 보면 세계자본주의의 한 측면이기도 하겠죠. 그런 점에서 최악의 씨나리오를 경계하는 것은 절대로 필요하겠습니다. 다만 동북아를 보면 중국과 한국이 경제적으로 번영하는 곳이고, 일본이 아무리 침체됐다 하더라도 여전히 경제강국인 점, 그리고 평화가 절체절명의 과제일 수밖에 없는 한국에 민주적 정부가 들어서 있다는 점, 게다가 남북교류가 계속되리라는 점 등등을 두루 고려해보면 최악의 씨나리오로 갈 가능성은 적어 보입니다. 그리고 북핵 위기를 보는 데도 두 가지 시각이 있는 것 같습니다. 북한이 체제 안전을 보장받고 경제를 회생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있을 뿐이라는 것과 궁극적인 체제보장을 위해서 핵 보유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이죠. 제가 무슨 전문가는 아니지만, 북한이 작년 여름 신의주 특구지정 등을 발표하면서 과감한 개혁개방 흐름으로 가려 했던 것이 단발성 조치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게다가 지금도 남북교류를 유지하면서 경제발전을 도모하려는 것을 보더라도 동북아 평화지대는 대세의 순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누가 보더라도 핵 선제공격을 할 수 있다고 미국에서 도발했던 게 문제이지 않습니까? 그럴수록 한국정부가 북한에 대해서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거듭 천명하면서, 동시에 MD(미사일방어계획)라든가 군수자본의 압력 때문에 미국이 긴장을 유발하는 데 대해 제동을 거는 중재자 역할을 좀더 주체적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태견  노당선자에게는 고도의 외교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이해관계들을 정확하게 읽어야 하죠. 왜냐하면 일본도 장기침체에서 벗어나려면 새로운 투자처를 찾고 생산을 해낼 수 있어야 하고 그런 측면에서 보면 한반도가 평화지대가 되는 것이 유리하거든요. 일본이 북한에 1백억 달러를 배상하더라도 대부분 현찰이 아니라, 우리도 60년대에 경험했듯이 자기 기업들의 투자라든가 건설 쪽으로 하겠죠. 그런 식으로 일본기업들이 새로운 투자처와 생산처를 찾을 수 있도록 뚫어주어야 하는 것이죠. 중국도 내부적으로 상당히 긴장하고 있어요. 지금 초고속 성장을 하고 있지만 어느 단계를 지나게 되면 미국의 금융자본이 들어온다고 보고 있거든요. 이미 WTO에 가입했기 때문에 앞으로 4년 뒤에는 금융시장을 완전개방해야 하죠. 중국 지도부에서는 ‘금융산업이 이대로 가면 2008년 뻬이징 올림픽이 끝난 직후 공격을 받을 소지가 크다’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어요. 실제로 월가에 이런 공식이 있다고 합니다. 약한 놈을 쓰러뜨려봤자 먹을 것이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경제단계가 어느정도 올라서서 튼튼한 기업들이 많을 때 쓰러뜨리면 싸게 먹을 수 있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중국에 지금 전쟁이 나거나 한다면 굉장히 치명적입니다. 지금 세계 신규투자의 90%가 중국 쪽에 몰리고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중국 주변에서 투자의 흐름을 막는 세력이 나타나서는 안되는 것이죠. 일본도 아직 경제대국이니까 투자처를 찾아야 하는데, 작년에 코이즈미(小泉) 총리가 부시에게 3일 전에 통고만 하고 내밀하게 김정일과의 북일정상회담을 진행한 것, 그리고 뿌찐(Putin)이 김정일을 만나서 시베리아철도를 연결하자고 제안한 것 등을 봐도 지금 각국 정부는 경제 최우선주의 정책을 취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 부분을 잘 링크할 수 있는 외교력이 필요하죠. 그렇지만 미국을 배제하는 식으로는 안된다고 봅니다. 미국의 월가가 자본력이 최대로 집중해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어떠한 일이 있어도 월가를 선의의 투자자로 끌어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성공할 수 있는 그림이 나오거든요. 가장 큰 문제는 부시로 대표되는 미국의 군수자본이 제동을 걸고 있다는 것이에요. 미국 군수산업이 제일 하고 싶은 것이 MD를 통해 미사일을 배치하는 것이죠. 그런데 한반도에서 긴장이 해소됐을 때는 일본이나 한국에 무기를 팔아먹을 수 없다는 문제가 생기죠. 그런 점에서 이해관계의 상충이 존재하는데 과연 이것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 노당선자가 평화비용이란 개념으로 “좋다, 일정 무기를 배치하겠다”라고 할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풀어나갈지 주목해야 할 대목입니다.

