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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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애란 金愛爛

1980년 인천 출생. 2003년 제1회 대산대학문학상 소설 당선. 단편 「노크하지 않는 집」 「나는 편의점에 간다」 등이 있음. greentongue@hanmail.net

 

 

 

종이 물고기

 

 

그는 가끔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공간을 상상한다. 그곳은 실패한 농담들의 쓰레기장, 감기 걸린 영웅들의 사물함, 진심을 위한 뱃지가게, 그리고 이름을 가져본 적 없는 어떤 곳들이다. 그를 둘러싼 집, 상점, 화장실, 학교, 도시는 주로 육면체의 세계이지만 그가 상상하는 공간들이 몇개의 면으로 이뤄져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현재 그는 016으로 시작되는 핸드폰을 가지고 있으며, 알파벳 b로 시작되는 이메일 주소를 가지고 있다. 그는 070으로 시작되는 계좌번호를 가지고 있으며, 02로 시작되는 운전면허를 가지고 있다. 그는 1980년생이고 지금은 2004년 서울이다. 따라서 그가 사는 곳은 진담의 세계이며, 범인(凡人)들의 세계인데다, 오해의 세계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는 모른다, 2004년 서울에 아직도 아버지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잘해야 비길 수밖에 없는 시간 안에서, 방에 누워 사타구니만 만지고 있는 그는 그러니까 웬만한 건 다 모른다.

그는 똥고개에서 태어났다. 그곳은 좁고 구불구불한 계단이 하늘까지 이어지는 마을이었다. 계단은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올라가도 끝이 없었다. 어떤 새댁은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시장으로 내려가다, 더이상 부를 아버지의 이름이 없자 사라져버리기도 했다.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똥고개에서 평지로 내려가는 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가를. 아들의 아들의 아들들이 기어코 평지로 내려갈 때, 그동안 세상은 너무도 달라져버릴 테고 그들은 아주 다른 인종이 되어 있을 것이다. 마치 지금 지구에서 쏘아올린 빛이 몇백년 후 별에 다다를 때와 같이. 그들은 생뚱맞게 도시 어딘가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자신의 반짝임을 창피스러워하면서 말이다.

그는 똥고개가 아직도 거기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가 알고 있는 것은 그런 고개가 세상에 셀 수 없이 많다는 것이다. 번번이 무너지지만 어느새 다시 세워지곤 한다는 것도. 웬만한 건 다 모르는 그도 알고 있다.

20여년 전 그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똥고개의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그는 계단 하나를 오를 때마다 어머니에게 한가지씩 질문을 했다. 이건 무엇이고 저건 무엇인지, 하늘은 왜 파랗고 땅은 왜 붉은지, 계단을 오를수록 그의 질문은 정신없이 쏟아졌고, 어머니의 몸에는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어머니는 행여 아이를 잡고 있는 손이 땀 때문에 미끄러워, 아이를 까마득한 계단 아래로 영영 놓쳐버리지나 않을지 긴장했다. 그런데도 그는 아까 물어본 걸 또 물어봤고 줄곧 인내심있게 대답해주던 어머니를 점점 짜증나게 했다. 어머니는 숨이 턱밑까지 차올라 거의 죽을 지경이었다. 어머니는 그를 업고 걷다, 안고 걷다, 결국 다시 내려놓았고, 손잡고 계단을 같이 올랐다. 얼마 후 창백해진 얼굴의 어머니가 후들거리는 다리로 혼신의 힘을 다해 마지막 계단을 막 오르려 할 때였다. 그때까지 쉬지 않고 떠들어대던 그가 “엄마” 하고 불렀다. 그동안의 질문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았던 어머니는 그를 거의 죽일 듯한 표정을 하고 소리질렀다.

“왜?”

“이 고개 이름은 왜 똥고개야?”

그녀는 멈칫했다. ‘똥고개’는 오래전, 4대문 안에 사는 사람들이 그곳에 똥오줌을 내다버렸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 그를 마지막 계단 위로 번쩍 들어올리며 대답했다.

“스무고개하며 넘으면 금방 넘는다고 똥고개지.”

 

그는 미숙아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아이를 인큐베이터에 넣을 돈이 없었다. 그들은 그냥 죽어라는 식으로 아이를 윗목에 놓아뒀다. 그런데 삼일이 지나도록 아이는 죽지 않았고, 셋방이 떠나가라 울기만 했다. 그의 어머니는 아이에게 다가가 티스푼으로 보리차를 떠 먹였다. 그러자 아이는 신기하게도 울음을 뚝 그쳤고, 보리차를 홀짝홀짝 받아마셨다. 그의 어머니는 “부잣집 아이라면 죽었을 것을 가난한 집 아이라 산 모양”이라며 그를 안아 다시 아랫목에 뉘었다. 삼양라면 한개를 옆구리에 끼고, 퇴근하던 그의 아버지가 시골에서 올라온 그의 어머니를 보고 놀라 한참을 서 있다가, 말없이 돌아나가 라면 한개를 더 사가지고 돌아오던 날 이후, 그는 그렇게 생떼를 쓰듯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젖이 잘 나오지 않는 편이었다. 동네 할머니들은 그녀에게 “소족을 고아먹으면 젖이 잘 나온다”고 말해주었다. 그녀는 돈이 없어 돼지족을 사다 고아먹었다. 그러나 아이의 식욕은 왕성했고, 그녀는 항상 갈증에 시달렸다. 그녀는 돼지족을 사먹을 형편도 여의치 않자 나중에는 주전자에 막걸리를 받아다 마시며 젖을 물렸다. 그녀는 한손으로는 아이를 안고, 한손으로는 주전자를 든 채 막걸리를 벌컥벌컥 마셨다. 때문에 가슴을 풀어헤친 채 아이를 안고 잠든 그녀의 옷 앞섶엔 언제나 허옇게 말라붙은 막걸리 자국이 남아 있었다. 훗날 그는 자기가 낮꿈을 잘 꾸는 이유가 그때 막걸리로 채운 젖을 물고 자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사방이 신문지로 도배된 방에서 자랐다. 그 방은 오른변의 높이와 왼변의 높이가, 방바닥의 너비와 천장의 너비가 같지 않았다. 그가 여섯살이 되던 해 그의 어머니는 속눈썹을 만드는 공장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어머니가 돌아올 때까지 혼자 방 안에 갇혀 시간을 보냈다. 방 안에는 밥상보가 덮인 개다리소반과 요강, 이불, 비키니 옷장이 전부였다. TV도 없고 책도 없었다. 그가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자거나 상상하는 일뿐이었다. 그는 두 팔을 머리맡에 둔 ‘만세’ 자세로 자는 버릇이 있었다. 그는 자는 동안 땀을 뻘뻘 흘렸기 때문에 그 ‘만세’는 벌받는 자세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의 어머니는 “손 올리고 자는 애들은 근심이 많다던데……” 하며 그의 팔을 종종 내려주었다. 그는 하루에 두 번 잠을 잤다. 낮에는 할 일이 없어 잤고, 밤에는 부모님의 피로와 전기료 때문에 잤다. 꿈은 주로 낮에 꾸었는데, 그에게는 밤보다 낮이 훨씬 불안했기 때문이다.

