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대안적 네트워크를 위하여
홍성욱·백욱인 편 『2001 싸이버스페이스 오디쎄이』, 창작과비평사 2001
하승창 河勝彰
함께하는 시민행동 사무처장 chang@mail.ww.or.kr
1968년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은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쎄이」(2001: A Space Odyssey)를 통해 2001년 오늘을 성찰하였다. 그가 그린 미래는 오늘의 세계와 일치하는 점이 적지 않아 그 정확한 예측도 놀라운 것이지만 영화를 통해 그가 던진 성찰의 메씨지에 공감하는 바가 크기 때문에 더 놀라운 것인지 모른다. 큐브릭의 눈에 비친 미래는 암울하면서도 희망적인 것이었다. 그의 ‘스페이스 오디쎄이’가 도달한 항해의 끝은 컴퓨터가 인간을 지배하는 암울한 세계였지만 신인류의 출현을 암시하는 라스트는 새로운 항해의 시작을 그려보는 희망이었다.
2001년 싸이버에서 출발하는 ‘스페이스 오디쎄이’는 인터넷이 가져온 혁명적 변화에 주목하면서도 그 변화가 반드시 낙관적이지만은 않다는 지점을 자신의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 이 배에 승선한 주요 저자들은 그간 정보사회의 문제에 대한 이론적 작업을 쉬임없이 해온 사람들이다. 백욱인·홍성태·홍성욱 등은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정보사회의 비관적 전망에 대해 경고하고 비관을 낙관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추구해온 사람들이다. 우리의 낙관적 미래를 위해 『2001 싸이버스페이스 오디쎄이』가 가려고 하는 항구는 어디일까?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쎄이」에 인터넷은 없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조건의 형성이 ‘싸이버스페이스 오디쎄이’가 항해를 나서게 되는 까닭이리라. 큐브릭에게 인터넷은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인지 모르지만 그의 상상을 뛰어넘어 오늘날 인터넷이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된 지도 여러 해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인터넷은 우리에게 화두이다. 그것은 우리 경제의 미래와 관련해서도 물론 중요한 화두이지만 우리의 삶과 관련해서는 더욱 그렇다. 인터넷은 무엇이며 우리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주는가? 왜 우리는 이토록 인터넷에 열광하는가? 왜 인터넷을 일컬어 혁명이라 하는가? 그로 인한 변화는 낙관적인가, 비관적인가? 인터넷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국가독점자본주의가 자신의 시장을 무한히 팽창시켜나갈 때 봉건체제를 뚫고 지나간 자리에는 철도가 있었다. 철도는 농촌공동체로 자본주의를 실어 날랐다. 동시에 혁명의 부대 노동자계급을 생산해냈다. 시대는 노동자를 통해 희망을 보았고 자본주의를 통해 암울함을 맛보았다. 지금 우리는 철도와 마찬가지로 시공간을 압축하면서 기존 질서를 허물고 새로운 질서를 세워가고 있는 인터넷을 우리 안에 보듬고 있다. 우리는 인터넷을 통한 국경을 넘는 자유와 평등의 연대에서 희망을 보고, 새로운 감시와 통제의 수단으로, 정보독점의 수단으로 변화하는 것에서 변하지 않을 지배질서를 본다. 그러므로 인터넷은 우리에게 낙관도 비관도 될 수 있다. 희망과 절망이 시대를 지나 교차하듯이 인터넷을 통해 우리는 낙관적 미래와 비관적 미래 모두를 만날 수 있다.
『2001 싸이버스페이스 오디쎄이』는 인터넷의 시작부터 ‘닫힘’과 ‘열림’, 통제와 자유가 부딪치고 있음을 확인하고 출발한다. 그 닫힘과 열림은 인터넷을 통해 대중을 통제하고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를 확대하려는 시도와, 인간의 자유와 평등이라는 역사 이래의 가치를 확장하려는 움직임과의 충돌이기도 하다. ‘싸이버스페이스 오디쎄이’에 승선한 저자들은 그 열림을 확대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저자들은 열린 공동체를 위해서는 우선 네트 안에서 새로운 사회운동의 가능성을 탐구하고 이를 현실의 힘으로 전화할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할 것을 촉구한다. 인터넷 안에서도 여전할 것이 확실한 자본의 독점과 권력의 전횡을 견제할 수 있는 유효한 수단으로 자유소프트웨어운동과 쏘스공개운동을 비롯한 정보공유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서는 네트 안에서의 지속적인 실천이 중요함을 사례를 통해 읽게 해준다. 네트 밖에서는 정보격차의 해소를 위한 사회교육이나 공공접근권의 확대를 위한 노력을 통해 정보빈자와 정보부자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 열린 정보사회를 만들어가는 길임을 보여준다. 저자들은 정보기술혁명이 가져온 신경제가 성장의 열린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부인하고 있지 않으나 현금의 자본주의에는 여전히 지속적인 불안과 불확실성이 만연해 있음을 확인한다. 그리고 싸이버 중독은 병리적 현상이 아닌 새로운 문화적 현상으로 읽을 것을 제안한다.
‘싸이버스페이스 오디쎄이’에 승선한 사람들이 네트의 안과 밖, 그 이면을 헤치고 나오며 인식한 것은, 열린 정보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여전히 우리 사회를 규율하는 주요한 힘, 권력과 자본에 대한 견제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정보사회의 닫힌 측면을 만들고 규율하는 힘이 권력과 자본이라는 점은 정보사회의 혁명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하다는 것이 저자들이 항해의 과정에서 인식한 것이다. 그 인식의 기초 위에 그들이 우리가 도달해야 할 항구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열린 ‘대안적 네트워크’이다.
그러나 대안적 네트워크를 이루는 망들은 그 존재 자체가 구체적이어야 한다. 이제 저자들은 항구에 내려 다음길을 가야 한다. 대안적 네트워크의 형성과정에서 함께 갈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서는, 또 대안적 네트워크가 새로운 질서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기존 질서를 해체하려는 노력을 전개해야 한다. 지금의 네트워크는 단속적이다. 정치는 여전히 봉건적 질서 아래 움직이고 있고, 교육은 대량생산체제에서 신자유주의적 체제로의 변화 와중에 헤매고 있어 사람들을 이 땅에서 떠나게 하고 있다. 정부가 추구하고 있는 전자정부는 21세기에 맞는 정부형태를 찾기보다 정보화라는 단위만 늘린 채 국민의 부담만 더 늘어나게 하고 있다. 이 현실의 과제를 이해하고 인식하는 구성원이 없는 ‘대안적 네트워크’란 존재할 수 없다.
장밋빛 미래를 경고하고 열린 정보사회가 가져야 할 가치와 방향, 수단에 대한 저자들의 항해 결과는 우리 모두에게 우리 사회의 미래는 결국 우리 자신이 만드는 것임을 보여준다. 어쩌면 다음길을 가기 위해 새로운 싸이버스페이스 오디쎄이를 띄워 낙관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저자들과 저자들에게 암시받은 사람들의 몫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