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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대한민국의 오늘, 내일의 코리아

 

새만금의 미래를 여는 새로운 시각

 

 

김석철 金錫澈

건축가, 도시설계가. 아키반(ARCHIBAN)건축도시연구원 대표. 명지대학교 건축대학장. 주요 작품으로 예술의 전당, 베네찌아 비엔날레 한국관, 한국예술종합학교, SBS 탄현스튜디오, 제주영화박물관, 해인사 신불교단지, 뻬이징 경제개발특구 주거단지, 쿠웨이트 자하라 주거단지, 여의도 마스터플랜 등이 있음. RTV 특집씨리즈 ‘새만금, 대안은 있다’에 주도적으로 참여. archiban@kornet.net

* 다이어그램과 도면은 12월 2일 서울에서 열릴 “새만금수상도시 국제심포지엄”(International Symposium THE SAEMANGEUM AQUAPOLIS)을 위한 자료여서 영문 표기를 사용했음을 밝힌다. -필자

 

 

머리말

 

새만금 사업은 군산항과 고군산군도(古群山群島)와 변산반도를 33km의 방조제(防潮堤)로 이어 바다와 갯벌을 4만ha에 달하는 농토와 담수호로 만들고자 지난 12년 동안 공사를 진행해온 사상 최대의 간척사업이다. 1986년 전두환 대통령에 의해 발의되고 1991년 김대중 당시 야당총재의 강력한 요구로 착공되었으나 정부 부처에서조차 회의적 시각이 많았다. 1997년 환경단체가 반대운동을 시작하고 1999년 외국의 환경단체들까지 나서자 정부가 공사를 잠시 중단한 채 일년여에 걸친 민·관 공동조사단의 검토를 바탕으로 타당성을 재검토하였으나 2001년 사업을 재개하기로 결정하여 현재 공사가 진행중이다.

 

1992년 새만금 상황

1992년 새만금 상황

 

그동안 많은 논란이 있었으나 공사는 강행되었고 방조제는 완공 직전이다. 새만금에 대한 논란은 원론적 단계를 이미 지났다. 새만금 사업의 문제는 “바다와 갯벌을 농토와 담수호로 만드는 것이 옳으냐 혹은 그르냐”가 아니라 “더 큰 가능성의 새로운 대안은 없겠느냐”에 있다. 새만금의 가능성을 33km에 이르는 방조제 공사가 거의 마무리된 이 싯점에서 논하는 것은 뒤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새만금의 규모와 현재 진행중인 공정, 그리고 방조제가 완공되었을 때 예상되는 환경재앙과 경제적 손실 등으로 보아 불가피한 일이기도 하다. 새만금 사업의 문제는 호남평야와 거의 같은 크기인 4만ha의 규모에 있고 새만금의 가능성도 거기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지난 3년 동안 일년의 반은 베네찌아(베니스)와 뉴욕 맨해턴에서, 반은 서울에서 일하면서 새만금 논의를 지켜보았다. 정작 새만금 문제에서 국토계획과 도시설계를 하는 전문가들은 방관하고 자연과 환경을 걱정하는 지식인들만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자료를 모아 베네찌아건축대학과 컬럼비아건축도시대학원의 교수들과 토론을 가졌다. 마침 『아쿠아폴리스』(Aquapolis)라는 학술지의 객원편집인으로 일할 기회가 있어 새만금과 거의 같은 크기인 베네찌아의 라구나(Laguna, 안바다)와 새만금을 비교해볼 수 있었고 1999년 12월 동북아시아의 수상도시공동체에 대한 국제회의를 국제수상도시연구소와 함께 주관하면서 새만금에 대한 대안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2001년 새만금의 상황

2001년 새만금의 상황

 

새만금을 안에서 보면 바다와 갯벌만 보인다. 아니면 내륙 쪽의 농토나 공업단지만 생각난다. 우선 거기서 벗어나야 한다. 너무 오랫동안 우리는 새만금 안에만 머물러 있었다. 새만금을 새만금만으로 보아서는 새만금의 미래를 알 수 없다. 새만금의 미래를 여는 키워드(keyword)는 새만금 바깥 더 큰 세계에 있다. 황해안 도시공동체, 서해안 ‘어번 클러스터’(urban cluster, 都市集積)라는 새만금을 둘러싸고 있는 더 큰 세계 속에서 새만금의 역할을 찾아야 하고 새만금이 호남평야와 이루어야 할 도시연합과 4만ha의 석호(潟湖) 안에서 이룰 수 있는 최고의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쌓은 방조제를 활용하면서 바다를 완전히 막지 않고 새로운 도시설계를 함으로써 농토와 담수호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큰 가능성의 세계를 새만금에서 이룰 수 있음을 이 글에서 보여주고자 한다.