어느날 그는 웬 물고기가 커다란 아가리를 쩌억 벌리며 자기에게 덤벼드는 순간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고, 또 조용했다. 그는 낯선 별에 도착한 사람처럼 방 안을 둘러보았다. 누렇게 바랜 신문지의 글자들이 외계 식물의 씨앗처럼 까맣게 모여 있었다. 벽면 위의 글자들은 저희들끼리 마구 수런대다가 그의 시선이 닿자 일제히 입을 다무는 듯했다. 그는 손등으로 땀을 훔치며 벽면에 가까이 다가갔다. 매일 대수롭지 않게 봐오던 벽면들이었다. 그런데 장난감이라고는 하나도 없던 그 방에서, 여섯개의 벽면은 그에게 새롭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는 방 안에서 잠자거나 상상하는 일 외에도 자신이 놀 수 있는 방법이 또 한가지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먹이를 알아보는 짐승처럼 글자를 알아봤다. 죽은 척하는 짐승을 발로 툭툭 차듯 그는 글자를 더듬었다. 신문은 날짜가 제각각이었고 모두 세로줄로 씌어 있었다.

 

○○사건 5개항 ○○○ 발표, 지나친 ○○는 삼가되 바로 ○○ 지켜야, 내년 ○○ 831억 확정, 고춧값 내림새, 78○보다 27% ○○, 돈 당일 대출, ○○이웃돕기, ○○하는 ○○여러분, 9대 ○○○ 취임식 27일에, 경복학원 개강, 냉동, 용접, 육군지정 안국학원, 자동차정비, 내 고장의 맛 1, 우리의 식생활에 맞는 소화제 베스타제, ○○관련 5명 ○○, 수돗물 42%가 ○○, 축 당첨 설악부동산, 당첨을 축하합니다 광진개발……

 

그는 알 수 없는 말들의 신기한 발음을 즐기며 글자들을 탐식하듯 훑어나갔다. TV 편성표와 영화광고, 날씨정보 등 신문에 씌어 있는 것들은 무궁무진했다. 하지만 그는 한자나 영어를 읽을 줄 몰랐고, 그가 읽는 신문은 대부분 구멍투성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 면에선 다행이었다. 그는 이해하지 못했으므로 속지 않을 수 있었다.

그날 밤 그는 부모의 옷자락을 붙잡고 자신이 읽지 못하는 빈칸을 가리켰다. 그의 부모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한자나 영어를 모르긴 그의 부모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부모는 글을 순식간에 깨우친 그를 보고 놀라워했다. 그는 어머니에게서 한글을 배우다 만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이걸 다 어디서 배운 거냐”고 물었다. 그는 기가 죽어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그는 한쪽 벽면을 다 읽은 뒤 다른 벽면을 읽었다. 그 벽면을 전부 읽으면 또다른 벽면으로 넘어갔다. 한면에서 다른 면으로 이동할 때마다 그는 점점 대범해졌고, 읽는 속도도 빨라졌다. 그는 네 벽면을 읽고 또 읽고 몇번이나 다시 읽었다. 그리하여 더이상 읽을 수 있는 면이 없게 됐을 때 그는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단, 처음과는 다른 방법으로 말이다. 그는 퍼즐을 맞추듯 이 문장과 저 문장, 이 단어와 저 단어를 섞어 읽었다. 모르는 단어의 뜻을 제멋대로 상상하기도 하고, 세로로 씌어진 글을 가로로 읽기도 했다. 그것은 처음의 방법보다 훨씬 수고로운 일이었지만 그는 그 방법을 좋아했다. 왜냐하면 그 편이 훨씬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몇달이 지나자 그는 네 벽면을 읽는 데 싫증이 났다. 그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봤다. 천장은 비가 새 글자들이 번져 있었다. 천장의 벽지는 아래로 불룩하게 처진 채 자글자글 울어 있었다. 그는 그것이 엄마의 아랫배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천장의 글자를 만지고 싶었다. 하지만 천장의 글자는 잘 보이지 않았고, 또 만져지지도 않았다. 그는 우주선을 기다리는 소년처럼, 방 한가운데 서서 미간을 찌푸린 채 목이 빠져라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그에게 내려온 것은 우주선의 환한 빛이 아닌, 천장에서 점점 번져가는 검은 얼룩이었다. 얼룩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급기야는 벽면을 따라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가 사냥하던 글자들은 전염병에 걸린 짐승들처럼 떼로 죽어나갔다. 그는 그 얼룩이 벽면뿐만 아니라 자신까지 삼켜버릴까봐 겁이 났다. 그는 자주 악몽을 꾸고 깨어나 울음을 터트렸고, 섹스중인 부모를 놀라게 했다.

