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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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연수 金衍洙

1970년 경북 김천 출생. 1994년 『작가세계』로 등단. 소설집 『스무살』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장편소설 『7번국도』 『꾿빠이, 이상』 등이 있음. larvatus@netian.com

 

 

 

거짓된 마음의 역사

 

 

1888년 3월 13일 샌프란시스코

존경하옵고 친애하는 죠지 워싱턴 브룩스 씨에게

한동안은 바다만 바라보고 지냈습니다. ‘어디를 봐도 끝이 없는 푸른빛, 가벼운 바람과 물결이 이는 소리, 어마어마한 파도’, 월트 휘트먼의 시구처럼 연신 포말을 일으키며 서로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해변과 투쟁을 벌이는 바다를 보며 저는 ‘두려움 없이 운명을 다하는’ 일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동부 보스턴 출신인 제게 바다란 폭이 상당히 넓은 국경선에 불과했습니다. 지난 몇세기에 걸쳐서 수많은 유럽인들이 대서양을 바라보며 상상력을 펼쳤으니 그 결과물이 바로 자유의 제국 미합중국입니다. 대서양은 이제 우리에게 너무나 명백한 바다가 됐습니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에서 귀하의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매일 바닷가를 거닐어보니 세상에는 아직 프런티어가 되는 바다도 있다는 걸 알겠습니다. 프런티어란 기회의 땅이 아니겠습니까? 기회의 땅에서는 상상력이 가장 센 자가 승리하는 법입니다. 바다와 육지의 경계선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의 속성을 지켜보면 세상의 모든 프런티어가 거기에 거주하는 생물을 얼마나 강하게 만드는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 역사가 이를 증명합니다. 저는 그런 예를 여기서도 발견했습니다. 매년 봄, 사리가 최고조에 달하면 이곳 서부 해안으로는 색줄멸이라는 물고기떼가 파도를 타고, 갈 수 있는 한 가장 먼 해변까지 거슬러올라가 알을 낳는데, 이게 아주 장관입니다. 이 바다 생물은 다음 썰물 때 알이 파도에 쓸려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신들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먼 경계선까지 밀고 올라가는 모험을 벌이는 셈입니다. 이런 점에서 색줄멸은 강한 물고기입니다.

미지의 프런티어를 두고 상상할 수 있는 능력에서 보자면 색줄멸보다 조금 더 나은 생물이 바로 중국인들입니다. 이곳에 와서야 저는 중국인들이 샌프란시스코를 금산(金山), 즉 ‘Golden Mountain’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짐작하시겠지만, 1848년 제임스 마셜이 쌔크러멘토에서 발견한 작은 광물질 덕분입니다. 북극이 나침반의 바늘을 잡아채듯 황금은 인간을 끌어당깁니다. 이것은 만유인력처럼 동양과 서양 모두에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샌프란시스코에만 해도 8만명에 가까운 중국인들이 ‘아시아의 쓰레기’니 ‘저질 인종’이니 하는 악담을 들어가면서 모여사는데 이게 다 샌프란시스코를 황금의 산이라고 상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최대한 육지 쪽으로 올라와 알을 낳는 물고기들처럼 중국인들도 자신들이 아는 세계의 끝까지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색줄멸보다는 내륙으로 조금 더 들어오긴 했지만, 이교도들의 상상이 뻗어갈 수 있는 범위는 거기까지입니다. 노예선을 떠올리게 하는 화물선 흘수선 아래 3등 객실에서도 꿋꿋이 버티던 중국인들마저 대개 신대륙이 멀찌감치 보일 때쯤이면 황금의 산이 있다는 샌프란시스코가 자신들이 떠나온 고국의 땅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는 크게 낙담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 주정부가 중국인들에게는 채광조차 금지시켰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들을 가짜 황금의 산으로 끌어들인 중국 무역상들을 원망할 때까지는 그 실의의 마음을 조금 미뤄두는 게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건 전적으로 황인종의 상상력이 물고기보다 조금 더 나아가는 수준에 그쳤기 때문이니 누굴 원망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황금의 산이란 샌프란시스코의 금융가인 마켓 스트리트의 빌딩군입니다. 그 앞에 데려다놓아도 곡괭이를 어깨에 멘 왜소한 황인종들은 과연 황금의 산은 어디 있는가 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리겠죠. 자유와 진보와 문명의 빛에 반짝이지 않는다면 제 아무리 황금의 산이라도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전의 노예인 이 쿨리(coolie)들은 씨에라네바다 산맥에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면서 철로를 건설할 때도 변변한 항의 한번 못한 것이겠죠. 색줄멸이나 중국인이나 눈이 없긴 매한가지입니다. 상상의 눈 말입니다. 에머슨의 말마따나 ‘성스럽고 고결한 마음’으로 이 세계를 바라보지 못한다면 그 눈에는 어떤 자유의 영상도 맺히지 않을 것입니다.

얼마 전에 세상을 등진 앨런 핑커턴은 어린시절부터 제 영웅이었습니다. 제가 탐정이 된 데는 그의 영향이 큽니다. 고향 보스턴에 있던 그의 탐정사무소에는 “우리는 잠들지 않는다”라는 글귀가 굳은 맹세를 암시하듯 볼드체로 각인돼 있었습니다. 그건 언제나 두눈을 부릅뜨고 지켜본다는 뜻입니다. 이는 곧 겉으로 보이는 현상의 내부에 감춰진 본질을 찾아낸다는 뜻이며 황막한 프런티어 속에 숨은 신세계의 질서를 꿰뚫어본다는 뜻입니다. 링컨 대통령의 대리인이자 격렬한 노예제 폐지론자인 핑커턴에게서 저는 현실에 존재하는 황금의 산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 감춰진 황금의 산을 봐야만 한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마켓 스트리트를 움직이는 것은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 우뚝 선 바로 그 황금의 산입니다. 영원한 사랑이나 인간의 꿈, 혹은 자유의 제국 미합중국 등이 이에 비할 수 있습니다.

