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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방대한 역사 탐사의 모험
P. 아리에스·G. 뒤비 책임편집 『사생활의 역사』 1·3·4, 새물결 2002
제1권 “로마 제국부터 천년까지”(P. 벤느 편집, 주명철·전수연 역)
제3권 “르네상스부터 계몽주의까지”(R. 샤르띠에 편집, 이영림 역)
제4권 “프랑스혁명부터 제1차세계대전까지”(M. 뻬로 편집, 전수연 역)
성백용 成白庸
인하대 사학과 강사. 변역서로 『사회과학으로부터의 탈피』 등이 있음. sungby506@hanmail.net
무릇 역사학은 계주와 같다. 모두가 똑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지만 바통을 이어받은 주자는 늘 새로운 출발점에서 내달리기 때문이다. 지면 위에서 펼쳐지는 역사는 언제나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는 역사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텃밭을 일궈온 각 세대의 역사가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역사를 ‘새로운 역사학’이라 일컬어왔다. 1985~87년 프랑스에서 다섯 권으로 출판된 『사생활의 역사』 역시 지난 세기 서구 역사학계를 풍미한 여러 흐름들, 이를테면 구조의 시간대를 의미하는 장기지속 및 인간과학과의 합류를 강조하며 전체사를 지향한 사회경제사, 그리고 이 공통의 뿌리에서 잇따라 나온 계량적 인구사와 인류학적 역사를 대변하는 심성사(心性史) 등의 소산이다. 아울러 노르베르트 엘리아스(Norbert Elias)와 미셸 푸꼬(Michel Foucault)가 물꼬를 튼, 서양문명의 진보와 근대성에 대한 비판적인 성찰이 이 책의 구상에 적지 않은 영감을 불어넣었다는 것 또한 틀림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새로운 역사학의 이름 아래 축적된 그간의 연구 성과들을 하나의 완성된 교향곡으로 편곡하여 내놓은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이 기획에 참여한 40명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꽉 짜여진 악보에 따라 일사불란한 선율을 선사하기보다는 얼마간의 중복과 부조화를 감수하면서 나름의 개성과 해석에 따라서 비교적 자유로운 연주를 하고 있다. 요컨대 이 책은 공동작업의 산물이되 어떤 명료한 종합을 추구하기보다는 다양한 작업장에서 이루어진 성과물들을 정리·점검하고, 그럼으로써 새로운 작업장의 푯말을 세우려는 좀더 느슨한 기획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장인들이 자기 분야의 작업장마다 진열해놓은 작품들을 하나하나 살피고 평가하기란 무척 버거운 일이다. 이러한 세부적인 작업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돌리고 여기서는 다만 몇가지 전반적인 문제들을 논의하고자 한다.
필리쁘 아리에스(Philippe Ariès)와 조르주 뒤비(Georges Duby)가 책임편집한 『사생활의 역사』는 모호하기 짝이 없고 또 끊임없이 움직이는 한 대상의 역사이다. 사실 공(公)과 사(私)의 분별이 상식으로 통하는 우리 사회에서도 이 두 영역의 경계는 퍽 유동적이다. 사생활의 보호와 공중의 알 권리가 종종 충돌하는 것이나 간통죄에 관한 법률의 정당성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 경계의 양편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갈등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이 책의 저자들 역시 사생활의 영역을 소극적으로, 즉 공적인 것에 대한 상대개념으로서 막연하게 정의하고 있다. 개인과 국가라는 양극단 사이에는 친척과 이웃, 마을공동체, 소교구, 동년배, 작업장, 직업조합, 후견조직, 신분, 학교, 군대, 까페, 클럽, 비밀결사 등 시대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는 사회성(또는 사회집단들)의 영역이 존재한다. 밀실과 광장, 억압과 자유의 경계는 전적으로 사적이지도 공적이지도 않은 이 동심원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이동한다. 두 영역의 접점에 놓여 있는 가정 안에서조차도 그 경계는 시간과 공간에 따라 가변적이다. “사생활의 역사란 사회성의 형식들이 변형되어온 역사에 다름아니”(3권 30면)라는 필리쁘 아리에스의 견해는 이를 압축적으로 표현한다. 요컨대 이 책은 사생활 자체를 사회관계의 산물---심지어 “고독[도] 하나의 관계이다”(4권 440면)---로 보며, 따라서 “두 영역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고 서로를 규정하는가”(1권 462면) 하는 데 촛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사생활의 역사를 그저 공적인 영역의 잔여물로서가 아니라 서로 침범하고 길항하는 일련의 생동하는 과정으로서 이해하도록 해주며, 더 나아가 공적영역의 의미와 역할에 대한 사유의 폭을 넓혀준다.