며칠 후 그의 아버지는 방을 새로 도배했다. 하지만 벽지는 오래가지 않았다. 방이 좀 말끔해졌다 싶으니 천장에 콩알만한 얼룩이 생겨나 금세 수박만해졌다. 천장을 뒤덮은 얼룩은 벽의 모서리를 타고 점점 바닥으로 내려왔다. 그의 아버지는 그 위에 신문지를 발랐고, 다시 얼룩이 생기면 그 위에 또다른 신문지를 덧발랐다. 비가 새는 틈을 시멘트로 막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벽지는 상처 위의 딱지처럼 계속 얹어졌고, 종내에는 하나의 튼튼한 지층이 되어 그들이 그곳을 떠날 때까지 바람을 막아주었다.

 

그가 ‘똥고개’의 뜻을 물어본 지 몇년이 지나고, 어머니의 대답을 이해하게 되기도 전에 그들 가족은 시골로 이사를 갔다. 그의 아버지가 “늙어서 고향 내려가면 대접 못 받는다”며, 국졸이라는 이유로 7년 동안 진급하지 못한 변압기 회사를 그만둔 것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내려가자. 우리집에 살면서도 우리는 항상 우리집의 손님이다”라고 했다.

그후로 그는 시골의 한 소읍에서 자랐다. 그의 어머니는 내심 그가 학교에 가면 공부를 잘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는 초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한글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의 받아쓰기 점수는 형편없었고, 책을 읽을 때도 항상 버벅거렸다. 그는 평범하게 자랐다. 홍역을 앓고, 말대꾸를 하고, 수음을 하고, 분단장을 하고, TV를 코앞에 두고 보는 그런 아이로 말이다. 그는 부모에게 자랑도 아니었지만 흉도 아니었다. 그의 부모가 그를 조금 창피해하기 시작한 건 그가 정원미달의 고등학교에 붙었을 때이고, 많이 창피해한 건 바로 그 동네에 있다는 이유로 다른 학교보다 훨씬 더 폄훼되곤 하는 전문대학에 합격하고 나서였다.

그 역시 부모를 자랑스러워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는 평소 도장 파는 아버지의 직업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고만고만한 사람끼리 모여사는 곳에서 더 낫고 덜 나을 것도 없었을뿐더러, 놀림을 받거나 상처를 받는 경우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날 만취한 아버지가 내복바람으로 자고 있던 그를 깨웠다. 그의 아버지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너무 조몰락거려 뜨듯해진 귤을 그에게 쥐여준 뒤 문맥 없는 얘기들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주정을 성의없게 듣던 그에게 갑자기 아버지가 “너 아빠 직업이 창피하냐?”라고 물었다. 그는 그전에 한번도 창피하지 않던 아버지의 직업이, 아버지가 그렇게 질문하는 순간 창피해져버렸다.

그는 스무살 때 입대했다. 한국의 모든 아이들이 TV를 보고 자라듯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많은 청년들이 그러한 것처럼 그가 군대에 가는 데는 하등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입대자 중 그것이 이상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는 군 복무중 누군가를 창피해한다는 것은 동시에 그를 이해한다는 것일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군대에서 보고 듣고 만지는 것들을, 맞고 때리고 빈정대는 것들을, 구호와 노래와 플래카드를 창피해하지 않았다. 그는 그것들을 경멸했다. 자신이 아버지의 직업을 창피해한 적이 있음을 떠올린 순간, 그는 다시 아버지의 직업이 창피하지 않게 되었다.

그는 군대에서 전역한 뒤 대학의 나머지 학기를 마치고 졸업했다. 명절 때 쇄도하는 친척들의 질문에 아들이 진학한 대학의 이름을 말하기 극구 꺼리던 아버지였지만, 자식의 졸업식이란 언제나 감동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졸업식장 입구에서부터 어머니와 승강이를 벌여야 했다. 그는 꽃을 사지 말자고 했으나 어머니는 사겠다고 했다. 그는 칼라꽃을 사자고 했으나 어머니는 장미꽃을 샀다. 졸업식장에서는 남루한 사진사들이 몸에 패널을 두르고 돌아다녔다. 그는 사진이 후지다고 투덜댔으나 어머니는 구태여 찍고 싶어했다.

“우리 가족 다같이 사진을 찍자.”

“촌스러워요.”

“너는 갖지 마라, 내가 가질 거다.”

졸업식을 마친 후 그는 가족들과 함께 동네에서 하나뿐인 레스또랑에 갔다. 아버지가 갑자기 스테이크를 사겠다고 큰소리를 쳤기 때문이다. 기분이 좋아진 아버지는 그를 데리고 식당에 가 메뉴판에서 제일 비싼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그런데 한시간이 넘어도 스테이크는 나오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는 “확실히 비싼 음식이라 오래 걸리나보다” 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한참 후 부스럭거리던 요리사가 스테이크를 내왔다. 그의 가족들은 기대에 부풀어 일제히 접시를 바라보았다. 접시 위엔 볶은 일반 햄을 깍두기처럼 썰어 케첩에 버무린 것이 담겨 있었다. 요리사는 스테이크를 할 줄 몰랐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 가족은 뭔가 이상하다, 아닌 것 같다, 싶으면서도 스테이크를 한번도 먹어본 적 없었으므로 항의할 수 없었다. 그들은 그것을 스테이크라 ‘믿고’ 먹었다.