저를 믿고 이 사건을 의뢰하신 게 대단한 행운이라는 사실을 이제부터 보여드리겠습니다. 제가 찾아나서는 것은 단지 귀하의 사랑을 납득하지 못하고 은자의 나라로 숨어든 귀하의 약혼녀만은 아닙니다. 제게는 모든 인간의 소망을 실현시키는 위대한 상상력의 소산인 미합중국을 이방의 땅에서 찾아내겠다는 야망이 있습니다. 그 여인이 있는 곳이 ‘은자의 나라’라고 하셨습니까? 언제나 부릅뜬 마음의 눈으로 이 세계를 바라보는 자에게 은자의 나라란 없습니다. 단지 문명의 나라와 야만의 나라가 있을 뿐입니다. 상상의 지평을 세상 끝까지 뻗칠 수 있는 자에게는 태평양도 폭이 넓은 국경선에 불과합니다. 아아, 아메리카의 노래가 들려옵니다. 형형색색의 송가가 들려옵니다. 한 여인이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미국인은 언제나 상상의 힘으로 두눈을 부릅뜨고 세상 모든 곳을 지켜봅니다. 휘트먼이 적절히 표현한 바와 같이 캘리포니아 해변에서 서쪽을 바라보며 지치는 일 없이 묻고 또 물어 아직 찾아내지 못한 것을 우리 미국인은 끝끝내 찾아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제 출발이 임박한 상태인데 아직도 두번째 송금분이 오지 않아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할 수 없습니다. 보내셨는지 모르지만 혹시 아직 송금하지 않으셨다면 늦어도 3월 하순까지는 이곳 하이버니어 뱅크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행운이 늘 함께하기를.

 

1888년 4월 2일 샌프란시스코

존경하옵고 친애하는 죠지 워싱턴 브룩스 씨에게

예상액에 훨씬 모자라는 액수이긴 하지만, 어쨌든 보내주신 수표는 안전하게 잘 받았습니다. 귀하의 염려만큼 돈을 잃을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제 불편을 고려해 나머지 돈을 요꼬하마의 그랜드호텔로 보냈다고 하니, 아무튼 대단히 감사합니다. 하지만 제가 탐정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신다면 제 직업적 자긍심에 약간의 상처를 입혔다는 사실 정도는 짐작하시리라 믿습니다. 각설하고 지금까지 조선으로 향하는 배편에 오를 날만 기다리느라 여간 지루하지 않았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할 수 있다니 벌써부터 온몸이 근질거립니다. 세상을 바꿔놓은 책 『상식』에서 토머스 페인은 미국이 독립할 시기임을 알리기 위해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이제 떠날 시간이다!” 저도 부르짖습니다. “나도 그렇노라!”

미 감리교 선교부 소속으로 여러차례 조선에 선교사를 파견한 경험이 있는 이곳 샌프란시스코의 원로 찰스 H. 파울러 감독에게 이것저것 여쭤본바, 얼마 전까지 태평양 항로를 오가던 정기 기선으로는 뻬이징 호와 오세아닉 호가 있었으나 워낙 허줄했던지라 지금은 그 운항이 정지됐다고 합니다. 현재 수배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선박으로는 캐나디언 퍼씨픽 철도회사 소속의 화물선인 포트 오거스터 호가 있습니다. 3년 전에 건설을 완료한 캐나디언 퍼씨픽 철로 부설공사에 종사했던 쿨리들을 계약대로 본국에 송환하기 위해 특별히 마련된 배편으로 요꼬하마를 경유, 샹하이에 입항한다고 합니다. 중국인들과 항해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썩 마음에 들지 않지만 지금으로서는 별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저는 요꼬하마에서 하선해 토오꾜오에 있는 로버트 S. 머클레이 박사를 만나볼 계획입니다. 파울러 감독의 말에 따르면 조선의 사정에 관한한 가장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는 사람이라니 은자의 나라에 거주하는 정직한 조너선들, 즉 우리 미국인들의 사정에 대해서도 들어보고 도움을 얻을 만한 조선인들도 소개받을 작정입니다. 요꼬하마에서는 나가사끼까지 기차로 이동해 거기서 제물포까지 운항하는 일본우편선박회사의 히고마루 호를 타면 된다고 합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요꼬하마까지는 대략 23일, 나가사끼에서 최종 목적지인 제물포까지는 대략 3일이 소요된다고 하니 최소한 27일은 지나야 제가 은자의 나라로 입국할 듯 보입니다.

