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소설
공선옥 孔善玉
1963년 전남 곡성 출생. 1991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소설집 『내 생의 알리바이』 『멋진 한세상』, 장편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살』 등이 있음. hahan7@hanmail.net
영희는 언제 우는가
“아이, 아이, 애란 어미 어디 갔느냐.”
악을 쓰는 노인은 영희의 시고모다. 영희가 나오는 곳은 화장실이다. 느릿느릿한 영희 거동에 내가 다 애가 단다.
“할머니, 애란이가 아니고 아람이요.”
노인이 영희 큰딸 아람이를 애란이라고 하든 애랑이라고 하든, 꼭 그 자리에서 토를 달 필요는 없다. 그런데도 무슨 어깃장이었던가. 서방 죽어도 처먹을 것 다 처먹고 볼일은 다 보는 저년이나 네년이나 한통속이라고 노인이 느끼는 것 같아서일까. 노인이 나를 흘낏 건너다보는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다. 모가 서 있다. 내 말에는 대꾸하지도 않고 노인이 대뜸,
“아이, 너는 어째 허는 짓이 다 그 모냥이냐. 상석 올리얄 것 아녀.”
시고모의 악다구니에는 이골이 나 있다는 태도인가. 아니면 저도 많이 지쳐서 그런 것일까. 영희는 내가 봐도 사뭇 답답한 걸음걸이로 부엌으로 들어간다. 영희 뒤태를 매섭게 꼬나보던 노인이 헤앵, 탄식의 한숨을 몰아쉬고 나서 돌아선다.
밥과 국과 나물 몇가지가 올려진 소반을 들고 영희가 제 남편의 시신이 놓여 있는 안방으로 들어간다. 아침에 동네 바느질장이가 가져다준 하얀 나일론 소복치마가 자꾸 발에 걸려 영희 발걸음은 위태롭다.
“아이, 상석 놓을 때마다 내가 일일이 말을 해야 알아듣겄냐. 곡을 해얄 것 아녀, 곡을.”
방안에서 예의 노인의 새된 소리가 흘러나온다. 영희는 잠잠하다. 참다 못한 노인이 먼저 아이고오 아이고오, 곡을 한다. 노인의 곡소리는 하나도 슬프지 않다. 청승맞은 노랫가락 같다. 흐흑, 아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영희 큰딸 아람이 울음소리다. 이어, 애애애애, 영희 막내아들 건주 울음소리. 방 밖에서 그 소리를 듣던 동네 아낙이 뭣이여, 저것이, 뭔 맴생이가 우는 것이여? 하고 비어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섰다가, 어이 자네는 시방 이 판국에 웃음이 다 나온단가? 다른 아낙의 면박에 후다닥 부엌으로 내뺀다.
“고모할매 자꾸 울엄마한테 뭐라고 하지 마란 말예요. 그란해도 울엄마 맘은 천갈래 만갈래로 찢어질 판인데, 고모할매가 자꾸 호랭이같이 갈구니까는 울엄마가 더 슬프잖아요.”
이건 둘째 소담의 야무진 일갈이다. 소담이는 차돌멩이같이 야무져서 죽은 제 아비 사랑을 제일 많이 받은 아이였다.
“엇따따, 호랭이 물어갈. 소자 났다, 소자 나. 소자 나면 뭣을 헐 것이냐, 인자 느그 애비도 없는디. 아이고오 아이고오, 창색아아, 내 새끼 창색아아, 이 무정허고 무심헌 놈아아, 너를 업어주고 키워준 느그 고모를 내던져불고 뭣이 그리 바빠서 뒤도 안 돌아보고 가부렀느냐아. 아이고오 아이고오, 농판이 되아분 느그 아부지는 어찌라고 너 혼자 가부렀느냐아아. 원통허고 절통혀서 고모는 못 살겄다아……”
노인의 마른 울음 섞인 사설은 끝이 없다. 어제 처음 이 집에 들어섰을 때부터 줄창 들어온 통곡소리다.
싸락눈이 내린다. 싸락눈은 싸락싸락 내린다. 영희집 뒤안에 무성한 대나무 이파리와 싸락눈이 부딪치는 소리가 난다. 싸락싸락 싸르르, 그러다가 그 소리는 이내 서걱서걱 소리로 변하기도 한다. 바람이 불어 대나무숲이 일렁거리면 솨아아, 파도소리가 난다. 나는 선득거리는 마루에 서서 눈내리는 소리를 듣는다. 눈이 댓이파리와 부딪는 소리를 듣는다. 대숲 일렁이는 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들을 들으면서 영희 울음소리를 기다린다. 영희가 울어주기를. 제 남편 죽었다고 동네방네 다 들으라고, 제 가슴 주먹으로 콩콩 찧으며 울어주기를. 그러나 영희는 잠잠하다. 조바심이 인다. 문을 열고 야, 울어라 울어 좀, 한마디쯤 던지고 싶다. 영희가 울지 않으니까 영희 친구인 나도 눈치가 보인다. 아침 일찌감치 건너온 영희 일가 아낙이 부엌 샛문 틈으로 슬쩍 내다보는 것이 아무래도, 당신이 대관절 누구관데 식전부터 초상집 마루에서 건들거리느냐, 된 통박을 줄 것만 같다. 실제로 어젯밤 나는 부엌 안에서 흘러나오는 아낙들 속닥이는 소리를 들었다.
“조문 와서 잠이나 퍼자는 여자는 세상천지 처음 보네.”
“누구여?”
“아람 어매 친구라네. 어째 아람 어매는 친구를 사개도 꼭 저런 친구를 사갰으까.”
이곳에 오기 전에 먹은 약이 독했던가. 혼곤하게 잠이 쏟아져 견딜 수가 없었다. 영희집에 오자마자 아무데나 사람이 없는 빈방을 찾아 누워버렸는데, 내가 생각해도 그건 흉거리일 수밖에 없을 거였다. 그래도 약 덕분인가. 아침에 일어나니, 미열이 좀 나긴 했지만 견딜 만했다. 통증도 싹 가셨다.