대학졸업 후 그는 방에 온종일 웅크리고 누워 몇달을 보냈다. 주로 낮잠을 자거나 책을 읽었다. 자식이 책 읽는 모습을 싫어하는 부모는 없지만, 그의 아버지가 볼 때 그가 하는 일은 모두 쓸데없는 짓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동네사람들에게 그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밤마다 그들 부자는 진로문제를 가지고 싸웠다. 그의 아버지가 소리치거나 타이를 때마다 그는 “저도 다 생각이 있어요”라고 했다.

몇달 후 그 ‘생각’이란 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는 아버지에게 서울로 가겠다고, 십수년간 동굴 속에 들어가 있다 커다란 깨달음을 얻고 나온 사람처럼 말했다. 서울? 거긴 왜? 일하러요. 일? 무슨 일? 아무것도 안하는 일은 아니에요. 여기선 못하는 일이냐? 그냥 여기 있어라. 아버지. 넌 자세가 틀렸어. 가겠어요. 너 돈 있냐? 괜찮아요. 부빌 데도 없잖냐? 괜찮아요. 서울서 대학 나온 놈들도 요샌 직장 못 구해 난리다. 청년실업 8%, 넌 신문도 안 보냐? 괜찮아요. 수학과를 나왔으니 전공을 살려야 할 게 아니냐. 괜찮아요. 내가 서울 살아봤는데…… 그의 아버지의 말끝이 흐려졌다. 아버지는 그때 얘기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그의 아버지는 요즘 정치 경제에 대한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그는 그저 괜찮다고 말할 뿐이었다. 그의 고집에 울화통이 터진 아버지는 급기야 그에게 재떨이를 집어던지며 소리질렀다. “넌 뭐가 그렇게 괜찮냐?”

결국 그는 자신의 뜻대로 움직였다. 숱한 이사경험에 이력이 나 있던 그의 어머니는, 집은 주인 보고 고르는 거라며, 자기가 꼭 주인을 보고 집을 골라줘야 안심이 되겠다고 했다. 그는 굳이 따라나서겠다고 하는 어머니를 만류했다. 어머니가 아는 서울과 지금의 서울은 분명 다를 것이다. 버스를 타고 서울에 가 지하철을 몇번 갈아타는 사이 어머니는 지칠 것이고, 그들은 결국 주인 관상이 아닌 가격을 보고 집을 구하게 될 것이다. 그는 어떤 방이든 방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모든 방은 벽면을 가지고 있고, 그에겐 그 면들이 필요했다. 그는 서울행 차표를 끊고 가방을 둘러멨다. 가방 안에는 포스트잇 한뭉치가 위조지폐처럼 수상하게 들어 있었다.

버스 안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는 해가 비치지 않는 자리를 골라 앉았다. 앞좌석 틈새로 병장계급장을 단 사내의 팔뚝과 사내의 어깨에 기댄 여자가 보였다. 그들은 뭔가 속삭이고 웃고 때리며 떠들었다. 그는 창밖을 내다보다 잠이 들었다.

한참 후 그는 눈이 시어 잠에서 깼다. 해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 그는 창문 커튼을 잡아당겼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깔깔대는 소리가 들렸다. 앞좌석의 여자였다. 그는 의자 틈새로 그녀를 봤다. 병장계급장을 단 사내가 스포츠신문을 크게 펼쳐들고 있었다. 여자는 사내에게 속삭였다. “이 여자 털 좀 봐……”

그는 상체를 앞좌석에 밀착시킨 채 미간을 찌푸렸다. 신문 하단, 역도를 들고 있는 한 소녀의 사진이 보였다. 기사는 ‘중국 소녀 아시아 신기록’ 어쩌고 하는 내용이었다. 여자는 한손으로는 입을 가리며 터져나오는 웃음을 막느라 애를 썼고, 다른 한손으로는 중국 소녀를 가리키며 군인에게 동의를 구하고 있었다. 그는 스포츠신문에 실린 소녀의 사진을 좀더 유심히 살펴보았다. 중국 소녀는 거구의 몸에 쫀득하게 딱 들러붙는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소녀는 소녀라는 말이 민망할 정도의 얼굴과 체구를 가지고 있었다. 얼굴은 넓적하니 못생긴데다가, 아무렇게나 친 짧은 머리는 봉두난발이었다. 소녀는 역기를 드느라 두 팔을 번쩍 올리고 있었는데 그 바람에 겨드랑이털이 흉물스럽게 드러나 있었다. 중국 소녀는 역도의 무게를 이기느라 온갖 인상을 다 쓰고 있었다. 앞좌석의 여자는 더욱 미친 듯이 웃어댔다. 겨드랑이털을 드러낸 채 땀을 뻘뻘 흘리며 만세 자세를 취하고 있는 소녀의 표정이 너무도 진지했기 때문이다. 그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뭔가 읽고 싶어진 그는 주머니를 뒤적거려 정류소에서 산 껌 한통을 찾아냈다. 그는 껌 뒷면에 씌어진 주원료 및 함량 표시를 주의깊게 읽었다. 그것은 그가 좋아하는 일 중의 하나였다. 그는 ‘아! 자일리톨껌에는 껌베이스와 이소말트, 말티톱시럽이 들어 있구나’라며 놀라워했다.

 

노파는 집안 깊숙이 그를 안내했다. 좁은 통로를 따라 들어가니 기와지붕이 얹어진 낡은 양옥이 나왔다. 노파는 그곳에서 다시 안쪽으로 들어갔다. 난간 없는 계단이 옥상으로 이어져 있었고, 각 층계에는 먼지 앉은 화초들이 줄줄이 위태롭게 늘어서 있었다. 그는 노파를 따라 옥상에 올랐는데, 한가운데엔 시멘트벽 건물이 맨살을 드러내며 기우뚱 서 있었다. 노파는 웃으며 말했다.