이 항해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한가지뿐입니다. 그러니까 5년 전, 워싱턴에 모인 전문가들이 본초자오선이 통과하는 그리니치의 대척지인 태평양 바다 한가운데로 경도 180도를 뜻하는 국제날짜변경선을 그었다는 사실이죠. 이를 염두에 둔다면 실제 항해기간에서 하루가 추가됩니다. 어제 보내주신 수표를 현금으로 바꾼 뒤, 온갖 금융기관이 빼곡히 들어선 마켓 스트리트를 걸어가며 이 활기가 과연 어디서 비롯하는가를 따져보다가 문득 저 멀리 대양의 한가운데 그어졌을 그 상상의 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그건 세계의 뒤편에 그어진 상상의 선입니다. 그런 상상의 선이야말로 세계사의 고랑을 일구는 보습과 같은 것입니다. 루이지애너 매입, 멕시코 전쟁, 유니언 퍼씨픽과 쎈트럴 퍼씨픽의 대륙횡단철도 연결 등 숨가쁜 역사적 사건 이후를 살아가는 평균적인 미국인으로서 저는 상상이 어떻게 문명의 지평을 넓혀가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미합중국의 ‘명백한 운명’이란 궁극적으로 나머지 세계 대부분을 포함하는 거대한 자유제국을 지리학적으로 상상할 수 있을 때 실현됩니다. 이제 우리는 남부를 재건했듯이 세계의 다른 모든 변방을 재건해 위대한 미합중국의 시대를 만들어갈 것입니다.

저는 존 찰스 프리몬트와 찰스 프로이스가 발간한 ‘오리건과 북부 캘리포니아 지도’야말로 우리 시대 미합중국의 이념을 가장 정확하게 구현한, 이 세기 최고의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지도에는 시련에 굴하지 않고 그 무엇보다 ‘성스럽고 고결한 마음’으로 프런티어를 개척해내는 용감한 시민들만이 상상할 수 있는 길, 오리건 통로가 표시돼 있습니다. 마켓 스트리트의 고층건물들을 바라보노라니 그 상상의 길이 이교도로 들끓던 야만의 풍경을 어떻게 정화시켰는지 똑똑히 알겠더군요. 이제 세계의 모든 곳이 뉴욕으로, 보스턴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제 모든 인간들이 미국인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미국인이란 자질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모든 인간을 일컫는 보통명사가 됐습니다. 인디언이든 흑인이든, 아니면 극동의 은자든 모든 개인의 자질을 해방시키는 일이 바로 문명이라는 사실을 긍정할 때, 인류를 더 높은 차원으로 인도하는 야곱의 사다리는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지구의 반대편 바다 위에 그어진 경도 180도선이라는 건 이제 그 상상의 빛, 문명의 빛, 진보의 빛이 이 세계를 균일하게 비추게 됐다는 사실을 뜻합니다. 이제 제가 그 경도 180도선을 넘어 야만의 땅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편지에 제 신념이 어쩐지 마음에 거슬린다는 점을 완곡하게 표현하셨더군요. 미합중국의 이념을 야만의 땅에서 실현시키려는 제 생각 때문에 일이 꼬일까봐 걱정되십니까? 물론 제가 할 일은 은자의 나라에 가 있는 한 여인을 다시 미합중국으로 데려오는 일이라는 걸 압니다. 하지만 그 여인에게 영원한 사랑을 상상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은 야만인들에게 새로운 미합중국을 상상하게 만드는 일과 마찬가지입니다. 상상은 그 모든 것입니다. 은자의 나라로 사라진 귀하의 약혼녀는 귀하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그 사랑을 상상하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휘트먼이 「이방의 땅에게」라는 시에서 뭐라고 말했습니까? “그대들이 이 신세계의 기묘함을 납득할 것과/미국과 미국의 건강한 민주주의를 정의할 무엇을 찾는다기에/나 그대에게 내 시를 보내노니/그대가 원하는 것을 거기서 찾을 수 있으리.” 휘트먼의 시심만 있으면 이방의 땅에서 우리는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데려오겠습니다. 닷지 양을 반드시 데려오겠습니다. 브룩스 씨는 예복이나 준비하시면 되겠습니다. 행운이 충만하고 사업이 번성하기를!

 

1888년 5월 1일 요꼬하마

친애하는 죠지 워싱턴 브룩스 씨에게

지금 저는 미리 약속한 대로 요꼬하마 외국인 거류지 20번지에 있는 그랜드호텔에 머물고 있습니다. 일단 지금까지의 상황을 먼저 알려드리겠습니다. 여기서 이런저런 정보를 많이 얻었지만, 그건 다음 편지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저는 아직까지 정상적인 몸을 회복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불행하게도, 혹은 예상치 못하게도, 쿨리들처럼 대서양 너머에 황금의 산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멍청한 스페인의 건달 바스꼬 누녜스 데 발보아가 발견한 바다, 태평양은 무역풍이 다스리는 적도 부근에서나 어울리는 이름일 뿐, 그밖의 해상에서는 다른 이름을 붙이는 게 옳은 듯합니다. 쎈트럴 퍼씨픽을 타고 서부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저는 그 평화로운 이름의 바다가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하데스가 포세이돈의 도움을 받아 지옥의 호구를 늘릴 작정이었다고 해도 그런 폭풍을 만나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번 운항으로 포트 오거스터 호는 한번도 태평양 항로를 항해해본 경험이 없었다는 점, 궂은 날씨에 통제력을 잃어버리고 우울증에 빠져 선장실에서 한걸음도 나오지 않은 스코틀랜드인 선장에게는 모험보다는 요양이 필요하다는 점 등이 여실히 증명됐으나 그 댓가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폭풍우가 몰아치자, 선장을 대신해 조타기를 잡은 1등 항해사가 딴에는 중국인들을 배려한답시고 3등 객실 옆 선창에 있던 화물을 모두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지시했는데, 그게 도리어 아주 치명적이었습니다. 배는 마치 물위에 뜬 풍선처럼 울퉁불퉁한 물마루 위에서 요동쳤습니다. 후갑판 1등 객실에서 여행한 우리들이 반죽음 상태였으니 갑판 아래 3등 객실의 중국인 노무자들은 더 말할 나위도 없었습니다. 중국인들은 나이 많은 순서대로 하나씩 죽어갔습니다. 살아갈 때보다 죽은 다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들은 노인들이 죽어나갈 때마다 노란색 가짜 지폐를 꽃잎이라도 되는 양 흩뿌렸습니다. 그 정신사나운 꼴을 지켜보노라니 한심하기 짝이 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듭디다. 저승길에 나서는 데도 여비가 필요하다고 해서 그들은 가짜 돈을 뿌리는 것 같은데, 살아서는 황금의 산 같은 비현실적인 것을, 죽어서는 여비처럼 현실적인 것을 상상하는 이들의 세계는 물구나무를 선 모양입니다. 하지만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이 반복되다보니 그 일이 조금씩 제 마음을 달래는 듯한 느낌이 들더이다. 색줄멸의 수준이기는 하지만, 이들도 나름대로 영혼을 돌보기 위해 상상력을 동원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평생 고난 속에 살아가다가 귀국선 3등 객실에서 처참하게 죽어가는 이들에게는 민주주의보다는 저승길 노잣돈을 상상하는 게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도 한편으로 들었습니다.

