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책머리에

 

대오를 정비할 때

 

 

대선을 앞두고 또다시 정치권의 이합집산이 요란하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종전과 다른 차원이 엿보인다. 보스들의 영향력이 현저히 약화되었다. 그동안 박정희와 그 후계자들의 군사독재체제에 대한 민주화투쟁을 이끌었던 ‘두 김’이 차례로 집권에 성공한 개혁정권 10년을 거치면서 보스들의 시대가 서서히 종언을 고하는 형국에 우리 정치는 처해 있다. 사실 그동안 민주화세력 또는 개혁세력도 보스 의존적이었다. 막강한 독재체제와 겨루는 간난한 과정에서 나타난 불가피한 선택이란 측면이 없지 않은데, 후속세대를 부양하는 데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그들에게도 책임의 일단이 엄연한 것이다. 이 점에서 금번의 ‘혼란’은 독재와 반독재의 기나긴 싸움의 도정에서 배양된 보스정치의 총체적 해소요, 새 정치로 이행하는 과정의 단초라는 긍정적 씨앗을 품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3김시대’ 청산의 구호가 자제된 것도 진전이라면 진전이다. ‘청산’이란 대체로 공허한 수사로 전락하기 쉽다. 청산을 외친다고 청산되는 것도 아닐뿐더러 청산이 반드시 좋은 것만도 아니다. 자신의 역사적 사명을 다할 때 물러갈 것은 외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퇴장하는 법. 이제 우리 사회도 특별한 국면의 지속 속에서도 보통의 역사감각을 회복하는 입구에 들어선 것이 아닌가, 희망적 관측을 품게 된다. 지난 개혁정권에서 계승할 것은 잇고 부정할 것은 비판하는 냉철한 예지가 통일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이 중대한 민족사적 싯점에서 무엇보다 절실히 요구된다는 점에서 이번 정치재편의 귀추가 주목되는 것이다.

이제 문제는 시민 또는 민중이다. 우리 정치가 당면한 실험적 과제를 성공적으로 성수(成遂)하기 위해, 아니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진정한 성숙을 위해서는, 아래로부터 또는 옆으로부터 건강한 시민적/민중적 대오(隊伍)가 싱싱하게 살아나야 한다. 솔직히 말해서 개혁정권 10년에 운동의 대오가 흐트러진 바가 없지 않다. 두터운 보수의 벽에 포위된 취약한 개혁정권을 보우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할지라도 제도와의 경계 출입 속에서 재야의 정신과 육체가 적잖이 훼손되었다. “조정에 있을[在朝] 때도 들을 잊지 않고 들에서도[在野] 나라를 염려한다.” 재야와 재조의 선순환(善循環)의 고리를 끊지 않되 들에 있음을 의식적으로 자각하는 일이 기본이다. 이 기본이 든든할 때, 나라가 서고 사회가 성숙한다. 새로운 다짐과 통합적 비전으로 시민적/민중적 대오에 자신을 겸허히 투여할 때다.

 

이번호 특집은 선거정국을 넘어 새로운 대오를 짜는 데 필요한 비전을 마련하기 위한 우리 나름의 기초작업이다. ‘대한민국’에서 진행되어온 변화와 개혁의 의미를 점검하면서 한반도 안팎의 한민족의 삶 전체를 시야에 담은 코리아의 청사진을 만드는 자리로 꾸몄다.

백낙청은 한반도에서 새로운 유형의 통일국가와 함께 ‘일류사회’를 만들기 위한 밑그림을 제시하고 있다. 월드컵 이후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이 커지면서 일류국가론이 나왔지만, 그것이 안고 있는, ‘코리아’의 의미를 분단국가 한국으로 축소해버리기 쉬운 위험과 국가주의적 요소를 경계하고 ‘정말 멋진 인간사회’를 이땅에 구현하자는 뜻이 ‘일류사회’란 발상에는 담겨 있다. 그는 분단체제론의 일부로 제시한 통일국가의 구상이 (일부가 오해하듯이) 국민국가의 틀을 벗어난 것이 아니라 한반도 현실에 맞는 복합국가형 통치기구임을 명확히하면서, 문화적 실체로서의 ‘한민족공동체’를 발전시키는 작업을 병행해야 그 실현 가능성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세계사적 의의도 증대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일류사회’ 비전은 실질적인 개혁사례가 제시됨으로써 한층 더 구체성을 띤다 하겠다. 백낙청이 서울과 지방의 격차 해소를 한반도 전체 지역발전의 시각에서 찾는 것과 더불어 특히 강조한 사례가 새만금 간척사업이다. 새만금에 대해 김석철은 제3의 길을 제시한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방조제를 활용해 여러 개의 작은 섬으로 이뤄진 바다도시를 건설해 해안도시와 연대하고 내륙도시와 네트워크를 만들자는 것이다. 시야를 새만금 안에 가두지 않고 바깥 더 큰 세계, 즉 황해안 도시공동체로 넓힌 그의 작업은 이제 막 주목을 끌기 시작했을 따름이다. 도시설계가의 식견이 녹아 있는 이 의욕적인 대안은 미래의 코리아를 구체화하는 데 큰 보탬이 될 것이다.