“원래 남자는 안 받으려고 했어.”

그는 동네를 내려다보았다. 고만고만한 크기의 집들이 낮게 엎드려 있었다. 야채 트럭의 확성기 소리는 아까부터 쩌렁쩌렁 울려댔고, 메리야스를 입은 어떤 남자는 여관방 3층에서 그를 내려다보다 커튼을 확 치기도 했다. 노파가 열쇠를 구멍에 꽂고 이리저리 흔들자 현관문은 조루 증상처럼 힘없이 덜컹 어둠을 토해냈다.

“여기가 부엌.”

부엌은 좁고 가로로 긴 모양을 하고 있었다. 천장에는 백열등 하나가 시든 끝물 가지처럼 매달려 있었다. 벽면 한쪽에는 고무 주둥이를 길게 내민 빨간 수도꼭지 하나와 파란 수도꼭지 하나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맞은편 벽에는 연탄 땐 흔적을 덮은 것으로 보이는 시멘트가 두껍게 덧발라져 있었다. 노파는 다시 열쇠를 들고 방문 앞에서 부스럭거렸다. 그 문은 매우 작아 현관문의 절반만했다. 그는 허리를 굽혀 방으로 들어갔다. 방바닥은 정사각형이었고 천장은 꽤 높았다. 방 안에서는 눅눅한 시멘트 냄새가 났다.

“화장실은요?”

노파는 계단 아래 보일러실 옆에 있다고 말했다. 노파는 얼마 전 되바라져 보이는 여자애가 방을 보러 왔는데 한사코 자신이 안 내놓겠다고 했다는 말을 몇번이나 반복했다. 그는 짐짓 까다롭게 수도나 전기 계량기는 따로 있는지, 외풍이나 수해는 없는지 물었다. 그는 장판을 들춰보기도 했다. 사실 그 방에서 깨끗한 것은 들어올 사람을 의식하고 갓 발라놓은 벽지뿐이었다. 그는 그 방의 가격이 마음에 들었다. 보증금 100에 월 10. 선금을 치르고 바로 들어와도 되냐고 묻자 노파는 좋을 대로 하라고 했다.

노파가 후들거리는 다리로 계단을 내려간 뒤, 그는 옥상에 홀로 남아 담배를 피웠다. 옥상에 역기가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판판한 나무판에 파란색 쿠션이 덮인 등받이 위에 녹슨 역기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역기의 봉에는 각각 15킬로그램짜리 바벨이 끼워져 있었다. 나무등받이 아래로는 그보다 더 작은 바벨들이 뒹굴고 있었다. 아마 전에 살던 사람이 놓고 간 모양이었다.

그의 방에는 최소한의 생필품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굳이 뭔가 있다고 말해야 된다면 그것은 그를 둘러싼 창백한 벽면이었다. 그는 이사온 첫날 가방에서 포스트잇 꾸러미를 꺼내 그중 하나를 뜯었다. 그런 뒤 접착제가 발라진 면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한쪽 벽의 맨 아랫구석에 첫번째 포스트잇을 반듯하게 붙였다.

―나는 지금 쓰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예 쓰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쓰기로 결정했다.

그것은 ‘호이징하’라는 학자가 쓴 서문의 일부로, 그가 좋아하는 글귀였다. 그는 벽면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포스트잇을 바라보았다. 그날 밤 그는 버릇대로 만세 자세를 취한 채 잠이 들었고 그를 둘러싼 벽들이 술렁이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첫번째 포스트잇은 그가 서울에 온 이유와 깊은 관련이 있다. 그는 누구도 알지 못하고 찾아올 수도 없는 방을 원했다. 그는 출산중인 소 우리에 아무도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하는 농부처럼 고요함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서울만큼 고요하지 못한 도시가 또 있던가. 서울만큼 잔인한 도시가 또 있던가. 엄밀히 말해 그에게는 고요함과 소음이 동시에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소리와 침묵이, 안과 밖이, 땅과 하늘이 ‘관계’하며 무엇인가 만들어지듯 말이다. 그가 두 발을 딛고 있는 방바닥에는 앞으로 어떤 것도 붙이지 않을 것이다. 그곳은 무엇인가 붙이기 위한 공간이 아닌 다른 벽면들을 받치기 위한 공간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첫 포스트잇을 붙인 벽면은 곧 다른 포스트잇들로 빼곡히 채워졌다. 그는 읽은 책에서 좋아하는 부분을 골라 포스트잇에 적었다. 주로 죽은 작가들의 것이 많았는데, 한쪽 면을 채운 포스트잇들은 비석이 세워진 거대한 묘지처럼 보이기도 했다. 포스트잇이 붙여질수록 첫번째 벽면은 곧 떠들썩해졌다. 그곳에는 점잖은 역사가, 쾌활한 미술가, 충치를 앓고 있는 소설가, 소심한 과학자, 말더듬이 시인, 신경증에 걸린 종교인, 지리학자, 모험가, 언어학자, 운동선수, 심지어는 대필된 신의 목소리까지 있었다. 그들은 서로 싸우거나 건배했다. 그는 첫번째 벽면에서 울려퍼지는 건강한 소음을 좋아했다. 그는 부러, 사이가 나쁜 두 사람을 붙여놓기도 했고, 비슷한 목소리끼리 모아놓기도 했다. 한달 동안 그렇게 한쪽 벽을 채웠다. 규칙도 순서도 없는 문장들이었지만, 그것들은 스스로 어떤 질서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는 전혀 다른 시대, 다른 분야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 놀라워했다.