홍세화  저는 벼랑끝 전술이라는 것이 북한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강요당한 것이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들어요. 미국은 역사적으로 타자와의 관계를 항상 적대적 선악관계로 설정해서 인디언부터 공산주의, 외계인까지 자기들은 선이고 상대는 악이라는 구도를 계속 관철해왔어요. 그리고 지난 9·11테러 이후에는 우리 편이 아니면 악의 편이다라며 편가르기를 하는 상황에서 악의 축 발언도 있었고요. 지금 이라크에 대한 태도를 보면 후쎄인이 홀딱 벗어도 치겠다는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미국이 핵 선제공격을 한다고 했을 때, 그 얘기는 곧 미국 스스로 핵확산금지조약(NPT) 파기선언을 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왜냐하면 1970년에 발효된 핵확산금지조약은 당시 핵보유국이며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5개국만 핵을 갖고 있기로 하고 다른 나라에 주지 않으면서 동시에 핵 비보유국에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보장을 했기 때문이죠. 미국이 북한에 핵 선제공격을 할 수 있다고 하는 상황이라면 북한의 김정일정권이 느끼는 위기의식은 엄청날 것이라고 생각돼요. 결국 북한의 핵카드라는 것은 그야말로 체제의 생존문제에서 마지막 선택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아까 일본을 말씀하셨는데, 노무현정권도 일본과 북한 사이의 중재자로 자처하고 나서지 않았습니까? 일본은 실제로 북과의 관계정상화를 바라고 있는데, 납북자 문제와 미사일에 대한 공포가 어마어마한 것 같아요.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여론이 나쁜 것 같습니다.

박태견  미사일에 대해 일본이 갖는 공포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요. 대포동 미사일이라는 것이 장거리 미사일 아닙니까? 지금 일본 내에 있는 원자력 발전소 50군데를 공격하면 원자탄 50개를 투하하는 것과 같다고 해요. 결국 북한이 핵을 갖고 있느냐 개발할 것이냐 하는 차원을 떠나서 지금 북한이 확보하고 있는 무기력만 가지고도 사실상 핵전쟁 못지않은 효과를 낼 수 있고, 따라서 일본에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어요.

유재건  문제는 미국인데, 그간 미국정부 쪽에서 나온 대북한 발언들을 보면 정말 오락가락하고 자기모순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큰 흐름, 군사주의에다 국제적인 기준을 무시하는 일방주의라는 흐름은 있죠. 게다가 그 이름부터 유치한 ‘애국자법’이니 하는 것을 만들어서 우리편 아니면 모두 적이라는 게 통할 정도로 미국 시민사회는 굉장히 허약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락가락하고 자기모순적인 태도를 보면 무언가 자기 뜻대로 할 수만은 없는, 이라크전을 앞두고 있다는 것말고도 어떤 딜레마에 처해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한국정부가 잘 대처할 때 미국의 세계전략에 어느정도 제동을 걸 수 있는 틈새가 있는 건 아닐까요?

박태견  미국 쪽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미 군수산업이 미국정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 이하로 떨어졌답니다. 냉전이 끝나면서 전세계적으로 군수산업의 수요가 줄어들지 않았습니까? 금융산업이라든지 첨단산업이 미국자본의 새로운 대변자가 됐는데 부시정권이 출범하면서 내부에서도 갈등이 벌어지는 모양입니다. 이라크에 대한 부시의 저의는 산업적인 이해와 일치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라크는 금융자본이 돈을 투자한 곳도 아니고 1조 달러 정도의 석유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에 월가든 워싱턴이든 간에 이해의 상충이 없답니다. 전체 미국자본의 입장에서 이라크는 빨리 쳐서 뺏자는 공감대가 있는데, 한반도를 둘러싸고는 이미 많은 금융자본이 한국과 중국에 투자되어 있기 때문에 군수자본의 이해관계 하나만 가지고 밀어붙일 수는 없는 지역이라고 분석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내에서도 부시의 한반도정책의 실체가 뭐냐 하는 의문이 계속 제기될 정도로 한반도는 부시로서도 많은 딜레마에 처할 수밖에 없는 지역이라는 거죠.

홍세화  노무현정권의 ‘10대 과제’에서도 첫 과제로 남북평화체제 확립을 두었지요.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동북아 경제중심 국가가 가능하다는 아주 당연한 이유입니다. 거기엔 동의를 하면서도 걱정이 되는 것은 아무리 외교력이 뛰어나더라도 부시정권이 있는 한 결국 종속적이라는 거죠. 그런 한계에서 벗어나기가 어렵지 않을까, 그러니까 2004년까지 이 문제가 풀리지 않고 밀고 당기면서 지지부진할 염려도 있다는 거죠. 그렇다면 초반에 기선을 제압하는 데 한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습니다.

박태견  그것도 노당선자가 해결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인데요. 어제 노당선자가 외국인 CEO들과 만났고, 그 현장을 CNN이 45분간 생중계했다는 대목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만큼 전세계 투자자들이 남한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얘기거든요. 노당선자는 이날 DJ노믹스보다 더한 얘기들을 했습니다. 노당선자는 노동계에서 악법으로 뽑는 경제자유구역법에 대해 언급하면서 경제자유지역에선 파견근로를 허용하고 노동쟁의도 엄격한 법절차에 따르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이 법은 작년 말에 통과되었고 올 7월부터 작동되는데, 그렇게 되면 그 지역 내에 투자하는 외국기업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특혜가 주어지는 한편, 노동쟁의를 함부로 할 수 없게 됩니다. 왜 이렇게 노당선자의 입장이 바뀌고 있는 걸까요? 그것은 노당선자가 월가로 대표되는 세계의 투자자들을 깊숙이 끌어들어야 한반도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아닌가, 그럼으로써 미국 내 군수산업자들의 전횡을 막을 수 있다고 보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사실 노당선자가 고도의 외교력을 발휘하지 못해 북핵문제가 교착상태에 빠진다면 정국의 주도권을 쥔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고 생각돼요. 그렇기 때문에 최근 노당선자 입에서 나오는 말을 보면 공약과는 다른 측면이 있지만 그런 전술적인 판단을 하면서 접근하는 것이 아닌가 해요.