가벼워진 배가 아래위, 좌우로 미친 듯이 흔들려 스크루가 헛돌고 몇몇 기관이 고장 나는 사태에까지 이르자 배는 알류샨열도 부근까지 밀려올라가 표류하기 시작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갑판의 분위기는 흉흉했습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던 중국인들이건만 시신으로나마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일만은 참을 수 없는 모양입니다. 선원들이 시신을 바다로 던져버리자, 그 와중에도 중국인들은 폭동을 일으킬 기세여서 저까지도 권총을 들고 3등 객실 출입구를 지켜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금산을 향해 떠날 때 이런 점까지 고려했던 것인지 계약서에도 시체만은 중국으로 송환시켜준다는 항목이 있었기 때문에 결국 이들의 요구에 승복, 소금을 뿌린 시체를 뱃전의 작은 보트에 채워넣는 것으로 타협을 이루긴 했지만, 배가 흔들릴 때마다 그 보트가 1등 객실 현창을 부술 기세로 달려와 여간 끔찍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우리가 스틱스 강을 건너왔는가 했더니, 그게 아니라 용왕의 바다였던 모양입니다. 마침내 후지산의 모습이 보이자, 중국인들은 일제히 갑판으로 몰려와 이번에는 진짜 지폐를 바다에 흩뿌리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인들은 바다에 용왕이 살고 있다고 믿습니다. 상상이 아니라 진짜로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는 쉽게 거부하기 힘든 진실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도 쿨리들과 마찬가지로 바다에 달러를 던진 게 아니겠습니까? 중국 용왕이 엉클 쌤의 지폐를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저는 지금 무책임한 그 선장과 마찬가지로 육체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요양이 필요한 처지가 됐습니다. 당분간은 그랜드호텔에서 정보를 수집하며 몸을 다스릴 작정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몸과 마음이 아닙니다. 지난번 샌프란시스코에서 받은 편지에서 요꼬하마의 그랜드호텔로 수표를 보냈다고 하셨는데, 이곳에 도착한 지 벌써 닷새째지만 아직도 수표는 오지 않았습니다. 무슨 착오가 생긴 것은 아닌지요? 설상가상으로 저는 용왕에게 너무 무리하게 감사의 표시를 한 모양입니다. 이런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인해 귀하의 약혼녀를 데려오는 일에 차질이 생길까봐 두렵습니다. 제게 이 일을 의뢰하면서 브룩스 씨는 닷지 양의 마음을 돌릴 수만 있다면 지옥에라도 가겠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하데스의 지하세계를 지나온 사람은 바로 접니다. 이제 결실을 맺을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혹시 송금을 잊으셨을 수도 있으니 다시 한번 확인을 부탁드립니다. 아니, 그렇게 돈이 없단 말인가라고 의아해하실 수도 있지만, 이 일을 시작할 때 받았던 선수금으로는 이스트먼 건판 필름회사에서 최근 생산한 롤카메라 코닥을 구입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건 닷지 양이 브룩스 씨의 품안에 안기기 전에 사진으로나마 먼저 그 여인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하려던 제 소박한 배려 때문이었습니다. 제물포로 가는 뱃길에서 또 그런 폭풍우를 만난다면, 이번에는 이 카메라를 던지는 수밖에 없습니다. 한번 더 확인을 부탁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1888년 5월 26일 나가사끼

죠지 워싱턴 브룩스 씨에게

블라지보스또끄에서 오는 소형 기선 히고마루 호를 기다리는 사이에 편지를 보냅니다. 토오꾜오에서 보낸 나날은 우울의 연속이었습니다. 불운하게도 저는 향수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토오꾜오에는 긴자라는 번화가가 있습니다. 1872년 큰 화재를 당한 뒤, 이 거리는 붉은 벽돌건물로 재건됐습니다. 이 너른 길의 양옆으로는 벚나무가 가로수로 심어져 있어 꽃잎이 흩날리는 봄날에는 그 풍취가 대단합니다. 하지만 긴자에는 상상력이 없습니다. 이 거리는 보스턴이나 뉴욕의 거리를 흉내낸 것에 불과합니다. 미합중국의 상상력이 어쩌면 동아시아에는 적용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이처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도 없을 것입니다. 이 가짜 앞에서 진짜를 향한 제 향수병이 발병했습니다. 그 통에 마음을 다스리느라 토오꾜오에서 예상외로 많이 머물렀습니다. 제 마음을 달랜 것은 붉은 벽돌건물이 즐비한 긴자도, 일본 역시 서구에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건축학적으로 표현한 로꾸메이깐도 아니었습니다. 제 마음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우에노 공원 산책길을 차례로 점령하던 벚꽃과 복숭아꽃과 배꽃, 이슬비를 맞으며 촘촘히 서 있던 칸에이지(寬永寺)의 검은 비석들, 신사의 나무 울타리를 따라 서 있던 대나무의 그 깃털 같은 금빛 이파리 등에 의해 치유됐습니다. 물론 제가 토오꾜오에서 오래 미적거린 데는 귀하가 보내신다는 수표가 여태 도착하지 않은 까닭도 포함됩니다.