 

 

새만금의 미래를 여는 다섯 키워드

 

(1) 황해: 해안도시공동체

바다는 천혜의 인프라다. 천혜의 인프라인 바다를 중심으로 해안도시공동체가 생긴 것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오디쎄이아』의 세계는 바다도시들의 세계였고 발틱해는 바이킹의 해안도시공동체였다. 플라톤이 말하던, 연못을 중심으로 모든 삶이 이루어지는 개구리와 연못의 관계 같은 것이 해안공동체의 모습이다.

동북아시아에서도 고대와 중세에는 내륙보다 바다를 통한 교역이 더 많았고 주된 교역로는 황해안 해안도시를 연결하는 해로였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는 해로를 통한 문명의 교류가 빈번했으며 해상국가로 시작한 고려시대에는 중국대륙과 바다를 통한 교역이 육로보다 더 빈번했다. 몽골제국이 중국 전역을 점령하고 뻬이징(北京)을 통일중국의 수도로 정한 이후 한반도와 중국의 교역로는 해로에서 육로로 바뀌었다. 명나라가 들어선 이후 해안을 봉쇄하고 한국과 일본이 쇄국정책을 쓰게 되면서 황해는 닫힌 바다가 되고 해안도시는 소멸하고 말았다. 중국 해안에는 오직 닝뽀(寧波)만이 유일한 국제항이었고 한반도에는 국제항이 없었다. 근대에 들어와 유럽이 바다를 넘어 세계로 나간 데 비해 동양 3국은 바다를 닫고 근 500년 동안 쇄국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2차세계대전 이후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황해는 더욱 철저히 닫힌 바다가 되었다. 중국 해안은 완전히 봉쇄되었고 한반도 서해안 역시 금지구역이었다. 그러다가 중국에서 1978년 개방과 개혁을 시작한 곳이 해안도시였다. 개방과 개혁 이후 중국 내륙보다 중국 해안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고 그 물결이 황해도시공동체를 다시 살아나게 하고 있다.

20세기 후반부터 아시아국가간 무역이 동서양간 무역보다 많아지면서 황해가 유럽공동체 못지않은 경제적 파워를 가진 동북아시아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다. 황해안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밀집한 곳이다. 3억 5천만의 인구가 이루는 경제적 파워는 해마다 10%에 가까운 경제성장을 지속하고 있어 황해안의 도시간 교역을 갈수록 증가시키고 있다.

 

메가씨티와 어번 클러스터로 이루어지는 황해도시공동체

메가씨티와 어번 클러스터로 이루어지는 황해도시공동체

 

황해도시공동체는 해안도시들로 시작하였으나 해상공항과 고속철도의 등장으로 여태껏 볼 수 없던 다변화된 도시간 네트워크로 변모하고 있으며 점증하는 역내 물류의 흐름과 산업연계로 도시간의 역할분담이 일어나고 있다. 중국대륙의 해안도시들을 중심으로 한 경제성장의 스피드와 스케일은 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 동부 해안도시들의 기록을 앞지르고 있다. 한반도의 서해안 도시들 역시 중국과의 교역을 중심으로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으며 멀지 않은 장래에 남과 북을 초월한 도시연대가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기독교 문명권인 유럽공동체보다 더 견고한 한자문화권이면서 유교문화권인 황해안 도시간에 국가를 넘어선 도시간 경제문화공동체의 출현도 예견할 수 있다.