하지만 그러한 관계 속에서 규정되는 사생활의 영역은 결국 그 사회의 집단심성과 담론에 투영된 형태로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게다가 사생활은 그 정의 자체가 개인성과 내밀성을 함축하고 있기에 장막 저편을 엿보려는 역사가들에게는 그만큼 커다란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아무리 내밀한 기록이라고 해도 거기에는 은폐와 왜곡의 가능성이 숨어 있게 마련이고, 더욱이 계량화가 불가능한 이 질적인 자료들의 무게를 어떻게 달아야 할지부터가 문제인 것이다. 이를테면, 특정한 문화적 표현의 존재가 예외적인 돌출일 뿐인가 아니면 어떤 변환의 의미있는 징후인가 하는 문제는 결국 그 사회의 심성구조나 여타 표현물들과의 관계 속에서 판별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저자들은 가능한 한 다채로운 증언과 묵언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내밀성의 벽을 뚫고자 노력한다. 가옥을 비롯한 물질적 자료들(가구·의복·집기·장신구 등)과 온갖 형태의 문헌자료들(예절서·고해서·요리책·유언장·묘비명·서명·일기·자서전·회고록·가계부·비망록·서신·명함·낙서·사법문서·신문기사·의학보고서·사회조사 등), 그리고 수많은 도상학적 자료들(벽화·조각품·성화·자화상·초상화·삽화·도면·사진 등), 이렇듯 사생활의 비밀을 품고 있는 숱한 증거들이 꼬리를 물고 무대에 오르내린다. 여하튼 넓고 깊은 사료 발굴과 활용에 힘입어서 이 책은 공적인 영역의 그늘에 가려 외면당해온 사생활을 역사학의 진지한 주제로 세우는 데 일단 성공을 거두고 있다.
하지만 표현물들 자체가 시기와 지역 그리고 계층에 따라 매우 불균등하게 분포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 책의 주제에 벗기 힘든 굴레를 씌운다. 린 헌트(Lynn Hunt)가 지적하듯이, “정말 힘겹게 살았던 이들은 사생활에 대해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았”(4권 81면)던 것이다. 따라서 주로 도시의 공간과 비교적 동질적인 문화를 공유하는 엘리뜨 및 교양계층이 무대 위에서 각광을 받는다. 예컨대 뽈 벤느(Paul Veyne)가 편집한 제1권에서 로마제국에서의 사생활에 대한 기술은 대다수 농민층과 노예, 도시의 하층 민중을 배제한 채 일부 상류층 시민들에 국한된 공민적 모델을 위주로 하고 있으며, 초기 기독교 윤리와 중세 초기사회, 그리고 10~11세기의 비잔틴 제국에 관한 논의 역시 주로 귀족, 성인과 수도사 등 사회적·정신적 지도층에 치우쳐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저런 성인전이나 수도원들이 제시하는 이상적인 모델이 여전히 기독교 신앙과 윤리를 내면화하지 못한 그 당시 사회 전반의 심성과 태도를 얼마만큼 반영하거나 지배했는지는 좀더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문제이다. 자료가 훨씬 더 충실하고 풍부해진 가까운 시기라고 해서 사정이 다르지는 않다. 프랑스혁명에서 제1차세계대전에 이르는 시대를 다룬 제4권의 서문에서 편집자 미셸 뻬로(Michelle Perro)는 다음과 같이 고민을 털어놓는다. “문제는 더 심각한 데에 있다. 우선, 사료가 불균형하게 분포되어 결국 도시에 치중하게 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농촌의 사생활은 민속의 틀에 고정되어 있어, 그 실상이 거의 파악되지 않았다. 그리고 도시의 모습 중에서도 부르주아지가 우리의 시선을 독점하고 있다.”(4권 41~42면) 하지만 프랑스에서 도시 인구가 농촌 인구를 앞지르기 시작한 것은 대략 1930년대에 들어서의 일이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이같은 사료상의 제약은 사생활에 관한 문화적 변형을 설명하는 방식에 어느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듯하다. 