요꼬하마의 외국인거류지에서 저는 머클레이 박사의 소개로 송이라는 조선인과 친분을 쌓았습니다. 조선정부의 전직 관리였다는 송은 제 카메라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송은 자신이 서울에서 사진관을 운영했다며 조선에 들어가면 자신과 함께 국왕 일가의 전속사진사로 일하면서 큰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송의 관심사는 낯선 미국인을 궁궐로 끌어들이는 위험천만한 일을 무릅쓰는 것보다는 제 카메라를 손에 넣는 데 있는 것 같았습니다. 비밀스러운 점이 많아 처음부터 신뢰가 잘 가지 않는 자였는데, 결국 일본정부는 그를 암살미수 혐의로 추방시켰습니다. 송이 조선정부를 전복시키려다가 3일 만에 실패하고 일본으로 망명한 어느 젊은 혁명가를 암살하기 위해 파견된 자객임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로 치자면 찰스 썸너와 프레스턴 브룩스에 비유할 수 있을 듯합니다. 뼛속 깊이 노예제를 반대한 찰스 썸너에게 모욕을 당한 앤드루 버틀러의 조카 프레스턴 브룩스가 상원 회의실에 앉아 있던 썸너에게 어떤 폭력을 행사했는지는 기억하시겠죠? 진보된 인류의 모습을 절대로 상상할 수 없는 작자가 저지른 그 야만적인 폭력사건만 생각하면 지금도 분노가 치밀어오릅니다. 지금으로서는 조선의 정세를 잘 모르는 까닭으로 송 역시 그처럼 비열한 자인지 자세히 알 도리는 없습니다. 어쨌든 그런 비밀임무를 띠고 들어온 까닭인지 추방되기 전까지 송에게는 현금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여비가 모자란 저는 서울에 들어가면 롤필름을 빼낸 카메라 본체를 송에게 넘기기로 약속하고 돈을 빌렸습니다.

송이라는, 이 비밀투성이 조선인에게 빌린 돈으로 제물포까지 가게 됐으나 그 다음부터는 또 어떻게 해야만 할 것인지 눈앞이 캄캄합니다. 이 편지를 쓰기 전에 저는 요꼬하마의 그랜드호텔에 전보를 쳐서 미합중국에서 제 앞으로 편지가 배달되면 제물포에 있다는 타운쎈드 상사로 다시 보내달라고 부탁해놓았습니다. 대단히 어려운 상황인데도 왜 귀하가 갑자기 이토록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는지 의아스럽지만, 그건 다 저 대양 탓이라고 해둡시다. 저는 오늘 오후에 히고마루 호에 승선해 고또오열도와 쓰시마 섬을 지나 조선의 항구로 들어갈 것입니다. 연락이 필요하다면 제물포의 타운쎈드 상사 전교로 해주십시오. 이만.

 

1888년 6월 3일 제물포

브룩스 씨에게

나는 지금 제물포에 있는 코리아호텔의 썩 괜찮은 쌀롱에 있습니다. 제물포에서 제가 머무는 숙소는 최근 시트를 모두 새로 교체한 서구 양식의 대불호텔이지만, 황혼이 서쪽 바다를 물들이기 시작하는 시간부터는 늘 이 쌀롱에서 죽치고 있습니다. 왜냐구요? 터키어와 아랍어는 물론 조선어와 일본어에 이르기까지 이 지구상의 모든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매혹적이고 가장 세련되고 가장 교양있는 헝가리 처녀가 카운터 너머로 건네는 술잔을 외면할 사내는 이 세상에 없을 테니까요. 더구나 날짜변경선을 넘어 극동의 작은 왕국까지 왔다가 빈털터리가 돼버린, 외롭고 쓸쓸한 젊은 사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 돈을 다 털어 오늘도 술을 마십니다. 방금 내가 이 편지를 쓰노라니 그 처녀가 뭘 쓰느냐고 묻더군요. 마음이 변한 여인에게 작별의 편지를 보낸다고 하니 이 교양 넘치는 처녀는 이런 소네트를 줄줄 읊습디다. “그대의 모습은 나와 함께, 그대의 마음은 다른 곳에/그대의 눈동자 속에는 그 어떤 증오도 살아갈 수 없으므로,/나는 그대의 변심을 알아낼 수 없다오./다른 사람들의 얼굴로는 거짓된 마음의 역사가/찌푸린 눈살과 우거지상과 언짢은 주름으로 씌어진다지만,/그대라는 피조물 안에 깃든 하늘은/그대의 얼굴에는 늘 달콤한 사랑이 함께하기를 명령한다오.”