내 신발을 찾는다. 아무리 찾아도 신발을 찾을 수가 없다. 마루밑을 들여다본다. 강아지 새끼들이 구물구물하다. 야, 저리 가, 아줌마 신발 내놔. 강아지들이 나를 멀뚱멀뚱 쳐다본다. 우리는 아무 죄 없는데요. 태연자약한 그 표정이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 영희 남편 신발인가. 강아지가 깔고 앉은 것은 커다란 농구화다. 먼지와 개털과 흙투성이 농구화. 개밥그릇이 비어 있다. 나는 영희 것 같은 파란 비닐슬리퍼를 꿰어신고 마당 아래 아랫방으로 간다. 젖은 신이었던가. 발이 시렸다. 어젯밤, 소담이가 강아지들한테 줄 먹이를 그 방에서 꺼내오는 것을 봤다. 상중에도 소담이는 이 앙 다물고 저희 집에서 키우는 짐승들 챙기고 집앞 버섯하우스도 살핀다. 소담이는 제 이름처럼 소담스레 살핀다. 내가 어제 소담이 저것이 어디를 가나 하고 살살 뒤따라 가봤더니 그랬다. 하우스 거적을 덮어주는 소담이 어깨가 흔들렸다. 속울음을 우는 아이 어깨 가만히 쓸어주는 것밖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지금, 소담이 대신 내가 이 집의 짐승들을 챙겨주는 것밖에는.
아랫방 문앞 토방에 신발들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다. 거기 내 신발이 있나. 눈에 띄는 것은 운동화와 털신 그리고 구두다. 남자구두다. 그 남자 신발이다. 내게 약을 사주었던 남자. 숨을 좀 깊게 들이마셔본다. 방에 그가 있을까.
“이 차가 광주 가는 차 맞나요?”
내가 대답할 새도 없이 남자는 내 옆자리에 앉았다.
“어디 가시는데요?”
“광주 가지요.”
광주 가는 차인 줄 알고 탔으면서 광주 가는 차냐고 물은 사람이나, 광주 가니까 광주 가는 차냐고 물었을 사람한테 어디 가느냐고 물은 나나 어딘가 아구가 맞지 않은 질문들을 한 것 같기는 했다. 그리고 남자와 나의 문답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차가 서울시계를 벗어나면서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운전사가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남쪽 지방에 대설주의보가 내렸다는 기상정보를 알리고 있었다.
“눈이 많이 오는군요.”
경황이 없어 옷을 허술하게 입었을 뿐 아니라, 몸상태가 안 좋아 차가 휴게소에 정차했을 때도 나는 그냥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갔다 들어온 남자가 캔커피를 건넸다. 캔은 따뜻했다.
“광주 가십니까?”
“네.”
나는 짧게 대답했다. 광주 가는 차에 탄 사람보고 광주 가냐고 묻는 것이 우문인지 현문인지 더는 따지고 싶지가 않았다. 몸상태가 안 좋아서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무언가를 생각한다거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만한 마음의 여유가 내겐 없었다. 남자가 건네준 커피를 마실 염조차 나지 않아 나는 캔을 그대로 손에 쥔 채 창밖을 내다보았다.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눈발의 기세는 더 거세지고 있었다. 차 안에 난방이 되고 있는데도 나는 추웠다. 아침에 나설 때부터 예감이 좋지 않더니 버스를 타고 얼마 안 지나 몸살기운이 급격히 몰려왔다. 내가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아야 할 정도로 극렬한 난동을 부리고 나간 남편은 어젯밤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제 그는 영영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그래주기를 나는 바랐다. 늘 그랬던 것처럼 그가 집으로 들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나면 나와 아이들은 절망할 것이다. 새벽녁에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기의 발신자번호 표시창을 노려보았다. 공중전화면 틀림없이 남편 전화일 것이었다. 여기 과천이야, 혹은 야, 여기 강원도 정선이다. 남편에게서 내가 들을 수 있는 말은 그것이 전부일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 말은 돈을 준비해놓으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전화는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어제 옆집 슬기 엄마 표현대로라면, 눈에서 불이 날 정도로 남편에게 대항했다. 그 후유증으로 몸은 비록 아팠지만, 그동안 내가 아무 소리도 못하고 산 세월들이 억울할 정도로 시원한 감도 없지 않았다. 나는 남편에게 나가라고 악을 썼고 남편은 내가 악을 쓰는 것에 맞추어 나를 두들겨팼다. 슬기 엄마와 내 아이들이 합세하여 남편을 몰아내지 않았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졌을지 알 수 없었다. 전화벨이 울릴 때 잔뜩 오그라들던 마음이 표시창에 뜬 숫자를 확인하자 금세 누그러졌다. 그것은 영희에게서 온 전화였다.
“박창석씨, 지금 막 저세상으로 갔다.”
영희 목소리는 예상했던 대로 담담했다. 췌장암을 앓는 남편의 격렬한 고통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했던 날들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을 거였다.
“………”
얼얼한 느낌에 얼른 말이 나오지 않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편안히 갔어.”
“애들은?”
“괜찮아. 인사도 다 하고 할말 다 하고 그러고 갔어.”
“첫차로 가마.”
“무리는 말고.”
“무리면 가지 마?”
“……와줘.”
전화가 툭 끊겼다. 몹쓸 내 남편은 집을 나갔고 착한 영희 남편은 저세상으로 갔다. 그리고 몹쓸 내 남편이나 착한 영희 남편이나 한가지로 그들이 떠난 자리에 남은 것은 천장만치나 쌓인 빚뿐이다.
아이들을 옆집에 맡겼다. 옆집 슬기 엄마는 내가 아이들을 맡길 때마다 늘 전투적인 표정이 된다. 슬기 엄마 같은 이가 내 이웃인 게 나는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밥을 많이 먹어 힘이 센 슬기 엄마는 내 아이들에게 나보다 더 든든한 보호막이 되어줄 것이다.
깜박 잠이 들었던가보았다. 잠에서 깨어나니 몸이 으실으실 춥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남편이 집을 나가면서 부린 행패를 막으려다 다친 옆구리께의 통증도 아직 가시지 않았다.
“어디가 많이 아픈 모양이에요?”
“………”
“춥습니까?”