대략적인 시대적 변화의 흐름은, 개인과 공동체 또는 사적인 삶과 공적인 삶이 합치했던 로마 시대---“로마인은 더러운 속옷을 몰래 빨지 않았다”(1권 265면)---와 공적인 영역이 사유화된 가운데 거의 모든 면에서 두 영역이 혼재했던 중세---“중세 말기에 사람들은 사적이지도 공적이지도 않은 세계에 살았다”(3권 435면)---로부터 국가권력의 강화, 신앙의 내면화, 문자해독률의 증대 및 독서형태의 개인화와 더불어 점차 개인적 내밀성이 발달하고 가정이 사적 존재의 핵심영역으로 되어간 16~18세기를 거쳐서, 마침내 19세기에 이르러 “프라이버시의 요새”(4권 450면)이자 “가장 공화국”(4권 438면)으로서 가정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고 개인의 안식처인 “사적 영역의 전성 시대”(4권 39면)가 펼쳐지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물론 각각의 시대 안에는 중대한 변화의 전기들이 있으며, 그에 따라서 각 시대를 세분하거나 또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시대를 구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하튼 저자들은 ‘농촌의 시간’처럼 아주 더디고 변화에 저항하는 장기지속의 시간을 잊지 않으면서도 그것에 끊임없이 파문을 던지고 균열을 내는 변화의 움직임에 시선을 집중한다. (하지만 더러는 단절을 너무 과장하는 경우도 눈에 띄는데, 어린이에 대한 관심이나 개인과 가족의 명예에 대한 강박관념을 논의하는 대목이 그러하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변화의 과정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국가권력의 강화가 중요한 요인으로 구실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 책에서 근대국가의 정립은 사적영역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필수적인 요소로 나타난다. 이는 로제 샤르띠에(Roger Chartier)가 편집한 제3권에서 17세기 말~18세기 초가 근대의 주된 분수령으로 평가되는 것에서도 잘 나타나는데, 바로 이 시기를 고비로 공적인 권위를 독점한 국가가 사적영역의 경계를 명확히하고 이제 사생활의 중심지가 된 가정의 유일한 보호자요 통제자로 나서는 데 성공한 것이다. 반면, 이 책에서 경제적 요인에 대한 언급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아마도 이는 저자들이 그러한 요인을 아예 부정해서라기보다는 착잡한 문화현상들 자체의 역동성에 좀더 큰 설명력을 부여하고 싶어했거나 아니면 암암리에 전제되는 조건을 ‘만능의 해결사’인 양 내세우는 단순론을 애써 피하고자 했기 때문일 터이다. 사실, 침실이나 서재 및 장서의 소유에서 개인적인 독서와 일기, 여행에 이르기까지 어느 정도의 물질적·시간적 여유를 전제로 한다는 것은 구태여 강조할 필요가 없는 상식이 아니겠는가. 바야흐로 19세기 중엽에서 20세기 초에 만개한 사생활의 정경들(신혼여행, 결혼기념일, 산아제한, 이혼, 자녀 중심의 가정, 인형, 애완동물, 피아노, 수집, 산책, 등산, 해수욕, 관광열차, 바깡스, 자전거, 스포츠, ‘위생 쿠데타’, ‘감춰진 죽음’, 의무교육, ‘신여성’ 등등) 뒤로 프랑스의 근대화가 펼쳐졌다는 것 또한 길게 논의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제4권에서 하나의 중요한 전기(轉機)로 제시되는 제2제정기, 비록 저자들이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프랑스의 산업혁명이 본궤도에 오른 이 눈부신 도약기야말로 적어도 사생활의 양상에 관한 한 그 역사 전체를 가로지르는 가장 획기적인 시기가 아닐까 여겨진다. 무엇보다도 그 단절의 이편과 저편에서 감지되는 변화의 리듬부터가 전혀 다르지 않은가.
