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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한 강 韓 江
1970년 광주 출생.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장편소설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등이 있음. yourpalm@hitel.net
채식주의자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끌리지도 않았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 길지도 짧지도 않은 단발머리, 각질이 일어난 노르스름한 피부, 외꺼풀 눈에 약간 튀어나온 광대뼈, 개성있어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한 무채색의 옷차림. 가장 단순한 디자인의 검은 구두를 신고 그녀는 내가 기다리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힘있지도, 가냘프지도 않은 걸음걸이로.
내가 그녀와 결혼한 것은, 그녀에게 특별한 매력이 없는 것과 같이 특별한 단점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신선함이나 재치, 세련된 면을 찾아볼 수 없는 그녀의 무난한 성격이 나에게는 편안했다. 굳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박식한 척할 필요가 없었고, 약속시간에 늦을까봐 허둥대지 않아도 되었으며, 패션 카탈로그에 나오는 남자들과 자신을 비교해 위축될 까닭도 없었다. 이십대 중반부터 나오기 시작한 아랫배, 노력해도 근육이 붙지 않는 가느다란 다리와 팔뚝, 남모를 열등감의 원인이었던 작은 성기까지, 그녀에게는 그다지 신경쓰이지 않았다.
언제나 나는 과분한 것들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어린시절에는 나보다 두세살 어린 조무래기들을 거느리고 다니며 골목대장 노릇을 했고, 자라서는 넉넉히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대학에 지원했으며, 내 대단찮은 능력을 귀하게 여겨주는 작은 회사에서 내세울 것 없는 월급이나마 꼬박꼬박 받을 수 있다는 데 만족했다. 그러니,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여자로 보이는 그녀와 결혼한 것은 나에게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예쁘다거나, 총명하다거나, 눈에 띄게 요염하다거나, 부유한 집안의 따님이라거나 하는 여자들은 애초부터 나에게 불편한 존재일 뿐이었다.
내 기대에 걸맞게 그녀는 평범한 아내의 역할을 무리없이 해냈다. 아침마다 여섯시에 일어나 밥과 국, 생선 한 토막을 준비해 차려주었고, 처녀시절부터 해온 아르바이트로 적으나마 가계에 보탬도 주었다. 1년간 다닌 적이 있다는 컴퓨터 그래픽 학원의 보조강사로 일했고, 출판만화의 말풍선에 대사를 쳐넣는 하청일을 받아 집에서 작업했다.
아내는 말수가 적은 편이었다. 나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일은 드물었고, 내 귀가시간이 아무리 늦어도 관여하지 않았다. 어쩌다 함께 있는 휴일에 어딘가 외출하기를 청하지도 않았다. 내가 오후 내내 텔레비전 리모컨을 쥐고 뒹구는 동안, 아내는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아마도 일을 하거나 책을 읽는 모양으로―아내의 취미라 할 만한 것은 기껏 책 읽는 것 정도였는데, 그 책들이란 대부분 표지를 열어보기도 싫을 만큼 따분해 보이는 것들이었다―끼니때에만 문을 열고 나와 말없이 음식을 만들었다. 사실, 그런 아내와 산다는 게 그다지 재미있는 일일 리는 없었다. 그러나 하루에도 몇번씩 직장동료나 친구들의 휴대폰을 울려대는 아내들, 주기적으로 바가지를 긁어 요란한 부부싸움을 벌이곤 한다는 아내들이 피곤하게 느껴졌던 터였으므로 나는 감사히 여겼다.
오직 한가지, 아내에게 남다르다고 할 만한 점이 있다면 브래지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짧고 민숭민숭했던 연애시절, 우연히 그녀의 등에 손을 얹었다가 스웨터 아래로 브래지어 끈이 만져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조금 흥분했었다. 혹 그녀가 나에게 무언의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인지 판단하기 위해 잠시 새로운 눈으로 그녀의 태도를 관찰했다. 관찰의 결과는, 그녀가 신호 따위를 전혀 보내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신호가 아니라면, 게으름이나 무신경인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볼품없는 그녀의 가슴에 노브라란 사실은 어울리지도 않았다. 차라리 두툼한 패드를 넣은 브래지어를 하고 다녔다면 친구들에게 보일 때 내 체면이 섰을 것이다.
결혼한 뒤 아내는 집에서 아예 브래지어를 벗고 지냈다. 여름철에 잠깐 외출할 때면 동그랗게 돌출된 젖꼭지의 윤곽이 드러날까봐 할 수 없이 브래지어를 했지만, 1분 안에 후크를 풀어버렸다. 옅은 색의 얇은 상의나 약간 끼는 옷을 입었을 경우에는 풀린 후크가 역력히 드러나는데도 그녀는 괘념하지 않았다. 내가 나무라자, 그녀는 찌는 듯한 더위에 조끼를 겹쳐입는 것으로 브래지어를 대신했다. 답답해서, 브래지어가 가슴을 조여서 견딜 수 없다고 아내는 나에게 변명했다. 나야 브래지어를 해본 적이 없으니 그것의 착용감이 얼마나 숨막히는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러나 모든 여자들이 그녀만큼 브래지어를 싫어하지 않으리라는 것만은 확실해 보였으므로, 그녀의 과민함은 의아하게 느껴졌다.
그외에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올해로 결혼 5년차에 접어들었으나, 애초에 열렬히 사랑하지 않았으니 특별히 권태로울 것도 없었다. 지난해 가을에 이 집을 분양받기까지 임신을 미뤄왔으니, 슬슬 아빠 소리를 들을 때도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지난 2월 어느 새벽 아내가 잠옷바람으로 부엌에 서 있는 것을 발견할 때까지, 나는 우리의 생활이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 있으리라고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
“뭐하고 서 있는 거야?”
나는 욕실의 불을 켜려다 말고 물었다. 새벽 네시쯤 되었나. 회식에서 마신 소주 병 반 덕분에 요의와 갈증을 함께 느끼고 깨어난 참이었다.
“응? 뭐하고 있느냐구?”
나는 오싹한 추위를 느끼며 아내가 있는 쪽을 보았다. 잠과 취기가 가셨다. 아내는 꼼짝 않고 서서 냉장고를 마주보고 있었다. 어둠에 잠긴 옆얼굴의 표정을 식별할 수 없었으나, 무엇인가가 섬뜩했다. 그녀의 숱 많은, 염색하지 않은 검은 머리는 부스스하게 부풀어 있었다. 발목까지 오는 흰 잠옷치마는 언제나처럼 끝부분이 약간 위로 말려 있었다.
안방과 달리 부엌은 꽤 쌀쌀했다. 평소라면, 추위를 타는 아내는 서둘러 카디건을 걸쳐입고 털슬리퍼를 찾아 신었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터 그렇게 서 있었던 것인지, 그녀는 맨발로, 봄가을까지 입는 얇은 잠옷차림으로, 아무 말도 듣지 못한 듯 우뚝 서 있었다. 마치 냉장고가 있는 자리에 내 눈에 안 보이는 사람이―혹은 귀신이라도―버티고 있는 것 같았다.
뭔가. 말로만 듣던 몽유병인가.
나는 석상처럼 굳어 있는 아내의 옆모습을 향해 다가갔다.
“왜 그래? 뭐야 지금……”
내가 아내의 어깨에 손을 얹었을 때, 뜻밖에도 그녀는 놀라지 않았다. 정신을 놓고 있었던 게 아니라, 내가 안방에서 나오는 것, 질문,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까지 모두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다만 무시했을 뿐이다. 가끔 그녀가 심야드라마에 열중해 있을 때, 내가 귀가하는 기척을 듣고 있으면서 무시했던 것과 같이. 그러나 그 새벽 네시의 캄캄한 부엌, 400리터 냉장고의 희끄무레한 문 앞에서 몰입할 만한 무엇이 있다는 것인가?
“여보!”
나는 어둠속에 드러난 그녀의 옆얼굴을 보았다. 처음 보는, 냉정하게 번쩍이는 눈으로 그녀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꿈을 꿨어.”
그녀의 목소리는 또렷했다.
“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지금이 몇시야, 대체.”
그녀는 나에게서 몸을 돌려, 문이 열려 있는 안방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문턱을 넘자 팔을 뒤로 뻗어 조용히 문을 닫았다. 나는 혼자 어두운 부엌에 남아, 그녀의 흰 뒷모습을 삼킨 방문을 바라보았다.
나는 욕실의 불을 켜고 들어갔다. 며칠째 영하 10도 안팎의 추위가 계속되던 즈음이었다. 몇시간 전에 내가 샤워를 했으므로, 그때 물이 튄 슬리퍼가 아직 차갑게 젖어 있었다. 욕조 위로 시커멓게 뚫린 환풍구에서, 바닥과 벽의 흰 타일들에서 냉혹한 계절의 적막감이 느껴졌다.
안방으로 돌아갔을 때, 아내가 웅크리고 누워 있는 쪽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나 혼자 있는 방 같았다. 물론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자 매우 작은 숨소리가 들려왔다. 잠든 사람의 숨소리 같지는 않았다. 손을 뻗으면 그녀의 따스한 살을 만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왠지 나는 그녀를 만질 수 없었다. 그녀에게 말을 붙이고 싶지도 않았다.
*
자리에 누운 채 나는 잠시 현실감을 잃고, 흰색 커튼을 투과하여 방안 가득 쏟아져들어온 겨울아침의 햇빛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반쯤 머리를 들어 벽시계를 본 순간 튀어일어나 문을 박차고 나갔다. 부엌의 냉장고 앞에 아내가 있었다.
“미쳤어? 왜 안 깨웠어? 지금이 몇신데……”
발에 물컹한 것이 밟혀 나는 말을 멈췄다.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아내는 어젯밤과 똑같은 잠옷차림으로, 부스스 헝클어진 머리를 늘어뜨린 채 쪼그려앉아 있었다. 그녀의 몸을 중심으로 희고 검은 비닐봉지들과 플라스틱 밀폐용기들이 발디딜 데 없이 부엌바닥에 널려 있었다. 샤브샤브용 쇠고기와 돼지고기 삼겹살, 커다란 우족 두 짝, 위생팩에 담긴 오징어들, 시골의 장모가 얼마 전에 보낸 잘 손질된 장어, 노란 노끈에 엮인 굴비들, 포장을 뜯지 않은 냉동만두와 내용물을 알 수 없는 수많은 꾸러미들.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아내는 커다란 쓰레기봉투에 그것들을 하나씩 주워담는 중이었다.