 

인구로 본 황해도시공동체

인구로 본 황해도시공동체

 

육상의 인프라를 통해 그물같이 이어진 유럽공동체와 멀리 바다를 건너 도시공동체를 이루게 되는 황해도시공동체는 다르다. 바다를 건너는 일은 국제항만과 국제공항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황해도시공동체의 거점도시가 되려면 중심도시를 축으로 국제항만과 국제공항, 세계적 수준의 산업단지와 시장 및 문화인프라를 가진 ‘메가씨티’(mega-city, 거대도시)이거나 여러 도시가 연합하여 메가씨티 규모의 도시권을 이루는 ‘어번 클러스터’(도시집적)여야 한다. 서울, 뻬이징 같은 중심도시도 인천, 톈진(天津)-탕꾸(塘沽) 같은 항만과 연대한 메가씨티가 되어야 하고, 샹하이(上海) 같은 대도시도 내륙의 산업기지와 시장 및 문화인프라를 연결한 메가씨티가 되지 않으면 황해도시공동체의 거점도시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발해만 일대나 샨뚱(山東)반도 또는 닝뽀-져우샨(舟山) 일대의 도시연합도 메가씨티 규모의 경제력과 문화인프라를 가진 도시조직인 ‘어번 클러스터’를 이루어야 황해도시공동체의 거점도시가 될 수 있다. 발해만, 샨뚱반도, 져우샨열도(舟山列島), 한반도 서해안이 해안과 내륙의 어번 클러스터를 이루어 샹하이-난징(南京), 뻬이징-톈진·탕꾸, 서울-인천 메가씨티 못지않은 도시 규모로 일어서면 황해안 도시공동체는 유럽공동체를 압도하는 경제적·문화적 파워를 가진 세계도시연합이 될 수 있다.

1억2천만 평의 새만금은 황해도시공동체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새만금을 농토와 담수호로 만드는 일은 미래의 재앙을 만드는 일이지만 새만금을 그냥 바다와 갯벌로만 남겨두는 일도 역사의 도전을 피해가는 일이다. 인구와 산업의 규모, 문화적 공동체 역사, 성장속도 등으로 보아 황해도시공동체는 유럽공동체나 북미공동체보다 더 큰 경제공동체가 될 것이고 그것에 대비한 새만금 일원의 역할을 생각해야 한다.

해안공동체에서 비교우위를 가지려면 바다와 해안의 지리적·인문적 조건이 뛰어나야 한다. 황해는 평균심도가 44m인 얕은 바다여서 좋은 항만이 드물고, 좋은 항만조건이 있는 곳은 상대적으로 내륙과의 연대가 약하다. 항만과 내륙도시가 도시연합을 이룬 닝뽀와 져우샨열도만한 곳이 서해안에서는 새만금 일대다. 새만금-호남평야 도시연합과 서해안 아키펠라고(archipelago, 群島)와 지리산과 덕유산 그리고 군산반도와 변산반도 모두를 자기 영역으로 할 수 있으면 닝뽀-져우샨 일대의 도시연합보다 더 큰 가능성을 가진, 도시연합이 모여 이루는 메가씨티 규모의 어번 클러스터를 이룰 수 있다.

 

(2) 서해안: 어번 클러스터

황해도시공동체를 구성하는 도시군은 메가씨티와 어번 클러스터다. 메가씨티는 대도시가 주변도시를 통합하여 다른 경제권과 대응하는 경제적 독립권역이다. 샹하이를 중심으로 한 양쯔강 하구 대도시권, 뻬이징을 중심으로 톈진과 탕꾸가 이어지는 뻬이징 거대도시권, 2천만 인구의 서울-인천-수도권 등이 메가씨티인 것이다. 이에 비해 황해도시공동체의 일원인 발해만 일대, 샨뚱반도, 져우샨열도, 한반도 서해안, 일본열도 서남해안 등은 대형 중심도시가 없는 도시연합체이다. 샨뚱반도는 황해안으로 돌출된 핵심적 위상에도 불구하고 웨이하이(威海)·칭따오(靑島)·옌타이(煙台) 등 군소항만이 연이을 뿐이고 내륙도시와의 네트워크도 미미해 이렇다 할 산업과 시장이 아직 미흡하다. 닝뽀와 져우샨은 황해안 최고의 항만조건을 갖고 있으나 내륙도시의 인구와 산업 및 문화인프라가 취약하며 강력한 도시연합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일본열도 서남해안인 후꾸오까(福岡)·시모노세끼(下關) 등은 동북아시아와 미대륙을 잇는 주항로에 위치하고 황해안으로 열린 일본열도의 창구이면서도 아직은 황해도시공동체의 거점이 될 만한 도시 규모를 이루지 못하고 있으나, 세또나이까이(瀨戶內海)를 통한 특단의 내륙도시연대를 구축하면 강력한 어번 클러스터가 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광양항과 부산항은 동아시아와 미주대륙·유럽을 잇는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어 동아시아의 허브(hub)항이기는 하나 황해공동체 도시권역에서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낮다. 부산항과 광양항은 메가씨티나 어번 클러스터보다 동북아의 허브항만으로서의 역할이 크다.