홍세화  보통 ‘동북아 구상’이라고 불리는 그런 전망을 가지면서도 노무현 당선 이후에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씨가 분신자살한 사건이 의미하는 바가 중요하게 제기된다고 봅니다. 그는 노무현이 당선되고 많은 사람들이 기대와 희망을 품는 가운데 분신을 했습니다. 과연 이 문제를 지금과 같은 세계자본주의체제 속에서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저로서는 난마처럼 보이는 어려운 과제가 아닌가 합니다. 게다가 기존의 엄청난 빈익빈 부익부 구조가 엄연히 있고, 계층이동의 가능성은 거의 사라졌죠. 과거에는 교육을 통해 어느정도 열려 있었는데 이제는 그것마저 닫힌 가운데 노동자·농민문제가 아주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중국 농업생산물이 개방되면 중국 주변 나라들의 농업이 다 죽는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개방의 첫번째 대상이 한국일 것 같은데, 그런 속에서 과연 어떤 활로를 찾아야 할지 막막합니다. 점점 박탈감이나 상실감이 깊어질 텐데 요는 배달호씨도 노무현정권에서는 아무런 희망을 보지 못했다는 것 아닙니까? 과연 어떤 희망을 줄 수 있는가 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가 아니겠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수도권 집중현상을 타파하기 위해

 

유재건  동북아가 평화지대로 정착하더라도 어려운 여건 속에서 이런저런 딜레마를 이겨내고 나아가려면 우리 사회가 과거의 발상처럼 무슨 3만불 시대로 가자는 식의 방향을 취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국민의 기본적 인권이 보장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겠고, 계층간·지역간의 대립과 격차를 해소하면서 내부체제의 개혁을 착실히 해가야 하리라 봅니다. 말하자면 개혁방향이 제대로 서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아시다시피 이번 대선에선 다른 어느 때보다도 수도권 집중현상 타파 혹은 지방의 균형발전 문제가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행정수도 문제가 선거 막판의 최대 쟁점이었던 것도 그렇지만, 그전에 지방분권운동에 이후보와 노후보가 다같이 서명하는 쎄리모니까지 있었죠. 정말 한국의 수도권 집중은 무슨 통계숫자를 들이댈 것도 없이 심각한 상황이고, 새 정부가 내세우는 동북아 중심국가 건설도 이런 상황을 그대로 두고는 헛된 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프랑스 『르 몽드』지에서는 ‘Seoulization’이라는 조어를 만들어서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수도권 초집중화 현상을 가리키는 말로 쓰고 있다고 하던데요.