“………”
“아저씨, 난방을 좀더 세게 해줄 수 없습니까?”
뭐야아, 지금도 더워 죽겠구만. 기사님, 무슨 차 안이 이렇게 더워요? 다른 승객들의 원성이 즉각적으로 쏟아졌다. 난감해진 건 운전사였다.
“여기 환자가 있어서 그래요.”
운전사가 끝내 남자의 편이 되어주지 않은 건지 아니면 온도를 올렸는데도 내가 추운 건지 알 수 없었다. 머리에서 열은 나는데 몸이 떨렸다. 남자가 문득,
“괜찮으시다면, 제 옷을 덮으시지요.”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남자가 무릎에 올려놓았던 코트를 내게 건네주었다. 나는 남자의 옷을 거절할 기운이 없었다. 차는 폭설 속을 기었다. 폭설 속을 달리는 차 안에서 남자는 어느새 내 보호자가 되어 있었다. 어찌하다보니까 그렇게 되었다. 옷을 덮어주고 물을 가져다주는 남자에게서 나는 어떤 지극한 보살핌의 기운을 느꼈다. 그것은 한자리에 같이 앉아 가는 사람이 보일 수 있는 친절 이상이었다. 옆자리에 앉은 낯선 사람에게, 단지 아프다는 이유만으로 베푸는 친절이 그러나 나는 싫지 않았다. 기이한 것은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할 상황이 분명한데도 이 남자는 내가 인사 같은 것을 챙기지 않아도 될 사람인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우리는 아무래도 구면인 것 같았다. 얼핏 맡아지는 어떤 냄새, 오래된 기억 속에서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 냄새가 바로 남자의 옷에서 났기 때문이었다. 내게 한번 왔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냥 가버린 그 냄새.
더욱더 기이한 것은, 그 냄새인 것 같다가, 차츰 그 냄새라고 단정을 짓고 나자, 욕망인 것도 같은 혹은 분노인 것도 같고 그리움인 것도 같은,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터무니없는 어떤 감정 하나가 불쑥 고개를 들이민 것이었다. 말하자면 나는 이제야말로 그 냄새가 나는 옷의 주인에게 매달리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내가 몹시 힘드니, 당신이 당신 옷으로, 그 다정한 냄새 나는, 그 평화롭고 온순하고 모든 정상적인 것의 냄새가 나는 옷으로 나를 감싸서 어디론가 데려가줘야 한다고 애원하고 싶은 것이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그러고 싶다는 강한 유혹을 느꼈다. 격렬한 통증과 한기 속에서도 나는 남자의 보살핌의 기운에 흠뻑 빠져버리고 싶었다. 남자의 보살핌의 기운이 달콤한 게 아니라, 그 기운에 빠져버리고 싶다는 기분이 달콤한 거였다. 맹랑하기 이를 데 없는, 그러나 굳이 거부하고 싶지 않은.
“비가 온다, 비가 와.”
비가 내리는 휴일이면 영희는 늘 부침개를 부쳤다. 부엌에서 부침개를 부쳐 방안으로 건네주며 영희가 말했다. 나는 영희가 부친 부침개를 먹으며 자췻집 마당에 수직으로 꽂히는 빗줄기를 바라보았다. 영희가 내뱉듯이, 탄식하듯이 비가 온다, 비가 와, 라고 한 것은 비가 오니 만성리 가는 계획 취소하자는 소리라는 걸 나는 알았다. 영희와 한방에서 자취한 지 삼년인데 그 정도 못 알아먹을 내가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리 날씨가 맑다 하더라도 가난한 전자공장 여공인 우리가, 실지로 만성리 해수욕장을 갈 수나 있었을까. 영희는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또 배 깔고 엎드려서 그 특유의 느린 말투로,
“해수욕장 가면 사람도 많고 순 바가지 쓴다더라.”
그러면 나도 질세라,
“맞아, 거긴 순 놀고먹는 애들만 간다더라.”
그날, 영희 시골집에 간 건 영희와 나의 그런 문답이 오간 뒤였을 것이다. 그날은 사흘간 주어진 여름휴가 첫날이었다. 휴가 때 산으로 바다로 놀러 가자는 꿈이 우리에겐 그저 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애초부터 우리는 해수욕장을 갈 만한 처지들이 아니었다. 멋진 수영복 있고 녹음기 있고 기타 있는 대학생들이나 가는 곳이었다. 젊음이 넘쳐흐르는 해변은 애초에 우리 것이 아니었다. 다섯 식구가 오글거리고 사는 단칸방에서 살 수 없어 집을 나와 자취를 하는 처지에 휴가라고 집에 들어갈 입장이 아니었던 나는 영희네 어머니와 영희 동생들에게 줄 복숭아를 사서 영희를 따라 영희 시골집으로 갔다.
영희네 집앞 길은 대숲 사이로 난 오솔길이었고 낮인데도 어둠침침했다.
“영희야, 대나무들 키가 왜 이리 크다니? 정글 같아.”
“몰라, 아마 키큰 남자가 키우는 대나무라서 그런가봐.”
그렇게 말하고 나서 영희가 까르르 웃었다. 영희의 웃음소리가 나자마자 어디선가 휘파람 소리가 났다.
“영희야, 휘파람 소리 내는 새도 있어?”
“몰라. 휘파람 잘 부는 남자는 있어.”
“어디?”
“바로 여깄습니다.”
컴컴한 대숲에서 한 남자가 불쑥 나타났다. 나는 영희 표정만 보고도 영희가 어떻다는 걸 알았다. 영희는 그러니까 일부러 대숲길을 택한 것이었고 그 숲속에 그가, 말하자면 제가 보고 싶어하는 그 남자가 있으리란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창석이 너 언제 내려왔니?”
“유월부터 내려와 있었다야.”
“학교는?”
남자가 대답 대신 그냥 미소지었다.
“창석아, 복숭아 먹을래?”
“밤에 가지고 나와.”
“어디로?”
“샘골 계곡으로.”