 

서해안 어번 클러스터

서해안 어번 클러스터

 

메가씨티 규모의 경제력을 가진 어번 클러스터가 이루어질 수 있는 지역으로 북한에서는 신의주-압록강과 개성-평양을 잇는 서해안을, 남한에서는 평택·군산·목포를 잇는 서해안을 생각할 수 있으나 북한 서해안은 아직 경제력이 부족하고 남한의 서해안은 해상활동과 내륙활동이 연계된 도시연합이 독립된 경제권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어번 클러스터라 할 만한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다행히 인천공항의 개항으로 서해안 어번 클러스터의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인천공항은 동북아 항공교통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으며 대상인구가 10억이 넘고 연결도시가 100개가 넘는 명실상부한 동북아의 허브공항이다. 인천공항은 바다 위에 세운 해상공항이어서 국제 물류의 중심지가 될 수 있는 공항-항만의 연계체제를 구축할 수 있고, 서해안의 허브공항으로서 경비행기와 초고속정으로 30분 이내에 국제선 라인에 서해안 전역을 편입시킬 수 있어 인천공항을 허브공항으로 한 서해안 어번 클러스터를 새롭게 구상할 수 있다.

 

서해안 주요항만의 물동량

서해안 주요항만의 물동량

 

아태지역의 항공수요 증가율은 유럽이나 미주지역을 훨씬 상회하며 2012년경에는 세계수요의 40% 이상을 차지하게 되고, 서해안의 항만 물동량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어 내륙의 인프라와 서해안 인프라가 인천공항과 결합하면 강력한 어번 클러스터를 이룰 수 있게 된다. 인천-서울 메가씨티가 중심이 되어 북의 신의주-압록강, 개성-평양 도시연합과 남의 새만금-호남평야, 목포-다도해 도시연합이 어번 클러스터를 이루어 인천공항을 중심으로 집합할 수 있으면 서해안의 르네쌍스를 이룰 수 있다.

북방대륙세력이 약했던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 직전까지 약 300년 동안 한반도의 황해안 교역은 적극적이고 진취적이었으며 통일신라시대인 7세기부터 후삼국을 거쳐 고려 중엽에 이르는 500년은 서해안의 황금시대였다. 한국선박의 기동력도 높았고 해양기술도 탁월하여 황해시장을 주도하였다. 정치·외교보다 경제·문화가 중심이 되는 해양활동은 중국대륙과 일본과의 항해 요충지를 차지한 지리적 잇점을 이용하여 서해안 도시들이 동북아의 전해역을 무대로 해상활동을 전개하였다. 고려 중엽인 12세기부터 조선 후기인 19세기 말까지의 700년은 중국의 원·명·청 등 강력한 통일국가가 계속되어 대륙세력이 육로를 통해 한반도에 유입된 시대여서 서해안은 해양진출의 계기를 상실하였다. 동북아의 제해권을 주도했던 서해안은 한반도 안의 조세곡을 연안수송하는 단계로 몰락하였으며 서해안 일대는 농경생활의 변두리가 되고 말았다.

해안도시가 해안과 내륙을 잇는 도시지역을 형성하던 고대와 중세에는 해안도시들간의 강력한 연대가 이루어졌으나 근대에 와서는 내륙도시간의 육상링크만이 해안을 따라 명맥을 유지하였다. 이제 중국의 개방 이후 닫혔던 황해가 열리면서 해안도시가 내륙도시와 연계하고 해안도시간의 연대를 이루는 링크가 부분적으로 형성되고는 있지만 아직 해양활동의 황금기 때와 같은 유기적 연대를 완전히 회복하고 있지는 못하다. 황해도시공동체의 허브공항인 인천공항을 계기로 서해안의 황금시대를 다시 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인천-서울 메가씨티와 목포-다도해 도시연합 사이에 징검다리가 될 도시연합이 새만금-호남평야에 조직되어야 한다. 평택항과 군산항과 목포항만으로는 인천-서울을 이을 만한 규모와 콘텐츠를 갖기 어렵다. 새만금-호남평야만한 규모가 되어야 서해안의 요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새만금-호남평야 도시연합이 목포-다도해 도시연합과 어번 클러스터를 구축하여 인천-서울 메가씨티와 부산·광양의 허브항만 및 인천의 허브공항과 함께 4극체제를 구축하여 황해도시공동체의 주역이 될 때 새만금-호남평야의 미래가 열리게 되는 것이다.