북측의 핵개발 가능성 문제로 불거진 한반도의 위기상황에 대한 쎌리그 해리슨의 해법 역시 설득력있는 대안이다. 북한 핵무기 사찰체계의 댓가로 지금 KEDO 지원 아래 건설중인 북한의 경수형 원자로 2기를 1기로 축소하는 대신, 사할린의 가스를 공급할 운송관을 북한을 관통하여 남한에 연결하자는 게 그가 말하는 절충안이다. 이것은 북한과 남한 그리고 통일한국의 경제적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반도 주변국가들의 경제적 이해와도 관련된 것인바, 핵문제로 야기된 갈등의 해법이 단순한 군사적·정치적 이해의 조정에 머물지 말고 경제적 이해와 중첩되어야 함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북한 핵문제보다도 경제문제가 우리 생활 속에서 위기를 더욱 절감케 하는 요인이라는 소리도 적지 않다. 특히 미국경제의 침체가 심각해지면서 한국경제의 장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창환은 외환 금융위기 이후 한국경제가 위험하고 불안정한 미국의 IT붐과 고주가에 지나치게 의존해온 현실을 비판하면서, IT제품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역내순환구조가 자리잡히도록 협력방안을 모색하는 가운데 지속가능한 동아시아 성장모델이 창출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국내 정치개혁의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다. 남재희는 대선 이후의 정국에 대해, 당분간 보수 양대정당의 주도하에 보수 군소정당과 진보 군소정당이 참여하는 구도가 지속될 터이므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의 비중을 과감하게 늘려서 권력의 바람직한 분산과 여러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연립의 정치로 나아가야 할 것으로 내다본다.

국책연구소의 정책보고서를 비판적으로 분석한 김형기는 시장만능주의와 성장주의에 매몰된 중앙-지방관계를 넘어설 대안적 지역발전모델을 들고 나온다. 이 글에서는 참여·연대·생태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지방분권적 발전모델이란 원론적 제안에 그치고 있지만 ‘지방분권국민운동’ 전국조직(지난 11월 7일 공식출범) 같은 기구가 앞으로 한층 더 구체적인 대안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기대를 걸어본다.

사실, 특집의 기조는 논단에서도 상당부분 이어지고 있다.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이란 두 차례 거대 스포츠 행사의 영향으로 스포츠의 의미는 점차 세분화되고 문화의 다양화가 이뤄질 터인데, 그 결과 각 개인의 자족감이야 증진되겠지만 과연 그것이 행복한 사회의 충분조건이 될 수 있을까 질문하는 정준영의 글, 젠더 관계의 변화나 공보육 같은 제도적 뒷받침이 없는 현재의 조건에서 주5일제가 문화의 공공성과 문화적 민주화를 높이는 방향보다는 가족중심의 금전소비형 여가를 조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는 안정옥의 글, 그리고 1987년의 노동자대투쟁으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의 한국노동계급이 ‘전투적 경제주의’ 요소가 강한 종래의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데, 그 관건은 산별노조로의 전환과 민주노동당을 통한 정치세력화라고 밝힌 조효래의 글을 함께 읽으면 대한민국의 노동, 일상생활, 스포츠 및 여가문화의 오늘과 내일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한기형에 의해 우리 앞에 되살아난 해방 직후 오기영의 삶과 사상은, 도덕주의적이고 이상주의적인 중간파의 한계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시대 초월적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한반도의 운명이 곧 세계 인민의 운명과 직결되어 있다는 세계사적인 안목과 강대국들의 정책 전환을 요구하는 그의 지성은 코리아의 미래를 위한 소중한 자산이 아닐 수 없다.

이번호 문학란도 공들여 꾸며놓고 독자의 반응을 기다린다. 시에서는 신경림·마종기를 비롯해 이성복·이재무·최종천·이선영·박규리와 신인 안주철의 작품이 다채로움을 선보이고 있다. 또한 지난호에 이어 이번에도 다섯 편의 소설을 실어 문학란의 풍성함을 꾀했다. 베트남 작가 반레를 거울삼아 타락해가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방현석의 중편과 걸쭉한 입담으로 바닷가 사람들과 바다 자체를 감칠맛 나게 그린 신인 이상섭의 중편은 우리 소설의 새로운 영역을 보여줘 주목거리이다. 이병천의 단편은 지난 시절 우리가 소중히 보듬던 가치들이 단지 추억의 대상만은 아님을 이야기하고, 경상도 사투리의 구수한 맛이 살아나는 박정애의 단편은 농촌 노인의 쓸쓸한 삶을 따뜻이 감싼다. 특유의 서정으로 당대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신경숙의 단편도 소설 읽는 맛을 더할 것이다. 평론에서는 최근 출판계에 화제가 된 『주례사 비평을 넘어서』를 다룬 윤지관의 글이 ‘주례사 비평’ 담론의 공과(功過)를 짚으면서 진실한 비평의 길을 찾는다. 은희경의 소설을 설득력있게 해석해낸 이선옥의 평론과 “시에 대한 섬세한 분석과 유연한 논리전개”로 주목되는 신인 강계숙의 평론, 최근의 시집과 소설집을 성실하게 읽어낸 구모룡·오창은의 서평, 토마스 만·김재기·베르베르 등의 장편에 대한 촌평도 문학란의 풍성함을 더해준다.

그밖에 틱낫한의 명상서와 김상환·노명우 등의 저술에 대한 촌평, 방송·만화 관련 문화평도 놓칠 수 없는 읽을거리이지만, 우리 사회 속에서 공생하는 소수자인 중국동포와 사할린 귀국동포의 생활을 알리는 현장통신과 일본인 납치에 대한 북한의 시인으로 북·일의 화해가 좌절될까 염려하는 양심적인 일본 지식인들의 긴급성명 등은 동아시아인의 진정한 연대와 평화의 길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넓혀준다.

내년 봄호부터 지면을 대폭 개혁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독자와의 쌍방향적인 소통의 길을 트기 위해 현장통신 원고를 널리 구한다. 이와 더불어 독자투고도 전보다 더 활기차게 보내주시길 고대한다.

2002년이 저문다. 저무는 것이 자신의 소임임을 빠르게 성취하는 가운데 저물고, 새로운 도시, 새로운 시민의 합창이 영롱한 새해가 되기를 삼가, 옷깃을 여미고 기원한다.

崔元植·白永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