박태견  수도권 집중 문제는 사실 몇십년간 계속 제기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악화되고 심화된 문제인 것 같습니다. 역대 정권이 다 이 문제를 풀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실제로 시도도 했지만 다 실패한 이유는 본질적으로 문제에 잘못 접근한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조흥은행을 충청도로 옮기겠다고 한 얘기입니다. 그때 가장 코너에 몰렸던 조흥은행에 대해 공적자금 받고 그리로 가라고 했죠. 그 당시 조흥은행은 공적 자금을 받아야 하니까 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안 갔습니다. 그 지역의 경제력이 발전하고 생산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져야 금융기관이 거기에서 일을 할 수 있고, 그러면 가지 말라고 해도 갑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지방이 스스로 경제적 주체로 설 수 있도록 키우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아이디어들이 나왔습니까? 서울의 대학들을 지방으로 분산시킨다고 하지만 분교나 제2캠퍼스는 그 지역의 경제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지역마다 스스로 살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갖추도록 지원해주는 것이 수도권 문제를 푸는 근본적인 해법이 아닌가 합니다. 물론 동북아가 평화지대가 됐을 때 한국은 새로운 차원에서 아시아의 중심지로 변화할 수 있는 많은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특히 지방일수록 그렇습니다. 수도권은 워낙 땅값이 비싸서 외국투자자들이 부담스러워해요. 우리나라에 직접투자가 사라지고 대부분 금융시장에 대한 투자만 이루어지는 것은 사실 수도권의 비싼 땅값 때문이라고 해요.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땅값이 싼 지방에 좋은 인프라만 갖춰준다면 우리 사회의 우수한 인적자원과 특화된 산업을 바탕으로 투자를 유치할 수 있을 겁니다. 최근에 한국의 금융산업이 굉장히 발전했습니다. 특히 은행부문은 한국이 일본을 앞질렀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몇몇 은행들은 홍콩이나 싱가포르 못지않은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노당선자를 만났던 매킨지의 도미닉 바튼(Dominic Barton) 대표는 동북아 허브를 만들려면 한국이 제일 잘하는 것을 앞세워라, 그것은 한국의 산업 중에서 금융부분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IMF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157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얻은 성과 중의 하나는 금융부문이 많이 선진화되고 투명해졌다는 겁니다. 그런 성과물들을 앞세워 한국을 동북아의 허브로 키우고, 거기에서 키운 자금력을 가지고 각 지역에서 추진하는 일에 자금들을 유입시켜가면 저는 노당선자가 제기한 행정수도 이전과 함께 상당히 다양한 형태의 새로운 해법들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홍세화  노후보측에서 행정수도 이전을 중점적으로 얘기했는데 저는 그것이 아주 주효한 선거전략이었다고 봅니다. 저는 서울 자체가 워낙 크니까 분산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행정수도 이전이 올바른 정책제시였다고 봐요. 그것을 두고 조선일보나 기득권층에서는 수도권의 땅값이 내린다고 했지 않습니까? 그런 얘기에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은 이미 이회창 지지자들이에요. 수도권 땅값이 내려간다는 말에 움직여서 노무현을 찍으려다 이회창을 찍을 사람은 별로 없었어요. 거기에 비하면 충청도의 경우에는 달라서 투표에 나타난 것으로 보이거든요. 행정수도 이전이 올바른 정책인 이상 긴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실행에 옮기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유재건  그동안 언론에서도 무슨 연례행사처럼 지방이 죽어간다, 지방을 살리자라는 기획을 했지요. 신물나도록 들은 얘긴데 그래도 잘 안돼요. 실제로 지방자치가 95년에 본격화한 후 수도권 집중은 더 심화되고 격차는 더 벌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폐해가 크기 때문에 개혁이 필요하다고 항상 떠드는데도 더 악화되는 부문들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수도권·지방 격차 문제도 그렇지만, 재벌문제, 언론문제, 서울대 문제 등등에도 비슷한 면이 있어요. 그렇게 된 데는 첫째로 세계자본주의체제의 조건이나 분단체제 때문에 주어진 여건이 그 현실적인 배경으로 있다는 거예요. 가령 국가주의적으로 볼 때 효율이나 경쟁력 면에서 그렇게 될 만한 구조적인 여건이 있어요. 둘째로는 그렇게 계속 가다보니 이게 기득권 구조로 고착되어 있고, 그래서 기득권을 가진 쪽이 양보할 리가 만무하다는 거죠. 그리고 셋째는 이게 독점과 지배의 문제인데도, 일단 유리한 기득권층은 이데올로기적으로 꼭 자유경쟁을 내세운다는 겁니다. 객관적 여건 면에서 일리있는데다, 기득권 구조가 성립해 있고 이데올로기까지 갖추고 있으니 약자들로서는 그걸 바꾸기가 쉽겠어요? 그래서 이 기득권을 건드리지 않은 채 그럴싸한 명분의 미봉책들을 취하다보면 효과는커녕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것 같아요. 사실 그동안 지방자치라는 것도 실질적인 권력, 돈과 권한은 중앙에 두고 무슨 위임사무니 해서 일만 지방으로 보내는 거잖아요. 제가 보기엔 이제 점점 객관적 여건이 바뀌면서 기득권 구조도 흔들릴 여지가 생긴 게 아닌가 싶습니다. 수도권 집중만 하더라도 제3세계에 일반적인 현상이긴 하지만, 한국사회는 남북대결 속에서 효율성과 체제경쟁을 위해 더 심화된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제 그런 대결상황도 바뀌어가고 있고, 거기에다 서울은 서울대로 효율성에서도 문제를 일으키고 지방은 지방대로 낙후해서 오로지 서울만 향하고 있으니, 무언가 전에 없던 새로운 창의적 방안을 모색할 때가 되었어요. 더 나아가 남북교류가 진전될 것까지 감안하면 이제는 더 넓혀서 북한의 개성공단, 신의주 특구 혹은 경의선 등이 다 시야에 들어오는 발상도 가능할 뿐 아니라 필요하겠습니다.

박태견  저는 지역의 균형발전을 위해 큰 단위에서의 지역개발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창작과비평』 지난 겨울호에서도 다룬 바 있지만, 그 대표적인 예가 새만금 같은 곳이지요. 이미 투자된 돈을 무효화시키지 않으면서도 지역을 개발하는 창의적인 접근을 해야 합니다. 방조제를 완공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바다도시로 만들고, 갯벌 같은 데도 활용해서 그 지역을 국제적인 해양도시로 키워내는, 그러면서 그 안에 국제적 박람회라든지 환경친화적인 해양산업을 연구하는 연구단지를 조성한다든지 하는 그런 것들이 필요합니다.

유재건  새만금사업은 현재 진퇴양난의 처지인데 어떻게든 돌파구가 필요한 곳이지요. 저도 김석철 선생의 그 글(「새만금의 미래를 여는 새로운 시각」)을 보았지만, 이미 이루어진 사업을 무효화시키지 않으면서 바다와 갯벌을 살린다는 점이 큰 매력이더군요. 이를 분권형 지역발전의 모델로 사고해볼 필요가 있다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실제 새만금이 새 정부가 약속한 행정수도와 가까운 곳에 있는 서해안인데, 중국의 개혁개방이 동쪽 해안도시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황해를 중심으로 한 경제공동체가 가능하지요. 저로선 비전문가 입장에서 그 현실성에 대해선 무어라 단정하기 어렵긴 해요. 다만 호남지역에 환경친화적이고 좀더 첨단적인 도시군들을 발전시킨다는 발상에는 호남 발전뿐 아니라 행정수도하고 중국과의 연계를 가진 새로운 지역발전 모델로서의 가능성이 엿보입니다. 그리고 새 정부가 약속한 행정수도만 하더라도 새로운 발상에 근거한 이같은 종합적인 발전전략과 함께 사고하지 않고는 그저 수도권과 연계된 중심의 일부가 될 우려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역의 균형발전을 생각할 때, 이런 문제 외에도 교육문제를 제쳐놓아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만……