 

(3) 새만금-호남평야: 도시연합

호남평야는 후백제시대에 견훤이 전주에 도읍을 정하고 바다와 육지를 연합하여 후삼국 최고의 강국을 건설했다가 내분으로 몰락한 곳이다. 호남평야가 역사적 역할을 했을 때는 전북 일원이 도시를 통합하여 바다로 진출했을 때이다. 삼국시대 호남평야에 벽골제(碧骨堤)를 쌓아 바닷물의 역류를 막고 내륙의 물을 모아 한반도 최고의 곡창을 이루었던 과거처럼, 새만금에 바다도시를 만들어 내륙의 도시군과 도시연합을 이룰 수 있으면 전성기의 후백제를 능가하는 21세기의 핵심도시권을 다시 꿈꿀 수 있다.

새만금-호남평야 일대가 도시연합을 이루는 데 있어 약점은 인구가 적다는 점이다. 인구집중은 발전의 계기다. 유럽의 근대화는 그에 필요한 창의력과 노동력을 도시에서 조달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따라서 인구유입을 촉진할 수 있도록 호남평야와 새만금 안바다가 알렉산드리아와 카이로, 빌바오와 바스끄, 베네찌아와 베네또 같은 도시연합을 이룰 수 있게 하여야 한다.

새만금을 황해도시공동체의 어번 클러스터의 한 가능성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새만금-호남평야’의 도시연합이 실현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베네찌아의 안바다인 라구나는 그 자체만으로는 그냥 석호일 뿐이고 뾰뜨르대제(大帝)가 쌍뜨뻬쩨르스부르끄를 만들기 전까지 핀란드만(灣)으로 흘러들어가는 네바강 델타지역은 빈 바다와 갯벌에 지나지 않았다.

 

새만금-호남평야 도시연합

새만금-호남평야 도시연합

 

이북과 이남의 서해안이 서울-인천-수도권의 메가씨티에 대응하여 독자적 경제권을 구축하려면 먼저 해안도시와 내륙도시가 연대하여 비교우위의 경쟁력을 가진 도시연합을 이루어야 한다. 신의주의 경우 압록강을 인프라로 하여 내륙과 연합할 수 있으나 현재의 경제규모로는 무망한 일이다. 개성-해주-평양의 도시연합도 규모에서 부족하다. 신의주-압록강과 해주-개성-평양 모두가 해안을 따라 해상인프라를 구축하고 내륙으로 각개약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평택항·군산항·목포항은 황해도시공동체에서 보면 군소항만이다. 서해안이 황해도시공동체에서 거점도시권으로 역할을 하려면 서해안 해안링크를 먼저 만들고 내륙도시와 연합하여 독립적인 경제규모를 갖추어야 한다.

평택항·군산항·목포항 모두가 아산만공단·군장공단·대불공단 등 배후기지를 갖고 있으나 그 정도의 규모로는 이룰 수 있는 것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인구와 시장 및 산업군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택·군산항과 목포항을 항만링크로 연결하고 다시 이를 각각의 내륙도시와 연합케 하는 새로운 도시조직이 필요하다. 바로 여기에 새만금의 역할이 있는 것이다. 군산항과 목포항 사이 새만금에 황해도시공동체에서 특유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다목적 항만을 만들고 내륙도시와 다도해를 묶는 강력한 어번 링크를 구축할 수 있으면 서울-인천 메가씨티와 광양·부산의 두 허브항만 사이에 독특한 개성을 가진 어번 클러스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새만금이 바로 이 해안도시의 구슬을 꿰어 어번 클러스터를 만들게 하는 절묘한 땅과 바다인 것이다.