“뭐하는 거야, 지금!”
나는 마침내 이성을 잃고 고함을 질렀다. 어젯밤과 똑같이 나의 존재를 무시하며 그녀는 계속해서 고기 꾸러미들을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쇠고기와 돼지고기, 토막난 닭, 적게 잡아도 이십만원어치는 될 바다장어를.
“당신 제정신이야? 이걸 왜 다 버리는 거야?”
나는 비닐봉지를 헤치고 달려가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 뜻밖에 아내의 손목 힘은 완강해, 내 얼굴이 더워지도록 힘을 주고서야 비닐봉지를 놓게 할 수 있었다. 발개진 오른 손목을 왼손으로 주무르며, 아내는 평상시와 똑같은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꿈을 꿨어.”
다시 그 얘기였다. 표정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 아내는 나를 마주 보았다. 그때 내 휴대폰이 울렸다.
“제기랄!”
나는 간밤 거실의 소파에 내던져둔 외투를 뒤지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뒤진 안주머니에서 자지러지는 휴대폰이 손아귀에 잡혔다.
“죄송합니다. 집안에 급한 일이 생겨서…… 정말 죄송합니다. 최대한 서둘러 도착하겠습니다. 아닙니다. 곧 갈 수 있습니다. 조금만…… 아닙니다. 그러시면 안됩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정말 죄송합니다. 예,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나는 휴대폰 폴더를 닫고 욕실로 뛰어들어갔다. 급하게 면도하느라 두 군데 상처가 났다.
“와이셔츠 다려놓은 거 없어?”
대답이 없었다. 나는 욕설을 퍼부으며 욕실 앞의 빨래통을 뒤져 어제 던져놓은 셔츠를 찾았다. 다행히 구김이 많지 않았다. 넥타이를 머플러처럼 걸치고, 양말을 신고, 수첩과 지갑을 챙기는 동안에도 아내는 부엌에서 나와보지 않았다. 결혼 5년 만에, 나는 처음으로 아내의 뒷바라지와 배웅 없이 출근해야 하는 것이었다.
“미쳤군. 완전히 맛이 갔어.”
나는 얼마 전에 새로 구입해 볼이 비좁은 구두에 두 발을 구겨넣었다. 현관문을 박차고 나가, 엘리베이터가 꼭대기 층에 머물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3층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막 떠나려는 지하철에 올랐을 때에야 나는 어두운 차창에 비친 내 얼굴을 보았다. 머리를 매만지고, 넥타이를 매고, 셔츠의 구겨진 부분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아내의 소름끼치게 담담한 얼굴, 굳은 목소리가 떠오른 것은 그 다음이었다.
꿈을 꿨어,라고 아내는 두 번 말했다. 달리는 차창 너머, 터널의 어둠 위로 그녀의 얼굴이 스쳐갔다. 처음 보는 사람의 것처럼 그 얼굴은 낯설었다. 그러나 거래처 사람에게 둘러댈 변명과 오늘 소개할 시안을 30분 안에 정리해내야 했으므로, 더이상 아내의 이상한 행동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다만, 어떻게든 오늘은 일찍 들어가야겠어, 부서 바뀌고 몇달 동안 하루도 12시 전에 퇴근한 적이 없었잖아,라고 잠깐 속으로 뇌까렸을 뿐이었다.
*
어두운 숲이었어. 아무도 없었어. 뾰족한 잎이 돋은 나무들을 헤치느라고 얼굴에, 팔에 상처가 났어. 분명 일행과 함께였던 것 같은데, 혼자 길을 잃었나봐. 무서웠어. 추웠어. 얼어붙은 계곡을 하나 건너서, 헛간 같은 밝은 건물을 발견했어. 거적때기를 걷고 들어간 순간 봤어. 수백개의, 커다랗고 시뻘건 고깃덩어리들이 기다란 대막대들에 매달려 있는 걸. 어떤 덩어리에선 아직 마르지 않은 붉은 피가 떨어져내리고 있었어. 끝없이 고깃덩어리를 헤치고 나아갔지만 반대쪽 출구는 나타나지 않았어. 입고 있던 흰 옷이 온통 피에 젖었어.
어떻게 거길 빠져나왔는지 몰라. 계곡을 거슬러 달리고 또 달렸어. 갑자기 숲이 환해지고, 봄날의 나무들이 초록빛으로 우거졌어. 어린아이들이 우글거리고 맛있는 냄새가 났어. 수많은 가족들이 소풍중이었어. 그 광경은, 말할 수 없이 찬란했어. 시냇물이 소리내서 흐르고, 그 곁으로 돗자리를 깔고 앉은 사람들, 김밥을 먹는 사람들. 한편에선 고기를 굽고…… 노랫소리, 즐거운 웃음소리가 쟁쟁했어.
하지만 난 무서웠어. 아직 내 옷에 피가 묻어 있었어. 아무도 날 보지 못한 사이 나무 뒤에 웅크려 숨었어. 내 손에 피가 묻어 있었어. 내 입에 피가 묻어 있었어. 그 헛간에서, 나는 떨어진 고깃덩어리를 주워먹었거든. 내 잇몸과 입천장에 물컹한 날고기를 문질러 붉은 피를 발랐거든. 헛간 바닥, 피웅덩이에 비친 내 눈이 번쩍였어.
그렇게 생생할 수 없어, 이빨에 씹히던 날고기의 감촉이. 내 얼굴이, 눈빛이. 처음 보는 얼굴 같은데, 분명 내 얼굴이었어. 아니야, 거꾸로, 수없이 봤던 얼굴 같은데, 내 얼굴이 아니었어. 설명할 수 없어.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 생생하고 이상한, 끔찍하게 이상한 느낌을.
*
아내가 차린 저녁식탁은 상춧잎과 된장, 쇠고기도 조갯살도 넣지 않은 말간 미역국, 김치가 전부였다.
“뭐야. 그래서, 그 꿈나부랭이 때문에 고기를 다 버렸다는 거야? 도대체 얼마어치를?”
나는 식탁의자에서 일어나 냉동실 문을 열었다. 텅 비어 있었다. 미숫가루와 고춧가루, 얼린 풋고추, 다진 마늘 한 봉지가 들어 있을 뿐이었다.
“계란프라이라도 해줘. 나 오늘 정말 피곤해. 점심도 제대로 못 먹었어.”
“계란도 버렸어.”
“뭐?”
“우유도 끊었어.”
“기가 막히는군. 나까지 고기를 먹지 말라는 거야?”
“냉장고에 그것들을 놔둘 수 없어. 참을 수가 없어.”
도대체 저렇게 자기중심적일 수가. 나는 아내의 얼굴을 똑바로 내려다보았다. 눈을 내리깔고 있는 그녀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차분해 보였다. 뜻밖이었다. 그녀가 저토록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인 구석이 있었다니. 저렇게 비이성적인 여자였다니.
“그래서, 앞으로 이 집에선 고기를 못 먹는다는 거야?”
“어차피 당신은 주로 아침만 먹잖아. 점심, 저녁에 고기를 자주 먹을 텐데…… 아침 한끼 고기를 안 먹는다고 죽진 않아.”
아내는 마치 자신의 선택이 이성적이고 타당한 것이라는 듯 차근차근 답했다.
“좋다, 나는 그렇다 치고 당신은? 당신은 이제부터 고기를 안 먹겠다는 거야?”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언제까지?”
“……언제까지나.”
말문이 막혔다. 요즘 채식열풍이 분다는 것쯤은 나도 보고 들은 것이 있으니 알고 있었다. 건강하게 오래 살 생각으로, 알레르기니 아토피니 하는 체질을 바꾸려고, 혹은 환경을 보호하려고 사람들은 채식주의자가 된다. 물론, 절에 들어간 스님들이야 살생을 않겠다는 대의가 있겠지만, 사춘기 소녀도 아니고 이게 무슨 짓인가. 살을 빼겠다는 것도 아니고, 병을 고치려는 것도 아니고, 무슨 귀신에 씐 것도 아니고, 악몽 한번 꾸고는 식습관을 바꾸다니. 남편의 만류 따위는 고려조차 하지 않는 저 고집스러움이라니.
처음부터 아내가 고기를 역겨워하는 체질이었다면 그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결혼 전부터 아내는 식성이 좋았고, 그 점이 특히 내 마음에 들었었다. 불판에 얹힌 갈비를 익숙한 솜씨로 뒤집었고, 한 손에 집게를, 다른 한 손에 큰 가위를 들고 쓱쓱 잘라내는 품이 듬직했다. 결혼한 뒤 일요일에 만들어내는 요리들도 그럴듯했다. 다진 생강과 물엿으로 미리 재워 향긋하고 달콤하게 튀긴 삼겹살, 샤브샤브용 쇠고기를 후추와 죽염, 참기름으로 간하고 찹쌀가루를 앞뒤로 입힌 뒤 구워 마치 떡이나 전 같았던 그녀만의 특별식. 간 쇠고기와 불린 쌀을 참기름에 볶은 뒤 콩나물을 얹어 지은 콩나물비빔밥. 굵은 감자를 썰어넣은 닭도리탕은 어땠던가. 자작자작 매콤한 국물이 속살까지 배어든 그것을 나는 한자리에서 세 접시씩 비워내곤 했었다.
그런데 이제 아내가 차려놓은 식탁은 무슨 꼴인가. 비스듬히 의자에 앉은 아내는 한눈에도 맛없어 보이는 미역국을 입에 떠넣고 있었다. 밥과 된장을 상추에 싸 볼이 불룩하게 넣고 씹었다.
나는 모르고 있었다. 저 여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안 먹어?”