 

 

혁명적 차원의 교육개혁 있어야

 

홍세화  제가 빠리에 있을 때인데 한국에서 군 단위에서 아이가 3년 만에 처음 출생해 축하행사를 벌였다는 얘기를 듣고 정말 경악을 했습니다. 그만큼 농촌의 공동화가 심하다는 것이지요. 지역의 균형발전이란 것은 사실상 교육개혁과 맞물리는 것인데, 특히 서울대의 문제는 서울대가 갖고 있는 문제 자체도 크지만 한국사회에서 그 상징적인 의미와 함께 학벌사회의 폐해의 중심에 있으니까 아예 지방으로 옮겨서 이름을 한국대학이라고 하든지, 이런 식으로 씨너지 효과를 내게끔 하면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박태견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대학을 옮긴다는 것이 결국 분교 형태로만 이루어졌습니다. 천안 일대만 보더라도 분교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본교는 여기 두고 분교가 감으로써 그 지역에 과연 어떤 발전이 이루어졌는가 하는 것이지요. 경제단위도 그렇지만 교육단위도 지방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미국도 대학 전체가 있으면 대학도시가 되지 않습니까? 스탠퍼드 같은 데도 그렇고 유럽 대학들도 그렇고요. 그런 식으로 주요 대학들이 본교 차원에서 이전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대학은 많은 교육투자가 이루어지는 데니만큼, 학부모들이 돈을 대고 해서 스스로 자립, 생산하는 대학도시를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저는 대학이전 문제를 검토한다면 지방에 대학도시를 건설한다는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유재건  저는 서울대 이전론이 현실성이 있을까 좀 회의적이고, 오히려 기초학문 분야로의 축소론이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는데, 이걸 지금 구체적으로 논의할 계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얼마 전에 정운찬 서울대 총장이 제2캠퍼스를 행정수도에 조성하겠다라고 한 보도를 보았는데, 이건 정말 아니다 싶었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공룡 같은 존재인 서울대를 그대로 두면서 한층 비대화하는 방향인 것 같아서요.

홍세화  한국의 교육문제는 결국 대학문제인데 그 해결은 학벌사회를 어떻게 깰 것인가에 집중되어야 하고, 개인적으로 대학이 평준화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봅니다. 물론 엄청난 저항이 있을 것인데, 사학재단의 기득권세력들뿐만 아니라 이 사회의 기득권층 거의 모두가 반대하고 나설 겁니다. 이를 누르고 어떻게 사회적 합의를 획득해가고 그것을 어떻게 가능하도록 할 것이냐 하는 점에서 장기적으로나 단기적으로나 역시 서울대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가지 방안이 나오겠습니다만, 서울대 문제만큼은 노무현정권에서 당연히 거론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육개혁은 우선 교육부 이름을 교육인적자원부에서 교육부로 바꾸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봅니다. ‘인적자원’이란 말은 기업경영에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이름에서 벌써 신자유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셈이지요. 우리 사회에 사립대학이 90% 가까이 되고 고등학교는 60%, 중학교는 40%가 사립인데, 그만큼 교육의 시장화가 이미 진행된 상황에서 마음대로 학교를 세울 수 있는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어요. 시장경제까지는 이해가 되지만, 사회 전부문을 시장화하려는 것을 차단해야 하는 것이 교육부문임에도 불구하고 제일 앞장서서 그런 길로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우리가 흔히 문·사·철이 무너지고 있다는 얘기도 하고 학교붕괴, 교실붕괴를 얘기하기도 하지만 결국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사회 전체를 시장논리로만 보았기 때문이에요. 모든 가치가 물질적 가치로 축소되고 환원되는 것을 공교육과 인성교육으로 견제하고 경제와 사회 간의 대칭적 관계로 봐야 하는 교육부문에서 오히려 이를 뒷전에 두고 있는 셈이죠. 명칭을 다시 교육부로 바꾸는 것은 상징적으로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고교평준화를 두고 하향평준화가 되었다고 말하는데, 오늘처럼 줄서기가 강요되는 구조 속에서는 고교평준화에 대해 잘됐다 못됐다는 가치평가를 할 수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대학평준화를 하기 위한 중간단계로서 의미가 있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또 과거에 지역의 특정 고등학교 출신들이 지방권력을 독점하던 일이 지금은 어쨌든 사십 몇살 이후 사람들까지만 해당되지 않습니까? 가령 인천의 제물포고라든지 청주의 어디, 전주의 어디, 서울의 경기고·서울고 등 이른바 명문학교 출신이라는 통념이 시간이 지나면서 깨지고 있다는 거죠. 이런 것은 긍정적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열여덟살에 신분이 거의 결정되다시피 하는 한국의 학벌구조는 아이들을 일찍부터 질곡에 몰아넣을 뿐만 아니라 국가경쟁력 면에서도 아주 떨어지는 것이니까 다른 어떤 부문보다도 혁명적 차원의 개혁이 요구된다는 생각입니다.