 

새만금 일대의 상황

새만금 일대의 상황

 

새만금의 33km 방조제 중 아직 공사하지 않은 구간과 고군산군도 사이에 황해안 어디에도 없는 바다와 갯벌 및 육지가 하나가 된 다목적 항만과 시장을 만들고, 군산항·목포항을 라인업하여 서해안 항만링크를 만들며, 새만금을 중심으로 호남평야와 덕유산과 지리산을 도시연합으로 묶고, 목포와 서남해안 열도의 도시연합과 연대하여 수도권 메가씨티와 대응한 어번 클러스터를 이루게 되면 황해안시대를 맞은 새만금-호남평야 도시연합의 기적 같은 도시창조를 이룰 수 있게 될 것이다. 새만금이 바다로 남아야 호남평야 일대의 도시연합이 가능하고 새만금이 호남평야와 도시연합을 이룰 때 목포-다도해 도시연합과 함께 서해안 어번 클러스터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새만금과 호남평야의 도시들이 해안과 내륙의 도시연합을 이루려면 새만금이 바다로 남아야 하고 호남평야의 도시들이 하나의 경제공동체로 연대하여야 한다. 베네찌아가 내륙도시와 연대하여 천년 공화국을 이루어 아드리아해를 지배했던 것처럼 새만금의 바다도시와 호남평야의 군산·익산·전주·김제·정읍이 도시연합을 이루면 새만금과 호남평야 일대는 아껴둔 최고의 땅이 될 수 있다.

 

(4) 새만금-안바다: 바다도시

황해가 세계적 도시공동체로 웅비하는 비상한 시기에 새만금을 농토로 만들거나 바다와 갯벌로 그냥 두어서도 해야 할 큰 일을 못하는 것이다. 새만금이 해안을 따라 군산·목포와 연합하여 서해안 항만링크를 이루고 내륙으로 강을 거슬러 호남평야와 함께 도시연합을 이루려면 새만금이 바다도시가 되어야 하는데, 과연 무엇이 바다도시인가.

바다도시는 바깥바다와 차단된 내해(內海)에 세워진 도시로 바깥바다를 가로막는 제방과 그 사이 바다, 갯벌, 해안, 하구의 다섯 권역이 도시공동체를 이룬 수상도시를 말한다. 새만금의 방조제를 다 막지 않고 바다와 통하게 하여 새만금을 방조제로 보호된 안바다로 만들어야 바다도시를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바깥바다에 구조물을 세울 수는 있으나 도시를 세울 수는 없다. 제방과 갯벌과 해안과 하구가 있는 안바다라야 바다가 어번 인프라가 되는 바다도시를 세울 수 있는 것이다.

새만금은 아직 바다로 남아 있다. 방조제공사가 마저 진행되고 나면 새만금은 바다와 차단된 육지와 담수호가 되지만, 지혜롭게 조정되면 방조제로 보호된 바다-안바다로 남는다. 안바다는 바깥바다와 다르다. 파도와 해일과 파랑으로부터 보호되고 조석간만의 차이가 조정되는 방조제 안쪽의 바다는 대자연에 노출된 바다와는 다른 호수 같은 바다로서 방조제와 갯벌과 해안과 하구는 지상과 다름없이 건축물을 세울 수 있는 지리(地利)의 세계다.(동시에 사유지에 대한 보상문제가 원천적으로 배제된 국유공간이라는 점도 현실적으로 중요한 사항이다.)

 

베네찌아 라구나

베네찌아 라구나

 

안바다는 지리의 세계에 속한 수리(水利)의 세계이다. 새만금 안바다가 바다도시가 되려면 건축가능한 다섯 도시구역이 어우러져야 한다. 첫째 구역은 방조제다. 군산에서 고군산군도와 변산반도 사이의 방조제구역은 베네찌아의 리도(Lido)섬 못지않은 훌륭한 도시기지가 될 수 있다. 두번째 구역은 방조제와 고군산군도 사이의 깊은 바다다. 기왕에 쌓으려던 방조제를 바깥바다와 안바다를 가로지르는 갑문과 방조제로 재구축하면 고군산군도와 함께 훌륭한 다목적 항만도시구역을 만들 수 있다. 세번째가 갯벌구역이다. 갯벌에 베네찌아 같은 수상도시를 만들 수 있다. 갯벌을 살리면서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큰 섬이 아니라 베네찌아가 그렇듯이 여러 개의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수상도시가 되게 하여 바다의 흐름이 도시구역을 자유롭게 관통하게 하고 그것이 도시의 인프라가 되게 해야 한다. 네번째인 해안구역은 군산반도 남측, 변산반도 북측 해안이며, 다섯번째인 만경강·동진강 하구의 도시구역은 바다도시와 내륙도시의 중간도시구역으로 바다도시와 내륙도시를 도시연합으로 묶는 통합신도시 구역이 된다.