고개를 끄덕이고서 영희는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계집애같이 나풀나풀 뛰어갔다. 영희는 저녁밥 먹고 나서 복숭아 두 알을 몰래 우물 속에 빠뜨려놓고 어머니와 동생들에게는 나머지 복숭아를 깎아주었다. 영희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얼굴에 복숭앗빛 같은 분홍 홍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쪼글쪼글한 영희 어머니는 잠도 쪼글쪼글 엎드려 잤다. 영희 어머니는 작년에 술병으로 죽은 영희 아버지 살아 있을 때부터 너무 고생을 많이 해서 잠조차도 편하게 자는 것을 잊어버렸다고 했다. 영희 동생들은 생쥐처럼 눈을 뜨고 우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영희가 말했다.
“눈감아.”
동생들은 거짓말처럼 모두 눈을 꾹 감았다. 우리는 우물에 빠뜨려놓은 복숭아 두 알을 감싸쥐고 사립을 빠져나와 대숲 사이로 난 오솔길을 달리고 다복솔이 우거진 뒷동산을 다람쥐보다 빠르게 올라가 약속장소인 샘골 계곡으로 갔다. 물소리가 나는 사이사이로 두런거리는 남자 말소리가 들려왔다. 야심한 밤에 듣는 굵은 남자 목소리는 스무살 처녀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영희가 어둠뿐인 허공으로 복숭아 한알을 내밀었다. 창석이 받았다.
“복숭아 비싸지?”
“몰라. 물가 비싼데 복숭아라고 안 비쌀까.”
“여긴 내 친구. 거긴 니 친구냐?”
“응.”
창석이 빙글빙글 웃었다. 창석 옆에서 바보같이 서 있던 남자도 빙글거렸다.
“참 내, 내력 없이 웃기는.”
퉁을 주는 영희도 웃기는 마찬가지였다.
“서 있지 말고 우리 앉자.”
창석의 제안에 따라 우리는 모두 계곡의 널따란 바위에 걸터앉았다. 한참 동안 이쪽이나 저쪽이나 복숭아 나눠서 깨물어 먹는 소리만 났다. 계곡에 오래 발을 담그고 있었더니 발이 시려왔다. 깊은 계곡인데다 밤이 깊으니 밤이슬이 내려 한기가 돌았다. 그래도 꾹 참고 밤하늘의 별을 우러르기도 하고 괜스레 웃기도 했다. 창석의 친구가 창석에게 속닥였다.
“걔네들보다 낫다.”
“누구?”
“혜련이.”
“와아, 지난번 미팅한 이대생?”
“걔네 완전 부르주아야.”
영희와 나는 고개를 푹 수그리고 발가락만 내려다봤다. 우린 잠이 왔던 것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렇게 눈을 내리깔고 있었는지도. 하지만 기가 죽었다고 해야 더 정확하리라. 그렇지만 기죽은 표시 안 내려고 잠오는 척 눈을 내리깔고 있었는데 결국 졸음이 밀려왔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한숨도 자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잠든 척 잠 못 드는 내 몸을 따스하게 감싸주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남자의 옷이었다. 남자가 내 몸에 덮어주는 옷의 감촉이 느껴지자 나는 말할 수 없이 행복해졌다. 혹시 꿈이 아닌가 싶어서 나는 그 꿈을 좀더 오래 지속시키고 싶다는 생각으로 일부러 눈도 뜨지 않고 고개도 들지 않았다. 그러고 있자니 가슴이 거세게 요동쳐왔다. 영희와 창석은 각자가 입은 옷 그대로 자고 있었다. 그런데 내게는 특별히, 남자의 옷이 덮여 있었다. 나는 내게 옷을 덮어준 남자가 무릎을 세워 얼굴을 묻은 채 자고 있는 것을 남자의 옷에서 나는 냄새를 맡으며 지켜보았다.
“알아요? 이제 방금 망초꽃이 피었어요.”
나는 깜짝 놀랐다. 자고 있는 줄 알았던 남자가 고요하게, 그러나 열에 들뜬 목소리로 내게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남자가 내게 가까이 다가앉았다. 그러곤 내 손을 꼬옥 쥐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가슴이 팡, 하고 터져버릴 것만 같은 느낌에 나는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미동도 하지 못한 채로 나를 덮고 있는 남자의 옷에 코를 박았다. 옷에서는 옷주인인 남자의 체취일 것이 분명한 냄새가 나고 있었다. 내가 덮고 있는 남자옷에서 나는 냄새, 그것은 이전에 내가 한번도 맡아보지 못한 냄새였다. 역으로 이런 말도 가능할 것이다. 그 남자의 옷이 그날 밤 그 계곡바위에서 내 몸을 덮지 않은 옷이라면, 그 옷에서 나는 냄새는 이 세상 어떤 옷에서 나는 냄새와 다를 것이 없다고.
나는 지금 내게 옷을 덮어줬던 그 남자의 얼굴을 확실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옷에서 나던 냄새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러면, 그러면 이 남자가 바로 그일까.
“혹시, 혹시 말이지요. 이십년 전 일인데요.”
“네.”
“밤에 계곡에서 복숭아를 먹은 기억이 있나요?”
“복숭아야 많이 먹었지요. 이십년 전에도 먹었을 것이고, 십년 전에도, 일년 전에도, 지난 여름에도 먹었을 거구요. 복숭아 좋아하세요? 하기사 아프면 복숭아가 먹고 싶을 수도 있어요. 어렸을 때 어머니는 내가 아프면 꼭 복숭아 통조림을 사다주시곤 했죠. 어머니는 간즈메라고 했는데, 지금도 이따금 아플 때는 어머니의 그 간즈메가 떠오르곤 합니다.”
광주 광천동 터미널에 내렸을 때 눈은 그쳐 있었다. 남자는 내게 덮어줬던 코트를 거둬가며 필요 이상으로 미안해했다. 남자가 문득 말했다.
“가지 말고 이 자리에서 잠깐 기다려주시겠습니까?”