한편, 대부분의 저자들은 일찍이 엘리아스가 ‘문명화 과정’의 메커니즘을 해명하면서 제시한 것과 비슷한 설명방식을 따르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것은 지배계층의 차별화 전략에 따른 문화의 변이와 하위 계층들의 수용 및 내면화에 따른 문화의 보편화 과정으로 집약된다. 이같은 하향적 관점은 이 책 곳곳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예컨대 제3권에서 플랑드랭(J.L. Flandrin)은 “[16세기] 이후 하나의 관행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먼저 교양층에게서 통용되어야 했다”(3권 349면)고 말하며, 까스땅(N. Castan)은 “[17~18세기에] 정상에 위치한 소수 특권층은 일단 영원과 구원에 대한 번민을 진정시킨 뒤 인간 조건의 기본적인 두 영역인 공적영역과 사적영역 사이의 구분을 재검토할 수 있었다. (…) 법과 제도의 보호를 받는 이들 특권층에게 사생활의 향유란 자유의 상징”(3권 579면)이었다고 말한다. 궁정사회의 의식과 예절이 빠리 상류사회의 세련된 취향이나 처세술로 변용되고 이것이 점차 그 아래로 민주화되어 나간다. 19세기 프랑스 지배계층의 영국 심취 풍조도 “다른 계층과의 차별성을 두드러지게 하려는 노력의 한 양상이었다”(4권 49면). 마찬가지로 예민한 미각, 이름의 차별화, 초상화의 소유, 수집 취미, 정중한 연애, 알코올과 정사에 관한 세련된 취향, 자연에 대한 열정 따위의 문화현상들이 확산된 방향도 하나같이 위로부터 아래로이다. 공간적인 면에서, 이는 대개 빠리(또는 궁정)를 진원지로 하는 문화현상이 지방의 대도시에서 중소도시 그리고 결국 농촌으로 전염되어가는 파급경로를 가정한다.
이에 비해 반대방향으로의 침투, 문화모델들 사이의 삼투작용이나 긴장관계는 그다지 주목을 끌지 못한다. 물론 사생활의 영역에서 문화의 변이와 확산과정은 전반적으로 필자들의 설명방식을 따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언제나 일방적이고 단선적이지 않다는 점만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예컨대 중세 교회가 권면했던 일부일처제와 결혼의 영구성이 먼저 뿌리내린 것은 하층민들 사이에서였다. 샤를 6세와 루이 13세의 궁정에서 벌어졌다는 ‘샤리바리’(charivari)의 에피소드 또한 민중문화가 최상층에까지 스며든 한 단면을 보여준다. 최근의 한 연구는, 절대왕정 시대의 궁정에서 유행한 세련된 ‘예의범절’(civilité)이 베르싸이유 궁전이 아니라 파리 부르주아 및 법복 귀족들의 쌀롱에서 창안되었고, 바로 이 문화적 전범이 국왕(루이 13세)의 궁정에 도입되어 여전히 거칠고 봉건적인 귀족들의 품행을 길들이는 데 이용되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19세기의 영국을 다룬 제4권의 「홈 스위트 홈」은 도덕적이고 행복한 가정으로 표상되는 중간계층의 규범체계가 상류층으로, 그리고 다소 변형된 형태로 노동계급에게 전파되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근대국가의 성장과 더불어 사적인 영역이 공적인 영역에서부터 뚜렷이 분리되기 시작하고 마침내 19세기에 사생활이라는 개념이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자리잡기까지 장기적 과정을 다룬 제3·4권은 거의 전적으로 프랑스를 모델로 하고 있다. 물론 “어느 시기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최소한의 복합성을 지닌 사회라면 사생활의 영역이 있는 법”(1권 877면)이며, 따라서 그것의 역사가 “국가의 틀에 좌우될 문제는 아니다”(3권 781면). 그렇다면 왜 프랑스인가? 