요꼬하마의 그랜드호텔로 보낸 편지가 오늘 이곳 제물포에 도착했습니다. 당신의 편지를 읽고 나니 무척 당혹스러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링컨 대통령과 앨런 핑커턴이 당신네 가문과 그다지도 깊은 악연이 있었단 말입니까? 나는 정말이지 당신이 프레스턴 브룩스와 친척관계라는 걸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젠장, 성이 같은데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참 여러가지로 실수를 저질렀군요. 나는 단지 야만의 땅으로 떠나며 새로운 미합중국을 상상하고 싶었을 뿐, 당신과 당신의 집안을 모욕할 생각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음, 당신이 다시 한번 이 점을 고려하면 좋겠으나, 시간상으로나 거리상으로나…… 당신의 그런 결정을 되돌리기에는 이제 너무나 늦었다는 점, 설사 마음을 돌린다고 하더라도 우편선의 왕래에 걸리는 시간을 고려하면 지금 내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점, 또한 그러는 와중에 나는 거지꼴로 은자의 왕국에서 버림받는 처지가 되리라는 점 등을 부인하기는 어렵게 됐습니다. 음,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내 선의를 믿어줄지 모르겠지만, 제물포까지 여행하면서 들은 얘기 중에 이런 게 있습니다. 미합중국 군대가 공식적으로 조선에 처음 건네준 선물이 뭔지 아십니까? 바로 다 마시고 난 배스(Bass) 맥주병 열 개입니다. 1871년 아시아함대 사령관인 로저스 소장이 이끄는 원정대는 배로 찾아온 세 명의 조선 관리에게 선물로 빈 병 열 개를 줬습니다. 뉴욕에서 듣기에는 총신을 이빨로 씹어먹은 아프리카 고릴라에 대한 얘기처럼 황당하겠지만, 그 얘기가 허풍이 아니듯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습니다. 극동에서 빈 유리병은 친밀감을 나타내는 아주 좋은 선물이라 보이들에게 빈 병을 팁으로 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빈 병을 그냥 줄 수가 없으니 군인들은 보스턴에서 발간되는 『에브리 쌔터데이』지에 싸서 조선 관리의 가슴에 안기고는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이게 바로 빈 배스 맥주병을 가슴에 안고 선 조선인의 모습을 담은, 그 유명한 사진입니다. 그런데 이 사진에는 흥미로운 게 하나 있습니다. 사진에 실린 『에브리 쌔터데이』 1면에는 “모든 민족은 개인과 마찬가지로 도덕적 책임감을 가지고 행동하라”고 주장한 찰스 썸너의 사진이 크게 실려 있었던 것이죠. 우리가 은자의 나라에 선물로 줘야만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사상입니다. 하지만 조선인들은 이 사상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로저스 소장이 이끄는 다섯 척의 원정대는 조선의 호랑이 사냥꾼들과 맞서 소소한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결국 퇴각하고 말았고 극동에서는 미국 군대가 조선에 패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조선인들은 왜 친구로 지내자고 손을 내미는 미국인을 내치는 것일까요? 선천적으로 은자의 기질을 타고 나서 그런 것일까요? 여기서 지켜본바, 그건 아닙니다. 이들은 은자들이 아니라 상처입은 짐승들입니다. 그래서 가까이 다가가면 당장이라도 죽어버릴 듯 울부짖는 것입니다. 도대체 누가 이 선량한 야만인들에게 상처를 입혔단 말입니까? 그 사람은 바로 프레스턴 씨입니다. 무슨 느닷없는 얘기인가 싶겠지만, 프레스턴 씨가 맞습니다. 물론 당신과는 친척관계라는 프레스턴 브룩스가 아니라 W. B. 프레스턴이라는 사람이죠.

1866년 운동 삼아 제너럴 셔먼 호라는 범선을 타고 다니던 프레스턴은 톈진, 즈푸 등지를 오가다 은자의 나라 북부 도시 평양에 가면 왕릉이 순금으로 되어 있다는 중국인들의 허풍(중국인들이 샌프란시스코를 금산이라고 부른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을 말 그대로 믿고는 중무장한 채로 강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찰스 썸너가 모든 인종이 동등한 하나의 인간, 즉 진정한 미국인이 되는 것을 상상한 것에 비하면 프레스턴의 상상은 저열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 저열한 상상에 걸맞은 댓가를 프레스턴은 치렀습니다. 그 이태 전, 링컨 대통령의 충실한 군인이었던 윌리엄 셔먼 장군이 바다로의 진군을 통해 남부 써배너를 해방시켰다면 제너럴 셔먼 호는 죽음으로의 진군을 감행한 셈이었습니다. 제너럴 셔먼 호는 불타버리고 프레스턴을 비롯한 선원들은 모두 살해됐으니까요. 아시겠습니까? 다 죽었단 말입니다, 모조리. 국무성이 북경 주재 미국공사 로와 아시아함대 사령관 로저스 소장에게 조선 원정에 나서라고 해 다섯 척의 함대가 조선으로 향한 것은 이 사건 때문입니다. 히고마루 호의 독일인 선장에게서 이 얘기를 전해들을 때, 내 마음이 어땠는지 아십니까? 미국인 역시 황금의 산을 상상한다는 사실에 수치심을 느꼈습니다. 그 다음에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어쩌면 우리는 저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프런티어를 상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점에서는 미국인이나 중국인이나, 심지어는 색줄멸이나 매한가지다. 그런 자괴심이 들었기에 나는 프레스턴을 진심으로 증오했습니다. W.B. 프레스턴 말입니다. 당신과 친척이라는 프레스턴 브룩스가 아니라. 나는 이런 종류의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내가 당신과 당신 집안을 모욕했다고 생각합니까? 내가 링컨 대통령과 앨런 핑커턴을, 또한 재건된 미합중국을 언급한 까닭은 당신과 같은 남부 출신들을 얕잡아봐서가 아닙니다. 나는 미합중국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묻고 싶었던 것입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신이 상상하는 미합중국은 프레스턴의 나라입니까, 썸너의 나라입니까? 서로 처한 입장에 따라 당신이 상상하는 나라와 내가 상상하는 나라가 서로 다를진대, 그렇다면 미합중국이란 실재가 없는 허상에 불과하단 말입니까? 당신은 이 세계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남부연합의 그 멍청한 정치인들과 마찬가지입니다. 닷지 양을 사랑하기는 사랑합니까? 그것도 혹시 망상에 불과한 것은 아닙니까? 제기랄. 나는 지금 조수간만의 차가 30피트에 달해 용감한 미합중국 군대도 상륙작전에 실패한 극동의 작은 왕국에 와 있는데, 돈은 이제 다 떨어졌단 말입니다. 까놓고 얘기합시다. 한 여인을 미합중국으로 데려가는 일을 할 뿐인데, 그게 양키면 왜 안된단 말입니까? 어쨌든 당신의 영원한 사랑을 증명하기만 하면 되는 일인데, 뭐가 그렇게 복잡하단 말입니까? 모쪼록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애당초 나는 당신과 당신의 가문을 모욕할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나는 우리가 속한 나라에 대해, 그 나라의 이념에 대해 말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 지경에 이르고 보니 그게 또다른 황금의 산은 아닌지 의심스럽군요. 하여 나는 내일 서울로 들어갈 계획입니다. 제게는 이제 밀린 호텔비를 갚을 능력도 없다는 것이 확실해졌으니 말입니다. 당신과 닷지 양의 사랑을 증명할 길은 단 하나뿐이라는 걸 명심하십시오. 행운이 아직 남아 있기를.