아이를 넷쯤 낳아 기른 중년의 여자처럼 방심한 목소리로 그녀가 물었다. 내가 우두커니 서서 지켜보고 있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아삭아삭 소리를 내어, 오랫동안 김칫대를 씹었다.
*
봄이 올 때까지 아내는 변하지 않았다. 매일 아침 풀만 먹게 되긴 했지만 나는 더이상 불평하지 않았다. 한 사람이 철두철미하게 변하면 다른 한 사람은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녀는 하루하루 말라갔다. 그러잖아도 튀어나온 광대뼈가 볼썽사납게 뾰족해졌다. 화장하지 않으면 피부가 병자처럼 핼쑥했고, 군살이 모조리 빠진 몸은 마른 꽁치 같았다. 육식을 끊는다고 모두 아내처럼 살이 빠진다면 누구든 체중 감량에 목숨을 걸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나는 알고 있었다. 아내가 여위는 건 채식 때문이 아니었다. 꿈 때문이었다. 아니, 사실상 그녀는 잠도 거의 자지 않았다.
아내는 결코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늦은 밤에 귀가하면 아내는 먼저 잠들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한데 이제 그녀는 내가 자정 넘겨 들어와 씻고 잠든 뒤에도 자러 들어오지 않았다. 책을 읽는 것도 아니고, 인터넷 채팅을 하는 것도 아니고, 밤새 케이블 티브이를 보는 것도 아니었다. 말풍선에 대사를 쳐넣는 작업이 그렇게 많을 리도 없었다.
그녀는 새벽 다섯시쯤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고, 한 시간쯤 자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짧은 신음을 뱉으며 깨어나곤 했다. 헝클어진 머리에 까칠한 얼굴, 빨갛게 금이 간 눈으로 그녀는 내 아침식탁을 지키고 있었다. 자신은 한 숟가락도 뜨지 않은 채였다.
더욱 신경쓰이는 것은 그녀가 더이상 나와 섹스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늘 군말없이 내 몸의 요구에 응하는 편이었고, 때로는 먼저 내 몸을 더듬어올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내 손이 어깨에 닿기만 해도 조용히 몸을 피했다. 언젠가 나는 이유를 물었다.
“뭐가 문제야?”
“피곤해.”
“그러니 고기를 먹으라고. 고기를 안 먹으니 힘이 없지. 전에는 이러지 않았잖아.”
“사실은.”
“뭐?”
“……냄새가 나서 그래.”
“냄새?”
“고기냄새. 당신 몸에서 고기냄새가 나.”
나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방금 못 봤어? 나 샤워했어. 어디서 냄새가 난다는 거야?”
그녀의 대답은 진지했다.
“……땀구멍 하나하나에서.”
나는 가끔 불길한 생각을 했다. 혹시 이것이 초기증상에 지나지 않는다면? 말로만 듣던 편집증이나 망상, 신경쇠약 따위로 이어질 시초라면.
그러나 그녀가 어떤 광기에 휩싸여 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여느 때처럼 말수가 적었으며 집 안을 잘 정돈했다. 주말이면 나물 두어 가지를 무쳤고, 고기 대신 버섯을 넣어 잡채를 만들기도 했다. 채식이 유행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상할 것도 없었다. 다만 그녀가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 유난히 얼굴이 멍하고 무엇인가에 짓눌린 것처럼 보이는 아침에 내가 까닭을 물으면 “꿈을 꿨어”라고 대답한다는 것뿐이었다. 그것이 어떤 꿈이냐고 나는 묻지 않았다. 다시 어두운 숲속의 헛간, 피웅덩이에 비친 얼굴에 대한 얘기 따위를 듣고 싶지 않았다.
내가 들어가보지 못한, 알 길 없는, 알고 싶지 않은 꿈과 고통 속에서 그녀는 계속 야위어갔다. 무용수처럼 비쩍 마르는가 싶더니 종내에는 환자처럼 볼이 움푹 패었다. 좋지 않은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소도시에서 목재소와 구멍가게를 하는 장인 장모, 사람 좋은 처형과 처남 부부를 보더라도 정신적 일탈의 혈통 같은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그녀의 집안사람들을 떠올리면, 자욱한 연기와 마늘 타는 냄새가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소주잔이 오가며 고깃기름이 타들어가는 동안 여자들은 부엌에서 소란스럽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든 식구가―장인이 특히―육회를 즐겼고, 장모는 손수 활어회를 뜰 줄 알았으며, 처형과 아내는 커다랗고 네모진 정육점용 칼을 휘둘러 닭 한마리를 잘게 토막낼 줄 아는 여자들이었다. 바퀴벌레 몇마리쯤 손바닥으로 때려잡을 수 있는 아내의 생활력을 나는 좋아했다. 그녀는 내가 고르고 고른, 이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여자가 아니었던가.
설령 그녀의 상태가 진심으로 의심스러웠다 해도, 흔히 말하는 상담이나 치료 따위를 고려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것들도 하나의 질환일 뿐이지, 흠이 아니야’라고 얘기하고 다녔다 한들 어디까지나 남의 일에 한해서였다. 정말이지, 나에게는 이상한 일들에 대한 내성이 전혀 없었다.
*
그 꿈을 꾸기 전날 아침 난 얼어붙은 고기를 썰고 있었지. 당신이 화를 내며 재촉했어.
제기랄, 그렇게 꾸물대고 있을 거야?
알지, 당신이 서두를 때면 나는 정신을 못 차리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허둥대고, 그래서 오히려 일들이 뒤엉키지. 빨리, 더 빨리. 칼을 쥔 손이 바빠서 목덜미가 뜨거워졌어. 갑자기 도마가 앞으로 밀렸어. 손가락을 벤 것, 식칼의 이가 나간 건 그 찰나야.
검지손가락을 들어올리자 붉은 핏방울 하나가 빠르게 피어나고 있었어. 둥글게, 더 둥글게. 손가락을 입속에 넣자 마음이 편안해졌어. 선홍빛의 색깔과 함께, 이상하게도 그 들큼한 맛이 나를 진정시키는 것 같았어.
두번째로 집은 불고기를 우물거리다가 당신은 입에 든 걸 뱉어냈지. 반짝이는 걸 골라 들고 고함을 질렀지.
뭐야, 이건! 칼조각 아냐!
일그러진 얼굴로 날뛰는 당신을 나는 우두커니 바라보았어.
그냥 삼켰으면 어쩔 뻔했어! 죽을 뻔했잖아!
왜 나는 그때 놀라지 않았을까. 오히려 더욱 침착해졌어. 마치 서늘한 손이 내 이마를 짚어준 것 같았어. 문득 썰물처럼,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미끄러지듯 밀려나갔어. 식탁이, 당신이, 부엌의 모든 가구들이. 나와, 내가 앉은 의자만 무한한 공간 속에 남은 것 같았어.
다음날 새벽이었어. 헛간 속의 피웅덩이, 거기 비친 얼굴을 처음 본 건.
*
“입술이 그게 뭐야. 화장을 안한 거야?”
나는 구두를 벗었다. 검은 트렌치코트 차림으로 우두망찰 서 있는 아내의 팔을 끌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고 나설 참이야, 지금?”
나와 아내의 모습이 화장대 거울 속에 비쳤다.
“다시 해, 화장.”
아내는 조용히 내 손을 뿌리쳤다. 콤팩트를 열고 스펀지를 얼굴에 두드렸다. 뿌옇게 분이 떠, 그녀의 얼굴은 먼지를 뒤집어쓴 헝겊인형 같아졌다. 늘 바르던 짙은 산호색 루주를 잿빛 입술에 바르자, 아쉬운 대로 아내의 얼굴은 환자 같은 창백함을 벗었다. 나는 안도했다.
“늦었어. 서둘러.”
나는 앞장서서 현관문을 열었다. 한 손으로는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른 채, 아내가 뭉그적뭉그적 남색 운동화에 발을 끼우는 모습을 초조히 지켜보았다. 트렌치코트에 운동화라니,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녀에게는 구두가 없었다. 모든 종류의 가죽제품을 버렸기 때문이다.
시동을 걸어놓은 차에 먼저 올라타자마자 교통방송을 틀었다. 사장이 예약해놓은 시내 한정식집 주변의 교통상황을 체크하기 위해 귀를 기울이며, 안전벨트를 매고 사이드브레이크를 내렸다. 잠깐 사이 코트에 묻혀온 찬기운을 펄럭이며, 아내는 옆자리에 앉아 부스럭부스럭 안전벨트를 맸다.
“오늘 잘해야 돼. 사장이 부부동반 모임에 과장급을 부른 건 내가 처음이야. 그만큼 날 잘 보고 있다는 거야.”
샛길을 이용해 최대한 서둘러 5분 전에 약속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눈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널따란 주차장이 딸린 이층집이었다.
늦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얇은 봄코트 차림으로 주차장 한켠에 서서 저녁바람을 맞고 있는 아내는 추워 보였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줄곧 아내는 말이 없었지만, 워낙 그런 사람이었으므로 나는 괘념하지 않았다. 말이 없으면 좋다, 어른들은 원래 저런 여자를 좋아한다고, 나는 조금 불편했던 마음을 손쉽게 떨쳐버렸다.
사장 내외와 상무, 전무 내외가 미리 와 있었다. 부장 내외는 바로 우리를 뒤따라 들어왔다. 목례와 웃음으로 인사를 나눈 뒤 아내와 나는 코트를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 눈썹을 가늘게 뽑고 커다란 비취목걸이를 한 사장 부인이 안내하는 대로 아내와 나는 만찬용 긴 식탁 앞에 섰다. 모두 자주 와본 장소인 듯 편안해 보였다. 용마루처럼 장식한 천장을 눈여겨보며, 돌로 만든 어항에 떠다니는 금붕어들을 곁눈질하며 나는 자리에 앉았다. 뜻없이 아내를 돌아본 순간, 그녀의 가슴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내는 약간 달라붙는 검은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는데, 두 개의 젖꼭지가 분명하게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의심할 바 없이, 그녀는 브래지어를 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눈을 살피려고 고개를 돌렸을 때 나는 전무 부인과 눈이 마주쳤다. 태연을 가장한 그녀의 눈이 호기심과 아연함, 약간의 주저가 어린 경멸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나는 알아보았다.