“………”
남자가 어디론가 뛰어갔다. 돌아온 남자가 수줍어하며 내미는 비닐봉지 속에 든 것은 약봉지와 복숭아 통조림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헤어졌다. 담양으로 가는 버스는 흔하게 있었지만, 영희집까지 가려면 담양읍내에서도 한참을 들어가야 했으므로 내 몸상태로서는 버스를 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택시를 타고 영희집에 오자마자 영희 아이들 방으로 들어가 아이들이 오물오물 앉아 훌쩍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누워버렸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저녁도 다 지난 밤이었다. 문밖은 사람들 소리로 두세두세했다. 큰아이 아람이와 막내 건주는 울다가 지친 듯 내 발밑에서 자고 있었다. 내가 일어나자 여태 자고 있던 소담이가 발딱 일어났다.
“아줌마, 아파요?”
“응. 근데 이젠 약 먹어서 괜찮아.”
“아줌만 우리 엄마의 진정한 친구 같아요.”
“왜?”
“울엄마 땜에 아줌마가 아파버리잖아요. 선생님이 그러는데, 진정한 친구는 친구의 아픔을 자기 아픔처럼 여기는 사람이랬어요.”
다 늦은 밤인데 소담이가 양말을 두 겹으로 껴신고 벙거지를 뒤집어쓰고 밖으로 나갔다, 어디 먼데로 갈 것처럼.
“소담이 어디 가니?”
“울아빠 돌아가셨어도 우린 살아야 하니까, 개밥도 퍼주고 들에 나가 하우스도 살펴야 해요. 오늘 우느라고 아무것도 못했거든요.”
소담이 하는 짓이 너무나 대견해 나도 모르게 소담이 뒤를 따라나섰던 길이었다.
하우스 문을 잠그고 돌아서는데 저쪽 모퉁이 어둠속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꺽꺽거리는 소리가 나서 처음에는 누군가가 술을 먹고 토하는 소리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울음소리였다. 한 남자가 아무도 보이지 않는 하우스 모퉁이 어둠속에서 격한 울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우뚝 내 발걸음이 멈춰졌다. 그 남자였다. 그가 내게 건네주었던 미색 코트가 아니라도 나는 이제 확실히, 그리고 아무리 먼발치에서라도 그 남자를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구니?”
“울아빠 친구분이래요. 저 아저씨랑 울아빠랑 학교 다닐 때 데모도 같이하고 엄청 친했는데요, 아저씨랑 아빠랑 되게 싸웠대요. 음, 서로 사상이 안 맞았다나 어쨌다나. 하여간 그래가지고는 울아빠가 학교도 그만두고 감옥 갔다와서 울엄마랑 결혼하고 우리 낳고 사는 동안 한번도 못 만나다가요, 어디선가 울아빠 아프단 소식 듣고 오셨거든요. 그래서 아빠랑 화해하는 것을 저도 봤어요. 근데 울아빠도 착하지만 저 아저씨도 되게 착해요. 모르는 할아버지 할머니들한테도 꼬박꼬박 인사하고요, 아이들한테도 항상 웃어주고요, 하여간 그래요. 아까 저녁에 아줌마 잘 때 왔는데요, 아저씨가 버스에서 내려 터덜터덜 걸어오다가요,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가지고요, 다리를 다쳤다네요, 내 참. 저 아저씨 걸음걸이가요, 원래 터덜터덜 하걸랑요. 아줌마, 울아빠 이름이 박창석이잖아요. 저 아저씨가 뭐라 그런 줄 알아요? 울엄마한테, 앞으로 창석이 보고 싶으면 절 보세요, 그러잖아요, 흥.”
숨도 안 쉬고 말한 뒤끝에 야무지게 붙이는 콧방귀라니. 소담이 아빠는 이런 딸 있어 마음놓고 저세상으로 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가서 달래드리렴.”
“싫어요.”
“왜?”
“있잖아요, 사실은요, 나도 저 아저씨 착한 거는 알거든요. 근데요, 저 아저씨가 울엄마한테 한 말 땜에 내가 기분이 나빠져버렸거든요.”
아랫방 문을 슬며시 연다. 방안은 어둠침침하다. 어젯밤 늦게까지 음주를 하던 영희 남편 친구들 몇몇이 너부러져 있다. 문옆에 바로 ‘도그 푸드’라 씌어진 포대가 있다. 포대 안에 담겨 있는 양은그릇으로 하나 가득 개밥을 퍼담는다. 농군 복장의 영희 남편 친구들 안쪽으로 그가, 어제 내게 덮어줬던 낯익은 미색 코트를 덮어쓰고 누워 있다. 어젯밤 과음을 한 건지도 모른다. 나는 얼른 문을 닫는다. 영희가 안방에서 나오며 제 신발을 찾는다. 나는 얼른 신을 벗어주고 마루로 올라선다. 마루는 선득선득하다. 젖은 양말은 마루에 그대로 내 발자국을 만든다. 춥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르고 그렇게 마루에서 서성거린다.
“방에 들어가 있으렴.”
“응, 그래.”
나는 건성으로 대답한다.
“어서.”
영희가 채근한다. 쫓기듯 들어선 방에는 어제 영희의 시고모가 피운 고춧불 내가 가시지 않아 매운내와 향내가 뒤엉킨 매캐한 냄새가 난다.
“앉어보씨요.”
노인은 언제 울음 섞인 사설로 대성통곡을 했던가 싶게 말끔한 얼굴이다. 시신이 걱정될 정도로 방바닥은 지글지글 끓는다. 아직 입관을 하지 않은 시신은 병풍 너머 칠성판 위에 누워 있다. 병풍이 이승과 저승 사이를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다. 나는 어색하게 앉는다.
“어디서 오셨소?”
“서울에서요.”
“아는 멫이요?”
“………”
“옳아, 아를 두고 나왔는갑만.”
“………”
“그러지 마시요. 아들은 그저 에미 품안에서 키야제. 요새 이핀네들은 어째 지새끼 중한지를 모르까, 끄응. 사램이 그러면 안돼야. 즈그년들이 집 나가봐야 뭔 존 꼴을 보겄어.”
노인은 영악하다. 아니, 숭악하다. 실로 사납다. 영희가 지금 그 사나운 눈초리를 고스란히 받고 있다. 내가 가만히 있자 노인은 차마 영희 면전에서 못하겠는 말, 이때다 싶게 쏟아놓는다.
“배운 이핀네들은 글도 안해. 꼭 밴 바 없는 년들이 처나가드라고.”