박태견  저도 공감합니다. 어떤 외국 금융학자가 한국교육에 대해서 이런 평가를 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교육은 투자가 아니라 소비다’라고. 투자라는 것은 들어간 만큼 나오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에서의 교육은 집어넣은 돈이 안 나오는 소비라는 것이죠. 결국 과시하기 위한 것이고 교육의 효용성 측면에서 문제가 많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홍위원님 말씀대로 대학문제는 정말 혁명적인 개혁이 일어나야 하는 것이고, 특히 대안으로서 많은 전문학교와 직업학교, 그리고 어느 대학 출신인가는 중요하지 않다는 인식이 성립될 만큼 굉장히 많은 대안학교들이 나와야 합니다. 지식인들 중에서 교육문제에 관심을 갖는 분들이 많고, 또 우리 사회의 주류층도 다 애들 교육문제로 고민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런 분들이 과감하게 교육분야에 투자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자기 아이를 명문대에 보내려고 기부금으로 입학시키는 방식은 굉장히 이기적인 것이죠. 진짜 우리 사회의 교육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한다면 돈을 교육부문에, 대안학교를 진짜 제대로 만드는 데 투자해야 합니다. 1년에 통계로 잡히는 유학비 혹은 간접여행비가 조 단위거든요. 만약 그런 돈들이 한국사회에 민간 교육투자로, 새로운 대안을 만들려는 노력으로 전환된다면 교육혁명에 있어서 의미있는 물적 단초가 제공되리라 봅니다.

유재건  우리나라 교육문제가 결국 대학문제이고 서열화 문제라는 점, 이 문제의 해결 없이는 사실상 입시준비기관이나 다를 바 없는 중·고등학교 교육이 정상화될 수 없다는 점은 다 공감하는데 해결책의 합의는 참 어렵지요. 게다가 서울대를 정점으로 서열화가 지나치다보니 이제는 대학간 공정한 경쟁도 없어지고 앞선 대학과 뒤처진 대학 모두 경쟁력을 상실하는, 홍선생님 말씀대로 국가경쟁력에도 걸림돌이 되는 상황으로 가고 있지요. 대학의 서열화와 학벌주의가 강고한 현실에서 시장주의까지 결합하게 되면 진짜 이건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지경이라는 생각인데, 김대중정권의 교육정책이 바로 이런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과정에서 지방대학들은 이래저래 몰락하고 있고, 지방경제의 침체와 맞물려서 수도권 집중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는 형국이라 하겠습니다.

홍세화  저는 정부부처 중에서도 교육부를 개혁대상 1호로 꼽아야 한다고 봅니다. 가장 수구적인 데가 교육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사람치고 교육전문가 아닌 사람 없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한겨레』 ‘왜냐면’ 토론란에서 교육부와 관련한 문제제기가 가장 많았어요. 그런데 교육부는 단 한번도 반응을 보인 적이 없습니다. 자기네들끼리 철옹성에 있는 거죠. 한국의 교육은 국가주의와 시장주의가 결합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사실 이 둘은 상충해야 하는데 오히려 유착되어 있단 말예요. 예컨대 교육관료는 항상 갈 데가 있습니다. 사학재단 이사로 갈 수가 있거든요. 이렇게 유착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혁파대상으로 꼽고 싶습니다. 또 지금 학교단위에서 교장은 국가주의의 중핵이랄까, 정권의 국가주의교육 요구를 받들어 모시는 마름이면서 단위학교에서는 반민주적인 권위주의, 관료주의의 핵인데요. 이 교장을 선출직으로 바꾸는 문제도 사립학교법 개정과 함께 시급하게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박태견  지방분권과 마찬가지로 교육도 분권화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상당부분의 권한을 각 지역단위로 분할해야지 중앙의 거대한 관료들이 장악하고 있으면 절대로 교육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봐요. 이를 장악하고 있는 권력부터 분산시켜야 각 지역마다 개혁이 빨리빨리 진행되지 않을까 해요. 교육부 장관에 누구를 앉히느냐로 풀릴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이번에 관료사회에서 분권시킬 부분은 과감하게 분권정책을 취하는 것이 노당선자가 개혁을 하는 데 있어서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유재건  두 분 다 교육분야에서는 혁명적인 개혁이 있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만약 대학서열화와 학벌주의가 깨질 수 있다면 그 자체가 우리 사회의 많은 걸 바꾸게 되는, 문자 그대로 혁명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뭔가 뜻있는 개혁을 해볼라치면 반드시 발목잡는 것이 있어요. 사회적 의제를 독점하고 자기 주장을 여론화시켜 기득권 구조를 옹호하는 언론의 문제인데요. 그래서 이런저런 개혁들을 가능케 하는 가장 중요한 개혁이 곧 언론개혁이라고 합니다만, 이번 대선과정에서 워낙 언론문제가 심각하게 드러났고 바뀌어야 한다는 시민적 공감대도 어느정도 형성된 것 같습니다. 앞으로 수년간 언론분야에서의 투쟁이 상당히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되고, 또 인터넷 매체의 영향이 커지면서 새로운 전선이 형성될 것 같기도 합니다. 두 분 다 언론인이시니까 하실 말씀이 많을 텐데요.