나는 뺨이 상기되는 것을 느꼈다. 여자들끼리의 사교적인 대화에 참가하지 않은 채 멍하게 앉아 있는 아내를, 그녀를 흘끔거리는 시선들을 의식하며 나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것만이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았다.
“찾아오는 데 어려움은 없었어요?”
사장 부인이 나에게 물었다.
“예전에 지나본 적이 있습니다. 앞마당이 좋아서 한번 들어와보고 싶은 집이었습니다.”
“아, 그래요…… 정원이 참 잘 돼 있죠. 낮에 오면 더 좋아요. 저 창문으로 화단이 보이거든요.”
그러나 음식들이 써빙되기 시작하자, 내가 간신히 유지하고 있던 팽팽한 노력의 끈은 끊어졌다.
처음 우리 앞에 놓인 것은 탕평채였다. 가늘게 채썬 묵청포와 표고버섯, 쇠고기를 버무린 정갈한 음식이었다. 그때까지 한마디의 말도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던 아내는, 웨이터가 자신의 접시에 탕평채를 덜어놓으려고 국자를 드는 찰나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안 먹을게요.”
아주 작은 목소리였으나 좌중의 움직임이 멈췄다. 의아한 시선들을 한몸에 받은 그녀는, 이번에는 좀더 큰 소리로 말했다.
“저는, 고기를 안 먹어요.”
“그러니까, 채식주의자시군요?”
사장이 호탕한 어조로 물었다.
“외국에는 엄격한 채식주의자들이 더러 있죠. 우리나라는 이제 좀 형성돼가는 것 같아요. 특히 요즘엔 언론에서 하도 육식을 공격해대니…… 오래 살려면 고기를 끊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죠.”
“아무리 그래도, 고기를 아주 안 먹고 살 수 있나요?”
사장 부인이 미소띤 얼굴로 말했다.
아내의 접시가 하얗게 빈 채 남아 있는 동안, 웨이터는 나머지 아홉 사람의 접시를 모두 채운 뒤 사라졌다. 화제는 자연 채식주의로 흘러갔다.
“얼마 전에 오십만년 전 인간의 미이라가 발견됐었죠? 거기에도 수렵의 흔적이 있었다는 것 아닙니까. 육식은 본능이에요. 채식이란 본능을 거스르는 거죠. 자연스럽지가 않아요.”
“요샌 사상체질 때문에 채식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던데…… 저도 체질을 알아보려고 몇군데 가봤더니 가는 데마다 다른 얘길 하더군요. 그때마다 식단을 바꿔 짜봤지만 항상 마음이 불편하고…… 그저 골고루 먹는 게 최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골고루, 못 먹는 것 없이 먹는 사람이 건강한 거 아니겠어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원만하다는 증거죠.”
아까부터 아내의 젖가슴을 흘끔거리고 있던 전무 부인이 말했다. 마침내 그녀의 화살은 아내에게 직접 날아왔다.
“채식을 하는 이유가 어떤 건가요? 건강 때문에…… 아니면 종교적인 거예요?”
“아니오.”
아내는 이 자리가 얼마나 어려운 자리인지 전혀 의식하지 않은 듯, 태연하고 조용하게 입을 떼었다. 불현듯 소름이 끼쳤다. 아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꿈을 꿨어요.”
나는 재빨리 아내의 말끝을 덮었다.
“집사람은 오랫동안 위장병을 앓았어요. 그래서 숙면을 취하지 못했죠. 한의사의 처방대로 육식을 끊은 뒤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요. 저는 아직 진짜 채식주의자와 함께 밥을 먹어본 적이 없어요. 내가 고기를 먹는 모습을 징그럽게 생각할지도 모를 사람과 밥을 먹는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정신적인 이유로 채식을 한다는 건, 어찌됐든 육식을 혐오한다는 거 아녜요? 안 그래요?”
“꿈틀거리는 세발낙지를 맛있게 젓가락에 말아 먹고 있는데, 앞에 앉은 여자가 혐오스러운 눈으로 노려보고 있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겠죠.”
좌중이 웃음을 터뜨렸다. 따라 웃으며 나는 의식하고 있었다. 아내가 함께 웃지 않는다는 것을. 허공을 오가는 어떤 대화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은 채, 사람들의 입술에 번들거리는 탕평채의 참기름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그것이 모두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다음 음식은 깐풍기였고, 그다음 음식은 참치회였다. 모두가 먹는 동안 아내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작은 도토리알 같은 유두를 블라우스 속에서 뚜렷이 내민 채, 거기 모인 사람들의 입술과 그 움직임을 샅샅이, 빨아들이듯 지켜보았다.
10여 가지의 화려한 코스가 끝날 때까지 아내가 먹은 것은 샐러드와 김치, 호박죽뿐이었다. 독특한 맛의 작은 찹쌀새알죽도 육수에 담겨 있었기 때문에 먹지 않았다. 점점 사람들은 아내가 그 모임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대화를 이어갔다. 그녀는 있어도 없는 존재였다. 아니, 없다고 치부해버리는 존재였다. 나만은 가엾게 여긴 듯 가끔 무엇인가를 물어오는 이들이 있었으나, 내심 나조차 한묶음으로 경원시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후식으로 과일이 나왔을 때 아내는 사과와 오렌지를 한조각씩 먹었다.
“배고프지 않으세요? 거의 드시지 않았잖아요?”
사장 부인이 화사한 사교적 톤으로 아내를 염려했다. 아내는 웃지도, 얼굴을 붉히지도, 머뭇거리지도 않은 채 대답 없이 그 여자의 우아한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 응시가 좌중의 기분을 끔찍하게 만들고 있었다. 아내는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알고 있을까. 저 중년의 여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 걸까. 순간, 한번도 들어가본 적 없는 그녀의 머릿속이, 그 내부가, 까마득히 깊은 함정처럼 느껴졌다.
*
무엇인가 조치를 취해야 했다.
그날 밤, 모든 것이 낭패로 돌아간 것을 느끼며 집까지 운전해 돌아오면서 나는 생각했다. 그녀는 태연해 보였다.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피곤한 듯 비스듬히 차창에 얼굴을 기대고 있을 뿐이었다. 평소 내 성격대로였다면 화를 냈을 것이다. 회사에서 남편 쫓겨나는 꼴 보고 싶어? 그게 대체 뭐하는 짓이야?
그러나 나는 직감적으로 모든 것이 의미없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분노와 설득도 그녀를 움직일 수 없었다. 내 손으로 뭔가를 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었다.
아내가 씻고 잠옷을 걸친 뒤 안방 대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자, 나는 거실을 서성거리다가 전화기를 들었다. 먼 소도시에서 장모가 전화를 받았다. 아직 잠들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는데, 장모의 목소리는 혼곤했다.
“다들 편안한가? 요즘 통 연락이 없던데.”
“죄송합니다. 제가 워낙 바쁘게 지내느라구요. 장인어른은 건강하십니까?”
“우리야 늘 똑같지. 정서방 하는 일은 잘되고?”
나는 망설이다가 말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런데 집사람이……”
“영혜가 왜, 무슨 일이라도 있나?”
장모의 음성에 걱정이 어렸다. 평소에 장모가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둘째딸이지만, 딸은 딸인 모양이었다.
“고기를 안 먹는답니다.”
“뭐라고?”
“고기를 전혀 안 먹고 풀만 먹고 삽니다. 여러 달 됐어요.”
“그게 무슨 얘긴가? 다이어튼가 뭔갈 하는 건 아닐 테고.”
“글쎄, 아무리 제가 말려도 듣질 않습니다. 덕분에 저도 집에서 고기맛을 본 지 오래됐습니다.”
장모의 말문이 막혔다. 막힌 틈을 타 나는 쐐기를 박았다.
“집사람 몸이 얼마나 허약해졌는지 모릅니다.”
“안되겠구만. 옆에 영혜 있으면 바꿔주게.”
“지금은 자러 갔습니다. 내일 아침에 전화하라고 하겠습니다.”
“아니야, 두게. 내일 아침에 내가 전화함세. 그애가 왜 안하던 짓을…… 자네한테 면목이 없네.”
전화를 끊은 뒤, 나는 수첩을 뒤져 처형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세살배기 처조카 녀석이 “여보세요” 고함치며 받았다.
“엄마 좀 바꿔라.”
아내와 닮았지만 아내보다 눈이 커서 예쁜, 무엇보다 아내보다 여자다운 데가 있는 처형이 곧 수화기를 넘겨받았다.
“여보세요?”
콧소리를 섞어내는 처형과의 통화는 언제나 나에게 약간의 성적인 긴장감을 주었다. 나는 좀전과 같은 방법으로 아내의 채식을 알려, 좀전과 똑같은 경악과 사죄, 다짐을 받아낸 뒤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마지막으로 막내 처남의 전화번호를 누를까 하다가, 지나친 것 같아 그만두었다.
*
다시 꿈을 꿨어.
누군가가 사람을 죽여서, 다른 누군가가 그걸 감쪽같이 숨겨줬는데, 깨는 순간 잊었어. 죽인 사람이 난지, 아니면 살해된 쪽인지. 죽인 사람이 나라면, 내 손에 죽은 사람이 누군지. 혹 당신일까. 아주 가까운 사람이었는데. 아니면, 당신이 날 죽였던가…… 그럼 그걸 감춰준 사람은 누굴까. 그건 분명히 나나 당신이 아닌데. ……삽이었어. 그것만은 확실해. 커다란 흙삽으로 머릴 쳐서 죽였어. 둔중한 울림, 금속과 머리가 부딪히던 순간의 탄성(彈性)…… 어둠속에서 고꾸라지던 그림자가 생생해.
이번 꿈이 처음이 아니야. 무수히 꿨던 꿈이야. 술에 취하면 예전에 취했을 때 기억이 나는 것처럼, 꿈속에서 지난 꿈 생각이 나. 수없이 누군가가 누군가를 죽였어. 가물가물한…… 잡히지 않는…… 하지만 소름끼치게 확고한 느낌으로 기억돼.