새만금 바다도시는 방조제 안쪽의 바다에 바다를 어번 인프라로 다섯 도시구역을 어우르는 수상도시군(水上都市群)을 말하는 것이다.

 

라구나와 새만금

라구나와 새만금

 

33km의 방조제는 아직 다 완성되지 않았다. 2001년 공사재개 때까지 1호방조제 4.7km, 2호방조제 5.9km, 3호방조제 2.7km, 4호방조제 11.4km 등 모두 24.7km의 방조제와 가력배수갑문은 완공되었으나 고군산군도의 신시도(新侍島)와 제2호방조제 사이 1.7km, 1호방조제와 2호방조제 사이 2.7km, 신시배수갑문은 아직 완공되지 않았다. 아직 완공되지 않은 이곳은 모두 깊은 바다가 새만금으로 밀려들어오는 지역이다. 아직 착공되지 않은 4.4km를 그대로 두어 다목적항만인 새만금 자유항을 만들고 신시배수갑문을 통해 바다가 자유롭게 유통되게 하면 새만금은 바다로 남는다.

이미 완공된 새만금 방조제는 베네찌아의 라구나를 아드리아해로부터 가로막은 리도섬과 비슷하다. 아드리아해의 안바다인 라구나에는 리도섬에 주거도시가, 갯벌 위에 고딕과 르네쌍스의 도시 베네찌아가, 해안에 항구도시 마르게라와 공항도시 떼쎄라가, 하구에 신도시 메스뜨레가 자리하고 있다. 새만금은 방조제와 바다와 갯벌과 해안과 하구에 베네찌아만한 바다도시를 건설할 수 있는 세계적인 지리와 수리를 갖춘 안바다이다. 새만금 방조제가 지혜롭게 조정되어, 닫힌 바다가 아닌 열린 안바다로 새만금을 만들 수 있으면 지금까지 해온 모든 일은 결과적으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일이 되어 새만금 사업 추진자들과 비판자들이 함께 승리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5) 바다도시-내륙도시: 중간도시

새만금에 바다도시를 만들려면 도시만들기가 가능한 다섯 도시구역마다에 가장 이상적인 도시기능을 생각하고 다섯 도시구역이 모여 이루게 되는 새만금 바다도시의 이상적 어번 네트워크를 구상하여야 한다.

먼저 1, 2, 3, 4호 방조제를 라스베가스(Las Vegas)의 스트립(Strip) 같은 도시축으로 삼아 방조제와 안바다 사이에 하이테크랜드를 건설하고 고군산군도와 1, 2호 방조제 사이 신시도 주변에 다목적항만을 만들어 방조제 일대의 도시화를 시작할 수 있다. 방조제구역은 방조제를 어번 인프라로 하여 방조제의 기단부분과 안바다측 인공토지에 세우는 도시건축군이며 항만도시구역의 건축형식은 밀물과 썰물을 에너지화하는 장치를 갖추어 조석간만의 차이와 태풍을 극복할 수 있는 유기적 구조가 될 것이다.

다음으로 하나하나가 독립된 게이트씨티(관문도시)를 갯벌 위에 만들고 군산과 변산반도 해안에 뮤지엄씨티(박물관도시)를 만든다. 갯벌과 해안의 도시는 해안과 갯벌의 생태를 자연 그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바다에 플러그인(plug-in)된 건축군으로 이루어지는 도시다. 게이트씨티와 뮤지엄씨티는 고속 페리호로 6〜8시간에 닿게 되는 황해도시공동체의 3억5천만 인구와 육로로 2시간 이내에 닿게 되는 수도권 2천만 인구와 인천공항의 연간인구 1억을 대상으로 하는 투어리즘(tourism, 관광)과 컨벤션(convention, 회의)과 페어마켓(fair market, 박람시장)의 도시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만경강·동진강 하구에 중간도시를 만들어 이를 매개로 바다도시와 내륙도시 연합을 형성하려는 것이 새만금 바다도시 계획의 개요이다. 중간도시는 바다와 육지의 매개도시로 바다도시의 인프라와 내륙도시의 인프라를 잇는 바다와 강 사이의 운하도시이며 다섯 바다도시권역과 다섯 내륙도시를 도시연합으로 만드는 네트워크 씨티이다.