두번째로 할 일은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쓰는 것이었다. 그는 다른 벽면에 그것을 채우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좀더 작은 글씨로 씌어져야 했다. 그는 하나의 규칙을 정했다. 그것은 한 포스트잇 안의 문장이 다음 포스트잇으로 넘어가야만 이해될 수 있는 불완전한 문장이 아닌, 하나의 완결된 문장으로 끝나야 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두번째 벽면에 첫번째 포스트잇을 붙였다.

―나는 1980년 똥고개에서 태어났다. 그곳은 좁고 구불구불한 계단이 하늘까지 이어지는 마을이었다.

자신에 관한 이야기였으므로 기교나 구성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다만 정직하면 되었다. 그는 막걸리로 채운 젖을 물고 자란 이야기, 신문지로 된 방에 온종일 있었던 이야기, 졸업식 이야기 등을 썼다. 그중에서도 그는 스테이크에 관한 일화를 애틋하게 생각했다. 그 시골 요리사가 했던 일과 지금 자신이 하려고 하는 일이 비슷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는 그 일화의 마지막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우리는 그것을 스테이크라 ‘믿고’ 먹었다. 한편, 요리사와 우리 가족은 서로 얼마나 안도했을까?

정확한 공간이나 시간이 그려지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실제의 그곳이 아닌, 그가 아는 곳을 썼다. 그리고 일은 굉장한 속도로 이루어졌다. 포스트잇은 금방 한쪽 벽면을 채웠다. 벽면의 크기는 한정돼 있고, 포스트잇의 크기 역시 정해져 있다. 하지만 그는 굳이 욕심을 내서 포스트잇들을 겹쳐 붙인다든가 더 빽빽하게 붙이지는 않았다. 그는 한 포스트잇과 다른 포스트잇들 사이에 공간과 거리가 엄연히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한달이 되지 않아 마치 기다렸다는 듯, 딱 한장 크기의 빈자리만을 남기고 있던 벽면 구석에 마지막 포스트잇을 붙였다.

―그리하여 절실함은 내게 언제나 이상한 수치(羞恥)를 주었다.

그는 물러서서 벽면을 바라봤다. 자신의 몸에 그토록 많은 이야기가 깃들어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는 첫번째 벽면에서와 마찬가지로 그것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 당시 정말 아무 의미가 없거나 사소한 일들이 자기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을 깨닫고 그는 경이로움을 느꼈다. 그는 갑자기 문장이 떠올랐다. 그것을 얼른 다른 포스트잇에 적어놓았다.

―이것은 당신과 아무 상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와 아무 상관 없는 수만가지 일들이 우리의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당신이 절대 가볼 리 없는 지방 관광도시의 고장난 공중전화와 당신, 스타크래프트 챔피언과 당신, 고생대부터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빛도 산소도 없는 곳에 사는 지옥의 오징어와 당신, 당신과 당신 사이의 당신.

공간이 빠듯해서 마지막 ‘당신’이란 말을 겨우 끼워넣을 수 있었다. 이것은 세번째 벽면의 첫 포스트잇이 되었다.

세번째 벽면은 좀더 무질서했다. 그곳의 포스트잇들은 뚜렷한 문맥이 있는 것도, 완결된 형태의 문장으로 이뤄진 것도 아니었다. 그는 스치는 생각, 단어, 문장을 암호처럼 적었다. 그중에는 ‘실패한 농담들의 쓰레기장’이나 ‘진심을 위한 뱃지가게’도 있었다. 그것들은 어떤 것도 말하고 있진 않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좋게 해줌을 느꼈다. 그는 어떤 상황들에 대해서도 짧게 써서 붙였다. 이를테면 ‘키스하고 싶은 언청이 처녀’라든가 ‘아내가 떠난 뒤 김을 굽는 사내’라든가 하는 것들이었다. 그것은 오직 그만이 알아볼 수 있었다. 세번째 벽면에는 씌어진 것보다 씌어지기 위한 것들이 더 많았다. 그는 글자를 채우는 일보다 바라보는 일에 더 집중했다. 그는 자신이 무언가를 향해 다가가고 있음을 느꼈다.

주인집 노파는 온종일 방에만 틀어박혀 있는 그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노파는 이따금 세를 받으러 옥상에 올라왔다. 그는 노파를 꼭 문밖에서만 맞았다. 잠시 외출을 할 때 그는  방문 잠그는 일을 잊지 않았다. 그즈음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 더이상 생활비를 보내줄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일자린 구했냐, 뭐했냐, 당장 내려와라…… 그는 ‘괜찮다’는 말만 몇번 반복하다 전화를 끊었다. 그는 다음날부터 공사장에 나갔다.

공사장에서 일하며 그는 네번째 벽면을 채울 ‘꺼리’를 발견했다. 그곳에서 일하는 아저씨들의 입담이 새로운 미적 충격을 주었던 것이다. 그것은 예상치 못한 소득이었다. 그의 귀는 너무나 오랫동안 닫혀 있었던 까닭에 세상의 소음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장작불이 들어 있는 드럼통 위의 철판에 삼겹살을 구워먹는 인부들이 “거 넘이 살이라 그런지 맛있네 그려”라고 말한다거나 “넘들 코 골려줘야겄다”라고 말할 때 감탄하곤 했다. 그는 아저씨들이 나누는 대화를 기억해두었다가 포스트잇에 적었다. 뿐만 아니라 버스 뒷자리에서 중학생들이 나누는 수다나 시장 아주머니들의 음담패설, 공원 할아버지들의 참견도 빠뜨리지 않고 적었다. 그는 말들이 가진 건강함에 놀라며 단상(斷想)으로 채워진 세번째 벽면을 모조리 떼어내고픈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그냥 견디기로 했다. 그는 네번째 벽면을 덮어갔다. 콘센트 구멍이 있는 곳과, 방문 창문이 달린 곳을 제외한 모든 벽이 포스트잇으로 덮였다.