이해할 수 없겠지. 예전부터 난, 누군가가 도마에 칼질을 하고 있는 걸 보면 무서웠어. 그게 언니라 해도, 아니, 엄마라 해도. 왠지는 설명 못해. 그냥 못 견디게 싫은 느낌이라고밖엔. 그래서 오히려 그 사람들한테 다정하게 굴곤 했었지. 그렇다고 어제 꿈에 죽거나 죽인 사람이 엄마나 언니였다는 건 아니야. 다만 그 비슷한 느낌, 오싹하고, 더럽고, 끔찍하고 잔인한 느낌만이 남아 있어. 내 손으로 사람을 죽인 느낌, 아니면 누군가 나를 살해한 느낌, 겪어보지 않았다면 결코 느끼지 못할…… 단호하고, 환멸스러운. 덜 식은 피처럼 미지근한.
무엇 때문일까.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져. 내가 뭔가의 뒤편으로 들어와 있는 것 같아. 손잡이가 없는 문 뒤에 갇힌 것 같아.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여기 있었던 걸 이제야 갑자기 알게 된 걸까. 어두워. 모든 것이 캄캄하게 뭉개어져 있어.
*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장모와 처형의 전화는 아내의 식습관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주말이면 장모는 나에게 전화해 물었다.
“영혜가 아직도 고기를 안 먹나?”
생전 전화하는 법 없던 장인까지 아내에게 호통을 쳤다. 수화기 밖으로, 흥분한 고함소리가 나에게까지 들렸다.
“뭐하는 짓이냐, 너는 그렇다 치고 한창 나이의 정서방은 어쩌란 말이냐?”
아내는 예,라고도 아니오,라고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수화기를 귀에 대고 있었다.
“왜 대답이 없어, 듣고 있는 거냐?”
부엌의 냄비가 끓었으므로 아내는 말없이 수화기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부엌으로 갔다. 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상대 없이 애처롭게 고함치고 있는 장인을 위해 나는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죄송합니다, 장인어른.”
“아니야, 내가 면목이 없네.”
가부장적인 장인은 지난 5년간 들어본 적 없는 사과조의 말로 나를 놀라게 했다. 배려의 말 따위는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월남전에 참전해 무공훈장 받은 것을 가장 큰 자랑으로 여기는 그는 목소리가 무척 크고, 그 목소리만큼 대가 센 사람이었다. 내가 월남에서 베트콩 일곱을…… 하고 시작되는 레퍼토리를 사위인 나도 두어 번 들은 적이 있다. 아내는 그 아버지에게 열여덟살까지 종아리를 맞으며 자랐다고 했다.
“……내가 조만간 한번 올라가 봐야겠네.”
6월은 장모의 생일이 있는 달이다. 처가가 멀어, 서울의 처갓집 형제들은 선물을 부치고 전화를 드리는 것으로 장모의 생일을 넘기곤 했다. 그런데 마침 5월에 처형네가 평수를 넓혀 이사를 했으니, 집구경도 할 겸 장인 내외가 올라온다는 것이었다. 다가오는 6월 셋째 일요일의 모임은 몇년 만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처가의 큰 행사가 되는 셈이었다. 누구도 공공연히 말하진 않았으나, 아내에 대한 가족들의 질책이 그날로 준비돼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정작 아내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연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내가 나와의 잠자리를 의도적으로 계속 피한다는 것을 제외하면―그녀는 숫제 청바지 차림으로 잤다―우리는 아직 겉보기에 정상적인 부부였다. 하루가 다르게 그녀가 여위어가고 있다는 것, 새벽에 내가 알람시계를 더듬어 끄고 몸을 일으키면, 그녀가 어둠속에서 눈을 뜬 채 꼿꼿이 누워 있다는 것이 예전과 다를 뿐이었다. 회사에서 주선한 외식 후 사람들은 한동안 나를 미심쩍게 대했으나, 내가 성사시킨 프로젝트가 괄목할 만한 수입을 거둬내자 모든 것이 묻혀지는 듯했다.
이대로, 좀 이상한 여자와 산다 해도 나쁠 것 없겠다고 나는 가끔 생각했다. 그냥 남인 듯이. 아니, 밥을 차려주고 집을 청소해주는 누이, 혹은 파출부 같은 존재로서라도. 그러나 한창 나이에, 무덤덤했다곤 하나 결혼생활을 유지해온 남자에게 장기간의 금욕은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회식이 있어 늦게 들어온 밤이면 나는 술기운에 기대어 아내를 덮쳐보기도 했다. 저항하는 팔을 누르고 바지를 벗길 때는 뜻밖의 흥분을 느꼈다. 격렬하게 몸부림치는 아내에게 낮은 욕설을 뱉어가며, 세번에 한번은 삽입에 성공했다. 그럴 때 아내는 마치 자신이 끌려온 종군위안부라도 되는 듯 멍한 얼굴로 어둠속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내 행위가 끝나는 즉시 그녀는 옆으로 돌아누워 이불 속에 얼굴을 숨겼다. 내가 샤워하러 나가 있는 동안 뒤처리를 하는 모양으로, 잠자리에 돌아와보면 그녀는 아무 일 없었던 듯 바로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그때마다 나를 사로잡는 것은 기이하고도 불길한 예감이었다. 예감이라는 것을 갖고 살아본 적 없는 둔감한 성격의 나였지만, 그 안방의 어둠과 정적은 오싹했다. 다음날 아침 식탁 앞에 앉은 아내의 단단히 다문 입술, 아무것도 귀담아듣지 않으며 모든 것을 무시하는 듯한 눈빛을, 나는 염오감을 감추지 못한 채 건너다보았다. 마치 산전수전 다 겪은 듯한, 풍파에 깎인 것 같은 그 표정이 나는 꺼림칙하고 싫었다.
가족모임을 사흘 앞둔 날 저녁이었다. 그날 서울은 때이른 무더위를 기록해, 점포마다 에어컨을 가동시켰다. 종일 사무실에서 에어컨을 쐰 나는 냉기에 지쳐서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고 아내의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황급히 들어서서 문을 닫았다. 복도식 아파트였으므로 지나는 사람이 있을까봐 두려워서였다. 아내는 베이지색 면바지 위로 상체를 벌거벗은 채 TV 장식장 앞에 기대앉아 감자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선명히 드러난 쇄골, 너무나 살이 빠져 이제는 조금 둔덕져 있을 뿐인 젖가슴 위로 두 개의 젖꼭지가 솟아나와 있었다.
“옷은 왜 벗고 있어?”
웃음을 지으려 애쓰며 나는 물었다. 아내는 고개를 들지도 않은 채, 계속해서 감자칼을 놀리며 대답했다.
“더워서.”
고개를 들어봐. 나는 소리내지 않은 채, 이를 악물고 속으로 말했다. 고개를 들고 웃어. 그 대답이 농담이라는 걸 보여봐. 그러나 그녀는 웃지 않았다. 저녁 여덟시였고, 베란다 문이 열려 있었고, 아파트 안은 덥지 않았다. 아내의 어깨에도 깨알 같은 소름이 돋아 있었다. 감자껍질이 신문지 위로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서른 개도 넘는 감자들이 작은 언덕을 이루고 있었다.
“그걸로 뭘 하려고?”
나는 태연을 가장해 물었다.
“쪄먹으려고.”
“그걸, 다?”
“응.”
나는 비실비실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그녀가 따라 웃기를 기다렸다. 그녀는 웃지 않았다. 내 얼굴을 올려다보지도 않았다.
“그냥, 허기가 져서 그래.”
*
꿈에 누군가의 목을 자를 때, 끝까지 잘리지 않아 덜렁거리는 머리채를 잡고 마저 칼질을 할 때, 미끌미끌한 안구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을 때, 그러다 깨어날 때. 생시에, 뒤뚱거리며 내 앞을 걸어가는 비둘기를 죽이고 싶어질 때, 오래 지켜보았던 이웃집 고양이를 목조르고 싶을 때, 다리가 후들거리고 식은땀이 맺힐 때, 내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을 때, 다른 사람이 내 안에서 솟구쳐올라와 나를 먹어버린 때, 그때……
입 안에 침이 고여. 정육점 앞을 지날 때 나는 입을 막아. 혀뿌리부터 차올라 입술을 적시는 침 때문에. 입술 사이로 새어나와 흘러내리려는 침 때문에.
*
잘 수 있다면. 단 한시간이라도 의식을 놓을 수 있다면. 셀 수 없이 깨어나 맨발로 서성거리는 밤에, 집은 식어 있어. 식은 밥, 식은 국처럼 싸늘해. 검은 창밖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어두운 현관문이 간혹 덜컹거리는 소리를 내지만, 문을 두드린 사람 따위는 없어. 돌아와 이불 밑에 손을 넣어보면, 다 식어 있어.
*
이제는 5분 이상 잠들지 못해. 설풋 의식이 나가자마자 꿈이야. 아니, 꿈이라고도 할 수 없어. 짧은 장면들이 단속적으로 덮쳐와. 번들거리는 짐승의 눈, 피의 형상, 파헤쳐진 두개골, 그리고 다시 맹수의 눈. 내 뱃속에서 올라온 것 같은 눈. 떨면서 눈을 뜨면 내 손을 확인해. 내 손톱이 아직 부드러운지, 내 이빨이 아직 온순한지.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이 둥근 가슴이 있는 한 난 괜찮아. 아직 괜찮은 거야. 그런데 왜 자꾸만 가슴이 여위는 거지. 이젠 더이상 둥글지도 않아. 왜지. 왜 나는 이렇게 말라가는 거지. 무엇을 찌르려고 이렇게 날카로워지는 거지.
*
햇볕이 잘 드는 남향 아파트의 17층이었다. 앞동이 전망을 가로막고 있긴 했지만 뒤쪽으로는 멀리 산자락이 보였다.
“이제 너희 걱정은 다 잊어버렸다. 완전히 자리를 잡았구나.”