“할머니,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내가 허는 말이 뻘말인지 아요. 이 동네만 해도 아조 쎄부렀소. 보씨요, 인자 저그 저, 동네 가운뎃집, 서방이 허는 일이 잘 안되얐어. 그렁게 여자가 인자사 포도시 걸음마허는 새끼를 두고 어디로 가부렀네. 오메, 그 갱아지새끼 같은 것이 지 에미 찾니라고 뽁뽁 기다니메 깨갱거리는디, 아이고오, 그 할마씨도 복도 복도 그리 없으까. 아이고오, 창색아아, 니 새끼들 짠해서 고모가 죽겄다아, 창색아아아……”
“할머니!”
“이 이핀네가 여가 어디라고 눈을 똑바로 뜬댜?”
나는 그만 밖으로 나와버린다. 어디로 갈 곳이 없다. 아이들 방에는 남자노인들이, 작은방에는 여자 노인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그중에 며느리가 집을 나가 ‘뽁뽁’ 기어다니는 손주를 안고 온 할머니도 있을까. 부엌으로 가본다. 동네 아낙들이 더러는 서 있고 더러는 앉아 있다. 악상이라 음식을 걸게 장만할 것도 없다. 오는 손님이라고 해봐야 동네사람이 전부다. 아랫방에 있는 영희 남편 친구들이라고 해봐야 전부 동네친구들이다. 먼데서 온 사람은 오직 나와 그뿐이다. 마당에는 초상집에 으레 쳐져 있기 마련인 차일도 없다. 빈 마당에 영희 남편 친구들이 어젯밤 피워놓은 화톳불이 시나브로 사위어가고 있다. 날이 하도 험해 혹간에 오는 조문객은 아랫방 옆 창고 안에서 받는다. 받는 사람도 없다. 영희 남편 친구들은 거개가 술을 먹었다. 영희와 영희의 아이들이 그 창고 안에 있다. 창고 안에는 누가 갖다놨는지 석유난로가 타고 있다. 아람이는 눈이 퉁퉁 부어서 제대로 뜨지도 못한다. 건주는 기를 쓰고 엄마 치맛자락만 붙잡고 있다. 소담이가 그래도 제 어미 먹으라고 부엌에서 음식을 가져온다.
“엄마, 먹어.”
영희가 밥을 먹는다. 제 아이들더러 먹으라는 말도 안하고 저 혼자 먹는다. 그 모양이 좀 민망하다.
“너희들은 밥 먹었니?”
건주가 도리질친다.
“아줌마가 밥 갖다주까?”
아람이가 도리질친다. 영희는 말이 없다. 말없는 것은 이해한다. 그런데 애들한테 밥 먹으란 소리를 안하는 것이 좀 마음에 걸린다.
“소담이는?”
“난요, 엄마만 먹으면 되걸랑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입꼬리가 비틀려지는 게 금방이라도 울 것 같다.
“영희야.”
“말해.”
“저기, 저기 말야.”
“애들은 왜 안 먹이고 나만 먹냐구?”
“응.”
나는 좀 무안해진다.
소담이 눈꼬리가 비틀린다.
“아줌마, 울엄마한테 뭐라고 하지 마세요. 고모할매랑, 동네사람들이랑, 아빠 친구들이 착한 줄 아세요? 울엄마 편은 하나도 없어. 진짜 속상해, 어어엉. 아빠 아파서 병원에 오래 있었잖아요. 그때도 동네사람들이 울엄마 어디로 도망가는가 잘 보라고 했단 말야. 그때마다 나는 진짜 여기 안 살고 싶었어, 어엉. 아빠는 뭐할라고 괜히 아파가지고 엄마를 힘들게 하냔 말예요. 그래놓고는 이제 와서 아빠만 가버리면 이제 엄마랑 우린 어떻게 살아가느냔 말예요, 어어엉.”
초등학교 오학년짜리 입에서 나오는 서러운 항변이다. 소담이 가슴속에 켜켜이 쌓인 저 울분, 저 분노, 저 슬픔을 소담이가 되어보지 않고서 어찌 알까. 엄마 치맛자락 절대로 놓지 않을 것 같던 건주가 툭 뛰어나간다. 건주가 뛰어나가 붙잡은 사람은 그 사람이다. 미색 코트는 그새 쭈글쭈글하다. 내 가슴 저 밑바닥에서 무슨 소린가가 울리다가 사라졌다. 그것은 지극히 한순간이라, 그 소리가 뭔가, 얼른 알아채지 못했다. 그것은 세월 저편의 기억이 화들짝 깨어나는 소리. 그것은 망초 꽃가루 화르르 떨어지는 소리. 그것은 바람에 별이 씻기는 소리. 그것은, 그것은…… 그것은 그리고 무엇인가.
“불이 다 죽었네.”
“아니에요, 지금도 살아 있어요. 빨갛잖아요.”
여섯살 건주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아니라고, 진짜 아니라고, 보라고 마당에 타다 만 화톳불을 가리킨다.
“그게 아니고, 봐라, 재만 남았잖아.”
“재만 남은 건 죽은 거예요? 우리 아빠처럼?”
“그래, 너희 아빠처럼.”
“아하, 그렇구나. 그런데 아저씨, 죽는 거는 슬픈 거죠.”
슬프다는 말만으로도 여섯살 건주는 슬퍼진다. 씰룩거리는 건주 입.
“죽는다고 다 슬프냐? 난 안 슬퍼.”
“정말 안 슬퍼?”
“응. 왜 슬퍼? 내 마음속에서 그 사람이 죽지 않으면 산 거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하나도 안 슬퍼. 그런데 슬픈 거 맞긴 맞냐?”
“아저씨 뭐예요옷.”
갑자기 소담이가 튀어나가며 버럭 악을 쓴다. 그와 한창 신이 나 있던 건주가 뭔가를 또 물으려다가 입을 합 다문다. 그는 끝내 나를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다.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은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밖이 소란스럽다. 관과 상여가 도착했다. 관과 상여가 사립을 들어서자마자 영희 시고모의 곡소리가 울려퍼진다.