 

1888년 6월 27일 서울

죠지 워싱턴 브룩스 씨에게

저는 조선에 있는 미국공사관 존 L. 파커 서기관이라고 합니다. 최근 조선의 수도인 서울에서 모종의 사건이 벌어졌는데, 이 사건에 귀하의 대리인이 연루돼 소식을 전합니다. 이번 달 초순부터 조선인들 사이에서 유언비어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내용은 외국인들이 조선 아이들을 납치해 잡아먹거나 약으로 만들고 아이들의 눈알을 이용해 사진을 인화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주중미국공사관에서 보낸 외교행낭을 통해 1860년 톈진에서도 비슷한 유언비어로 인해 외국인을 상대로 한 폭동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알았으므로 공사관측에서는 조선정부에 엄중 대처할 것을 경고하는 한편, 조선에 거주하는 미국인들에게는 외출을 삼가고 부득이한 경우 자위권을 행사할 것을 통고했습니다. 덕분에 유언비어는 곧 가라앉았고 외국인들이 입은 피해는 거의 없었는데,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바로 귀하의 대리인인 벤저민 스티븐슨입니다.

벤저민 스티븐슨은 6월 4일 도보로 제물포를 출발해 그 다음날 아침 서울의 성문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먼저, 이상한 유언비어가 나도는 상황이었으나 기본적으로 조선인들이 외국인 개개인에게는 호의적이라는 점을 알려드립니다. 벤저민 스티븐슨이 걸어가는 동안, 호기심 많은 조선인 몇몇이 그를 따라붙기는 했으나 물리적인 충돌은 없었습니다. 문제는 벤저민 스티븐슨이 언덕을 다 내려와 미국공사관 쪽으로 방향을 틀었을 때 일어났습니다. 그 지점에서 벤저민 스티븐슨은 조선인 아버지가 아이를 구타하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조선에서는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었지만, 미국인에게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요. 하지만 대개 이방의 도시에서 거주하는 외국인은 원주민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고 그게 또 예의인데, 벤저민 스티븐슨의 인류애는 좀 남달랐던 모양입니다. 벤저민 스티븐슨은 뜻하지 않은 분쟁에 대비한다는 당연한 생각으로 들고 있던 사진기로 그 광경을 촬영한 뒤, 그 야만적인 폭행을 말리려고 했습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사진기와 아이가 관련된 유언비어가 가라앉지 않았던 당시로서는 이건 대단히 위험한 행동이었습니다. 벤저민 스티븐슨이 그 조선인으로부터 아이를 떼어놓았을 때, 모여 있는 일단의 조선인들이 벤저민 스티븐슨에게 달려들었습니다. 벤저민 스티븐슨은 60피트 가량 도주하다가 집단적으로 얻어맞은 뒤, 정신을 잃었습니다. 더 좋지 않은 건, 넘어지면서 그의 얼굴이 시궁창에 처박혔다는 점입니다. 이 때문에 벤저민 스티븐슨은 말라리아에 걸렸습니다.

벤저민 스티븐슨은 현재 조선 국왕의 지원을 받는 한 병원에 입원중입니다. 이 병원은 미국인 의료선교사들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이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엘리자베스 닷지 양에 따르면 심신이 꽤 쇠약한 상태이긴 하지만 빠르면 이주일 안에 걸어다닐 수 있을 정도까지 병이 나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긴 해도 현재로서는 병색이 완연한 스티븐슨 씨의 간곡한 부탁으로 그를 대신해 이 편지를 보내게 됐습니다. 지금이라도 귀하의 사랑을 증명할 마음이 있다면 서울의 미국공사관으로 보내는 지급우편에 귀하의 상상력을 보여달라는 말과 함께, 조금 더 늦어지면 은자의 나라에 있는 자신이 몸소 상상의 무한한 힘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는 말을 꼭 덧붙여달라고 스티븐슨 씨는 말했습니다. 귀하를 대신해 이방의 나라에서 봉변을 당한 병자의 빠른 쾌유를 빌어주시기 바랍니다.