 

그는 ‘소설’이라고 할 만한 것을 한번 써보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다섯번째 면으로 천장을 선택했다. 그는 역기 밑에 있는 나무등받이를 방으로 끌고 와 그걸 밟고서 천장에 포스트잇을 붙이기로 했다.

천장에 포스트잇을 붙이기 전에 한가지 정리를 했다. 그것은 네 벽면에 붙은 포스트잇의 위치와 배열을 바꾸는 일이었다. 그는 네 벽면에서 각각 한장의 포스트잇을 떼어낸 뒤 그것들을 나란히 놓아보았다. 그는 네 장의 포스트잇에서 하나의 연관성을 찾아내고 뛸 듯 기뻐했다. 6×8의 포스트잇이 질서정연하게 붙어 있는 네 벽면은 커다란 체스판처럼 보이기도 했으며, 시간이라는 x축과 공간이라는 y축을 가진 사건 그래프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것은 묘지나 도시처럼 보이기도 했으며 미로나 정글처럼 보이기도 했다. 네 벽면은 하나의 모서리에서 만나 다시 갈라졌으며, 선들을 공유하고 서로를 지탱했다.

그는 천장에 포스트잇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의 소설은 몽상가적 성격이 강한 한 인물에 대한 묘사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인물이 처한 상황을 그린 다음, 소설의 첫부분을 몇장의 포스트잇에 나누어 다음과 같이 썼다.

―그렇다면 그나 나는 왜 이런 낭비를 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당신은 왜 이 낭비를 아직도 견디고 있는 것일까? 그는 침도 별로 없는 입을 열며 우리에게 처음으로 말을 했다. 그것은 어쩌면 희망 때문일 것이라고. 그는 오랫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희망에선 입냄새가 났다. 하지만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역기의 나무등받이에 한번 오를 때마다 꼭 포스트잇 한장만을 붙였다. 버려지는 포스트잇은 다른 벽면을 채울 때보다 훨씬 많았고, 떼어지는 포스트잇 역시 그랬다. 그는 절제해가며 써야 했다. 때론 계획했던 대로 씌어졌고, 때론 인물이나 사건이 저 혼자의 힘으로 저만치 걸어가 있기도 했다. 그는 좋은 소설이 될 거라 확신했다. 좋은 소설을 쓰는 자신이 마치 좋은 사람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그는 즐거워했다. 그는 뭔가에 씌어 있었다. 그는 포스트잇의 위치를 바꾸거나 다시 배열하기도 했다. 그는 먹고 자는 일 외엔 오직 이 일에만 몰두했다. 소설은 거의 완성되어갔다.

몇달 후 나무등받이에서 내려오면서 그는 깊은 숨을 쉬었다. 그리고 뻐근한 목덜미를 뒤로 젖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천장의 포스트잇들은 각각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었고, 또 그래서 아름다웠다. 천장은 모두 채워져 있었고 오직 한장의 포스트잇이 들어갈 만한 자리만이 벽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그동안의 과정을 뒤돌아보았다. 어느날 천장의 포스트잇을 모조리 떼어버리던 일, 몇달 동안 단 한장의 포스트잇도 써 붙이지 못하던 경우, 자신이 붙인 포스트잇이 정말 자신의 포스트잇일까 끊임없이 불안해하던 일, 머릿속의 그림이 문장으로 풀어지지 않아 애를 먹던 일, 고치느니 버리고 싶던 경우, 더 좋은 질의 포스트잇과 더 넓은 방을 희망하던 일, 역도 등받이 위에서 휘청이다 넘어졌던 일…… 마지막 빈칸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속에선 만감이 교차했다. 그는 마지막 포스트잇을 다음날 저녁에 붙이기로 마음먹었다. 아직 마지막 문장을 생각하지 못했고, 또 그것은 의식처럼 행해져야 했다. 그는 나무등받이에서 내려오며 방 안을 휘이 둘러보았다. 접착면에만 살짝 풀칠이 되어 있는 까닭에 포스트잇은 아랫부분이 조금씩 들려진 모양이었다. 그는 포스트잇들이 거대한 담쟁이덩굴 같다는 생각을 했다. 혹은 소나무 껍질 같기도 했고, 물고기의 비늘같이도 느껴졌다. 방은 촘촘한 비늘에 덮인 어떤 생명체 같았다. 비늘이 붙어 있지 않은 창문과 방문은 그 생명의 어떤 기관처럼 느껴졌다. 그는 겨우내 닫아두던 창문을 활짝 열었다. 기다렸다는 듯 차가운 바람이 방 안으로 휘몰아쳤다. 바람은 창문으로 들어와 방문을 통해 나갔고, 다시 방문으로 들어와 창문을 통해 나갔다. 바람이 들고 날 때마다 모든 벽면은 바깥을 향해 천천히 부풀어오르다 다시 원상태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럴 때면 다섯 개의 벽면에 붙은 포스트잇들은 일제히 파르르 몸을 떨었다. 그러자 그것은 더욱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그 방 전체가 하나의 종이비늘이 달린 물고기가 되어 부드럽게 세상을 헤엄쳐다니는 상상을 했다. 그는 물고기의 지느러미 옆에 붙어 있는 듯한 기분도 느꼈고, 반대로 자신이 물고기의 뱃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 기분도 느꼈다. 그는 어디가 안이고 밖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가만히 서 있는 자신의 몸이 저절로 일렁이는 것을 보았다. 모든 것은 너무나 생생했다.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차르르’ 하는 소리가 났다. 그는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디선가 다시 ‘차르르르’ 하는 소리가 들렸다. 방바닥을 내려다보니 여기저기 모래가 흩어져 있었다. 그는 손바닥으로 방을 쓸어보았다. 진짜 바닷모래였다. 그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두 눈을 끔뻑거렸다. 수천장이나 되는 비늘 사이에서 모래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비늘은 천천히 부드럽게 너풀거리며 그의 머리칼을 휘날리게 했다. 그는 두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며 ‘이건 진짜야’라고 중얼거렸다. 마지막 포스트잇을 붙이고 나면 물고기가 싱싱한 등허리를 파닥거리며 자신을 데리고 어디론가 헤엄쳐갈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얼마 후 그는 자기도 모르게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는 그날 밤 두 팔을 머리맡에 둔 채 잠을 잤고, 어쩌면 꿈속에서 거대한 눈을 끔뻑이는 종이 물고기를 봤는지도 몰랐다.