아이고오, 아이고오, 창색이 이노무 자석아, 니가 타고 갈 생이가 왔따아, 너를 실꼬 갈 생이가 와부렀어어.
그가 문득 말했다.
“와아, 예쁘다.”
건주가 받았다.
“진짜.”
소담이가 남자와 건주를 싸잡아 째려본다.
“아이, 거서 뭣허냐? 인자 입관을 해얄 것 아녀, 입관을.”
곡을 멈춘 노인의 새된 소리에 영희가 화들짝 놀라 창고를 나간다.
곡을 혀라, 곡을. 아이고오 아이고오, 노인의 선창에 따라 아람이 흐느끼는 소리, 건주 애애애 소리가 초상마당에 울려퍼진다. 나는 기다린다. 영희 통곡소리를. 거침없이 터져나올 영희의 울부짖음을. 영희는 왜 울지 않는가. 아무리 저한테 짐만 떠안기고 떠난 미운 남편이라도, 제 속으로야 피눈물을 흘리더라도 일단은 소리내서 울음을 울어줘야 할 것 아닌가. 울음을 보여줘야 할 것 아닌가.
마당은 어제 내린 함박눈 위에 아침에 내린 싸락눈이 점점이 박혀 있다. 아들 초상 치르느라 골방으로 밀려난 치매노인이 무슨 일이 났는가, 문을 열고 체머리를 흔들고 있다. 나는 노인의 눈을 피해 영희집 문밖을 나서고 말았다. 아니다, 나를 골목으로 나서게 한 건 노인의 눈이 아니다. 그럼 무엇인가. 나는 예전에 영희가 그랬던 것처럼, 아무도 없는 골목에서 나비처럼 나풀거려본다. 나는 나의 황당한 몸짓이 부끄러워 누가 볼세라 날개 꺾인 나비처럼 영희집 담벽에 몸을 기댔다.
어젯밤 영희 남편 친구들은 마당의 화톳불 가에서 술을 마셨다. 울분과 분노와 슬픔을 토해내는 그들 얼굴은 화톳불이 반사되어 붉었다. 영희집만 빼고 온동네는 그저 하얀 눈에 파묻혀 있었다.
“창석이 그 자식이 공부 안하고 무슨 운동 한다고 할 때부터 내가 알아봤어. 내가 뭐라 그랬냐면, 명 재촉하지 마라고 했다고.”
“창석이 우덜 말 징하게 안 듣잖아.”
“창석이는 이 나라 농촌파탄정책이 죽인 거여. 다른 거 하나도 없어.”
“주범은 암인데 어째 농촌파탄정책을 범인으로 모냐? 너 같은 먹물들은 걸핏하면 정책 탓을 하더라?”
“너는 나한테 뭔 유감 있냐?”
“니 말이 그렇잖아, 마.”
“스으을 조용히 해라들. 니들은 만나기만 만나면 싸움질이냐들. 창석이가 이 꼴 보고 웃겄다, 웃겄어. 어이, 형씨, 먼데서 오니라고 고생하셨소. 술 한잔 받으쇼.”
먼데서 온 손님, 그는 술을 받아 단숨에 마셔버리고 말없이 불만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그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그는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문득 내가 그렇게 그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에 무척 행복해졌다. 행복하단 느낌이 몹시 당혹스럽기는 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영희 아이들은 울다 지쳐 자고 있었다. 오랜 고통 끝에 온 아비의 죽음은 아이들에게 슬픔과 동시에 평화일 수도 있을 거였다. 자는 아이들한테서는 상중임에도 모든 자는 아이들에게서 나기 마련인 달콤한 냄새가 났다. 마치 복숭아과육에서 나는 것과 같은. 미처 상복이 준비되지 않아 영희는 평상복 차림으로 왔다갔다했다. 내가 문틈으로 내다보고 있는 것을 영희는 괘념치 않아 하는 것 같았다. 골방에 들어가서 한참 동안 무엇을 하는지 부스럭거렸다. 나도 영희가 하는 일에 신경쓰지 않았다. 시부가 쓰는 작은방에서 영희 말소리가 고즈넉이 들려왔다.
“아부니, 아부니 아들이 죽었어요. 내일 손님들이 많이 올 거예요. 아부니, 도장방 깨끗이 치워놨거든요. 도장방에서 오늘하고 내일하고 이틀만 계세요, 알겠지요?”
영희가 제 시부한테 이르는 소리가 나는 뜬금없이 ‘오래 묵은 반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듣기에 편안하고 좋은 말소리였다. 영희 아이들한테서 나는 달콤한 아이들 냄새를 느끼며, 영희의 오래 묵은 반찬같이 친근하고 다정한 목소리를 들으며 설핏설핏 눈 내리는 상갓집 마당을 내다보고 있는 이 순간이 나는 말할 수 없이 평화로웠다. 그리고 거기 설핏설핏 눈발이 나부끼는 마당에 그가 있으니, 영희집 뒤안 대숲에 일렁이는 바람이 내 마음에도 불어오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확실히 느꼈다. 그것은 묘한 설렘이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날 밤, 복숭아를 깎아먹었던 그날 밤 이후에, 내가 그를 잊어본 적이 한번도 없었던 것같이 생각되었다. 정말로 나는 그랬을 수도 있다. 잊어본 적이 한번도 없다고 우기고 싶은 나를 나는 참으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날 밤이 뭐가 어쨌다는 말인가. 아무 일도 없었다. 단지 우리는 어느 여름밤에 별빛이 은은한 뒷동산 아래, 계곡 바위에 앉아 복숭아를 나눠먹고 헤어진 것뿐. 새벽 어스름에 영희와 창석은 각자 입은 옷 그대로 자고 있었는데 나는 그의 옷을 덮고 있었다는 것. 특별한 것이 있었다면 그뿐. 사실 겁날 것도 없는데 영희가 깨어나서 볼 것이 겁나 옷을 거두어 그에게 돌려주자 그가 문득 내 이마에 입술을 스치듯 댔다는 것, 그뿐이었다. 그리고 영희를 깨워 영희집으로 달려오다가 돌아보니 두 남자가 쑥스럽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는 것. 그렇게 새벽 어스름 속에서 쑥스러이 웃고 헤어진 것뿐. 그뿐.