제3권의 결론에서 로제 샤르띠에는 그 선택의 정당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우선 프랑스의 경우를 출발점으로 해서 근대의 사생활의 역사에 접근하는 것은 타당성이 있다. 왜냐하면 프랑스사에서는 미증유의 방식으로 사적 영역을 분명히 밝혀준 주요 요소들이 전체적으로 그리고 다양한 변이를 통해 관찰될 수 있기 때문이다.”(3권 782면) 더욱이 미셸 뻬로의 말처럼 “국가라는 영역이 뚜렷해”(4권 42면)진 19세기의 경우 서양 전반을 다루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자칫 논의의 촛점을 흐릴 우려마저 있다. 다만 19세기에 가장 완성된 형태로 나타난 예의 영국 모델이 프랑스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데 주목하면서도, 정작 사생활의 발달사를 가장 적실하게 보여준다고 하는 프랑스 모델이 유럽세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에 관한 논의가 전혀 없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국가의 성격, 신앙의 형태, 가족의 구조, 문자해독 등 사생활의 존재양식을 좌우하는 주요 변수들이 프랑스와 달랐던 지역들에서 부르주아 모델이 승리를 거두기까지의 과정은 과연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사생활의 비교사는 아직 씌어지지 않은 영역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모자람을 채우고 남을 재미와 미덕이 있다. 이 책은 사생활을 역사학의 당당한 주제로 세웠지만 그저 일상적인 삶의 풍경을 묘사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책은 자신의 주인공이 걸어온 내력만큼이나 그를 둘러싼 무대의 배경과 배역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덕분에 우리는 사생활이라는 창구를 통하여 가족, 사회집단, 국가, 종교, 관습과 법률, 혁명 등을 다른 각도에서 투시할 수 있다. 풍부한 도판과 인상적인 수사도 그러려니와 문학작품과 회화 등에 대한 오묘한 분석은 독자들에게 문화적 텍스트를 음미하는 새로운 감각을 북돋아줄 것이다. 지난 한 세기에 걸쳐 의식주는 물론이고 시간과 공간, 자아와 세계관 등 거의 모든 면에서 가히 문화혁명이라 할 만큼 급격한 서구화를 겪은 우리 현대사의 경험에 비추어, 근현대 서구인들의 일상과 내면세계에서 일어난 도저한 변화를 들여다보는 것도 자못 흥미진진한 일이다. 게다가 우리는 푸꼬의 잠언처럼 최근의 발견물에 지나지 않는 낯선 존재로서 지금의 우리 자신을 반추하도록 이끄는 색다른 여정(旅情)을 맛볼 수도 있다. 그리고 조르주 뒤비가 첫머리에서 강조한 것처럼, 무엇보다도 이 책은 기술 및 국가 통제의 급속한 발달과 더불어 “개인이라는 존재를 방대하고 두려운 데이터뱅크 속에 들어 있는 숫자로 만들어버리고 말”(1권 37면) 위험을 일깨워준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책은 개인의 사생활을 절대적인 자유와 동일시할 경우의 딜레머에 대해서, 그리하여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의 바람직한 관계맺음에 대해서 깊이 성찰할 수 있는 하나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끝으로 이 책은 “사실상 해답보다는 문제를 더 많이 제시하고”(1권 34면) 있으며, 어떤 완결된 그림이 아니라 숱한 물음표와 여백들로 엮인 하나의 스케치요, 따라서 “계속 씌어져야 할 새로운 역사의 첫 단편”(3권 781면)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더 깊숙이 파헤쳐봄직한 탐사영역을 가리켜주는 일이야말로 앞서 모험을 떠난 이들의 진정한 미덕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