다음날 그는 공사장에 나가며 방 안을 한번 둘러봤다. 포스트잇들은 얌전하게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그는 방문을 단단히 잠그고 나갔다. 돌아오는 즉시 마지막 문장을 쓸 것이며, 그런 뒤에는 천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볼 것이다. 그런 뒤 어쩌면 그것을 세상에 내보여도 될지 모른다. 그런 뒤, 그런 뒤엔 뭘 하지? 그는 마음이 너무도 부풀어올라 3층에서 벽돌을 나르던 중 발을 헛디딜 뻔하기까지 했다.

 

그가 집에 도착했을 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옥상에서 낯선 인부들이 바쁘게 오가고 있었고, 구경꾼들이 모여 뭐라고 수런대고 있었다. 뭔가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두리번거리던 그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계단을 올랐다. 그런데 옥상에 올라갔을 때 폭삭 허물어져 내려앉은 옥탑방이 보였다. 그는 온몸이 빳빳하게 굳어오는 것을 느꼈다. 멍하니 폐허를 바라보며 서 있자, 주인 노파가 그를 알아보며 다가왔다. 노파는 잔뜩 화가 나 있는 표정으로 다짜고짜 소리쳤다.

“아니, 총각. 벽에 금이 가고 있었으면 그렇다고 말했어야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그냥 놔두면 어쩌자는 거야. 돈도 돈이지만 송장 칠 뻔했잖아!”

그는 정신이 멍해졌다. ‘금이라니?’

“여지껏 버틴 게 용하다네. 실금이 논바닥처럼 쫙쫙 갔는데 왜 그냥 있었냐고 난리야.”

그는 그 자리에 붙박인 듯 서서 자기 방이 무너진 현장을 노려보았다. 워낙 없는 살림이기도 하지만, 그곳에는 벽돌과 노란 포스트잇이 시멘트 가루 속에 뒤엉켜 있었다. 인부들은 바쁘게 건물의 잔해를 자루에 담아 아래로 나르고 있었다. 그는 벽돌 틈에 삐죽삐죽 나와 있는 포스트잇들이 짐승의 창자처럼 끔찍했고 또 수치스러웠다. 그는 포스트잇들이 그동안 벽면에서 서서히 진행되던 균열을 모두 가리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노파가 계속 옆에서 뭐라고 떠들어댔으나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고, 시멘트 먼지 때문인지 눈이 자꾸 따끔거렸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그러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주위는 캄캄했고, 또 몇시간 전의 소란에 비해 고요했다. 그는 노파가 자신을 걱정하며 몇번이나 옥상에 올라온 것을 기억했다. 그는 잠시만 그러고 있겠다며 노파를 내려보냈었다. 방은 쉽게 무너진 것처럼 쉽게 치워졌다. 그는 정리가 덜된 철거현장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 몇시간을 보냈다.

갑자기 정신을 차렸을 땐 아무도 없었다. 그는 가까스로 담배를 한대 꺼내 물며 폐허를 바라봤다. 시멘트 조각과 함께 뒤엉켜 있는 포스트잇 더미는 한장의 구겨진 평면처럼 보였다. 그것은 삐까쏘의 「우는 여자」 같았다. 그러자 그 얼굴은 금세 역기를 들고 있는 중국 소녀의 얼굴로 바뀌었다. 그는 역도선수처럼 잔뜩 일그러진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갑자기 비 새는 방을 도배하던 아버지, 얼룩과 싸우듯 벽면 위에 신문지를 덧바르고 또 덧바르던 아버지가 생각났다. 얼룩을 막지는 못했지만 그들을 그곳에 ‘살게’ 만들어준 아버지의 고마운 미련함…… 그때였다, 어디선가 은행나무 잎처럼 노란 포스트잇 한장이 그의 발밑으로 날려왔다. 그는 신발 밑창으로 포스트잇을 지그시 눌러 더이상 날아가지 못하도록 했다. 그는 허리 굽혀 그 포스트잇을 주웠다. 달달 떨리는 손으로 꼬깃꼬깃 구겨진 포스트잇을 펴보았다. 그가 쓴 소설의 한 구절이었다.

―그는 침도 별로 없는 입을 열며 우리에게 처음으로 말을 했다. 그것은 어쩌면 희망 때문일 것이라고.

그는 그것을 읽고 한동안 꺼이꺼이 울었다.

 

한참 후 그는 시멘트 가루가 묻은 그 포스트잇을 소매로 닦았다. 그런 뒤 그가 기대앉아 있던 옥상의 낮은 담벼락에 붙였다. 포스트잇은 담에서 금방 떨어졌다. 그는 포스트잇을 주워 접착면의 시멘트 가루를 털어낸 뒤 다시 담벼락에 붙였다. 포스트잇은 다시 떨어졌다. 그는 포스트잇을 자기 엄지손가락으로 누르고 있었다. 그는 손가락을 떼지 않은 채 포스트잇이 바람에 파르르 흔들리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마치 물고기의 아가미처럼 가쁘게, 그러나 팔딱팔딱 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