잊고 말고 할 그 무엇도 없는 그날 밤을 한번도 잊은 적이 없다는 것은 순전히 가짜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나는 가짜 기분에 취해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또 어쩌자고 그런 맘이 들었던 것일까. 가짜라도 좋으니 그가 끈이 되어주고 내가 그 끈 붙잡고 실컷 한번 울어봤으면, 그러면 좋겠다는 마음 말이다. 그러나 나는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는 절대로 내게 오지 않을 것임을, 그가 내게 올 이유가 없음을. 그러면 내가 붙잡을 끈은 어디에 있는가.
상여가 떠난 영희집은 조용했다. 전화기를 붙잡는다.
“슬기 엄마, 나야.”
“한번 왔다가 갔는데 별일은 없었고 의자 하나 아작내고 나가데요.”
“애들은.”
“엄마 오기만 기다리죠 뭐.”
“알았어, 오늘이나 내일쯤 올라갈게.”
“걱정 말고 친구분이나 위로 잘하고 올라오세요.”
고무장갑을 끼고 뒷정리를 하고 있는데 영희 시고모가 들어선다.
“아이고를 안혀, 아조 안해부러. 그것이 뭣이간디, 창색이 가는 길에 축수허는 것이여. 저승길이 숼헌 길이 아녀. 그런디 그 속이 뭔 속인가 그것을 갖다가 안해부러. 지 냄편은 그리 헐허게 보내불고는 뭣이 좋다고 뭔 허연 가다마이 입은 남자헌테는 밥은 묵었느냐, 고생 많았다, 고맙다, 아조 지극정성이여. 그것이 뭔 지랄인고 몰라. 그러면 그러제. 알쪼가 난 거여, 알쪼가, 포옥.”
노인은 나를 보고도 안 본다. 아이고를 안하는 질부가 밉다 이거다. 그러니 그 질부 친구인들 노인에게 곱게 뵐 리 없다. 마루에 걸터앉아 하는 혼잣말은 또 혼잣말만은 아니다. 그것도 듣는 이가 있으니 하는 말이다. 노인이 포옥 내쉬는 한숨이 내 뒤꼭지에 와 달라붙는다. 노인의 시선이 버거워서라기보다 저 먼데서, 내 몸 어딘가에서 뭔가 심상찮은 조짐이 몰려오는 느낌에 떠밀리듯 아이들 방으로 들어와 길게 누워버린다. 의자를 부숴놨다구? 내 속에서도 포옥 한숨이 절로 나오고 있다. 어제 좀 나아졌던 몸이 다시 공중으로 붕붕 떠오르다가 끝간데 없이 아득한 바닥으로 추락하는 것같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아픔은 또 늘 선잠을 수반한다.
“이불도 안 덮고 잤어?”
영희가 바로 내 머리맡에 있다.
“너도 한숨 자라.”
“손님이 간대. 배웅해야지.”
“누구?”
“애아빠 친구.”
“먼데서 온 사람?”
“응, 먼데서 온 사람.”
영희가 나간다. 하얗던 나일론 소복이 시커멓다. 가슴 한쪽이 쿵 내려앉는다. 안돼, 영희야. 그 사람 보내지 마. 나, 그 사람 없으면 안돼. 난 그 사람 같은 사람이 있어야 해. 영희야, 그 사람 보내버리면 나는 어떡하니.
나는 운다. 기가 막혀 운다. 무엇이 기막힌가. 웃기는 내 감정이 기막히다고 하기가 싫다. 그래서 그냥 운다.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서럽게. 울면서 나는 내 울음의 이유를 부지런히 찾는다. 이유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맘껏 울어젖혀지지기가 않는다. 맘껏 울지 못할 울음 우는 게 창피해진다. 영희 아이들이 들어온다. 아이들 눈치가 봐진다. 방에 들어온 아이들이 하나같이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는다. 그러곤 하나 둘 울기 시작한다. 울음은 이내 봇물이 된다. 나는 쪼글치고 앉아 영희 아이들을 바라본다. 부럽게 바라본다. 아이들의 울음은, 저 확실하게 이유 있는 울음은 얼마나 잘난 울음인 것이냐. 얼마나 힘센 울음인 것이냐.
영희가 들어온다.
“다 갔니?”
“다 갔어.”
“너는 언제 울래?”
“나? 지금부터.”
영희가 칭칭 감기는 소복을 활락활락 벗어젖힌다. 힘차게 벗어젖힌다.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는다. 드디어 영희가 울기 시작한다. 제 아이들 굽어보며 발을 쭉 뻗고 울어젖히기 시작한다.
“아이고오 아이고오, 아이고오…… 아아아아아…… 어어어어어……”
처음에는 진양조로, 그러다가 울음은 휘모리가 된다.
“해앵, 인자서 우는가비. 그려, 울어라, 울어. 하먼, 밥 묵고 살라먼 울어야제. 울어야 밥맛 나고 밥 묵어야 심이 나제. 별것이나 있간디. 암것도 없어. 태나서 우는 놈이 사는 벱이여. 울어야 산 목심이여. 그저 내 울음이 내 목심줄이여. 뜨건 눈물 퐁퐁 쏟아가매, 팥죽 같은 땀 펄펄 흘려가매. 아이갸, 죽을 목심은 울지도 못헌단게. 나는 울지도 못혀. 심이 없어 울지를 못혀. 젊어 울제 늙어 못 울어. 울지도 못허는 나는 갈랑게 너거들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석달 열흘간을 션허게 울어부러라.”
영희 시고모가 방문을 톡 치고 나간다. 하면, 영희는 지금 살려고 우는 것인가. 살려고 우는 거라면, 그러면 나도 울 수는 있다. 우는 것이 목숨줄이라 했겄다, 그러면 나도 울어야겠다. 이제야말로 정말 울어야겠다. 쪼글치고 우는 울음말고 온몸 버둥대는 울음 울어야겠다. 세상천지 집어삼키고도 남을 울음 울어야겠다. 나는 다리를 쭉 편다. 헉, 드디어 첫 울음소리가 힘차게 터져나온다.
때맞추어 대숲에서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