 

 

1888년 10월 17일 서울

존경하옵고 친애하는 죠지 워싱턴 브룩스 씨에게

잘 지내시는지요? 브로드웨이에도 지금쯤은 가을 햇살이 드리워지는지요? 오랜만에 연락을 드리게 됐습니다. 미국공사관의 파커 씨가 저를 찾기에 가봤더니 귀하께서 보낸 편지가 도착해 있더군요. 너무 늦게 도착한 수표와 함께 말입니다. 미국공사관을 나오는데 가을 하늘이 얼마나 드높던지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올려다봤습니다. 브룩스 씨, 저는 가을 공기에서 후추 냄새가 풍기는 은자의 나라에 있습니다. 그런데 브룩스 씨, 조선에 사는 제게 미합중국의 수표가 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처럼 멋진 하늘이 있는데 말입니다. 귀하는 정말 이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간 제가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실 테니 근황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여기서 저는 요꼬하마에서 만났던 송과 함께 국왕 일가를 비롯해 왕실의 이모저모를 사진에 담는 왕립사진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조선 국왕은 사진을 찍을 때마다 늘 같은 표정으로 늘 같은 자세를 취합니다. 하지만 예전의 사진과 인화한 사진을 비교해보면 그 안색에서 뭔가가 조금씩 저문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가을볕이 조금씩 스러지는 것처럼. 그럴 때면 제가 지금 대단히 위태로운 나라의 국왕을 사진에 담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런 깨달음이 쌓여가면서 그 얼굴이나 이 나라에 비낀 불안함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 조금씩 생겨났습니다.

사방이 성벽으로 둘러쳐진 이 중세풍의 도시는 성벽 안에서 바라볼 때 그 진가를 보여줍니다. 성벽 바깥에서는 제아무리 상상해도 그 광경을 떠올릴 수는 없습니다. 미국인들이 보기에는 아무짝에도 소용없을 것 같은 물건들로만 즐비한 상점가 앞을 가득 메운 흰 두루마기 차림의 사람들, 성문을 닫을 시간이면 낮은 초가집이 즐비한 도시에 은은하게 울려퍼지는 종소리, 남자들이 통행금지가 되는 저녁이면 마술에서 풀려난 것처럼 거리로 쏟아지는 여인들, 시궁창 속에서도 가을 하늘처럼 티없이 맑은 웃음을 지으며 뛰어노는 벌거벗은 아이들과 그만큼 더러운 개들, 가끔씩 야경꾼들이 두들기고 지나가는 막대 소리에 겹쳐 들려오는 다듬잇돌 소리와 개구리 우는 소리…… 조용한 밤의 한가운데서 멀찌감치 이런저런 소리가 들려오는 밤이면 저는 병원에서 돌아온 착한 아내를 위해 휘트먼의 시를 읊습니다. “일찍이 붐비는 도시를 스치며 나는 훗날을 기약해 그 풍경, 그 건물, 그 풍습, 그 전통을 머릿속에 새겨넣었지만,/이제 와 내가 그 도시에 대해 기억하는 것이라고는 거기서 우연히 만나 사랑으로 나를 감금시킨 한 여인일 뿐.” 해가 뜨고 해가 지고, 달이 뜨고 달이 지도록 우리는 함께했으니 다른 것은 모두 잊은 지 오랩니다. 내가 시를 읊으면 아내는 ‘소박한 선물’이란 노래로 화답합니다. 이 소박한 선물, 이 편안한 선물, 마침내 얻게 된 선물. 저는 그 선물을 마음껏 누리고 있습니다.

태평양을 건너오는 동안, 제 인생에서 하루가 사라졌습니다. 제물포에서 귀하의 편지가 오기만을 기다리면서 술취해 있는 동안, 저는 문득문득 그 하루에 대해 생각하곤 했습니다. 제 인생에서 사라진 하루, 그 하루는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요? 그리고 그 며칠 뒤, 저는 조선인들에게 두들겨맞아 사선을 넘나드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 꼴을 당하고 나니 갑자기 영원한 사랑이라든가, 인간의 꿈이라든가, 자유라든가, 진보라든가 그런 것들이 죄다 사라진 그 하루와 같은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더군요. 어떤 점에서 귀하의 미합중국과 제 미합중국이 절대로 하나일 수 없는 상상의 소산에 불과하듯, 은자의 나라에서 찾은 제 진실한 사랑 역시 사라져버린 그 하루 같은 것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래서 어쩌란 말입니까? 제 인생에서 실제로 하루가 사라졌든 아니든, 우리가 진짜로 사랑하든 그렇지 않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세계는 상상하는 대로 구성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조선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 귀하가 믿는 사랑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굳이 날짜변경선을 넘어 이 먼 동아시아까지 직접 오실 필요는 없습니다. 와봐야 귀하가 찾는 엘리자베스 닷지 양은 여기에 없습니다. 다만 엘리자베스 스티븐슨 부인이 있을 뿐입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늘 전날의 몸으로 다음날을 살아갑니다. 이곳이 왜 은자의 나라인지 아십니까? 총칼을 앞세우고 여기로 찾아온다고 해도 말릴 생각은 없습니다만, 우리를 찾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이 상상한 것만을 볼 수 있을 뿐인데, 이곳에서 살아가는 우리에 대해 귀하는 그 무엇도 상상할 수 없을 테니 말입니다. 제 인생에서 사라져버린 그 하루를 생각하면 누구도 온전한 존재로 날짜변경선을 넘어올 수는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부디 행운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