장인이 수저를 들며 한마디 했다.
처형이 결혼 전부터 해온 화장품 가게의 수입으로 분양받은 아파트였다. 그녀는 만삭이 될 때까지 점포를 세배로 넓혔고, 출산 후에는 밤에만 잠깐씩 들러 가게를 운영해왔다. 얼마 전 처조카가 두돌이 지나 어린이집에 가자 다시 종일 가게를 보기 시작했다고 했다.
나는 손윗동서가 부러웠다. 미대를 나와 작가라고 행세하긴 하지만 생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 동서였다. 물려받은 재산이 있다지만, 벌지 않고 쓰기만 해서는 한계가 있다. 처형이 팔을 걷어붙였으니, 동서는 이제 평생 예술이나 하며 마음 편히 살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처형은 예전의 아내처럼 음식솜씨가 좋았다. 딱 부러지게 차려놓은 점심상을 보니 나는 새삼스레 허기를 느꼈다. 처형의 적당히 살이 붙은 몸매, 사근사근한 말씨, 커다랗게 쌍꺼풀진 눈을 바라보며 나는 내가 잃고 살아왔을지 모를 많은 것들을 아쉬워했다.
아내는 집이 좋다느니, 음식을 차리느라 애썼다느니 하는 인사말 한마디 없이 조용히 밥과 김치를 먹었다. 그것 외에는 그녀가 먹을 것이 없었다. 그녀는 계란을 원료로 한 마요네즈도 먹지 않으므로,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샐러드에조차 젓가락을 대지 않았다.
아내의 얼굴은 긴 불면으로 숫제 검게 타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중병 환자로 여겼을 것이다. 언제나처럼 브래지어도 하지 않고 흰 티셔츠를 입어 자세히 보면 옅은 갈색 젖꼭지가 보였다. 좀전에 함께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처형이 그녀를 안방으로 불렀는데, 잠시 후 처형이 먼저 난감한 얼굴로 안방을 나온 것으로 미루어 아내가 브래지어를 하지 않겠다고 한 모양이었다.
“여기 분양가가 얼마였어요?”
“……그래요? 어제 부동산 사이트에 들어가봤는데. 이 아파트는 벌써 오천만원쯤 오른 거네요. 내년엔 지하철도 완공된다면서요.”
“매형이 수완이 참 좋으세요.”
“제가 뭐 하는 게 있나요. 다 집사람이 알아서 했죠.”
의례적이며 정다운, 그리고 실질적인 대화가 듬성듬성 오가는 동안, 아이들은 떠들고 서로를 때려가며 볼이 미어지게 음식을 먹어댔다. 내가 물었다.
“처형, 이 음식을 혼자 다 하셨습니까?”
처형은 반쯤 웃었다.
“그냥, 그저께부터 하나씩 했어요. 그런데 저거, 굴무침은 영혜가 좋아하는 거라 일부러 장봐다 한 건데…… 영혜는 손도 안 대네.”
나는 숨을 죽였다. 마침내 시작이었다.
“가만있어봐라. 영혜 너, 애비가 그만큼 알아듣게 말했는데……”
장인의 호통에 이어, 처형이 야무지게 아내를 나무랐다.
“너 정말 어쩌려구 그러니? 사람한테 필요한 영양소가 있는 건데…… 채식을 하려면 제대로 식단을 잘 짜서 하든가. 얼굴이 그게 뭐야.”
처남댁까지 거들었다.
“저는 딴사람인 줄 알았어요. 얘기는 들었지만, 그렇게 몸 상해가면서 채식하는 줄은 몰랐지 뭐예요.”
“지금부터 그 채식인지 뭔지는 끝이다. 이거, 이거, 이거, 다 먹어라 얼른. 없어 못 먹는 세상도 아니고 무슨 꼴이냐.”
장모는 쇠고기볶음과 탕수육, 닭찜, 낙지소면 접시들을 들어 아내의 앞에 펼쳐놓으며 말했다.
“뭐하고 있는 거냐? 어서 먹어.”
장인이 기차 화통 같은 목소리로 채근했다.
“영혜야, 먹어. 먹으면 힘이 날 거야. 사람이 사는 날까진 힘차게 살아야지. 절에 들어간 스님들은 그만큼 수도를 하고 독신생활을 하니까 살 수 있는 거야.”
처형이 조곤조곤 타일렀다. 아이들도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내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내는 이게 무슨 갑작스런 소란인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멍한 시선으로 가족들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긴장된 침묵이 흘렀다. 나는 새카맣게 그을린 장인의 얼굴을, 한때 젊은 여인이었으리라는 것을 믿을 수 없을 만큼 쪼글쪼글한 장모의 얼굴을, 그 눈에 어린 염려를, 처형의 근심어린, 치켜올라간 눈썹을, 동서의 방관자적인 태도를, 막내 처남 내외의 소극적이지만 못마땅한 듯한 표정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아내가 무슨 말이든 꺼내놓을 것이라고 나는 기대했다. 그러나 그녀는 들고 있던 젓가락을 상 위에 내려놓는 것으로, 그 모든 얼굴들이 쏘아보내는 무언의, 하나의 메씨지에 대한 대답을 대신했다.
작은 술렁임이 지나갔다. 장모는 이번에는 젓가락으로 탕수육을 들었다. 아내의 입 바로 앞까지 내밀며 말했다.
“자, 어서 아, 해라. 먹어.”
아내는 입을 다문 채, 예의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눈으로 자신의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서 입 벌려. 이거 싫으냐? 그럼 이거.”
장모는 이번에는 쇠고기볶음을 들었다. 아내가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자 다시 그것을 내려놓고 굴무침을 집었다.
“너 어릴 때부터 이거 좋아했잖냐. 이거 실컷 먹어보고 싶다고 한 적도 있었는데……”
“예, 저도 기억나요. 그래서 어디 가서 굴을 보면 영혜 생각이 나는데.”
처형은 아내가 굴무침을 먹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큰일이라는 듯 장모를 거들었다. 굴무침이 집힌 젓가락이 입을 향해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아내는 몸을 뒤로 힘껏 젖혔다.
“얼른 먹어. 팔 아프다……”
장모의 팔이 실제로 떨렸다. 아내는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 안 먹어요.”
처음으로 아내의 입에서 또렷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뭐야!”
고함을 지른 것은, 비슷한 다혈질의 장인과 처남이 함께였다. 처남댁이 얼른 처남의 팔을 잡아 흥분을 가라앉혔다.
“보고 있으려니 내 가슴이 터진다. 이 애비 말이 말 같지 않아? 먹으라면 먹어!”
나는 아내가 ‘죄송해요, 아버지. 하지만 못 먹겠어요’라고 대답하리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그녀는 조금도 죄송하지 않은 듯한 말투로 담담히 말했다.
“저는, 고기를 안 먹어요.”
절망한 장모의 젓가락이 거두어졌다. 늙은 그녀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곧 폭발할 듯한 정적이 가족들을 짓눌렀다. 장인이 젓가락을 집어들었다. 탕수육 한점을 집어들고 상을 돌아 아내 앞에 우뚝 섰다.
평생의 노동에 단련된, 단단한, 그러나 어쩔 수 없이 허리가 구부정하게 굽은 뒷모습으로 장인은 탕수육을 아내의 얼굴에 들이댔다.
“먹어라. 애비 말 듣고 먹어. 다 널 위해서 하는 말이다. 그러다 병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러는 거냐.”
가슴 뭉클한 부정(父情)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마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그랬을 것이다. 허공에서 조용히 떨고 있는 장인의 젓가락을 아내는 한 손으로 밀어냈다.
“아버지, 저는 고기를 안 먹어요.”
순간, 장인의 억센 손바닥이 허공을 갈랐다. 아내가 뺨을 감싸쥐었다.
“아버지!”
처형이 외치며 장인의 팔을 잡았다. 장인은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듯 입술을 실룩거리고 있었다. 한때 성깔이 대단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장인이 누군가에게 손찌검하는 광경을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정서방, 영호, 둘이 이쪽으로 와라.”
나는 머뭇거리며 아내에게 다가갔다. 뺨에서 피가 비칠 만큼 아내는 세게 맞았다. 그녀는 그제야 평정이 깨진 듯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두 사람이 영혜 팔을 잡아라.”
“예?”
“한번만 먹기 시작하면 다시 먹을 거다. 세상천지에, 요즘 고기 안 먹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어!”
불만스러운 얼굴로 처남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누나, 웬만하면 먹어. 예, 하고 먹는 시늉만 하면 간단하잖아. 아버지 앞에서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장인이 고함쳤다.
“무슨 얘길 하고 있어. 어서 팔 잡아라. 정서방도.”
“아버지, 왜 이러세요.”
처형이 장인의 오른팔을 잡았다. 장인은 이제 젓가락을 내던지고, 손으로 탕수육을 들고 아내에게 다가갔다. 아내가 뒷걸음질치는 것을 처남이 잡았다.
“누나, 그냥 좋게 먹어. 누나가 받아서 먹어.”
처형이 애원했다.
“아버지, 제발 그만 하세요.”
처형이 장인을 잡은 팔힘보다 처남이 아내를 잡은 팔힘이 셌으므로, 장인은 처형을 뿌리치고 탕수육을 아내의 입에 갖다댔다. 입을 굳게 다문 채 아내는 신음소리를 냈다. 뭔가 말하기 위해 입을 벌리면 그것이 들어올까봐 말조차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
처남은 소리쳐 만류했으나, 얼결에 아내를 잡은 팔을 놓지 않고 있었다.
“으음…… 음!”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는 아내의 입술에 장인은 탕수육을 짓이겼다. 억센 손가락으로 두 입술을 열었으나, 악물린 이빨을 어쩌지 못했다.
마침내 다시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장인이 한번 더 아내의 뺨을 때렸다.
“아버지!”
처형이 달려들어 장인의 허리를 안았으나, 아내의 입이 벌어진 순간 장인은 탕수육을 쑤셔넣었다. 처남이 그 서슬에 팔의 힘을 빼자, 으르렁거리며 아내가 탕수육을 뱉어냈다. 짐승 같은 비명이 그녀의 입에서 터졌다.