새만금과 호남평야 사이의 매개도시인 중간도시는 만경강과 동진강 하구의 운하도시로서 새만금과 호남평야의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새만금과 호남평야에 분산 수용된 인구와 산업과 시장을 네트워크화하여 세계적 경쟁력을 갖는 규모가 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새만금 바다도시 개요

새만금 바다도시 개요

 

중간도시는 새만금 바다도시와 내륙도시가 하나의 도시연합으로 집합케 하는 매개역할을 수행한다. 중간도시는 삼국시대에 벽골제가 바다로부터 농토를 보호하고 내륙으로부터 물을 담아 호남평야를 이루었듯 새만금 바다도시와 호남평야의 도시연합에 물을 공급하고 바다도시와 내륙도시의 도시권역 모두가 각각의 기능을 수행하면서 서로 링크하여 최고의 씨너지를 이루고 바다와 강과 내륙의 땅을 하나가 되게 하는 21세기의 벽골제 도시이다. 이는 21세기 도시화의 새로운 모형일 뿐 아니라, 하나의 거대도시에 주변 농촌과 군소도시들이 짓눌리지 않고 도·농간의 균형된 발전을 도모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할 것이다.

 

새만금 바다도시 계획안

새만금 바다도시 계획안

 

 

맺음말

이 글은 황해도시공동체의 도전을 맞아 ‘한반도 21세기의 인프라’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큰 틀 속에서 “방조제 사업의 백지화로 바다와 갯벌을 살리느냐” “사상최대의 농토와 담수호를 얻느냐”의 양자택일말고 다른 길은 없는지, 양쪽을 다 만족시키면서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는 제3의 길은 없는지를 생각하면서 새로운 시각을 제안한 것이다. 다섯 키워드는 새만금을 ‘새만금만으로’ ‘새만금 안에서만’ 보는 데서 나아가 새만금을 서로 연관된 더 큰 규모에서 바라보자는 것이다. 다섯 키워드를 통해서 새만금에서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고 새만금-호남평야 도시연합이 황해도시공동체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보려 하였다.

새만금 사업은 국가경영의 상징적 사업이다. 통일 이전에 이미 현실로 다가온 황해도시공동체의 도전에서 새만금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생각하면, 12년간 진행된 새만금 사업이 바야흐로 새로운 탄생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결론이 아니라 새로운 담론을 제기하는 것이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선언적 제안이지만 모두가 함께 생각해야 할 화두로는 충분하다고 본다.

이 글이 ‘선언적 제안’의 성격임을 밝혔지만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검토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안을 제대로 제시하기 위해서 당연히 해양공학·수문학·생명공학의 학자들과 논의했고 황해공동체, 서해안의 해상인프라 및 육상인프라, 새만금 바다도시의 투자전략을 말할 수 있는 전문가그룹 여러분들의 많은 도움을 받았으며 지금도 몇가지 부문별 연구가 진행중이다. 물론 우리 사회와 학계가 이 화두를 공유함으로써 더욱 다방면에 걸쳐 한층 본격적인 연구가 전개되기 바란다.

해외 여러분의 조언도 큰 도움이 되었다. 중국 도시계획학회 회장이며 뻬이징 마스터플랜을 만든 칭화(淸華)대학의 우 량융(吳良鏞) 교수, 세계 수상도시연구소장 리니오 브루또메쏘(Rinio Bruttomesso) 교수, 베네찌아와 베로나 도심재개발플랜을 성안한 프랑꼬 만꾸조(Franco Mancuso) 교수, 홍콩도시계획의 주요 입안자이며 샹하이 푸뚱(浦東) 설계에 참여한 건축가·도시계획가 허 타오(何韜) 박사 등 해외석학들의 도움이 컸다.

거듭 말하지만 이번 글은 새로운 출발을 제안하는 글이다. 연내로 더 진전된 구체적인 안을 발표하고자 하며 전문가집단의 공동연구와 국제학술회의 등을 통해 더 많은 의견을 모아 실질적 제안을 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