 

 

이제는 좋은 관점의 언론만이 살아남는다

 

홍세화  신문 중에서도 우리가 특히 많이 말하는 것은 역시 ‘조·중·동’ 아닙니까? 또 조·중·동이 신문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가 개혁을 논의하기 전에 조·중·동의 실체에 대해 한번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중·동은 스스로 개혁을 할 수 있는 능력 자체가 없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조·중·동이 갖고 있는 성격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흔히 신문을 제4권력이라고 하고 자본으로부터의 독립,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조·중·동의 문제는 신문이란 겉모양을 가진 그들이 바로 권력이고 자본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권력이고 자본인데 신문이라는 모양새를 통해서 마치 사회의 공적 기능을 행사하는 양, 자본과 권력에 대해 비판하고 견제하는 양 행세하니 이것이 사회구성원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게 되는 함정이 아닐까 싶어요. 우리가 흔히 족벌언론, 언론족벌이라고 말합니다만 결국 그들은 자본이고, 언론권력이라는 이름의 권력이거든요. 그들은 그 권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자신의 조직 전체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무리 정간법을 개정한다고 해도 어차피 한계를 지니게 마련입니다. 편집국을 독립시킨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시민의식이 향상되는 만큼 그들도 따라올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인터넷신문의 활성화도 시민의식이 그만큼 진전된 데 대한 반영으로 생각하고요. 그리고 또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7, 80년대에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을 거치면서 워낙 신문시장이 왜곡되었다는 것입니다. 박정희정권 이후로 정권연장의 하위수단으로 조·중·동의 권력화·자본화가 허용되었는데, 그것이 누적되어서 공룡이 된 것이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인터넷신문과 방송의 견제에 있다고 봅니다. 이 점이 특히 강조되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지난 대선에서도 MBC가 하나의 대척점에서 해낸 역할이 분명히 있고, 그런 점에서 KBS가 공영방송인데도 제 역할을 못한 측면이 있지 않습니까? 노무현정권이 KBS나 방송 쪽을 어떻게 명실상부한 공영방송으로 만들 것인가 하는 점도 대단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박태견  이번 선거에서 조·중·동이 그 어느 때보다도 확실한 연합전선을 짰죠. 그 전선은 지난 97년 대선 때보다 강고했고, 그들이 장악한 시장점유율은 74%나 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처럼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 적은 없었습니다. 이미 지적하셨지만 인터넷이 새로운 의사소통기구, 의사전달기구, 그리고 관점을 만드는 기구로 떠올랐기 때문에 이번 선거 결과를 보고 조·중·동이 받은 충격은 굉장합니다. 지금 인터넷신문이라는 것이 하나의 대안으로서 상당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요즘 종이신문들을 보면 상당부분 이미 인터넷을 통해 알려진 것을 형식상 지면에다 채우는 것이 많고, 그래서 새로운 것은 몇개 없어요. 그런 정도로 인터넷 시대가 도래한 것이죠. 과거에 신문밖에 없었을 때는 뉴스가 가능했지만 저는 이제 뉴스의 시대는 끝났다고 봐요. 이제는 관점, 뷰스(views)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제부터는 ‘뷰스의 시대가 아니냐’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번 선거에서 조·중·동이 패배한 것은 뷰스의 싸움에서 진 것이죠. 그들은 시대정신과 역행하는 그런 관점으로 독자·국민과 대화했고 그 결과 졌습니다. 인터넷신문이 가능성을 갖는 것은 돈 많이 드는 장치산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제2, 제3의 새로운 매체를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조·중·동이 가졌던 74%의 점유율이라는 것은 엄청난 것이지만 영향력이나 점유율은 점점 줄어들 것으로 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70년대 동아투위 사태로 자신의 정신을 상실하면서 70%를 넘었던 시장점유율이 지금 20%로 떨어진 동아일보입니다. 그것은 사주가 시대정신에 역행하고 독자들을 배신한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조·중·동이 갖고 있는 74%의 시장점유율은 당장은 어마어마한 것이지만 시대정신에 계속 역행한다면 그 미래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유재건  조·중·동이 이번 대선에서 자기 뜻대로 못했다는 것 자체는 무척 중요한 사실이자 어떤 징후로 보입니다. 이번 대선 때 그 신문들을 보니, 초기 도청사건에서부터 시작해서 북핵 위기와 행정수도 이슈, 나중에 정몽준 폭탄선언 때의 마지막 행태에 이르기까지, 정말 무진 애를 쓰더군요. 그런데 그런 것이 시대정신과 안 맞는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시민사회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뜻이겠지요. 또 정권교체로 인해 언론간 침묵의 카르텔이 약간 균열된 점도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과거에 아침에는 신문 보고 밤에는 KBS와 MBC 뉴스를 보곤 했는데 거의 획일적 의제에다가 해석까지 비슷한 논리로 주입하지 않았습니까? 요즘엔 신문과 방송이 가끔 대립되기도 하고, 신문에서도 조·중·동과 ‘한·경·대’가 성향을 달리하는 점도 있고, 거기에 인터넷 매체가 확산되면서, 아직도 영향력이 크긴 하지만 과거처럼 독점적인 위치는 차지하지 못하게 된 것 같습니다.