“……비켜!”
아내는 몸을 웅크려 현관 쪽으로 달아나는가 싶더니, 뒤돌아서서 교자상에 놓여 있던 과도를 집어들었다.
“여, 영혜야.”
장모의 끊어질 듯한 음성이 살벌한 정적 위에 떨리는 금을 그었다. 아이들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이를 악문 채,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의 눈을 하나씩 응시하다가, 아내는 칼을 치켜들었다.
“말려……”
“피해!”
아내의 손목에서 분수처럼 피가 솟구쳤다. 흰 접시 위로 붉은 피가 비처럼 쏟아졌다. 무릎을 접고 주저앉은 아내에게서 칼을 뺏은 것은 그때까지 줄곧 방관하고 앉아 있던 동서였다.
“뭐해! 아무 수건이라도 가져와!”
동서는 특공대 출신답게 능숙한 솜씨로 아내의 손목을 지혈한 뒤 그녀를 들쳐업었다.
“자네는 빨리 내려가 시동 걸어!”
나는 더듬더듬 구두를 찾았다. 짝이 맞지 않아, 두 번을 바꿔 신은 뒤에야 현관문을 열고 나갈 수 있었다.
*
……내 다리를 물어뜯은 개가 아버지의 오토바이에 묶이고 있어. 그 개의 꼬리털을 태워 종아리의 상처에 붙이고, 그 위로 붕대를 친친 감고, 아홉살의 나는 대문간에 나가 서 있어. 무더운 여름날이야. 가만히 있어도 땀이 뻘뻘 흘러내려. 개도 붉은 혓바닥을 턱까지 늘어뜨리고 숨을 몰아쉬고 있어. 나보다 몸집이 큰, 잘생긴 흰 개야. 주인집 딸을 물어뜯기 전까진 영리하다고 동네에 소문났던 녀석이었지.
아버지는 녀석을 나무에 매달아 불에 그슬리면서 두들겨패지 않을 거라고 했어. 달리다 죽은 개가 더 부드럽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대. 오토바이의 시동이 걸리고, 아버지는 달리기 시작해. 개도 함께 달려. 동네를 한바퀴, 두바퀴, 세바퀴, 같은 길로 돌아. 나는 꼼짝 않고 문간에 서서, 점점 지쳐가는, 헐떡이며 눈을 희번득이는 흰둥이를 보고 있어. 번쩍이는 녀석의 눈과 마주칠 때마다 난 더욱 눈을 부릅떠.
나쁜 놈의 개, 나를 물어?
다섯바퀴째 돌자 개는 입에 거품을 물고 있어. 목에 걸린 줄에서 피가 흘러. 목이 아파 낑낑대며, 개는 질질 끌리며 달려. 여섯바퀴째, 개는 입으로 검붉은 피를 토해. 목에서도, 입에서도 피가 흘러. 거품 섞인 피, 번쩍이는 두 눈을 나는 꼿꼿이 서서 지켜봐. 일곱바퀴째 나타날 녀석을 기다리고 있을 때, 축 늘어진 녀석을 오토바이 뒤에 실은 아버지가 보여. 녀석의 덜렁거리는 네 다리, 눈꺼풀이 열린, 핏물이 고인 눈을 나는 보고 있어.
그날 저녁 우리집에선 잔치가 벌어졌어. 시장 골목의 알 만한 아저씨들이 다 모였어. 개에 물린 상처가 나으려면 먹어야 한다는 말에 나도 한입을 떠넣었지. 아니, 사실은 밥을 말아 한그릇을 다 먹었어. 들깨냄새가 다 덮지 못한 누린내가 코를 찔렀어. 국밥 위로 어른거리던 눈, 녀석이 달리며, 거품 섞인 피를 토하며 나를 보던 두 눈을 기억해. 아무렇지도 않더군……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어.
*
여자들은 놀란 아이들을 달래기 위해 집에 남고, 처남은 뒤이어 혼절한 장모를 돌보고, 동서와 내가 가까운 병원 응급실로 아내를 날랐다. 응급상황을 넘긴 아내가 2인용 일반병실로 옮겨지자 그때서야 두 남자 모두 피가 말라 꾸덕꾸덕해진 옷을 의식했다.
오른팔에 링거바늘을 꽂은 채 아내는 잠들어 있었다. 나도, 동서도 말없이 아내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았다. 거기 어떤 해답이라도 적혀 있다는 듯이. 계속해서 들여다보면 그 답을 해독할 수 있을 거라는 듯이.
“형님은 들어가세요.”
“……그래.”
동서는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한 기색이었으나 말을 아꼈다. 나는 주머니에서 집히는 대로 2만원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그대로 가지 마시고, 매점에서 옷을 한벌 사세요.”
“자네는? ……아, 이따 지우 엄마가 들를 때 내 옷을 좀 싸보내지.”
저녁 무렵 처형과 처남 내외가 왔다. 흥분상태의 장인은 아직 안정을 취하고 있다고 했다. 장모는 부득부득 오겠다는 것을, 아예 이쪽으로 걸음도 못하도록 했다고 처남은 말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애들 보는 앞에서……”
처남댁은 충격 때문에 울었는지 화장이 지워지고 눈이 부어 있었다.
“아버님도 심하셨어요. 어떻게 사위 보는 앞에서 딸을 때려요? 옛날에도 그러셨어요?”
“워낙 성격이 급하시잖아…… 영호 보면 몰라? 그래도 나이 드시고 괜찮았는데.”
“나는 왜 걸고 넘어져?”
“더군다나 영혜가 워낙 소리 한번 안 내고 자란 딸이라, 당황도 하셨겠지.”
“억지로 고기를 먹이겠다는 것도 심하지만, 그렇게 또 안 먹을 것도 뭐예요? 그리고 칼을 왜 들어요…… 나 태어나서 그런 거 처음 봤어요. 다음부터 형님 얼굴을 어떻게 봐.”
처형이 아내를 지키는 동안, 나는 동서의 티셔츠로 갈아입은 뒤 가까운 사우나에 갔다. 샤워기의 미지근한 물줄기를 받아 검게 굳은 피가 씻겨나가는 동안, 의심스런 시선들이 나를 흘끔거렸다. 구역질이 났다. 이 모든 상황이 징그러웠다. 현실이 아닌 것 같았다. 놀람이나 당혹감보다 강하게, 아내에 대한 혐오감을 느꼈다.
처형이 돌아간 뒤 2인용 병실에는 장파열로 입원한 여고생과 그 부모, 나와 아내만 남았다. 그들이 나를 흘끔거리는 것을, 무엇인가 작은 소리로 쑥덕거리는 것을 의식하며 나는 아내의 머리맡을 지켰다. 이 긴 일요일이 곧 끝나고 월요일이 시작될 것이다. 그러면 더이상 이 여자를 보지 않아도 된다. 내일은 처형이 자리를 지킬 테고 모레면 아내는 퇴원할 것이다. 그러나 퇴원이란, 이 이상하고 무서운 여자와 내가 단둘이 한집에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다음날 밤 아홉시에 나는 병실을 찾았다. 처형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맞았다.
“피곤하시죠?”
“아이는……”
“지우 아빠가 오늘은 안 나가고 있어요.”
어떻게든 술자리가 있었다면 나는 이 시간에 병실로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월요일이었고, 아무런 건수가 없었다. 얼마 전에 바쁜 업무가 끝나 야근도 없었다.
“집사람은요?”
“계속 잤어요. 말 시켜도 대답 안하고. 밥은 잘 먹었어요. ……괜찮을 것 같아요.”
언제나 내 마음을 움직이는, 처형 특유의 사려깊은 말씨가 내 날카로운 기분을 다소나마 다독여주었다. 처형을 보낸 뒤 한 식경이 지나, 넥타이를 푼 뒤 좀 씻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병실문을 두드렸다.
뜻밖에도 장모였다.
“……자네 볼 면목이 없네.”
가까이 다가오자마자 장모가 뱉은 첫마디였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장모님 몸은 좀 어떠세요?”
장모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늘그막에 우리가 무슨 험한 꼴을 보는지……”
장모는 들고 있던 쇼핑백을 나에게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올라오기 전에 준비한 거야. 몇달간 고기를 안 먹었다니 얼마나 몸이 축났을까 싶어서…… 둘이 같이 먹게. 흑염소야. 지우네가 알면 말릴까봐 몰래 갖고 나왔네. 그냥 한약이라고 하고 영혜한테 먹여봐. 약재를 많이 넣어서 역한 냄새도 없을 거야. 안 그래도 귀신같이 마른 게, 그렇게 피를 흘렸으니……”
그녀의 끈질긴 모성애라는 것에, 나는 그만 기가 질렸다.
“여기는 전자렌지가 없지? 내가 간호사실에 가서 알아봄세.”
장모는 가방에서 팩 하나를 꺼내 들고 나갔다. 처형 덕분에 애써 다독여진 마음이 들썽들썽 다시 일어서는 것을 느끼며 나는 넥타이를 말아쥐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침 아내가 잠에서 깨어났는데, 나 혼자 있을 때 깨어난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자 그제야 장모의 출현이 다행으로 느껴졌다.
아내는 발치에 앉아 있던 나보다 장모와 먼저 눈을 맞추었다. 장모는 막 문을 열고 들어오다가 화들짝 반색을 했으나, 아내의 표정은 읽기 어려웠다. 종일 침대에 누워 잠만 잤다더니 다소 온화하고, 링거액 덕분인지 단순한 부기인지 뽀얗게 피어난 얼굴이었다.
장모는 김이 나는 종이컵을 한 손에 들고 아내의 손을 잡았다.
“이것아……”
장모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이것 좀 먹어봐라. 얼굴이 그게 뭐냐.”
아내는 순순히 종이컵을 받아들었다.
“한약이다. 너 몸 보한다고 지어왔다. 왜 옛날에 너 결혼 전에도 한번 약 지어 먹었잖냐.”
아내는 컵에 코를 대보고 고개를 저었다.
“한약 아닌데요.”
담담하고 쓸쓸한 얼굴로, 어찌 보면 연민이 어린 것 같은 눈으로 아내는 팔을 뻗어 컵을 장모에게 돌려주었다.
“한약 맞아. 얼른 코 콱 막고 먹어라.”
“안 먹어요.”
“먹어라. 이 에미 소원이다.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지 않든?”
장모는 아내의 입으로 컵을 가져갔다.
“정말 한약 맞아요?”
“그렇다니까.”
망설이던 아내는 코를 막고 그 검은 액체를 한모금 마셨다. 장모는 희색이 만면하여 “더, 더 마셔”라고 외쳤다. 주름진 눈꺼풀 안에서 장모의 눈이 번쩍거렸다.
“뒀다가, 이따 마실게요.”
아내는 다시 누웠다.
“뭐 먹고 싶냐. 입가심으로 단거 좀 사올까?”
“괜찮아요.”
그러나 장모는 매점이 어디인지 나에게 묻곤 황황히 병실을 나섰다. 아내는 뒤이어 담요를 걷고 일어났다.
“어디 가?”
“화장실에.”
나는 링거액 주머니를 들고 아내를 따라갔다. 아내는 링거액 주머니를 화장실 안에 걸어두게 하고 문을 잠갔다. 그리고, 몇번의 신음소리와 함께 뱃속에 들어간 것을 모두 게워냈다.
허전허전한 걸음걸이로 아내는 화장실에서 나왔다. 아내에게서 역한 위액냄새, 시큼한 음식냄새가 났다. 내가 그녀의 링거액 주머니를 들어주지 않았으므로 아내는 붕대에 감긴 왼손으로 그것을 들었고, 충분히 높이 들지 않아 피가 조금씩 역류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어기적어기적 걸음을 옮겨, 장모가 바닥에 내려놓은 흑염소 가방을 들었다. 링거바늘이 박힌 손이었으나 그녀는 상관하지 않았다. 병실을 나간 뒤 그녀가 그것을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 나는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잠시 후, 여고생과 그 어머니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만큼 요란한 문소리를 내며 장모가 뛰어들어왔다. 한 손에는 과자가 든 검은 비닐봉지를, 다른 손에는 한눈에도 검은 액체가 터져나온 것을 알 수 있는 종이가방을 든 채였다.
“정서방은 어쩌자고 보고만 있었는가? 얘가 지금 무슨 짓을 하려구 했는지 알았을 거 아닌가?”
나는 차라리 그 병실을 나가 집으로 가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너, 이게 얼마짜린 줄 아냐? 이걸 버려? 니 에미 애비 피땀이 어린 돈이다. 네가 그러고도 내 딸이냐?”
역류하여 링거액 주머니 속에 흘러드는 아내의 붉은 피를 나는 보았다.
“네 꼴을 봐라, 지금. 네가 고기를 안 먹으면, 세상사람들이 널 죄다 잡아먹는 거다. 거울 좀 봐라, 네 얼굴이 어떤가 보란 말이다.”
장모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낮은 울음으로 잦아들었다.
그러나 아내는 마치 낯선 여자의 울음을 바라보듯이, 그래서 그것을 지나쳐가듯이 침대 위로 올라갔다. 가슴까지 담요를 끌어당기고 눈을 감았다. 그제야 나는 진홍색 피가 반나마 담긴 링거액 주머니를 들어올렸다.
*
저 여자가 왜 우는지 나는 몰라. 왜 내 얼굴을 삼킬 듯이 들여다보는지도 몰라. 왜 떨리는 손으로 내 손목의 붕대를 쓰다듬는지도 몰라.
손목은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아픈 건 가슴이야. 뭔가가 명치에 걸려 있어. 그게 뭔지 몰라. 언제나 그게 거기 멈춰 있어. 이젠 브래지어를 하지 않아도 덩어리가 느껴져. 아무리 길게 숨을 내쉬어도 가슴이 시원하지 않아.
어떤 고함이, 울부짖음이 겹겹이 뭉쳐져, 거기 박혀 있어. 고기 때문이야. 너무 많은 고기를 먹었어. 그 목숨들이 고스란히 그 자리에 걸려 있는 거야. 틀림없어. 피와 살은 모두 소화돼 몸 구석구석으로 흩어지고, 찌꺼기는 배설됐지만, 목숨들만은 끈질기게 명치에 달라붙어 있는 거야.
한번만, 단 한번만 크게 소리치고 싶어. 캄캄한 창밖으로 달려나가고 싶어. 그러면 이 덩어리가 몸 밖으로 뛰쳐나갈까. 그럴 수 있을까.
아무도 날 도울 수 없어.
아무도 날 살릴 수 없어.
아무도 날 숨쉬게 할 수 없어.
*
장모에게 택시를 잡아준 뒤 돌아오자 병실이 어두웠다. 소란에 질린 여고생과 그 어머니가 일찌감치 텔레비전과 불을 끄고 커튼을 친 것이었다. 아내는 잠들어 있었다. 나는 보조침대에 옹색하게 누워 잠을 청했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가닥이 잡히지 않았다. 한가지 사실만은 분명했다. 이런 일은 나에게 일어나선 안되었다.
얼핏 든 잠에 꿈을 꾸었다. 내가 누군가를 죽이고 있었다. 칼을 배에 꽂아 힘껏 가른 뒤 길고 구불구불한 내장을 꺼냈다. 생선처럼 뼈만 남기고 물컹한 살과 근육을 모두 발라냈다. 그러나 내가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는 잠에서 깨어난 순간 잊고 말았다.
어둑한 새벽이었다. 나는 이상한 충동에 이끌려 아내가 덮은 담요를 걷어보았다. 캄캄한 어둠을 더듬어보았다. 흥건한 피도, 파헤쳐진 내장도 없었다. 옆환자의 침대에서는 쌕쌕 거친 숨소리들이 들려왔는데, 아내는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숨을 멈춘 것 같았다. 나는 기이한 떨림을 느끼며 검지손가락을 뻗어 아내의 인중에 대어보았다. 그녀는 살아 있었다.
다시 잠들었다가 깨었을 때는 이미 병실이 환했다.
“얼마나 깊이 잠드셨는지…… 밥 들어오는 것도 모르시데.”
여고생의 젊은 어머니가 말했다. 안쓰러움이 담긴 말투였다. 나는 침대에 놓인 식판을 보았다. 아내는 밥공기를 열어보지도 않고 식판을 그대로 두고 어디로 나갔나. 링거주사도 뽑아버려, 긴 비닐호스의 끝에 피묻은 바늘이 매달려 있었다.
“이 사람 어디 갔습니까?”
입가에 흘린 침자국을 닦으며 나는 물었다.
“우리도 일어나보니까 없던데요.”
“뭐라구요? 그럼 절 깨우셨어야죠.”
“하도 곤하게 주무시길래…… 사정이 있나보다 했죠, 우리야.”
젊은 어머니는 난감한 듯, 다소 화가 난 듯 얼굴을 붉혔다.
나는 옷매무새를 여미고 뛰어나갔다. 긴 복도와 엘리베이터 앞을 지나며 연신 고개를 두리번거렸으나 아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초조했다. 이날 오전엔 회사에 얘기해 두 시간 늦게 출근하기로 했고, 그사이에 퇴원수속을 밟을 참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일단은 모든 것이 꿈이었다고 생각하자고 아내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타이를 생각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다. 로비에도 아내는 없었다. 숨가쁘게 좌우를 살피며 달려나간 병원 뜰에는 아침식사를 마친 환자들이 나와 있었다. 이른 아침 한때의 서늘함을 맛보러 나온 것이다. 장기입원 환자들인지 지치고 쓸쓸한, 그러나 나름대로 평화로운 모습들이었다. 물이 나오지 않는 분수가 가까워졌을 때, 웅성거리며 모여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나는 그들의 어깨를 헤치고 나아갔다.
아내는 분수대 옆 벤치에 앉아 있었다. 환자복 상의를 벗어 무릎에 올려놓은 채, 앙상한 쇄골과 여윈 젖가슴, 연갈색 유두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는 왼쪽 손목의 붕대를 풀어버렸고, 피가 새어나오기라도 하는 듯 봉합부위를 천천히 핥고 있었다. 햇살이 그녀의 벗은 몸과 얼굴을 감쌌다.
“언제부터 저러고 있었던 거래요?”
“세상에…… 정신병동에서 나왔나봐, 젊은 여자가.”
“지금 쥐고 있는 건 뭐야?”
“빈손 아니야?”
“아녜요. 뭘 꼭 쥐고 있는 것 같아.”
“아, 저기 봐요. 인제들 오시네.”
뒤를 돌아보자, 심각한 얼굴의 남자간호사와 중년의 경비가 이편으로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마치 타인인 듯이, 구경꾼들 중의 한 사람인 듯이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지친 듯한 아내의 얼굴을, 루주가 함부로 번진 듯 피에 젖은 입술을 똑똑히 보았다. 물끄러미 구경꾼들을 바라보던, 물을 머금은 듯 번쩍거리는 그녀의 눈이 나와 마주쳤다.
나는 저 여자를 모른다,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책임의 관성으로, 차마 움직여지지 않는 다리로 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여보, 뭘 하고 있어, 지금.”
나는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 아내의 무릎에 놓인 환자복을 들어 그녀의 볼품없는 가슴을 가렸다.
“더워서……”
아내는 희미하게 웃었다. 내가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그녀 특유의 수수한 미소였다.
“더워서 벗은 것뿐이야.”
아내는 칼자국이 선명한 왼손으로 자신의 이마에 쏟아지는 햇빛을 가렸다.
“……그러면 안돼?”
나는 아내의 움켜쥔 오른손을 펼쳤다. 아내의 손아귀에 목이 눌려 있던 새 한마리가 벤치로 떨어졌다. 깃털이 군데군데 떨어져나간 작은 동박새였다. 포식자에게 뜯긴 듯한 거친 이빨자국 아래로, 붉은 혈흔이 선명하게 번져 있었다.