박태견  인터넷신문을 해보니까 이런 것이 있어요. 좋은 기사가 있으면 다른 인터넷 공간으로 퍼지게 되는데 그 속도가 무시무시합니다. 인터넷이라는 것은 무수한 공동체의 연합이지 않습니까? 어떤 때는 야후에서 좋은 것이 있으면 320군데에서 퍼간답니다. 그러니까 얼마가 보는지를 모르는 거예요. 중요한 내용이다 하면 전파력이 어마어마한 거죠. 만약 20년 전에 인터넷이 자리잡았다면 저는 광주학살 같은 것은 불가능했을 거라고 봅니다. 언론으로서 중요한 것은 시대정신에 부합하고 제대로 된 콘텐츠를 어느 집단에서 얼마나 생산해내느냐 하는 것이고, 그것이 앞으로 몇년 지나면 승부를 가르는 것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유재건  결국 우리 시민사회의 수준과 역량 자체가 커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저로선 그와 동시에 언론분야에서도 개혁의 원칙이 제대로 섰으면 하는 바람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거기엔 입법으로 할 사항도 있겠고 또 이미 있는 법을 공정하게 집행해야 할 차원도 있겠지요. 새 정부가 언론개혁이 갖는 엄청난 중요성을 두고두고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제 시간도 많이 지났습니다. 지금 이 싯점에서 우리 사회에 정말 중요하다 싶은 이야기 한마디씩 하는 걸로 끝낼까요?

홍세화  저는 프랑스에서 오래 살아서 그런지 여기의 자본주의 작동방식에 대해서 많이 놀랐습니다. 우리가 물신과 천민자본주의에 대해서 많은 비판을 하지만 그것은 의식일 뿐 일상은 물신에 의해 지배받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광고를 보면 자본주의 작동방식이 그대로 드러나는데 가령 ‘부자아빠를 꿈꾼다’라든지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 ‘대한민국 1%’ 따위를 들으면서 충격을 받았거든요. 어떻게 그런 광고가 무감각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설령 인문학자나 교육학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올바른 언론인이라면 청소년들이 그런 광고를 일상적으로 보면서 어떤 가치관을 형성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경제지상주의, 효율, 능률을 넘어 물질만 강조하게 되면 인간을 중심에 둔 가치관의 붕괴가 보입니다. 그래서 노무현정권 동안 인간이라는 문제, 그리고 환경과 자연과의 조화, 이런 속에서 새로운 인간상을 포함하여 가치관 문제가 중요하게 제기되는 단초라도 마련됐으면 좋겠어요.

박태견  앞으로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교육문제나 지방문제도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관점에서 끌어가야 한다는 것이죠. 우리는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데 모든 역량을 쏟아야 합니다. 광고카피 중에 “삼성이 하면 다릅니다”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광고의 영향력이 매우 큽니다. 삼성이 진입하는 모든 분야에서는, 가령 제2금융권 같은 데서는 삼성의 시장점유율이 금방 1위가 되어버립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잘못된 물신주의 때문이죠. ‘큰 데가 안전하다. 그들이 하면 다 잘할 것이다’라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갖게 된 거대한 것에 대한 물신화가 아주 만연되어 있어요. 그것이 시장 내에서 공정한 경쟁을 아예 차단시켜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노사관계도 진짜 공정하면 문제가 안 생기지 않습니까? 어느 한쪽으로 힘의 균형이 쏠리거나 한쪽의 이해만을 대변하거나 하니까 협상으로 풀릴 수 있는 문제가 협상이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노당선자가 제일 신경을 써야 하는 대목이 공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당선자는 이번 대선과정에서 어떻게 자신이 대통령이 됐는가가 놀랍다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그건 바로 우리 사회에서 공정한 경쟁을 원하는 욕구가 굉장히 크다는 겁니다. 과거 몇십년 동안 불공정 게임 속에서 많은 희생을 치렀고, 결과에 승복하지 못한 사례도 많았지 않습니까? 그런 부문에서 노당선자가 지켜야 하는 제일 큰 원칙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공정한 룰을 만들고 끝까지 그대로 집행하겠다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유재건  두 분이 우리 사회의 난제들을 말씀하셨는데, 십분 공감하면서 저는 좀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사실 우리 현대사를 돌아보면 그야말로 끔찍한 전쟁도 치르고 가난과 핍박을 겪으면서도 어쨌든 경제발전과 민주화 과정에서 크게 후퇴하지 않고 진전해왔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상당한 역동성을 보여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럴수록 현단계 우리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이 필요한데, 한국사회가 세계체제의 영향을 크게 받지만 거꾸로 한국사회나 한반도 현실이 긍정적으로 바뀌게 될 때 동아시아나 세계에 미치는 영향도 예상외로 크다는 것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이번 대선도 그저 정치후진국인 한국이 선진국으로 가는 도정에서 좀 민주화되었다는 그런 정도가 아니라, 앞으로 하기에 따라서는 만델라의 등장이라든가 브라질 룰라정권의 성립보다 더 큰 세계사적 의의를 가질 수도 있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진전시키면서 숱한 난관들을 지혜롭게 풀어가다보면, 영향력이나 어떤 모범의 제시라는 면에서 세계사에 의미있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장시간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